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생물과 무생물에 있어서의 반응: 동물의 근육운동의 자극에 대한 반응이 식물이나 무생물이라고 여기는 금속도 동일하다고 하면 사람들은 무슨 소리를 할까? 아마 정신나갔다고 하겠지?

1. 엽록소 광전소자가 있어 태양에너지와 비교할 정도로 성장엔진으로 효과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며 선행연구 결과가 있다고 하면 연구자들은 무슨 소리를 할까? 국책과제를 시도해보면 좋을 지도 모른다고 하면 솔깃할까?

2. 아르부스 프레카토리우스라는 인디언감초라는 식물은 태풍, 지진, 화산으로 인한 피해를 예측할 수 있다고 하면 무슨 이야기를 할까? 설령 그 식물이 돈이 된다고 하면 어떤 반응일까?

3. 1900년 인근에 인도에 보스라는 연구자는 지금의 윌슨을 훨씬 뛰어넘는 통섭 연구를 수시로 하고 자연과학 공학의 학문간을 넘어서는 연구를 했다고 하면, 식물도 똑같이 클로로포름으로 마취를 시키면 회복의 속도가 인간과 다를 것이 없다고 하면 무슨 소리를 할까?

4. 닭은 알을 낳는데 그 칼슘이 먹는 량과 배출되는 량이 4배정도 차이가 난다고 하면, 어떻게 설명하여야 할까? 지금의 이론으로 설명되지 않는다고 하면?

5. 식물들에게 신경조직이 있다고 하면 무슨 정신나간 소리냐고 하지는 않을까?

6. 식물들에게 클래식을 틀어준다. 왜 그런 것일까? 그것이 식물 생장에 효과가 있는 것일까?

7. 콩 500개가 500볼트의 전원을 만들어낸다. 바이오연료는 지금 대체원으로 세상을 가로지르며 난리다.

뱀발. 

0.금욜. 어김없이 스콜은 준비중이다. 참*에서 좌판을 깔고 참* 책들 행간, 마음가는 책들을 건네서 본다. 식물도 생각한다.라는 표제에 이끌려 보는데 출판사도 그렇구 심령, 초의식이런 버전들이라 익히 섣부르다. 그래도 의견과 흔적은 다르다는 느낌. 몇몇 과학자들을 확인하게 된다. 위에 몇몇을 옮겨적긴하는데, 다소 근본을 흔드는 관점이 있고, 흔들리고 있다. 이어서 확인한 식물은 우리에게 무엇인가?에 흔적을 쫓다나니 과학자의 흔적이 겹친다.

1. 만약 그렇다면 식물생리학의 기술이 기존 성과들과 비교지점이 있어야 한다. 물리,기계,생리학, 생태학도....선행의 결과에 대해, 베르그송도 라이히도 연이어 겹쳐 나타난다.

2. 식물도 생각한다라는 관점이 증명된다면, 사실 많은 것이 바뀌어야 한다. 가치관이 아니라...동물도 버거워하는 현실에서 말이다 다윈이도 그랬다는데... 이것 정신나간 것 아니냐는 소리도 들을 수 있겠다 싶다.

3. 1900년 인근의 연구결과들이 지금 반추되는 경우가 많은데, 주류를 벗어나는 사실들이겠다 싶다. 지극히 짧은 독서로 결론을 내고 싶지도 않다. 마음이 우왕하는 편인데, 생각을 유보시키고 좀더 확인작업을 거치고 싶어 이렇게 멈칫한다. 조금은 엽기적인 사실들인지라 사실관계 확인들을 거쳐야 싶을 듯하다.

4. 유사한 책은 아니지만 같이 흐름을 쫓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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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흔적들

美*모임 - 예술행위란,예술작품이란,예술의기원
마을모임번개 - 인간관계의 확장에 대해서(마음씀씀이의 변화), 기부에 대해서

1.

몸이 가라앉고, 생각의 끈들은 자리를 잡지 못하고 붕 떠있는 듯, 꿈속을 유영하는 것 같다. 어제 그제의 여파에 아직 힘들어하고 있는 몸들이란? 간간이 섞이는 견해들이 재미있고 튄다. 그리말이 많지 않던 ㅁ**, 조리있는 말솜씨도, 현장감있는 이야기들도 또박또박하다. 현실의 바다에서 따로 떨어져나와 배회하고 있는 예술1)은 자본의 물결에 자신의 영혼까지 팔고 있다. 예술과 사회의 접촉면까지 자본에 의해 재전유되고 있다.

