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돌아오는 길, 방안이 온통 물로 흥건하다.

천정에선 물이 떨어지고, 바닥에 물이 차서 철푸덕거린다.

(책장있는 방하나만 남긴 것은 그나마 불행중 다행?인가)

 

관리사무소 수소문하고 이리저리 연락해 위층에 올라서니 아무도 없다.

 수도인입구를 잠그고 들어가보니 리모델링을 해놓은 집, 바닥마루가 둥 떠있다.

 

확인해보니 세탁기 주입구가 빠져 물이 콸콸흘렀던 것이다. 리모델링한다구 하구선 주입구를 막은 셈.

황당한 일 와중이다.

 

수습으로 피곤타.  순진하고 물정모르는 위층주인들이 왠지 더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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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7월 16일 일요일 오후에 상영시간이 있습니다       (FROM 대전시네마테크)

 

 

1회 (11:30)

2회 (13:30)

3회 (15:30)

4회 (17:30)

5회 (20:00)

16(일)

 변방에서
중심으로

파업전야

다큐멘터리
섹션

FTA 섹션 1

FTA 섹션 2

 

◆ 섹션 1 (130분) ─────────────────────────────── 

 <철로는 경고한다 Rail Rarns>  비디오프레스 | 2005 | 43분 | 15세

 

107명의 생명을 앗아간 JR (일본철도) 동일본의 아마가사끼 사고는 1987년 일본 철도가 민영화된 이래 가장 큰 사고이다. 사고의 원인은 바로 민영화에 있었으며 <철로는 경고한다>는 이 사건을 계기로 살펴본 JR 동일본의 안전 문제이다. 현재 JR 서일본 또한 동일한 문제를 안고 있으며, 균열된 철로들은 상당수가 방치되고 있다. 국철 노동자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과 일부 노조이 배신을 통해서 관철된 일본 철도 민영화가 낳은 노동조건의 악화는 승객 안전성의 하락과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었다.

 

비디오 프레스 (Video Press )
1989년 4월에 설립된 일본의 대안적 비디오 운동 단체인 비디오 프레스는 지난 16년간 주로 노동운동과 관련된 다큐멘터리 및 교육물을 지속적으로 만들어왔다. 지난 2000년 제4회 서울국제노동영화제에서 상영된 바 있는 국철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에 관한 작품 <국철노동자 - 겨울 이야기>도 바로 비디오 프레스의 작품이며, 최근작 < 철로는 경고한다 >를 제작한 연출자들은 비디오 프레스 소속 활동가들인 아끼라 마쓰바라와 유미 사사끼이다.


 <출혈 Bloodletting>  로나 그린 | 2004 | 미국 | 67분 | 15세

 

삶과 죽음을 가로지르는 의료제도.

의료제도는 정말 인간을 위한 것인가 ? 흑인 여성 감독 로나 그린은 보건의료노조 활동가들과 함께, 경제 봉쇄 때문에 자원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모범적인 의료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쿠바를 방문한다. 그러나, 인상적인 경험을 하고 돌아온 그녀에게는 실업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가족들이 처한 현실이 고통스럽게 다가오게 된다. <출혈 - 삶과 죽음을 가르는 의료제도>는 감독의 개인적 시선을 통해서 바라본 미국 의료제도의 구조적 결함에 대한 고발이다

 

<출혈 : 삶과 죽음을 가르는 의료제도>는 미국 의료제도 현실을 일깨워준 매우 고무적인 다큐멘터리이다. 쿠바의 인간적인 의료제도와 민간에 의해 운영되는 미국 의료제도를 비교하면서 미국에서도 더 나은 의료제도가 가능하며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이 영화의 감독인 그린(Green)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미국에서 날마다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의료 위기를 기록한다. 관객들은 궁금해진다 : 42년 동안 미국의 무역제재 조치를 받고 있는 제 3세계 나라가 모든 국민들에게 적용되는 의료제도를 최우선으로 만들 수 있었을까? 왜 미국은 국민 모두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공공의료보험을 제공하지 않는 것일까?

