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이 나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실은 놀랐어요. 멀티영화관이나 롯데월드나 일상에 있는 건물들이 무엇을 우리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인지? 갸우뚱했는데 모임 속에서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럴 수 있겠다 싶더군요. 그래서 그렇게 생각을 해보면 역사들이 사람들을 낯설게하고 뱉어낸다는 느낌도 들기도 한 것 같아요. 서울역사를 보면 사실 넓직하고 시원하다는 느낌도 들었거든요. 1)  
   

할인매장엔 시계가 없고, 오른 손잡이들이 대부분이므로 오른쪽으로 돌게 만들고... ... 행위 하나하나 구분지어 마케팅이나 매출에 관련된 연구결과물이란 사실들을 알게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죠. 



만약 하늘과 맟닿은 공제선이 헌법에 있는 행복의 추구권?에 들어간다고 하면, 정서나 성격에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우울증을 증폭시킬 수 있으므로 공제선을 보호해야한다면 어떡하죠. 반지하나 지하에서 생활, 햇살을 맞을 수 없는 환경하에서 하루 몇시간이상 근무를 하면 어떻게 된다는 권리를 보장하면 어떻게 되는 것이죠.

늘 우리에게 보이지 않던 그것이 큰 무엇이 되거나,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겠죠. 우리가 늘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샘물이 산에서 점점 내려오는 가운데 사소한 나뭇가지였지만 그로 인해 물줄기가 달라졌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죠. 천민자본주의란 공간과 관계를, 더 더구나 삶을 고민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요? 어떻게 더 남길까가 건축주나 설계자, 그 시대를 흘러가는 유행과 겉맛만 반지르르한 시류와 편승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역사도, 교회도, 아파트도 얄팍한 잇속과 맞물려 근원적인 관계단절을 배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머무르고 싶은 공간이 아니라, 함께하고 싶은 공간이 아니라 권위적이고 억누르고 자꾸 밀어내는 공간으로 우리 일상을 점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도서관이야기도 나왔죠. 도서관이 우뚝 서있는 것과 우리의 시선과 친근하거나 약간 아래의 동선을 두고 있다면, 세종문화회관처럼 계단아래서 전경도 제대로 볼 수 없는 건축물과 뭔가 모여들 수 있는 공간의 차이점은 없을까?하고 말입니다. 해단을 염려한 분들이 모여, 뭔가 억누르는 세종문화회관같은 이름의 권위에 눌려 제대로 놀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아마 전환과 모색을 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렇게 변신하면서 새로운 전모를 드러내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해봅니다.

 뱀발. 1. 지난 연말, 일터일로 참석하지 못했는데, 모임이 유찰?되었더군요. 신년인사 겸 모임을 한다는 삼국장 문자에 부담들없이 온 것 같은데, 아닌 해단논의에 짐짓 멈칫하는 느낌이 들더군요. 하지만 조목조목 풀어가는 솜씨들이 재미있습니다. 모임 가운데 나온 책들은 다 소개하지 못했군요. 책구경을 해보았는데, 괜찮은 책이고 건축을 전공하신 분 가운데 이분처럼 폭넓고 깊게 사유하는 분들이 드문 것이 현실인 것 같습니다. 저도 욕심내어 더 이어보고 싶은 맘이 드는군요.(인근 도서관엔 그다지 없어요. 직접 구매해달라고 요구하셔야 될 듯.) 

2. 마지막 책은 지난해 발췌독을 했던 책인데 이름이 겹쳐 남깁니다. [전환과 모색]으로 알고 있었는데 [전환의 모색]이더군요. [전환의 모색]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공명의 진폭을 얻어내는데 급할 필요도 없는 것 같구요. 울림이 깊어지고 넓어지면 훨씬 더 좋겠지요. 울림의 씨앗을 얼마나 제대로 갖는가, 그에 대한 고민이 지금까지 부족하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3. 하지 않고 싶은 것을 추수려보고 하나씩 지워가는 것도 추천해볼 방법론은 아닌가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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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1-08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그래서 음료자판기 앞에서 가끔 화를 내요.
돈 넣을 땐 편하게 넣게 하면서 물건 꺼낼땐 거리굽혀서 인사하게 만들잖아요 ㅎㅎ

여울 2009-01-08 10:14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왜 우리가 불편하게 그래야되는 것이죠. 눈높이자판기 잘팔리겠네요. ㅎㅎ . 휘모리님과 이참에 공동출원이라도, 실용신안이라도 낼까요. ㅎㅎ
 

