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되지 못하는 사람들

-한국에서 소수자로 산다는 것의 의미, 박경태(성공회대 교수)

 

(1) 소수자란? 신체적, 문화적 특징때문에 차별을 받는 집단이나 이를 의식하고 있는 사람들(소수자)
- 신체적: 여성, 장애인
- 문화적: 종교(무슬림, 재일조선인-여학생
- 흑인 중에서도 의식하지 않는 사람, 적극적 조치를 주장하는 사람은 흑인이 아니다. 그곳에 속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다수자에 가 있는 것이다.
- 여성에게 불리한 입법활동을 하는 국회의원은 소수자가 아니다.

(2) 만약에 소수자 성들이 충돌한다면 어떠할까? 백인여성과 흑인남성이 만났을 경우, 이렇게 교차될 경우에는 (어떤 면에서는 다수자이며, 어떤 면에서 소수자이다) 그 사회의 문화적 주도성을 고려해야 한다. (2.1) 남자 직장상사와 여성 직원이 남성직장상사가 동성애자임을 알았을 때 처럼

(3) 대표지위: 소수자이때문에, 소수자는 집단의 일원으로서만 존재할 수 있다. 다수자는 개인으로 존재한다. 여류시인, 여성....-직업이 지위자를 규정하지만 소수자에겐 소수자 성이 더 강한 규정을 갖게 된다.

(4) 옛날보다 차별이 더 줄어들었는가? 그렇기도 하구 아니기도 하다. 생명권까지 처분한 시절도 있어서는 줄어들었지만 과거와는 다른 형식이 존재한다. 근대적 가치는 근대의 기준으로 차별하고 이는 자본주의적 기반이자 상품성을 표면에 나타낸다. 장애인은 노동력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는 특징을 갖는다. 자본주의적 외모를 갖추지 않는 것도 이에 부합하지 않는 것도 그 기준이다. 또 하나는 기회의 평등이라는 이데올로기가 퍼져있다. 과거 신분의 차별과 달리 이런 이데올로기로 인해 당사자 개인이 잘못해서 생긴 문제로 치부된다. 역경을 딛고 일어난 사람들이 많을수록 희생자를 비난하는 강도가 커진다. 억울하면 출세해라라는 슬로건으로 정당화된다. 과거에는 없었는데 근대가 되면서 국가, 인종간의 차별이 생겨나게 된다. 중세의 유럽에선 국경은 큰 의미가 없었다. 합스부르크왕조의 연합개념은 있었어도 국가개념은 다르다. 국민간의 차별이란 개념이 없었다. 국가가 생기며 비자라는 개념, 국민간의 차별이 생긴다.

(5) 인종차별 역시 근대적인 개념, 인종차별이 언제 생겼을까? 대항해의 시대, 발견의 시대, 신대륙의 발견,  고대의 경우는 피정복지에서 생긴 노예로 이와는 다르다. 흑인에 대해서 양가적인 설명이 나타난다. 이와 달리 항해의 시대에 노예를 착취하면서 생겨난 근대적인 현상이다. 국내에서도 흑인에 대한 차별은 미군정이후에서 생겨난다고 봐야할 것이다.

(6) 차이는 차별의 원인인가? 차이는 차별의 원인이 아니다. 키의 차이, 혈액형의 차이(한국과 일본) 어떤 차이와 차별이 원인이 되는 것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 18-9세기 유럽 자연과학자의 신체특징 연구를 하게 된다.(폴보브카 뇌용량크기 -->스티븐 제이굴드 반박자료, [인간에 대한 오해], 백인은 남자 두개골을 흑인은 남녀 두개골을 대상으로 함) 차별은 기준을 정하는가에 따라 차이가 만들어지게 된다.