영화는 랩뮤직이 흐르고, 사람들이 종종걸음치며 달려가고, 다우 존스가 요동치고 있는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된다. 캘리포니아주 항구도시인 오클랜드에서 열린 의료 관련 집회에서 의료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은 한 노동자의 모습이 감독의 시선에 들어오고 경찰은 평화적인 집회 참가자들을 체포하면서 모순된 현실이 펼쳐진다.

그린은 복잡한 의료제도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쿠바로의 여행을 떠난다. 쿠바의 의료제도도 미국만큼 복잡할까? 쿠바의 의료제도는 어떻게 운영되는가? 쿠바 국민들은 의료제도에 만족하고 있을까?

제작 : 니콜 무어 (Nicole Moore)
니콜 무어는 보건 의료 노동운동 영역에서 조직가이자 활동가로서 활동해왔으며, <출혈 - 삶과 죽음을 가르는 의료제도>을 제작하게 된 것은, 적절한 의료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평범한 노동자들의 고통에 대한 분노 때문이다.

연출 : 로나 그린 (Lorna Green)
로나 그린은 독립영화 제작자로서, 그동안 다양한 작품들의 각본 및 연출을 담당해왔다. 영화학교를 나온 후 그녀는  <브라운 가족, Family Brown>, <딱딱한 경계, Hard Edge> 등의 작품에서 각본을 담당했으며,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한 바 있다.

 

◆ 섹션 2 (123분) ─────────────────────────────── 

 <교실에서 거리로 Granito de Arena>  질 프리드버그 | 2005 | 미국 | 61분 | 15세

 

멕시코 교원 민주 노조

노동영화제 상영작

지난 20여년 동안, 초국적 자본과 국제기구는 멕시코의 공교육을 붕괴시키려 했지만, 언제나 교원 노동자들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왔다. 1999년 시애틀 WTO 반대 투쟁을 기록한 화제작 <이것이 민주주의> (제4회 서울국제노동영화제 상영작) 를 공동연출한 바 있는 질 프리드버그는 <교실에서 거리로 : 멕시코 교원 민주 노조>에서 이러한 멕시코 교원 노동자들의 투쟁을 역사적이며 구조적인 시각으로 조망해낸다.

 

2년간에 걸친 현지 취재를 통해 그녀는 10만명이 넘는 교사, 농민, 학생들의 공동 투쟁을 기록했으며 그 기록의 결과는 어렵게 발굴된 사료들과 함께 결합되어 저항과 헌신과 연대를 모티브로 삼은 이 작품의 완성으로 이어졌다. 아울러 이 작품은 투쟁에 대한 기록일 뿐만 아니라 교원 노조 운동 내부의 비판적 자기성찰과 그에 기초한 지역 공동체 대안 교육의 활성화라는 공교육의 새로운 지향을 담고 있기도 하다. 

질 프리드버그 (Jill Freidberg)
<이것이 민주주의>(2000)를 릭 로울리와 함께 공동 제작한 바 있는 질 프리드버그는 시애틀 독립미디어센터(IMC)의 창립자의 한사람이며 현재 멕시코의 독립미디어단체들 및 선주민 공동체 라디오 방송과 함께 활동하고 있다.  


 <갈증 Thirst>  알란 스티노우, 데보라 카우프만 | 2004 | 미국 | 62분 | 15세

 

물은 누구의 것인가?

