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독감자료를 서핑하다가(作)


수습하는 것과 예방하는 것의 차이

생각에 꼬리가  문다. 불쑥 잠결에 묻어나고 선잠을 잔 듯 자란 생각에 몹시 불편하다.  예방을 할 수 없는 것일까? 물리적으로만 아니라 생각으로도 예방하는 길이 없는 것일까? 수습하기에 들어가는 비용과 피해보다 그 노력을 예방이나 다른 방법으로 선택한다면 얼마나 비용일 들까? 정말 미연에 막거나, 우리만의 문제로만 생각하지 않고 뭔가 다른 선택지, 마음의 선택지들은 없는 것일까?

 



정치인.과학기술자. 사회운동. 전문가주의의 그 사고와 동선의 한계

정치인과 행정부 - 문제가 닥쳐서야 , 부서의 한계를 근본적으로 넘어서지 못한다.
양극화의 문제 - 제한된 약은 여전히 다국적 기업과 연결된다. 한정된 생산, 내성으로 인한 채산성 악화에 따른 수급조절. 약가로 인한 제한된 보급.
사회운동 - 기술의 변화, 연구의 수준, 피해의 수준, 연관성의 관계 파고에 대해 예민하지 못하다. 관행대로 이슈를 제기하고 평면적인 대책을 남발한다. 환경-노동-지역의 연관성에 대한 고찰이 부족하다.
전문가 - 경계안에 머문다. 경계를 넘어서는 질문이나 방법엔 침묵을 지킨다. 그리고 그 파급효과에 대해 알 수 없다.
과학기술자.전문가 - 전문적인 지식이 그렇게 많은 것을 해결해주지 못한다. 어쩌면 전문적인 것을 주장하지 않을 때, 지식의 다른 생태가 보일 수 있다. 그리고 전문성과 분야를 벗어난 상상력이 다른 단초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의 세계화가 아니라 지구생태의 세계화에 관심을 기울일 때, 지구환경의 변화와 분과학문의 연관고리에 대한 초점과 사고를 넓히고 확장할 때만 예방의 실마리는 아주 조금 보일지 모른다. 성장 동력이라고 하는 것이 연관된 생태를 고려하지 않을 때, 제 2, 제 3의 조류독감 버전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없다. 성장동력에, 그것만을 연구하려는 당신의 자세에 우려를 표시해야 한다. 



다른 문제와 유사성, 아니면 해결책의 반복가능성(다른 시선과 그 시선을 통한 준비 - 정치-사회-개인-분과..)

미친 기후로 인한 가뭄, 고온으로 인한 피해는 어떠할 것인가? 사망자는?
만약 인구밀집도와 사육시스템의 문제로 가정해야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만약 구하기도 어렵고 다국적기업의 수급권에 매여있는 타미플루가 부작용과 난분해성으로 또 다시 하천으로 오리에게 내성이 생겨 바이러스가 진화한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인간에 대한 전염속도가 크다면 수급마저 어렵다면 빈부차이로 사회적약자가 열악할 수밖에 없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어떻게 할 것인가?

마음의 다이어트, 전문가의 생각장벽균열과 인문을 끌어들이는 일, 애정이 국경을 넘어서는 일.

예방적인 측면으로 볼 수 없을까?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정치인도 정부도, 사회운동, 무고한 피해의 악순환구조를  벗어날 수 있을까?

예방의 관점으로 본다면 정치인들도 시야를 이 문제를 정치적인 것으로 복귀시킬 수 있다. 사회운동 세력도 선형의 순환구조를 뒤틀고 입체적인 시야를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정부도 반복되는 예산배분과 수습보다 대안이나 대책을 감안하여 적은 돈으로 많은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개인에게 돈의 많고 적음의 차이는 있겠지만 본질적인 해결이 되지 않는다. 우리 땅이 아니라 오히려 북한은 더 큰 위험에 처하고 있고, 처하고 피해를 더 줄 수 있다. 국경을 넘어서는 일에도 마찬가지다. 단 한명의 목숨도 다른 것을 조건으로 거래될 수는 없는 일이다.

혹시 성장동력만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해 성장동력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관심이나 있는 것일까? 그 기술의 자가증식이 얼마나 많은 위험을 배태하고 있는지 관심이나 있는 것일까? 연구자 개인이, 과학기술자 개인이, 전문가가 그렇다면 그를 담고 있는 단체와 기관은 자정능력이 있을까? 이를 후원하고 지원사격하는 정부는 다르지만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순환구조로 문제에 대한 답과 행동이 늘 같은 것은 아닌지 의심해보아야 하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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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독감

1.

