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자거리, 허름한 이발소에 걸린 액자그림. 겨울녘 졸음이 올 때쯤이면 아늑해지고 꾸벅거리는 투박한 아저씨의 조는 모습. 그렇게 파리똥이 액자유리에  군데군데 뭍어있더라도 라디오에 흘러나오는 유행가와 소가죽에 날을 세우는 면도날과 거품에 잘 어울리는 명작이다.

古 윤중호 시인의 시집, <청산을 부른다>의 청산을 쫓아가보기로 한다. 낮은 사람들과 푸른 세상의 숨결, 허접한? 것들이 향으로 묻어나는 그런 <청산>은 없을까?


2. 




푸르름이 지나친 것일까? 강열한 아름다움에 넋을 잃어버린다. 녹음과 구름은 우러러보이는 듯 품을 듯. 아주 마음에 드는 청산은 아닌 듯, 허전하게 박혀있는 인적은 청산과 어울릴 틈이 없는 것 같다. 도도함과 분리를 자극하는 <청산>은 마음에 들어왔다 빠져나간다.


3.





강렬하게 뿜어나오는 푸르름의 진동이 아찔하다. 시선은 깊어지고 안개에 잠겨본다. 곱고 청아한 색에 노닐어도 한참일 듯 싶다. 애써 목동과 소와 기러기를 지워본다. 하지만 <청산>과 쉬이 놀지 못한다. 청산의 강렬함에 강물을 제외하곤 섞이지 않는다. 사람의 손길도, 풀잎의 애정도 그리 상관없는 듯 보인다.


4.




고갱,세잔,고호의 산 그림을 찾는다. 구릉지라 산맛은 아예 배여나지 못하지만, 서로 섞이고 엉키고 또렷해지는 모습들은 한결 원하는 <청산>에 다가가는 듯 싶다. 김홍도의 <청산>은 우뚝하면서도 주변을 기죽이지 않고 잘 살려놓은  것 같아 맘이 끌린다.

 

5.







시인의 <청산>은 '하찮은 풀잎도'  '못쓰는 돌멩이'도 자라서 계곡을 심고 뭇짐승을 키운다. 청산에 삿대질 하는 사람들에게도, 비탈에서도 나무를 반듯하게 키운다. '청산'을 닮아 청산이 되지 말라한다. 자신의 본디 모습대로 잡풀이 되고, 강이 되고 곡식이 되고, 먼지가 되고, 티끌이 되어 산그늘과 같이 자라면  그것이 모두 청산이라 한다.
 

6.





그렇게 따로 따로 나누어 제 위치를 찾아준 그림에 맘이 끌린다. 제색깔도 서로 두드러지지 않고, 바람도  한데 어울려 함께 제 색을 내는 <청산>에 맘이 간다. 고호의 해바라기는 아니지만 경계를 섞고 제빛을 드러내는 화폭에도 맘이 끌린다. 

 

7.

하지만 원하는 <청산>은 찾아내지 못하였다. 더 강열하면서도 어울리면 좋을 것 같고 훨씬 더 생동감도 있으면 하고, 어떻게 보아도 늘 변하는 <청산>이었으면 좋겠다. 








그림출처   2. 박노수,  3. 운보 김기창,  6, 유영국,박고석 7. 이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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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주말 대*동사무소 환*연 도서바자회가 있었습니다. 참* 일로 만날 일도 있고해서 들렀는데 수중에 돈도 없고, 은행도 찾고자니 그렇고해서 *국장에게 빌었는데.... 품절인  이면우 <저석양>, 호서문화사, 윤중호 시집을 단돈 1000냥에 구하는 횡재를 했네요. 로또만큼의 뿌듯함은 아니지만 괜찮은 맘의 수입인 셈입니다. 아이들 책도 몇권 사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제 월요일은 대학생 자원활동 학생들의 발표회가 있었습니다. 꼼꼼한 준비와 발표에 무척이나 감사한 하루였습니다.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학생들의 지식과 노력이 섞일 수 있다는 것 모두 좋은 경험이 되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말미 수고의 여운이 조금 길어졌고, 할 이야기도 있곤해서 참*일꾼들과 시간을 잡아당기려 애를썼습니다.

