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송년회, N =40-50, 식사를 하고 모임운영에 대해 몇분이 이야기를 꺼낸다. 이대로 아쉬움이 밀려와, 재차 다시 논의를 재촉하며 올려놓는다. 풍물모임이니 어떻게 하는 것까지는 좋겠지만, 정작 당사자인 아이들은 배제된 채로 결정되면 되지 않는다는 문제제기, 만약 한다면 과외나 지금하는 것 한가지씩 줄이고 한다는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말에 마음이 가버린다. 아이들을 너무 못살게 굴지 않나하는 야박한 심사와 반가족과 반주민인 남자어른들, 주부와 교감엔 이미 선과 정보에 차이가 있다.

섞고 흔들고, 생각과 행동이 섞이게 만들 수 있을까, 경계가 모호해질 수 있을까? 아이들은 덜 과로하고 덜 긴장하게 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이 마음에 자리잡으니 한편 측은하기도 하다. 막아서는 양반들에 끌려 들어온 것이 새벽 네시쯤이다. 무엇을 했으면 좋겠다. 함께 움직이는 합이 늘 제자리이거나 음의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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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눈이 구수하게 내린다. 주지육림에 건져올린 듯, 송년잔치는 어김없이 과잉이다. 가는 해를 이렇게 지나치게 잡아도 되는 것인지? 지가 싫으면 그만둘 일이지만, 습관처럼 굳은 굳은 살은 여전히 관행이다. 버티어준 몸이 고마울 지경이다. 아침에 가벼운 눈발을 맞으며 땀기운을 온몸에 나누어준다.  나간 정신과 신체가 제 집을 찾아오는 듯 싶다.

딱지처럼 단단히 붙어있는 습관에 딴지를 걸자. 관행처럼 가기만하는 모임습관에 말을 걸자. 충분히 힘든 일들을 연례행사처럼 치르기만 하는지 말이다. 버젓이 늘어나기만 하는 살림살이에도 생각을 걸자. 훨씬 가볍고 서로 기분좋은 만남,씀씀이,습관의 하루가 있지는 않을까 싶다. 만족도를 높이면서 일상을 다이어트해보는 것도 낫지 않을까 싶다.

모임에 의탁하는 정도가 과했던 것은 아닌가? 반중독 상태로 몸이 끌려갔던 것은 아닐까? 모임의 만족도나 일상에 대한 감별의 결과가 바닥에 기었던 지난 해는 아니었을까? 사분지 일 줄이기(반경)- 사분지 일 늘리기(깊이), 타협의 지점을 생각해본다. 일터도 먹고자고마시고하는일도 삶을 꾸려나가는 관계된 일들도 말이다. 삶은 아니더라도 행동의 선택지를 여럿으로 분기해서 앞에 표지판을 만드는 일도 몸의 학대를 줄이면서 해볼 일은 아닌가싶다.

년휴 몰아서 읽은 읽힌 책들이 보내는 신호들은 한결같다. 위기론과 음모같은 부류는 유난히 저어하지만, 이리저리 다른 각도에서 보아도 달라질 것이 별반없다는 사실에 우울하다. 인식과 앎에 이르는 길도 지나치게 사변과 어찌하면 모르게 할까나, 서로 관계없는 것으로 떼어놓기에만 열을 올린 것은 아닌가 싶다.