(7) 민주주의와 소수자의 문제 - 잘 되는 민주주의라면 소수자 문제는 잘 되지 않겠느냐? 어던 해법이 있을까? 그러나 쉽지 않은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사회주의가 혁명으로 해결, 목표완수가 한번으로 해결하는가? 그렇지만 그렇게 믿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소련과 중국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학문이 없어졌다. 그렇게 한번에 해결되지 않는다. 1인 1표란 대의민주주의는 소수자들이 소수이므로 해결되지 않는다. 선량한 다수자들이 해결해주길 바랄 수 있다. 또한 대개는 경제적으로 빈곤하므로 민주주의의 적극적인 동원기제인 자금이 없으므로 또 한번 좌절할 수밖에 없다. 절차적인 민주주의로 조금은 나아졌을 수도 있지만, 민주화가 되면 함께 억압받던 사람들이 중산층으로 진입하므로서 그 격차가 더욱 커지게 된다. 상대적으로는 더욱 열악해지는 박탈감을 느끼게 된다. 민주주의는 도달 지점이 아니라 민주주의는 과정이다. 완수라는 것은 없는 것이다.

(8) 그러면 소수자의 목소리가 실리도록 어떻게 할 것인가? 소수자의 연대, 이주노동자들이 2003년 농성을 할 때 동성애 인권 연대가 지원을 한다.


#2.

어떻게 다문화를 읽어낼 것인가?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산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다문화 이론이 이 가운데 한가지이므로 다른 것은 견주어 볼 수 있다.

(1) 기능주의 시각
* 동화론: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다수자처럼 살 수 있다. a+b+c = A, 미국의 경우 백인처럼 살 수 있다. 는 논리는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여러 미국영화 가운데 이태리계의 진입(앵글로색슨계 중심에서 이민자들이 많아지자), 아일랜드계는 유럽에서 조크의 대상이었는데, 못알아듣는 사람의 대상이었기에 백인취급을 하지 못하다가 이민자들이 많아지자 백인의 경계를 넓혀주게 된다. 가장 최근에서야 유대인들이 돈, 경제력이 커지게되므로 확장이 된다. 하지만 더 오래 있던 흑인들이나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그렇게 되었는가? 이런 것을 볼 때 동화론은 맞기도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 융화론, 융합론 a+b+c=D , 도가니, 용광로, melting pot 이론 - 과연 각각이 동등하게 녹아들어 갔는가?
*** 다원론  a+b+c = A, B,C 샐러드 bowl 이론

전체적으로 볼 때 권력의 편중문제가 설명되지 않는 단점이 있다.

(2) 갈등주의 시각

* 내부식민지론  a+b+c = a/(b,c)  a가 착취를 하기 위해서 b,c 는 착취의 수단이다. a가 잘사는 이유는 b,c때문이다. (흑인이 왜 가난하지? 흑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에 감사하는 생각.-아버지가 있는 상태에서 자라는 아이는 1/3이 되지 않는다. 마을에서 잘나가는 사람이 마약딜러, 감옥에 가는 비율이 28%, 대학에 가는 비율이 11%인 것이 현실이다. )

** 계급론 a+b+c = X:Y   실제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문제로 연결될 수 있다. 부가 인종을 기준으로 수직으로 잘라져 있다.  고도의 농장주나 노동운동의 역사가 그러한 법적, 정치적 사실과 연결되어 있다.

# 3

소수자의 인권을 어떻게하면 좋을까?

(1) 계급, 계층문제와 함께 고민하여야 한다. 작년 1300억원의 예산을 쓰고, 예산이 유일하게 늘어났는데 다문화 현상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다. 경제적인 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김치만들기를 한다는 것은 행사이전의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지 못하는 것 같다.

(2) 통합의 관점에서 생각하여야 한다. - 여러 프로그램을 별도의 건물과 별도로 분리되어 운영하는 것은 문제이다. 이는 따로 있는 문제로 여기게 만든다.


질의응답

- 소수자의 개념이 제도나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의식이나 문화로 여겨진다. 사람들이 소수자란 것을 의식하지 않게 되면, 소수자의 위치에서 배제되는 것은 아닌가? 정의 자체만으로 소수자에 상담해주거나 배포해주게 되는 것은 아닌가? 정의와 자각하게 되는 연결의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닌가? 