제가 본 조류독감관련하여 본 사설은 두 건입니다. 충청투데이와 조선일보, 충청투데이는 꽤 지난 것 같구요. 조선일보는 최근 사설에 조류독감에 대한 타미플루의 확보율을 높일 것을 권면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물론 강양구기자가 최근 올린 책소개글이 회자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궁금증이나 조류독감이란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지난해 동남아, 일본까지 일연의 흐름들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그리고 약제에 대한 논쟁. 타미플루의 부작용(우울,자살충동)과 환경에 있어 난분해성으로 생태에 있어 내성 생성에 대한 부분. 고가 약제에 대한 저가약제의 필요성에 대한 것들이더군요.

[조류독감]이란 책자가 발간된 이후의 연구결과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인간-인간의 전염. 상기도부위나 폐, 태반으로 태아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은 좀더 확인해보아야겠지만 충격적이더군요.

그러면서도 조류독감이란 키워드로 대형제약회사-생태-부자와빈자- -- 의 고리가 고스란히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그리고 국가별로 대응도 차이가 나는 사실도 그러하며, 기자들이 기사를 쓰는 수준도 그러하며...해결이나 예방보다는 한탕이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노약자가 아니라 건강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전염병은 끊임없는 야생의 공간을 남겨놓지 않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야생생물과 인간의 접촉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전염병을 야기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조류독감이 고양이-돼지--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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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류독감과 진보, 그리고 과학기술자 (作)
    from 木筆 2008-04-18 09:39 
    수습하는 것과 예방하는 것의 차이 생각에 꼬리가  문다. 불쑥 잠결에 묻어나고 선잠을 잔 듯 자란 생각에 몹시 불편하다.  예방을 할 수 없는 것일까? 물리적으로만 아니라 생각으로도 예방하는 길이 없는 것일까? 수습하기에 들어가는 비용과 피해보다 그 노력을 예방이나 다른 방법으로 선택한다면 얼마나 비용일 들까? 정말 미연에 막거나, 우리만의 문제로만 생각하지 않고 뭔가 다른 선택지, 마음의 선택지들은 없는 것일까? 
 
 
 

 

 

 

 

 

유럽약물평가청, 타미플루의 위험에 대한 경고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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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루엔자의 위력을 강화시키는 PB1-F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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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체계조절을 통한 조류독감치료제 개발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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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5N1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태반을 통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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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바이러스의 등장을 초래하는 타미플루의 난분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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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인플루엔자의 인간대 인간감염을 위한 핵심단계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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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조류 독감 바이러스, 숨겨진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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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류 독감 발생에 오리와 벼가 미치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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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전염병 확산과 위험지역 지도

 

영국 독감대유행 대비 항바이러스제 비축량 두 배로 증가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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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말 형태의 독감 백신: 독감 대유행의 해결책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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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보건기구, 국제적 전염병 확산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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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류독감자료를 서핑하다가(作)
    from 木筆 2008-04-16 11:10 
    1. 제가 본 조류독감관련하여 본 사설은 두 건입니다. 충청투데이와 조선일보, 충청투데이는 꽤 지난 것 같구요. 조선일보는 최근 사설에 조류독감에 대한 타미플루의 확보율을 높일 것을 권면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물론 강양구기자가 최근 올린 책소개글이 회자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궁금증이나 조류독감이란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지난해 동남아, 일본까지 일연의 흐름들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그리고 약제에 대한 논쟁. 타미플루의 부작용(우울,자살충동)
 
 
 

<농구의 탄생>
<아일랜드> 대니보이-기네스- 보이콧 대위
<내친구 빈센트>
<경계선 넘기>

 

조지 버나드 쇼는 칼 맑스에 영향을 받아 당대의 진부한 상업극을 비난했다. 그는 사회와 정치 개개혁에 관한 자신의 견해와 사상을 전달하기 위해 극작품을 썼다. 웃음을 수단으로 하는 편이 유리하다고 해 "사상희극"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 기존의 극 형식을 타파하고 도입부, 상황설정, 토론이라는 세 단계로 구사했다.  [인간과 초인],[바바라 소령],세인트 존 등이 있다. (71쪽 요약)

아일랜드가 낳은 또 한사람의 천재 극작가는 오케이시다. 그는 더블린의 빈민가 인물과 생활을 극의 소재로 삼았다. 인생의 전반 40년을 빈민굴 주민들과 막노동꾼 사이에서 보냈기때문에 직접 경험한 인물들을 무대에 올렸다. (73쪽 요약)

조이스의 첫작품 [더블린 사람들]은 3년에 걸쳐서 쓴 14편의 단편과 1편으 중편을 모은 것이다.  더블린 시민들의 시대착오적인 영웅주의, 종교적 맹목성, 속물근성 등을 '마비'라는 주제를 통해 다룸으로써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율리시즈]는 오디세이를 모방해 평범한 봉급생활자인 블품의 방황을 통해 현대인의 내면과 일상의 삶을 가감없이 보여주고자 했다.(77쪽 요약)

고대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아일랜드에도 기독교가 들어오기 이전부터 풍부한 구전문학이 존재했다. 5세기에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그들이 가져온 문자로 이러한 서사들을 기록했다. 예이츠는 이를 두고 "유럽에서 가장 풍부한 이야기의 보고"라고 말했듯이 초기 아일랜드 게일 문학은의 서사는 크게 신화사이클, 얼스터 사이클, 페니어 혹은 오시안 사이클, 왕 혹은 역사 사이클고 나뉜다. 이 4개의 사이클 외에도 기독교 이전 세계에 존재했다. 저 세상의 항해와 모험을 다룬 이야기들도 있다.(68쪽 요약)

뱀발.

