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박정희의 심리기제 분석

전인권선생님의 타계가 아쉽지요. 저도 소식듣고 꽤나 우울했답니다. 학자적 접근 못지 않게 객관적으로 되돌아볼 수 있는 자료들이 너무 적은 것이 아쉬운 것 같습니다. 쏜살같이 지나온 우리 현대사 궤적은 이렇게 힘을 가진 사람들의 모습이나, 또 다른 수십가지의 시선으로 풍부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의 상흔과 식민지의 파고에 너무도 많은 상처와 아픔이 묻어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 아픔만큼의 시선이 필요할 듯 싶습니다. 너무 빠르고 가파른 상태여서 되돌아볼 틈도, 냉정할 틈도 없었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앞으로 태어날 우리를 위해서라도 풍요로와 졌으면 합니다. 덧붙여 질적으로도 떨어지지 않는 접근법도 동시에 중요하고, 학자적 양심도 중요하다고 여깁니다.

학자적 연구의 결과물이 그 인물에 대해 찬,반이냐 문제는 중요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인물을 일그러진 삶의 대위로 가슴에 가져가기도 하고, 향수로 전전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다른 측면을 내놓기도 합니다.  현대사를 보는 시각이 자신에 맞는 취향이나 미약한 감성을 채우기 위한 영양분으로 자리잡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한다고 봅니다. 역사 또한 관점의 산물이기에 객관적이라는 것이 대단히 정치적인 표현일 수도 있겠죠. 다양한 기술방법, 다양한 접근방식으로 우리 엄마,아빠,할머니,할아버지들이 어떻게 살고, 저력을 만들어왔는지 많이 아쉽습니다. 가슴에 다가오는 것들이 ... ...

코멘트 하나 해도 되겠죠. 학생운동이나 민주화운동세력 가운데 권력을 잡을 힘이 없으니 나름대로 대안으로 했던 것이 아니냐는 일정 부분 맞을 수도 있지만, 권력욕으로 설명되지 않는 많은 부분이 있습니다. 운동이라 말하는 것 자체가 든든한 저변이 있지 않고서야 쉽게 외화되는 것이 아니기에 더 더구나 그런 것 같습니다. 물론 학연-지연으로 얼룩져 동전의 이면처럼 반대급부로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으로 그렇게 설명은 할 수 있겠지만, 조심스럽습니다. 한때 운동하는 것이 아니기에, 한때 데모하는 것이 아니기에 그렇게 생각합니다. 물론 챙기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이것 역시 운동의 숙제이지, 운동의 잘못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아닌 듯 합니다.

이것, 떡본김에 제사지낸다고, 지나가는 길에 엉뚱한 부분만 집고 갑니다. 실례가 되면 어떡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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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7-07-10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빠가 학생운동을 오래 하셨고 감옥살이도 몇 번 했고 덕분에 청춘이 다 지나갔습니다 방송탈 만큼 큰 흔적을 남긴 사람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시대의 불운을 온몸으로 겪은 사람이었죠 아빠가 직접 그것을 겪은 사람이 아니었다면 (돌 몇 번 던진 정도로 끝난 게 아니었으니까) 이런 비판은 생각도 못 했을 것 같아요 뭐랄까, 전 그래요 아빠 같은 사람이라면 충분히 그것의 문제점도 비판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쨌든 위선자는 아니니까요 저 역시 우리 아빠가 아니라면 감히 남을 비판하고 말 생각도 못합니다 다만 아빠이기 때문에 자식의 입장에서 애정을 가지고 평가하는 거구요, 님의 말처럼 그것은 일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문체가 다소 격양되어 있는 건 감정이입 때문인 거고 전적으로 권력욕이나 어떤 이익을 위해 그 모진 세월을 그런 식으로 감내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전체 중에 일부분은 그렇기도 하다는 뜻으로만 이해해 주세요 어쨌든 제 개인적인 일기같은, 혹은 저희 집 가족사적인 부분이라 제가 다소 거칠은 표현을 썼다고 생각해 주세요 실례는 무슨... ^^

여울 2007-07-10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미안하네요. 섣부르게 마음을 건네 짚은 것은 아니지만, 외려 생각이 깊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네요. 멋진 아빠, 멋진 어머니. 멋진 딸. 아이들과 함께 크고 있지만, 맘 속, 글을 느끼면서 한편 이런 감정도 가진 것 이해해주세요. 정말 어울리는 식구라는 것을... ...
 

