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의 얕은 개울가에서 사람들은 무엇인가 찾고 있다. 작은 돌들을 치우며 찾지만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하는 것 같다. 어깨너머로 건네보지만 찾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무엇을 찾고 있는 계곡이 보이는 상류로 화면이 옮겨진다. 아래로 흘러가는 평평한 곳에 신발이 하나 있다. 물에 빠진채 떠있는 낡지 않은 검은색 런닝화다. 옆에 있던 그(녀)는 한쪽은 신발을 신었는데 다른 한쪽은 맨발이 보인다. 이것이라고 이것을 신어보라고 꼭 맞을 것 같다고, 이것이 찾는 것이 아니냐고 다짐을 주지만, 갸우뚱한다. 나는 주장을 반쯤 섞었지만, 그것이 만족한다는 것인지 표정을 자세히 볼 수 없다. 그 신발을 신은 것인지 아닌지 꿈은 그렇게 옅어지고 끊기었다. 그렇게 끊긴 기억은 계곡이 출발하는 광장에 다시 이어진다. 많은 사람들 속에 그 계곡의 몇사람 얼굴이 선명해지고 또 다시 옅어진 흔적을 끝으로 꿈에서 벗어난다.

 
     

1.

새벽녘 꿈을 돌이켜봅니다. 이렇게 꿈을 활자화하고 덧붙이다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의식의 집요를 벗어난 놈이 내 몸에 둥지틀고 기회를 엿보는 것도 별 것 아니다 싶은 생각요. 애써 끼워맞추려는 의식의 눈으로 봐서 그런가요? 지난 번, 일터 사람들이 꿈에 나왔죠. 의식적으로 이야기는 하지 않지만 꿈이 말하는 것을 보면, 꿈속에서 잠을 더 자게하려는 해소가 일터에서 인정투쟁이었죠.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이 평소의 의식을 벗어나 그렇게 해소해버리더군요. 깨고 나서 나의 생각의 그릇이 그만하구나라구 말입니다. 더도말고 덜도말구. 아마 지켜보는 사람들은 알 것입니다. 나의 무의식의 범위까지 아마 미리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 놈이다하구 말입니다. 한계와 생각이 머무는 곳. 말입니다.

다른 꿈, 다른 생각, 다른 마음들을 갖기가 쉽지 않아요. 나를 버리지 않으면, 달라지지 않으면. 늘 제 한계에 제가 걸려있는 모습을 되새김질 합니다. 나르시즘이 너무 강한게죠.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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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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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주말 알랑 드 보통 책을 읽었습니다. [동물원에 가기]를 읽었죠.  독신남. 일과 행복, 진정성, 슬픔이 주는 기쁨, 따분한 장소의 매력, 희극....전부 추상적인 주제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보통씨에게 가면 표준화되고 공장에서 제조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추상을 이렇게 상품처럼 찍어낼 수 있다는 능력이 대단하다 싶었죠. 그리고 한편 재단하는 것은 못된 습관이긴 하지만 좌-우로 선을 매긴다면 놀라운 능력에도 불구하고 가운데에서도 한참이나 우측에 서있다 싶더군요. 경험을 표준화하는 매력이라 그 덕을 보고 있구나 싶더군요. 그리고 다음날 [불안]을 보았죠. 왠 걸. 이 친구 장난이 아니네 싶더군요. 여기저기 필요한 사람을 편집하는 것이 아니라 녹여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영목 번역자가 그랬듯이 일상에서 사회에 대한 관심으로 기울여진 것이 의아하다고 했는데. 생뚱맞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한참 보통씨 이야기에 귀좀 기울여야겠구나 싶었어요. 우리세대나 우리생각장치들이 만들어내는, 조미료같은 맛에 길들여진 생각을 갖고 있는 보통씨의 보통이야기게 관심 좀 기울이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책장을 덮으며 드는 느낌들이 있더군요. 많은 분들을 지금여기에 불러내지만, 그럼 보통씨 당신은 뭐야? 모든 사람을 평균화하는 당신의 포인트는 뭐냐구 묻고 싶었습니다. 아직 가슴이 보이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머리 속에서 가슴으로 내려오기 전인지? 그냥 한번 써 본 것인지? 그 가운데 보통씨는 걸려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만약 가슴으로 내려온다면 당신을 느낄 수 있을 것이고, 도로 머리로 올라간다면 잊혀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정신차리세요. 평균율의 미를 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당신의 뜨거운 마음과 몸을 보고 싶기도 하군요.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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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뱀발. 1.  메모 가운데 정치적인 접근이 마음에 든다.  지위 불안에 대한 해법 가운데 하나로 정치를 들고 있는데 꼭지 2.1.4 처럼 제도에 대한 무관심이나 고정관념은 정치에 불감하게 한다. 그것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날씨처럼 변덕이 심하고 변한다는 사실에 관심을 두지 않으면 늘 개인에 뭍히거나 웃자란 욕망에 묻힐 뿐이란 지적이다.