일터 출장 오고가는 길, 집안행사로 오고가는 길 마저 읽다. [경계선넘기]는 얇은 책인데, 아직 경계선을 넘고 있다. 졸다 수면제로 좋다.

1.  30대 초반의 체육교사는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겨울철 할 수 있는 운동을 생각하다 농구를 만들었다. 바스켓 볼도 아니고 네이스미스볼도 아니고 바스켓볼은 10피트의 골대높이와 규칙 등 120여년이 되었어도 변한 것이 별반 없다. 바스켈에서 백보드가 생긴 것도 한참 지나서였다고 한다.

미국에서 시작되었으니 인종차별도 다른 것과 꼭 같은 패턴으로 여기게 이식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상상력과 규칙의 경직성은 여전히 경기자와 관람자를 모두 옭죄이고 있었던 것 같다. 점프라는 행위자체가 인정되지 않았다고 하니 이상하지 않는가? 점프슛이라는 불꽃놀이가 농구사를 화려하게 다시 쓰게 만든 것은 아닐까? 이어지는 수비,패스의 기술 만큼. 슛도 두손으로 던져야된다는 강박에 늘 시달려야 했던 것은 아닐까? 한 손, 점프 슛의 묘미. 24초룰.

3점슛이 최근에서야 생겨났다고 하는 분들 역시 오해다. 초기에 이미 양쪽 측면에서 넣게되면 3점슛을 준 적이 있다고 한다. 정착된 것은 최근의 일이지만.


2. 보통사람 프렌들리 빈센트를  가져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날조된 미술사에 아무런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지금. 그 당시 시대를 안고사는 이들의 고민의 흔적을 불어내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목이 없는자나, 겨우존재하는 자들, 열외자들을 화폭에 옮겨담으려고 했던 빈센트를 모두 정신나간 짓으로 본 그때와 지금의 차이는 무엇일까? 숨겨져버린 일상은 어디에도 숨쉴 곳이 없는 세상은, 빈센트의 눈으로 본다면 어이할까? 그 어처구니 조차 없는 세상은 아닐까?

아무도 그려주지 않는 그들. <감자먹는 사람들>의 굵은 손마디를 그려내고, 울먹한 마음을 보이지 않을까? 


3.  이어찾다보니 지식채널 e-대니보이가 있다. 아일랜드. 로마도 가지 못한 곳. 5세기나 되어서야 기독교가 자리잡은 곳. 그동안 아일랜드는 시간을 번 것은 아닐까? 정령과 영혼을 고스란히 남겨둔 것은 아닐까? 암흑이라 여기는 중세에 그들은 꽃을 피웠다. 수도원을 중심으로 그들의 문화를 꽃피운 것은 아닐까? 유럽문화의 갈라파고스?? 모른다. 어줍잖은 이름매기기가 만용인 듯 싶다. 지금도 인구는 채 600만이 되지 않는 것 같다. 160년전의 인구가 800만. 150만이 굶주림으로, 죽음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부르다가 지쳐죽을 이름들 [대니보이]는 그들만의 노래는 아니다.

여전히 진행형이다. 말과 몸짓과 춤과 노래, 사랑을 막아서는 일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자본주의가 잔혹하게 훑고 지나가는 19세기말 수많은 사람들. 그림으로 글로 춤으로 음악으로 시대를 열어 놓고자 한 것은 아닐까? 비록 거름이 될지라도... 다시 피어날 수 있다면, 다시 되새김질 될 수 있다면.  그들의 삶과 노래가 이 시선으로 녹을 수 있다면, 아니 이 시선에 그들의 삶과 피와 고통과 슬픔이 스며들 수 있다면...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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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함께 떠나다. 흐린날 파도는 일상을 넘어섰고, 시야 밖을 훨씬 너머 수평선이 들어온다. 시각의 온갖 촉수로도 수평을 잡아낼 길이 없다. 수평선은 수평이 아니다. 아마 끝없는 수평을 나타내는 것은 오목하거나 볼록하거나. 대각선으로 가로지른 일정의 왕복은 봄꽃이 무수한 타래를 풀어놓다.  형 형 색 색.  눈이 과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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