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그리고 생태적 삶 (1)

 

진정한 생명 존중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으면 한다. 생명이란? 물질이 150여 원소밖에 되지 않지만 이 원소로부터 아름다운 생태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살펴보았으면 한다. 형태와 대사작용(항상성), 자기복제, 진화를 생명의 요소라고 볼 수 있는데 다소 생소한 느낌이 들겠지만 마지막 진화 넣을 수 있다. 이렇게 쪼짠하게 파고 들기만 하는 이공계 박사의 시각도 있지만 미대의 한교수는 생명은 살아있다! 보고 느끼고 표현하는 것!!!라고 말씀해서 더 가슴으로 새길 수 있는 것 같다.

대상이란 우리가 바라보는대로 존재한다. 세상은 나의 시선으로 구성된다. 우리는 자연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지 짚어보자. 우주는 스티브호킹 등의 과학자에 따르면 150억년의 시간을 담고 있다.(생명의 역사성), 그 시간의 기다림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모기 한 마리도 그 시간을 가지고 있다. 잘 생각해보면 수많은 생과 사를 담고 서있다. 죽음에 대해 근대가 사는 것만이 최고라는 인식을 불어넣게 되어 당연한 것으로 생각지 않는데, 죽음을 평범하게 봐야하는 것이기도 하다.

[생태계의 중층 연계구조] 생태계는 극미세한 원자, 분자구조로 시작하는 물리화학적관계로부터 생물학적관계/심리적관계/사회적관계/생태적관계로 연결지어 살펴볼 수 있다. 그런데 그 관계마다 어느 시점에 비약적인 도약이 생긴다? 예측할 수 없지만 관계의 덩어리에서 뭔가 말랑말랑한 것이 생기는 것 같다. 몇가지 용어를 정리해두고 가자.
생명체(생명현상을 나타내는 물체, 개체고유성), 생태계(각 생명체의 어우러짐), 생명(진리, 길, 영성, 모든 존재의 근원) 

생명 현상의 특징은 개체고유성과 다양성이다. 이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해부 생리적인 측면에서 개체고유성을 살펴보면 정신적 나와 신체적 나로 이뤄져있다. 신경(정신적 자기), 면역(신체적 자기)으로 구분해보자. 해부-생리적인 측면에서는 영양만 있으면 수정란을 거쳐 발생이 완료되지만, 기관이 제 기능을 하고 생명이 개체의 고유성을 가지려면 형성되기 위한 외부 자극의 필요성(자극,반응, 기억, 망각-관계의 총체적 누적)이 필요하다. 예전엔 농아가 많았는데 이는 가벼운 중이염이 커져서 외부의 자극에 둔감해져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번지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지금은 거의 없다.

철학의 근본 질문이 될수도 있겠지만 정신적인 나가 어쩌면 그렇게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 신체의 자기의 경우 신장을 이식하면 면역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것으로 봐도 스스로 나를 인식하고 있다. 이렇게 개체고유성은 주위의 관계에 의존한다. 우리는 무의식중에 서양식으로 분석한다. 전체에서 부분으로만 보려고 해서 정작 전체를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한다.

생명의 특징으로 또 하나 척도 독립성을 살펴볼 수 있다. 생명은 관계의 덩어리다. 된장찌개의 요소와 성분으로 구성되는 그 이상의 된장찌개처럼 기계적인 결합 이상의 무엇이다. 관계들도 어머니의 손맛처럼 바람직한 관계가 있다. 생명의 창발현상을 착안한다. 구성성분으로 예상할 수 없는 현상이 복잡계다. emergence 관계하다가 임계상황에 이르면 변화한다. 프랙탈로서 생명현상 - 자기반복을 통해 전체이면서 부분이고 부분이면서 전체인 관계이다. 생명체는 몸을 매체로 하여 개체고유성이라는 생명현상을 나타낸다. 프랙탈과 카오스라는 열린 관계 속에 생겨나는 창발현상이다. 개체고유성은 구체적 실체가 없는 관계로부터 나온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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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의 직업은 시간-지도사이다. 마음 속에 있는 바램들을 모아 시간이라는 캔버스에 조각조각 붙여 그리로 가는 길을 만드는 일이다. 
 

