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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평균적인 식사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면 지난 한해 동안 83.2kg의 쌀을 먹었을 것이다. 쌀 한 가마니가 80kg이니까 1년에 한 가마니 조금 넘게 먹는 셈이다. 밥 한공기를 125g으로 잡으면 모두 665.6공기, 하루 평균 1.8공기 정도다. 하루에 두 공기를 채 못먹는다는 이야기다. 이 통계는 밥으로 먹는 쌀 뿐만 아니라 쌀 가공식품 등 전체 쌀 소비를 모두 포함한 것으로 당신이 실제로 먹는 밥의 양은 좀 더 줄어들 수 있다. 1인당 쌀 소비량은 1990년 120kg에서 2003년 83.2kg으로 해마다 급감하는 추세다.

당신은 또 지난 한해 동안 8.1kg의 소고기와 17.3kg의 돼지고기, 7.9kg의 닭고기를 먹었을 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육류 소비량은 159만5천톤에 이른다. 1인당 33.3kg이다. 흔히 식당에서 먹는 삼겹살 1인분 200g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한 사람이 1년에 평균 166인분 정도 육류를 먹는다는 이야기다. 1인당 육류 소비량은 쌀 소비량과 반대로 1990년 24.7kg에서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 6월 말 기준 우리나라에서 사육되고 있는 소는 모두 214만마리, 돼지는 902만마리, 닭은 1억2274만마리에 이른다.


문제는 이 소와 돼지와 닭들이 먹는 사료다. 2002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사료 소비량은 2003만톤. 배합사료가 1580만톤을 차지하는데 이 가운데 1175만톤이 수입 배합사료다. 우리나라 배합사료의 자급 비율은 24.7%에 지나지 않는다. 사료로 쓰이는 곡물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상황이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료 곡물은 878만톤으로 우리나라 전체 곡물 소비량의 41%를 차지한다. 이 가운데 국산은 19만톤 밖에 안된다.

특히 665만톤에 이르는 옥수수의 경우는 99.9%가 수입 옥수수다. 우리가 먹는 소와 돼지와 닭, 대부분이 수입 옥수수를 먹고 자란다는 이야기다. 이밖에 기타 사료 곡물의 자급 비율도 15.7%에 지나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우리나라의 사료 곡물 수입은 1980년 201만톤에서 2002년 860만톤으로 네배 이상 늘어났다.

사료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곡물 자급 비율은 심각할 정도로 낮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곡물 소비량은 2098만톤. 이 가운데 우리는 1544만톤을 수입했다. 자급 비율은 26.9%로 2002년 30.4%에서 크게 줄어들었다. 30개 OECD 국가 가운데 최저 수준이다. 특히 511만톤에 이르는 쌀을 빼면 자급 비율은 2.7%로 줄어든다. 참담한 상황이다. 품목별로 보면 옥수수가 855만톤, 콩이 145만톤, 밀이 38만톤에 이른다. 금액으로는 각각 10억달러, 4억달러, 6억달러 규모다.

이처럼 폭증하는 수입 물량 덕분에 인천항은 이미 세계 최대의 곡물 수입 항구가 됐다. 2001년 기준으로 인천항의 곡물 수입 물량은 978만톤. 유럽 곡물 수입의 관문인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959만톤)이나 로테르담(849만톤) 보다 큰 규모다. 우리나라 곡물 수입은 세계 곡물 무역량의 몇 4.8% 규모에 이른다. 일본(10.1%)에 이어 세계 2위 규모다.

물론 일본과 우리나라는 상황이 또 다르다. 일본은 일찌감치 식량 주권 개념을 앞세워 해외 생산 기지 건설에 주력해 왔다. 일본의 곡물 수입은 2002년 기준 2624만톤에 이르지만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은 일본 기업들이 해외 농장에서 직접 재배한 물량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전적으로 다국적 곡물 자본에 수입의 대부분을 의존하고 있고 해마다 곡물 가격이 급등락을 거듭할 때마다 골머리를 앓는다.

2001년 기준 세계 인구는 61억3414만명. 곡물 생산량은 세계적으로 20억1876만톤으로 1인당 329kg 수준이다. 특히 선진국의 곡물 생산량이 돋보인다. 미국과 캐나다, 프랑스의 경우 1인당 곡물 생산량이 각각 1291kg과 1197kg, 1166kg에 이른다. G7 국가로 넓혀보면 1인당 생산량은 816킬로그램으로 세계 평균의 2.5배에 이른다. 11.5%의 인구가 전체 곡물의 28.4%를 생산해 세계적으로 잉여 곡물을 공급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1인당 곡물 생산량은 117kg에 지나지 않는다. 자급 비율은 오히려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한 사람이 한해 소비하는 곡물을 350kg 정도로 잡는다면 우리나라는 전적으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다국적 곡물 자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세계적으로 1인당 곡물 생산량은 329kg, 우리나라는 여기에도 한참 못미친다.

