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제사로 서울로 향하는 길,  오는 길 짬독하다. 박영희의 시론 - 평이한 내용이어서 훑어 읽고, <탐독>은 이정우교수의 독서이력을 부담없이 적고 있다. 독서스타일, 독서법, 학자로서 고집, 학문간 영역을 넘나드는 모습과 몰입의 경험, 깊이와 넓이를 들여다 보는 재미가 솔솔하다.

2. 하지만, 주눅드는 범인(凡人)의 맘은 어찌하라고. 이교수가 얼마나 책을 즐겼는지? 부친서재에 꽂힌 고전을 통한 영향들에 눈길이 간다. 어찌하다 개인사까지 알아버린 듯한 느낌.

3.  그에 비하면 영향실조에 걸려버린 듯한 스스로 습관에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난독증?은 아니더라도 책이라면 치를 떨고싶던 나날. 교과서의 언저리에서 질식했던 모습들. 그야말로 자판기의 생활같다. 만화-티브-삼류소설이나 보던 기억들. 독서이력은 그나마 학교말미에서 군에 가서야 드문드문 시작된다. 그나마 해설서와 평이한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런 수준, 분야도 늘 몇종류... ...ㅎㅎ

4. 그렇다고 학자도 아니니 파헤칠 것도 아니지만, 그 열정이 부럽고, 가로지르고 넘나드는 그 깊은 재미가 부럽다. 얕은 책읽기에 반성도 많이 된다.  (고전의 중요성에 대해 일관되게 말씀하고 계시니 참조하세요. 언듯, <책만보는 바보> 책이 생각나더군요. 책읽는 즐거움과 폭에 대해 다시금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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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나탈리 골드버그 지음, 권진욱 옮김
안개 속으로 새들이 걸어간다
여림 지음
오늘, 오래된 시집을 읽다
박영희 지음
정치 참여와 탈물질주의
박갑수 지음
탐독
이정우 지음
팽이는 서고 싶다
박영희 지음

 

1.

여림 시집을 읽는다.  여림, 그는 한편의 시집도 내지 않았다. 이 시집은 유고집인 셈이다. 시만 생각하다. 시만 쓰다, 시인이 되었고 시로 돌아갔다.  어떻게 이럴수가 있을까?  삶이 고여있는 시집이다. <사과나무>란 시집도 겹쳐진다.  절망, 아니 황망한 일,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060509

2.

작은 바람

 

내 바람 크지 않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식후에 피우는 한개비 담배만큼만

세상이

살맛났으면 좋겠네  (박영희, 팽이는 서고 싶다에서)

3.

접기로 한다

 

요즘 아내가 하는 걸 보면

섭섭하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하지만

접기로 한다

지폐도 반으로 접어야

호주머니에 넣기 편하고

다 쓴 편지도

접어야 봉투 속에 들어가 전해지듯

두 눈 딱 감기로 한다

하찮은 종이 한장일지라도

접어야 냇물에 띄울 수 있고

두 번을 접고 또 두 번을 더 접어야

종이비행기는 날지 않던가

살다보면

이슬비도 장대비도 한순간,

햇살에 배겨나지 못하는 우산 접듯

반만 접기로 한다

반에 반만 접어보기로 한다

나는 새도 날개를 접어야 둥지에 들지 않던가

 

4.

마흔

 

마흔이 되자

서른은 외아주머니마저 떠나고 없는

외가와 같았다

 

서른에서 마흔으로 이어지던

계단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외출이 뜸해지면서 자꾸만

페이지 속 활자로 눕고 싶은

 

질주가 멈춘 거리엔

건널목만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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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해콩님의 "[퍼온글] 김창남 - '논다는 것'에 대하여"

잘 읽고 갑니다. 총총

그런데 여러가지 생각거릴 던지네요. (생산성-효율성)에 경도되어 정말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것도 모르는- 이렇게 (생산-효율) 도그마에 다시 빠져서야... ... 우리가 가진 다중성, 다가성 가운데 점점 늘려야될 것은 무엇일지? 

조금은 다르지만 다른 '놀이' '여가'에 대해 생각이 덧붙여져 흔적을 남깁니다.

