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친구딸래미가 일을 저지르고 전학권면을 받아 이사오기 스무날정도를 앞두고 수원으로 갔다. 어찌할 수 없음보다 친구의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속이 더 마음 쓰인다.
2. 대장암으로 투병중인 이모부가 돌아가셨다. 십여일전 고통스런 모습이 겹친다. 돌아가신분에 대한 생각보다도 감내할 가족들의 나머지 걱정만 슬그머니 들어온다.
3. 내가가 아니라 우리가 성원한명으로 분위기가 붙고 살고 한다. 너에 대해 마음을 들이지 않으면 될 것도 없다 싶다.  내가 기획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기획으로 열려지고 풍부해질 수는 없는 것일까? 새로운 것에 대한 불감..어떤 것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불감은....익숙하게
4. 가치와 욕망에 대한 것. 상황을 가치로 환원하는 일들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렇게 똑같은 색을 칠하는 일은 여러 움직임이나 생각들을 얼어붙게 만든다. 과정이나 모아진 마음들을 보지 못하면 너-너-나-너-너들로 한일들이 나의일내일 내것으로 환원되는 것 역시 서로를 무위로 돌리는 환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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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딩딩 눈이 부은 하늘에

몸을 맡긴 소리없는 비명들
한점 한잎 사선 斜線 을 긋다.

 

그으 서슬퍼런 사선 死線 을 밟다.


 

뱀발. 영하로 접어든 날, 출근하는 길 은행나무들은 아직 초록의 여운이 남아있음에도 툭툭 마지막 잎을 떨군다. 허공에 별똥별처럼 궤적만 남긴 채 제몸을 사윈다.그 묵직한 낙엽들을 밟다. 수북히 쌓인 낙엽들을 조심스레 밟다보니, 어제 면도날처럼 베고 간 현대비정규직 소식이며 시는 왜 고운말만 써야되냐고, 영화는 온갖범벅인데 언제나 순수를 가장하는 말들에 놀아나야만하냐는 사위도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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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영원한 번데기요. [너]는 영원한 나비이다.

 

 

 

 

 

 

 

0. 술한잔 사겠다는 핑계로 서경석과 대담집까지 포함하여 김상봉님 책을 빌리다. 가볍게 달림 마실을 다녀오고 읽다. 미리 마음에 있던 책들이긴 하지만 펼쳐 관심 장에 눈길을 주는데, 맴맴 돌던 박동환, 함석헌, 한용운까지 이어진다. 고개도 끄덕여지기도 하고, [나와 너]에 대한 부분, 함석헌의 참나, 참삶 등 스쳐지나간 말들이 상기된다. [나와너]의 부분은 마르틴부버와 같은 것 같은데 아직 그 출처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김상봉님은 나와 너가 만나 임신해야 한다고 한다. 나홀로 자기만족의 나르시즘이 서양철학의 맹점이기때문에 나와너가 만나 임신해고 아이를 나아야한다고 한다.(오해하겠다. 그 나와너가 아니라 먼댓글 나와너임을) 그런면에서 한층 깔끔하기도 하다.

1. 그래도 의문점이 든다. 이점들은 세밀히 읽으면서 더듬기로 한다. 아래 박동환님은 어렵다. 그에 비해 함석헌님은 한결 수월하기도 하다. 우리철학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명사도 동사도 아닌 그 무엇인 것이 더 가능성이 높다. 근대사 책을 읽다가 신채호와 한용운이 섞였는데, 한용운님 시들을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마음길들도 마찬가지... ...

2. 부산행이다. 오후 학회...가기 전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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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8-11-20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엔 책을 읽는 사람들은 많지만 어떤 담론이 형성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불임의 현장이라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온라인이라 그런가? 오프라인이라면 풀릴래나?
오늘 모처럼 시간이 나서 쓸데없는(?!)사유 한 꼭지를 던지고 갑니다.
이 동넨 사흘째 눈입니다.

