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에 백남준 국제예술상으로 선정된 이가 브뤼노 라투르 교수이다. 김환석교수와 인터뷰를 강양구기자가 정리한 내용이다. 한번 읽어보면 좋을 듯 싶다.  과학기술, 사회의 관계만이 아니라 철학적 전복을 요구하는 내용들이 몇번은 소개되었으나, 생각보다 국내 반응은 뜨뜻 미지근한 것 같다. 좀더 사회에서 발라낸 것이 아니라 사회가 묻어있으며 사유의 폭을 현실적으로 넓히지 못하는 부분에 중점을 두면 그리 이해가 어려운 것은 아닌 것 같다.

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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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의정원]과 고진의 [정치를 말한다]를 마저보다. 중간 일본좌파의 이력과 전쟁에 대한 장들이 묘하게도 겹치다. 자연스럽게 내홍과 흐름을 좀더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말이다. 고진은 세대론으로 희석화하는 것을 경계하며 일련의 원칙이 있는 경우에만 쓴다. 젊은이와 나이든이의 차이보다 더 세밀한 부분이 많고 뭉뚱거리게 되어 놓치는 것에 대한 경계이기도 하다.

[정치를 말한다]는 가라타니 고진의 삶의 이력과 사상의 변천 또는 배경을 상세히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맥락을 여러면에서 되짚어보고 정리되는 측면도 있다. 자본의 생산의 고리가 아니라 소비의 고리, 유통의 고리에서 시작한 NAM과 그 해체(9.11) 그리고 어쇼시에이션으로 말하는 민주주의를 배태한 사회적 단위의 생성이 있지 않고서는 자본의 흐름을 조금이라도 바꾸기는 어렵다는 점을 피력한다.

자본과 국가의 결합, 국가에 대한 시각도 보지 못하는 측면에 관심을 기울이게 한다. 거시적인 측면의 분석으로 60년, 120년 단위의 혁명들을 견준다. 전쟁으로 소화해낸 자본주의의 위험을 경계한다. 파시즘이나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에서 18일 측면을 사회주의 세력이 채우지 못하는 빈공간을 반혁명적인 측면에서 채우기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으로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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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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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220 일터송년모임 휴우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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잦은 송년모임으로 몸이 무겁다.  주말 홀로 있는 일터, 트이지 않는 마음에 책장 넘기기도 쉽지 않다. 달림도 달님도 궁한 저녁 모처럼 산책을 나서다. 달님은 언듯언듯 구름사이로 빗나가길 여러번 하더니, 이내 포근한 저녁밤은 빗방울이 비친다. 걷는 걸음 사이로 버스 정류장에 걸린 시가 끌린다.

돌에 
그늘이 차고,
 

따로 몰리는

소소리 바람


앞섰거니 하야

꼬리 치달리여 세우고,


종종다리 까칠한

산새 걸음걸이

 
여울지어 수척한 흰 물살.

갈갈이 손가락 펴다.


멎은 듯

새삼돋는 빗낯.


붉은 잎잎

소란히 밟고 간다.

 

 정지용의 [비]다.  무심함을 아는 듯 비는 촉촉 마음을 비친다.  겨우 몸에 비치는 땀방울이 낯설고, 이렇게 정신없이 부산함은 철겨운 내 마음 같다. 한겨울에 비라...마음이 소란히 간다. 5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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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눈은 마음만으로 뭉쳐지는 것이 아니다. 눈은 몸으로 구르고 구르고 굴러서야 조금씩 단단해지고 커진다. 마음도 마음만으로 뭉쳐지는 것은 아니다. 마음은 몸으로 구르고 구르고 굴러서야 단단해지고 자란다.

한 머리주의자의 독백은 늘 시공간에서 늦다. 현실이 썰물처럼 밀려나간 뒤에서야 밀려가는 물결에 아쉬움을 싣기만 한다. 머리주의자가 몸을 끌어모으려는 발상자체가 어리석음을 표현하는 일이다. 끊임없이 번역하고 해석하고 아전인수의 피나는 노력만이 남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머리를 유보한 채로 끊임없이 몸의 겹침이 있고난 뒤에야 아 이것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구나라는 뒤늦은 깨우침이 따른다.

몸을 섞어 느끼지 못하는 불감처럼 머리주의자의 독백은 늘 현실에 뒤처진다. 몸을 섞은 만큼만 방향전환하는 것이 현실이다. 몸으로 자란 이들이 머리를 만나기를 저어하는 것이 이처럼 뼛속 깊은 습속때문인지도 모른다. 시공간을 이동하는 것은 이렇게 몸과 몸을 굴려야 마음이 붙고 붙은 마음들로 현실은 다르게 자랄 수 있다. 

뱀발.  나의 머리는 시공간을 달리한다. 아니 어쩌면 늘 습속을 저버리지 못하고 못난 나를 고정점으로 보는데 익숙한지 모르겠다. 아주 조금씩 다를 뿐 어쩌면 축은 움직이지 못하거나 한축의 꼭지점을 두고 빙빙도는지 모르겠다. 일터, 가족, 강도를 달리하는 너, 모임하나둘셋, 마음이 붙어있어 나란 서사(너-나-)의 반경은 넓어지지 못하고 그들의 몸에 안착하지 못하면서, 자꾸 머리안만 들여다보려는 것은 아닐까? 이같은 나란 머리주의자의 고백은 지난 모임에서 발화로 상기된다. 생각이 맴돌고 조금은 달라지고 변하지만 생각처럼 모임이 변하지 않은 이유를 생각한다. 생각이 맴돌다나니 마음도 몸의 뭉침도 빈곤한 우리의 동선이 느껴진다. 5년이 왜이리 짧은 것인지가 오년이 왜이리 긴 것인지로 교환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머리주의자가 컴잉아웃만 하면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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