7월 1일 미국 농업부가 발표한 세계 곡물 수급 동향에 따르면 올해 곡물 생산량은 지난해보다 5.7% 늘어난 19억4198만톤이 될 전망이다. 생산이 크게 늘어나기는 했지만 문제는 소비량이다. 소비량은 지난해보다 1.4% 늘어난 19억6403만톤으로 여전히 공급이 소비를 못따라가는 상황이다. 곡물 재고는 3억1838만톤으로 재고 비율은 16.2%까지 떨어졌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권고한 식량위기 방지를 위한 권고 수준 16%가 위협 받는 수준이다. 이같은 위기는 1984년 이래 처음이다.

세계적으로 곡물 시장은 미국의 카길과 ADM(아처 다니엘스 미들랜드), 두 회사가 장악하고 있다. 이들의 시장 점유율은 75%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밖에 역시 미국의 콘 아그라와 프랑스의 루이 드레퓌스와 아르헨티나의 분게 등 이른바 5대 곡물 메이저의 시장 점유율은 90%에 육박한다. 옥수수의 경우 상위 3개 회사의 시장 점유율이 81%가 넘고 콩도 역시 상위 3개 회사의 점유율이 65%에 이른다. 밀은 상위 4개 회사의 점유율이 61% 수준이다.

특히 세계 최대의 곡물 자본인 카길은 우리나라 곡물 시장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문제는 이 회사는 비공개 개인 기업이라 구체적인 실상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지난해 11월 미국의 경제주간지 『포브스』가 조사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카길의 지난해 매출액은 599억달러, 세계를 통털어 비공개 기업 가운데 최대 규모다. 우리 돈으로 치면 72조원,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43조원) 보다 훨씬 큰 규모다.

1865년 윌리엄과 새뮤얼 카길 형제가 설립한 이 회사의 경영권은 150여년 동안 혼인으로 엮인 카길과 맥밀란 두 가문에 상속돼 왔다. 이 두 가문의 지분 비율은 아직도 55%를 넘어선다. 『포브스』가 발표한 '세계 500대 부호' 순위에서 이 회사의 최대 주주, 제임스 카길과 마가렛 카길의 재산은 각각 15억달러로 공동 140위를 기록했다.

주목할 부분은 이 회사의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이다. 대니얼 암스터츠 전 부회장은 1987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농업협상에 제출됐던 미국의 '예외 없는 관세화' 방안의 초안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당시 미국 협상팀의 농업 대표를 맡았다. 지난해부터 이라크 재건사업 농업부문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휘트니 맥밀런 전 사장은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의 심사단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어네스트 마이섹 전 사장은 빌 클린턴 정부 시절 대통령 수출 자문단으로 활동했다. 그는 지난해 멕시코 칸쿤에서 열렸던 세계무역기구(WTO) 농업협상에도 깊숙히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를 두고 인도의 환경 운동가 반디나 시바는 "WTO 협상은 카길 협상이라고 불려야 한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프랭크 심즈 사장은 2001년 미국 농부부 생명과학기술 위원회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유전자 조작 식품 재배를 확대 허용하는 법안을 추진했다.

거침없는 인수합병 전략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카길은 1999년 콘티넨털 그레인을 인수합병하면서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확보한다. 당시 카길의 곡물 저장 능력은 4억부셀(1부셀은 약 35.24ℓ)에서 5억5천만부셀로 늘어나 2위인 ADM을 크게 앞질렀다. 2003년 기준, 카길의 세계 곡물 시장 점유율은 50%를 웃도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밖에도 카길은 2000년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사료 회사, 애그리브랜드 인터내셔널를 인수하기도 했다. 이어 2001년에는 칠면조 가공회사 로코 엔터프라이즈를 인수했고 2002년에는 녹말과 감미료를 만드는 체레스타를 인수했다. 카길은 곡물 교역 뿐만 아니라 옥수수와 밀 제분업을 비롯해 설탕과 면화, 석유의 무역과 운송, 식품 가공, 금융 거래, 철강과 카지노 등 광범위한 사업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 미국 미네소타주에 본사를 두고 세계 61개국에 걸쳐 800개의 공장과 10만여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이 회사는 제 3세계 국가에 진출해 협동조합과 계약을 맺고 시장을 장악, 농민들을 저임금 계약 노동자로 전락시키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카길이 터무니 없이 낮은 가격을 제시해도 카길 아니면 작물을 팔 데가 없는 농민들은 울며겨자먹기로 이 회사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카길은 인공위성을 통해 세계 여러 나라의 곡물 경작 상황을 점검하고 흉작이라고 판단되면 곧바로 매점매석에 들어간 다음 가격을 끌어올리고 이익을 챙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과정에 미국 CIA까지 개입하고 있다는 의혹도 있다.

