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

1. 참터 - 참*/아*데미 만으로도 벅차하다. 결속력은 대비되는 듯. 진도는 아직 모르겠다. 어느 것이 빨리나갈지? 내년 다른 일들은 엄두도 내지 못할 것 같다. 집중해야할 듯.

일터로부터 참터에 도움된 것 ; 후반 조금 조급한 마음이 있었으나, 역할나누기와 기다려주기 습관은 나름대로 도움이 된 것 같다. 적은 일이라도 서로 가져가고 참여도를 높이는 것, 일을 맡긴 뒤 전적인 신뢰는 그나마 일터의 경험이 참터에 도움이 된 것 같다.

* 참터로부터 일터에 도움된 것; 각박함, 속도주의가 제일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사무국장 위주로 일이 집중되지 않은 것, 이것은 일터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속도에 익숙해 일을 하지 않는다라는 경직된 모습이 나타날 수 있었는데, 나름대로 느긋함이나 천천히, 서로 익숙해지는 것, 여유로움이 사회활동에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그 느긋함이 일터에 스며들어야 할터인데. ㅎㅎ 그 간극은 너무너무 크다.

2. 동네 - 학*위: 교육문제-전*조-참*연대의 고리잇기(너무 서툴게 이어져있다. 동력이 없는 듯 너무 연약한 고리로.) 내년 어떻게 할런지 고민중이다. 동네사람과 일중심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음은 정말 좋은 경험이었음.- 선거국면에 휘둘리지 말아야할텐데. 걱정이다. 작은 네트워크의 씨앗이라도 회자되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을 확율이 더커질 듯./도*관 운동에 대해 느끼게 된 것은 큰 감사. 지인도 알게된 것도 더 큰 감사/대*림 --- 어찌 맘을 나눠야할지~ 생각을 모아야할텐데. 방향도 삶에 대한 고민도 사라져버린 듯. 열정도 예전만 못한 것은 아닌지? 삶의 고민없는 놀*패가 되는 것은 아닐런지?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조금 불거져 나오다 말아버렸다. 계모임도 아니고 모호하다. 색깔도 없고 무색무취해져 가는 것은 아닐까?

* 자원활동, 실질적인 참여로 느슨하지만 사회활동이 진행되고 있는 단체를 알게된 것은 나로선 행운이다. 그냥 여유있는 사람이 하는 일이지라고 여겼지만, 엄연히 운동이란 타이틀에다 실질적인 조직력도 확인한 것, 체계적인 모습에 점점 끌리게 되었다. 좀더 사회의 문제, 질적인 문제로 접근할 수 있는 안, 시도가 필요하다고 여겨지지만 현재 운영틀로도 참터가 꿈꾸는 것의 많은 자양분이 되지 않을까? 하구 성급한 판단도 해본다.  다른 모든 사회활동단체들의 실질적 참여의 폭이 축소된 것과 반대로 점점 늘어간 것, 교육의 문제도 느슨하지만 근본적으로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것 같다.  틀의 교집합, 활동의 상호인정에 따른 영역넓히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여러가지를 배우다.

* 교육문제에 대해 되돌아보게 되었고, 높이쳐진 장벽을 몸소 확인한 것. 해결가능성도 활동을 통해 엿볼 수 있는 것도 나로선 큰 기쁨, 몸이 조금은 힘들었지만 말이다. 

* 여러 단체의 공통점, 함께하기는 마음뿐, 남에게 기대어본다는 생각이 잘못된 것 같다. 어석거리는 단체간 사람 사이의 관계, 진도가 나가지 못함. 일을 먼저놓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골이 깊게 패여있다. 흔들 수있는 것은 없을까? 마음을 흔들 수 있는 것은 없을까? 아카데*도 그것을 하기 위한 일이지만 쉽지 않다. 참여도도 떨어지고,  남색깔을 인정하지 않는 자기색깔만 강하다. 남의 색이 무엇인지도 보려고 하지 않음. 그런것을 느끼는 한해였던 것 같다. 우리 수준이 여기구나. 우리 바닥이 여기구나. 한해 움직이며 지켜보게 될 것 같다.

3. 일터 - 밑그림/정지작업은 된 듯. 열심으로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친구들이 필요한데. 전반적으로 시야가 너무 좁아. 인문쪽은 기술에 맹탕, 기술쪽은 인문사회마인드 부족으로 맹탕. 어떻게 가고 있는지 서로도 모르는 것은 아닐까? 색깔이 겹치는 분위기가 넘 부족하다. 일은 재미있게 잘 될 듯한데.