여울 2008-11-20 12:21   좋아요 0 | URL
침묵인지? 고요인지? 불감인지? 물이 끓고 있는 것인지? 휘발해버린 것인지? 무서워하는 것인지? 두려워하는 것인지? 주저하는 것인지? 회피하는 것인지? 사흘째 내리는 눈처럼 그냥 그런 것인지? 왜 사흘째 내려야 하는 것처럼 이유가 추정되는 것인지? 유추는 되지만 발담그기는 부담스러운 것인지? 불감의 정글이 헤쳐나가기에 너무 강력한 것인지?

온라인이라서? 오프라인도? 오프라인에선? ...뿅망치가 필요한 것인지? 진지모드가 필요한 것인지? 썰렁모드가 필요한 것인지? 섹시함이 필요한 것인지? 섹시함도 필요한 것인지? 정신을 섞기만하면 논쟁으로 비화되는 잘남들 때문인지? 유아독존만 있어 너도독존을 인정하지 않은 연유인지? 겉저리부터 시작해야하는 것인지? 묵은지를 꺼내 파 송송넣고 푹푹 끓여야 하는 것인지? 거기에 함박눈발 시식하며 소주 한잔 걸치며 담소를 나눠야하는 것인지? 깊은 속 끄집어내어 철탑 고공 농성을 해야되는 것인지? 총총거리며 너무 빨리 걸어대는 발걸음의 속도때문인지?

한꼭지 물어댕겨 사흘째내리는 눈처럼 횡설횡설 수설수설 해봅니다.

 

 염두. 접힌 부분이 길으니 다 읽으려하지 마세요. 말씀드려도 다 보지 않으시겠지만 서두.

0. 문자를 받고 오랫만의 빈시간?(사실 그렇지 않았지만). 종강이려니하고 미안한 마음을 무릅쓰고 묵자 시간에 닿으려고 한다. 낮시간 옆의 책 뒷표지에 꽂혀(아래 첫 접힘), 서문을 칙칙한 버스안에서 안경을 벗어가며 읽는다. 가을하늘처럼 선명하기만 한 윤교수님의 다듬고다듬은 글은 늘 간담이 서늘하다. 몇 꼭지 흔적을 남겨둔다. (두번째 접힘)

1. 정신병을 자아-아버지-어머니의 트라이앵글에 가두어 두려는 노력은 허사란다. 라캉에 대해서도 그러하다.(그러니 지젝은 불안하지 않겠는가? 쌓아올린 탑들이. 논의가 확장되거나 다른 쟁점들이 없는 것을 보니 아쉽다.) 아버지의 깊이나 어머니의 깊이나 자아의 확장에 대한 개념없이 환자라는 병실안만 생각하는 프로이트류의 정신분석이나 진단은 별반 쓸모없으리라는 이야기.

시대의 우울과 병리는 안녕한가? 출산율 최저와 자살율 최고, 어린아이어른들 할 것없이 최다우울을 앓고 있는 첨단병리자본주의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아니 살아지고 있다. 끊임없이 살아지는 우리의 트라이앵글 속, 일터-그것에 대한 욕망과 소비-자본의 삼각연대 속. 우리는 길들여진 우울증만 앓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출발점을 문제삼는 사람들이 많다. 옆의 가타리도 아래의 [나와 너]란 책도. 그리고 일상혁명을 이야기하는 부류도 그런면에서 마찬가지다.  국가와 가족이란 틀을 넘는다. 생각과 이론이...아니 이미 울타리를 타넘고 저 멀리 도망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단지 지금여기로 가져오지 않으려는 두려움들 때문이겠지만, 이렇게 주춤거리고 어쩔 줄 몰라하는 방황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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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우리는 감동하지 않는다. 더이상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깔깔거리거나 숙연해지지 않는다. 산더미처럼 쏟아지는 선물과 상품에 뭉클할 뿐이다. 끊임없이 그것을 소유해야만 마음이 놓인다. 이미 마음은 사소한 것을 위해 쓰는 능력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마음이 누적되어 쌓이거나 때로 숙성도 되고 발효되리란 생각조차 금기이다. 신을 핑계로 이야기한다. [그것]이 천지인 세상에 [그것]을 가지려하지 말고, 마지막 음표처럼 남아있는 낙엽에 온몸이 얼어붙는 그 무엇에 대해 이야기한다.