1.

자본은 출발선에 대해선(정규-비정규-실직) 아무런 언급조차 하지 않으며 (생산성-효율성)의 측면에서 '여가와 놀이'를  목놓아 이야기합니다.  '사람'이 가장 큰 투자거리임을 알아차려 '개질'을 이야기하는 것이죠. '시간관리'도 같은 맥락이라고 이해합니다.

효율화되지 않은 우리에게, 일에만 맹목정진하는 우리에게 어쩌면 효율과 생산성이란 두마리의 토끼를 잡아줄 것처럼 흥분하게 만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일'을 중심으로 '여가'와'시간관리'라는 의식에 협공당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인 것은 아닐까요?  자본의 (여가와 놀이-시간관리)의 접근에 전적으로 부정은 하지 않습니다. 초창기 자본의 절약,근검성 만큼이나 전근대성이 보지 못하던 시야를 보여주는 것도 사실이니 맹목적인 부정은 그리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가끔 전도사를 만나게 됩니다. '시간관리'와 '여가'?인데, 무척이나 (생산성-효율성)이 높은 사람들이죠. 일과 관계망의 확대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형 인간의 돌풍도 만들어낸 적도 있고,  그 덕에 다이어트 광풍을 몰고가고 있기도 합니다. 엇나간 경우 다단계 마케팅의 전도까지 있었지요. 아직도 암약하고 있을 겁니다.손님이 왔다는군요. 다시...잊어버리지 말아야 하는데.... 그 그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2.  너무 아쉬운 것은 그 관점의 꼭지점, 성공이란 무엇인가? 어떤에 대한 합의나 노력,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고싶은 것, 꿈, 해야될 것 사이의 꼭지점( 그 꼭지점도 살아오면서 만들어진 것일 가능성과 상투적인 것일 확율이 크죠) 에 대해 '자본'은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습니다. 제가 만나본 여러 전도사님들도 아쉽게도 이에 대한 물음에 진지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매도일지 모르겠지만, 그 꿈이 나눠지지 않고 아파지지 않고서는 그냥 좋은 시선을 보내지 않으려 합니다. '자본'의 전도사로 밖에 볼 수 없습니다.   학교든, 사회라는 영역이든, 일터든

3. 더욱 더 무서운 것은 초등학교 아이들을 통해  (생산성-효율성)에 집착한 '성공'이란 습속이 내면화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른이 세상에서 배운 그것이 고스란히, 김교수님이 이야기한 '놀이'라는 것은 조금도 배여있지 않은 채, 초등학교라는 블랙박스를 통과한 결과, 그 '성공'이란 훈련된 녀석만 툭 튀어나오더군요.

4. 사회활동 역시(자의적인 판단이겠으나..넘 냉소적인가요) (생산-효율-경쟁)의 틀내에서 운영되는 것 같아 아쉬운 경우가 많습니다. 실무력, 대응력에는 점수를 주겠으나 장기적 안정성, 녹아들기에선 점점 세상의 생리를 닮아가는 듯한, 한몸에 두 머리를 보는 듯한, 전혀 다른 버전이 감싸안을 수 있는 것은 아닌지? 읽으면서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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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루 저물무렵

세상과 덤벼 한조각을 뜯어내어

얼러보고 씹어도 보고 삭여보지만

내 속에 들어가 나온 것은  웃자란 잡초풀만

잔뜩하거나 , 거름에도 쓸 수 없는 모래만 서걱거려 나온다.

 

2.

세상과 비벼 만들어내는 생각이란 것들이

고작 발효가 덜 되어 썩어문들어지거나

알 수 없이 덜 절여 풀냄새 풀풀나는 겉저리가 되는 것은 아닐까?

 

님이 품은 생각의 깊이나 삶의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워

오늘도 쓰다 남은 맘만 채곡채곡 두엄창고에 재여둔다.

 

3.

세상은  어김없이 뜨거운 오월을 남겨놓는다.

집요할 정도의 섬뜩함이나 이익이나 패권이란 안주를

오늘도 욕지기나는 위에 쳐넣어야만 함이 버겁다.