4. 정보 - 알*딘고수들의 생각끈, 독서욕의 말미를 훑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성과.(사실 남글에 큰 관심이 없어서인 것은 문제지만, 맘에 든 책의 욕심만은 멈출 수는 없는 듯. 하지만 내 것이 되면 소유욕에 읽고 싶은 맘이 가셔버리니 큰 문제. 그냥 빌어서 읽어야 되나봐?!) 내년엔 딱딱하기만 한 책들말고 부드러운 수필-소설취향에 몸도 줘야할까봐. 수박겉핥기 버전에서도 벗어나보면서(이것도 욕씸이다.ㅎㅎ).

겉핥기는 계속되고 있다. 좀더 깊이를 더할 수 있게 유사한 부류의 책들을 집중해서 보아야 할 것 같다. 독서태도가 달라지고 있는데, 언제부턴가 경영-처세 성공학을 다룬 책들에 마음 길이 아주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에 데인 것처럼... ...

5. 달림/모임/몸 - 풀 코스 1회/ 30k -1회/하프코스 3회 외 11번 대회참가, 상반기 열씸, 하반기 부실/번아웃. 자중해야할 듯. 오마이뉴스배 우승. 모임 넘 많이 했나봐~ 지나칠 정도로 오버했나봐~ '월화수목금금금'도 '월일수일금일일'로 줄이고 ... ... ㅎㅎ

흰 머리도 늘다. 쯧~ 한 여름 일터일로 버거워했더니 새치가 는다. ㅎㅎ. 나이도 그러하거니와...쯧~

6. 마음 - 사람과 관계맺기가 아직도 서툴러, 절제를 하고 참을 수 있다는 것은 나이때문만은 아니겠지

7. 정리해보니 더욱 어수선하다. 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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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간디', '종교적 다원주의의 선구자' 때로는 '싸우는 생활주의자' 등으로 불리우는 한국 현대사의 큰 그릇 함석헌(1901 ~ 1989). 이 책은 함석헌에 대한 최초의 인물평전으로서, 함석헌을 공부하기 위해 영국에 유학한 저자 김성수의 박사학위 논문을 초고로 하고 있다.

이 책을 굳이 구분하자면, 그의 생애사적 전기라기보다는 사회사적 전기에 더 가깝다. 이 책은 여러 방면에 걸쳐 방대한 지적 유산을 남겼던 그의 사상을 청년기(1901~1923), 해방전 시기(~1945), 자유당 정권기(~1960), 노년기(~1989)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다른 곳에 신경이 갔다.  지금부터 100년, 150년사이 우리의 공백,  종교에 아무런 관심도 없었는데, 점점 높아지는 교회 건물 - 정치,사회문제에 애써 때뭍지 않은 듯하지만, 더욱 큰 *물을 번번히 끼어 얹은 우리의 자화상만이 크로키처럼 남아있다. 사실 지금도 별 관심이 없다. 마치 작금의 현실처럼 '믿습니까'를 강요하는 현실과 동떨어진 행동은 좀처럼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떻게 그토록 현실과 떨어진 불감증이 생겨났을까?

오히려 속마음을 터놓고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속편하게 알 수도 있었겠지만, 지극한 소심함으로 속알이만 한 것 같다. 그렇다고 수박겉핥기에서 얼마나 진도가 나갔겠는가도 의문이지만,  무식한 나는 행간의 기독교사, 활동에 더 관심이 있었고, 심정적 종교다원주의인 '나'의 겉핥기 코드와도 맞는 듯했다.  그 깊이와 넓이, 삶은 그 동시대로만 걸맞지 않은 것 같다. 그러기엔 시대가 너무도 못받쳐주고 몰라주는 듯하다.

세태는 더욱 더 함선생님의 외침과 노력에 반대로 가는 듯하다. 교회는 더 높아지고 커지고, 교인은 세상과 더욱 더 멀어지고, 지극한 불감증은 그냥 대중사회의 익명성에 노출되어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지금 그 초심으로 살아계시다면, 어찌할까? 어떤 이야기를 하실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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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도마 - 박노자가 도마에 올랐다. 뭔가 낯설다는 인상에서 시작했는데, '정과 유도리'에 초점이 맞춰졌다. 너무 합리적인 듯한 논조 인상이 우리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출발한 것 같다. 깔끔함과 산뜻함, 어쩌면 지식인들이 가진 이런 정서는 늘 2% 부족한 면을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 도마에 넘 많이 올랐다. 정과 융통성 =='거시기'라는 표현까지 쓰며,  상가집에서 울지않는 합리성에 서로 찔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펑펑 울어버리고 가슴의 맺힌 것도 풀리며 해자하는 것... ... 이런 것들은 나에게도 '거시기'한 것이다.  노자가 많이 서운하것다.  나도 너도 그러하것다.