3.

아트 방송을 잠깐 보았습니다.  조지오웰 다큐와 박수관 민요이야기도 듣고 보았습니다. 오웰. 채 쉰이 되기 전이더군요. 최근 돌아가신 공공연구노조 김준씨도 겹치고, 서리서리 맺힌 서도,남도, 동도?민요를 듣다보니 지난 번 스친 책들이 겹쳤습니다.  p.o.u.m/ 화전민의 삶이 그렇게 서려있는 민요들이 왜 그런지. ... ... 보통씨의 보헤미아나 해답으로 제기된 여러 흔적들이 스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엄마와 나]는 읽다가 중동 나 있습니다. 다음에 이야기 나누기로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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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에 혁명의 자격을 부여하여야 하는가?(作)

[무엇]을 할까가 고민이죠. [무엇]을 해야하는데, 무엇이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무엇]을 물어봐도 답변도 잘 해주지 않고 응답도 무덤덤하기만 합니다. 어제 [파시즘] 작은강의가 있었죠. 파시즘이 무엇일까?라고 물어보면 막막합니다. 파시즘이 무엇이다라고 말하는 순간, 무엇이다라고 하며 파시즘을 꽉 잡아버리는 순간, 손가락사이를 빠져나가는 놈들이 무진장 많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한번, 조금만 힘을 다른 곳으로 써 봅시다. 궁금증을 무엇이다에 두지말고 어떻게 생겼을까? 왜? 그랬을까?에 방점을 두어보는 겁니다. 파시즘이 대중들에게 어떻게 각인되었는지, 파시스트들이 왜 그렇게 행동한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어보는 겁니다. 어떠신지요? 파시즘이 하나씩 둘씩 걸려들어오나요? 파시즘이 무엇이라고 정의내리기 이전에 전후좌우의 맥락에 신경을 써야하는지? 가 들어오나요? 이데올로기의 그물로도 부족하고 맑스시트의 그물도 그렇고 전체주의 설명도 부족하죠.

어떻게? 왜?의 힘은 무엇일까요? 파시즘은 무엇이구나라고 정의하는 순간, 파시즘에 대해 지금 이상 알거나 느낄 수 없습니다. 설명할 수 있을 뿐이죠. 그런데 파시즘이 어떻게? 왜? 라는 물음은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궁금하죠. 왜 일본이나 스페인이란 나라의 거동에 궁금해해야하는 것인지 말입니다. 조금 샛길로 접어들었군요.

어제 뒤풀이 가운데 이야기, 아니 고민이 번져 이어봅니다. 우리 모임은 무엇을 해야합니다. 잘 해야하는데, 초조하기도 하고, 실무의 동선이나 쳇바퀴에 잡히면 어지간히 딴 생각을 하기 힘듭니다. 무엇에 대한 강박이라고 이름을 붙일까요? 사람들은 무엇을 내놓기가 쉽지 않습니다. 무엇에 구금되어 있는 [어떻게]나 [왜]를 시간에 얽매이지 않게 석방시켜버리면 어떨까요? 어떻게 상설위원회나 [왜왜]에게 자유를 주면 어떨까요?

아, 그 얘기를 하지 않았군요. [어떻게]할까? 어떻게를 [무엇]에게서 자유롭게 두려면 생각도 해금시켜주어야 합니다. 뒷담화를 비롯하여 희노애락애오욕을 다 인정하여야 합니다. [무엇]에 거스른다고 째려보거나 노려보거나 하면 되지 않습니다. 무조건 달라야 합니다. 의견하나하나 색깔하나 하나, 기분 하나하나 그대로 저축을 시켜두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이 색, 저 색, 이맛 저맛이 창고에 가득하도록 놓아두셔야 합니다. 그러니 거기에 시간이란 족쇄를 채워두시면 되지 않는 겁니다.

