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 물 셋
이지우, 1983년생
오랜만에/모두가 모이기로 했다,/서울에서 사법고시를 준비한다는 놈과
내일도 시험이라는 의대생 녀석과/급작스럽게 그럴듯한 일이 생긴 놈과
얼마 전부터인가 아예 연락이 되지 않는 녀석을 빼고서,/그러나,그러므로,모두가 모인 것이었다.
몇년 만인지/3년/./우리가 놀란 건/3년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아니라/벌써 3년이 지났다는 사실이었다.
그동안/누군가의 집에는/어머니가 돌아가셨고/누군가의 집에는/가압류가 들어왔고/누군가의 집에는
예전부터 말 안 듣던 동생 녀석이 사람을 찔렀고/나이가 들었을 뿐
아무도 나아지지 못했다는 사실을,/아무도 나아지지 못했다는 사실을,/사실은 모두가 건너 들어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4년제 대학을 다니는 놈과/2년제 대학을 다니는 놈/대학을 가지 못한 놈
대학을 등록했어도 가지 못하는/서로 다른 공기를 마시는 놈들이 모여/어릴 때의 기억들만을 꺼내기 시작했다.
바로 지금,/각자가 어떤지에 대해선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우리는 마음껏 웃었다./오십대의 동창회처럼 녹이 슨 웃음이/맥주잔 옆으로 맥없이 떨어졌다.
이상하게도/아무도 스물셋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았다./하지만/모두가 미친 듯이 경쟁하고 있고
커트라인은 날마다 승천하는/지극히 자유로운 시대를 생각하니,/하나도/이상하지가 않았다.
한 녀석이 시뻘건 얼굴로 내 어깨를 잡고/뭐가 이리 힘드냐고 이야기했지만/나는 모두가 관심이 있었던
예쁘장한 여자아이의 이름을 내뱉었다.
과거의 이야기를 다 캐어버리고서/빈 광산의 텁텁한 공기를 맡은 우리는/이제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모임이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것/또한 알았다,바쁘기 때문에./무엇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바쁘기때문에./오랜만에 만난 우리는/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정중한 악수를 했고
꼬인 혀로 서로의 앞날을 성축해주었고/제대로 된 전쟁 한번 없었지만/패잔병처럼 지친 몸으로
할증이 붙은 서로 다른 택시에 올라탔고,/길은 저마다의 곳으로 한없이 뻗어 있었다.
** * 요즈음 학생들은 영악?한 것은 아닐까? 현실을 X-RAY로 투사하듯 그대로 안다. 덧붙이거나 설명할 필요도 없이~ , 창비의 큰상을 받은 이 법대생 친구는 당선소감에 이렇게 쓴다. 2008년 사법고시를 합격하겠노라고~ .
'세월'을 돌려 거슬러 올라가 내 나이 스물셋, 스스로 나의 존재가 부끄러웠다. 그리고 양심에 거슬를까 나이들면 고구마장사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자리는 누가 될 것 같기에... ... 그러다가 좀더 나이살이 먹으며 존재를 거부하지 말기로 했다. '여건이 닿는다'는 말처럼 모호한 말이 없지만, 이율배반한 짓은 하지 않기로 맘먹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맘대로 되는 일도 아니고....체력도 떨어지고 맘도 멀어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 요즈음 스물셋의 자원활동하는 학생들을 만난다. 취직기계가 되어 여전히 입시생들처럼 움직이지만, 따듯한 마음과 현실을 투명하게 보는 시선들을 엿본다. 세상의 잔 때가 없는 마음들을 보면, 나의 스물셋이 떠올려진다. 무슨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냐구, 연애나 실컷하고 농땡이 치라고 하지만 여전히 착한 학생들이다. 시키는대로 꼬박꼬박 잘한다.
*** 어쩌다 우리시대는 학원모드로 세팅이 된 것 같다. 계속 바쁘고, 바쁘고, 바쁘다. 어디로 가는지도 알면서도 애써 외면한다. 자신만의 인생행로가 있는 듯.. ... 학생의식은 시대가 변해도 여전히 그대로 판박이인 것은 아닐까? 세상은 묘하게도 그대로 찍어낸다. 똑똑한 아이도 찍어내고, 맘과 다른 삶을 찍어내고... ... 삶의 다양성은 마치 거짓말인 듯, 의식을 묘하게도 찍어낸다. 특유의 이중성도 찍어낸다. 우리라는 울타리는 학원성장모드로 점점 교묘하게 자신을 길들인다.(내신이다 뭐다 이미 중학교까지 제도안의 틀을 만드는데 성공한 듯하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조금만 있으며 초등까지 제도안으로 흡수하기 어렵지 않은 듯하다.) 이기지 않으면 아무런 삶이 없는 듯. 그 착각에도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