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옥상, 1954년 8월 오카모토 타로, 그리고 학자들의 학문간의 경계를 섞기위한 4권의 모색 가운데 하나. 속도의 예술은 비엔날레와 블록버스터의 전시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 일반 예술가, 아니 일반인들의 선입견들.은 대조적이다. 임옥상님의 자전적 그림평, 근황들이 적혀있어 그가 고민하고 있는 관점에 대해 볼 수 있어 좋았다. 그런면에서 타로의 아방가르드의 그림들의 맥락을 살펴보게 해준다는 점에서 예술이 할 역할에 대해 짚어준다. 하지만 역시 그다지 읽을 거리가 없는 예술가여..와 속도의 예술은 상식적으로 자본에 무릎꿇은 현실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별반 없다는 점이다. 그 틀을 깨지 않는 이상. 맥락을 찾으려는 노력이 없는 이상. 반룬의 예술사는 오래된 책이란다. 사진 위주로 훑어보니 건축관련하여 볼만하겠다 싶다. 

돌아오는 길. 구름에 가린 반달이 무척이나 크게 보인다. 가을은 머리의 흰머리처럼 슬그머니 톡톡 가벼운 터치를 해놓았다. 산과 달, 가을의 무늬가 바람결에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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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_9 내맘대로 독서 편린 결산 (1) (ing)

-그런데--


14-1. 다시 니클라스 루만으로 가본다. 노신의 쇠로 된 방이 나름대로 코드로 둘러싸여 프로그래밍된 궤도를 돌고있는, 종언에 휘말려있는 정치,경제,사회,문화,문학,예술, 자본, 법, 교육, 과학이라고 해보자.  스스로 나르시즘의 퇴행에 갇혀 끊임없이 복제품만 낳는 강철로 된 방이라고 하자. 사람은 온데 간데 없고 자본의 충실한 시녀가 되어 있다고 하자. 그 단단하기만한 쇠방은 서서히 삶을 조여오고, 더 이상 숨쉴, 더 이상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고함을 칠 수 있는가? 고진은 맑스를 다시 읽는다. 그 자본의 고리를 끊으려면 소비의 고리를 끊으면 된다고, 소비의 고리를 물고 있는 자본의 머리 턱의 이빨은 그렇게 끊길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경고한다. 문학은 퇴행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이다.

14-2. 지젝은 헤겔과 레닌을 불러들인다. 혁명이란 무엇인가라고 한다. 다시 총체성을 이야기한다. 무페와 랑시에르는 정치적인 것으로의 귀환을 명한다. 정치의 영역 그 가장자리를 다시 자리매김할 것을 권면한다. 


14-2-1. 누구는 말한다. 자본의 순환고리에서 소비의 고리를 끊으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소비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누구는 말한다 혁명이 가능하다고 헤겔과 칸트가 다시 필요하다고, 누구는 말한다. 프로이트는 근본이 잘못되었다고, 그리고 거기에서 출발한 과학은 거기에서 토대를 쌓았으므로 무효하고. 누구는 말한다. 겨우존재하는자는 말할 수 없다고, 그 전유로 인해, 여전히 겨우존재하는 자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별반없다고. 그리고 삼중고-사중고로 응축되는 지점을 응시해야된다고. 누구는 말한다 나는 안다와 나는 할 수 없다라는 정식에서 출발한 어떤 것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누구는 말한다 자본의 생산고리를 끊으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14-3. 다시 맥루언으로 들어가본다. 고대인,중세인,근대인의 차이점으로 몸에 배인 현대인들이 전지구적인 앎의 토대를 허물었으므로 중세인의 열정과 감각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머리가 통일되었으므로 가슴과 손, 발, 마음의 감각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어떤이는 소비로, 어떤이는 생산으로, 어떤이는 ...일리는 있으면서도 없다. 

14-4. 역사를 어떻게 보느냐는 중요한 문제다. 문명교류사라든가 접목된 사실들을 보는 다른 관점은 지금을 되돌아보는 다른 실마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경제사로 환원되는 관점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은 경제인류학자인 폴라니의 관점은 맑스의 경제사를 보는 관점과 다르다. 다른 시선 아래에서 펼쳐지는 사유는 또 다른 경로를 만들 수밖에 없다. 교차하기도 하지만, 보지 못했던 다른 공백을 볼 수 있기때문이다. 북친의 관점에서 보는 것, 그리고 마이크 데이비스의 기후-기근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도 또 다른 시야를 확보하게 합니다. 시대의 한계로 본질적으로 갖는 제한된 시야를 열어주는 또 다른 사실들을 접목시키는 것이 현실의 바다를 조금도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아닐런지요.