그리고 [왜]에 대해서도 고민이 하나 둘. 셋 쌓아두는 겁니다. 왜 하는 거야? 왜 했느냐? 왜 하지 않는거야? 왜, 어떻게하면도 섞어두시거나 같이 맛을 보거나 해야합니다. 진도가 지나치게 많이 나갔나요? 그럴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서로 다른 왜나 서로 튀는 어떻게가 많으면 많을수록 서로 튀어 올라가는 이견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안에 앞으로의 무엇이 있을 것입니다. 밑져야 본전 아니겠어요. 아님말구. 아니? 정말 앞날이, 모임의 미래가 있습니다. 있을 겁니다.

무엇에 막힌다면,  그래요. 거기에 붙어있는 [어떻게]와 [왜]를 자유롭게 놓아둡시다. [어떻게]와 [왜]의 연대가 고민을 숨펑숨펑 낳도록 멍석깔아줍니다. 성숙한 [무엇], 다른 [무엇]을 위해서 말입니다. 성원이 한분 한분 [어떻게]와 [왜]에 마음을 주지 않는데, 대행만 바라는데 굳이 무엇을 할 필요가 있나요? 무엇을 지키는 사람들은 무진장 힘듭니다. 그 무거운 짐을 왜 져야 하나요? [어떻게-왜]는 모임의 성원의 마음을 뺏을 수 있습니다. 그리 더디가는 길이 아닐 겁니다. 새로운 무엇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무엇을 해볼 수 있습니다.

[무엇]의 짐이 버겁긴 하지만, 늘 여백을 딴 짓을 하거나 딴 생각을 하는 부분들에 마음의 공간을 열어두는 것이 다 [무엇]을 위한 일입니다. 달아난 [어떻게와 왜]가 돌아와 [무엇]과 같이 버무려지거나 같이 산다면 나날이 달라질 수 있을 겁니다. 아마 그 속에는 회원들의 아픈 마음, 기쁜 마음, 슬픈 마음, 들뜬 마음들이 담겨있을 수도 있으니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겠죠. (다른생각 다른마음 다른논쟁 색다른모임마음 궁금해지는마음-모임)









뱀발. 

1. 달님을 잊은지 오래~. 아침 어제 묶어둔 차를 가지러(핑계삼아 달림) 갑니다. 하늘은 비와 햇살을 절반씩 품었습니다. 가는 길, 꽤를 내어봅니다. 카이스트 전시회와 시립미술관을 끼고 가자구 말입니다.(그런데 손전화사진을 찍어두어도 프로그램이 맛이가 남길 수가 없어 아쉽습니다.) 카이스트에 전시관을 몇군데 둘러보니 관람객이 유일무이하더군요. 느낌이올듯 말듯한 전시입니다. 그래도 아이들과 함께가면 재미난 전시가 될 것 같군요. 그런데 왠걸 절반의 햇살이 비로 바뀌어버렸네요. 다른 전시관을 가니 햇살로..이거 비나 흠뻑 맞을 것 같네하구 천천히 달리는데, 검은 먹구름에 아차 싶네요. ..어쩌나..하는 순간...그래요. 비가 눈으로 바뀌었어요. 전에 갈증만 나는 첫눈이었는데 제대로다 싶습니다.

2. 그렇게 낙엽도 내리고 첫눈도 내리는데 매그넘사진전은 설렁, 이응로미술관은  덜컥, 걸음이 머뭅니다. 대형 브로마이드 [외금강]도와 [대숲]그림앞에 한참 넋을 잃고 있다 손전화로 찰칵~(후레쉬도 없는, 좀 봐주시지..) 찰칵~하다고 그만 경고받았습니다. 마음이 찔려 새그림은 마음에만 넣고 옵니다.(가운데 낙서참고) 그래요. 그러고 나니 마음의 갈증이 무엇이었는지 모르는데 조금 풀린다 싶습니다. 외금강도가 무척이나 큽니다. 계곡 하나하나 넘다보니 그만 마음도 덜컥 풀려버렸습니다. 다시 보고 싶군요.