갇혀진 늘 움직이는 생각의 울타리. 몸의 울타리. 쾌쾌하고쾌퀘하고 퀘퀘한 동선의 테두리. 우울만 양산하는 그 울타리의 경계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한다. 살아지고살아지고일백번 살아지고에서 살아가고의 회복에 대해 이야기한다.  '새로운 삶'이나 살아가는 것의 치유는 의외로 스스로 벗어난 '너'를 대면함으로 치유될 수 있다고 말이다. 문득 나를 주춤거리게 하는 '너'의 아름다움들이 당신의 가슴을 채울 때 '너'를 끊임없이 갈망하고 욕망하게 된다고, 늘 주체할 수 없는 기다림이 우울을 대신할 것이라고 말이다. 나눌 것이 없는 시대. 관계를 만들지 않는 시대. [그것]에 걸려넘어져, [그것]의 늪속에 더욱더 힘어주어, [너]를 품거나 숙성하거나 삶의 엇박자에 대해 말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고... ...말한 것에 사로잡혀 말하려고 한 맥락은 소거된 채, 말한 것만 상품처럼 유령처럼 돌아다니는 세상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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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선악혼합설. 마음. 1.2와 달리 나누지 않고 접근하는 방법이나 흔적은 어디에 있을까? 늘 '너'가 먼저 있던 것은 아닐까? 너 가운데 나. 들척임들이 풍요로운데 눈짓한번 주지 않아 되려 복잡해지는 것은 아닐까?  겹쳐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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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뱀발.

1. 곧 묵자가 출간된다고 한다. 기세춘선생님의 방대한 저작의 출발은  묵자의 삼표론 가운데 관기중국가백성인민지리(국가와 백성의 이익에 맞는지를 살펴야 한다)라는 문구의 백성, 인, 민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그에 대해 개념의 차이를 연구하게 되면서 전반적인 재검토에 들어가 연구에 진전이 있었다고 한다. 문익환목사 15주년기념식에 다녀오시고 내려와 하신 강의 뒤풀이에 하고싶은 말씀들이 많으시다. 당부도, 주문도...기업의생리,자본의 생리에 대해 치밀하고 세밀할 것을 요구하시기도, 스킨십도, 뒤풀이이야기도...4.19뒤 지식인들의 정신적 후유증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만 문화적인 공백이 있다 싶다. 좁히지 못하는, 깊어지는 방법도 몇개의 천이 있고 건너야 하는 듯 싶다. 돌아와 책들을 더 들척이다 잔다.

2. 나-너보다 너-나가 낫지 않을는지. 독백이다. 하물며 삶에 까지 개천을 넘는다는 일은 더구나. 그럴까..아닐까...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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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너와 나, 그리고 정신의 임신과 출산(作)
    from 木筆 2008-11-14 09:01 
                  0. 술을 핑계로 서경석과 대담집까지 김상봉님 책을 빌리다. 가볍게 달림 마실을 다녀오고 읽다. 미리 마음에 있던 책들이긴 하지만 펼펴 관심 장에 눈길을 주는데, 맴맴 도는 박동환, 함석헌, 한용운까지 이어진다. 고개도 끄덕여지기도 하고, [나와 너]에 대한 부분, 함석헌의 참나, 참삶 등 스쳐지나간 말들이 상기된다. [나와너]의 부분은
 
 
밀밭 2008-11-13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영혼의 새' 제가 차용해도 될까요? 글을 읽다가 이거다 싶어서요.

