1.

성의 상업화는 성적 욕망의 과잉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 아니다. 성적 욕망이 전반적으로 억압되었을 때 나타나는 비정상적 현상이다. 안으로부터 분출되어야 할 성적 에너지가 현실에서 자연스럽게 영위되고 충족되지 못하는 사회에서 나타나는 왜곡이다. 자율적 판단이 ㅇㅏ니라 사회에 의해서 관리된 행동으로 변질된다. 관리되면서도 자율적으로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자발적 복종이다. 223 성적 욕망은 상호간 향유라는 본질을 잃고, 구매자와 상품의 관계에서 소비로 전락한다. 224

식욕.수면욕.성욕이 대표적인 인간 본능임을 부인할 ㅅㅏ람은 아무도 없다....빵을 달라는 요구.생존권 보장이 깔려있는 식욕이라는 본능을 ㅅㅏ회를 통해 안정적으로 보장받기 위한 욕구가 각종 사상적, 정치적, 법적 이념과 요구로 정식화된 것이다.....수면욕도 단순히 자ㅁ만 자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휴식을 취해 몸을 정상적인 상태로 유지하려는 욕구를 반영한다....노동 시간을 제한하고 노동 강도를 완화하려는 오랜 노력은 수면욕을 ㄱㅣ본 동기로 한다. 또한 편하게 쉴 수 있는 주거환경과 만족할만한 여가 역시 연관을 갖는다./동일하게 본능에서 출발한 생존 욕구임에도 시민권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바로 성욕이다. 식욕과 수면욕, 즉 식사를 하거나 잠을 ㅈㅏ는 행위에 대해 그 누구도 부끄럽다거나 타락이라고 규정하지 안ㅎ는다. 하지만 여전히 성욕에 대해서는 은밀하게 숨겨야 한다고 여긴다. 성적욕망을 정신보다 중시하는 순간 ㅂㅣ정상적 충동으로 분류된다. 225 이상 생각의 미술관 chapter 7 욕망을 생각하는 사람에서

 

  볕뉘.

 

  0. 문득 이 글이 생각이 났다. 그리고 지난 강연이 생각도 났다. 윤수종교수의 빌헬름 라이히 강의 였다. 그리고 또 다시 샤를 푸리에의 열정적 인력으로서 네 번째 사과에 대한 이야기다. 라이히는 파시즘의 대중심리로서  갑옷을 입은 일상인의 삶들을 다루었다. 물론 노동과 정치에 대해서도 사유를 길게 전개하기도 했다.

 

 1. 68혁명으로 치기어린? 관계의 시도가 실험으로 나타났고, 아나키스트의 삶 속에서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그 관계 역시 질투의 장벽을 넘지 못했다.  이런 사실들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사회마다, 그 사회의 벽은 교묘히 결합되어 있다. 하이틴 로맨스 소설에 불과한 것을 대학교수가 썼다고 해서 가두는 일과 사회적 매장을 시키는 일도 엄연히 벌어졌다고 하겠다. 위계와 처신을 중요시하는 관행들 속에 하루하루가  엇박자로 이루어지고, 담론의 전개나 진화하는 양태를 찾아볼 수 없다.

 

 2. 고인의 책은 읽지 못했다. 다만 윤수종교수의 뒷얘기를 통해서 여러 문제의 꼬리를 물고 있는 성의 공적담화가 잇따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교수의 연구도 그의 맥락과 닿아 있었다.

 

3. 잘 모르겠다. 사회적 자장이 열리거나 틈이 보이지 않으면, 늘 사회적 희생이 따른다. 얼마나 질식할 삶들이 여기에 매여 매장되고 있는 것일까? 그것도 매일매일....

