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말하고 싶지 않는..


언제나 연예시절이나
신혼때와 같은 달콤함만을 바라고 있는
남녀에게 우리 속담은 첫사랑 삼년은
개도 산다고 충고하고 있다.

사람의 사랑이 개의 사랑과 달라지는 것은
결국 삼년이 지나고 부터인데,
우리의 속담은 기나긴 자기 수행과 같은
그 과정을 절묘하게 표현한다.

열살줄은 멋 모르고 살고,
스무줄은 아기자기하게 살고,
서른줄은 눈 코뜰 새 없어 살고,
마흔줄은 서로 못 버려서 살고,

쉰줄은 서로가 가여워서 살고,
예순줄은 서로 고마워서 살고,
일흔줄은 등 긁어주는 맛에 산다.

 

이렇게 철 모르는 시절부터
남녀가 맺어져 살아가는 인생길을
이처럼 명확하고 실감나게 표현할 수가 있을까?
자식 기르느라 정신 없다가 사십에 들어서
지지고 볶으며 지내며 소 닭보듯이,

닭 소 보듯이 지나쳐 버리기 일쑤이고,
서로가 웬수 같은데 어느날
머리칼이 희끗해진 걸 보니 불현 듯 가여워진다.

그리고 서로 굽은 등을 내보일 때쯤이면
철없고 무심했던 지난날을 용케 견디어 준 서로가
눈물나게 고마워질 것이다. 



이젠 지상에 머물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쭈글쭈글해진 살을 서로 긁어주고 있노라니.
팽팽했던 피부로도 알수 없었던
남녀의 사랑이기보다 평화로운 슬픔이랄까,
자비심이랄까 그런것들에 가슴이
뭉클해지고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사십대는.....
어디를 향해서 붙잡는 이 하나도 없지만
무엇이 그리도 급해서 바람부는 날이면
가슴 시리게 달려가고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미친듯이
가슴이 먼저 빗속의 어딘가를 향해서 간다.

나이가 들면 마음도 함께 늙어 버리는 줄 알았는데
겨울의 스산한 바람에도 온몸엔 소름이 돋고

시간의 지배를 받는 육체는
그 시간을 이기지 못하고 늙어가지만
시간을 초월한 내면의 정신은
새로운 가지처럼 어디론가로 새로운
외면의 세계를 향해서
자꾸자꾸 뻗어 오르고 싶어한다.

 

나이를 말하고 싶지 않은 나이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확인하고 싶지 않은 나이
체념도 포기도 안되는 나이.

나라는 존재가 적당히
무시 되어버릴 수 밖에 없었던 시기에
나도 모르게 여기까지 와버린 나이.

피하에 축적되어 불룩 튀어나온 지방질과
머리 속에 정체되어 새로워지지 않는 낡은 지성은
나를 점점 더 무기력하게 하고
체념하자니 지나간 날이 너무 허망하고
포기하자니 내 남은 날이 싫다하네.

 

하던 일 접어두고
무작정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것을 ...
하루 하루 시간이 흐를수록
삶에 대한 느낌은 더욱 진하게 가슴에 와 머무른다.

그래서...
나이를 먹으면 꿈을 먹고 산다나
추억을 먹고 산다지만 난 싫다...
솔직하게 말 하자면
난 받아들이고 싶지가 않다.

 

사십을 불혹의 나이라고 하지.
그것은 자신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거라고
젊은 날 내안의 파도를...
그 출렁거림을 잠재우고 싶었기에....

사십만 넘으면 더 이상의 감정의 소모 따위에
휘청 거리며 살지 않아도 되리라 믿었기에.
이제 사십을 넘어
한살 한살 세월이 물들어가고 있다.

 

도무지 빛깔도 형체도
알 수 없는 색깔로 나를 물들이고,
갈수록 내 안의 숨겨진 욕망의 파도는
더욱 거센 물살을 일으키고

처참히 부서져 깨어질 줄 알면서도
여전히 바람의 유혹엔 더 없이 무력하기만 한데...

아마도 그건 잘 훈련 되어진 정숙함을 가장한
완전한 삶의 자세일 뿐일 것 같다.
마흔이 넘어서야 이제서야 어떤 유혹에든
가장 약한 나이가 사십대임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도...
더없이 푸른 하늘도....
회색 빛 높이 떠 흘러가는 쪽빛 구름도
창가에 투명하게 비치는 햇살도

바람을 타고 흘러 들어오는
코 끝의 라일락 향기도
그 모두가 다 내 품어야 할 유혹임을...