그리움이 봄볕에 바래기 시작한다. 그리움이 한올 한올 벗겨지더니 아질아질 눈앞에서 서성이다 사라지길 되풀이 한다. 문득 그리움을 모아 보았다. 아질거리는 그 녀석은 손을 가까이 대면 촉촉한 습기를 내밀면서 앉는다. 그렇게 바래는 그리움을 모아모아 파릇파릇한 새순들 위에 놓자 그리움은 푸릇푸릇해지더니 곧 끓기 시작한다.

그리움이 끓을 무렵, 서편엔 달이 쫑긋거리면서 달려오는 것이다. 별도 반짝거리며 그리움을 스카프처럼 두르는 것이었다. 

그리운 마을을 떠난 것은 그쯤이다. 그리움이 물밀듯 밀려오다 끓어넘칠 즈음이 되어서야 그 마을로 향하는 시간의 길이 조금조금 실루엣처럼 비치는 것이다. 이제 이 마을의 시간 지도가 마무리 되어간다. 그리움이 앞으로 열 번 정도 끓어넘치게 되면 안개처럼 묘연했던 시간의 길과 지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그리움이 결빙된 듯 바짝바짝 얼기만 할 뿐 도대체 따듯해지지 않는 것이다. 서글픔이 잦게 내리더니 그리움이 조금 조금 지쳐가는 것이다.

시간으로 난 문을 열고, 예전에도 그랬듯이 느낌을 쌓아두거나 느낌을 사고 팔 수 없는 그 마을을 다녀올 것이다. 
 

2.


 

시간의 틈이 빡빡하다. 꾸깃꾸깃 틈을 몇 번 접을 무렵 매쾌한 냄새가 스며든다. 그렇게 황급히 빠져나오자 투명한 타워가 저 멀리 비친다. 거리가 스산하다. 버스가 날카롭게 다가서자 사람들이 몰려든다. 차창가 불빛들이 춤춘다. 춤추는 불빛들이 차창에 자꾸 튕겨 나간다. 

이 도시는 지층에 고이접어둔 석유, 석탄을 이백년만에 모조리 쓴 연유로 해수면의 상승과 지각판에 가하는 압력이 커져 지진이 끊이질 않았고, 중세의 페스트처럼 해변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후로 사람들은 모두 몇시간 빨리 지진에 감응할 수 있도록 신경절에 지진감응주사를 맞았다. 

주사를 맞은 이들은 지적감응도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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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자료> 참터위상 관련 논의자료

다들 힘들고 어려울겁니다. 시간들 쪼개어 쓰고, 여력이나마 참*에 보태는 마음들. 안쓰럽기도 하고 말입니다. 

앞으로 몇번 도움말씀을 드리게 될지 모르지만, 햇살에 바래지지 않는 것 없듯이 시간엔 의도도 의중도 드러나죠. 한번쯤 7년이란 시간의 햇살에 바랜 것이 없는지 기회삼아 돌아보죠. 결과보다는 과정이 걸리는 것은 아닐까 싶군요.여러차례 논쟁이나 논의확대를 포함해서 많은 일들이 겹치네요. 



1.

