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구조주의가 출현하기 전까지는 생각하는 이성을 지닌 인간 주체가 상정되었습니다만, 구조주의의 주장들은 이렇게 데카르트적인 ‘나’ 중심의 사고를 뒤흔드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2. 스튜어트 홀에 의하면 나에 관한 세 종류의 정체성이 있습니다. 온전히 나의 의지에 의한 주체적 정체성이 있는가 하면 타인과의 관계를 의식하는 상호작용적 정체성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나를 어떻게 판단할까 생각하며 남의 눈에 의해 나라는 사람을 포장하는 것이죠. 다른 하나는 푸코의 담론적 정체성입니다. 나와는 상관없이 다른 사람들끼리의 얘기와 평가에 의해서 내 주체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3. 세 번째는 고대그리스와 동양적 사유에 감동을 받고 주체에 천착한 시기입니다. ‘개인은 도덕적인 주체로 전환할 수 있는가’에 대해 <성의 역사> 2,3권에서 다룹니다.

푸코에 관해 흔히 오해되는 것은 푸코가 억압적 사회·억압적 권력구조에 대해서만 주장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절대 권력자가 나를 끊임없이 감시하고 있고 그것을 벗어날 수 없다고 말이죠. 하지만 푸코의 초점은 특정권력의 억압에 대한 것이 아니라 권력의 생산에 대한 부분입니다. 어떻게 권력이 생산 되는가. 그 과정에 주체의 구성이라는 문제가 자리합니다. 도대체 푸코는 왜 그리 주체에 관심을 기울일까요? 자신의 존재론적 위치로부터 철학을 전개하는 태도가 푸코의 매력입니다.

                                          [녹취록에서 가져온 몇꼭지, 녹취록은 아래 접혀있음]
 
     


후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작은강의를 듣지 못한 이유도 있지만, 이것저것 궁금증도 몰려왔기 때문입니다. 녹취록을 보고나니 여러 맥락들이 잡혀지는 것 같아 반갑고 고맙기도 합니다. 뜨문뜨문 보아서 뜨문뜨문거렸는데, 맥락을 잡아주니 중동난 느낌들이 이어지고 살아나는 듯 반갑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무식한 이야기 거들까 합니다. 논의한 이야기를 일상으로 가져와 봅니다. 푸코의 이야기를 전제로 한다면 역으로 담론을 생산할 수 있고 권력을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죠. 주체라는 것도 역으로 데카르트의 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너에 섞여있거나 담론에 의해 구성된 나-너가 있다는 이야기지요. 그렇게 구성된 근대적 주체나 근대의 도구들은 여전히 지금 숨쉬고 있다는 것으로 정리해보아도 될까요?

1.  성인이 되고, 삶을 살면서 내가 가진 생각들에 의문을 별반 제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남들의 생각에 관여하지도 않습니다. 그 생각을 우러나게 하는 주변의 생각장치들에 대해서도 물음을 던지지 않는 세상이죠. 옆집이 가전도구를 구입하면 하고싶으니 그렇게 하구. 남들이 아이들 그렇게 하면 그렇게 하구. 성인이 된 뒤로 나에 대해 생각할 여유조차 없는 끊임없는 살아지기를 강요당합니다. 그리고 가끔 모든 주변이 거세된 자아만을 강요하기도 합니다.  그런 나가 너로부터 비롯되었다면, 거꾸로 담론을 만들, 하고싶게하는 나-너의 복수체계를 만들 수 있다면, 주입된 욕망의 체계에 구멍을 낼 수 있다면 하고 생각해봅니다.

2. 너의 생각을 품을 수 있다면, 너의 하고자하는 마음들을 스며들게 할 수 있다면, 그런 너-나의 하고픈 이야기들이 회자되고 향유하고 싶어진다면, 인식하는 것을 너머 만든다면 만들 수 있다면, 균열을 낸 지점들이 또 다시 너로 스며들 수 있다면....

3. 니체, 들뢰즈, 푸코의 자살은 자아나 주체, 강한 나만으로 사유를 극단으로 쌓아올린 때문은 아닐까?  도자기는 비어있어 도자기인데 마치 빈 것을 있다라구 있어야한다구 강박한 연유는 아닐까? 서양철학의 빈 지점들에 대해서도 궁금해지고 질문하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아~ 섣부른 오독인가요...

0. 아래 작은강의 녹취록--이것도 너무 기네요. 다 읽으셔야 합니다.

>> 접힌 부분 펼치기 >>

 

뱀발. 오늘 올라온 녹취록에 보탠다. 좀더 포인트를 잡아 이야기를 건네야 하는데, 몽글하다싶다. 건네고 싶은 이야기를 제대로 정리도 못하고 있다는 얘기같다. 생각을 부여잡고 있는 것들에 작은강의로 도움을 많이 받는다 싶다. 좀더 일상으로 모임으로 다르게 품어봐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인데 혼자만의 오버일까? 또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모를 소리만 한다고 구박받겠다 싶다. 고생한 한선생님께 거듭 감사. 술한잔 기부해야겠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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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밭 2008-11-26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꼼꼼이 읽으면 머리에 쥐가 날듯. 그래서 설렁설렁 건너뛰며 제맘대로 읽었어요. 휴~

여울 2008-11-26 17:17   좋아요 0 | URL
꼼꼼이 읽으면 쥐나는 글이죠. 설렁설렁 읽으시는게 낫지요. 다음에 혹시 남는 단어들 있으면 다시 보세요. ㅎㅎ
 

     
  [경계를 그어 소유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데 이 목적이 있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  
     



[윤증고택 홈피에서 가져옴]


후기의 금을, 아니 밑줄을 장난삼아 그어봅니다. [경계] [소유] [관계] [벽]...