장미와 ** 


동무론을 읽은 뒤, 홈피를 둘러보다. 한결같이 문체가 유사함에 놀랐다. 휘이 둘러보면서 드는 느낌은 문체와 경향이 비슷한 것 보다는, 술의 예를 들듯, 구체적인 삶의 결에 대한 숙고나 다양함을 기대했던 모양이다.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여전히 [나]의 영역에 가두어둬서 생기는 것은 아닌가? 세세한 결이 보이지 않아 아쉽다. 과다한 기대였던가? 더이상 다가서지 않기로 한다. 알면 알수록 보탬이 되지 않을 것 같다. 외려 그런 전제없이 생각을 키우는 편이 훨씬 낫겠다는 판단에서다. 뒤에 얼마든지 그 전제를 둘러보아도 될 것이므로...  www.sophy.pe.kr

이야기 

김연수의 소설집을 몇권 집어들고 있는데, 피곤을 덕지덕지 바르고 어제 내가 누구든 외롭...을 보다. 90년인근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주기도 하고 빨려들기도 하고 상큼 적나라한 표현이 끌리기도 한다. 추상화시키고 싶어하는 사례들이 궁금해지는 연유다. 이야기 알기와 나누기를 취미로 갖는 것도 괜찮겠다 싶다. 스토리라면 하야지거나 뒤돌아서면 기억하지 않으려는 반면이다. 


 

 

 


전 제 

사회과학방법론에 관한 책들을 역시 들고 있다. ...  술책들... 양적방법의 문제, 분석적인 방법이 갖는 문제들에 대해 경험적이고 중요한 지점들을 보여주는 것 같다. 곁들여서 사회과학 방법론에 관한 책들을 몇권 더 보태고 있다. 


 

 

 


기  타 

그리고 그림책 몇권... 새책 몇권. 일터 시무식부터 틀어지고 개인적 심사를 얕게 뱉어내는 보스로 인해 맘들이 상하다. 담날 밝혀진 것은 다를 따로따로 이차에 가서 뒷담화.  아마츄어같이 왜 그러는지 속이 뻔히 보인다. 있어도 없어도 모두 걱정이다. 동료들과 회의를 하여야만 했는데, 회의하게 되면 일 줄이는 법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라고, 건강들 챙기라구 말을 건네지만 말을 하면서도 줄지 않는 일때문에 상하는 건강들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 없다. 서로 남 걱정할 처지도 아니지만.  080105-6

                         

 스칼라와 벡터 

 090103 문제가 반복되는 지점이 생기는데도, 모두들 그 결과, 이미 결정된 지점만 가지고 이야기를 한다. 뒷담화가 필요하긴 하지만, 의사결정력이 있는 분의 의사결정습관(즉흥적이고 감각적인, 협의이전에 통지하거나 알림)이 있음에도, 여건을 만들거나 함께 숙의하는 시스템을 고려해보지 않는다. 개인적인 문제로 처리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 논의가 가능할까? 어떻게 할 수 있을까? ** 연* 학교보내는 일로 여러분들이 이야기를 나눈지가 꽤 오래된다. 의견이 나눠지기도 하는 것 같다. 몇번의 결정이 바뀌는 것을 보고 건네듣는데 여전히 여러 생각이 든다. 


 

에로스 - 타나토스(죽음충동). 그 사이 성과 섹스만 나다니는 것이겠죠. 그 극단의 사이에 있는 현실들. 이야기가 있는 그림들입니다. 09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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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쩌면 우린 막다른 지점에 서면, 그것을 안고 가야한다거나 어쩔 수 없다고 하는지도 몰라 그래서 속울음을 삼키며 가슴 깊숙히 인두질을 그렇게 남기는지도 몰라. 그리고 그것이 아마 내탓일 것이라고 자학을 하는지도 몰라. 그렇게 마음 속에 막다른 길을 내는 연습이란... 어쩔 수 없음이란...

2. 그래서 그 속을, 그 절망이나 그 상처를, 그 고민을 뒤짚어본다고, 더 이상 나빠질 것이 없으므로 그것을 뒤짚는다고 생각해봐. 내고민이 아니라고, 내상처만이 아니라고, 내아픔만이 아니라고 그렇게 좌판을 벌려놓는거야.

3. 그 막다른 지점을 터뜨려보는거야. 고민을 팝콘이나 꽃인 것처럼. 고민꽃이라고 해보는 거야. 고민은 처리하고 수습하는 것이 아니라고 해보는거야. 그렇게 생각해봐야 더 이상 나빠질 것이 없으므로 말이야. 그 고민을, 그 상처를 커밍아웃해보는 거야. 더 나빠질 것이 없으므로

4. 그래. 그 고민이 터지는 지점을 슬로-우--우 비-디-오로 누구나 볼 수 있게 해보는거야. 왜냐구 더 이상나빠질게 없으므로. 그렇게 꽃을 피우는거야 누구나 볼 수 있게 커밍아웃을 해보는거야. 안된다구. 막다른 골목길이었다구 말하지 말구. 늘 혼자 그 길을 갔으므로 절벽을 만났다고 해보는거야. 왜냐구 더 이상 손해볼길이 없잖아.