끝 없는 내 마음의 반란임을
창가에 서서 홀로 즐겨 마시던 커피도
이젠 누군가를 필요로 하면서
같이 마시고 싶고....

늘 즐겨 듣던 음악도
그 누군가와 함께 듣고 싶어진다.
사람이 그리워지고 사람이 만나고픈....
그런 나이임을 솔직히 인정하고 싶다.

사소한 것 까지도
그리움이 되어 버리고,
아쉬움이 되어 버리는 거..

결코 어떤 것에도 만족과 머무름으로
남을 수 없는 것이
슬픔으로 남는 나이가 아닌가 싶다.

 

진잎들.  언제부터인가 계절이 선명히 들어왔다. 눈길 한번 주지 않던 나무들이 들어오고, 급기야 나무가지의 곡선에도 어쩔 줄 몰라한다. 자연에 대한 눈길은 속도를 정지한 듯 싶다.  끊임없이 세밀화를 요구하는, 곧 이어 벌어질 자연의 변화를 미리 눈치채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청춘에 대한 갈망이야 시대를 넘어 여전하겠지만, 이토록 청춘에 집착하는 세상은 이상하다. 얼굴을 고쳐 미인이 복제되는 세상, 또 곧 그 복제에 물려 또 다른 자연미인을 갈구하는 유행을 만들 것이고... ...

정지한 듯 세밀한, 시간을 돌리는 어른이같은 세상의 퇴행은 가증스럽기도 하다. 이렇게 전향선언을 하는 나이. 똑 같이 청춘의 속도에 중독되어 있었다. 아직도 그 속도를 향유하고 싶어하는 또 다른 퇴행일까? 하지만 청춘은 철없이 어리고 마음도 여물지 않고, 눈앞에 보이는 것만 보이는 어리숙함이 많이 묻어 있다. 나이로 통해 좀더 넓고 깊게 즐길 수 있음은 또 다른 여유는 아닐까? 유혹을 즐기는 것도 나이드는 한가지 방법은 아닐런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두번의 세미나 주제테이블에 <지구>를 올려놓았다. 얇은 책-두꺼운 책, 읽기 쉬운 책-읽기 어려운 책. 논의를 하다보니 퍼온 아래글이 겹쳐진다. 유사한 결론과 인식에 이른다. 아는 것 나누는 것 만드는 것 쉽고도 어려운 일이다.

>> 접힌 부분 펼치기 >>

 

2050, 석유 공급이 한계를 넘어섰다. 중국-인도의 많은 기업들이 가동을 멈추게 된다. 일순간 통제되지 않는 현상이 일어난다. 2070년 유엔의 대안체제는 농산물 국가자급 조약을 채택했다. 2100  미국주도 시스템은 드디어 모라토리엄을 선언하였다.

 의심-의문

 - 한 관점으로 응시 입체적면이 부족한 것은 아닌가/곡물지정학?

 - 원자력에 대한 시각은 어떻게 보아야 할 지 - 공황체계 과거 정세분석의 맹점은?

돈을 모으는 방법이 사채업자를 닮았다. 달러라는 지뢰와 함께 - 프리메이슨,음모론, 다른 관점에서 보는 것은 필요하지 않는가? 곡물

사채깡패업자 - 변동금리로 돈을 빌려준다. 일정정도 부를 축적하게 한다. 통화와 공급원(석유)를 교란한다. 일정한 도산을 유도한다. 이자율을 높인다. 석유가격상승분, 헐값에 사들여 그동안 누적된 부가 고스란히 이전된다. (폭력적 전취방법) 돈놀이, 돈이 돈을 낳고, 생산활동의 대부분을 일거에 흔들어 제 몫으로 한다. 반복되는 국가도산시스템,

개발이 아니라 통제가 목적이었다. 대부분의 나라는 이런 시스템으로....기획된 것은 아닌가?

석유자본과 달러기축을 들어올리면 그 신경망이 아주 작은 지구 한귀퉁이의 나라에 까지 들려올려진다. 그 신경망의 맥박은 자본과 석유라는 심장으로  뛴다.  공급원인 석유도 바닥, 이제 다른 시스템이 필요할 때, 이런 전방위적 기획시스템은 그 자체가 혼란이다.  자본과 석유로 움직이지 않는 작은 시스템만이 살아남는다. 새로운 신경망이 필요하다. 중앙집중화가 가능했지만 전지구적인 기획이 가능했지만 더이상 도시는 전방위적 곡물과 분업의 메카니즘이 먹히지 않는다.