(의견) 조건과 의식: 앞의 부분은 기득권, 비기득권으로 구분되어 있고

- 성적 소수자란 말을 많이 쓰고 있고, 인식이 강한데, 실제 풀어지는 부분은 미국의 게이문화를 들어 세련되어 문화적 예술적 취향이 고급스럽다라면 이 정의에서 소수자란 개념에서 빠지게 되는 것은 아닌가? 그 개념이 애매모호해지는 것은 아닌가?

(의견) 사회적 약자(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과 소수자의 차이는 영속성에 있는 것 같다. 질병으로 완치되거나 장애인의 차이, 구별되는 지점이 있은 것 같다. 하지만 실제 사회에서는 그렇게 구분되지 않는 것 같다. 동성애자의 경우 커밍아웃할 경우 대부분 경제적 조건이 어렵고 복합적이다.

- 어떤 사회가 되면 소수자 문제가 해결되는지? 끊임없이 소수자가 생겨날 것이다. 언제나 진행형이므로 어떻게 하면 빨리? 시간이 지나면 소수자 문제가 해결되는가? 프랑스의 폭동에서 볼 수 있듯이, 관용의 허용치가 높은 나라에서도 생기는 것, 런던 폭탄테러, 호주에서 아랍계 희생에서 대해서 폭동이 일어나듯이...

마무리:  

소수자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이다. 다수자가 베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인식해야 한다. 그 권리의 수준이 우리 사회의 수준을 말해준다.   

 

 

 

 



[인권과 소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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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발.   

1. 인권 세미나 초청 강좌다. 연두부의 학연을? 빌미로 연결된 모임의 초청모임. 시간이 닿아 이야기를 서툴게 옮겨본다.  민주주의도, 근대차별의 핵심이라는 인종주의와 민족주의에 대한 목차도 눈길이 간다. 좀더 깊이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쉬움이 깊지만 질문들로 여운을 더해 본다. 여*회와 양인나 모임의 감수성이 어떨는지 궁금하지만, 현실과 일상을 얼마나 차이없이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가는가도 질문의 하나다. 그저 머리로 가져간다면 별반 다를 일이 있을까? 또 하나의 멋진 강사가 다녀갔을 뿐... ... 저자의 책을 몇권 검색하다가 목차, 남겨놓는다. 최근 출간 소식도 있다한다.  

2. 이야기들을 모임으로 깊숙히 우려내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 될 수 있으리라. 정말 손발로 가져간다면 서늘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그저 그런일들은 현재 국면과 관계를 벗어나는 일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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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이 가득하다. 스치는 길, 손전화로 담아놓은 것들을 풀어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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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벌써 익어버리고,   숲으로 들어서면 곧 잊혀질 듯.
마음이 숲으로 번져 마음이 숲의 색을 뚝뚝 떨어뜨릴 듯.


#1.

몇권의 책들을 조각내어 보다. 물끄러미 응시하지만 읽은 단어들이 달라붙지 못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몸과 이물감을 갖는 언어들과 책들은 늘 낯설다. 바람결처럼 내리는 아카시아향들만 몸을 환기시켜 몸을 불러 세운다. 며칠 내리는 비 사이로 지난 주를 돌이켜본다. 비가내리는 주말 아침 참*, 점심 뒤 참* 세미나, 간만의 항*씨는 여전하다. 공부의 깊이가 더했는지 세미나의 설명이 거침이 없다. 별똥별...의 저자님도 부군과 함께 해주셨는데 큰 질문은 없었지만 신선하고 공감가는 듯 싶다. 질문의 방향이 모임에 대해 직접적 대응이 몇꼭지 있다. 이로인해 뒤풀이에도 모임이나 공동체, 조직의 자정기능이나, 순방향의 예스만이 좋지 않다는 매듭을 엮는 듯하다.