물은 모든 사람들의 인권을 위해 공유되어야 할 공공재인가 ? 아니면 물은 세계 시장에서 사고 팔고 거래되는 상품인가 ? 2003년 일본 교토, 제3차 세계 수자원 포럼은 시작부터 논쟁에 휩싸인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정치가들과 국제 은행가들, 그리고 기업가들은 전세계에 깨끗한 물을 공급하기 위해 거대한 댐을 건설하고 수자원을 민영화한다는 합의를 진행시킨다. 하지만, 다른 전문가들과 활동가들은 물은 인권이며, 시장에서 거래될 상품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포럼의 전제를 뒤집는다. 볼리비아의 공동체 지도자 오스카 올리베라의 발언에는 참혹한 현실에 대한 고발이 응축되어 있다. “여기 나온 많은 기업들은 물을 우리 동포들의 피로 더럽혔다”

<갈증 : 물은 누구의 것인가 ?>는 이렇게 '물의 사유화 및 상품화'를 주도하고 있는 초국적 자본에 대항하여 근본적인 질문들을 제기하며 투쟁하고 있는 세계 각국 민중들에게 초점을 맞춘다. 오스카 올리베라를 비롯한 볼리비아 민중들은 미국 벡텔사의 수자원 민영화에 대항하는 봉기를 일으키며 수많은 희생을 치른 끝에 마침내 승리하며, 미국 스톡튼에서는, 수자원 관리에 대한 권한을 기업에게 넘기려는 시장의 결정을 막기 위해 주민들 스스로 민중연합을 결성하여 투쟁한다. 인도의 민중들은 ‘현대판 간디’로 추앙받는 라젠드라 싱의 지도하에 초국적 자본에게 물을 넘기려는 정부에 대항하여 투쟁함과 동시에, 대안적인 수자원 관리로 사막화 현상을 막아내고 강을 되살린다.

 

알란 스니토우 (Alan Snitow)
미국 공영방송 PBS의 독립다큐멘터리 시리즈 POV에 방영된 바 있는 <갈증 : 물은 누구의 것인가 ?>는 알란 스니토우의 세 번째 작품이다. 그의 이전 작품으로는 <실리콘 밸리의 비밀> (2001, 제5회 서울국제노동영화제 상영작), <흑인과 유태인> (1997) 등이 있다. 장편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기 이전, 알란 스니토우는 베이 지역 방송국인 KTVU-TV에서 12년간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했으며, 현재 영화예술재단의 이사이자 미국 TV 라디오 방송제작자 연합의 회원이기도 하다.

데보라 카우프만 (Deborah Kaufman)
데보라 카우프만은 알란 스니토우와 함께 <흑인과 유태인>부터 <갈증 : 물은 누구의 것인가 ?>에 이르는 작품들을 공동연출 해왔으며, 샌프란시스코 유태인 영화제의 창립자이기도 하다. 그녀는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캘리포니아 휴머니티 재단 등의 이사로 활동해왔으며, 인권 및 문화다양성, 미디어와 관련한 제작자, 강사, 자문가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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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당착

 

운동엘리뜨

 

 그가 운동의 대장정을 나선 것은 '방송'때문이었다.

 그녀가 운동의 대장정을 나선 것도 '엘'때문이었다.

 공부에 시달린 청춘과 시대에 대한 염쯩은 살포시 퍼지는 '방송'의 마력과 시원시원함때문에, 애국적 열정은 더욱더 불타오르게 되었다. 사실들은 모두 수렴되어가는 것이었다. 사회주의권이 변하고 말고가 문제가 아니라 굳건히 버티고, 화려한 전술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점점 더 몸은 전적인 신뢰를 더해갔다. 어찌 조중동 나부랭이의 신문을 믿을 수 있을까? 비방한다는 부류를 이해할 수 없다.

 

 

 

공부하는 것은 내 취미하고도 맞지 않다. 말 많은 놈들. 책을 핑계삼아 하는 것들은 하나도 없는 것들이지 않는가?