너에게 가는 길

14-5. 김우창은 시적 삶의 회복을 이야기한다. 강팍한 현실을 이겨내는 방편으로 이데올로기의 삶이 아니라 예술이 이를 회복할 수 있으리라 본다. 일상의 예술화. 시적언어도 시적동선도 부족한 건조증에 걸린 일상들은 정작 사회운동의 장에 열려야 하나, 현실은 더욱 더 메마르다. 여유가 집나간 무한궤도 상의 나날이다. 더 열심히 돌면 돌수록 소진된다.

14-6. 하트는 헤겔의 변증법적 사고의 맹점을 이야기한다. 현실이라는 것이 조각조각 모여 총체성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핵폭탄에 의해 깡그리 소멸되며 다시 장을 여는 국면이 오히려 우세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니 헤겔이 말하고 있는 그 전제에 대한 일갈은 맑스의 머리를 거꾸로 쳐박고 있다는 표현과 맥이 닿은 것일까?  

14-7

 

사회

14-13. 부르디외는 상징자본, 문화자본을 이야기한다. 계급이 다른다는 것. 그것을 넘어서지 못하는 문화의 이전이 존재한다. 환원의 사유는 차제하더라도 열외의 세상은 여전하다. 그래서 스피박 호비바바는 이야기한다. 열외자가 과연 말할 수 있느냐고 말이다. 암묵지보다 더 견고해서 지금 사회의 틀로는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는다고, 끊임없이 열외자는 생성된다고 말이다. 지금의 상식으론, 지금의 주류문화로 건질 수 없는 무엇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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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

                    이면우



오솔길 가운데 낯선 거미줄
아침 이슬 반짝하니 거기 있음을 알겠다
허리 굽혀 갔다, 되짚어 오다 고추잠자리
망에 걸려 파닥이는 걸 보았다
작은 삶 하나, 거미줄로 숲 전체를 흔들고 있다
함께 흔들리며 거미는 자신의 때를 엿보고 있다
순간 땀 식은 등 아프도록 시리다

그래, 내가 열아홉이라면 저 투명한 날개를
망에서 떼어 내 바람 속으로 되돌릴 수 있겠지
적어도 스물아홉, 서른아홉이라면 짐짓
몸 전체로 망을 밀고 가도 좋을 게다
그러나 나는 지금 마흔아홉
홀로 망을 짜던 거미의 마음을 엿볼 나이
지금 흔들리는 건 가을 거미의 외로움임을 안다
캄캄한 뱃속, 들끓는 열망을 바로 지금, 부신 햇살 속에
저토록 살아 꿈틀대는 걸로 바꿔 놓고자
밤을 지새운 거미, 필사의 그물짜기를 나는 안다
이제 곧 겨울이 잇대 올 것이다

이윽고 파닥거림 뜸해지고
그쯤에서 거미는 궁리를 마쳤던가
슬슬 잠자리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다
나는 허리 굽혀, 거미줄 아래 오솔길 따라
채 해결 안 된 사람의 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 제2회 노작문학상 수상작   

 

 

 

 

 

거미

                              김수영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



- '김수영 전집'(민음사. 2003)
 

뱀발.  이면우님 시를 얻다. [간이역에 이는 시노을]이란 카페에서 복사해오다. [생의북쪽] 12편의 시가 모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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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부 2009-09-09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성우씨의 '거미'도 생각나네요.....쩝

여울 2009-09-09 16:18   좋아요 0 | URL
그러고보니 백석의 거미도 떠오르네..빈방의 거미모녀?. 그러고보니 거미도 각박한 세파를 닮아 점점 그로테스크해져가는 듯...쯔읏.
 
[독서정산 07_08] 희망의 길-지금 여기, 우리 인문학자들의 결을 쫓아

내맘대로 독서 편린 모음 

지금


1. 통제가능하지 않는 과학기술에 대한 앎의 경고는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에 잘 나타나 있다. 과학기술의 단맛만 우려낼 경우, 그 과학기술이 끌고가는 위험은 어떻게 되돌아올 것인지, 자본의 세계화와 같은 흐름으로 위험은 지구화되고 있다. 경제만의 세계화와 위험은 어찌 그리 짧은 자본주의 역사에서 자웅동체처럼 자신을 증식시켰는지 모른다.