 

4. 모임의 활성화는 성비율에서 시작한다는 우스개아닌 현실처럼, 우리들의 관계는 어떻게 확장되고 나아갈 수 있을까? 지난 여러 역사적 경험들이 다시 우러나오면 좀더 나아질까? 이는 모두의 글처럼 비단 성에 국한 되는 문제가 아니다. 삶의 질에 관계되는 것이고, 우리의 일상의 농도에 관계되는 질문이기도 하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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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9-06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여울 2017-09-06 15:01   좋아요 1 | URL
안타깝습니다 ㅜㅜ
 

테스트 씨

[ 1 ] 나의 단일성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의 동일성이 무너지고 ‘나는 나와 나 사이에‘ 있게 되는 것이다. 이제 그가 한 인간으로 믿어왔던 것들은 모두 의심해야 할 것으로 변모한다./˝나는 내 모든 첫 번째 생각과 우상을 무너뜨려야 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줄 몰랐던 나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원할 줄 몰랐던 나와 결별해야만 했다.˝ 144, 145


[ ] 테스트 씨의 끝 - 사물들을 바라보는 기이한 시선, 알아보는 법 없고 이 세계 바깥에 있는 어떤 인간의 이러한 시선은, 존재와 비존재의 경계에 자리한 눈으로, 이는 생각하는 자에게 속한 것이다. 그리고 또 이것은 번민의 시선, 알아보는 법을 잊어버린 인간의 시선이다. 138

[ ] 테스트 씨의 몇몇 생각 - 내가 세계에서 빌리고 싶은 것이라고는 오직 힘뿐이다.....바위. 공기. 물. 식물성 재료 같은 재료 자체에 대한 느낌이다. 그것들의 기본적인 특성이다. 그리고 행위와 국면이다. 125/ 나는 말하니, 원천이다. 하지만 우리가 고통이나 관능의 원천인 것과도 같다. 우리는 ˝우리에서 왔다고...˝. 이로부터 변화가, 값이, 크기가, ‘감지‘가, 더욱 우리의 것임과 동시에 더욱 기이한 ‘가속‘이, 우리의 주인이, 순간과 또 도래하는 순간에서 비롯한 우리의 우리가 기인한다고 느끼고 있다. 126/ 나는 내가 아는 바를 멸시한다. 내가 가능한 바를 멸시한다....내 ‘영혼‘은 바로 내게 더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지점에서, 더는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은 지점에서, 내 정신이 제 앞에 펼쳐진 길을 폐쇄하는 지점에서 시작한다. 128 / 수단은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제 감수성에다가, 그 감수성에 영향을 미치며, 또한 그 감수성에 의거하여 작동할 무언가를 부여한다. 여기, 이러한 의미로 실행한 것에 대한 결산이 있다. 감수성이 전부다. 전부를 감당하고, 전부를 평가한다. 129 / 나는 세상 쪽을 향해 있지 않다. 내 얼굴은 벽을 향한다. 벽의 표면 중 그 어떤 부분도 내게 미지로 남은 것은 없다. 131 / 본질은 삶과 맞서 존재한다. 132

[ ] 테스트 씨의 초상 - 우리 안에 있는 것은 전체의 기원이며, 따라서 전무의 기원이다. 반응 그 자체다. 저 안으로의 후퇴다....가능한 것의 소모와 충전을 통해서만 존재한다. 113/ 분명, 언제나 더욱 풍부해져 돌아왔으므로, 뭇 분열과 대체와 극도의 유사성을 지니고서, 그럼에도 회귀와 어김없는 역산을 보장받은 채로 114 / 그는 자신이 상당히 자주 가장 강한 자들보다도 강한 자임을, 가장 약한 자들보다도 약한 자임을 알아차렸다. 이는 기이하게 분배된 과도와 양보의 정치학으로 인도할 매우 중대한 발견이었다. 118

[ ] 단어들을 혼동하지 말아야 하지요. 바라는 대로 단어를 배열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렇게 해서 만들어낸 배합에 언제나 꼭 다른 어떤 사물이 대응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껴야만 합니다. 잊어버려야 할 단어가 200개 있는데, 그것을 들으면 번역하게 마련이지요. 이를테면 ‘법‘이라는 단어는 어디를 막론하고 정신에서부터 지워내야 합니다. 아무도 안주하지 않게 하려면 말입니다. ˝ 108 / 저 스스로 체득한 그것은, 자신에 대해 잘 들어맞는 관념을 갖는 일이었다.... 사물 전체와 양립 가능한 것이, 인간과도 같은 저 자신이 자리매김했던 것이다....그는 제 시간을 불가능 속에서도 용이함 속에서도 잃지 않았다. 104