 

요즘 점점 불안하다. 내가 민주주의를 알기나 하는 것일까? 폭력배라고 하지만 내가 저지른 폭력을 무엇이란 말인가? 절차적 민주주의라 하지만 경도되어 다양성의 수렴보다 절차만 지키면 그뿐 아닌가라는 행태를 대의아래 봉사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성폭력을 알기나 하는 것일까? 교육받은 것과 부르조아만 하는 것을 나도 일상적으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놈 피디들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는 짓들이라곤,

저년 엔엘들은 도저히 이해도 되지 않는다.  시민운동하는 것들이라 변호사하고 비싼 술 먹고...그러면서 허구헌날 술을 퍼먹고 있다. 운동은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라며 운동관료가 된 나는 매일 그 비싼 술을 축내고 있는 것이었다.

 

뻔뻔이 1.2.3

 

아줌마

애를 낳으니 온통 사물이 애를 중심으로 정해진다. 이쁜 얼굴도 찍고 먹을 것 신경써야지 온통 정신은 육아로 몰려지는 것이었다. 내가 언제 활동했었야고, 사회활동에 관심있었던 것인지 온통 일상은 육아에 모아졌다. 이정도 열정이면 아동학 박사논문은 몇권은 냈으리라. 

어떻게 애를 기죽일 수 있으랴. 귀찮게 제사는 무슨제사. 일도 공평해야하는데.

공평이

제멋대로

운동신참

뭔가 될 것 같다. 운동과 관계없고, 당나라당 선배와도 관계했지만, 나의 정치적 야심은 이 기회로도 맛닿으리라.

우리 노선이 승리해야한다. 주도권을 잡으려면. 나의 피끓는 민중에 대한 사랑을 몰라주는 것인가? 반드시 알 날이 있을 것이다.  볼세비키 아니었던가? 민중을 도도한 흐름을 모르고, 운동사기꾼들만 경도 된 것은 아닐까?

도오사

'도'를 아는가? 음양의 조화도 모르는 것들이 무슨 운동을 한다고, 매일 싸움만 해대고 말이야

성공이

운동권이 엉망이다. 정말 왜 그렇게 일하는지 도통 수준이하이다. 바보같은 짓만하고 있다.  나의 원대한 꿈은 우리조직을 잘 만들어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왜들 일들을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모르는가? 이렇게 하고 이렇게 하면 되지 않는가?  다들 어리석다. 우리가 하는대로 하면 될텐데말이다.

대시니

아줌마들은 대신 산다. 매니저의 삶이기보단, 한술 더 떠 똑 같은 일상을 살고 있는 것이다. 아니 다시 살고 있는 것이다. 유아는 물로 초중학교를 대신, 그런 바보가 있을까? 대리만족과 대신사는 삶

 일마니

나의 사전엔 퇴근은 없다. 지리한 일상이지만, 나의 착함에는 일밖에, 주말 놀고 싶어도 불안하다. 일터에서 쉬는 편이 마누라나 자식들에게 들복이지 않고 편하다. 그러고보니 일 외에 할줄 아는 것이 없다. 번듯한 취미도 동선도 제한되기는 마찬가지.  집회 현장도 가본적 없고, 신문 외에 다른 정보에 관심도 없다. 전공이외의 서적은 진절머리가 난다. 일어본 책이라곤 처세책 몇권일뿐

 

말무니

귀멍어리, 듣되 듣지 않고, 말하되 듣지 않고, 말하고 말만하구.  하고싶은 것, 단체나 사람이나 단면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아닐까? 독선이나 자만이 도를 넘어설 경우, 인식의 선에서 배치되고, 배치되거나 한다. 그 이면은 중요한 것도 필요한 것도 아니다. 인식의 선만 필요한 것. 자신이 없어지면 아무것도 아니다.

봉거니

 

초기 자본주의는 근검-절약성이었다. 부르조아가 시대를 극복하게 했던 것은 최소한 습속이 달랐기 때문이다. 성장의 맛을 본, 꼼꼼함도 근검절약도 없는 것이다. 풍요에 넋을 놓은 것인가?