자본의 숨결이 미치는 호흡. 독립된 공간이 없듯이, 자본의 공기의 질을 바꾸어내는 현실 속의 연대의식과 생활 속의 심미안이 예민해지고 결합되지 않으면 그 경계를 조금도 바꿀 수 없을지 모른다. 더욱 페달을 밟아 자본의 화려함과 추함만 강열하게 하는 불빛처럼 소외되고 평균화된 예술, 평균적인 시선의 근친으로 치달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사회 밖의 예술이 아니라, 사회 속의 예술만이 아니라, 사회와 함께 녹여내는 예술의 힘이, 연대의 힘, 다양성의 힘만이 새로운 지평을 만들어낼 수 있지는 않을까?


 

 

 


2.

사람들이 보내는 우울의 신호가 있을 것이다. 냉담-무심, 무관심의 관심.  편리와 당위를 이야기하는 것이 단맛만을 내는 것이 아닐 것이다. 마음이 이리저리 흔들린다면, 바람결 에 마음이 얕아진다면, 나머지는 지나치는 바람일 뿐. 약간의 바람의 결도 마음 밖에 있어 제 것이 아니다. 마음의 감기들은 따듯한 온기를 필요하지만, 여전히 마음의 정박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유를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제 속에 이쁜 것들을 끄집어내는 덧셈이 부단히 요구되기도 한다.

우울이 내장된 사회.  그 상흔에 유연해지고 부드러워지려면 내것-우리삶의 깊이와 넓이. 나의 확장도 숨을 고른 뒤 다시 짚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 어떻게와 왜?란 곁가지를 두고서, 그리고 등에 잔뜩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도 의심해 보아야 한다.  우울이 내장된 사회. 당신의 예민한 감수성들에 더해서 삶을 그려내고 만들어내는 재미 못지 않은 더 나은 선택들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그 달라진 삶을 우울사회에 좌판벌리고 파는 방법 외에. 우울사회를 명랑사회로 바뀌는데 한 몫하는 재미 외에.  물론 사랑도, 연애도, 섹스도, 명예도, 이름도 안주거리는 되겠지만 주요리는 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한낮의 우울 2)



1) 김우창  2) 알라딘 오즈마님 리뷰

뱀발.  퇴근무렵 온 문자가 걸린다. 하루종일 회의한 뒤, 한 차례 퍼붓던 스콜과 손님들을 보낸다. 오랜만에 세미나 참가. 몸이 천근이기도 하고 앙꼬님들이 빠지니 뒤풀이가 조금 맥이 없다. 축구와 야구, 그리고 아주 쬐끔 미에 대해 이야기나누다 파하다. 파할 무렵 , 동네에 돌아와 나머지 이야기를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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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발

                              함순례                                                                              



어스름 할머니민박 외진 방에 든다



방파제에서 그물 깁던 오십 줄의 사내

지금쯤 어느 속정 깊은 여인네와

바짓가랑이 갯내 털어내고 있을까

저마다 제 등껍질 챙겨가고 난 뒤

어항의 물비늘만 혼자 반짝인다

이곳까지 따라붙은 그리움의 물살들

밤새 창턱에 매달려 아우성친다

사랑이 저런 것일까 벼랑 차고 바윗살 핥아

제 살 불려가는 시린 슬픔일까

몸이 자랄 때마다

맨발로 차가운 바다를 헤매야 하는 소라게야

울지 말아라 쓸쓸해하지 말아라

게잠으로 누워 옆걸음 치며 돌아가야 할

누더기 등껍질 촘촘 기워간다

물 밀려간 자리 흰 거품 걷어내며

기어 나오는,

소라게의 발이 뜨겁다


 



 

 

뱀발. 어제 일터일로 밤이 깊다.  동네촛불도,  친구를 만난다는 소식도 다 한편으로 접어야 했다.  말들은 차곡차곡 쌓이고, 방향을 잊어버려 이리저리 밀린다.속절없고 안타깝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하고 말이다.

술과 고민이 파도처럼 왔다 간 아침.

펼쳐든다. 마음이라도 편히 재워야 하지 않을까!

오늘도 일용할 하루의 발이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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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짓기, (잡된)글쓰기, 마음쓰기

1.

교실 내에서 앎을 위한 고단하고 기계적인 싸움이, 교실 밖에서는 통하지 않고, 사원내의 열정적 믿음이 사원 밖에서는 편협한 고집과 독선으로, 교과서 속의 진리들은 삶 속의 구체적인 일리들을 비껴가고, 천명이라는 이념들은 진솔한 욕망 한줄기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괴리

2.

집이 되지 못하는 건물, 글이 되지 못하는 논문, 그리고 마음이 되지 못하는 이성은 한 통속이다

3.

인심은 민심으로 모이고, 민심은 천심으로 오르고, 다시 천심은 지심으로 내려서, 그 당 위에 흐르는 인심을 어루만져주는 마음쓰기

4.

돈 씀씀이만 제대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 씀씀이를 제대로 다스려야 한다

5.