아마 사람은 하루에 숨을 팔만구천몇번 쉰다죠. 후기를 보다 딴 생각을 해봅니다. 아마 우리가 하루(의식-반의식-무의식, 반의식은 뭔지 모르겠지만서두--낮술상태인가??)에 직선을 팔만팔천몇번을 본다고 칩시다. 어릴 때부터 누적된 직선은 아마 차곡차곡 마음 어느 한구석에 쌓이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억지를 부려봅니다. 이런 직선이 자연을 닮은 선에 하루 팔만번을 노출된 친구와 만나 연애를 한다고 해봅시다. 아마 직선은 늘 곡선을 찌를 겁니다. 이곳저곳. 2급수에 사는 물고기에 1급수에 살 수 없듯, 2급수 직선은 1급수 곡선을 망가뜨릴지 모릅니다. 곡선은 직선으로 바뀌어야 살아남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온통 직선으로 가득찬 냇가는 3급수, 4급수로 망가져 1급수인 곡선도, 2급수인 직선도 살 수 없을지 모릅니다. 자연에 대한 치유력은 아마 직선을 품은 곡선들이, 직선에 상처난 곡선들이 더 유리할 것입니다. 편안하고 따듯한 선들은 아마 이렇게 바쁜 직선에 맞지 않는다고, 더 날카로운 직선을 들이대는 녀석들에게 핀잔을 받을지도 모르지만, 직선의 생명력은 늘 파닥거리다 맙니다. 그래도 어릴 적 곡선의 아우라와 동산을 내달리던, 곡선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치유의 능력을 회복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날카로운 직선에 끊임없는 압박을 당하는 우리 아이들은 차마 장담을 할 수 없습니다. 뾰족한 직선들이 만나 표독한 칼끝이 될는지도..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지만...

한권의 책들을 마음에 가져와 봅니다. 소유가 목적이 아니더라도 늘 경계짓고, 선을 긋는데 익숙한 일상들을 되돌아봅니다. 사람들 사이를 늘 직선으로 경계짓던 나날들. 사람으로 아프고 사람으로 슬픈 경계의 직선을 사람으로 기쁘고 사람으로 넉넉한 곡선으로 두면 어떨까요. 그러지 못한 스스로 돌아보며 자책하기도 하지만, 그 경계의 곡선을 구멍 숭숭나게하거나 햇볕 스며드는 한지이거나 마음 들낙거리는 경계의 점선을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나에 대한 애착이 강하면 강할수록, 경계가 강한 듯 보이는 사람이 약하다죠. 너와 경계에 너가 스며들면 들수록 곡선으로 닮아간다죠. 경계가 허물어진 담엔 관계의 꽃이 핀다죠. 관계로 시작한 나날과 일상. 그것이 늘 나날을 포위하여야 한다는데... ....

그러고보면 시도 음악도, 미술도 조각도, 인문도 철학도 경계를 긋고 소유하려는 욕심이 너무 강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모두 네모난 직선이거나 날카로운 직선만을 고집하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요. 그 녀석도 흐물흐물 허물어져야 할터인데. 미학모임 그렇게 날카로운 직선의 성들을 무너뜨리는 재미를 느껴보면 어떨까요.    몇꼭지 생각이 스며들어 흔적을 남기네요.  

후기도 누가 독점하거나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죠. 한참 명사형이냐, 동사형이냐가 유행했죠. 아니 지금도 관계지향인 동사형이 우리코드에 맞는다고 하며 그런 책들이 나온다죠. 그런데, 우리에게 맞는 것은 부사나 형용사형이라면 어떡하죠. 아마 부사형이 더 적절할 겁니다. 전통한옥의 벽이 그런 것처럼 관계에 박자와 멋을 부려주는 그런 것 말입니다. 아마 동사와 명사를 타고넘는 그런 맛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우리 체질에도 맞고, 우리 정서에도 맞고....음 그러면 여기 후기도 그러면 안될까 싶기도 합니다. 더 늘이거나, 보태거나, 고명을 위에 살짝...그런 것을 보면 저도, 당신도 우리도 직선의 소유의 경계안에 사는 우물안의 올챙이임에 틀림없는 것 같아요. ㅎㅎ.  그냥 횡설....날이 싸늘합니다. 건강유념하시구요.