한편 카길과 합작 관계를 맺고 있는 세계 최대의 농업생명공학기업 몬산토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90%에 육박한다. 몬산토는 콩과 면화 종자 판매에서 미국 1위 기업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전세계에서 생산되는 콩의 53% 가량이 유전자 조작 과정을 거친 것으로 추정된다. 옥수수나 면화의 경우도 이 비율이 각각 21%와 11%에 이른다.

카길은 지난해 식품 소매업체 크로거와 소고기 납품 계약을 맺고 소매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이른바 "종자에서 슈퍼마켓까지"라는 농식품 체제 지배 전략이 현실화하고 있는 분위기다. 카길은 이제 유전자에서 시작해 곡물의 생산, 가공, 사료 생산은 물론이고 육류의 생산과 가공과 유통까지 개입하고 있다. 그 영향력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카길 뿐만 아니라 ADM이나 다른 주요 곡물 자본의 시장 지배 전략도 비슷하다. ADM도 역시 농업생명공학기업 신젠타와 제휴관계를 맺고 있다. 신젠타는 해충에 내성을 갖춘 유전자 조작 옥수수 종자를 생산하고 ADM은 이 종자를 농민들에게 보급한다. ADM은 특히 농민협동조합인 컨트리마크 등을 인수, 미국 동부지역의 옥수수를 싹쓸이하고 있다. 신젠타는 1997년 서울종묘와 농진종묘 등 국내 종자회사들을 잇따라 인수하기도 했다.

콘 아그라도 역시 세계 최대의 종자 기업 듀폰과 제휴관계를 맺고 있다. 콘 아그라가 계약생산 농장에서 사들인 옥수수는 콘 아그라의 대규모 사육농장에 공급되고 여기서 나온 육류는 다시 콘 아그라의 상표를 달고 세계의 슈퍼마켓으로 팔려 나간다.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수입 육류의 상당 물량도 이런 방식으로 생산된다.

이들은 세계대전 이후 우리나라를 비롯한 후진국 식량 원조를 통해 성장했다. 미국은 이 과정에서 수출 개방을 강요하고 곡물 의존도를 심화시키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었다. 동시에 미국의 곡물 자본은 정부의 재정 지원과 융자 등의 혜택에 힘입어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특히 1972년의 세계적 식량 위기는 이들이 세계 시장을 장악하는데 절호의 기회였다. 소련에 대대적인 흉작이 들면서 국제 곡물 가격이 폭등했고 이 기회를 노려 미국의 곡물 자본은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자연스럽게 세계적인 구조조정과 함께 막강한 과점 체제를 구축했다.

문제는 이처럼 세계 곡물 시장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일부 다국적 곡물 자본에 장악되면서 세계의 식량 위기가 더욱 가중되고 있다는데 있다. 이들의 관심은 철저하게 기업의 이익에 집중돼 있을뿐 곡물의 안정적인 공급이나 제 3세계의 기아와 빈곤 문제 해결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세계 곡물 시장을 송두리째 집어삼키면서도 이들에게 그에 걸맞는 책임 의식을 기대하기 어렵다.

위기의 징후는 수두룩하다. 다만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대응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돈만 주면 얼마든지 살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과점 시장인데다 마땅한 대체제도 없는 상황이라 공급이 조금만 달려도 가격은 폭등하기 마련이다. 그게 바로 일본이나 스위스, 이스라엘, 네덜란드 등이 곡물 자급 비율 회복을 위해 막대한 비용을 쏟아붓고 있는 이유다.

우리나라는 1980년 흉작이 들었을 때 국제 가격으로 1톤에 200달러하던 쌀을 550달러씩 주고 미국에서 사들여 왔다. 이에 앞서 1972년에는 661달러씩 주고 쌀을 수입하기도 했다. 일본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일본이 1993년 쌀을 수입했을 때 국제 쌀 가격의 70% 이상 급등했다. 미국 쌀 경작자 협회는 우리나라가 일본에 쌀을 수출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넣기도 했다. 결국 일본은 터무니 없이 비싼 가격에 쌀을 수입해야 했다.

북한도 피해자다. 1998년 북한은 카길에게 밀 2천톤을 사들이고 그 대가로 아연을 지급하기로 했는데 아연지급이 늦어지자 카길은 화물선을 그대로 돌려서 가버렸다. 1976년 콩고의 기아 사태도 비슷한 경우다. 곡물 대금 결제가 늦어진다는 이유로 콘티넨털은 밀 공급을 즉각 중단했고 이 나라는 곧 심각한 식량 위기에 부딪혔다. 시장 확장을 가로막으면 경제 보복도 서슴지 않는다. 1988년 나이지리아가 밀 수입을 거부하자 카길은 미국 정부에 압력을 행사해 나이지리아의 섬유 수출을 금지시키기도 했다.