제 노트에 참*10대과제와 뿌리사업,줄기사업들을 붙여놓고 있어요. 아마 2006년쯤 만든것이겠죠. 무엇을할지에 대해서 많은 논의가 되고 대부분 생각이 아마 그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겠죠. 무엇을할지는 누가 하더라도 그 틀안에서 진행이 될 듯 싶어요. 참터가 내일 접고, 한 십년뒤에 다시 더 젊은이들이 펼친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게 일진一進의 결과물이라고 해도 될까요.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2.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점을 덧보탭니다. 무엇보다 어떻게?겠죠.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어떻게 할 것인가? 무엇을 모두  잘하기에 보탤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는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런면에서 일을 많이 한 분들이 매를 더 많이 맞을 겁니다. 아니 매를 맞고 있으며 한번 더 제 종아리를 회초리로 내리치는 심정으로 아픔을 나눕니다.

사람마다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자칫 태도에 대한 부분이라 저어스럽기도 합니다. 활동하는, **하는 선배의 마지막 조언이라 여기시고, 머리보다 가슴으로 가져갔으면 하는 바램으로 적습니다.

참* 성원분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느낌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몇년째. 주기적으로, 이번에는 접수하기를 바랄 겁니다. 이번에는. 시시비비를 가릴려고 그들이 공식적인 회의자리에서 자꾸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아닐겁니다. 성격이라면, 성격을 고치는 것까지 넣어 이야기하는 겁니다. 시간의 물결을 거슬러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이론이나 옳은 것들의 숨을 죽이고, 어떤 느낌을 전달하는지 귀기울여 주세요. 머리로 판단하지 마시고 가슴의 귀를 열어주세요. 똑같은 메시지를 몇년동안 계속 보내고 있어요.

(잘 행동이 되지 않으면, 무조건 듣고 판단은 모임이 끝나고 하는 겁니다. 모임의 내용이 내 아는 것과 비교하여 하찮은 건지, 아니면 어떤 의중으로 그 얘기를 했을 것인가 곰곰 새긴 뒤, 다음 모임에 그 이야기를 해도 늦지 않을 것 같아요. )


3.

사무국이라고 한다면, 여러 의견이 보듬어지길 바라는 것이지요. 당장은 아니더라도 지금 할 수 없더라도, 오목한 그릇에 담기길 원하고, 관심갖길 바라는거죠. 지난 몇해 바쁨을 인정하더라도, 초창기와 달리, 너무 많이 다른 이들의 의견을 보듬고 키우지 못했어요. 관심사에 빗겨나는 안건이나 생각들도 모으려고 해야 합니다.

언젠가 누군가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하는 습관이 익는다면 햇살에 바래지 않고, 시간에 강할 수 있습니다. 지금하지 못한다면 그 10대과제에 이력을 끼워넣는 겁니다.  사무국이 반상근이므로, 사무국 상황이 2명이었을땐 했는데 지금은 하지 못한다라구. 운영위원 누가 발의했는데, 이렇게 수소문해보았지만 안된다라고 기재하는 겁니다.

참*가 무엇이다라구 느끼면서 총회나 송년회 자리에 나온분들 모두 벡터가 있을겁니다. 의중, 지금 당장은 섞지 못하지만 함께 하고 싶은 것. 대부분 다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그것에는 관심들이 없어요.  만일 그가 이자놀이하고 싶다. 주식하고 싶다라고 이야기해도 들어주며 한번 두번 그 주제로 모임에 섞을 수 있어야 하지 않나 합니다. 지혜창고를 만들어 두기로 했죠. 아무도 담지 않고 있어요.


4.

과학상점과 회원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운영을 하며 덧셈과 곱셈 이야기를 했어요. 제가 덧셈 얘기를 많이 한 것 같은데, 위*장의 곱셈이야기도 인상깊었습니다. 늘 주문처럼 회원이 다가서기를, 조금만 도와주기를 바란 것이죠. 그런데 현실의 변화는 없었습니다. 아주 약간의 변화만 있었을뿐, 생활을 나누는 분만이 운영위에 참여하고 겹칠 뿐이었던거죠. 그렇게 도와주십쇼하는 주문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요. 그런데 집안일처럼 도와준다는 것이 벌써 기울어진 관계는 아닐까요. 사실은 내 일인 것이죠. 그런 관계가 되면 이상적일 겁니다.