[ ] 테스트 씨와 함께 한 산책 - 시작과 끝의 계속적인 힘이 존재들을, 존재의 조각들을, 의혹들을, 걸어가는 문장들을, 처녀들을 소진시킨다. 99


[ ] 테스트 씨의 항해일지 발췌 - 나는 어리석지 않다. 왜인가? 내가 나를 어리석다고 여길 때마다 내가 나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죽이기 때문이다. 73 / 반목 없는 삶은 삶이 아니다. 생생한 저항이나 먹잇감이, 타자가, 즉 적수요 세계에 개개로 남아 있는 자, 나의 장애이자 어둠, 또 다른 나, 억누를 수 없는 필적할 만한 지성이, 가장 좋은 친구인 적이, 신성하고 숙명적인 내밀한 적대가 없어서는 안 된다. 71/ 타자, 그를 나는 침묵 속에서 정당히 제물로 바치며, 또한 그를 불태운다. 내 영혼의 코밑에서! 그리고 나! 이자를 나는 물어뜯고, 그에게 언제나 꼭-꼭-되-씹-은 제 고유의 실체를, 그를 성장하게 할 유일한 먹이를 제공한다! 66/ 내가 지닌 미지가 나를 나로 만든다. 내게 있는 서투름이, 불확실함이, 바로 나 자신이다. 나의 나약함, 나의 연약함.... 결함이 내 시작의 바탕이 된다. 불능이 내 기원이다.....내가 처한 현실의 궁핍으로 말미암아 상상의 풍요로움이 태어난다. 62/ 제 안에 저로 인한 궁극의 생각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 생각을 반성 또는 우연한 기회로 인해 발견할테고, 또 발견한 후에는 마땅히 죽음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이는 특정 생각으로 말미암아 죽음에 이르는, 그저 어떤 생각도 뒤를 잇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도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57

[ ] 에밀리 테스트 부인의 편지 - 그의 영혼은 분명 독특한 식물로 이루어졌기에 잎이 아니라 뿌리가 본성을 거슬러 명료함을 향해 뻗어나갈테지요! 이것이 바로 이 세계 밖을 향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43/ 인간의 정신이 어린아이나 개의 정신을 담듯, 그의 정신이 제 정신을 담습니다. 46 / 보편 존재 안에 모든 영혼이 존재하듯이, 저는 개인적으로 한 존재의 친구 속에 존재하는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48 / 그는 매일같이 제게 원하는 것이 무어냐에 따라 저를 지칭합니다. 그가 제게 붙이는 이름만으로도 저는 닥칠 일이나 해야 할 것을 알게 됩니다. 특별한 무언가를 바라지 않을 때에는 그는 저를 존재 또는 사물이라 이릅니다. 그리고 가끔은 저를 두고 오아시스라고도 부르는데, 저는 그것이 참 마음에 듭니다. 49

[2 ] 테스트 씨와 함께한 저녁 - 결국 테스트 씨가 우리의 안목으로는 알 수 없는 정신의 법칙을 발견하는 데 이르렀다고 믿게 되었다. 확신컨대 이러한 탐구에 수년의 시간을 바쳤으리라. 그리고 더욱 확신컨대 발명이 무르익고 그 발명을 본능으로 삼는 데에는 더 많은 나날, 수년의 세월이 필요했으리라. 발견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다. 어려움은 발견을 자신에게 합하는 데 있다. 19/인간에게 무엇이 가능합디까? 모든 것에 맞서 사우는 나이건만, 육체의 고통 밖으로, 어떤 정도를 넘어서건만. 그러나 나는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고통을 겪는 것은 바로 무언가에 극도로 집중하는 일일 테며...32

볕뉘.

0. 궁금하여 마저 읽다. 그 역시 보들레르, 말라르메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오히려 삶을 뚫고나간다는 점에서는 그 이상인 듯 싶다.

1. 지금 가지고 있는 여러 생각들과 맞물려 흥미진진하게 읽다. 가을이 곁에 들어와 얇은 이불을 몸에 꽁꽁 묶어보았다. 가을 맛이다.

