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땀을 내주지 못해 몸상태가 말이 아니다.

잔치와 폭식을 가누지 못하는 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잔치를 미안한 마음에 끝내지 못하고 있다.

잔치에 마음은 포위되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주말, 역시 잔치였고, 일상은 주지육림이 따로 없는 듯하다.

몸도 마음도 채울 수록 더 허기가 지는 것은 아닐까?

  몸을 놓고 사는 듯,

서늘한 저녁 아침을 빌어 달려주었다.

 

담장의 장미꽃의 감촉을 느낀지 꽤나 지난 듯

촉감이 아련하다. 목련잎새의 감촉도 그리고 땀내음도...

불처럼 확 타버릴지 모를 장미송이들을

넋 놓고 바라본다.

 

그렇게 몸에 땀을 한웅큼 뱉어내어야 마음도 몸도 편하다.


070604 아침 10k, 저녁 13k(사진은 인터넷에서 빌어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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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04 18: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여울 2007-06-04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인님, km 달렸다는 뜻입니다. 아침에 10km/저녁에 13km ..ㅎㅎ
 


바비 할더 (Baby Halder) - 1972년 인도 하층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오랜 부재와 어머니의 가출로 인해 어렸을 때부터 살림을 꾸려 가야 했다. 열두 살의 나이에 결혼하여 세 아이의 어머니가 되지만, 계속되는 남편의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여성으로서 인간적인 삶을 누릴 수 없는 자신의 생활을 벗어나기로 결심한다. 델리에서 홀로 세 아이를 보살피며 가정부로 일하던 중 집주인인 인류학 교수 '프라보드 쿠마르'의 권유로 글쓰기를 시작하였고, 2006년 자전적 소설 <신데렐라가 된 하녀>를 완성했다

버릇 

 

 박성우


눈깔사탕 빨아먹다 흘릴 때면 주위부터 두리번거렸습니다 물론,지켜보는 사람 없으며 혀끝으로 대충 닦아 입속에 다시 넣었구요


그 촌뜨기인 제가 출세하여 호텔 커피숍에서 첨으로 선을 봤더랬습니다 제목도 야릇한 첼로 음악을 신청할 줄 아는 우아한 숙녀와 말이에요 그런데 제가 그만 손등에 커피를 흘리고 말았습니다 손이 무지하게 떨렸거든요


그녀가 얼른 내민 냅킨이 코앞까지 왔지만 그보다 빠른 것은 제 혓바닥이었습니다


왜 스피박인가?
스피박이 도전하는 것들
사회주의 이상과 식민 유산 사이에 갇힌 '포스트모던 지식인'
'탈정치적' 해체론이 정치적 무기가 되는 이유
"평이한 글에 속임수가 있다!"
서구 비평이론의 한계 드러내는 '서발턴' 연구
서발턴이란 무엇인가
서구 페미니즘의 대안, '차이'의 페미니즘
서구 지식의 특권적 체계를 무시하라!

03_ 서발턴_ 그들에게 배우라
"나는 서발턴이란 말을 좋아한다"
포스트식민 지식인의 정치적 책임
그람시의 서발턴 설명이 중요한 까닭
서발턴 연구집단, 무엇이 문제인가
마르크스주의적 접근법이 부여되는 '거짓된 일관성'
"자비롭고 급진적인 서구 지식인" 푸코와 들뢰즈
식민지 공문서에서 사라진 '영주의 아내'
'과부 희생'을 재현하는 두 가지 방식
서발턴은 말할 수 없다!
서발턴은 투표할 수 있는가?


<후기>

 

1. 원제 A Life Less Ordinary (2006)  , 탈-자본주의 읽기를 하는 가운데 소개된 소설이어서 접하게 된 책이다.  담담하지만, 찌르는 가시가 많다. 아무 것도 아닌 듯 삶을 뱉어놓고 익숙한 것들이지만 찔리는 셈이다.  분석하지 않는다. 맺음과 끊음. 삶 그 자체. 무수한 실선. 시선의 교차... ...힘들의 끝단. 겹침. 드러냄, 소멸하는 반작용. 힘(장) ------->모순의 결절점(그물같은 끝단-서로로 밀침과 소멸), 그물-아픔을 입체적으로 느끼게 하는 것. 필터를 들이대지 않는 것. 모순을 해석하지 않는 날 것으로 인식하는 것만큼.... <장석조네 사람들>...차이는 무엇일까...?