 

 

2.

이야기를 나누며 몇달간 말의 여운을 쫓다보니, '신뢰'가 과연 있는가? '믿음'이 남아있는가? 서로를 안을 수 있을까? 계파만 있고 일은 소멸되고, 손가락은 상대를 가르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과연 자성의 목소리로 돌아올 수 있을까? 하는 의아심이 점점 진해지는 것은 아닌가?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생활인이 한나라당을 찍고, 친구들이, 식구들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음에 대한 예민한 촉수는 없어진 듯 하고, 그 불감증은 아전인수식 해석으로 남탓에 너무 익숙해있는 조짐, 소식들이 번번히 들려 괴롭더군요. 그래서 가까운 지인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우리를 함께 활동하는 사람들을 믿느냐고? 서로 잘하는 구석들은 없느냐고?

매도해도 되지 않겠지만, 일을 하기에 앞서 어떤 계보인지부터 확인하거나, 정세를 문건이 없으면 알 수 없는 수준이거나 한 상태는 아닐까? 그런 처지에서 무슨 일들을 할 수 있을까? 차라리 '당을 쪼개라' '주고 나와라' '해산해라' 라는 발언들까지 심심치 않게 나오는 것을 볼 때, 제대로 일들을 해나갈 수 있을까? 지금까지 온 2년과 앞으로 2년은 대동소이한 것은 아닐까?하는 헛생각만 들게 되더군요.

'신뢰 불감증'이라고 할까요? 우리라는 것이 함께 포옹할 수 있다는 것은 서로에게 주고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닐까요? 장점은 보려하지 않고 단점을 보고 증폭시키는 것이 문화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유통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의 수준을 바닥이라고 여기는 것이 차라리 편한 것은 아닐까요?



자신의 거울만 보고 왜 그렇게 못생겼느냐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요? 과연 우리가 (나-너)로  보듬어 밖으로 보려는 시선은 있는 것일까요? <피해의식>의 역사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당사자들이 풀지않는 이상 누구도 그것을 해줄 수 없을 것 같더군요.

3.

서로를 안을 수 있을까요? 두 팔을 벌려 상대방을 믿고 뒤로 넘어질 수 있을까요? 믿음과 신뢰가 실종된 상태에선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믿는 것도 걷는 것처럼 달리는 것처럼 연습을 하지 않으면 만들어지지 않는 그런 것은 아닐까요? 아직도 예전엔 어땠는데, 옛날엔 뭐했는데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 활동하지 않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떠벌이고 다니는 것은 아닐까요? 활동엔 끊임없는 지금이 소중할 뿐인 것은 아닌가요?

 사람을 믿는다는 것은 지난하고 어려운 일이지만, 혼자 살 수 없고 붙어 살 수밖에 없음의 뺄셈을 하더라고 손해봐야 그대로니 한번 연습해볼 일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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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0801-4/52(4) 내외부자의 시선 (作)
    from 木筆 2008-01-28 15:35 
    지난 주 일터일로 바빴다. 아침저녁으로 약속을 스스로 정한 참* 회의까지 불참하였으니 말이다. 일꼬리가 바뀌고 살아나고, 생각이 맞지 않는 것 같아, 다시 결을 가다듬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했다. 이야기하고, 메일 보내고, 조금 모은 다음 다시 보내고, 회의하고, 확인하고 반복되는 실험에 생각결이 그나마 숨이 잦아들고 엇비슷하여 진다. 불쑥 불쑥 완장같은 일이 생기면, 기본을 흔드는 일이 생기면 불필요한 노력과 힘이 많이 든다. 일들 줄이고 좀
 
 
hnine 2006-06-06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내용과 사진이 이렇게 딱 떨어질수가 있는지요.
한번 보고 읽기 아깝습니다.