그런데 가깝다고 하지만, 사실 우린 밥한번 먹기 힘든 사이입니다. *호도 *윤도 마찬가지예요. 공감하는 무엇이 있거나 그들의 친구의 친구까지 맥락이 스몄으면 좋겠는데....다 관계까지는 생각지도 않고 관심을 갖지 않지요. *호 개인만 관심갖을뿐. 개인에게 호소하면 회원이 늘지 않아요. 생활이나 삶을 섞으면 외려 *호가 친구들에게 이야기하겠죠.

어쩜 덧셈이나 곱셈은 도움을 전제로, 머리로만 애원하는 형태가 아닌가합니다. 관심사와 삶을 섞으려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태극권과 생협의 겹침이 그래도 관계를 유지해낸 것은 아닌가요. 참*와 과학상점의 이론과 머리가 더 필요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린 이론을 주장하고 머리에서 멈춘 것은 아닌가요. 만들어내는 관계에 더 이상 깊숙히 들어가질 않았어요. 들어가서 얘기하고 들어보고 회원....에 대해 ... .... 회원의 회원에 대해. 회원이 관계짓고 있는 다른모임에 대해... ...


우리가 뱉어낸 분들은 왜?왜?왜? 멀어졌을까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고민해봐야되죠. 입장이나 방향이 맞지 않는다고 해서 논의를 소멸시키거나 다시 재고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 놓지 않는다.것도 문제아닌가요.


벌써 예전의 열정이나 , 민주주의가 하수구로 빠져나가도록 내버려둔 것은 아니겠죠.  모두 별이에요. 참*와 연을 많이 두었다고 더 반짝이는 것은 아니죠. 더 돈독하다고 더 더욱 반짝이는 것도 아니고요. 나의 참*가 아니라 우리참*,우리참*, 제발 도와주는 관계가 되지 않도록 서로 믿고 맡기고 가져갔으면 좋겠습니다. 내 관심사는 뭐고 이렇게 하고 싶으니 제발 이것만 챙겨줘라 그러면 알아서하겠다. 알아서 할 수 있도록 온갖 궁리를 해보는 겁니다. 설겆이나 청소는 내 몫이다. 대신 그릇은 개수대로 옮겨라하는 사이로 진전을 바라보면서 말입니다.


뱀발.

- 1.

다른 분의 의욕과 관심사와 상황을 아는 것이 아니라 느끼고 판단해도 늦지 않습니다. 다른 분이 무엇에 의향이 있는지,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한번 더 확인하고 살펴봐도 늦지 않습니다. 다소 참*가 곁길로 가더라도(반면 내가 생각하는 더 옳다라는 주장은 상황타개에 덜 도움이 될 뿐) 모임이 있는 것은 조율의 가능성과 다른 길을 가정하기때문에 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사적 공간이 아니라 공적 공간이라면 의견 한꾸러미씩 가져와 나누고 섞고 하는 것이겠죠.

어쩌면 모임의 운영이 통보에 가깝지는 않았는지? 참터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하는 마음들이 은연중에 있는 것은 아닌지? 옳은 것은 미리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늠하는 것은 아닌지? 옳고 당연한 것은 굳이 회의도 필요없고 지시하고 집행하면 되는 것은 아니었는지 말입니다.