2. 니클라스 루만은 우리가 어떻게 다른 세상을 볼 수 없는지 조목조목 따지고 들었다. 정치,경제,교육,사회,문화,법 등등이 이 사회에서, 돈과 개인이란 블랙홀로 빠져들면서 그 이분법의 도식에서 자신순환고리로 악순환하는지 말했다. 단 도덕이 아니라 윤리가 코드화되지 않는 제3의공간을 만들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잠깐한 것으로 기억한다.

3. 마셜 맥루한은 이야기한다. 시각중심의 사회가, 그러고보니 원근법이란 관점이 서구에 나타나고, 그 관심의 끝이 자본으로 예리하게 되면서 이 시각중심의 사회는 청각,후각,미각,촉각의 오감을 경도시켰다. 그래서 이 사회는 온몸으로 느끼지 못하는 불감의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다른 시대를 폄하시켰다. 중세도 그 이전도... ... 시대의 복원은 머리중심으로 회복될 수 없다. 이 시대는 머리만 목말라하는데, 시각이 바뀐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 가슴과 마음과 손,발의 감각이 회복되지 않는 이상 껍질만 유령처럼 돌 뿐이다라고 한다.

4. 머레이 북친은 말한다. 환경을 가장 해치는 것은 사람이라고. 그런데 정녕 환경을 생각한다면 인간은 죽어야 한다는 거꾸로 된 결론에 다다른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를 다시 사람이 해온 족적을 거꾸로 거슬러올라가야 한다. 환경을 위해 인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해 환경이 공존하는 삶이었다고, 그래서 그 관점에서 다시 근본적인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나와 너

5. 마르틴 부버는 이야기한다. 나와 너. 사람들은 마치 [나]만 이야기한다. 너로 시작한 모든 것을 잘리우고, 뻔히 생각이란 것도 일상도 온통 너로 비롯된 것임에도 마치 모든 것이 [나]로 거느려진 것 같은 아둔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말이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그것], [그]만 있지, 영롱하게, 문득 아름다움에 현기증이 느껴지는 [너]을 만나지 못한다고 말이다. 어쩌면 서구가 개인을 역사에서 달콤하게 빼먹고 사유하기 시작한 이후로 그 세뇌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사는 것이 지금인지도 모른다. [너]가 없는 세상에서 너로부터 인한 [나], [너]를 만나고 마음에 품어 내가 되지 못하는 지금에 중독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자유 



6. 바슐라르는 말한다. 상상력이란 것이 지금까지 있어왔던 것에서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시에서 언어가 다시 호명되듯이 내 속에서 울림은 스스로 다시 자랄 수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나]는 지금까지 있어왔던 것의 연장성이 아니라 다시 지금 이 순간부터 새로운 [나]로 풍부해질 수 있는 것이라는 늘 자유의 출발점을 지금의 나로 잡는 것은 아닐까? 너로부터 작은 일상의 하나에서부터 공명하는 것이라고, 그래서 [너-나]의 상상력이라는 것이 무진장이라는 것이다.

7. 오감의 회복은 아니더라도 학문이란 것이, 마음의 영토를 확장하는 것이, 즐거움의 영토를 확장하는 것이, 자유의 영토를 확장하는 방편으로 앎의 중력에 그치지 말 것을 요구하는 사람이 있다. 시도, 음악도, 미술도, 그 학문의 경계가 다른 것이 아니라, 그 넘치는 즐거움을 거부할 바보가 어디있는가 하고, [내가 어떻게 알아] [내 분야가 아니야] [전문가가 알겠지] 하는 숱한 무지의 중력의 자장에 떨어지는 어리석음을 경계한다. 끝까지 밀고나가는 [까이것]의 정신을 이야기한다. 앎의 울타리를 치지 말 것을 요구한다. 그 즐거움과 그 것이 온전히 네것, 네 소유이므로, 즐거움을 거부하는 바보가 어디있단 말인가? 진리라는 것은 더 표현하고 싶은 것이지 수도꼭지처럼 잠그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알고싶은 것은 그쳐질 수 없다. 그 행위로 인해 즐거움은 거듭하는 것이라고 쟈코토의 말을 빌어 자크 랑시에르는 말한다. 