 

권리니

 

대표적 자중심성과 권리찾기의 도착증세는 무엇일까? 뻔뻔함을 넘어서는 무엇이다. 아이를 음식점에 방임하며, 타이르는 사람에게 애 기죽인다는 부모. 아이와 자신의 권리만이 박혀있다. 타인과 관계, 공공장소의 예절 무시는 보수를 넘어서 질타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주장만 있지 하여야 할 의무에 대한 시선은 어디에서도 살펴볼 수 없다. 활동권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다.

 

신 노예근성


1.

어쩌면 내속 깊숙이 그늘을 드리운 것은 ‘하지말라’는 소리에서인지도 모르겠다

국민교육헌장만 암송된 것이 아니라,

입속에 무의식중에 배여나오는 소리는 늘 ‘하지말란’ 소리다.

아이를 키우고, 같이 자라지만 기껏 가르치는 것이 ‘하지말란’소리다.

그러다보니 나의 출구는 늘 변칙에서 잉태되는 듯하다.

남이 잘되는 것이 배가 아픈지도 이미 오래다.

오늘도 ‘뒷담화’를 즐긴다.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되고 되지 않는 투성이다.

남이 안되는 것에서부터 쾌감의 출발이다.

어디서 이렇게 뿌리깊은 근성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점점 더 강렬한 강도로 커지는 잔인함에서 묘한 미소를 띠게 된다.

이젠 스스로 하는 것을 잃어버렸다.

‘하지말란’ 소리에 인이 베겨 하는 재미도 잊어버린 것 같다.

그저 자극하는대로 뱉고, 웃고,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은 이미 고통으로 자라버렸다.

피자와 콜라가 배달되듯, 오늘도 풍요의 바다에 휩쓸려 떠다닌다. 떠다니기에도 빠듯하다.

싸구려개그에 영혼도 팔아버리고 정신없이 벌어진 입을 다물기에도 벅차다

 

4.

'속도전'에 취해 돌아보는 것을 모두 사치라고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집단망각처럼 새로운 것이 나타나면 모든 시선을 주고, 맘을 주는 어리숙함. 애초에 '돌아봄'은 우리의 취향이 아닌 듯, 도대체 시선은 앞만 향해있고, 자신의 행적에 대해 무감각해져 버린 것은 아닌가? 저자는 지금의 현실을 로마의 폐망직전으로 묘사한다. 사우나와 식당과 환락이 뒤범벅이되어 먹고, 마시고, 즐기고... ...세상은 온통 욕하기 바쁘지만, 자신의 행적에 대해선 객관적 시선을 잃는다. 무한한 관용, 타인에게는 잔인할 정도의 인색함이 우리라고 한다.

050115

5.

피해의식 - '내가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 ' - 변이 자중심성, 개성이 강하거나 자기 주장이 뚜렷하다거나라는 것과 씨부터 다른 것 같다. 어쩌면 군사문화가 그 책임소재의 8할이상은 가지고 있다고 본다.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본질적인 생활의 논리는 내 위주이다. 나를 중심으로 돌지 않으면, 병장의 반경으로 상병-일병-이등병이, 상병의 원으로 일병-이등병이, 일병의 반경으로 이등병이 돌아줘야 움직이는 시스템은 찬란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병장은 쫄병들 누구에게나 뒷담화에 주제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일사분란하게 병장 중심으로 도제가 형성되어있다. 화장실 청소까지? 그런 면에서 남,녀를 불문하고 자중심성의 늪에서 도망갈 수 없다. 나는 아니라고 해도, 엄연히 그 포로가 되어 있다.

집단이 성찰해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내가해도 스캔들, 남이 해도 스캔들이란 바닥을 언제쯤 치고 올라올 수 있을까? 그런 빈틈은 있는 것일까?

6.

환상은 마치 마약과 같아서 취하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지요. 하지만 깨어나면 허탈하기만 합니다. 어제 황우석 박사의 기자회견을 보면서 우리 사회에 지금 필요한 것은 금단현상을 이겨내려는 굳은 의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진*권, sbs 창과*패, 1. 13 )

 

언젠가 남겨둔 흔적

 

오늘도 정세와 입장이 중요하다는 말씀올 듣는다. 지도자의 선택에 따른 운동흐름이 바뀔
수 있다는데 일견 동의하지만, 수긍하기가 쉽지만 않다.