3. 딴짓이군요. 그래요. 모임.에 잡혀있다보면 아쉬움이 많아요. 늘 [어떻게]와 [왜]에 마음이 가시처럼 걸립니다. 다 마음이 같지 않죠. 산행할 때 돌탑처럼, 그렇게 하나씩만 던져주면 좋을텐데. 그것이 쌓이다보면, 그렇게 다른 것이 섞이다보면 더 풍성한 그런 것일텐데 하면서도 점점 달라붙는 조급함이 문제입니다. ㅎㅎ  우리의 마음은 왜 그렇게 [무엇]에 구할이나 가 있는 것인지? 그 [무엇]이 시덥지 않으면 눈길 한번 제대로 주지 않는 것인지 말입니다.

4. 그런 것을 보면 우리는 대부분 [명사]에 갇혀산다는 말이 적절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동양이고 관계에 익숙하다고 하는데, [동사]라고 하는데 우리 심보, 제 심보는 늘 [명사] 사대주의에 푹 절여져 있습니다. 어디에나 [어떻게]나 [왜]의 공간이 열려져 있지 않습니다. 수다를 떨고 싶어도 수다 떨 사랑방이 없습니다. 제가 몸을 담고 있는 모임도 그러하죠. 다른 모임에도 [어떻게]란 [왜]란 마음 하나 기부하지 않는 인색함을 보면 저도 그러한 놈이라고 자임합니다.

5. 미술관을 나서자 눈발이 가뜩이나 굵어졌습니다. 바람도 세어지구요. 몸이란 놈이 약죠. 이내 달님에 익숙해져 편안한 티를 냅니다. 그렇게 차를 가지러 일터로 가는 길이 세시간가량 걸렸네요. 주말 잘 보내시구요.

6. 행여 글이 연결된 모임에 누가 되는 것은 아닌지 합니다. [무엇]의 구할이 [어떻게]와 [왜]로 흘러들어갈 수 있는 구조나 시스템에 대해 걱정하고 고민하고 있구나라구 너그럽게 봐 주시길 바랍니다. 방법이 없을까요? 절반이라도, 절반만 되면....배부를 듯 싶어요. 뭘할까? 걱정도 없구 말입니다. 너도 나두 이렇게 하고 싶다라고,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이런 이런 이유로 이렇게 해야한다. 저런 저런 이유로 저렇게 해야한다라는 성원들의 만찬은 요원하기만 한가요. ㅁ.

7. 제목이 선정적이지 않죠. ㅎㅎ 나름 애를 쓴건데. 하하



8. 마음과 모임을 번갈아 보다나니 낱글자가 같아 이리저리 섞어본다. 저리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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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밭 2008-11-29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목이 '대화'였던가요? 뭐라고 말하고 있던가요? "어떻게...?" 나 "왜...?" ???? ㅎㅎ
시간되시면 대나무나 대숲도 그려주세요.ㅎㅎ

여울 2008-11-29 17:55   좋아요 0 | URL
하하. 기발한 생각이시군요. 그렇게 넣었습니다. 고암선생께는 외람되지만..ㅎㅎ

파란여우 2008-11-29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네르바가 매화와 친밀한 사이인가요? 아직 본 적이 없어서요.ㅎㅎ
마당님이 왜 김영민씨 글을 애독하는지 알것 같기도 한.
(문체나 사유방식에서)<=좋다는 뜻에요.

여울 2008-11-29 23:38   좋아요 0 | URL
허걱. 이래서 낙서를 하지말아야 한다구요. 절필을 고해야하나요. 찾는데 시간걸렸어요.ㅎㅎ 그렇게 넣었습니다. 거듭 외람되지만..ㅎㅎ. 김영민선생은 아직이에요.ㅁ 좋아할 사람들이 많아서..ㅎㅎ 아직은 여우님보다는 한참 못하죠.하하
 
[펌] 1988년 칸느광고 대상 작품_ 워싱턴 올리베또감독 작

 

 

 

 

 

 

 

 

 

 

 

 

 

 