여울 2006-06-07 0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흔적을 남기면서, 남기고 나서도 많이 안타깝습니다.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것인지부터 말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
 

1.

 해가 익는 유월, 월초부터 일상이 짙게 배여 바쁘다. 달림친구들 만남과 일터 동료들 모꼬지가 겹친다. 달림모임은 나로인해 만들어졌으니 파할 수도 없는 일,  개업식한 달림친구한테 맘빚도 있고 넘 소홀하기도 하여 조금 일찍 선물 챙겨가고  삼겹살에 소주로 이런 저런 이야길 나누고 달림이야길 이어가다보니, 시간이 꽤 지난다. 운전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택시로 계*시까지 이동한다.  먼저 이야기 한 요금보다 훨씬 더 나오는 거리이어서 삶이야기를 나눈 기사분에게 넉넉히 보태드렸다. 밤을 새다싶이 잔 쪽잠과 많은 음식으로 피곤도 하고 컨디션도 엉망이다.

참터 일도 이어질 예정이고 시간이 두시간 남짓. 땀 좀 내고 목욕하고 나비잠을 잠깐자면 피로가 덜 할 것 같아 돌아오자 마자 복장을 챙겨 주로로 나선다. 정오를 가르치는 햇살은 따갑다.  아주 느린 속도로 천천히 근육들을 이완시킨다. 땀이 얕게 베여 나올 정도로 처언천히. 목련 나무그늘과 느티나무 그늘, 그림자들이 바람과 사귀고 속삭인다. 그 그림자를 쫒아 달리다.  단풍나무 그림자가 미풍에 바스락거린다.









그림자가 색깔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미련하게도 얼마되지 않았다. 살색처럼  뇌리에는 그림자는 검은색으로 대못을 박아놓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살랑거리는 잎새의 그림자는 제색을 내고 있었다. 빨강노랑파랑연두진연록고동.....  얼마나 기막힌 어리석음인가.   비가오면 비색으로 버무려진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마음의 색을 뜸북 담고 있다는 것도 말이다.  못 믿으시겠다면 한번 보세요. ㅎㅎ 그래도 보이지 않는다면 저하고 비슷하시네요.







2.





 그럼, 한가지더 그림자도 무게가 있다는 것은 아세요. 지난 주말, 상가에 지인과 만남, 오가면서 나눈 이야기-맘-느낌들은 안타깝고 애절하고 우울하곤 했습니다.  물건뿐만이 아니라 상품처럼 정치도 사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 정치과학자들이 실제 연구와 방향사이의 간극을 벌려놓은 일하며, 겉재미만 알고 속재미를 몰라 그저 끌려가고만 있는 것 같아 맘이 더욱 아팠습니다. 그림자에 압도당한다는 느낌들 말입니다.

'12년의 동안 민주화세력의 실정이라고 일반 생활인들은 여긴다. 개혁세력의 구상이 아니라 보수를 제외한 중도보수를 표방하는 그룹(신3당합당이라고 봐야되나요)으로 주판알이 튕겨질지도 모른다라는 말'까지,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표현까지 듣게 되는 현실 말입니다.



한장의 낡은 사진입니다.  5-18 , 빛바랜 단어입니다. 6.25처럼  빛바랜 단어입니다. 우리 푸른 청춘들에겐 더욱 더.  한가지 고백을 해야겠습니다.  빛바랜 제 모습에 대해 말입니다.  제 주변을 살펴봅니다. 기초생활수급대상자가 아니라 현실의 어려움으로 차상위계층자들이 많죠. 신념과 삶을 이어가는 것이 버겁지요. 경제적-사회적 조건이 어쩌니 저쩌니 해도,  식사함께하는 정도로 나의 구멍난 마음을 팔고 있다는 것. 아이 과외비는 엄두에도 못내고 있는 친구들에게, 보험료 한푼 못내는 그들에게, 과외시키고 외식등등 사치를 생활화하고 있는 모습이 부담스럽고, 바닥에서 생각하고 느끼는 습관이 살아간다는 핑계로 남들이 한다는 처지에 무임승차하는 버릇이 내 것이 된 것이 아닌가하는 불안함같은  것 말입니다.





