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에 씌여진 파농의 책은 유럽에서의 흑인과 백인들과의 관계에 대한 고찰이다. 정신과 의사인 파농은, 흑인들이 유럽사회 내에서 어떤 식으로 '백인됨'을 추종하면서 자신을 소외시키고 동시에 흑인 내부에서 서로가 서로를 소외시키는지를 고찰한다(BY ..)


 


중국의 아Q는 그들 모두를 함축한다. 우리의 응삼이인 셈이다. 아(阿)는 친근감을 주기 위한 접두어이고, Q는 청나라말 중국인들의 변발한 머리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란다. 그는 어떤 누가 아니고 대표인물인 셈이다. 루쉰 당시의 중국인 모두이다. 루쉰은 [나는 아Q 본인은 아니다]라고 책 서두에 밝히고 있지만, 누가 아Q라고 했나. 그는 서둘러 나는 아니라고 한다. 입가를 훔치며 내가 먹은 것 아니라고 말하는 아이처럼...자신안의 아Q를 그도 넌즈시 비치는 것은 아닌지... 비열하고 천박하며 상스럽고 믿을 수 없는 주인공은  중국인의 한 모습이고, 중국인인 이상 루쉰 자신이기도 하다.

아Q는 이야기 내내 공공연한 멸시와 비웃음의 대상이다. 당연히 독자에게도 이런 감정을 일으키려 작가는 노력한다. 유대인들은 염소에게 모든 죄를 전가시키고, 들짐승들이 기다리는 허허벌판으로 내보내는 것을 scapegoat(희생양)이라 불렀다. 그들이 모두 내면에 가지고 있는 악, 그 어둠을 상징하는 짐승인 이 염소, 그 머리에 손을 얹고 죄를 전가한다. 빈들로 울음소리를 내며 사라지는 이 짐승을 통해 그들은 자신의  악을 보상한다. 이런 의미에서는 아큐는 루쉰이 설정한 중국인의 스케이프고트이다. 그들이 싫어하고 죽이고 싶은 중국인 자신이다. 루쉰은 이것을 벗고싶다. 제발 내 겨레에게서 이런 모습이 사라지길 원한다. 

아큐는 결국 중국인 스스로 돌아보는 자기의 아픈 구석이다. 이 글을 읽고 우리가 중국인의 성격이, 민족성이 어쩌고 말할 수 없는 까닭은, 루쉰의 이 글을 쓰던 심정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는 아픔으로 자기와 중국인의 치부를 보여준다. 사랑하는 겨레의 부끄러운 모습. 내 민족을 향한 그의 사랑과  안타까움이 나로 감히 중국인을 폄하케 하지 못한다. 드러내 보이고 고치길 원하는 한 사람이 있는 한 그들은 나아질 수 있다. 신해혁명의 와중에 보여준 그들 자신의 천박함과 잔인성. 다른사람들이 혁명을 두려워하는 꼴을 보고 혁명의 동조자가 되거나, 그 혁명군에게 중요한 인물인양 처형당하는 걸 자기 존재가치를 증명하는 방법으로 여기는 아Q들. 루쉰은 그들의 모습을 비웃는 지성인으로 머물러 있던 사람이 아니라 가슴저리게 자기 안에서 그 모습을 끄집어내는 사람이었다. 

내 속의 한국적 아Q. 서두르고 앞지르며 무례함을 개의치 않는 것. 쉽게 화내며 욕이 근질거리기 시작하는 것. 같은 편이 아니면 잔인해지는 습성들. 끈이 닿으면 관대해지는 비열함. 그까이껏 대충 하는 것. 손에 검정 묻히며 일하는데 익숙해져 가는 것. 원래 그런 사람들은 아니었다.  우리 속 안에는 아름답고 쾌활하며 다정한 사람들이 있는데... 하지만 이제는 거리에 나서면 거친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건 당연한 일이 되어간다. 가슴 저림을 느끼며 바뀌어 갈 수 있을까? 언젠가 수치스럽지 않은 내가 되도록...(BY 카를)


그리고 인권책 몇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060701

 

분열.대립.갈등.중상모략 - 4.19후, 80년 '서울의 봄'이후....민족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의 대립.분열...