 2. 상충- 요즘 술자리 금기어가 황우석이다. 하지만 이야기 초두부터 말미까지 황으로 시작하는 11가지 이슈로 번졌고, 너무 산만해져 수차례 그만두기로 제지가 되었지만 말짱 황으로 끝났다. 생명공학의 대중화에 넘 성공했다.  철학 필라소피아도 필라소토마로 끝의 버전이 바뀐다. 쯧. 모두 발생학의 박사들이 되어버렸다.  브레이크없는 폭주기관차들이 넘 많이 돌아다닌다. 황우석이 오기까지 장사속이 있는 삼성위주의 자본의 암묵지가 더욱 문제다. 맘속으로 전이되어 장기 팔아먹고, 돈남기는 장사한번 제대로 해보자는 합심이 도사려있다. 의료선진화가 아니라 의료산업의 선진화라는 발상이, 의료정보가 고스란히 보험회사로 들어가야한다고 입법하는 놈들에게 초점이 더욱 모아져 투명해져야 한다. 이 시점에서 되짚어보는 생명윤리도 문제지만,  NEIS 나 행정정보 통합의 빌미로 무진장한 진도가 나간 IT윤리는 더욱더 큰 문제이다. 다시 원점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 아닐까?  정책이나 정책배경까지 그대로 받아들이는 정권의 천박함이나 청와대 보좌관의 준비없는 대응(활동의 네트웤, 폭, 전문적 깊이)-내부 관료사이의 설득력. 황권력에 침묵하는 수많은 과학 전문학회들.. 큰 주제아래 소주제 사이에 소소한 견해차... ...

 3. 조율 - 이종격투기 - 즐기는 사람들,  차라리 외상이면 좋을텐데. 내상이 점점 커가는 듯하다.  폭력과 섹스와 도박은 점점 더 강열해지는 것은 점점 빵빵하게 불어버린 풍선같다.  곧 터져버릴 것 같은, 보들리야르?의 자본주의의 자폭버전같은... 불리면서 점점 스트레스를 늘려가는... ... 아무것도 모르고 새로운 일을 늘려가는 내모습같기도 하다.

 4. 세대차 - 도마도/토마토, 오도바이/오토바이; 읍니다와 습니다, 아래아와 아의 버전, 표준어 표기법이 너무 많이 바뀌었다. 도마도, 오도바이라 발음했다가 영락없는 구세대 취급받는다. 눈치보다 잘 넘겨라..ㅎㅎ

 5. 커리 - 대중음악사, 신화, 맹자-묵자 군주론,정치 사상 등 하고픈 것이 나오다가  지식의 발견(한국 지식인들의 문제적 담론읽기-고명섭)의 서평을 쫓아가기로 하였다.  첫 세미나는 '민족주의,국가주의 그리고 친일' 로 시작하여 니체, 연애의 발견, 옥시덴탈리즘, 마키아벨리즘,부르디외...등등으로 격주 목요일로 이어질 것 같다. 열심히 한 사람은 보조교재까지 읽어오고, 그러지 아니한 사람들은 텍스트로 만족하며 토론을 이어나가기로 하다.

 6. 코멘트 - 다석/함*헌/장*순/생명사상 그리고 게시판 ; 다석류*모 게시판이 있어 들어가보았는데, 분위기가 생뚱맞아('도'를 아십니까?) 다른 이야기 도중, 도를 아십니까? 버전으로 지인에게 류영모를 아십니까?라고 물었다. 다석~ '함*헌'과 비교해서 어떻습니까. 스케일이 넓다고 봐도 됩니까? 그렇다고 봐야지~ 함*헌이 기독교에 가있다면 좀더 넓다고 볼 수 있고, 장*순으로 이어진다고 봐야지? 김*하까지~ 국내에서 영향력은 어떻가요? 쌍용** 후원으로 다석사상연구회도 있구. 활동가들에게 영향은 미미하다고 보아야지? 지역에서 영향력은 어떻지요? 지역에도 김**교수 권** 분들이 궤를 잇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아무래도 게시판의 풍이나 다른 면으로 볼 때 세파에 때를 묻히지 않는 '도인'의 풍취가 나는 듯.  실제 활동할 때 드러나는 활동태는 어떠한가요? ... ... 일제치하에서 활동, 배경이 강한데, 현실에서도 너무 그대로, 현실 속에서 한발 떨어져 있는 듯한 인상,  활동의 논의구조에서도 그런 느낌이 드는데... ... 그분들이 느끼는 초심과 거리가 점점 벌어지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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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5-12-28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ㅎㅎ, 목요일이라구요? ^^