 #1.1  *국장하구 좀 급하게 마실 술 덕분에, 공동체와 모임과 조직을 생각하는 수준이, 게임이론도 좋지만 기본적인 인식이 기계적이거나 물리적인 한계에 머무는 것은 아닌가 싶다. 기계라는 말도 식상하지만 모임기계 그 수준이 아닌가 싶다란 이야기를 건넨다. 거기에 덧붙여 모임이기주의라는 말까지 첨언한다. 생태이거나 생물이거나 식물이거나 하다는 시선이라도 있다면, 모임을 조직을 자라게 하기위해 키우기위해 해야하거나 통증을 느끼는 것이 비슷하지 않은가 하고 말이다. 모임기계주의자들은 여전히 자신의 모임에 집착하고, 경계를 열어줄 때의 기준을 통증으로 삼지 않는다. 유불리만 따질 뿐, 자신을 증식하기 위해 여념이 없다. 그래서 결국은 얻으려는 것도 얻지 못한다. 서*샘이 비가 짙어질 쯤, 막걸리 한잔을 더하고, 이야기 한 술을 더 더한다.

 #1.2  멀리있는 분들을 호출해놓고, 이야기보단 몸에 눅은 술만 관심있는 것인지? 이야기의 밀물과 고민의 밀물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것인지? 그저 달이 저편으로 진 것인지? 달이 또 차오르면 또 다시 고민은 풀려나오는 것일까? 왠지 미안한 마음들만 희미해져가는 기억들 곁에 짙어진다. 100522

#2.

잠깐 태울관에서 독립영화 상영이 있다. 얼굴이나 볼겸 잠시 들르다. 약속이 겹쳐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자리를 지키는 이들이 정겹다. 한** 강사의 숙제가 있어 참여율이 높다는 말들. 보지 못하는 영화들이 아쉽다. 100521

 


#3.

새것에 대한 찬미, 아니면 공감에 대한 갈증, 그런데 정말 공감에 대한 굶주림일까? 시란 영화, 화려한 휴가를 비롯해 보지 못함이 과잉을 만드는 것은 아닐까? 애석하게도 공감의 갈증은 그 굶주림만큼이나 본 뒤에 회자되지 않는다. 여전히 새것에 대한 대기, 굶주림만 키우므로 누리거나 회자는 이 세상에 덕목이 아니다. 진득하게 썰을 푼다거나 작품을 곱씹는다는 일 역시 무리에 가까운 일이다. 또 다시 일용할 날 것을 찾기만 하기 때문이다. 뉴스에 출몰할 뿐, 출몰하는 것으로 연명하는 것이 일상과 닮아있다. 사람들도 일회용을 닮아간다. 생각들도 벌써 재활용할 수 없다. 그래서 저기 폐기할 즈음 되는 것들이 새것의 옷을 입고 나타나도 새것인지만 안다. 그렇다고 그것이 부활하거나 날것이 곰삭은 맛을 내는 것이 아니다. 그것도 그저 새것일 뿐이다. - 그것도 못봤어, 그것도 몰라에 반기가 아니라 백기를 들고 싶다. 그런데 네가 대체 아는 것은 뭣이냐??

#4.

결혼식과 상가를 오가면서 몇줄을 읽지 못하다. 몸도 가라앉은 연유도 있지만, 낯선 말들에, 날선 말들에 몸이 담아낼 수 있는 것들도 걱정이다. 100523

#5.

딸래미와 책을 살 겸 나들이다. 동네서점을 들러 모임에서 언급되었던 책들을 고르니 오늘은 비교적 수월하게 찾을 수 있다. 기억을 더듬어 몇권, 주제별 부스에 가니 있어주어 고맙다. 점심, 데이트 그리고 책마실. 몇년 뒤, 그래도 어제 모임 뒤풀이에 나온 꼬마 대학생의 모습을 보니 여러 느낌이 다가선다. 100521  100520

#6. 