너에게 가는 길
 

8. 김상봉은 말한다. 서양철학이 자기애에 함몰된 나르시스의 철학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정녕 너를 볼 수 없다. 거기에서 가지치기한 학문이란 것이 자기애에 함몰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이다. 대부분이 너와 함께있는 것이 현실이어서 [나]만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그런데 생각의 편리를 위해 따로 떼어내어 그로부터 사유를 발달시킨 오류를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지적한다. 그 전제의 위험함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는다. 더 더군다나 떨어진 나와, 원자같은 떨어진 실재에서 비롯된 사유는 나머지 아흔아홉을 떼어버리지 않거나, 그 움직임의 동선으로만 시작했어도 이론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지 않았으리라 말한다. 

 8.1  

9. 너를 만나는 법에 대해 김영민은 이야기한다. [나]를 싱싱하고 파릇파릇하게 신선도를 유지하게 숙성시키는 법을 이야기한다. 동무라는 것이 어렵다면 한발 떨어져 친구라는 것이 사랑이란 것이, 잡아채어 내 주머니속에 넣는 것이 아니라, 식욕을 채우기 위해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만 갖기 위해 떠돌아다니는 부나비같은 것이 아니라 물 한모금을 마시기 위해 두 손을 모으고 떠받들 듯이 그렇게 보듬는 것이라 한다. [너]를 섬기는 일이 [나]의 풍요이자 [너-나]로 이어지는 길이라 한다. 늘 머물러 제자리에 있는 것이 [나]가 아니다. 끊임없이 [너-나-너..]로 새로와지는 것이 동무의 관계인 것이다. 동무는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것이란다.
 

삶 


10. 가타리와 라이히, 윤수종은 이야기한다. 이 삶 바깥은 없다. 이 삶도 이야기하지 않고, 삶의 바깥만 이야기한 어리석음에 대해 말한다. 갑옷을 입고 칭칭동여진 일상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진리가 아니라 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반진리임을 이야기한다. 예수만이 예수를 알 듯, 그 무서운 살아지는 관음증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쳐다보기만 하는 삶이란, 나날이 무거워지는 삶의 두께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나]를 넘어서는 그 [00되기]는 이정우, 고병권에 이어진다.

11. 피터싱어는 기부를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정작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도덕심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삶이, 나의 영역내에만 머무르는 앎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이야기한다. 윤리라는 것이, 삶에 있어 얼마나 많은 아픔과 자유를 가져오는지 동시에 말하고 있다. 세계대전보다 많은 이가 굶어죽어나가는 현실에 대한 윤리는 당연한 이타심이 아니다. 사회에 대한 편협한 앎과 삶이 당신 안에서 쓰나미처럼 새롭게 각인 될 것을 요구한다. 나만이 아니라 아마 그것에서 너로 바뀌는 상태를 가정하면서 말이다. 푸코가 이야기한 윤리적 인간에 지금을 살아내고, 살고있는 현실을 비참할 정도로 생생하게 녹여내고 있다. 

사회

12. 폴라니는 말한다. 사회라는 몸속에 있던 에어리언같은 괴물이 빠져나와 마치 사회는 없는 것처럼 길길이 날뛰고 있다고, 온통 쑥대밭을 만드는 것을 넘어서, 사회를 지탱하는 사람도 숨을 쉴 수있는 공간도 모조리 싹쓸이하고 있다고 말이다. 살림살이를 위한 경제가 이젠 자본의 증식공간만이 될 뿐이라고 말이다. 중세를 넘어서 보이지 않은 손이라는 핑계로 방임된 뒤, 벽지처럼 납작해져 도통 보이지 않는 사회라는 것은, 국가라는 자본의 파수대에 밀려 나라마다 단절된 사회란 것은 절망과 아픔의 생살의 상처를 딛고 그 괴물에게 상처 투성이 사회를 한장 두장 붙여, 사회의 생살이 오르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야 그제서야 저기 아크로폴리스에서, 아테네에서 말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 행복이나 삶을 논할 바탕이 겨우 만들어지는 것이란다.