모처럼 퇴근 뒤 도서관에 들러 독서시간을 갖는다.  책을 알랭 드 보통 책 두권과 전에 봤던 [호모파시스투스] 책을 빌리다.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보았던 장을 다시 보니 되살아난다 싶다. 다소 산만하게 전개되는 [파시즘]을 [계급]이 있는 9장만 여운을 남겨두는데 다소 산만하다 싶다. 느낌이 오는 것이 아니라 퍼지는듯 산란되는 듯하다. 이에 대한 느낌은 또 라이히나 가타리에서 오는 것과 다르다. 최근의 논쟁이나 이론을 반영하는 '새로운 합의'와 색깔이나 강도에 엄연한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잠도 자야하니 [작은강의] 뒤의 느낌들과 버무려 흔적을 남겨야지 싶다. 여부는 전적으로 제마음... ... 지금-여기에서 어떻게 보아야할는지도 ...  다소 제목이 선정적이기도 한데 읽은 뒤 많은 부분 공감한다. 그 이유도 나누고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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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모임의 꽃, [어떻게]와 [왜]의 첫날밤, 가출?, 가석방~(作)
    from 木筆 2008-11-29 15:09 
    [무엇]을 할까가 고민이죠. [무엇]을 해야하는데, 무엇이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무엇]을 물어봐도 답변도 잘 해주지 않고 응답도 무덤덤하기만 합니다. 어제 [파시즘] 작은강의가 있었죠. 파시즘이 무엇일까?라고 물어보면 막막합니다. 파시즘이 무엇이다라고 말하는 순간, 무엇이다라고 하며 파시즘을 꽉 잡아버리는 순간, 손가락사이를 빠져나가는 놈들이 무진장 많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한번, 조금만 힘을 다른 곳으로 써 봅시다. 궁금증을 무엇이다에 두지말
 
 
 

 

 

 

 

 

 

 



여전히 '가능한 선택지' 파시즘에 대하여... (평점:)

http://blog.aladin.co.kr/cognize/1763934 인식의힘(mail) 2007-12-16 16:23

  달력을 들여다보다가 깜짝 놀랬다. 보름 남은 2007년 때문이 아니라 대통령 선거 3일전이다. 총선과 달리 비례 대표도 없다. 한 놈만 정해서 찍어야 한다. 2002년과 다르다. 다시 5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없지만 놈현과 비교될 만 한 놈도 없다. 이제 정치도 개인의 역량과 능력보다 시스템과 제도 그리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보는 데 그렇게 될 수는 없다. 4천만이 한 마음이라면 그게 어디 사람 살만한 사회인가. 어쨌든 선택과 결정의 순간이 다가오지만 감동도 희망도 없는 선거가 돼 버린 지 오래다. 콘크리트 지지층의 결집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하긴 맹박이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나라가 망하기야 하겠나. 아니 망해봐야 정신을 차리지. 한국노총이 맹박이 지지선언을 하는 꼴을 마르크스가 봤어야 하는건데. 희대의 코미디가 벌어지는 현실 때문에 더 이상 ‘개콘’이나 ‘웃찾사’는 빛을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박정희를 파시스트라고 볼 수 있을까? 21세기에 다시 읽는 파시즘은 무엇으로도 바꾸기 힘든 인간의 욕망과 본성들이 내재해 있다. 대중들의 파시즘에 관한 심리를 가장 탁월하게 읽어낸 사람 중의 하나인 빌헬름 라이히는 <대중심리의 파시즘>을 통해 “파시즘이라는 용어는 자본가라는 단어가 욕설이 아닌 것처럼 욕설이 아니다. 그것은 매우 특수한 종류의 대중지도와 대중적인 영향력을 특징짓는 개념이다. 즉 파시즘은 권위주의적이며, 일당체제이며 따라서 전체주의적이며, 또한 권력이 본질적 이해관계보다 우선하며, 정치적 목적을 위하여 사실이 왜곡되는 체제인 것이다.(P. 307)”라고 선언한 바 있다.

  나치의 상징이었던 하켄크로이츠를 인간이 얽혀 있는 성적 상징으로 읽어 낸 라이히는 성경제학과 가족 내의 억압 구조를 통해 대중들의 파시즘에 경도되는 현상을 간파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처음 사용했던 ‘파시스트fascist’라는 용어는 보수와 진보 어디에도 기댈 수 없었던 정치 세력과 20세기 초 근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민족주의와 결합되어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도 했으나 상황과 시기에 따라 각기 다른 형태로 발현되었다. 제 1, 2차 세계 대전을 통해 개혁과 혁명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개별 국가들의 정치 상황과 맞물렸던 파시즘은 투표를 통한 민주주의의 실현과 여성의 정치 참여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유럽을 강타한 인종주의와 반유대주의, 페미니즘과 민주주의 등 다양한 ‘이즘ism’들의 향연 속에서 파시즘은 강렬한 유혹으로 대중들을 사로잡는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보수 세력에게는 민주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물결이 유럽을 뒤덮고 있던 시기, 바야흐로 혁명의 후폭풍에 시달리면 세상은 불안한 동거가 계속되었고 이탈리아와 독일을 비롯한 나라들에서 서서히 검은 그림자가 드리운다.

