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115  흔적이 남아있어서 그대로 옮겨옵니다. 10. 11. 12번을 첨가 시켰습니다. 그러고보니 혼자 계획만 있는 것 같군요. 함께 세우는 계획은 더 재미있을텐데. 아직도 이기적이고 재미를 잘 모르는가보군요. ㅎㅎ.  여러분들도 좋은 계획-나눔-실천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080107년 다시.

1.

 최소한 시간표에 나를 끼워넣곤 살지 않기로 하다. (이런 훌륭한 생각도 했었구나. 쩌업~)

2.

 육식----------혼합식--------------채식의 사이 육신언저리에 찍혀있는 방점을 조금씩 움직이기로 하다.

3.

 기분(몸/마음)

 좋음------------------------나쁨, 가급적 나쁨언저리에서 좋음 편으로 하루의 시작 회수를 늘리기로 하다.

4.

독서취향

특정비소설-----------------------,소설, 제한된 독서에서 다변화 시도를 해본다.

5.

씀씀이

비기록 ------------------------기록, 흔적을 남겨 씀씀이 습관을 분류해본다.

6.

텔레비젼 함께

보지않는 날---------------- 없애는 날

시간까먹는날-------------- 즐기는 날로 조금이라도 움직여본다.

7.

표현

증오------------------------------애정섞인 설득,칭찬으로 기울도록 한다.

8.

몸에 땀내는 날,

혼자-----------------------------(아이들과) 함께로 나아지도록 노력한다.

9.

돈 쓰임새

무흔적----------------------------(함께) 흔적이 있도록 한다. 남을 위한 별도계정을 마련해본다.

10.

사 고

건성 (물렁물렁)------------------------------- 세밀(오밀조밀). 불편하진 않았지만, 제멋대로인 틀 좀 수선해볼까(아직도 개조대상이라니, 당신을 사랑하라~. 아직도 사랑하지 못하다니..)

11.

에너지

무개념 ------------------------------------------ 탄소가계부나 써볼까? ....

12.

1-2-3---11까지 아름답게 연결하고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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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을 팔기 위해, 2세대에는 출하량이 적거나 거의 없애는 유전자조작을 한다고 하는데, 아무 죄없는 씨앗을 2세대 거세를 시키며, 그 거세를 위해 연구력을 총동원하는 짓이 이 사회를 위해 바람직한 일인가?

먹는 것 가지고 장난 치는 놈들 아닌가?

사람을 위해 하는 일인가? 자본을 위해 하는 일인가? 자본을 위해 하는 행위가 사람에게 어떻게 민폐를 끼치는지? 결국 사람인 내 입 안으로 들어오는 일인데, 유령같은 자본을 키워준 일이 유해한 칼날을 품은 아이를 낳고 어이없게 내 심장을 겨누게 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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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봄날씨다. 어제 모임을 에둘러 잔차로 가다. 16k-50', 맥주한잔하고 잔차로 돌아오다 3.5k 오늘은 날씨도 좋아 땀을 내준다. 동네한바퀴*화폐박물관 한바퀴 10k-60'  여전히 목련의 황홀한 자태는 내내 눈길을 뺏는다. 꽃눈만 보아도 이렇게 설레이니 말이다.

1. 지난주 학교 동창회에서 주소록을 만들고 후원하라고 하여, 동창회지도 받아보고 싶지 않은 마음을 그 친구한테 퍼부었다. 그 많은 후원과 지지금을 도대체 어디에 쓰고, 이런 일까지 하느냐구 말이다. 그러니 욕을 먹지..생각같아서는 더 퍼붓고 싶었다. 그놈의 동창회 탈퇴할 수 없나?

2. 일터 인적드문 웹게시판에 한 꼭지 한 꼭지 올리고 있다. 평이 하지만, 논란이 될 꺼리로, 오늘이 일요일이라 잠시 들러, 착하게 일을 하고 왔다.

3. 저녁 안해와 [성형]과 [익숙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 논쟁을 했다. 아이들도 오랜만의 일이라 다소 의아하게 생각하는 듯 하다. 가끔 생각- 일상과 연결된 이것에 대한 의견을 나눈 것은 나에게도 드문일이다. 대부분 생각하는 것만 나누었을뿐. 서로 생각하는 것을 설득하고 의견의 차이는 인정하였다. 행동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논외의 일이므로... ...