1. 늘 술자리가 되든 그렇지 않든 ‘전투적 문화’ 이것도 무의식중 군사문화 잔재라 볼 수 있
는가? ‘아군과 적군밖에 없는~’ 친하면 아주 친하구, 아니면 뒷담화주제거리로 전락하고 마
는, 하늘과 량차이만한 간극~ 쟁점이 붙는다. 표현하는 바, 의중에 우회하지 않고 직선타
를 날린다. 잘 잘못을 떠나 의중에 정확히 박힌다. 의중이 발가벗겨진다. 이젠 입장이 중요
한 것이 아니다. 셜전의 와중에 흠집을 집요하게 찾아낸다. 드디어 발견이다. 역전타. 모임
의 전투성은 활동가!에 인접할 수록 강하다. 오늘 판결내지 않으면 되지 않을 듯, 의기가 충
천하다.


2. 정세와 입장을 거꾸로 따라가볼 수 있을까? 모두 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언젠가는 그릇
된 판단올 했올텐데. 앞만 볼 줄 알아 뒷그림자는 볼 수 없는가? 얼마나 열심히 무엇올??
정치운동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그 열정을 회석화하자는 것도 아니나


3. 모임이 늘 진위만 가리려 한다면? 옳고 그름만 따지려한다면? 상처난 감정들로 상대방이
들려주는 다른 모습과 견해는 잊혀지는 것은 아닌가? 그 흔하디 흔한 모임의 식탁에 파업
이라는 화두의 요리가 나왔다고 치자? 사람마다 까다로운 입맛, 기호의 차이가 명백해 다른
맛, 다른 식사방법을 나눈다면 좀더 배려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음식에 대해 이런 부분올
모른다고 이야기해줄 수도 있을 것이고, 이 음식의 참맛을 보기위해선 이런 조리방식까지
들여다 보아야한다구. 이것은 영 입맛에 맞지 않으니 다른 음식부터 맛보아야 하지 않느냐
구. 그래야 다음에 만나면 상대방 식성도 고려하지 않을까?


4. 한번 보고 그칠 사람들은 아닌데, 늘 전투코드는 의욕을 상실하게도 한다.

5. 대중과 활동*의 벽은 점점 높야지는 것은 아닌가? 높아지는 벽을 ‘허물기위해 오로지 한가지 정공법만 태하는 것은 아닐까? 어딘가 금간 곳이나 틈이 있을텐데. 동시대를 살아가는 시대인으로서 뭔가 다른 방법도 있을텐데. 내 피붙이 교육이나 나혼자만 살 궁리하지 않고 비정규직이 마음에 들어오게 하는 방법이나 전술은 없는 것일까?


6. 지도부와 집권만하면 된다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 헌신과 의무만큼, 흑자는 경험만큼 잠재된 이론올 가지고 있다는 말씀이 아니라도 삶은 무궁무진한 이론투성이 정세투성임을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 계몽은 가고 벽을 허무는 동선과 움직임만 남으면 좋겠다. 초록이 너무 짙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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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배승 시 / 장사익 노래


순대 속 같은

세상살이를 핑계로

퇴근길이면 

술집으로 향한다

우리는 늘 하나라고

맹세를 하면서도

등 기댈 벽조차 없다는

생각으로 

나는 술잔에 떠있는

한 개 섬이다

술 취해 돌아오는

내 그림자

그대 또한

한 개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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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7-06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장사익)
클릭하면 미디오 재생됩니다^^


여울 2006-07-06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래는 더 끈적입네다. 감사!!
 