2. 길은 밖으로 난 길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길은 그 깊이와 넓이, 크기로 안으로도 나 있는 것이다. 밖으로 난 길은 그저 같아지는 길이다. 밋밋한 사막같은 황량함을 남길지도 모른다. 외려 제 안으로 난 길이 이런 동일함을 주저하게 하고, 다양한 길을 다그칠 것이다. 그렇게 길이 만날 때만이 풍요로움과 다른 삶, 다른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첫걸음이 될는지도 모른다.

3. 모두의 말처럼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줄 몰랐던 나‘ 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원할줄 몰랐던 나‘와 결별할 때만이 안밖의 길은 교묘히 섞이기 시작할는지 말이다. 하지만 발견 자체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테스트는 말한다. 어려움은 발견을 자신에게 합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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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밖의 전복의 서

0.

[ ] ˝우주란 한 권의 책으로, 한 장 한 장이 매일이다. 네가 그곳에서 읽는 것이란 한 장의 빛이요 - 각성이요 - 그리고 어둠이요 - 잠이요, -여명과 망각의 단어다.˝ 사막은 결코 책을 갖지 못한다. 14

[1 ] 제 안의로의 입장, 그것이 곧 전복의 발견이다. 일지 15

1.

[ ] ˝내게는 못난 제자들밖에 없습니다. 나를 흉내 내려 하면서 나를 왜곡하고, 나와 닮았다고 믿으며 제 신뢰를 깎아내립니다.˝...˝나는 질문하고자 나의 삶을 사용하였기에, 내게는 어떠한 제자도 없기 때문입니다.˝...˝매듭으로, 다른 매듭을 만들어낼 수는 없겠으나, 반면, 어떤 줄로든, 그것으로 매듭지을 수는 있다. 모든 매듭은, 그러므로, 유일하다. 전복의 질문 19,20
[ ] 사유는 집착 없이 존재한다. 사유는 만남으로 살고 고독으로 죽는다. 20
[ ] 눈이 먼 자가 시선을, 귀가 먼 자가 언어를 간직하고 있다. - 그들은 각각, 보이지 않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을 위탁받은 자들이다. 21
[1 ] 생각은 공허를 짓뜯는 섬광이다. 망각은 한순간 생각의 공간이다. 우리가 망각으로부터 지켜내는 혼잡한 추억이란, 이 경우, 새로운 공간 덕에 생각을 되찾는 장본인이요, 또 열정적으로 생각을 자신의 과거와 미래에 충돌시키려는 자이니, 최종적으로 후견을 받는 상태에 놓이는 책임은 저 자신에게 있다. 22
[ ] 모든 생각에는 저마다의 기쁨과 상처가 있다./생각은 생각의 반응들에만 주의할 따름이다. 25

2.

[ 1] ˝책의 상속자인 우리, 건네받은 약간의 어둠과 약간의 밝음만이 우리의 전 재산일 따름이다. 아! 우리의 모든 단어가 오직 어둠의 창조요, 우리를 파헤치는 결핍의 형상들이라니.˝ 무한의 작은 한계 30
[ ] 공허를, 무를, 여백을 인정하기. 우리가 창조하는 것은 모두 우리 뒤에 있다. 33
[ ] 가능만을 물을 수 있다. 불능은 그 자체가 질문이다./질문은 어둠이다. 답은, 간결한 맑음이다. 34

3.

[ ] 전복적인 책이란 어쩌면, 드러내는 책이리라. 공격받은 생각이 남긴 흔적에 머무르며, 지면에 대한 단어의 전복과 단어에 대한 지면의 전복을 뒤섞는 책인 것이다. 지면, 단어와 여백의 전복의 장소 37

4.