 뱀발.  지난 주 미*모임 후기에 덧글을 단다. 내용과 형식, 내용-형식의 경계는 없다. 그것을 발딛고 넘어선 것들이 우리에겐 많다. 판소리든 산조든......그런데도 중독된 머리는 다 버리고 다른 것에서 제것을 찾는다. 그리고 나같은 인간은 관계를 다버리고 나를 찾는다. 그 나란 것이 온전히 너로부터 인한 것임에도 그래서 생각도 몸도 마음도 관계도 비좁은 직선의 틈바구니다. 명사란 사상에 중독되어 동사도 형용사도 부사도 어쩌지 못하는 부끄러움이나 자화상만 잔뜩 겹친다.

 

>> 접힌 부분 펼치기 >>



 [한국목재신문에서 가져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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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8-11-25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정합니다.하루에 숨을 이만삼천사십번 쉰답니다. 혹 틀릴지도 몰라 다시 찾아보고 있습니다.
 
지혜채널F만들기(作)

 

 1. 지난 토요일 15명정도 참석하여 15편정도 시연회를 두서없이 하며 마무리를 한다. 진행을 하며 늘 걱정되는 부분은 중간에서 말미로 접어드는 부분이다. 틈틈이 신경을 쓰지 못하면, 그 마음들이 고스란히 전달되고 결과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모르면 묻고, 전자우편들로 반응이 온 점, 주제를 마음 속으로 가져가 삭힌 점들이 고맙다. 주중의 팀들을 신경쓰지 못하였는데, 조금 전 확인을 하여보니 편집한 것이 마음에 든다. 교육자료로 활용하면 괜찮겠다 싶다.

 2. 주제완결이나 결론부분, 지재권관련하여 손을 볼 부분들이 있다. 서툴게 블로그?용(곧 거둬들일 예정)이니 부족하거나 아쉬운 점들을 봐주시면 무척이나 고마울 듯 싶다.

 3. 늘 마음이 모질지 못하여 회원가입 권면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우편으로 꽁지를 내릴 듯 하는 가입청탁이 무슨 효과가 있단 말인가? 그래도 친구들 이름과 얼굴, 약간의 성격을 알 듯 말 듯하고 아쉽고 섭섭한데 서운함이라도 강요를 할 것을 그랬나 싶다.

 4. 형식적인 소감들이겠지만, 이렇게 속아 넘어가 주는 것이 나름 선생으로 도리가 아닌가 싶기도 하구. 녀석들이 봉사활동이라면 아무 생각없이 시키는대로 몸으로 떼우는 거라는 선입견들이 있긴 한 모양이다. 그러다가 고민도 하고 마음도 쓰다보니, 이런 것들이 남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한 것처럼 쓴 녀석도 있다. 졸업 전에 그래도 사회를 위해 해보고 싶었다는 친구...남을 위해 하는 이런 일들이 보람도 가져주고 제 몫이 아니라 남 몫으로 해도 이렇게 뿌듯할 수 있다는 또 다른 판에 박힌?? 점수따기 후기도 보인다.

 5. 연애하구 남자 꽁무니, 여자 꽁무니 쫓아다닐 때이기도 한 것 같은데 착한 녀석들만 걸려든 것일까? 혹 이곳을 건네보는 녀석이 있다면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뱀발.

-1. 매는 늘 맞아야 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이니, 모호하거나 단체의 이름이 가해진다면 이런 사견의 관점은 좀더 전체적인 관점으로 다듬어져야 할 것이다. 유혹의 기술이 늘 형편없어 회원들과 함께하지도 공유의 기술도 별반 많지 않았던 점들도 말이다.  이런 부분들로 한편 서운함도 아쉬움도 공존할 때가 있다. 워낙 표하지를 않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말이다. 가끔 마음에 핵(코어)이 여물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아프다. 찰싹철썩 달라붙는 모임의 녹말가루같은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행동에 반작용으로 동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생기발랄 원기절정인 사람들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지금여기 다 있다. 그 마음의 시선을 조금 아주, 전분같은 시선과 여유를 참*에 차입해주면 되지 않을까?  사실 나, 심들다. 너로 인한 일들을 이렇게 독립하듯 하는 각개약진은 제발 하고 싶지 않다. 취향도 아니고. 종자돈이 아니라 종자마음도 미약한 것은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거울을 보며 이야기해본다. -2. 녀석들의 흔들린 마음을 훔칠 수는 없을까? 숫기도 없는 나로선 어떻게 연결의 끈을 만들 방법이 생각나질 않는다. 품평을 해서 상을 줄까? 아니면 자료를 편집해서 학교로 보내  문제집단으로 매도?를 당하면...아니면 일대일 대면을 해야 하나? 취직한 녀석들만 따로 교섭기회를 가져야 하나? 늘 하듯 짧은 인연으로 매듭짓고 싶지는 않은데, 여전히 능력밖의 일인가? 녀석들이 세상과 접하는 시선이 그때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을터인데... ...그러자고 동한다고 하면 그 다음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이지? 대책도 없이 그러고 있다는 생각도 같이 든다.

좀전 ucc올리는 시간이 유난히 걸려 마저 보니, 아 그래서 ~ 일면 긍정하면서도 다른 면 반면감성이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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