1952년에 씌여진 파농의 책은 유럽에서의 흑인과 백인들과의 관계에 대한 고찰이다. 정신과 의사인 파농은, 흑인들이 유럽사회 내에서 어떤 식으로 '백인됨'을 추종하면서 자신을 소외시키고 동시에 흑인 내부에서 서로가 서로를 소외시키는지를 고찰한다(BY ..)


 


중국의 아Q는 그들 모두를 함축한다. 우리의 응삼이인 셈이다. 아(阿)는 친근감을 주기 위한 접두어이고, Q는 청나라말 중국인들의 변발한 머리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란다. 그는 어떤 누가 아니고 대표인물인 셈이다. 루쉰 당시의 중국인 모두이다. 루쉰은 [나는 아Q 본인은 아니다]라고 책 서두에 밝히고 있지만, 누가 아Q라고 했나. 그는 서둘러 나는 아니라고 한다. 입가를 훔치며 내가 먹은 것 아니라고 말하는 아이처럼...자신안의 아Q를 그도 넌즈시 비치는 것은 아닌지... 비열하고 천박하며 상스럽고 믿을 수 없는 주인공은  중국인의 한 모습이고, 중국인인 이상 루쉰 자신이기도 하다.

아Q는 이야기 내내 공공연한 멸시와 비웃음의 대상이다. 당연히 독자에게도 이런 감정을 일으키려 작가는 노력한다. 유대인들은 염소에게 모든 죄를 전가시키고, 들짐승들이 기다리는 허허벌판으로 내보내는 것을 scapegoat(희생양)이라 불렀다. 그들이 모두 내면에 가지고 있는 악, 그 어둠을 상징하는 짐승인 이 염소, 그 머리에 손을 얹고 죄를 전가한다. 빈들로 울음소리를 내며 사라지는 이 짐승을 통해 그들은 자신의  악을 보상한다. 이런 의미에서는 아큐는 루쉰이 설정한 중국인의 스케이프고트이다. 그들이 싫어하고 죽이고 싶은 중국인 자신이다. 루쉰은 이것을 벗고싶다. 제발 내 겨레에게서 이런 모습이 사라지길 원한다. 

아큐는 결국 중국인 스스로 돌아보는 자기의 아픈 구석이다. 이 글을 읽고 우리가 중국인의 성격이, 민족성이 어쩌고 말할 수 없는 까닭은, 루쉰의 이 글을 쓰던 심정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는 아픔으로 자기와 중국인의 치부를 보여준다. 사랑하는 겨레의 부끄러운 모습. 내 민족을 향한 그의 사랑과  안타까움이 나로 감히 중국인을 폄하케 하지 못한다. 드러내 보이고 고치길 원하는 한 사람이 있는 한 그들은 나아질 수 있다. 신해혁명의 와중에 보여준 그들 자신의 천박함과 잔인성. 다른사람들이 혁명을 두려워하는 꼴을 보고 혁명의 동조자가 되거나, 그 혁명군에게 중요한 인물인양 처형당하는 걸 자기 존재가치를 증명하는 방법으로 여기는 아Q들. 루쉰은 그들의 모습을 비웃는 지성인으로 머물러 있던 사람이 아니라 가슴저리게 자기 안에서 그 모습을 끄집어내는 사람이었다. 

내 속의 한국적 아Q. 서두르고 앞지르며 무례함을 개의치 않는 것. 쉽게 화내며 욕이 근질거리기 시작하는 것. 같은 편이 아니면 잔인해지는 습성들. 끈이 닿으면 관대해지는 비열함. 그까이껏 대충 하는 것. 손에 검정 묻히며 일하는데 익숙해져 가는 것. 원래 그런 사람들은 아니었다.  우리 속 안에는 아름답고 쾌활하며 다정한 사람들이 있는데... 하지만 이제는 거리에 나서면 거친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건 당연한 일이 되어간다. 가슴 저림을 느끼며 바뀌어 갈 수 있을까? 언젠가 수치스럽지 않은 내가 되도록...(BY 카를)


그리고 인권책 몇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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