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노예근성


1.

어쩌면 내속 깊숙이 그늘을 드리운 것은 ‘하지말라’는 소리에서인지도 모르겠다

국민교육헌장만 암송된 것이 아니라,

입속에 무의식중에 배여나오는 소리는 늘 ‘하지말란’ 소리다.

아이를 키우고, 같이 자라지만 기껏 가르치는 것이 ‘하지말란’소리다.

그러다보니 나의 출구는 늘 변칙에서 잉태되는 듯하다.

남이 잘되는 것이 배가 아픈지도 이미 오래다.

오늘도 ‘뒷담화’를 즐긴다.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되고 되지 않는 투성이다.

남이 안되는 것에서부터 쾌감의 출발이다.

어디서 이렇게 뿌리깊은 근성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점점 더 강렬한 강도로 커지는 잔인함에서 묘한 미소를 띠게 된다.

이젠 스스로 하는 것을 잃어버렸다.

‘하지말란’ 소리에 인이 베겨 하는 재미도 잊어버린 것 같다.

그저 자극하는대로 뱉고, 웃고,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은 이미 고통으로 자라버렸다.

피자와 콜라가 배달되듯, 오늘도 풍요의 바다에 휩쓸려 떠다닌다. 떠다니기에도 빠듯하다.

싸구려개그에 영혼도 팔아버리고 정신없이 벌어진 입을 다물기에도 벅차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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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0317  (처가 기제사) -- 처가식구들과 오랫만의 만남이다. 일상이듯 막내처삼촌은 반우리당정서를 여과없이 육두문자로 날린다. 청자의 반응은 상관없는 듯 했다. 또한 용감하게? 최연희의원 옹호발언으로 시작해 강경하게 주장하기에 이르러 여편의 항의를 받으며 씨끌벅적해진다.

(어쩌면, 이젠 남의 이야기를 들어줄 여력은 전혀 없을지도 모르겠다. 정말 원하는 것은 자신의 이야기논조와 맞는 사람들을 찾아내려고 이야기를 허공에 던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소통이란 애초에 그른 듯. 물러서는 자체가 지는 것이란 하류인생의 생활법칙에 살아가고 있음에 별로 대단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060315  (학 운 위) --- 7명 정원에 추가등록은 없었지만, 담당선생님의 연락, 수소문해보니 출마 선언한 토착세력들이 버젓이 후보등록을 하였다.  냉면집 사장은 선거사무실을 개소했고, 우*당간판을 걸고 학운위까지 진출하였고, 전년 그리 느글함을 선보이던 한분은 국*당 출마를 공식선언하고, 또 다시 학운위를 지역민심을 잡기위한 교두보로 활용할 참인 것 같다.

 060318  (동네저녁) 토착(호)세력은 바*게살기류의 단체의 장들을 서로 나눠먹으며, 후보출마를 위해 갖은 흑색선전이 난무한다한다. 당*라당은 *나라당대로, 국*당은 *중당대로, *우당은 열*당대로 하지만 후보조차 찾기 힘든 민*당은 겸직금지, 230만원/월에 걸려, 속내를 들어보니 사정또한 황망하기 그지 없다.  생계가 불가하여 차라리 당선되기를 저어하거나 당선이 되지 않는?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고, 한쪽은 2백만원선을 고수하여, 선거출마한계에 암묵적인 선이 그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당선가능한 사람은 일없는 여사님들밖에 없다는 논리* 여성할당에 애꿎은 우리집에 도화선이 옮겨붙는 듯하다.

의회에서 자료 한점 보지 않는다는 토착세력군의 지역의회 장악과 마인드하나만 있으면 바뀐다는 현실, 지역의 흐름엔 아무런 관심도 없고 도도하기만 한  그룹들, 일을 하기보단 끌어내리기에 관심?이 있는 당원들. 당에 대한 관심 역시 자신의 이야기와 맞는 것만을 찾으려는 하고 관철만하려는 친구들. 코드가 다르면 아예 무관심으로 점철된 모습.