 

2. <버릇>

 

3. 입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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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가지를 꺾다


                               박성우


상처가 뿌리를 내린다


화단에 꺾꽂이를 한다

눈시울 적시는 아픔

이 악물고 견뎌내야

넉넉하게 세상 바라보는

수천개의 눈을 뜰 수 있다


봄이 나를 꺾꽂이한다

그런 이유로 올봄엔

꽃을 피울 수 없다 하여도 내가

햇살을 간지러워하는 건

상처가 아물어가기 때문일까


막무가내로 꺾이는 상처,

없는 사람은 꽃눈을 가질 수 없다


상처가 꽃을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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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06-01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시울 적시는 아픔, 이 악물고 견뎌내야 , 넉넉하게 세상 바라보는, 수천개의 눈을 뜰 수 있다 " 너무 가슴이 아프면서도 계속 여운이 남아요.



연두부 2007-06-01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술먹다 선배 줘 버리고 하나 다시 샀네...ㅎㅎ

여울 2007-06-01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수맘/연두부님. 상처가 꽃을 피운다. 연두 부님 술자리가 상처...두고두고 잊지 못할 시집이 되겠구만여. 홍수맘님, 그쵸, 시가 아픕니다. ..
 


축하드립니다.
먼저 노동조합 제11대 위원장 및 사무국장에 선출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귀 조합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

우선 감사드립니다.    부장님.

저희들의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신다면, 올바른 노사문화정착에 힘써주시기 바랍니다.
노동조합의 책임도 있겠지만, 5년전 제가  부원장님과 가조인했던 단체협약이 아직까지 체결되지 않았다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크게 어긋난 것이라고 개인적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우리 당선자는 노동운동의 원칙과 조합원 권익 우선이라는 철학으로 동반출마했습니다.
"반대를 위한 반대", "투쟁을 위한 투쟁"은 우리가 원하는 바가 아닙니다.
우리는 합리적대안을 가지고 노사관계에 임할 것이며, 건전한 비판세력으로 존재할 것입니다.
원측에서는 우리를 이른바 "강성"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 합니다.
앞으로는 잘못된 시각을 교정하시고, 노동관계법과 단체협약을 철저하게 준수해 주십시오.
노동조합은 원측의 일개 부서가 아닙니다.

앞으로의 노사관계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는 원측의 태도에 달렸습니다.
좋은 관계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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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7-05-31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당선된 위원장을 사실은 잘 모른다. 대면해서 생각을 섞은 것도 아니고, 여럿이 있을 때 취기오르도록 마신 일들, 이런 기억들, 좀 엽기?적인 사교스타일때문에 마음나누기란 어지간히 힘든 일이 될 것이기도 하고, 하지만 유난히 책을 좋아하고 관심사가 넓고 적확한 사실은 알고 있기때문이기도 하다. 덧붙여 가슴을 치는 아픔과 성찰이 배여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때문이다. 노동조합이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관심이 있기때문이다. 그 움직임의 여파에 주목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모임과 생각과 고민을 섞을 기회를 노리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 잘 살아온 삶-민주화와 노동운동
<경향신문> 2007년 05월 23일

 

<후기>어제, 일터동료와 저녁을 하고 돌아가는길, 전 지역민주노총사무처장에게 전화가 왔다. 1차을 하였지만, 동료를 바라다주고 약속장소로 나갔다. 겉으로는 알고있었지만, 속이야기나 관통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어제였던 셈이다.

 
 

 울화가 치밀고, 완장-자리만 대체한 위계에서 부터, 도대체 라는...자괴감을 되새김질하게 된다.

절망은 하루이틀 전의 일이 아니지만, 성찰이 아니라, 반성조차 되지 않는 퇴행을 늘 목격하는 심정이 전이된다.

예민해지지 않으면, 가는 길이 그럴 것이다 방관하게되면, 만들지 않으면, 더 심한 퇴행이 마음이 아니라 몸까지 파고들지도 모른다.
- 옆: 김진숙님 글은 몇번 본 적이 있다. 가슴이 미어지고,아픈 이야기들에 뭉클하였다.  하나도 다를 것이 없는 원점에서 다시 멀리 보아야한다는 사실. 아니 하나도 다른 현실에서 상흔을 똑똑히 보고 느끼면서 다시 갈 길들...나만있고, 나-너, 우리도 없는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서는 한발자욱의 의미는?