곡물의 독점은 그 어떤 전쟁 무기보다도 강력한 영향력을 갖는다.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은 미국의 곡물 회사들에게 소련에 밀과 옥수수, 콩 등을 수출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1979년 30억달러 규모였던 수출 규모는 1980년 13억달러로 줄어들었다. 소련은 사료 곡물 부족으로 큰 어려움을 겼었다. 미국은 1985년 사회주의 개혁을 막는다는 이유로 니카라과에도 곡물 수출을 금지시킨 바 있다. 미국의 곡물 수출 제재는 친미 정권이 들어서기까지 5년 넘게 이어졌다.

담합에 의한 시세 조종도 빈번하다. 1972년 세계 밀 생산량이 2.4% 줄어들자 국제 시세가 3배나 뛰어올랐다. 창고에는 재고가 쌓여있었지만 이들은 재고를 풀지 않았다. 국제가격이 4.6배나 뛰어올랐던 1973년의 콩 파동도 비슷한 경우다.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이렇게 곡물 가격이 뛰어오를 때 그 피해를 고스란히 축산 농가들이 떠안게 된다는 사실이다. 국제 옥수수 가격이 오르면 수입 업체는 당연히 수입 옥수수의 가격을 올리고 뒤어어 사료 가격도 가파르게 뛰어오르게 된다. 그러나 축산 농가는 이렇게 비싼 사료를 울며겨자먹기로 사다 먹이면서도 가축 가격을 제대로 올려받지 못한다.

양돈용 배합사료의 가격은 25kg 기준으로 1994년 4747원에서 2002년 7036원으로 무려 48.2%나 뛰어올랐다. 그러나 비육 돼지의 산지 가격은 90kg 기준으로 같은 기간 15만9천원에서 17만8천원으로 11.9% 오르는데 그쳤다. 곡물 가격이 급등락을 거듭할 때마다 그 부담은 모두 축산 농가의 몫으로 돌아갔다.

더 큰 문제는 중국의 곡물 소비량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데서 비롯한다. 2001년 통계를 기준으로 중국은 세계 7위의 곡물 수출국(899만톤)이면서 우리나라에 이어 세계 3위의 수입국(993만톤)이다. 소득 향상과 수요 증가에 힘입어 중국의 곡물 수입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중국의 곡물 생산은 4억3천만톤으로 소비량 4억8500만톤에 크게 못미쳤다. 중국은 앞으로 곡물 수출국에서 곡물 수입국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

중국의 곡물 재고는 2000년 이래 꾸준히 줄어들어 2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12월 기준 중국의 1인당 곡물 재고는 350kg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 국가곡물원유정보센터는 콩 수입이 내년 한해동안 17% 이상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자칫 세계적인 곡물 파동이 일어날 조짐도 있다.

30년 가까이 곡물 수입 문제를 연구해 온 유상철 대한벌크터미널 사장은 우리나라의 곡물 자급 비율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옥수수 가격은 이미 국내 옥수수가 수입 옥수수의 5배에 이른다. 품질을 감안하더라도 도무지 가격 경쟁이 안되는 상황이다. 유 사장은 "정부가 아예 식량 주권을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 사장은 "이제와서 곡물을 자급할 수는 없겠지만 지나친 의존 비율을 조금씩 개선해 나갈 수는 있다"며 "개선의 노력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식량 주권을 통째로 다국적 곡물 자본에 넘겨주겠다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경고했다. 유 사장은 일본처럼 우리나라도 미국의 곡물 선물 시장에 진출해 직접 구매 방식으로 안정적인 곡물 확보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일본이 전체 수입 물량의 90% 이상을 직접 구매 방식으로 구매하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75% 가량을 아직도 공개 입찰 방식으로 구매하고 있다. 담합에 의한 가격 조정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는 셈이다.

윤병선 건국대학교 교수는 한발 더 나아가 다국적 곡물 자본의 세계 시장 지배에 따른 식품의 다양성 파괴를 우려한다. 유전자 조작 품종을 비롯해 생산성과 수익성이 가장 높은 품종을 중심으로 세계 곡물 시장이 재편되면서 전통 품종이 사라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는 특히 IMF 금융 위기 이후 흥농종묘를 비롯해 종자 회사들이 무더기로 다국적 곡물 자본에 넘어갔다. 고추나 양배추, 무우 등 헐값에 팔려나간 국내 토종 유전자원을 훨씬 비싼 가격에 되사서 쓸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박민선 농협대학교 교수는 세계 농식품 체제의 재구조화에 주목한다. 이를테면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제 1세계에서는 토지 이용형 식량 작물을 생산하고 제 3세계는 선진국 시장을 대상으로 한 채소나 과일 같은 노동 집약적 농산물을 생산하는 국제적 공정 분화가 이뤄지고 있다. 이처럼 세계적 수준의 노동 분업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는 한 나라의 농식품 체제를 논의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이야기다.