밖은 밖대로, 안은 안대로 혼돈스럽다. 관계나 이야기가 한발자욱도 나아가지 못한 현실. 그나마 일터가 끊임없는 움직임이 있어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열심히 일한 죄만 있어도 이상하게 레떼르가 버젓이 붙어 돌아다닌다. 또 어떻게 돌아다녀야 구설수에 휘말리지 않을까? 의식만 있는 친구들은 의식만 있어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현실에 젖은 현실에만 젖어 원칙을 고려하지 않으려하고, 그와 별개로 현실은 여지없이 복고풍으로 여유있는 토호들의 놀이터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060318 (참*)  대학생친구들과 세차례 면담강행이다. 사무국장과 나,  학생들을 보며 생각도, 맘도, 뜻도 참 곱고 아름답단 느낌을 아로새겼다. 그래도 젊음은 희망인가... 어수선한 한주에 휩쓸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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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 봄에 눈이라, 이러다 익숙해지면 어쩌나? 불감증이란 것은 한 두번 이상한 넘들이 이상하게 내 속에 들어와 자리잡는 것이지. 그렇게 불손한 것들이 들어와 당연하게 만들어버리면 어쩌나? 세상은 온통 변태같은 것 투성인데... ...

2. 귤 몇개로 빈 속을 채우고 주로로 나선다. 깍지끼고 뒷짐지고 걷다가 3런 주로부터 천천히 달려준다. 몸이 맛이가? 조금만 무리하면 부담되니 슬렁슬렁 달리기로 한다. 제법 봄 맛이다. 다름고개에 오르니 그래도 개나리 경치론 제일 나은 과*재단앞 개나리 숲 속살이 제법 노랗다. 며칠 지나면 후욱 노란 붓으로 거칠게 칠해지겠지...!!

3. 보름달이 오늘도 걸렸다. 그 놈은 볼 때마다 그렇게 의연한지 모르겠다. 쯧~.  뒤늦은 몸은 달린지 40분이 넘어서야 박자를 탄다. 10k 53'    060312  5k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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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해콩님의 "'불안'이 지배하는 사회 - 홍세화"

  원죄의식이 천오백년동안 사람을 움직였다면,  '불안'은 또 다른 천년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혼'마저 빼내기위해 혈안된 자본은 끊임없는 '불안'의 그늘로 스스로 성장시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기위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발버둥은 끊임없이 자신의 쳇바퀴에 자신을 학대시키는 것인지 모르도록 집요한 것 같습니다. 

정규직은 정규직대로, 비정규직은 비정규직대로, 중소기업 임원과 사장은 사장대로, 불안 속에 자신의 영혼을 팔아먹으며, 제 속도를 부지런히 높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그때 자신의 이익이 중요할 뿐이지, 어떻게 남생각할 여유가 있겠는지요? 비정규직은 정규직이 되면 그 동안 자신이 몸담던 그늘은 다 남일이 되고, 정규직은 임원이 되면 다 남일이 되고... ...

자본의 시대는 어느 덧, 예측이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잘 나가는 일터라도, 그 나락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자본에게 안락한 고용과 평화로움을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이야깁니다. 나락으로 추락하기 않게 하기위해 스스로 몸에 채찍질을 가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듭니다. 기껏해야  마조히즘의 쾌락밖에 남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마음이나 정신이 쉴 곳 마저 없는 현실은 점점 더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 싶습니다. 하지만 시작할 곳도 거기서부터 일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요? 채찍과 당근에 익숙해진 우리의 지친 몸과 영혼에겐 떨어진 바닥에서도 새싹이 돋고 피고,  남생각하는 공간에서, 함께 해보는 일들에서, 취미삼아 해보는 자발적 가난에서 애초 기초없이 시작한 자본의 바벨탑은 무너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공적인 영역은 시선을 돌리는데에서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요? 마음의 시선. 일주일에 한 시간이라도 지역과 사회, 남 생각해보는데서... ... 취미삼아 남 일 해보는데서...... 말로 하지 말고.. 공동의 노동자의식과 공적인 시민의식의 샘물마저 말라버린 척박한 현실에서 그래도 해 봐야 할 것 들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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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엘 들러 반납하려하자, 이틀정도 기한이 남은 줄 알았으나, 이틀이 지났단다. 성석제 소설책 몇권을 뒤적이고 위치를 확인해두고 나머지 일을 보았다. 날이 차다. 구*도서관 생각이 났지만, 꾸욱 참았다. 저녁 가벼운 운동에도,  읽지 않은 책들을 펴들자 꾸벅꾸벅 졸린다. 아홉시도 되지 않았건만... ... 막내녀석 개콘본다고 궁시렁거리더니, 시작하기도 전에 잠에 골아 떨어진다. 같이 잠을 청한다.