상가에 돌아오는 길 문자를 받다. 아시는 전*조 샘이 민**을 후원했다는 이유로 6월 말일자로 파면된다는 소식, 복직을 하려해도 일년반은 족히 걸릴 것이라는 소식. 미*광이짓을 눈을 뜨고 봐야한다니 정도를 넘어선다. 10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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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선과 칼날처럼 날카로운 잎이 가슴에 맴돈다. 잡으려고 남기려는데 갓난아이의 얼굴처럼 선명하지 않다. 첫사랑의 얼굴처럼 뚜렷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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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읽고 있는 책 

 

 

 

 

 

 

 

 

 

 

 

 

 

 

참*, 도*관, 책구입 등 책욕심이 화근이었던 것인지? 책읽기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중동난 생각들이 이리저리 접붙지도 못하고 달랑 달랑 제자리에 있거나 뭉게져서 살펴볼 수도 없는 것 같다. 어떻게 생각을 키우는 것이 나은 것인지? 정교해져야 하는 것인지?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인지? 비에 불쑥 자란 잡초들처럼 어느 것이 어느 것보다 생경한지 갈피를 잡지 못해 걱정이다. 굵직굵직한 방향을 가진 책들이라 그리 분량이 많지 않음에도 펼치기가 두렵거나, 남겨두어도 염두에 박혀 있다. 날이라도 잡아 무진기행이 아니라 핑계삼아 섬 버스라도 잡아타거나 기차를 타고 눈에 밟히는 남도자락이라도 안주 삼아 책을 봐주어야 할 것 같다. 문득문득 지도를 보다나면 섬들에 시선이 오래 머무르는 스스로 발견하고 멈칫한다. 

2. 읽어야 할 책 

 

 

 

 

 

 

 

장마비처럼 내리는 비는 느티나무 잎새가 가려진다. 밤은 익고, 눅눅한 습기에 잠을 깨는 아침. 점점 짙어가는 초록은 진초록으로 향하고 있다. 이제서야 거꾸로 5.18의 밤을 맞고 있음을 실감한다. 왜 이리 검은 먹지로 덧칠을 하고 있는 것인지 어이가 없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을 것처럼 일상을 되돌릴 수 있는 것처럼 향수에 취한 자들은 기억을 검게 덧칠하고 싶은 것은 아닌지... 일터점심 곁의 정치이야기들이 생경하다. 밀려두며, 읽었거나 읽어야 할 책. 구입해야할 책들...노신의 묵자, 장자, 공자, 노자의 이야기는 단편임에도 그 깊이에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3. 읽어야 할 사람들 

사람들과 대면하거나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길이 문득문득 난다. 사람이 열고 내고 있는 길들 사이로 들어가 말도 걸고 싶게 생각을 번지게도 하고 싶은데 열길 사람 속으로 향하는 길들을 모르겠다. 불쑥 불쑥 앞에 서있는 사람도, 저기 있거니 했는데 어느새 옆으로 바삐 지나가고, 어느 새 삶을 빨리 들어, 체하기나 한 것은 아닌지? 불쑥 아카시아향과 등나무꽃의 실루엣을 보며, 열정의 깊이만큼 느리게 가지 못함이 안스러워진다. 연두색이 짙어지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바쁨이 얄미워지기도 한다.  

 

4. 품에 안고 싶은 나무들, 기대고 싶은 나무들 ...

연두색 잎새엔 쌀밥이 한가득이다. 고봉가득 나무 마다마다 이밥은 천지다. 배부르지만 배고프다. 아카시아향이 묽어졌다. 벌들도 지친 듯, 여기저기 벌들이 사라졌다. 목련 잎에 목련을 품에 안고 싶다. 그 질감과 잎새의 흔들림....갈수록 한촉 한촉 더 피는 느티나무 새순과 그늘에 기대고 싶은 낮...저녁....달콤한 땀 한줌이 없는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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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교수신문, 『오늘의 우리 이론 어디로 가는가』(2003)
    from 노는 사람 Play In 2010-05-19 03:37 
    book_title: 오늘의 우리 이론 어디로 가는가 subtitle: 現代 韓國의 自生理論 20 editor: 교수신문 cover_design: 김경아 publisher: 생각의 나무 date_issued: 2003-10-17 list_price: 22000 list_price_currency: KRW ISBN: 898498275X (via) 책을 펴내면서 - 『오늘의 우리 이론 어디로 가는가』의 학문사적 의의, 이영수(교수신문 발행인) 글머리 '..
 
 
2010-05-20 0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