양지는 이미 녹아있고, 음지는 알맞게 눈들이 쌓인다. 얕게 내리는 눈발이 고마운데, 전라도는 이미 정도를 넘어선 것 같아 불안하다. 자연을 낭만의 시선으로 본다는 것 조차 어려워진 것 같다. 순식간에 선을 넘어서는 자연은 여백이 아니라 불안으로 들어선 것 같아 답답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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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행동주의
- 이런 추세가 얼마나 의미 있는 것일까? 공정 거래된 커피와 '아동 노동에 의해 생산되지 않은' 축구공 때문에 비싼 값을 기꺼이 치를 정치적으로 올바른 구매자들이 점점 더 늘어나게 될까? 아니면 우리가 거창한 대의명분 때문에 단순히 입에 발린 소리를 하는 것일까? 1960, 70년대나 80년대에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진지한 소비자 행동은 여전히 소수를 위한 대의명분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일요일 아침, 나는 런던 중심가에 있는 집에서 지난밤의 과음으로 인한 숙취를 느끼며 잠에서 깬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빨래를 하고, 에코버(세계 최초로 환경 보호 원칙에 입각해 생태학적 공장을 지은 벨기에 기업)에서 만든 음료수의 병마게를 딴 다음, 어젯밤에 먹은 유전자 조작 농산물이 아닌 유기농 농산물로 만든 피자 접시 위에 생물 분해 성분이 있는 세재를 뿌린다. 그리고 페어트레이드 (1989년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공정 무역 운동, 커피 값을 더 내는 대신 제3세계 농민들이 그들의 노동에 대한 합당한 수익을 보장받도록 해주자는 것이다) 인증 마크가 찍힌 커피를 붓고, 좁은 닭장에서 가둬놓고 기른 것이 아니라 놓아 기른 닭이 낳은 달걀을 삶는다. 그리고 러시(런던에 있는 무공해 비누가게)에서 산 '동물 테스트를 거치지 않은' 거품 비누로 샤워를 한 다음, '아동 노동을 착취하지 않는' 리복 운동화에 '노종자 전원이 노동조합원으로 가입한' 리바이스 청바지, '모피를 결코 사용하지 않는' 클로에 티셔츠를 입는다. 머리에는 오존 파괴 물질이 함유되어 있지 않은 웰라 스프레이를 뿌린다. 그리고 신문을 들고 최근 벌어진 맥도날드 불매운동에 관한 기사를 읽다가 재활용지 위에 메모를 하면서, 다음 번 시위 때는 시위 팸플릿을 한 장 집어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보디숍 매장에 들러서는 '공정 거래된' 모이스처라이저를 구입하고, '윤리적인 회사에만 투자하는' 코퍼레이티브 뱅크의 신용카드로 계산을 하는 동안 매장에 놓인 세계화를 다룬 홍보물을 읽는다. 집으로 가는 동안에는 차를 잠시 세워 무연 휘발유를 주유한다. 도로 양쪽에는 주유소가 두 곳 있다. 두집은 가격도 같고, 기름의 종류와 질도 같다. 하지만 왼쪽 주유소 회사는 나이지리아에서 기름 유출 사고를 낸 적이 있다.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차를 오른쪽으로 돌린다. 집에 가서는 컴퓨터를 켜고 AOL에서 보낸 '우리는 사회적인 이슈를 우선시합니다.'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체크한다. 그러고는 맥도날드가 아르헨티나에서 저지른 처사에 항의하는 이메일을 보낸다. 유엔의 기아 사이트에 들어가서는 마우스를 클릭하여 그날 쌀과 옥수수를 기부한 아메리칸익스프레스에 대한 고마움을 말없이 표한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아마존에서 나무를 베지 않는다'는 벤 & 제리의 아이스크림을 내내 핥아먹는다. 18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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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체와 정신의 구별은 공간이 아니라 시간에 의해 이루어진다. 기억은 미래를 위한 과거와 현재의 종합이다. 곧 과거의 즉자성과 현실의 대자성이 만난다.  물질은 사물과 표상의 사이에 있는 이미지들의 총체이다. 이 물질과 정신의 시간에 의한 교차점이 기억이다.  소화, 호흡, 순환의 몸기능은 감각-운동기능에 복무한다. 정념은 신체에 관련될 때 생기는 것이고, 지각은 신체 밖의 세계와 관계할 때 생기는 것이다.  순수지각은 굴절이 생기는 반사현상으로 볼 수 있으며 권리적으로 존재한다. 이는 응축된 기억의 역할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순수기억은 학습에 의해 형성되는 (습관-기억)과 시를 읽을 때 생기는 것 같은 (이미지-기억)으로 구분된다.  순수기억(잠재태) 무의식으로 지속에 뿌리를 둔다.