일어나보니 한참 이른 새벽이다. 배도 출출하여 밥을 하고, 간단히 챙겨먹고. 읽지 못했던 이책을 꺼내들었다. 서문과 홍세화 인터뷰 편을 보았다. 생각보다 깊이가 깊다. 읽다가 몇꼭지가 맘에 걸려 흔적을 남긴다.


1. 과연 한국사회 구성원이 어떤 공동의 목표를 놓고 대담이나 토론 같은 것을 할 수 있을까? 정치권만 아니라 지식인들의 대담이나 토론조차도 그 안에 승패의 논리가  강하게 담겨있다고 본다. 이것은 관계가 항상 부정하는 관계로만 서고, 우리의 역사적 사회적 환경 속에서 어떤 공통분모 같은 것이 조성될 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런 점에서 보수나 진보, 둘다 마찬가집니다. 민주-반민주할 것 없이 부정하는 관계에 익숙해지면서 진보세력 역시 똑같은 습속에 젖어버리게 된 겁니다. (중략)

수직적 질서만 강조되고 수평적 관계에 대한 훈련이나 경험이 없는 것이죠.  티브토론을 보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더 정교하게, 깊이있게 하는 것이 토론의 목적인데,  나온 사람 중 의견이 똑 같은 사람에 대해 '얼마나 말을 잘했나''나를 얼마나 잘 대변해주나'에만 관심을 갖고 게임으로 바라보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뱀발 01. 다름의 관계가 부정하는 관계로만 착근했다는 것. 우리에게 배려라는 것이 있기나 한 것일까? 상대방이 다르다는 선입견이 든 이상 어떻게든 이겨야 한다는 본능이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언제 어디서든 다름의 관계에서 차이를 분화시키는 것에 대해 열려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 조차 힘들었던 것은 아닐까? 몇시간 내내 논의를 하였지만, 늘 원점으로 돌아오는 악순환의 고리는, 못된 습속이지 않을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많이배우고, 그렇지 않음을 고사하고...암울한 환경에서 살아남기위해 발버둥치며 익힌 것이라 하지만... ... 서로를 무척 힘들게 하는 것임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탈의식화'의 단계를 벗어나지 않는 이상. 그 나물 그 밥이거나, 그 쳇바퀴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2. 정치 사회적인 것이든 이념이든 뭐든 자기 규정은 하지 않으면서 '개량주의자'니 '노빠'니 '빨갱이'니 이런식으로 상대방에게 딱지붙이기는 아주 쉽게 잘 합니다. 남에게 딱지를 붙이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규정을 분명히 해야 하는데, 자기 규정은 소홀한 채....(중략) 자기 규정을 스스로 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성찰을 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럼 자기 성찰은 왜 하는 겁니까? 자기 성숙의 모색을 위해서 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물신주의에 의해서 그런 전제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에 자기 성찰 없이 아주 쉽게 남에게 딱지를 붙이는 그런 태도를 보이게 된다는 겁니다.

뱀발 02.  1.과 2.는 상관관계가 있다. 애석하게도 단 한번의 만남에도 다르다는 인식은 부정적인 습속에 딱지가 붙는다. 그리고 알맹이는 오간데 없고,  그 딱지만 유통되는 것이 현실이다.  현실에 한발자욱도 디딜 수 없는 현실이다. '근본주의자'라고 '황빠'라고 '노빠'라고 유통시키기 전에 나에 대해 냉정해지고, 스스로 엄중해질 필요가 있는 것 같다. '현장'파니 '국민'파니, 엔엘이니 피디니 하며 유통시키기 이전에 지향에 대해 어떤 점들이 도움이 되는지 생각만해도 해야할 가슴 벅찰 일들이 많을 것은 아닌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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