13. 서경식과 노신은 안온한 이데올로기를 경계한다. 죽음에서 절망에서, 현실의 추악함에서 한걸음 딛기가 쉽지 않음을 경고 한다. 온몸에 상처를 내고 피를 한움큼 흘려내야 한걸음을 겨우 디딜 수 있음을 표현한다. 쇳덩어리 정육면체 속에 갇힌 우리에게 그 강철로 된 방임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알려야 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 말한다. 점점 조여들고 희박해지는 공기. 그것이 현실이라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알게하는 고통. 모르면 오히려 편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 고함을 질러야 그 강철문 바깥이 어떤지 모르지만 고통스럽지만 지르지 않는 것보다 낫다고 한다.

"가령 말일세, 강철로 된 방이 있다고 하자. 창문은 하나도 없고, 여간해서 부술 수도 없는 거야. 안에는 많은 사람이 깊이 잠들어 있어. 오래잖아 괴로워하며 죽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혼수상태에서 죽음으로 이르는 과정에 놓여 있으면서도 죽음의 비애를 조금도 느끼지 못한다. 이 때 자네가 큰 소리를 질러서, 그들 중에서 다소 의식이 또렷한 몇 사람을 깨워 일으킨다고 하자. 그러면 불행한 이 몇 사람에게 살아날 가망도 없는 임종의 고통만을 주게 될 것인데, 그래도 자네는 그들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래도(콕!!)---

14.  

뱀발. 이런 앎들을 연결시켜본다. 부질없는 짓이겠지만 혹 서로 내리는 잔뿌리들이 있어 조금 도움이 될까? 다른 뿌리에 대한 궁금증도 이어져 내식대로 모아둔다. 틈나는대로. 오독은 모두 나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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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내마음대로 독서 편린 결산 (2) (ing)
    from 木筆 2009-09-09 16:53 
    -그런데-- "그래도 몇 사람이 정신을 차린다면 그 쇠로 된 방을 부술 수 있는 희망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없지 않은가?" << 펼친 부분 접기 << 14-1. 다시 니클라스 루만으로 가본다. 노신의 쇠로 된 방이 나름대로 코드로 둘러싸여 프로그래밍된 궤도를 돌고있는, 종언에 휘말려있는 정치,경제,사회,문
  2. 091012 죽음, 자유 그리고 사회
    from 木筆 2009-10-13 14:36 
    [칼 폴라니로 가는 여러 산책길에 대한 소묘]란 주제로 텍스트 [초국적자본주의인가 지역적계획경제인가]에 다른 색깔들을 배경삼아 자료를 만들어본다. 가장 잘배우고 알게하는 방법은 가르치는 것이란 말을 실감한다. 시간의 흐름만큼이나 책들이 섞여 어디에 기록했는지도 깜박한다. 어쩌면 하고싶은 이야기는 산책길에 나서기전 준비사항에 있다. 경제인이란, 이분법에 의한 근대인, 직선적인 시간관이나 발전관에 녹아있는 우리는 다른 것을 상상하기 힘들다. 블로그의
  3. [깜짝이벤트] 누구일까요?
    from 木筆 2009-11-20 13:51 
            자신의 머릿속에 어떤 사상을 갖는 자는 미친 사람으로 취급될 위험성에 빠진다.   같은 생각을 갖는 두 사람은 바보로는 취급될 수 있어도 미친 사람으로 취
 
 
 


 




가을로 향하는 달은 밝고 밝은데 마음의 한귀퉁이는 바스락거리는지. 멀리 떨어진 샛별과 유니의 문자를 번갈아 보다.....................................................여전히 달은 밝고 잠은 뒤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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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8 17: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09 08: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밀밭 2009-09-08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문득 달을 보며 드는 생각.
샛별은 매일 다른 모습으로 총총 지나가는 달을 어떻게 생각할까 본디 같은 달임을 알아챌까 알아챈다면 다채로운 모양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샛별은 달이 다가오길 기다리는 것일까 지나가길 바라는 것일까
달에게 지나는 길목 샛별의 존재감은 어느정도일까 다가서면 행여 눈부심에 눈멀까봐 종종걸음을 치는 건 아닐까 자신을 태워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잰걸음을 하는 것일까 못 본 척 모르는 척. 자신을 지키려는 본능으로... (저녁 잘 먹고 왠 쉰소리람? 탐스런 달을 걸어둔 탓이쥐!) 이건 달의 생각도 별의 생각도 아닌 순전히 지구인 생각임을 밝혀둠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