 - 지각-정념들 같은 신체 운동들은 특권적 이미지를 갖는데 세계 속의 한부분으로 신체를 신체 속의 한부분으로 정신을 뿌리내리고 있다. 꿈, 정신착란은 정신과 신체의 상호작용이 와해될 경우 생긴다.

 - 생성과 존재의 철학을 화해시킨다.

 뱀발. 프로이트처럼 혼란스럽지 않다. 스피노자,라이히처럼 감성,감정들의 공리가 명확하여 심리의 모호성이 없다. 생명과 비생명이 모두 연관되어 있다. 구별이 없이 이어진다.  사고를 확장하기 위해 개념어들에 대한 명증한 이해가 필요할 것 같다. <앎의 나무>의 그림에 도마뱀같은 양서류그림이 나온다. 장을 넘길 수록 그 모습이 확연이 드러나는데, 마지막장에 발은 나무가지와 한몸이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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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한해의 마무리는  <저 낮은 중국>으로 맺는다. 김우창님의 <지상의 척도> 가운데 산업화, 시와 관련된 몇편도 이어 읽힌다. <기후변동>도 깊이가 있고 궁금해하던 최근 흐름들이나 지난 기억들을 되돌릴 수 있어 의미있다. 그리고 <소리없는 정복>은 기업과 자본의 흐름에 대해 적어 놓아 지난 해와 올해를 잇는 흐름으로 잘 맞는다 싶다.

1. 산업화, 아니 표현을 달리해서 자본화라고 하자. 자본은 필연으로 소외를 동반하는데, 상품으로 인한 소외와 인간 소외이다.  물건은 물건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아우라)와 삶에 대한 삼투가 들어있기 마련이다. 이는 사진이 한 사건으로 기억되는 연유기도 하다. 이 시대는 사건이 없는 시대이고, 개인이건, 함께 공유하는 것이기도 하겠다. 그것이 오로지 분위기로 만들어진 욕망을 채우기 위한 구매만이 있기에 산 물건이, 상품이 제대로 자리매김하기 힘들다 한다. 복제의 시대엔 이렇게 충족될 수 없는 욕망과 외화된 상품만이 만연하기에 마음도 만족감도 없는 일상이 반복된다.

2. 동남아시아, 저 낮은 중국은 산업화의 물결을 고스란히 대물림하고 있다. 도시의 화려함과 미디어로 반복되는 메시지는 순박하기만 한 일상을 끊임없이 충동질한다. 무작정 상경이나 무작정 가출이나, 무작정 철거나 분위기를 가진 모든 것이 허망하게 마치 없는 것처럼 버려지고 만다. 소비해야되고 충족될 것으로, 그리고 나머지는 마치 보이지 않는 것으로 치부된다.

3. 인신매매, 마약, 다방. 인력거..어찌 그리도 한결같은지? 철거민은 마음 둘 곳이 없다. 겨우존재하는 열외자에겐 아무런 시선도 대책도 없다. 개똥철학으로 내면화된 머리는 여전히 꿈과 욕망을 쫓는다. 마약으로 하루를 연명하여도 세상을 합리화란 내면으로 다져져있다.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여 긴 그림자를 남기는 이런 것에 대해 대책도, 목소리도, 관심도 없다. 더 큰 그림자가 더 빠른 속도에 길게 드리워질 뿐이다. 구매와 거래, 단순한 물품교환의 관계는 여유가 생기고 나서야 아주 조금 그때를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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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8-01-02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복덩어리에서 복 사주세요 ㅎㅎ

여울 2008-01-03 0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 춥습니다. 찬이가 몹쓸개그라고 하더군요. 주의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