하게합시다. 혼자 하지말고. 아님 접구. 참터에 대한 아는것만 구슬로 엮지말고, 참터와 닿은 인연이나 느낌들을 꿰어보면 어떨까요. 참터가 하고싶은 것 시키지말고, 함께하고 싶은 것을 못내 속는 척 같이 느낀다고 더디갈까요? 늦나요. 다른 길로 가서 주도권을 뺏기나요? 누구를 위한 주도권이죠?  단정하고 이야기를 하면,  논의가 풍성해지며 좋은 결말을 맺은 적이 별반 없던 기억입니다. (-이러이러하고 이렇게 될 것이므로 바람직한 멘트가 아닙니다. 어떻게 어떻게 느끼시는 것을  보니 이것에 대해 의견이 다를 수도 있는데 이렇게 모아보는 것이 어떻습니까?라고 생각기조를 바꿔보는 겁니다.)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했는지? 무엇을 하고싶은지?에 대해서 관심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내 것만이 최선의 판단이라 계속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니였는지? 무슨 얘기인지 반복되어 메시지를 던지는데, 전혀 들어본 적도 없는 것처럼 대하는 것은 아닌지? 여력이 없어서 무조건 안된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참*에게 무슨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던 것인지?

-3.  

 

긴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신상에 대한 코멘트는 앞으로 없을 겁니다. 진심을 받아주시길 바랍니다.  혹 왜곡해서 상심을 끼쳐드리는 것은 저의 불찰이고 오로지 저의 책임입니다.  **드림.

어려운 상황에서 많은 일들을 해낸 것에 대해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 접힌 부분 펼치기 >>

다른 뱀발. 1. 어제 퇴근 무렵 별은 총총하고, 달은 탱탱하다. ㄱㅈ 도서관에 들러 짬독을 하다보니 공복에 졸음도 찾아와 다른 책을 곁들여 들곤 하다.  ㅁㅇ에 대한 짝사랑이 지나친 것인지? 오늘 편지를 보내고 나니 감비님의 시 한편이 듣고 싶다. 나무...제각기 나무...가 모여 숲이 되고.... ....희망은 체계의 바깥은 산다.고 ...날개짓을 하고 싶은데....봄은 늘 바깥에 있다 싶다. 

2. 편지내용만 보면 오해를 사고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다들 일터일과 겸직을 하고 있다. 모임 한둘은 기본이고 바쁘고 고민하고, 읽고 애정깊다. 그 점을 감안하고 혹 자신의 모임과 대위하면서 읽어주면 더 고마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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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은 내리고, 양지바른 작은 공원의 의자엔 하나, 둘 사람의 흔적이 진하다. 으능정이 골목은 젊은이들로 넘치다 못해 북적인다. 지난 모임에 들른  할머니집을 찾는데, 막다른 길목엔 잘못붙어 있는 약도로 더 헛갈린다. 간신히 찾아내어 들른 2층 예약석은 오기까지의 혼돈에 비해 아늑하고 편안하다.

 
1. 오늘은 막걸리,소주,맥주 3종세트다

[정치가 우선한다] 이것 무슨 생뚱맞은 말씀인가? 책이름이나 책을 읽자고 한 사람들이나 뭐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 동네 서점에도 없는 책을 선정하다니 말이다. 구즉도서관에 달랑 한권있던 신간을 정하다니!!! 하지만 구입해서 읽어온 분이 세분이나 되다니 이것 또한 생뚱맞다. 이참에 잘 되었다. 날로 먹을 수 있는 기회다.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이야기죠. 맞단다. 맑스의 역사적 유물론과 계급투쟁에 딴지 거는 내용이죠. 맞단다. 자본주의는 주기적으로 공황이 오고 망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계급적 연대나 정당간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은 정통 맑스주의자에겐 소귀에 경읽기다. 좀더 어렵게 이야기하면 구조와 행위자(집행이라고 표현되었다. 대화중엔)에서 구조에만 치중하고 행위엔 무감각한 것으로 봐야한다.