이 생각나던 중 <대화> 234-235쪽에서 이영희선생님의 견해를 듣는다.

 

나는 정치 전문가가 아니지만, 그와 같은 정치행태가 이조 500년의 역사가 보여주는 수많은 사화.당쟁.분당.족벌 정치의 퇴행적 형태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나는 수백 년에 걸쳐 반복되는 이런 현상을 보면서, 어쩌면 이것이 조선인의 민족성을 형성하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뿌리칠 수가 없어. 냉정하게 제3자적인 시각으로 현대까지의 우리 민족사를 볼 때, 이런 달갑지 않은 요소가 '민족적 유전자'를 형성하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회의를 품을 때가 있어요.

굳이 '민족심리학'이라는 표현이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민족의 이 같은 특성은 프로이트적인 해석보다는 오히려 카를 융의 '집단적 생존의 역사적 유전론'으로 더 잘 이해될 것 같아....... 생물로서의 진화의 누적이 생물학적으로 계승되는 것과 같이, 개체의 문화사적 의식면에서 과거를 무의식중에 보전하고 있다는 거요.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이 간절하지만, 너무도 정확하게 너무도 여러 번 되풀이되는 비극을 볼 때 그런 생각이 든다구요.

 

노신이나 프란츠파농은 당시의 중국 인민대중의 무지.나태.우매.탐욕.교활.갈등.분열.약육강식 등등의 민족적 결점과 약점을 미화하거나 은폐하거나 합리화하거나, 심지어 정당화하는 따위의 값싼 '과잉 민족지상주의'를 거부해요. 그 모든 약점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 그것을 중국 인민대중의 눈앞에 잔인하리만큼 적나라하게 던져 보여주었어. 노신이 의도하는 바는 그런 자신의 약점들을 인식하지 못학나 또는 인식한다 하더라도 민족적 편애심 때문에 인정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의 '자기기만적 허위의식'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거요.

부정의 부정을 통한 자기긍정의 길입니다.


 

060701   <의견과 사실을 구별할 줄 알아야> - 김훈 한겨레신문에 대한 코멘트(일반 민주주의나 다양성의 밑바닥이자 출발점)

최근 민주노총 대전지역본부 선거 - 계파간 갈등은 선을 넘어섰고, 부문간 대표의 원색적 비방 - 물밑 작업등 비공식 소통 공간 부재. 서울 다녀오는 버스 - 중간 휴게소에서 쉴 것이냐 말 것이냐로 폭력을 상호 행사하였다 한다.(택시<-->공공) 감정의 골은 반목으로 반목은 폭력으로 행사하였다 한다.

(폭력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집단간의 폭력의 행사는 몸의 기억으로 남고 이성적 통로만이 아니라 감성적 통로까지 막아놓은 것. 사람의 권리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떤 형태의 폭력으로 일상이 뒤 흔들리기 때문이다. 행사하는 사람이나 피해자나 모두 문제를 증폭시키기에 그 원칙들을 이야기하나, 무위로 그르치는 폭력 건은 벌써 민주노총에서 몇번째이다. 그 당사자들이 운영을 한다. 무엇을...왜...하려는 것일까? 폭력잡배들에게 평범한 조합원을 맡긴다. )

060702  <참터 방향> 현재의 할 일이 너무 자주 변한다. 철학이나 전망의 부재라고 볼 수 있으나 중심-기획일의 의도가 수시로 변하고,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주관적 판단이 가미되어 방향자체가 수시로 바뀌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획에 맞춰가는 것이 가능한가? 확인되는 사실에 기초하지 않고, 사실에서 방향이 가닥을 잡는 것이 아니라, 변하면서 의도하는 방향에 사실을 맞추어 넣는 기괴함의 풍속은 맞는 것인가?

060703 자주파의 왜곡, 평등파의 왜곡, 활동권의 인권의식, 조합 활동가의 인권의식, 교사의 인권의식 - 인권은 책상머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이자 행동이다. 머리와 몸의 간극을 아프게 되물어야 한다. 그 신경증과 병리현상이 이렇게 만든 것은 아닌가?  치료하거나 격리되지 않으면, 그 공간차체가 마이너스 게임이 되는 것은 아닌가?