여울 2008-11-14 09:19   좋아요 0 | URL
본문에는 별반 좋겠쓰이지 않았네요. ㅎㅎ. 제 것이 아니라 부버님 것이네요. 아마 맘대로 쓰시라고 하겠죠. .ㅎㅎ

파란여우 2008-11-13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길어도 읽을건 읽지요.ㅎㅎㅎ
근데 지금 마루 전구가 흐릿해서 내일 바꿔달고 읽을 겁니다.
어쩌면 아침나절에 읽을터이니 숨기지 마세요.

감동을 모른다는 부분에 찔려서 계속 읽어야겠다는 전의에 불탄.^^

여울 2008-11-14 09:20   좋아요 0 | URL
댓글 달지 않았으면 객적은 소리일 것 같아 숨길지도... ... ㅎㅎ 아닙니다. 전의를 불태웠다니 더 더욱 증보를 해야겠다는 전의가 불끈...ㅎㅎ
 

  한 점 먹으러가는 길.

  하늘은 시선을 빨아들이고,

  가슴을 가늠할 수 없는 깊이로 텅 비운다.

  그 한켠에 걸려있는 구름을 음미하다보니,

  아이 볼살 솜털같은 구름향기들에 마음을 놓다.

  뒤돌아서면, 뒤돌아서면 아른거리는 구름향을 잡아내기가 어렵다.



밤. 발자욱을 감싸는 낙엽소리가 어른거려 주로로 나선다.

목련과 졸업한 뒤로 마음은 여기저기 두서가 없어진 것을 그녀석은 느낄까?

바스락거리는 낙엽소리가 포근하고

여기저기 마음기웃거리는 것 많아

궁금하기도 배부르기도 한 것을 알까?

가볍게 움직이다보니 목련에게 마음을 들킨 듯. 이내 마음이 박혀 이제 어쩔 수 없다.

따로따로 뭉글뭉글 크는 마음들을 어쩔 수 없다. 

이렇게 가끔 달빛에 너희들을 볼 수 없다면 섭섭할 것 같다. 움직이는 마당 속에 어느 덧

너와 나를 분간할 수 없음이 오로지 너희들 덕인 듯 싶다.

마음이 배부른 것도 몸이 배부른 것도.


 뱀발. 

1. 퇴근 뒤, 유혹을 자제하고 몸을 조금 덥혀준다.  눈길도 주지 않는 녀석들이 마음 속에 불쑥 불쑥 들어와 반주의 취기를 준다. 문득문득 멈춰지는 발걸음을 신호로 해서 어느덧 달리는 여우님들처럼 봉우리 셋의 울타리를 갖게 된 듯 싶다. 속좁은 성냥갑같은 아파트향은 이미 제향을 잃어버려 이렇게 나다닌다. 나다니지 않으면, 바람의 속향을 맡지 못하면 병이 날 듯. 몸은 이내 익숙해져 있음을 깨닫는다. 녀석들은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새초롬 마음 한결, 늘 목련에 올인해있던 마음을 알 것이다. 그 마음들이 뭉글뭉글 자라길 바랬는지도 모른다. 그 마음길이 자라...결국 되돌아올 것도 알았는지 모른다.

2. 늘 이렇게 빈한한 마음씀(씀이)을 이렇게 얻는 가난함이란?...  [나와너]를 짬짬이 읽고 있다. 그가 말하는 신이 스피노자나 라이프니쯔 같다. 그렇다면 충분히 공감한다. 기독교서적으로 묶여있던 것 같은데, 그점에 , 그가 말하는 너에 대해서도 십분 공감한다. [나-너]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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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8-11-12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겸재 선생의 진경산수화가 울고 갑니다.ㅎㅎㅎ

여울 2008-11-13 17:37   좋아요 0 | URL
겸재 선생님 왔다가 비웃고 갔습니다.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