5. 아마. 그 길에 접어들면, 나의 버릇처럼 잠복근무중인 그것이, 나만이 아파한다고 착각하던 것에 조그마한 틈이 보일지 몰라. 아마 아마 미세한 현미경으로 봐야할 것 같은 금이 보일지도 몰라. 들여다보면 볼 수록 금이 커지고 틈이 벌어지고 넓어져 아마, 어쩌면 그 사이로 꽃들의 암술과 수술이 당신의 얼굴로 화악 달아오르게 할지몰라. 그 꽃을 피하지말고, 그 선물을 피하지 말고 가슴으로 안아봐.

6. 이쁜 말, 예쁜 말, 하고싶은 것, 얻고싶은 것도 좋지만 그 버릇때문에 이렇게 망가진 것인지도 몰라. 그 예쁜 말, 얻고 싶은 것으로 칭칭감겨 한발자욱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뒷걸음질만 쳤는지 몰라. 이해바라고 내맘 알아주길 바라는 것으로 온통 나만을 너만을 수놓아 당신의 눈망울에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는지 몰라. 인형같은 서로를 스친 것인지도 몰라. 외면을 너무도 많이 연습해서 이런지도 몰라. 또 그렇게 이해를 구하기만 하고, 고민을 뿌려놓기만 하구. 아무도 봐주지 않는다고 한탄만하다가 하루를 보내는지 몰라.

7. 아픔이 머무는 곳, 슬픔이 배여나는 곳, 고민에 숨막히는 지점. 상처가 덧나는 지점에서 꽃이 핀다구.....불감의 치유란 그렇게 시작되는지도 몰라.                                                   고민꽃, 상처꽃, 아픔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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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9-01-07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랬군요. 아직도 나만 모르고 있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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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명이란 무엇인가]는 저 유명한 칼세이건의 아내인 린 마굴리스와 도리언 세이건이 썼다. 두 과학자 모두 미생물학계의 거두라 한다. 생명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의 답은 은연중에 명사를 요구한다. 하지만 생명이 무엇이다라고 규정짓는 이상, 그 위험함은 생명을 개념짓지 못하고 빠져나갈 확율이 크다. 따라서 생명이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으로 명사보다 동사가 적절할 것이다. 지구에 어느 것 하나 연결되지 않은 것이 없다. 최근 광물도 공진화의 시각으로 연구한 논문의 기사도 본 적이 있고, 개인적인 시각도 광물도 식물도 동물도 인간도 주변의 자극에 반응하는 것이 놀랄 정도로 유사하다는데 공감한다. 미생물학의 거두답계 우리 몸에는 진화의 흔적이 온전히 배여있다. 태아의 아가미호흡이나 꼬리, 미토콘트리아, 수많은 박테리아의 흔적은 어디에나 찾아볼 수 있다. 단독자가 아니라 그물망에서 호흡하고 숨쉬는 것.

말미 다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다윈의 할아버지 에라스무스 다윈이 진화론과학자였고, 빼어놓아서 되지 않을 인물이 샤무엘 버틀러(작가이자 화자, 음악가였다.) 버틀러의 할아버지는 다윈이 다니던 학교의 교장이었다. 이런 관계에 버틀러가 문제제기한 것은 [종의 기원]의 선행연구 결과를 알리지 않고 전적으로 자신의 이론으로 가져가는 것에 분개한 것 같다. 하물며 다윈은 "생물학에서 생명을 도려냈다"라고 비판한다. 기계론이나 뉴튼론자로 환원하는 것에 분노했고, 실제 자비를 들여 많은 책들을 냈다한다. 오히려 경쟁의 단물만 빼먹은 지난 150년의 역사와 폐해는 버틀러의 시선에 더 가까이 더 현실적 이다. 안타깝게도 다윈과 버틀러가 함께 논의되는 것 같지는 않다. 우리의 척박한 인문의 한계는 아닐까? 올해가 다윈 탄생 200주년이라고 하는데 말이다. 