4. 까칠한 것이 아니라 꺼칠해진 것일까?   참* 빌어온 책을 보고 있다.  운동에 근력를 덧붙였더니 조금 더 피곤한 듯, 조금 줄여야겠다.

 

 

 

 

 

 5. <도마위에 오른 밥상> 겉재미, 속재미


겉맛-속맛, 오감을 즐길 수 있을까?
조미료맛과 단맛에 길들여져 제맛을 모른다.

5.1 자본주의는 분위기(아우라)로 서있는 사물을 상품이란 컨베이어로 나른다. 반복되는 이미지들은 욕망이란 무의식으로 잠재된다. 그리고 만들어져 허기진 욕망은 끊임없이 빠르고 간편한 것을 소비한다. 그래서 자본주의사회는 별반 사물과 기억도 사건도 시작하지 않는다. 연애편지와 사진 한장에 그토록 애틋함이 묻어있는 사건들의 연속은  끊임없이 잊혀진다. 과정의 기억은 무용한 것으로 치부되고 끊임없는 겉재미에 농락당한다. 그 안을 맛볼 수 없다. 예술도, 기술도, 건축도 복제되어 떠돌아다닐 뿐이다. 영혼마저도 복제된다. 끊임없는 소외의 쳇바퀴를 돈다. 외롭다. 죽도록 외로울 수 밖에 없는 존재다. 가진놈은 가진대로, 없는놈은 없는대로, 무한생성되는 욕망에 포로가 되어, 그것을 채워놓을 길이 없다.

5.2 점과 점이 만나 사건으로 발화하지 않는다. 사물로 유통되어버릴 뿐이다. 생성된 욕망의 유효기간만큼. 앎의 기억이 사라지는 시간까지. 사람도 용도로 욕망의 포로로 소비된다. 그런면에서 자본주의는 더 이상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점과 점을 늘리거나, 선과 선을 찢어 벌리거나 면과 면을 늘리거나, 공간과 공간을 비집고 벌리는  짓은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 인간-인간이 사건으로 자리매김하는 일을 보이지 않는 것처럼 지나칠 것이다.

5.3 길들여진 맛에 반란하는 것이 가능할까? 길들여진 에너지에 반란하는 것이 가능할까? 길들여진 탐욕스런 욕망의 속도를 줄이는 것이 가능할까? 자본에 포섭되지 않은 시공간을 돌봄의 공간을 허락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외로움과 외로움의 기관차가 정면충돌하여 산산조각이 나지 않고서 외로움의 실체를 실감할 수 없다는 사실은 무섭다. 자본주의 기관차의 연료가 바닥이 나거나, 자본주의 기관차가 더 이상 돌아다닐 곳이 없거나, 인간이란 엔진으로 갈아끼워 조금 수명을 연장하거나 하지 않을까?

5.4 욕망과 소외란 두바퀴가 속도에 응축시키는 공간과 사물을 느리게 가게 할 수 없을까?

5.5 분위기를  사물에 붙여 끌고 갈 수는 없을까?  숨이 죽은 시-청각에서 촉각, 미각, 후각, 육감을 되살려낼 수는 없을까? 재미가 사람을 축으로 복원될 수 없을까? 미각, 촉각....익숙한 겉재미에서, 횡행하는 관계의 소원함에서 자신의 맛과 자본에 길들인 맛을 비교할 수는 없을까?

5.6 아름다움의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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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080105 아**미, 저녁함께 하다. 팔팔넷. 섞어마셔 취했다. 지난한해 고생들 정말 많았는데, 도움에 감사할 따름, 올해, 쌓은 것에 보태어 마음들을 조급하지 않게 모아서 올려놓았으면 좋겠다 싶다. 후유증으로 맘고생들 하는 듯...