여울 2005-12-28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주에 한번씩 놀이 삼아 진행키로 (어제 분위기로 보아선 TEXT가 없어도 될 듯하였지만, 결국 사변이나 끝말잇기 버전으로 타락하여...), 자신있는 부분 발제를 손들면 (3달에 한번 정도 돌아오겠군요. 아직 세부 주제는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수월할 것 같군요.ㅎㅎ

2005-12-29 17: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여울 2005-12-30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곧 정해질 예정입니다. 기다리시구요. 몸은 90%(기분상) 쾌차되고 있는 듯 합니다. 감사
 

 

 "인간은 자연을 거스르면서 살아갈 수 없듯이, 과학 기술 없이도 살아갈 수 없다. 그러나 과학 연구의 방향에 대해서는 무엇보다도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이것은 과학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인슈타인도 지적하듯이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경제적으로 완전히 의존적인 존재"이며 "사회적 책임감을 간직한 과학자도 아주 드물기"때문에, 연구 방향을 독자적으로 결정하지 못한다."  <182쪽>  - 전문가주의의 딜레마에 빠지지 말자 - 과학자만이 아니라 모든 전문가에 해당하는 말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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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라나는 대로 내버려 두세요"


1. 아동기 제거를 위한 음모

2. 컴퓨터화 된 아기

3. 요람에서 학동기까지

4. 당신이 선택한 유아원

5. 어린이 놀이의 의미

6. 학습 부진아가 지닌 이면의 건강성

7. 젊은이들은 낙오되고 있는가? 성장하고 있는가?

8.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는 어린이:사회적 방관이 발산하는 악취

  사회적 문제에 대한 너와 나의 무관심

  '사회적 부모'로서 책임을 느껴야 하는 이유

 도시화의 횡포와 그에 맞서는 단결된 저항의 힘

 아이들을 타락시키는 사회풍토

 '사회적 부모' 노릇을 위한 적극적 참여

9. 아이들의 신성성


'사회적 부모'

 - '왜' 사는가? 라는 질문: '인간성'에 대한 물음 부재의 시대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우리는 한사람 한사람에게 연민과 온정을 가지듯이 수백만 사람들에 대해서도 같은 애정을 가질 수 있는 인간애를 함양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부모들은 늘 출발점은 금새 잃어버리고 감정이 배제된 지식만 기술만을 아이에게 압박한다. 결국 그에게 돌아오는 메아리는 '왜 사는 것'인지 정말 모르겠어요이다.  잘하라고만 하지 내자식만 잘되길 바라지 정말 왜 살고 있는 것인지? 삶에 대한 질문을 아이-어른 모두 잊어버리고 사는 것은 아닐까?

자본주의와 도시화는 대량이란 명분과 익명성의 미명하에 '인간성'이 없는 똑똑한 아이들만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자식한테 해줄 수 있는 것은 지극히 제한되어 있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내'자식의 주입된 공부기술만이 중요할 뿐? '왜' 사는지? 왜 남들의 고통에 '아파할' 줄 알아야 하는지?에 대해선 지독하게 인색한 것은 아닐까? '우리'라는 것은 늘 허망한 울림일까?

나의 사춘기, 성장기 모두 왜곡된 환경에 어떻게 적응해야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고민에 대한 답을 주는 사람이 없던 것 같다. 애석하게도 지금도 공부를 잘해야한다고 하지 왜?라는 질문에 역시 인색한 것은 아닐까? 부모, 선생님 그리고 불쑥 커버리 아이 스스로도... '사회적 부모'로서 작은 역할이 얼마나 소중한지... ...무턱대고 살아가는 것만이 만사가 아닐텐데. 자식에 대한 욕심의 백분의 일이라도 이웃과 사회로 돌리고, 그 시선이 모아지면 좋을텐데. 평소 궁금증에 대해 조금 풀어놓아 맘 편하고 아이에 대한 생각도 비슷해 많이 많이 공감하고 읽다. 


1. 사회적 부모의 필요성

 1.1 폭력이 난무하는 환경에 자신의 아이들만 보호할 수 없다.

 1.2  '성'과 관련해 우리 자녀들의 태도와 행동을 부모 혼자 통제할 수 없다.

 1.3 도시생활의 급속한 변화에서 오는 공포와 위험에 부모 혼자 대응할 수 없다.

 1.4 자녀들이 필요도 없고 쓸모도 없는 물건을 구입하려고 하는 것을 막는 것이 전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1.5  원활한 인간관계를 위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부모들 힘만으로 어려운 일이다.

 

2. '예방' 

3. 도시 생활의 특성인 대량성과 익명성으로 인한 불감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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