 

- 지난 20년을 상흔으로 느낄 줄 아는 읽기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위 광고는 꺼지지 않고, 왠 부르스냐~>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요즘은 마치 회고와 전망의 계절에 들어선 듯한 느낌이다. 대통령 임기가 끝나가니, 그간의 정부 업적에 대한 평가가 행해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얼마 전에 5·18 기념일이 있었고, 이제 얼마 안 있어 6월 혁명이 스무 돌을 기념하게 된다. 그 민주화의 열기로 움직였던 세월이 무엇을 이루었는가에 대하여 생각을 다듬어 볼 만하다.

최근의 남북 철도를 연결하여 시운전한 것도 과거와 미래를 새삼스럽게 생각해보게 하는 행사였다. 경향신문에 실린 경의선 철도 운행 동승기에서 고은 선생은 “통일은 당장 닥쳐오는 사건이 아니라 기나긴 과정을 의미한다”라고 썼다. 역사를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는 데에서 일어나는 결과 중 하나는 작은 것 같아도 중요한 많은 일에 소루(疏漏)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년, 또는 그 이전부터 진행되었던 민주화 과정이 커다란 역사적 의미를 가진 성취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큰 역사의 의미도 결국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차원에서의 인간의 삶을 튼튼하게 해주는 틀이 된다는 데에 있다. 최근 출간된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의 글 모음 ‘소금꽃 나무’는 지난 20여 년간 우리 사회의 변화와 상황을 공적인 큰 역사와는 다른 각도에서, 사람들의-특히 노동자들의 구체적인 삶에 끼친 효과 측면에서 회고하고 진단한다고 할 수 있다. 민주화는 그 소득이 보통사람들의 건실한 삶에서 거두어질 때에 비로소 내용 있는 역사가 된다는 것을, 이 책의 기록은 다시 생각하게 한다.

- 나아진 것이 없는 노동현실 -

김진숙 선생의 관점에서는 높았던 희망이 깨지는 것이 민주화 이후의 경험이다. 2006년 3월 부산 지하철 해고 노동자들의 상황을 그는 이렇게 요약한다. “저는 우리가 참 멀리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되돌아보니 우리가 떠나 온 자리에 이들이 서 있었습니다.” 즉 “우리가 벗어던졌다고 믿었던 사실이 이들에게 고스란히 대물림돼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이들”이란 비정규직 노동자를 말한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미래”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한 글에 제시된 2005년 통계로는 1300만 노동자 가운데 800만이 비정규직 노동자다. 그리고 비정규직은 구조조정의 이름 아래 불어나고 있다. 외주회사, 파견 근무, 용역 등이 모두 이러한 조정 과정의 여러 표현이다. 이 과정은 노조의 투쟁으로 얻어졌던 노동자의 권리를 축소하고 그 이전의 불합리한 노동조건을 다시 강요한다.

그런대로 안정성이 더 보장되어 있는 것이 정규 노동자라고 하겠지만, 그들에게도 적정한 삶의 조건이 확보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2003년의 글에 인용된 21년 근속 조선소 노동자의 월급은 105만원, 세금 후 80만원이다. 중요한 사실은 숫자보다도 가족을 부양하고 아이들을 양육하고 집 한 칸을 마련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적어도 이 저자의 생각으로는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것은 조직 투쟁뿐인데, 노동 운동의 조건은 민주화 후에 나아진 것이 없다. 당국의 탄압은 계속되고, 비정규직 확대가 노조의 협상력을 빼앗고 기업체들의 회유작전이 노동조합의 단결을 금가게 한다. 2000년대에 일어난 여러 건의 노동자들의 자살-가령 한진 중공업 노동조합 위원장의 투신자살, 화물운송 노동자의 자살-은 노동 운동의 어려움과 생활고를 증언한다.