 

 0.  얕은 비, 바람이 제법이다. 모임인 줄 알았는데 아차 싶어 손전화를 하니, 없다. 내일은 건강검진. 짜투리 시간 - 자*대로 복장, 식수를 챙겨 나선다.

 1. 한바퀴, 윈드자켓을 입고 달리는데 안경이 거슬린다. 안경도 자켓도 벗고 달음질이다. 가뜩이나 침침한 눈 뵈는 것이 없다. 또 한바퀴를 돌아서야 익숙해진다. 목련은 새벽이나 밤처럼 어스름 윤곽만 보인다.

 2. 비는 얕아졌다, 조금 짙어진다. 눈도 익숙해지고, 몸도 한결 가벼워진다.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목련이 달려오게,   목련을 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먼저본다.

 3. 가끔 이런 것이 달리는 맛이라는 느낀다. 생각지도 않은 것이 불쑥 다가설 때, 생각지도 않는 생각줄기들이 추려질 때, 가쁜 호흡에 좀더 맛깔난 물맛~ 들.

 4. 오늘도 그런 날 가운데 하나였다. 3.1k *3회전+1k/ 20'/16'/15'..중간 몸풀기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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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07-10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젠 점점 마지막 숫자에 익숙해 가고 있어요.
전 무릎이 안 좋으니 "달리는 맛" 대신 "것는 맛"이라도 느껴봐야지 봐야지 하면서도 계속 미루고 있어요. 요즘은 "장마니까" 하면서 위안을 하고 있구요. 이놈의 게으름을 어찌해야 할지...

여울 2007-07-10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땀만 조금씩 비추면 괜찮을 겁니다. ㅎㅎ. 걷는 맛이 더 삼삼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ㅎㅎ
 

   
 

  등의 맞은편에 가슴이 있습니다. 손등의 맞은편은 손바닥이라고 하지만 손가슴이라 부르는게 맞습니다. 발등의 맞은편은 발바닥이라고 하지만 발가슴이라 부르는게 맞겠습니다.  그래서 귓등의 맞은편은 귀가슴, 눈등의 맞은편을 눈가슴, 콧등의 맞은편을 코가슴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본다는 것은 세상의 의미 있는 것을 눈가슴으로 끌어안는 것입니다. 듣는다는 것은 세상의 수많은 소리 중에 가치 있는 소리를 끌어안는 것입니다. 또한, 걷는다는 것은 대지를 끌어안는 것입니다.

  그 본질에 있어 낯선 것인 세계와 내가 소통하는 방법은 그처럼 ‘끌어안음’을 통해서만 실현됩니다.  그러나, 끌어안음은 한 사상가가 표현했듯이 ‘목숨을 건 비약’입니다.  내게 목숨같이 중요하던 관성을 성찰을 통해 뒤집을 수 있을 때 비로소 낯선 세계와 만날 수 있습니다.  낯선 세계에 대한 사람의 포옹속에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아름다움은 낯선 세계와의 포옹을 통해 만들어지는 ‘’입니다.  낯선 세계일뿐인 ‘물’은 나와의 포옹을 통해 ‘물결’이 됩니다.  ‘바람’은 ‘바람결’이 됩니다.  ‘숨’은 ‘숨결’이 됩니다.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존재로서의 예술가는 ‘결’을 만드는 존재입니다.  예술작품으로서의 ‘결’은 금강저의 투철함과 천의무봉한 선녀옷의 한없는 부드러움을 동시에 갖습니다.  ‘결’은 알을 깨고 나오려는 새끼새의 부리질과 밖에서 알을 깨주려는 어미새의 부리질이 정확하게 일치하여 새끼새가 세상에 태어나는 ‘즐탁동시’의 절묘함이기도 합니다. 

  ‘결’을 창조하는 예술가의 작업은 매체에 대한 숙련성만으로 달성되지 않습니다.  미야고프스키‘가 말하듯 ‘시어 하나가 창조되는 것은 수십톤의 흙을 걸러 1g의 라듐을 만드는’과정이며, ‘노신‘이 말하듯 ‘소가 취하는 것은 거친 풀이나 세상에 내 놓는 것은 젖’인 것처럼 감상자가 눈물을 흘리기 위해 창작자는 피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결’은 창조되지 않습니다.

  저의 창작관은 ‘90%의 학문과 9%의 실천과 1%의 영감’으로 사진은 창작 된다는 것입니다.