 


 

(from 가을산 060703)

FTA고 나발이고.....  
어제오늘은 여느때와 달리 FTA 관련 사이트 점검을 하지 않고 있다.
가슴이 갑갑한 것이, 또 가위눌림이 도지는 모양이다.

알라딘도 나의 '착시'에 책임 있다.  각성하라~!   ㅡㅡ;; 
(왜냐구요?  답은 맨 끝에.)

1.  buddy의 질문. 

지방선거에 부인이 출마해서 몇달간 소원했던 buddy L, 그리고 buddy S와 점심 먹었다.
7월에 예정되어 있는 여러 행사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는데, buddy L 이 묻는다.
"FTA가 언제부터 그렇게 문제가 되었지? 노무현이 아무리 그래도 나라를 팔아먹으려고 하겠어?"  

지난 몇년간 반세계화,  의료개방, 영리법인, 건강보험, 글리벡, 의약품 접근권, 약가절감, 양극화, 사회 안전망....질릴 정도로 이야기해온게 그럼 다 무어란 말인가?  '언제부터'라니?

buddy L은 운동에서나, 인격이나, 지역사회의 활동에 있어서나......
나보다 선배이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마저 저렇게 나오니 다른사람들은 어떻게 설득하나? 
나같은 먹보가 이날 냉면 먹고 체했다. 


2. 이른바 '강사단'? 

토요일에 평소보다 병원 문 일찍 닫고 '강사단 학교'라는 행사에 참가했다.
내가 들은 이 행사의 취지는 FTA가 전문적인 내용이 많기 때문에 많은 교육과 설명이 필요하며, 
각 분야의 전문가들, 그리고 지역 토론회나 모임에서 '강사'를 할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분야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서로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실상는 달랐다. 
일단, 강사단에 참석한 사람이 예상보다 적었다.
참석한 사람들 중에 정작 전문가급은 단 한 사람도 오지 않았다.
참석한 단체에 대전의 영향력 있는 단체들이 빠져 있었다.
참석한 사람들 중, FTA가 무언지를 처음 들으러 온 사람이 태반이었다.

나는 사람이나 단체에 대해 둔감하다. 그런데 FTA 관련해서는 각 단체간에 무슨 일이 있는지,
왠지 상당히 삐그덕거리는 것 같다.
대전의 대표자 회의에 참석했던 사람으로부터 듣자니, 여태까지 '조직도 그리기' 만 하고 있다는데....
걱정된다.


3.  우울의 본질

나는 그저 책 읽고, 애들 공부 시키면서 잔소리 하고, 가끔 맛없는 과자 만들고,
자전거 타고...  목공이나 뚝딱거리고,  도예촌 가서 그릇 만들고.... 그러고 지내고 싶다.

그래서 외국과의 접촉을 제외한 지역활동은 인**과 노숙자 문제를 제외하면 거의 나서지 않았다. 
이런 저런 단체에서 가입 권유가 있어도 오히려 활동을 가급적 줄이려고 노력했었다.
지난 몇년간 이번 일만 끝나면..  이번 행사만 하면....  내가 하고 싶던 것들을 하겠다고 생각했었고,
실재로 잠시잠시 할 시간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 일은 여태까지와는 달리 앞으로 1-2년 혹은 그 이상의 장기전이 될 것 같고,
그 결과는 앞으로의 수십년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일선에서 일하는 변모,  우모샘은 그간의 과로로 이제 정신적, 체력적 한계를 보이는 것 같아 염려되고, 
지역에서는 조직이 꾸려지지 않고 있고...  

나서기는 싫고....  ( 난 사람 많은 곳, 말 많은 곳이 정말 싫다. 사람 앞에 나서는 것은 더더욱 싫고)
그냥 있기에는 사안이 너무나도 다급하다.  '누군가 나서겠지'라는 배짱을 부릴 수 없다는게 문제다.
왠지 책읽고, 목공하고, 딴짓 하던 것을 못하는 데서 오는 욕구불만이 내 우울의 본질인 것 같다.

우울에는 단순 노동이 최고다.
어제 주말 농장 가서 1시부터 7시까지 일했다.  중간중간 비가 내리는데도 밀짚 모자 하나 쓰고.
내밭 김매고, 수확하고, 감자 캐고, 미나리 따고, 남의 밭까지 김매주고....


ps.  알라딘이 왜 책임이 있냐구요? 