[1 ] ˝죽이는 것은 죽음이 아니다. 우리가, 매 순간, 죽음을 위해 죽이고 있다.˝ 시간의 바깥, 책의 꿈 40
[2 ] ˝책을 쓰면서 너는 단어의 모습만이 아니라, 네가 경계 짓는 한순간 네 삶의 모습 또한 만들어낸다.˝ 43
[ 3 ] 고독의 끝은 글을 위한 고독한 모험의 전주곡이다./고독과 글에는 따라서 우리가 펜을 쥐고 나아갈 흔들리는 경계가 있으리라. 우리로 인해, 우리 덕에 인식되는 경계가. 고독, 문체의 공간 45/작가는 여전히 작품이라는 건물의 건축가이자 벽돌공이며, 지칠 줄 모르는 장인이다. 46
[ 4 ] 책을 쓰려면, 아마도 여기 우리가 책에서 얻은 직감에 지나지 않을 계획에 간접적으로나마 참여했어야 하며, 그 직감으로부터야 비로소 책은 기술된다. 48
[ ] 책은 220쪽으로 이루어진 평면의 고독이오. 한쪽이 다른 한쪽 아래 놓여 있소. 첫 장이 정상이고 끝 장이 그 기저라오. 문체의 도정이 이러하오. 49
[ ] ˝나를 궁금케 하는 것은, 애초에 어떻게 내가 가장 높이 위치한, 맨 첫 장에 이르렀느냐는 점이오.˝ 50


[ ] 거룩한 책이란 오직 말에 부합하며, 말 자체일 뿐으로, 시간을 벗어남과 동시에 시간 속에 정박해 있다. 재현 금지 67


[ 5 ] 새로운 질문의 책은...줄곧 자신의 불확실한 외양 뒤로 숨다가, 제 차례가 오면, 제 모두를 걸고 질문을 되던진다. 닮음의 책 79

5.

[ ] ˝생각은 우주를 뒤덮는 두터운 너울을 벗겨내서는 우리가 알아차리기도 힘든 가벼운 것으로 갈음한다. 우리는 세계를 오직 이 너울의 투명함을 통해서만 인지한다.˝ 생각, 단어를 통한 존재의 창조와 파괴 84
[ ] 사유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제 길들을 트도록 허가하는 일이리라. 85
[ ] 생각은 생각된 것 - 제 끓어오르는 과거가 - 그리고 생각되지 않은 것 - 제 문제적 장래가 - 한데 얽혀 형성되었다. 평범하거나 구분되는 매듭이다. 86
[ ] 장미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혀, 감탄한 몸짓으로, 우리는 장미의 삶을 앗아간다. 쓰기란 자신에게 이러한 몸짓을 새로 되풀이하는 일이다. 우리 안에서 죽는 것은 우리와 함께 죽을 수밖에 없다. 책이란 그저 이 모든 죽음을 알리는 일상의 부고일 따름이다. 88

6.

[ ] 열쇠란 모름지기 자물쇠를 작동시키고자 고안되었으며, 그리하여 우리의 시선에서 사라지는 것을 목적한다. 열쇠-말, 생각을 통한 존재의 창조와 파괴 89
[ ] 열쇠-말이란, 그 단어를 포함하고 있는 텍스트 속 모든 단어가, 서로 동조하고 그토록 나지막이 발음하여 누고도 듣지 못하는 단어다. 비의적인 통과의 단어, 그 뒤로 책이 서 있다.˝ 90
[ ] 열쇠란 분명 결핍이리라. 그리고 이 결핍은, 책 속에서, 스스로 까마득한 부재를 담고 있는 몇몇 어휘를 통하여 드러나고야 만다. 결핍의 무한 속의 결핍이다. 91
[ ] 상상은 아마도 제 기원들의 무게를 줄인 어떤 생각인지도 모른다. 92

7.

[ ] 열여섯 개는 삶의 질문이요, 열여섯 개는 죽음의 질문이다. 기원으로서의 부재, 혹은 인내하는 최후의 질문 93
[ ] 가까이서 우리를 건드리는 것만이 우리를 전념케 한다. 고독 속에서, 우리는 그것을 마주하고자 한다. 95
[ ] 정체성은 얼굴에 대한 파악이라기보다는 그것에 대한 정복이다. 96

8.