대안-지금

- 한미에프티에이/투기와 투자/현재 유가와 금융상태를 어떻게 볼 것인가

- 우리의 금융, 거품

- 미국의 민주-공화당의 작태와 일관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071124 봄볕같은 날, 참터다녀오는길 자전거가 부족하여, 간만에 땀호흡이 필요한 듯 싶다. 복장을 챙기고 앞산으로 향한다. 발제문의 생각길이 이리저리로 간다. 다시 돌려잡고 마음을 붙여본다. 또 다른 길로 가려한다. 급히 가기도, 주춤거리기도 하고, 잊어버리기도 한다. 그렇게 자전차와 달림길에서 생각을 섞어본다. 어느새 숲이 촘촘히 정리된 것도 알지 못했나 싶다. 바쁜 척 했던 모양이거나 자전차에 맘을 팔려서 인가.  대학교정도 트랙도 새롭다.

 

 071127 어제 일터회식, 일찍 잠을 청하고, 오늘 세미나 책 강독을 하지 않아, 새벽을 맘먹는다. 일어나니 세벽 네시. 커피한잔, 쌀쌀하여 두툼한 옷들을 챙기고,  목차를 앞에두고 효율적인 독서작전을 펼친다. 음 역사는 대충아는 것이고, 줄거리도 개요는 아니, 최신버전 위주로 읽거나 거꾸로 읽으면 손쉬울 듯하다. 서문을 챙겨읽고 마지막 장을 보고, 되돌아온다. 아~ 많이 놓치고 있던 것, 그물로 통채로 숭덩 빠져나갔던 것들이 조금씩 걸려든다. 내친 김에 밥하고, 찌게하고 아침거리를 준비하고, 녀석들 챙기고 일찍 출근하다. 점수딴 것 같다.

 불편한 진실,  석유와 달러를 기축으로 한 섬뜩한  미국과 세계를 거의 잠식한 석유-금융자본 20년사의 매커니즘을 볼 수 있다. 얼마나 잔인하게 현실,실리로 재편하는 제국의 토대구축 과정이 신랄하다.

 

 

071128 일터 임원이 내려와 점심, 발표가 이어진다. 어제 늦은 귀가, 오늘 후배 연락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섞는다.

 + 민주주의 소양 - 왜 반성해야되는지, 자신의 동선, 정치적 결과물에 대한 판단, 찻잔 속에 태풍일뿐 떨어져 보는 능력의 부족

 - 캠프라는 것이 순진한 사람들만 모여있을 뿐, 축에 대해 총선인지 대선인지 대응도 힘을 모으는 일도 부족하기만 할뿐, 예방하는 능력도 국면을 타개해나가는 역할도 하지 못한다.  민주인사라는 사람들이 합리화시키는 일만, 중심을 흔드는 역할도 하지 못하는 상태는 대선이후, 결집력보다는 분산, 원심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짙다는데 생각을 같이 하다.  움직이지 않는다. 한달에 문자 달랑 한두개. 정신이 있는 당인가? 자리잡고 있는 오피니언리더도 다른 파 욕하기에 바쁘고. 짜고 하기에도 이렇게까지 완벽하지 않다.

* 달라지는 것은 별반 없다. 늘 음인데, 왜 양지의 볕을 받고 자란 것처럼 생각하는 것일까? 대중은 굴곡이 없는 단선이다. 정치적 결과에 대해 투명한 선택이 일차적이다. 늘 초점을 응집하는 돋보기만 들이대며 활동하는 것일까? 꾸준함은 역동성을 포월하는 것은 아닐까? 과거를 향유하는 386의 꽃들은 이진경님 말처럼 원칙도, 국면타개능력도 없는 아마추어다. 그 점에 있어 디제이만한 인물이 없는 것도 사실인가? 어찌하여 운좋게 열린 영역에 대한 정치적 유효성으로 정당으로 꾸려갈 수 있을까? 어쩌면 아무 생각도 없는 것은 아닐까? 없음으로 치부해, 순진함의 결과를 맛보고 더 수그러드는 것은 아닐까?