알라딘엔  FTA 관련 소식을 모으는 분들, 적절한 비판을 하는 분들, 그리고 그런 글들에 공감하는 분들이 많이 계셔서, 이정도가 바깥 사회의 일반적인 인식 수준인 줄 알았다가 토요일에 충격 받았어요. 
제가 병원에 갇혀 지내는지라 바깥 물정을 너무 모르고 있었나봐요.

ps2.  혹시 제가 너무 앞서나가는 것 같지는 않나요? 
광신도들이 길거리에서 "찬미**  불신 지옥"  피켓 들고 다니는 것과 내가 과연 무슨 차이가 있나 고민할 때가 있어요.  이럴 때 서재 지인들의 냉정한 조언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경주마' '경주견'... ... 폄하의 발언일수도 있으나, 현실을 돌이켜보자면 너무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적막함일까요? 저를 비롯하여 활동한다는 사람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 속도에 놀랄 지경입니다. 눈이 뭐가 씌인 듯, 내달리기만 할 뿐. 옆에 있는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하고자 하는지? 자신이 하고 있는 일들이 어떤 일들인지도? 무서울 지경입니다. 브레이크가 고장난 에스컬레이터는 아닐까요? 섞어도 준치?? 글쎄요. 성찰이나 되돌아 봄 -- 좋은 이야기일 뿐이지 않나 싶어요. 성찰을 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나 싶은 느낌입니다. 하는 일-하고자 하는 일-한 일에 대해 냉정한 비교는 아예 없는 듯 싶기도 합니다. 뭔가 홀려서 사실을 끼워맞추고자 하는 일들만 벌어지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하기도 합니다. 필터를 통한 에푸티에이가 아닌가 합니다. 어쩌면 계파에 맞춰 구호순위로 싸울지도 모를 일입니다.(과잉정치인가요?) 탈정치화해버린 생활인들도 제 것에 손해가 되는구나만 해야, 달리는 경주마앞에 장애물이 나타나서야, 어~ 이건 아닌데 할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귀인을 바라는 것을 아닐지??

가을산님의 실망과 우울모드처럼. 최근 회복가능성이나 소통가능성..에 점점 맘이 멀어져감을 느낍니다. '객토'나 '처음에서'... ...움직임이 오히려 점점 뺄셈으로 가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까지.... 그러고보니 저도 실망모드군요

 


060705 운영위 자료를 받아들고 방과후학교 계획(안)/학칙(점수관리합법화)을 비롯해 마지못해 한다거나, 해야할 것에 대해 고민을 품어보지도 않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선생님들의 일상이 그려지고, 아이들도 그렇게 키워지는구나... 그리고 혹시나 하는 생각. 과연 운영위원들이 느낄까? 그냥 코멘트하고 끝나는구나. 그렇게 하지 않으려면 그래도 나아지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고민이었습니다. 그로 인한 답답함이 밀려오더군요. 사실 운영위 번개가 있다고 해서 조금은 기대를 했지요. 낼 모레 회의때문에 모이는 것이구나 할 이야기가 있구나라고... ... 그리고 조금 늦게 번개장소에 가며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말자.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서 이야기를 해보자. 나만의 생각일 수 있다라고 여겼죠. 이야기가 무르익고 잠깐 이야기가 나왔는데. 첫마디가 '별 문제없죠' 였답니다. 운영위 OB모임, 행간에 대한 중요성을 느끼는 것이 다른 셈이었습니다.

 

활동에 철학이 있는지? 의외의 빈약함. 자유주의에 근간을 두고 있다는 말. 당원이자 활동력이 높은 분들에게 나오는 활동의 맘뿌리가 보였는데. 많이 놀랐습니다.