조율되지 못하는 文化는 文禍를 낳고, 文禍에 이르도록 곪은 文化는 섣부른 복고주의로 돌아선다.

6.

논문중심주의와 원전중심주의의 가운데는 바나나콤플렉스(겉은 노란데, 흰척하는), 중앙집중적이고 폐쇄적인 글쓰기이다. 독재성와 우리의 타성적 허위의식이 공모한 수세강박증, 순결콤플렉스이자, 강박과 허위의식의 [마음쓰기]에 맞닿아 있다.

7.

집이 더 이상 정과 의미를 채우는 곳이 아니라 욕망의 배설지. 익명의 기능성만 키우는 건물일 뿐이자 욕망을 담는 텍스트이다.

8.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해서 글의 안팎이 어울리는 현상이다. 글의 생명력은 역사성, 컨텍스트성의 후원이 있어야 한다.

9.

마음 위에 마음 쓰기

10.

잡된 글쓰기




10.1 글쓰기의 한계, 불안, 결핍을 보듬는다.
10.2 삶의 복잡성와 구체성 속에서 일리라는 집을 짓는 글쓰기
10.3 원칙상 긴글이며 패턴을 갖는다
10.4 역사, 터, 이름, 일리를 설계도 삼는다
10.5 자신의 집을 자신의 손으로 지어야 한다.(자신의 체험을 자신의 말로서 옮기는 글쓰기)
10.6 일도쾌단이 아니다. 단순성이 아니다. 해체가 아니다. 무리가 아니다.
10.6 글쓰는 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형이상학, 존재론적 규정의 영향을 받고 있다.

10.0.1 여백과 틈의 글쓰기(능동적 침묵)
10.0.2 개성적 글쓰기 - 지은이를 숨기지 말자, 쓰는 언어의 맥락드러내 보이기, 구체성을 더함, 지식의 권력화 경계, 주변적 자리를 드러냄
10.0.3 구체성의 글쓰기 - 경험들이 위계화 되지 말아야 하고 차별화되지 말아야 한다. 지식 수입상들의 증거로 현실이 그 이론을 예증해주는 자료창고 역할이 되지 말아야 한다. 중앙집권이 아니라 지방분권이 되어야 한다. 추상성이나 전지를 하는 글쓰기가 아니라 일리의 연대이어야 한다.
10.0. 4 글쓰기의 임상성 - 인간에 의한, 인간을 통한, 인간의 변화, 쉬움과 전문성의 상생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10.0.5 골과 마루의 글쓰기(원리-에피소드) - 글의 구심력과 현실의 원심력을 조화시키는 것.

뱀발.  김영민글쓰기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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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그럴생각은 아니었는데, 자전거 투어를 할 요량이었는데. 도서관엘 들러 빌리다보니 한가마니다. 참터로 가서 좌판깔아놓고 시집한권으로 시식하고 그늘서린 책숲으로 들어선다. 사무실에 냉기가 오를 무렵 김*영 친구는 받을 선물이 있다고 오고, 곧 포항행을 준비한다. 이런저런 책이야기를 나누다. 한차례 스콜이 요란스런 천둥과 번개를 동반하며 나무들을 뽑을 듯이 요란하다. 그것을 한편으로 두고 햇빛서린 책숲으로 들어선다.  다음날, 절반은 돌려주고 나머지는 또 시집으로 꾸어온다.

읽은 시간보다 메모흔적 정리할 시간이 더 걸릴 듯하다. 하여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읽고싶은 책들보다 읽고싶은 책들이 쏟아져나오는 량이 더 많다. 책읽기와 책메모가 달라져야 할 것 같다. 상상으로 읽고 써내지 않으면 되지 않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인가?

10여년전쯤 이분의 책들을 읽었으면 다른 길로 에둘러오는 어려움이 없었을까? 하고싶은 이야기, 나누고 싶은 이야기, 쓰고싶은 표현들이 너무 많이 담겨있어 놀랍다. 나머지 책들도 보고싶은데 도서관엔 책들이 없다. 메뚜기가 되어야 하나.? 구즉으로 튈까? 아마 거기도 없을 확율이 크겠지? 궁금해진다. 무엇을 썼는지가 예상되면서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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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밭 2008-08-12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여울님의 책숲으로의 산책이 어떠했으리라 감히 짐작해도 될까요? 신비한 새소리를 쫓는 소년은 아니었을까요? 주제넘는다면, 잘못 짚었다면 죄송...부럽습니다. 그리고 닮고 싶어지네요.ㅎㅎ

여울 2008-08-14 08:48   좋아요 0 | URL
하하. 작은 산을 몇번씩 오르락내리락 했습니다. 파랑새두 보구요. 잠자리두 보고 나비도 보았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