맑스를 교조적으로 이해한 그룹은 전쟁 이후도 마찬가지로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단, 나치즘과 사회민주주의 세력만이 정치적으로 영향을 끼치게 된다고 한다. 정치적으로 똑같은 요구를 했으며 그 결과는 파시즘과 또 다른 대안으로 분기하게 된다. 이 책에서는 스웨덴의 경우를 바람직한 모델로 상정한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만들어진 사회민주주의는 전혀 새로운 것으로 봐야 한단다. 케인즈주의와 유사한 것으로 끊임없이 현실로 만들어 왔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민주주의는 정치를 통해 국가, 시장과 사회를 유기적으로 움직여 나갈 수 있는 비전이라고 한다. 발제가 끝날 무렵 이젠 [정치가 우선한다]가 조금은 감이 잡힐 듯하다. 이쯤 되어서야 뼈없는 닭갈비의 깊은 맛과 표고버섯찌개의 진한 맛이 혀와 목을 축이는 술과 어우러진다. (1인분에 6천냥, 5천냥으로 가격도 저렴하다.) 



2. 안주는 뼈없는 닭갈비 3인분, 표고버섯찌개 2인분 추가 1인분이다

간이 발제의 느낌을 따라가다보니, 어느새 님들의 입가엔 현실과 섞고 싶은 갈증과 안달이 나있다. 책과 현실의 결이 나란히 움직인 듯 싶다. 느낌을 순서없이 물어봤다. 유럽의 그 당시 상황에 대한 보조 발제도 곁들여 이해하기 쉬웠다. 물론 인터네셔날만 기억나고 세세한 디테일은 숭숭 빠져나가 버린다. 지나치게 역사부분에 대한 서술이 많다는 점과 결론부분으로 논의하기엔 적절하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사회민주주의 그거 개량 아닌가? 베른슈타인, 카우츠키, 로자 룩셈부르크 등등 정통과 관계없는 수정주의 노선 아닌가? 운동권이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사회적합의인 노사정위원회도 지역별로 제안한 적이 있었는데, 그 단위로 운영하면 소모전에서 좀더 나은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었던 것 같다. 노무현정권에서 스웨덴 모델은 반짝 있었던 것 아닌가? 물론 논의가 확장된 것은 아니었다.

현재 운동의 흐름으로 보면 이런 움직임을 의미없는 것으로 박제화하거나 역사적 유물론과 계급투쟁을 경직화하여 해석할 확율이 높은 것 같다.운동동지들이 더 그럴 개연성이 있는 것은 아닌가? 자신의 이념에 세상을 끼워맞추는 놀라울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닌가?

술보다는 이야기에 취한 듯하다. 홀짝 홀짝 들이키는데 다들 긴호흡으로 술잔과 담화를 어루만진다.  좀더 구체적인 현실을 다뤄보기로 한다. 구조와 집행이란 방점으로 옮긴다. 구조만 있고 집행이 없는 현실을 빗대어 본다.


설명하고 분석하는 순간, 이미 늦었다. 복지도 이미 선점당한 것 아닌가? 코끼리를 생각하지마처럼 프레임에 갇히는 것은 아닌가? 용어에 맞대응하거나 반박하는 순간, 그 틀은 더욱 견고해진다. 진보하고 한다면 바둑의 수처럼, 몇 수를 바라보면서 용어를 만들어야 한다. 이 용어에는 사람들이 이렇게 반응할 것이고, 저렇게 반응하므로 2-3수 앞을 보면서 이런 용어를 생성해야 한다. 스웨덴의 경우도 우파의 슬로건을 좌파가 가져다 썼다고 한다.

우리가 기껏 고르는 인물들이라곤 버린 패만 있는 것은 아닌가? 진보정당과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이 민주당과 연합을 한다고 하면, 노동부장관과 복지부장관은 확실히 보장하게 하고, 그 기간 동안 유의미한 정치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본다.

다 잘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노후-주택-교육 모두 기본적 복지로 중요하지만, 집권한다면 교육이면 교육에 대해 5년동안 구조적 모순을 드러내고 사회적 여파가 있도록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한다.  



3. 밥을 비벼 먹어야 한다. 닭갈비양념이 달콤하다.