박 교수는 특히 “곡물 자본과 식품 가공 또는 소매 기업의 결합 가능성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아직까지는 유전자 조작 농산물이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지 못해 사료 곡물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식용 곡물 시장은 물론이고 식품 가공과 소매 시장까지 파고들어 올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다국적 소매 기업의 국내 진출과 이를 통한 농식품 체제의 재구조화를 경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세계적으로 시민운동과 농민운동, 환경운동을 연계하고 다국적 곡물 자본의 시장 장악을 막아낼 필요가 있다.

다국적 곡물 자본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이제라도 식량 주권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고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문제가 더 커지는 것을 막아야 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쌀 시장만은 지켜내야 한다.

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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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5 13: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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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111

우울-자살, 어찌하다보니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어 버렸을까? 사회적인 문제가 사회에 드러나면 의식은 바로 소외를 시켜버린다. OECD 1위, 공부하는 학생도, 일하는 사람들도 개인이 감담할 무게나 짐의 범위를 벗어난 것은 아닌가? 비판만 있고, 돌봄은 없고, 말하고만 싶어하고, 들어주는 사람들은 없다.

어이없는 세상에 와 있다는 포고에도 자신은 아니라 한다. 

맥락과 지금까지 잘못되어온 이유를 짚어볼 수 없을까? 행동과 사유에 성찰이 없다면, 뼈저린 인식이 없다면 처음과 달라진 것은 별반 없을 것이다. 나를 통한 모임이 아니라 우리의 모임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우리를 통한 모임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세심하게 열어두고, 듣고 같이 가는 법은 돌이키면 알 수 있다. 나를 통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우리를 통한다고 생각하면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템이 아무리 좋아도 닫혀있을테니 말이다. 시도와 되지 않은 것, 실패를 통해 가장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무엇을 하기에 앞서 무엇을 했고 왜 그렇게 되지 않았는지도 혼자-함께-멀리를 세심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도 늦지 않는다.  참* 회의, 뒤풀이

미안해하지말자. 

약속이 있거나 어려우면 말이다. 잩은 약속이 어긋나는 것은 믿음에도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니다. 지키지 못하면 하지 않는 편이 믿음에 좋은 것은 아닌가

080112 -13



아침 영화를 보러갔다. 그런데 들어오는 것은 로고하고, 할리우드 감성짜기 액션만 보이는 것은 왜 그런 것일까~.  마음이 닫힌 것일까? 맺힌 것일까? 까칠한 것일까? 본전 뽑으려는 것일까? 감성도 제조와 판매가 쉽게 된 것인가? 어쩌면 눈물도?? 이런 더 꺼칠해지네??? 암튼 잘 보았소이다. 연두 그리고 모, 부, 유니 .ㅎㅎ

일요일은 일터 문상으로 청주에 다녀왔다. 북적이고 날이 추워 고생이다. 상가에서 본전? 뽑으려는 친구들이 마음에 걸린다. 상가에서 취하도록 마신다? 그건 아니다 싶다. 어렵게 돌아왔다.

책을 일찍 덮고 잠을 청해 새벽에 일어나리라 생각했는데, 일주일간 절인 덕에 그냥 자버렸다. 아침이 횡하다.

인사철인데, 다행이 이동없이 이 자리에서 머무르게 되었다. 이것도 큰 복이다. 복 더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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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심삼일

 

 

 

 

 네권의 책을 질렀습니다. <다시, 마을이다> 조한혜정, 또하나의 문화 출판사 책입니다.  에필로그가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가슴이 끄덕거렸습니다. 다시 제목을 봅니다. 같이 느낍니다. 읽고 난 뒤 얼마나 달라질는지는 모릅니다. <일상 예술화의 전략> 일상을 예술적으로 살기 - 제목에 혹해서 골랐는데, 역시 후기나 평을 받지 않은 책은 위험하더군요. 그래도 꾿꾿이 한자 한자 놓치지 않고 보았습니다.  다음은 소설책입니다. 가르시아. 여우님의 코멘트에 꼬리흔적이라도 밟으려고 오바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수중에 들어왔으니, 이제 내 일입니다.