  홀로코스트로 대표되는 히틀러의 광기는 단순하게 우생학과 인종주의로 설명될 수 없다. 유대인의 절멸만이 게르만 민족국가의 완성이라는 단순한 이데올로기는 히틀러나 괴벨스의 개인적 성향의 문제로 귀결될 수는 없다. 케빈 패스모어의 <파시즘>은 유럽에서 자생한 ‘파시즘’의 기원을 추적하고 있으며 본격적으로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파시즘의 광풍이 일어나기 전의 파시즘에 대해서도 고찰하고 있다. 20세기에 들어 본격적으로 보수주의와 결합한 파시즘의 현상을 되돌아보며 이것이 민족과 인종과 어떤 상관관계를 맺고 있는지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다. 젠더와 계급과의 관계도 빼놓을 수 없는 관점 중의 하나이다.

공산주의 초기의, 파시즘에 대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의는 1935년에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에서 나온 것인데, 그것에 따르면 ‘권력을 장악한 파시즘은 가장 반동적이고 쇼비니스트적이며 제국주의적인 금융자본주의 요소의 개방적이고 테러적인 독재체제’다. - P. 35

이 관점은 경제적 관점에서 자본주의 관점에서 바라본 파시즘의 대한 정의이긴 하지만 파시즘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앞서 언급한대로 더더욱 놀라운 것은 파시즘도 결국은 “민주적인 사회를 조직하기 위한 선거와 기술적 수단이 없었다면 파시즘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P. 72)”라는 저자의 주장이다. 결국, 파시즘도 우리들의 선택이었다는 전제가 가능해진다. 이 책은 파시즘의 역사와 변천 과정 현실 정치와 현실과의 관계를 고찰하면서도 여전히 ‘here and now지금-여기’에 초점을 두고 있다.

  폭력과 대응 폭력은 미국의 패권적 제국주의와 이슬람문화와의 갈등 관계를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이 무한 순환 구조는 권위주의의 출현과 더불어 파시즘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민족적 대중주의’가 파시즘의 부활을 예고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노파심은 기우에 불과하기를 바랄 뿐이다. 저자는 이것이 단순한 걱정과 우려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 언제든지 다시 부활할 수 있는 강력한 흡인력을 지닐 수도 있다고 경고하는 듯하다. 민주주의 제도의 우월성과 단순한 믿음만으로 인류의 역사를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광기와 폭력은 친구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2007년의 현실은 어디쯤 위치해 있는 것일까? 하늘 위로 올라가 내려다보고 싶다. 아득한 태초에서 출발해서 보이지 않는 미래로 여행 중이라면 좀 더 멀리 내다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긴다. 아니 지금 현재의 모습보다 먼 미래의 모습보다 짧은 미래라도 그 끝을 알 수 없는 불안한 미래에 대한 우리들의, 아니 타인들의 희망에 대해 살펴보고 싶다. 그래도 2008년은 시작될 것이고, 우리의 삶도 계속되겠지만 파시즘이 여전히 ‘가능한 선택지’라는 저자의 목소리는 사람들을 공포 속에 몰아넣기에 충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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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어요. 그래도 꼼꼼이 읽으셔야해요. 당신의 대출이자가 걸린 문제이기도 하니까요. 당신 월급이나 일자리에 관계된 문제이기도...아니 당신 삶에 관한 현실에 대한 진단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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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밭 2008-11-26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넵. 잘 읽었어요. 꼼꼼이는 아니고 얼렁뚱땅...ㅎㅎ 다음번 작은강의 '파시즘'도 연장선상에 있는 것 같군요.

여울 2008-11-26 17:18   좋아요 0 | URL
얼렁뚱다앙. 답답한 이야기여서 미안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