* <반송사람들> 이야기를 꺼내본다. 동네에 대해 바쁨을 극복하여 만들 수 있을까? 여러직함이 걸쳐있는 분들을 이 틀로 응축시킬 수 있을까? 이상과 명예욕들이 많아 동네일을 하려고 할까? 보잘 것 없다라고, 그런면에서 어른이만 있는 것은 아닐까? 사고와 행동의 영역, 증식을 할 수 있는 씨앗에 대한 틀거리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확인된 분들, 마음을 어떻게 모을 것인가? 준비할 일들은 무엇일까?

대면하여 ㅈ와 여러생각을 나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장 - 071124-25 동네 이**집들이에 들러 황토벽돌에 나무 책장 구경하구. 책들 사이로 생각-마음길도 훔쳐본다.  소주 한잔 기울이며 이런 저런 수다공방. 처가 김장 사전준비로 바쁜지 호출, 처삼촌과 이어 몇잔을 더 기울인다. 담날 이런저런 일, 김장일까지 함께 한다. 막내녀석도 빠지지 않고 일을 돕는다. "제가 옛날에 해봤거든요!" "여섯살때 해봤는데요. 이렇게 하는 거예요"라고 시범까지 보인다. ㅎㅎ 온식구 합심해서 직접키운 배추로 따듯한 봄날씨같은 낮, 속닥이며 즐겁게 보낸다.

 

한 시민의 쓰레기 연구
유네스코한국위원회 / 따님 / 1996년 11월

이 책은 참* 자원활동 학생들과 만남 뒤 071124  보다.

 

 

071121 동네 전운영위멤버 번개, 일터동료들과 전작이 있었는데, 그리고 기회가 되면 미리 준비할 인터넷공간마련 운을 뗄려고 했다. 말미 취기가 앞서고 만 듯하다. 멍석부터 깔아야 될 것 같다. 그나마 탄탄한 ㄹ, 연결망들이 증발할까 두렵다. 사전 같이 고민을 나누어도 좋을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 년전, [지금의 우리]를 예상할 수 없었나?




둔산 도심의 구 육군통신학교 숲이 남아 있고, 오리농법으로 키우는 둔산 벌 논,밭에서 나는 쌀과 채소로 학교 급식을 하며, 변두리에 있는 폐교가 대안과 문화, 교육으로 스며들어 전국 각지에서 살고 싶어하는, 경전철과 자전거도로로 손쉽게 접근할 수 있어 늘 문화와 거리로 북적이는 마을로, 도심은 여름이면 아파트 단지 사이로 물길과 바람길이 통해 산바람, 강바람보다 시원한 거리를 만들 수는 없었을까?  산을 헤집고, 빌딩을 높이고 바람도 통하지 않는 공동주택을 만든 지금과 견주어보면 개발에 대한 자금을 쓴 것의 아주 조금만 쓰더라도 경제만 생각하는 관점에서 벗어났으면, 누구나 오고 싶고 살고 싶고, 다른 곳으로 가고싶지 않은 도심이 되지 않았을까? 오히려 대전시는 그렇게함으로써 경제유발 효과도 더 클 수는 없었던 것일까?

 

 가끔 인근 대학을 가보면 담장이 쳐진 것은 물론이고, 자동차 주차비 징수하는 것을 보면 변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것도 서울처럼.  대학의 녹지가 건축물에 자리를 내어주는 것만큼 비슷한 속력으로 도시가 변하는 것 같습니다. 작은동산과 숲,나무와 꽃 그리고 이야기가 있는 대학이 꽃도 나무도 옆의 친구도 느낄 수 없는 직업훈련소처럼 변해가는 것을 아닐까요? 지역 인근 대학이 이미 교직원과 학생들 물리적인 환경용량뿐만 아니라 감성적인 영역의 용량까지 침범한 것은 아닐까요? 대학의 변한 겉과 속의 변화물은 온전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난 20년동안 말입니다.

 도시가 숲과 산의 속살을 드러내어 콘크리트로 평준화하는 것 같습니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어떻게하면 없앨까 궁리를 해도 그 정도는 아닐텐데. 여지없이 보이지 않거나 인적이 드문 숲은 몇 년을 버티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숲의 산길의 오밀조밀한 곡선과 여유가 아니라 아무런 곡선도 없는 회색 건축물의 경쟁만 난무한 것이 지난 20년의 결과물은 아닐까요?