 

세상과 서걱거림, 그리고 더욱 바스라지는 일상들

그래도 비비고 삭히고 제 발효가 날 때까지 품는 것도  우리 몫

서툰 손길, 맘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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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 내 맘속에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튕겨나오는 시선들이 많다.

대한민국 헌법 제39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는' 여성과 장애인은, 국민이 아니거나 국민인 비장애인 남성의 '보호'를 받는다는 것을 함의한다. 국가는 남성에게 직접 시민권을 부여하지만, 여성은 가족제도를 통해, 즉 남성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국가와 연결된다.

"빵을 훔친 사람은 징역에 처한다"는 법은 평등한가? 부자도 빵을 훔치는가?

군대에서 제대를 "사회에 나간다"고 표현하거나 "윤락여성의 사회 복귀 방안에 대한 연구" 같은 언설들, 고고생도 "사회에 나간다"는 표현을 쓰는데 군대-학교-집창지역은 사회가 아니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가부장제사회에서 여성은 한사람의 개인으로서보다는, '누구의 아내'일 때 정상성을 획득하고 좀더 많은 '자원'을 갖게 된다.

사적 영역은 공적 영역의 창조물로서, 사적인 것은 공적인 것과의 대립을 통해 정의된다. 공정 영역의 정치적 갈등적 성격에 비해 사적인 것은 동의가 전제되는 영역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적인 영역에서는 폭력과 강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 사적인 것에 대한 이러한 관념은 가정폭력 피해여성에게 '왜 가정을 떠나지 않는가?'와 같은 질문을 하게 된다. 국가폭력이나 학교폭력,전쟁의 피해자에게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여성의 삶에서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이 구별되지 않는다. 여성의 입장에서는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여성이 남편에게 구타당하면 '집안일'이고, 경찰, 국정원,미일 제국주의 등 공적 영역에서 피해를 당하면 정치적인 문제인가?

같은 가정폭력이라해도 아동학대나 노인학대에는 아내폭력에는 불개입 논리를 구사하지 않는다. 또한 국가가 개인의 사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가정폭력에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면, 호주제-상속세-가족법-가족계획사업 등으로 국민의 사생활에 깊숙히 간여하는 일도 삼가해야 할 것이다.

여성주의 시각의 인권은 기존의 미시/거시,공/사,개인적인 것/정치적인 것, 일상/구조,보편/특수의 이분법을 비판하며, 일상적 차원의 억압이 작동하지 않고는 구조적인 억압도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한국사회에서 많은 이들의 일상을 규율하는 외모, 학벌,나이,서울중심주의 등으로 인한 차별사안도 인권침해의 문제로 다루어야 한다.

여성의 노동권은 생존권으로 제기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 제고를 위한 활용과 동원 차원에서 논의된다. 정신대 문제는 피해여성의 인권이 아니라 민족의 수치를 중심으로만 논의된다.

비장애인 여성과 장애인 남성, 이성애자 여성과 동성애자 남성, 한국여성과 남성 이주노동자의 '보편적 인권'이 충돌하는 경우, 각각의 인권은 어떻게 보장될 수 있을까?

공정함의 시각에서 평등은 기회의 평등에만 머물지 않고, 조건의 평등, 더 나아가 결과의 평등을 지향한다. 남성과 여성의 화장실이 5:5의 비율로 있는 것은 기회의 평등이지만, 남성과 여성의 서로 다른 사회적,역사적 상황을 고려하면, 기회의 평등은 평등이라고 할 수 없다.  임신,생리,의상궂가 남성과 다르고 유아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여성의 화장실 사용 시간은 남성의 두배가 넘는다. 그러므로 이런 경우에는 5:8정도의 비율로 여성화장실을 넓게, 많이 만드는 것이 실질적이고 공정한 평등정책이다.(정희진, <'여성'과 '인간'을 넘어서-인권의 성별정치학>, 편견을 넘어 평등으로, 창비에서 발췌) 

 2. 060429 가끔 시간관리의 전도사들을 만나면... ... 공*호-C*O-활*가 모두 섞여있는데, 그 생각이 자란 바탕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성공' ... 어떤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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