080112 <다시, 마을이다> 를 3/4 정도 발췌독을 하였습니다. 읽다보면, 쓰이는 용어가 겹쳐, 익숙한 글을 보는 듯합니다. 숙성, 아픔, ....... 많은 사람들이 비판적인 창의성만 아니라 돌봄의 창의성이 보다 많아지고 일상에 배이면 좋겠다싶습니다. 너무 남성적이고 여성분이 쓰는 언어마저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시집 <청보리의 노래> 30대 후반에 요절한 시인입니다. 불쑥 기형도나 김소진이 겹쳐지는데 아직 시집을 보지 못했지만, 느낌이 더 좋습니다. 더 아플 것 같습니다. 세상은 순환의 곡선을 그릴지도 모릅니다. 어김없이 30년 60년주기, 120년을 주기로 다시 돈다는 역사가들의 말이 빈말이 아닌 듯 싶습니다. 아직 예단인지 모르겠지만, 그의 시에서 그것을 느끼게 될지 모른다는 선입견이 듭니다.

080114  임홍재의 작품 몇편을 더 건질 수 있었지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 것 같다. 부모님같은 시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그러고 보니 <백년동안의 고독>도 제목이 겹칩니다.  고독, 청보리, 일상, 마을 잘 버무려질 듯 싶습니다. 후기도 구수하고 맛나게 쓰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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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8-01-14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굳은살 박힌 훍묻은 손을
안개가 잡는다.
등이 더우랴, 배가 부르랴.
일을 해도 일을 해도
黃土 열매는 맺지 않고
밑도 끝도 보이지 않는데
자꾸만 안개는 내 손을 잡는다.
어쩌랴 저 목마른 식솔들을.
저마다 발빼고 돌아선 거리
험한 일만 남아 남아
발목 잡히는 거리에서
나는 뼈를 세운다.
다들 어디갔는가

돌아봐도 보이지 않는 얼굴들.
누군가 손이 깨끗한 者와 만나
한번쯤 악수를 하고 싶다.
소금기 내돋은
아픈 생활의 문턱에서
생색나는 일거리는 없는가.
손이 큰 사람은 입이 크고
입이 큰 사람은 손이 검다고
바람이 등 뒤에서 속삭인다.
날이 저물고 이슬이 내린다.
생선 가시처럼 비린내를 날리며
돌아가는 길목에 별똥이 쏟아진다.
아, 무거운 발이 땅을 치며 운다.

(詩) 임홍재
 

 

 0.  아침 일찍 일어나다. 그제는 일터회식, 어줍잖은 알콜섭취로 잠을 온통 설쳐 피곤했다. 어제는 동료들의 실험뒤 삼겹살 푸념에 넘어가버렸다 . 들어오니 안해와 막내는 마실 나갔고, 일찍 청한 잠 덕분에 지금이다. 새벽은 어김없이 고요하고 조용하고 정밀하다.

1. 알콜절임이 과하다. 년초도 어김없이 반복되는 일상이다. 읽는 책이 무색할 정도다. 들숨과 날숨을 쉬며, 봄날씨같은 겨울날에 생각을 던진다. 예방되지 않는 일상이란 얼마나 피곤한 일들인가 싶기도 하고, 고기 먹고, 새벽에 이게 뭔 짓인가 싶기도 하다. 묵직한 배를 땀으로 뱉어줘야만 시원해하는 몸이 피곤하기도 하겠다 싶다.

2. 오늘도 여전히 푸념으로 시작한다. 밥도 반찬도 평온하게 있어 시간도 한가하다. 절임 영혼이 아니라 맑은 영혼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싶다. 사후 약방문 몸이 아니라 예방 몸으로 일상을 밀고 나가고 싶다.(누가 그러지 말라고 한 것도 아닌데, 모질지 못한 마음이 문제이기도 하지만... ...)

3. 제주도에 매화가 피었다고 한다. 기후가 불쑥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지만 보고싶다. 5k-30'



4. 프로이트...융....라캉....지젝....올바른 학문의 진화인가?(왜 공연한 심술인가? 아니, 달리다 불쑥 이 생각이 들어왔다... 만약 잘못 쌓아 올린 탑이라면, 잘못된 분기라면...그 기초위에 세운 집들은 어이해야 하는 것이지? 무의식?? 제대로 된 정의에서 출발한 것인가?...심각한 푸념이네..쯧..쩝...공그리나 비벼야지...밥먹고 출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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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파란여우님의 "폭력의 '이웃으로서의' 나의 의도적 방관"

자본화=사물화=상품화의 등식이 맞나요? 거래를 하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사물이 내포하고 있는 분위기의 사슬을 끊어야 합니다. 그것이 분위기와 사물이 결속하고 있는 아픔이라든지 기쁨이라든지 안타까움이라든가, 인간관계라든 것이 섞여있으면 곤란한 것 같습니다. 그것이 잘려나갈 때만이 거래의 기본조건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다른 뿌리나 잔가지들이 많으면, 아픔만 떼어낸 사물이거나. 다른 편으로는 확장하거나 늘리는 작업이 병행되겠군요. 오감이나 영혼의 영역에도 어김없이 세트메뉴로 침범해오겠군요. 기능+오감, 기능*경험들 말입니다. 폭력이 될 수도, 맛이 될 수도. 아쉬움이나 아픔까지 들어오겠군요.