[ ] 죽음을, 공허를, 무를, 전무를 사유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것들의 무수한 은유를 사유할 수는 있다. 그것은 생각할 길 없는 것의 윤곽을 그리는 방식이다. 모래 103
[ ] ˝쓰기는 침묵과 맞서 나아간 침묵의 행위다. 죽음과 맞선 죽음이 처음으로 행하는 긍정적 행위다.˝/˝내가 여전히 말할 수 있는 것 너머. 읽기는 네 몫이다. 소멸이 내 몫이듯. 불청객들.˝ 107
[ ] 글이 우리를 참여시킨다. 우리가 글을 쓰는 것은 아마도, 자신을 내빼기 위해서이리라. 그러한 내뺌이 우리에게는 그저 끝까지 참여를 시키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라는 것은 알지도 못한 채. ..끝까지, 즉 시작된 참여가 자신의 끝에 다다라, 하나의 새로운 모습의 참여로 우리 앞에 나타날 때까지. 108
[ ] 여전히 읽을 여지가 있다는 것이 바로 글의 유일한 생존 기회다. 110
[ ] 그는 타자를 발견했다. 그는 일찍이 알았다. 이 타자로 인하여 자신이 스러질 것임을.....이 안에서 살아간다. 언제나 저 너머에서 죽는다. 하지만 경계란 마음의 일이다. 115
[ ] ˝생각하는 자는 노련한 어부다. 그는 생각할 길 없는 것의 바다에서 빛나는 생각들을 끄집어낸다. 미끼를 문 생각, 하늘의 푸름과 바다의 푸름 사이, 들뜬 순간, 경직되어, 외계의 것으로, 땅 위에 놓이기 전.˝ 117
[ ] 상처받지 않은 상처는 없다. 120

볕뉘.

0. 이동하는 길에 릴케의 두이노 비가를 건네들었다. 읽다보니 생각지 않은 느낌이 흘러들었다. 십년동안 짓고, 오년동안 번역하고.....

1. 그 책을 선물했다. 그리고 내려와 그 책과 번역자의 번역서 두권을 건네들었다. 위의 예상 밖의 전복의 서와 폴 발레리의 테스트 씨다. 번역자와 짧은 만남이 있었다. 시낭송 모임 속에서 앙리미쇼에 대한 인상과 그림들. 그 보다는 삶의 강렬함에 대한 공감이었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보들레르와 말라르메....릴케....열정적인 삶들이 더 문을 열어제끼는 듯하다. 평생 70편의 시를 쓰고 쓰고 다시 쓰는 일이거나, 십년동안 비가를 짓기위해 자신을 허무는 일이거나, 존경하는 스승을 만나자 마자 작품을 갈갈이 찢겨버린 그 ...노력...어쩌면 폄훼되고 있는 순수예술이라는 발자욱들을 우리는 너무 쉽게 평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2. 이 책은 글자 그대로 ‘전복‘의 서이다. 책과 생각, 사유, 상상 그리고 삶, 작품에 대한 이야기다. 릴케의 두이노 비가가 열고개의 비가가 아니듯이...그들의 작품 사이에 호흡하는 영 혼은 강열하다. 칼끝으로 삶을 열어 제끼는 모습들도 말이다. 말 한마디, 단어 하나 하나 예사롭지 않다. 그 단어의 소멸과 죽음을 익히 알기에 온몸의 호흡으로 생각 한톨을 옮겨심는다. 씨앗.

3. 주의는 뒤의 미련한 자들이 붙이는 일이다. 초현실주의라는 꼬리표를 아무렇게나 붙이고 지워버리는 일도, 순수예술이라는 장소와 시대를 엇나가 붙인 뒤 잊어버리는 일도 무척 얄팍하다. 그래서 그들의 삶과 그 그림자들을 들여다보는 일이 중요하다. 이렇게 생각이라는 낚시에 걸려나오는 미끼 생각들, 그리고 그것을 덥썩 무는 사유들... 어쩌면 책들로 다가서는 것이 아니라 책 속의 책....그 책 속의 책으로 꼬리를 물며 걸려 올라오는 것인지도....책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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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한다는 것은 변화한다는 것이고
변화한다는 것은 원숙해지는 것이며,
원숙해진다는 것은
무한정 자신을 창조한다는 것이다
- 앙리 베르그송 [창조적 진화]에서