  사진가는 혹은 예술가는 시대의 본질을 관통하는 주제를 끌어안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당대에 이룩된 학문적 성취를 뛰어넘는 독자적인 학적세계와 시대의 본질에 대한 견해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학문일뿐 아직 예술일 수 없습니다.  자신의 견해가 실천을 통해 확인되고 검증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운동일 순 있어도 아직 예술일 순 없습니다.

  공자님은 논어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아는 것이 학문이라면 또 좋아하는 것이 가치를 실현하기위한 실천이라면 즐기는 것은 이론과 실천의 통일이며 체화입니다.  즐거움은 이론과 실천을 통해 이르고자하는 궁극이며 ‘결’의 속성이기도 합니다. 즐거움의 단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예술이 됩니다.  예술가가 학자의 모습으로, 운동가의 모습으로 비출 수 있는 것은 현실발전의 법칙과 예술발전의 법칙이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래줄임, 이시우 옥중편지 07.05.01 가운데)

 
   

 

후기

0. 해콩님 서재에서 옮겨오다.

1. '가슴, 결, 끌어안음, 아름다움', 우리말이 좋다. 복잡하게 개념어를 공부하지 않아도 '가슴'에 다가와서 더 좋다.  새로움을 낳는 방법도 그지없이 단순하고 편하다. 오감에 가슴을 덧붙이고,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맡고 느낄 것에 한걸음 나아가 편하게 '끌어안을' 것을 요구한다. 오감은 부지불식간에 세상을 끌어안게 되어버렸다.

2. '아름다움' 또한 타자를 끌어안을 때만 생긴다. 그 접점이 '결'이고 예술가의 존재이유라 한다. 타자를 끌어안기도 벅찬 데, '결'이라~ . '물결', '바람결', '숨결', '사람결'. '결'을 다시 가슴에 안게 만든다.  새로나온 말, 새로나올 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은어, 속어만이 아니라, 쿨하고 시크한 것만이 아니라, 우리 관계를 새롭게 느끼게 만드는 우리말들이 지금 호칭할 수 없는 풍부함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새롭게 관계짓고 만드는 사회적 삶을 충만하게 하는 새로운 말들이 말이다.

3. 자본의 끝자락의 욕망을 강화하는 신조어들이 아니라... ...

4. '학문'과 '예술'과 '운동'의 경계도 이렇게 '결'이란 한단어로 쉽게 설명해낸다. 그 차이는 '즐거움'밖에 없다. 정말 쉽지 않은가? 철학책, 사회과학, 인문과학 서적 수백권보다 더 쉽지 않은가?  혼자 생각은... ... 또  그 같음에 대해서도... ...

5.  사진때문에 옥고라. 늘 어이가 없어지는 세상이지만. 국가라는 틀로 힘의 행사가 볼수록 가관이다. 더욱 땅을 단단하게 다지는 일만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은 아닌가? (자본-네이션-국가)는?

6. 혼자 좋아하는 말들은, '몸', '마음', '꿈', '머리', (나-너), ... ..이다. 단음절의 말은 위험에서 보호하기 위해, 의사소통의 적확성으로 인해 생긴 말들이라 한다. 땀, 숨, 몸, ....밥... 어쩌면 이렇게 압박하는 삶, 사회적 삶이 불가능한 세상살이에 그것을 깨는 단음절의 무엇을 외쳐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욕이되든, 관계를 복원하는 단음절이 되든... ...

7. 이시우님을 검색해보았다. 사진 한 점,

   시린 하늘 저편으로 날아가는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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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inpix 2007-07-09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여울 2007-07-09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별 내용이 없는 곳이라.. 가끔 생각나면 들르세요. ㅎㅎ. 암튼 법같지 않는 법때문에 옥고를 치루느라, 맘이 아픕니다. 이 글은 정말 좋아 제 나름대로 취했습니다. 실례가 될 듯 하네요.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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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난초] 生 蘭
    from 木筆 2007-07-13 14:48 
    '아가 손'만한 일터 난초를 접사하여 옮겨 봅니다. 그림하곤 달리, 생동감에서 차이가 많이 나 보입니다.
 
 
hnine 2007-07-09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두 난이건만 다 다르군요. 일곱번째 그림의 난은, 꽃잎을 보통 담묵으로 그린다는 공식을 과감히 깨버렸네요!

여울 2007-07-09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 전 그림, 풍란에 마음이 빼앗겨버렸는데, 추사 모사인 듯 싶습니다. 그래도 너무 부러워요. 자유자재로 손끝아래 부드럽게 꿈틀거리니요. 멋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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