 사회적 약자와 인근 변두리는 지속가능성의 어떤 속성에서도 점점 멀어지는 것이 아닌가합니다. 버스는 점점 드문드문, 아이는 최소한 교육도 힘들고, 점점 젊은이는 사라지고, 살기 힘들어지는 것. 도시인들은 왜 편한 도시에 살지 않느냐고 항변하는 듯 합니다.  소외와 배제의 정책도 과연 이렇게 치밀하게 할 수 있을까요?


 한편, 도시에 사는 누구나 각박한 도시생활을 푸념하면서 전원생활을 꿈꿉니다. 경제적 효과와 편리성이란 이유로만 꿈도 잊어버리고 합리화와 최소한의 시혜에만 익숙했던 것이 지난 20년의 정책,행정 결과물은 아닐까요?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

 

발제자가 정리한 지속가능성 개념의 다섯가지 속성, 포괄성-연결성-형평성-신중성-안정성에 공감을 표합니다. 그리고 지속가능한 도시 환경의 개념적 구성체계로서 경제적-물리적-사회적 환경의 균형점과 공진화에 인식을 같이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같은 풍부한 설명으로 인해 ‘지속가능성’에 대해, 우리의 현실에 대해 다시 한번 돌이켜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또한 도시의 인구규모와 환경용량에 대한 비교데이터는 우리의 처지에 대해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어 무척 유용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무척이나 가치중립적인 ‘지속가능한’과 같이 붙어있는 ‘개발’이나 ‘발전’에 의심의 눈초리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 사회는 어디에 방점이 찍혀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지속가능한’이란 수식어가 발전을 합리화시켜준 것은 아닐까? 그럴듯한 화장을 하여 잘 보이게 하는 것을 아닐까?란 의구심이 생각의 꼬리를 물었습니다.


‘자본’이 환경이란 개념을 포획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더 목소리 높여, 환경을 부르짓습니다. 석유를 대체하고 환경을 생각하기 위해 장려한 바이오디젤은 이제 산업의 수준이 아니라  브라질의 한 지역을 황폐화하고 지구의 호흡을 가쁘게 하는 일로 번졌습니다. 대안이라는 것이 나라의 사정, 여건이라는 변수가 있을텐데 그것을 외면하는 발상은 아닐까요? ‘환경’과 ‘대안’을 생각한다는 이면에 ‘자본’의 사슬로 깊숙이 연결이 된 셈은 아닐까합니다. 오밀조밀한 굴곡을 생각하지 않고 천편일률로 친환경바이오디젤을 하여야 한다는 집중적 사고는 ‘자본’의 힘만큼 무서운 것은 아닐까요?


더구나 이러한 개념이 우리에게 오면 ‘지속가능한’ 수식어마저 사라지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요? 발전이란 덫에 걸리거나, 그것을 합리화시키는 알리바이용으로 쓰이거나, 그 이념을 순화하는 기능을 해왔던 것은 아닐까요? 모든 지속가능성이란 개념이 우리에게 들어오기만 하면 서열지어지거나 중앙집중의 이데올로기의 그물망에 걸려, 그 수준에서 사고하는 것은 아닐까요? 따로 여럿이 함께 꾸준히라는 분권이라는 마음이 들어가 있는 것일까요?


 또 다른 서울을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은 아닌가요?  넓어지기만 하는 도시, 높아지기만 하는 도시, 과연 그 좁은 도시에서 한번이라도 이런 정책의 마음을 제대로 유지 시행한 적이 있었나요. 그 결과를 올바르게 평가를 한 적은 있던가요? 정책의 일관성과 행정이 오밀조밀하게 연결된 적은 있나요? 정책입안자나 정책에, 시행하는 분들의 가슴에 시간이란 축이 들어간 적이 있었나요? 임기내에 선언의 의미이상을 가진 적이 있었나요? 아니면 문화나 사회적 약자의 마음이 가슴에 들어간 적이 있었나요. 그저 베끼고 색깔없는 실행력없는 기획만 난무하는 것은 아닐까요?

20 년뒤, 여전히 눈먼발전에 발목잡힌 현실만 아이들에게 물려줄 것인가?