일반 국민들의 생각은 어떤가? 핀란드가 47%의 세금을 낸다고 하는데, 우리의 경우 그렇게 한다고 하면 어떻게 반응할까? 성장해야 한다. 발전해야 한다. 세금을 더 내야한다고 하면,400만원이상 수입자는 더 낼 의향이 있다고 하지만 200만원미만의 수입자가 가장 반대를 많이 한다고 한다.  

일반인들은 진보의 경험이 축적되지 않아 진보세력을 믿지 못한다.  MB에게 배신당한 마음이 어디로 쏠릴까? 이젠 복지에 솔깃한 것 아닌가? 벌써 그 프레임의 주도권을 내준 것은 아닌가? 사회주의라는 표현이 왜곡되고 비틀어졌다면 과감히 쓰지 말 생각을 해야되는 것은 아닌가? 지금여기에 해석하고 분석하게 만드는 말을 쓰지 말고 느낌이 오게하는 말부터 써야 하는 것은 아닌가? 진보는 늘 해석하고 분석만하는 가분수는 아닌가? 열정으로 전달되고, 마음으로 손과 발로 움찔 움찔 미동할 수 있도록 해야하는 것은 아닌가?

 일차의 말미에 [당신은 의심을 하는 편인가?]라고 뜬금없이 **형이 묻는다. 한명 한명 콕 찍어서, 그리고 **형을 콕 찍어 의심하는 편인가?라고 **이가 되묻는다. 짚어보는 성격인가?라고 말을 달리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묻다. 알게 된 것, 배운 것, 믿는 것에 대한 의구심이다. 되짚는 것이 민주주의의 시작이자 성찰의 기본 소양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 습속이 붙어 있는 이상 그것에 세상을 하나하나 끼워넣고 대상화하게 되는 것이지 않느냐는 합의였다.   



4. 맛난 이야기와 음식의 말미 나온 화두가 공동체다.

책 속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닌 공동체, 공동체의 회복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하지만 공동체가 귀농이나 시골로 돌아가자로 오해할 소지가 있다고 한다. 아파트가 서로서로를 알지 못하게 뱉어내는 구조라면, 시골은 일거수 일투족까지 들여다보이게 하는 틀이라 도시사람들에겐 맞지 않는다. 도시의 공동체를 이야기한 사람은 많다. 사적공간의 보장이란 요소와 맞물려야 한다.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구조면 어떨까? 바로 옆 **가 활동을 하고 싶어도 도와줄 일이 없다. 시민재단이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살림살이를 겹쳐 논의할 수 없는 우리의 나약한 현실이 들여다보이는 것이다.

정말 많은 돈이 들까? 느슨하지만 하고싶은 하는 기본적인 물적토대를 만드는 것도 한 꼭지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뱀발.  

1. 지난 모임의 말미 진보세력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권력의지가 논의되었다. 너무 많은 것도 문제지만 지금은 진보세력이 무장해제를 하고 손을 놓고 있다는 점이다. 선배그룹도 후배들을 어떻게 챙겨야하는 것인지 이야기조차 하지 않는다. 여기도 정치가 우선이다. 현실을 만들어내는 일들은 늘 당장의 몫이다. 뒤이어 중국인이 운영하는 곳의 선술집과 맥주 한잔과 나머지 이야기를 보탠다. 

2. 다음은 통영이다. 좋아하는 시나 소설 한점씩 나누면서 바닷가에서 점점 박히는 섬들을 보며 한잔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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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부 2011-03-14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어제모임이 눈에 선하군요...ㅎㅎ..고생하셨삼

고니 2011-03-17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형님 아카데미 블로그로 옮겨요
 

 

뱀발. 청소를 하다 이 녀석을 발견하고 따로 옮겨두다. r도 따로  이사를 시키고... 사진을 남기지 못해 아쉽지만 느낌을 콕~.  길가 나무들은 연두빛를 연하게 여기저기 머금고 있다. 아지랑이처럼, 마음으로도 보셔야... ... 

[요렇게 느낌만 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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