 1. 080106 참*, 서울서 전 사무국장이 내려와, 여친을 소개시키러 왔다. 저녁 함께하고, 부인이 출산예정일인 현 사무국장과 몇분 맥주 한잔을 하다. 과*** 이야기, 민*당 내홍이야기, 공동모색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오늘 순산을 했다고 한다. 주변이 2세들 풍년이다. 일터는 작년이 셋, 곧 이어 둘... ... 아이들만 보면 기쁘다. 까르르 까르르

 2. 머리진보는 유행처럼 가져온 이론을 신주단지 모시듯 모시고, 추종하는 몸진보는 경직된 이론과 정세를 주입당해 몸은 움직이지 못하고, 반복된 퇴행을 거듭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머리도 몸도 열리고 움직이고 마음-가슴진보로 결실을 맺으면 좋으련만, 평론의 시대라 머리도 가슴도 마음도, 몸도 발은 움직이지 않는 것은 아닐까? 상상속의 진보, 무섭지 않은 진보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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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부제가 <기업사회로의 변환과 과제>이다.  작년 흔적을 보니 자유주의에 대한 관심으로 읽고 손이 가지 않은 책이다.  작은 제목에 이끌려 다시 보게 된다. 기업사회라는 표현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참여연대의 주주운동의 성격으로 예단을 해서 일까? 87년체제 이후의 관점을 철저히 자본이데올로기의 일상화와 점유로 다시 볼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고보니 87년체제 평가나 토론에서 김교수의 발언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것으로 대신해서 일까?

1. 총과 칼이 아니라 생산성, 효율성을 명분으로/구금,체포,고문,학살이 아니라 명퇴,분사,비정규직화,해고,비연고지근무를/반공포스터는 CEO라는 레토릭으로/천박한 자본의 무노조주의는 독재시절 무노조주의와 겹친다. 그런 당당함은 정부 공무원을 삼성인력개발원에서 재교육을 시키는 것 뿐만이 아니라, 114종의 경제교과서의 446곳의 수정을 요구하는 행위까지 버젓이 자행하고 있는 사실에 숨이 막힐 지경이지 않는가?

2. 지난 20년의 평가의 관점이 정치-대통령-국가에 치우쳐있어 정작 중요한 자본의 동선으로 본 것이 적었던 것은 아닐까? 엄한 곳에 표적을 두고 실현되지 않는 구호만 외쳤던 것은 아닐까? 그러는 사이, 대중은 자발적 동의와 헌신으로, 운동권들도 대거 깃발들고 투항하는 사이, 천박한, 아니 양아치같은 자본(기업사회)은 사회-정치영역을, 시장이 사회의 일부가 아니라 사회가 시장의 일부라고, 자본에 의한 사회의 식민화를 차곡차곡 했던 것은 아닐까?

3. 운동의 방향과 전략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고, 그럴 여력도 없는 노동운동은 정책과 운동방향이 전제된 노선투쟁이 아니라 노조 권력 장악을 위한 노선투쟁이 대신하였다고 한다.(117쪽, 21세기에 돌아보는 1980년대 한국사회성격논쟁), 글자그대로 요즘 유행하는 실용을 표방한 결과는 아니었을까? 자본은 1인 1표를 요구하지 않는다. 소유한 자본만큼 권리를 행사하려한다. 더 악랄하고 무서운 파쇼다. 미국보다 더한 기세로 완장을 찬 듯, 사회를 시장의 식민상태로 도탄에 빠지게 하는 행태는 어이할 것인가?

4. 대기업 정규직의 노조는 자본의 구심력으로 변방으로 떨어져나가는 비정규직의 소리없는 주검과 더 많은 구속자와, 해고에 일관되게 행한 것은 무엇일까? 방향과 전략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노동운동은 관료화에 익숙해져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한번, 지금에서 보이지 않는 것, 일회적인 것으로 치부했을지 모르는 이것에 대해 객토하는 심정으로 물밀듯이 내려온 사회를 재해석해내고, 다시 출발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오늘날 우리 모두는 정치경제 현장에서도 종업원 혹은 소비자로 호명되고 있지만, 소비자는 결코 시민이 아니며 주체가 아니다. 우리는 유권자이며, 노동자이며, 주민이며, 학부모이며, 자신의 귀중한 삶의 방향을 선택해야 할 존엄한 인간이다. 그리고 우리는 타인의 고통과 억울한 죽음에 공감해야 할 신성한 의무가 있는 공동체의 구성원이다. 모든 이가 피해자인 동시에 어떤 점에서는 가해자이기도 한 이 기업사회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 자신의 존재와 처지에 대한 자각을 일깨우는 새로운 페다고지(pedagogy)가 요청된다. 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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