그렇게 속도를 매개로한 공간에 분위기에서 탈출한 사물은 지속성을 가져서는 곤란하죠. 끊임없이 소비되고 유통되어야 하는 일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사물화된 폭력이나 아픔에 대상자가 연연해하면 곤란합니다. 통곡하고 지난 일들의 아픔까지 고스란히 새겨지는 일은 정말 피곤한 일이죠. 사람들의 의식도 팽팽하고, 사물과 사물 사이에 있는 것을 보지 않습니다. 그렇게 보지 않는 것이 세련되거나 효율적이거나 생산적인 자본주의 언어로 대치 됩니다. 그것에 익숙해진 자본주의 인간은 사물을 얻은 것을 소유한 것으로 착각합니다.  욕망과 현실의 차이는 이 분위기를 소유할 수 없으므로 영원히 배고프게 될 운명입니다.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더 얻고 싶어합니다.

상품이 된 폭력이 반찬이 되고 안주거리가 되고, 하루라도 복용하지 않으면 안절부절합니다. 알리바이를 성립해주는 일회성 연민은 더 이상 그것이 담고 있는 아픔이나 연결성의 분위기로 광맥을 찾아가지 못합니다. 자본주의형 기계인간은 늘 이렇게 외롭습니다. 아픔을 느껴서 외로운 것이 아니라 사물의 순환에 넋과 영혼을 빼앗겨서 더욱 외롭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자본주의 형 인간이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기때문에 더욱 외롭다는 것입니다. 친구라는 개념도 속도에 응축되어서 사물화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친구라는 종류도 분간이 되어야 거래가 가능합니다.

속도에 쓸려나가고, 박제화되는 욕망은 더욱 커지고, 더욱 더 외로워지는 자본주의형 인간은 안타깝게도 개조되고 끊임없이 복제됩니다. 더 이상 예외는 없습니다. 진지도 마을도 공동체도 없기때문이죠. 분위기에서 떨어져 나가 빠른 속도로 사물화된 것은 되돌릴 수 없는 일일까요. 더욱 더 외로워지고 외톨이가 되는 세상에 사물을 늘려 쪼개고 찢고 분위기를 이식하는 일은 불가능한 일일까요?

자본주의사회는 시간이 참 빨리가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획일화되고, 평균화되어, 모두 똑 같은 것으로 환산되는 것이죠. 사물이 아니라 우리는 사건에 따라 움직여야 될지 모릅니다. 연애편지 한장, 어릴 때 책가방 공책한권, 노트한권, 운동회때 받은 공책한 권, 그리고 그 숱한 것의 기억을 뿌듯하게 채우고 있는 사물에게 사건이 있었고, 그 시간은 느리게 흐르고 웃음과 안타까움을 머금게 만듭니다. 사물이 먼저 있던 것이 아니라 사건과 분위기가 녹아있습니다. 그 시간은 물리적으로 동일하게 환산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닙니다. 엄마아빠에게 아이에게 기억의 공유와 함께라는 공간이 배여있습니다. 어쩌면 시간에 모든 것을 내어줘 결코 분리할 수 없는 시공간이 분리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상품화된 사물화된 일상에 이 억지 앎을 들이댑니다. 일회성 연민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만들어진 욕망은 기어코 맘에 둥지를 튼 이상 채우게 만듭니다. 결국 구매하고 사게 됩니다. 하지만 욕망과 소유사이에는 결코 넘을 수 없는 강이 있습니다. 이물감만 그득합니다. 그 사물에 팽당하거나 팽하거나 정말로 짧은 순간입니다. 이렇게 분절되어 따로따로 노는 욕망은 외롭습니다. 더 많은 분절을 의도적으로 만들기에 더 더욱 외로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내 마음은 하나인데 갈기갈기 찢겨져서 더욱 아픕니다. 우리 마음은 아무런 결속력 없는 천개의 마음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속도에 지칩니다.