시집을 펼쳐들었다. 시인의 말 모두에 적힌 것이 이 글이다. 사물이든 사람이든 정향이 있을 것이다. 때때로 변하고, 다가가거나 물러서면서도 변하거나 제대로 보지 못해 못 알아차린 것들이 그것일 것이다. 코나투스. 친숙한 사물들에는 나의 시간과 정념, 아니 때에 따라 변하는 마음이 어려있다. 마음이 출렁거리는 이상 그 사물들을 잊을 수도 지워버릴 수도 없다. 어느 순간 다가온 너이기도 하다. 바보같이 멈추는 것에 모든 시간들의 팔할을 주었다. 멈추어 있는 것만 보려했다. 마치 사물의 정수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것은 없다. 그래서 움직임 속으로 들어가보려고 기를 쓴다. 아니다 기를 써서 되는 일은 아니다. 마음을 준다. 감정의 결에 더 마음을 주고, 한 것보다 하려는 것에 더 신경을 쓴다. 딱딱하게 고정된 시선보다 여러 풍부한 시선이 흘러나오거나 배여있는 것들을 본다. 그래 힘겹다. 하지 않던 일을 해서 힘들다. 뭔지 모르겠어서 힘이 든다.

지난 토요일 기다린 만남이 있었다. 보문산 골목길은 반십년이나 된 과거의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여전히 이십칠팔년이나 된 기억과 사건들도 묻어 나왔다. 문득 나라는 사물은 무언가라고 묻는다. 내가읽는 나가 아니라, 친애하는 사물들처럼 이리저리 변하는 나를 염두에 두어봤다. 벗들과 이동하는 중에 서편에 초승달이 걸려있다. 그 달은 여름의 목을 치고 있는 듯 싶었다. 더위에 질식할 것 같은 여름의 목을 댕강치고 싶었다.

시인은 한 편의 시를 쓸데마다 한번 죽어야 한다는 글이 생각난다. 어느 시인의 말인지는 정확치 않지만, 그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화석처럼 멈춰진 나란 사물을 만나기도 싫고 그런 너도 만나기 싫다. 뭔가 스스로에게서 절반 발을 뺀 나. 그래 그 표정을 다시 보고 싶은게다. 가을에 내 얼굴을, 네 얼굴을 다시 보고 싶은 것이라고...너의 얼굴에 스친 바람결들이 너를 다르게 손짓한다면, 그 손가락이 천개쯤 되어 어디를 볼지 정신이 없었으면 좋겠다 싶다.(*허수경시집 누구도...에서) 물론 이는 글의 오버이기도 하다.

신현림 시인의 삶을 잘 몰랐다. 반지하 앨리스의 3부를 날름 읽었다. 앞의 시인의 말도 삼켰다. 싫어할 수게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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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말했다. 평화, 인권, 사랑, 사회라는 것은 없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그녀는 분개한 듯했다. 철학자라는 사람들이, 인간을 중심에 두고 사유하는 사람들의 면면이 그리 남성편향적이었냐고..좋아하는 철학가들 면면의 사적행태에 대해 알아가며 진절머리가 나는 듯했다. 그 분한감정은 혼자일 수밖에 없고 한나 아렌트처럼 그 자리를 보란 듯이 뚫고 일어서지 않으면 힘들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리고 최근 학교 게시판의 성폭력에 대한 현실에도 편치 않은 감정을 보였다. 페미니스트란 말을 하는 순간 갇히는 것은 아니냐고 말이다. 철학가나 사상가들의 사유라는 것도 시대에 갇혀 있을 수 밖에 없다고, 개인, 사회라고 따로따로 이름붙여 사유하는 것도 잘못되었다. 인간이란 존재는 늘 깃털 같은 보잘 것 없지만, 그래도 그 바닥에서 시작하는 것 아니냐...사회라는 끈은 그렇게 이어지는 것은 아닌가.....물론 그런 좌절들이 사랑, 인권, 평화라는 개념들을 만들어낸 것이기도 하지만.....대답이 궁색했다. 그녀의 분은 삭아들지 않는 것 같았다....그래도 사랑이라는 끈 하나는 잡아두고 싶다는 그를 보내고 마음이 내내 걸린다...........새벽이 되어서야 생명이라는 것이 그렇게 똑똑 끊어질 수 없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타고 올라왔다. 과거도 곁도...지금도 앞도.....흐름도 누적되는 것이라고.....혼자 생각해도 혼자생각하는 것이 아니라고....마음이란 것이 그렇지 않듯 존재도 그런 것이라고.....두서가 없어지는 아침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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