어쩌다 불문율이 되어버린 경제적-문화적 조건들. 하다보니 나누는 방법도 고민하는 방법도 몽땅 사라진 듯합니다. 속도에 취한 마음들을 교회 벽돌쌓아 높이는 것으로 면죄부를 발급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빛바랜 사진 속과 삶 속에는 잘되든 못되는 사회와 조건을 비교하는 것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는데도 말입니다.  소심해서 안해와 아직 이런 이야기는 나누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그 마음 속에 비집고 들어가 품게할 요량인데, 잘 되겠죠. 

 

   







3.

땀 한줌 - 목욕 한줄기- 나비잠 20분,  이것이 주말 나에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보약중에 하나였습니다. 그토록 평온한 휴식을 위해 잠깐의 고통을 준 처방이 양호했던 것 같습니다. 그 그림자에 취해 조각난 사진들을 좀더 모아보았습니다. 즐감하세요.

이젠 그림자 색깔을 찾으셨나요? 아직인가요? 일본작가 그림입니다.





4.

소금쟁이 그림자는 이렇군요. 즐거운 하루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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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와 시민사회, 그리고 마끼아벨리의 경고
조효제 | 성공회대 교수, NGO학


이 글이 독자들과 만날 싯점이면 5·31 지방선거의 투표가 한창일 것이다. 언론의 예측이 들어맞는다면, 그리고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집권여당이 승리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신문 헤드라인은 참패, 몰락, 완패, 궤멸, 와해라는 몇마디로 선거결과를 요약할지도 모른다. 열린우리당은 대통령 탄핵사태 이후 벌어졌던 4·13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바람으로 흥한 자는 바람으로 망하는 법인가? 먼젓번 바람은 수구보수세력의 거대한 착란에서 비롯되었다 치고, 이번에는 왜 이렇게까지 바람의 방향이 바뀐 것일까?

일부 언론의 악의적인 보도가 여론의 바람을 모으고 커터칼을 휘두른 괴한이 결과적으로 바람의 파이터가 되었지만, 그것들은 부차적인 요인에 불과했다. 더욱 근본적인 원인은 선의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국민으로부터 버림받은, 미숙하고 독단적인 '청교도'들의 자충수에서 찾아야 한다. 필자는 세계적으로도 지방선거에서 집권당이 승리하는 예를 잘 보지 못했지만 이번 경우는 패배의 양과 질이 충격적일 만큼 극심할 것 같다. 마끼아벨리는 무릇 군주라면 대중으로부터 사랑받는 게 제일 낫지만, 그게 안되면 차라리 외경의 대상이 되는 편이 낫고, 어떤 일이 있어도 증오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그런데 이 정부는 어떤가? 사랑받지 못한다는 건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으며, 원칙 없는 탈권위와 불필요한 요설(饒舌)로 외경은커녕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정당한 근거와 부당한 근거가 뒤섞인 엄청난 증오가 퍼부어지고 있다. 양극화 해소니 부동산 대책이니 하는 정책적 접근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한국적 대중 정치심리의 영역이 분명 존재한다. 이 때문에 장기적으로 진보정치의 가능성을 희구하면서도 중단기적으로 중도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하던 많은 이들이 현정부에 대해 안쓰러움과 포기감을 동시에 느끼는 것이다.