2. [급진적 의지의 스타일], 수잔 손탁의 에세이 묶음이다. 우연히 도서관 한 귀퉁이에 있는 책을 발견하다. 일전 오마이뉴스에 사진을 본적도 옮겨 밑줄을 그은 파란여우님 글과 겹친다. 1968년 6-7월에 쓴 [하노이 여행]을 읽다. 68혁명이 5월이니, 그 5월에 하노이를 방문하고 쓴 글이다. 혁명이 어른거리던 시절에 쓴 글이다. 글을 읽다보니 쿠바를 다녀왔고 쿠바와 달리 유교적, 도덕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베트남의 분위기에 일주일 정도 적응하지 못하다가 자연스럽게 겹친 사고의 진전을 보여준다. 앤디 콥킨드, 밥 그린블랫과 동행취재하였는데 40년전 글이라곤 전혀 눈치채지 못하겠다 싶다. 더 자유스럽고 열린 친구, 개방적인 친구를 만난 듯. 끊임없이 넘나드는 사유가 부드럽고 좋다.   혁명을 생각해야 하는 시대에 되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딱딱하고 경직된 껍질의 혁명이 아니라 일상과 삶, 친밀감...등등 말랑말랑하기도 딱딱하기도 한 혁명. 부드러우나 부드럽지 않은 혁명의 물결. 그 세월의 흔적, 물결을 되짚어도 손해보는 것은 없으리라. 



3. [달리기와 존재하기], 김연수 옮김. 도서관에서 김연수를 검색하니 볼만한 책들이 몇권없다. 최근 소설책을 보고 싶었는데, 이것저것 스크롤하다보니 달리기와 어색하게 붙어있는 존재하기란 제목이 옆에 붙어있다. 호기심이 바짝인다. 역자는 그 김연수였다.(역서가 많다했더니 영문학과를 나오셨고 70년산이시다) 번역한 연유를 찾다보니 문제의식은 동일하다. 달리는 사람들이 그저 달릴 뿐, 나온 책들이란 어떻게 숨차게 뛸까하는 스포츠학 내지 건강서적뿐이어서 좀더 다른 것을 찾고자 했단다. 빨려들어가 읽으면서 그나마 낫다는 생각이 든다(철학자들의 말들을 어찌 그리도 옮겨 놓으셨는지) 그리스, 미국의 팍팍한 냄새가 난다. 하지만 아무런 사유를 하지 못하는 달리기문화의 우리 현실을 보면 그래도 낫다. 20년의 시간 텀을 두고 장소만 달리 그대로 달리기 문화는 진전하는 것 같다.

이곳과 노은을 잇는 도로가 개통되었다. 그래서 그 길로 달려본다. 인도에 자전거도로가 따로 있어 좋다. 갈 때 30', 올때 25' 가다보니 반*마을이 벌써다. 되돌아오니 아파트에 걸린 달은 유난히 급하고 높이 보인다. 하루 24점 가운데 반점 한점 내 몸에 온전히 주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이겠지.  
 

뱀발. 김용석의 생명에 대한 정의가 이어 생각난다. 생명은 폭력적이다 낯선 것에 대해. 한편 그렇지 않기도 하지만 말미 장회익 교수의 온생명-개체생명-보생명의 생명을 어떻게 볼 것인가?란 보탬글이 있다. 책을 넣다보니 김지하의 생명학도 있고, 박경리님의 생명도 걸린다. 지난번에 읽은 생물과 무생물의 사이도... ... 생각을 덧보탤까? 덧붙일까?   

수잔손탁인지? 수잔손택으로 해야하는 것인지? 이지적 외모와 경계가 멈추지 않는 비평집을 앞에 두고 있다. [타인의 고통]에서 짐짓 놀라고 아둔한 인식의 한계를 스스로 절감했건만 잔여생각의 꼭지를 이어본다. 아직도 몸에 녹아있지 않으므로 이물감만 가득, 그저 타인의 고통을 시식할 뿐.   

달림. 그래도 보지 않는 것보다 한번 보시면 좋을 듯. 몸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니 말이다. 바쁜 일상으로 몸 추스리거나 챙기시기도 힘들겠지만, 몸으로 생각도 사고도, 때론 가슴도 머리도 트인다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그래서 중년은 몸에 영양분을 줄 요량이나 며칠에 한점 몸을 충만하게 하면 생각보다 얻는 것이 많을 수도 있다. 오늘도 난 키보드좌파근육에 몸서리칠 뿐이고, 술독에 근육이 풀어져 유연해졌을 뿐이고... ... 살사댄스도...암튼 몸에 좋은 취향하나 가져보심도 괜찮으리라... ... 책상물림 당신에게 드리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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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9-01-06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요 매번 헷갈리는게 수잔손택인지, 수전손택인지, 수잔손탁인지...
남의 이름을 이렇게 지 마음대로들 불러도 되는건지 모르겠어요.
누가 좀 정리좀 해줬으면 싶어요.

여울 2009-01-07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헛갈리다가 맞아요? 헷갈리다가 맞는 것이예요. 정리 좀 해주세요. ㅎㅎ

글샘 2009-02-03 08:32   좋아요 0 | URL
복수표준어입니다. 둘 다 맞죠. 정리 안 되긴 마찬가지... ㅎㅎㅎ

여울 2009-02-03 08:43   좋아요 0 | URL
글샘님 감사. 그냥 아무거나 쓰면 되는 것이네요. 이러면 좋을텐데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