댓글(0) 먼댓글(1)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부정의 부정을 통한 자기긍정의 길입니다.
    from 木筆 2010-12-07 14:05 
    분열.대립.갈등.중상모략   - 4.19후, 80년 '서울의 봄'이후....민족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의 대립.분열...        나는 정치 전문가가 아니지만, 그와 같은 정치행태가 이조 500년의 역사가 보여주는 수많은 사화.당쟁.분당.족벌 정치의 퇴행적 형태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나는 수백 년에 걸쳐 반복되는 이런 현상을 보면서,
 
 
 


줄거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어미 품을 떠나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 살게 된 새끼 개의 일생. 그러나 작가는 그 짧은 이야기 속에서 한 생명을 사랑한다는 것이 과연 어떤 형식과 의미를 가져야 하는지 진지하게 묻는다. 상대방이 개라는 이유로, 자신의 의사를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마음 내키는대로 사랑하고,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만 사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소통'과 '관계맺기'라는 어려운 주제를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잘 풀어냈다. 마음 깊이 파고드는 주제의식이 돋보인다. <우리 동네에는 아파트가 없다>에 그림을 그렸던 일러스트레이터 유동훈의 판화 그림도 독특하고 인상적이다. 연작 형식을 띄고 있는 <어미 개>와 함께 읽어도 좋겠다.
060701  주문한 여러책 가운데 유니가 좋아할 것 같은 예쁜 강아지 책을 고르다. 읽어주는 내내 애틋한 표정과 관심을 보인다.  느낌 몇마디 물어보고, 표지글을 읽어보라 한다. 어구 사이의 끊어읽기가 부족하다.  단어하나하나 들어오지 않은 듯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낫다.  어려운 어휘들이 간간이 있어 걸린다.


<달님은 알지요>를 쓴 김향이의 단편 동화집. 초등학교 1학년에서 6학년까지 읽을 수 있는 이야기 4편이 실려 있다. 풀, 소나무, 돌멩이, 비둘기 등을 주인공으로 항상 앞만 바라보고 있어 몰랐던 아래와 옆, 뒤의 이야기들이 사랑스럽게 펼쳐진다. 나직나직 흘러가는 이야기처럼 삽화도 조용히 흘러간다.

4편의 동화는 모두 '깨달음'을 담고 있다. 이름없는 풀이라 서러워했던 쇠무릎은 자신이 아픈 사람을 고칠 수 있는 소중한 약초임을 깨닫고, 비둘기 구구는 자유를 얻기 위해선 고통과 인내가 뒤따름을 깨닫고, 깜장돌은 자신이 두루두루 쓰일 수 있는 귀한 돌임을 깨닫는다

060702 짧은 글을 고르려 한다.  이야기 4편이 들어있는 글. <깜장돌>이 나을 것 같았는데, 읽기 교과서에 있는 <구구>에 관심을 보인다. 줄거리는 앍고 있으나 수업중 다른 일로 듣지 못했다 한다. 교과서는 원문에서 축약된 것이다. 다른 점들에 귀를 기울여 관심을 나눈다.  연실에 발가락이 잘렸으나 교과서는 묶인 것으로, 흰비둘기가 등장하나 줄거리 요약으로 생략된 점. 그림이 더 좋다. 따로 책을 보관하게 하고, 다음에 항상 볼 수 있도록 환기시켜 공유의 폭을 늘리기로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날짜 훈련 제목 주제 종류 장소 거리 분'초" 페이스
1일 맥주 [편집] 즐달 LSD *천*3런 21 140'0" 6'40"
3일 번개 [편집] 즐달 조깅 3런 7 43'0" 6'09"
4일 호출 [편집] 즐달 조깅 3런 7.8 46'0" 5'54"
6일 욕심 [편집] 즐달 크로스컨트리 천*대앞산 7.5 70'0" 9'20"
7일 반복 [편집] 즐달 조깅 연*운동장 6 40'0" 6'40"
11일 만남 [편집] 즐달 크로스컨트리 화*산-*천일원 16 120'0" 7'30"
15일 지인 [편집] 즐달 조깅 3런**천 9 70'0" 7'47"
17일 반추 [편집] 즐달 크로스컨트리 수락산 8 80'0" 10'00"
19일 대충 [편집] 즐달 크로스컨트리 앞산 8 50'0" 6'15"
23일 리듬 [편집] 즐달 크로스컨트리 3런_우*이산 10 73'0" 7'18"
24일 소화 [편집] 즐달 조깅 3런 우현 6 40'0" 6'40"
25일 반주 [편집] 즐달 조깅 *천 13 75'0" 5'46"
25일 축구 [편집] 즐달 기타런닝 *천운동장 6 60'0" 10'00"
28일 얼음 [편집] 즐달 조깅 연*운동장 6 40'0" 6'40"
요약 : 총 14 회에 걸쳐 15시간 47분 0초동안 131.3km 훈련