이런 이유로 사람은 자본주의형 인간으로 개조될 수 없습니다. 영원히 자본은 개조하려하지만 말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접합시켜야 합니다. 떨어져 외로운 아픔을 연결시켜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속도를 늦추면서 보도록 해야합니다. 그냥 지나친 것들을 시간과 공간 사건을 기억을 돌리면서 접합시키도록 하여야 합니다. 떨어져나간 인간적인 관계, 기쁨을 사건과 사물을 끼워맞춰야 됩니다. 공간을 늘리고 만들어야 합니다. 평평한 시간이 사람마다, 사건마다 달리 흐르게 만들어야 합니다. 시간은 천천히 갈 수 있습니다. 시간은 살아움직일 수 있습니다.

 

080107

.1 자본주의는 분위기(아우라)로 서있는 사물을 상품이란 컨베이어로 나른다. 반복되는 이미지들은 욕망이란 무의식으로 잠재된다. 그리고 만들어져 허기진 욕망은 끊임없이 빠르고 간편한 것을 소비한다. 그래서 자본주의사회는 별반 사물과 기억도 사건도 시작하지 않는다. 연애편지와 사진 한장에 그토록 애틋함이 묻어있는 사건들의 연속은  끊임없이 잊혀진다. 과정의 기억은 무용한 것으로 치부되고 끊임없는 겉재미에 농락당한다. 그 안을 맛볼 수 없다. 예술도, 기술도, 건축도 복제되어 떠돌아다닐 뿐이다. 영혼마저도 복제된다. 끊임없는 소외의 쳇바퀴를 돈다. 외롭다. 죽도록 외로울 수 밖에 없는 존재다. 가진놈은 가진대로, 없는놈은 없는대로, 무한생성되는 욕망에 포로가 되어, 그것을 채워놓을 길이 없다.

5.2 점과 점이 만나 사건으로 발화하지 않는다. 사물로 유통되어버릴 뿐이다. 생성된 욕망의 유효기간만큼. 앎의 기억이 사라지는 시간까지. 사람도 용도로 욕망의 포로로 소비된다. 그런면에서 자본주의는 더 이상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점과 점을 늘리거나, 선과 선을 찢어 벌리거나 면과 면을 늘리거나, 공간과 공간을 비집고 벌리는  짓은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 인간-인간이 사건으로 자리매김하는 일을 보이지 않는 것처럼 지나칠 것이다.

5.3 길들여진 맛에 반란하는 것이 가능할까? 길들여진 에너지에 반란하는 것이 가능할까? 길들여진 탐욕스런 욕망의 속도를 줄이는 것이 가능할까? 자본에 포섭되지 않은 시공간을 돌봄의 공간을 허락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외로움과 외로움의 기관차가 정면충돌하여 산산조각이 나지 않고서 외로움의 실체를 실감할 수 없다는 사실은 무섭다. 자본주의 기관차의 연료가 바닥이 나거나, 자본주의 기관차가 더 이상 돌아다닐 곳이 없거나, 인간이란 엔진으로 갈아끼워 조금 수명을 연장하거나 하지 않을까?

5.4 욕망과 소외란 두바퀴가 속도에 응축시키는 공간과 사물을 느리게 가게 할 수 없을까?
5.5 분위기를  사물에 붙여 끌고 갈 수는 없을까?  숨이 죽은 시-청각에서 촉각, 미각, 후각, 육감을 되살려낼 수는 없을까? 재미가 사람을 축으로 복원될 수 없을까? 미각, 촉각....익숙한 겉재미에서, 횡행하는 관계의 소원함에서 자신의 맛과 자본에 길들인 맛을 비교할 수는 없을까?

노 로고, 나오미 클라인

나오미 클라인-충격 독트린; 재난 자본주의의 등장

노 로고를 번역본(랜덤하우스코리아)을 구하지 못해, 교보에선가 할인판매를 할 때 원서를 구해다가 대략 요점을 훑었던 바 있는데, 새 책이 번역되고 있다고 하네...

게다가 요점 정리도 되어 있다! 캬캬캬...

노 로고의 경우, 절판되었고, 구하기 힘들다는데 굳이 사서 볼 필요는 없다고 본다.

현대 산업과 자본과 기업, 소비주의의 만연 등의 사회적 배경 속에 개인이 독립적으로 취할 수 있는 선택이란 없다는 결론이다.

자본과 산업, 광고 이런 것이 잘 결탁되어 인간의 소비에 대한 욕망은 얼마든지 조작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공공성이라는 공간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 자본주의가 어디까지 스며들고 있는가의 문제를 꽤 심층적으로 파고들고 있다는 데서 나오미 클라인의 작업들이 의미가 있다.

보드리야르의 책들에서 보이는 소비사회의 특징들을 거론하는 것들에서 좀 더 고전적으로(?) 고찰할 수 있는 바이고, 이 책은 그것을 직접적인 기업명과 사례로서 확인해주는 가장 최근의 책들이라 볼 수 있겠다.


# by 파란딸기 | 2008/01/09 18:03 | 생협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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