그렇다면 5·31의 '전후 처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벌써부터 여당 내의 권력투쟁, 정치권의 이합집산, 빅뱅론 등이 흘러나오고 있다. 여권의 수많은 전략가들이 기상천외한 정치공학적 발상을 내놓을 것이고 현실 정치인들이 그 유혹을 거부하기란 참으로 쉽지 않을 것이다. 최악의 씨나리오는 이번 선거를 기점으로 민주화의 '긴 혁명'(long revolution) 시대가 저물고 본격적인 '긴 반동'(long reaction)의 시대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 시대를 초래한 정치세력으로 역사에 남고 싶지 않다면 열린우리당이 살 길은 '처음처럼' 중도개혁 노선과 남북관계 발전에 매진하는 길밖에 없다. 여기서 다시 마끼아벨리. 그는 정치의 불운은 홍수와 같아서 완전히 막기는 어렵지만 둑과 제방으로 그 영향을 조절할 수는 있다고 했다. 어려울 때일수록 근본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필자의 진짜 관심은 지방선거 결과가 시민사회에 미칠 영향이다. 지난 십여년간 민주화 정치세력과 시민사회운동이 인적·물적으로, 노선적으로, 인식론적으로 어느정도 연계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두 집단 사이에 항상 우호적이지만은 않지만 어쨌든 상대적으로 말이 통하는 연결고리들이 형성되어온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한국 특유의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 시민사회적 가치가 많이 침윤된 정치세력과 정치화된 시민사회 사이의 상호의존형 모델이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다. 따라서 전자의 퇴조는 후자의 진로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요즘 부쩍 '일반대중'이 시민사회운동에 대해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향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느끼고 있다. 시민사회가 특별히 잘못해서라기보다 일반인들의 머릿속에 정치화된 시민사회와 노무현정권을 동일시하는 '중첩효과'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민사회는 그동안 넓은 뜻에서 누려온 정치적 영향력의 댓가를 치러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일지도 모른다. 시민사회가 원하든 원치 않든 정치권이 망쳐놓은 민주주의의 심화과제를 또다시 떠안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시민사회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왕도가 없다. 반짝거리는 일회성 아이디어로 현상을 타개하려는 발상을 제발 버려야 한다. 정부나 기업보조에 대한 논리개발의 유혹을 떨치고 시민사회의 독자적인 자원동원과 조직유지를 위한 힘든 장정에 나서야 한다. '신참은 전략을 논하고 노병은 병참을 걱정한다'는 나뽈레옹의 말을 새길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정치개혁을 견인해온 '긴 혁명'의 공과를 냉정히 성찰하고, 특히 이제부터는 방향성만큼이나 방법론에 관한 고민에도 몰두할 일이다.

풀뿌리 민주주의로 하방하고, '시민운동'이 없어도 활성화된 시민사회가 가능할지의 실험에도 착수해야 한다. 분권화하고 녹색화한 시민정치 모델, 즉 중앙정치 집중형 거버넌스에서 벗어나 세계주의적 다중적 거버넌스 모델을 한반도 차원에서 도입하여 남북한 통합의 진전에서 어느 정도나 응용할 수 있을지를 모색하는 과제도 시민사회의 몫이다. 5·31의 결과가 거친 홍수의 물귀신이 되어 시민사회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지금부터라도 단단히 대비해야 할 것이다.




필자 소개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겸 NGO대학원 교수. 저서로 《NGO의 시대》, 역서로 《세계인권사상사》《전지구적 변환》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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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6-06-01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설픔에 대한 자성이나, 자각 -- '일반대중'의 중첩효과에 대한 인식을 곰곰히 새겨야 될 것 같네요. 어떻든지 더불어 도매금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현실을 되돌아봐야 되나요? - 과도한 자신감은 별반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네요. 이야기하고 있는 <방향성, 방법론>에 대해 진지해질수록 좋을 것 같습니다.

조교수님의 우려만큼이나 개혁을 이야기하는 그룹은 진지함 그 이상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