 

0..지난 금토 참* 모꼬지, 빗방울이 긋기 시작하는 가운데 2돌맞이 행사.깊은 관심에는 놀랄만 하지만, 내것으로 가져가는 것과 간극은 여전히 있고, 다양성과 경험이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어려움에 대면할 수도 있겠다는 느낌. 토요일. 우중주를 고려해보았으나, 빗방울이 때마침 굵어져 주춤. 피곤도 겹쳐있었던 듯. 꾸벅꾸벅 졸음이 겹쳐 오후 늦어서야 책발이 잡힌다.

 1. 아침 흐림, 한열음에 땡잡은 날씨다. 선선하니 달리기엔. 그러고보니 용담댐 경기도 지난 시간. 주로를 나서 어슬렁거리며 배회한다. 정해지지 않는 목적지. 발맛 닿은대로 . 과*원을 지나 갑천에 이르러 스트레칭 좀 하구...어른스러워진 억새잎은 눈이부셔지도록 푸르고, 불어난 물에 먹을 거리를 찾아나선 흰두루미는 더욱 희다. 무리를 할까 말까 망설이다. 날씨도 좋고하니 늦은 축구 생각을 하며 운동량을 줄인다. 끝내고 스트레칭 조금.

 2. 아이이야기, 점심 전후로 지인,안해와 이야기를 나누다. 씁쓸하기만 한 교육환경-열외학생들의 일상의 순환구조를 품어본다. 운동장은 운동하기 딱이다. 고등학교 1년생들을 섭외를 한지라. 경기전 약간의 긴장이 감돈다. 지역에서 언더 1위, 바람을 등지고 나름대로 선전을 해본다. 업치락 뒤치락. 또 골맛을 본다. 후반 결국 한점 차이 패배를 하지만, 멋진 경기다.

 3. 아침 9k 50' 늦은 오후 100' 9k 환산.

 4. 담날 아침. 제법 찌뿌두둥. 허리가 조금 들어갔다. 내친 김에 더 들이밀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060701

분열.대립.갈등.중상모략 - 4.19후, 80년 '서울의 봄'이후....민족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의 대립.분열...

이 생각나던 중 <대화> 234-235쪽에서 이영희선생님의 견해를 듣는다.

 

나는 정치 전문가가 아니지만, 그와 같은 정치행태가 이조 500년의 역사가 보여주는 수많은 사화.당쟁.분당.족벌 정치의 퇴행적 형태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나는 수백 년에 걸쳐 반복되는 이런 현상을 보면서, 어쩌면 이것이 조선인의 민족성을 형성하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뿌리칠 수가 없어. 냉정하게 제3자적인 시각으로 현대까지의 우리 민족사를 볼 때, 이런 달갑지 않은 요소가 '민족적 유전자'를 형성하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회의를 품을 때가 있어요.

굳이 '민족심리학'이라는 표현이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민족의 이 같은 특성은 프로이트적인 해석보다는 오히려 카를 융의 '집단적 생존의 역사적 유전론'으로 더 잘 이해될 것 같아....... 생물로서의 진화의 누적이 생물학적으로 계승되는 것과 같이, 개체의 문화사적 의식면에서 과거를 무의식중에 보전하고 있다는 거요.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이 간절하지만, 너무도 정확하게 너무도 여러 번 되풀이되는 비극을 볼 때 그런 생각이 든다구요.

 

노신이나 프란츠파농은 당시의 중국 인민대중의 무지.나태.우매.탐욕.교활.갈등.분열.약육강식 등등의 민족적 결점과 약점을 미화하거나 은폐하거나 합리화하거나, 심지어 정당화하는 따위의 값싼 '과잉 민족지상주의'를 거부해요. 그 모든 약점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 그것을 중국 인민대중의 눈앞에 잔인하리만큼 적나라하게 던져 보여주었어. 노신이 의도하는 바는 그런 자신의 약점들을 인식하지 못학나 또는 인식한다 하더라도 민족적 편애심 때문에 인정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의 '자기기만적 허위의식'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거요.

부정의 부정을 통한 자기긍정의 길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