- 적게, 쉽게, 빨리 할 수 있는 실험들

언급된 2020년 대전도시기본계획과 대전시와 구단위의 정책방향에 대해 시선을 옮겨봅니다. 꾸준히 늘러난 도시확장만큼이나 그 욕심이 대전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것은 아닌가합니다. 개발과 편입, 기껏해야 물리적 환경을 양념으로 생각해주는 계획은 아닐까하는 우려가 듭니다.  그동안의 개발 사업의 역사와 현황이 그동안의 잘못을 고스란히 일러주는 것은 아닐까요. 환경용량과 여유지를 두는 것은 이미 과잉이 된 도시의 기능을 최소한을 유지하자는 몸부림이 아닐까 합니다.


여유지를 남겨두고, 물리적환경이란 속성뿐만 아니라 사회적 환경, 정치-문화-사회적 차이와 차별의 공간을 줄여 다시 만들어가는 것이 더욱 소중한 것은 아닐까요? 이미 바람길이 없는 고층아파트 단지에 바람길을 다시 내겠다는 사후정책보다 미리미리 취약지구나 취약계층이 있는 지역을 문화적, 교육적 장점을 갖도록 만들고 배려하는 사전 정책이 예산도 정책효과도 더 큰 것은 아닐까요? 도심에 농사짓는 일도 서로간 대화의 빈도수를 많이 늘려 보안과 안전에도 굉장한 효과가 있다고 하더군요.


대전을 중심으로 기획하고 배치하려는 집중적인 발상에서 벗어나, 주변 군소도시가 나름 먹고 즐기고 멋진 교육과 삶이 있는 중심으로 만드는 것이 더 쉬운 일은 아닐까요? 구단위의 외딴 마을의 취약지역을 생태-문화적 장점-지역을 특색을 만드는 것이 이미 빌딩으로 들어차 바꿀려고 해도, 예산을 퍼부어도 바뀌기 어려운 곳보다 더 쉬운 일은 아닐까요?  굳이 옥천,금산,논산,공주에서 대전까지 유학올 일이 아니라, 정치 사회환경을 만들고, 또 다른 중심을 갖는 생태읍면도시가 되도록 배려하는 일이 돈도 적게 들고, 사람도 그곳에 남게 하는 일은 아닐까요?


20년의 정책과 행정의 결과는 누구보다 시민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몰라서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알아도 하지 않았던 것을 반성해야 합니다. 경제란 성장만 생각하고 환경이란 이름으로 생색내었던 것을 과감히 돌아보아야 합니다.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이율배반적인 관점은 우리의 이런 무의식 가운데 박힌 성장이념 때문에 가능하지 않습니다. ‘사회적’ 환경에 사회적 약자의 접근 성과 여기에 계속 살 사람, 사람관계나 경제를 제외한 다른 가치에 내어주지 않으면 논의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20년뒤의 아이에게 물려줄 이 자리는 또 다시 20년 전처럼 숲도, 나무도, 논도 밭도, 실개천도 사람도, 어떻게하면 구마다 다른 색깔의 정책과 정치와 문화에 취해볼까 부러워하는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구단위의 동단위 마을마다 색깔을 낼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우리 마을 옥상은 수선화꽃으로 만발하고, 이 마을에서 나온 학생들은 구청공무원으로 취직될 수 있어야 합니다. 노년을 자원활동하면서 멋지게 지역을 위해 일할 수 있게 만드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무늬만 환경, 자본에 조종되는 환경이 아니라 진정 살맛나는 환경을 바라는 것은 아닐까요. 그런 일이 정녕 뒷감당만 하는 예산쓰기와 달리 돈이 많이 드는 것일까요? 상상력과 하고싶어하는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닐까요? 환경영향평가가 아니라 정신적 측면, 문화적 측면을 고려하는 건강영향까지 평가를 할 수 있는 마인드는 어떤가요?


몇가지 키워드, 눈여겨보기

 - 균형만이 아니라, 사회적 환경 문화적 환경에 대한 실험 필요. 건강영향평가. 안전에 대한 왜곡 - 함께 사는 도시(도시에서 농사짓기). 기존의 발전개념이 요구한 것은 오로지 경제성장. 사회관계,사람, 함께는 생략되어 있어. 분권-유보지와 환경용량을 키우는 상상력.2020년 로드맵은 분업만 있는 경제복제도시. 직선만있고 곡선이나 순환구조는 없어. 인구는 줄어야 이미 과포화. 정치사회적 환경을 중심에 두면 적은 예산 많은 분산효과가 있어. 너무 똑똑하여, 아니면 행정-정책마인드 또한 너무 집중하여 연계성이나 함께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