저자가 그렇게 말하지는 않지만, 민주화 이후 향상이 전혀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소금꽃나무’에서 가장 비참한 부분은 저자의 젊은 시절 이야기들이다. 점심시간도 제대로 가질 수 없는, 그것도 감시와 모욕 속에서의 노동, 변소도 갖추지 못한 작업장, 팔다리 펴고 잘 수 없는 잠자리, 커튼 하나로 남녀를 갈라놓은 방에서의 성 폭력, 기름밥, 꽁보리밥 식사, 갈등, 도적질, 산재 사고, 그러한 환경 속에서 터져 나온 투쟁, 그리고 그에 이어지는 구속, 취조, 투옥-이러한 일로 점철된 저자의 젊은 시절은 가히 지옥의 삶으로 부를 만하다. 이러한 것들은 그래도 나아지지 않았을까?

노동자가 헤쳐 나가야 했던 지옥의 환경에서 두드러지는 것의 하나는 인간성이 파괴된 인간관계이다. 이것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가령 저자의 큰 언니는 재혼한 어머니의 남편, 즉 의붓아버지의 학대 속에서 자라나, 일곱 살에 식모살이를 나간다. 그리고 결혼 후 35년을 남편은 술 속에 살며, 그녀는 생활에 무책임한 남편을 뒷바라지하며 살아간다. 억압과 폭력은 도처에서 인간관계를 규정한다. 감방에서도 조폭들의 폭력이 난무한다. 또 이것은, 저자의 해석으로는, 한국의 정치 조직의 원형이다.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검사원, 반장, 조장이라든지 완장 찬 직책은 위압적 관계의 구실이 된다.

민주화 노동운동의 목표, 그리고 업적은 단순히 노동 조건의 향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이러한 사회 상황을 보다 인간적으로 바꾸어 놓는 일이다. 김진숙 선생이 그리는 이상적 노동자상은 이 새로운 인간성의 사회를 예시해준다. 전교조 운동의 이상적인 교사상은 온정의 인간이다. 이상적 교사는 “육성회비를 제 날짜에 못 내더라도,” 또는 “애국가를 4절까지 못 부르더라도, 송아지가 아파 학교를 못가더라도,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선생님”이다. ‘소금꽃 나무’에는 노동운동 속에서 스스로를 희생한 사람들에게 바치는 추모사들과 함께 노조 지도자들과의 회견기가 실려 있다. 그들은 이상적 교사와 같은 온정의 인간이기보다는 강인한 투쟁의 인간이다. 그러나 인간적 깊이의 생각과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 노조 지도자를 농성 투쟁으로 나아가게 한 것은 비폭력을 주장하던 노조원이 칼에 맞은 일이었다. 그는 투쟁의 화신이 되었지만, 여전히 적과 이탈자와의 대화와 설득을 생각한다. 아들을 대학에 보낼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아들에게 일기 쓰는 습관을 길러 주려 노력한다.

- 인간적 삶 실현위한 정치를 -

또 다른 노조 지도자는 노사 문제가 좋은 말로 해결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노조와 자신에 대해서도 엄격하다. 그는 노조의 관행이었던 돈 쓰고 술 먹는 선거를 혐오한다. 그는 아들이 목사가 될 것을 희망한다. 그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말한다. “사장들이 아무리 돈이 많다해도 내두룩 욕이나 먹고 사는 거 보면 내가 더 잘 살아 온 것 같기도 하다”고. 물질적 사회적 허영의 시대에 보기 어려운 자신의 삶에 대한 신념이다.

노동자를 위한 인간적인 삶의 실현은 오로지 노동자 자신에 의하여 쟁취된다. 여기에 정치는 별로 기여하는 것이 없다. 그의 비판은 특히 노무현 정부에 대하여 가혹하다. 노무현 정부는 노동 운동에 대한 탄압을 강화했고, 대통령이 “러시아로 행담도로 삽질하러 다니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김진숙 선생은 이렇게 생각한다. 역사를 더 포괄적으로 보는 사람은 아마 노동 운동의 성취도, 그 좌절과 함께, 보다 큰 역사와의 착잡한 관계에서 일어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관점에서도 정부가 추상적인 계획들보다 더 꼼꼼하게 국민의 삶에 관계되는 틀들을 만드는 데에 노력하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을 것이다. 역사의 큰 움직임이 반드시 들고남이 없는 조화로운 발전을 의미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안정된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비인간화된 사회 여러 부분을 인간화하는 것은 정치의 책임이다. 이것 없이는 큰 역사는 영웅들의 놀이터일 뿐 인간에의 길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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