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평과 비난사이__반짝반짝 삼랄회(신랄~,발랄~,지랄~)
  - 신랄할 책한권, 발랄하여야하는 발제자, 지랄할 참여자(준비)
 


 - NL/PD 논쟁은 아직 유의미한가? 바라보는 이의 관점, 살아가는 이의 관점, 유지하고 있는 이의 관점, 현실에서 합이 가능한 지점은 무엇인가?
 - 지역의 전교조교사, 교사와 사회활동, 어떻게 나누고 세울 것인가?
 - 연구단지 노조 바라보는 이와 참여하는 이, 그리고 그 중간의 여백을 어떻게 채우고 보듬을 것인가?
- 시민단체 왜 권력감시만할까? 왜 이해는 생각지도 않고 가치가 주구장창인가?회원과 친밀도를 높이는 것은 불가능한가?
- 학생운동 과연 불가능한가? 할 수 있는 접점들에 대해 고민해보나?
- 주민운동, 풀뿌리, 나는 왜 풀이 아닌데 가능한가?
- 삶을 섞다. 따로 또 같이 살다. 어떻게 가능한 삶을 튕겨보다
- 공동체, 도시 또는 시골. 다 가능한가? 모두 가능하지 않은가? 왜, 무엇때문인가? 어떻게?의 문제인가?
- 월50만원으로 기획해볼 수 있는 활동에 대해? 얼마나 오래동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당신의 아이디어는? 당신이 1년동안 해보고싶은 활동은?
- 운동을 섞다. 활동을 섞다. 함께 하고싶은 단체, 함께 기획해보고 싶은 꺼리들
- 왜 선거때만 되면, 지역은 지역다운 전략을 못쓰는걸까? 왜 선거때만되면 연대인가? 왜 선거전에는 다 남남일까? 왜 일상에서는 만나지조차 못하는가? 만나거나 섞을 수 있는 넛지는 없는 것일까?
- 국회의원 왜 줄어야 하나? 늘어야 한다.
- 왜 대학교수 줄여야 하나? 늘어야 한다.
- 소비보다 직접 생산을 장려하는 분위기라면 수강보다 직접 강의....작품....
 

** 위 꼭지 하나씩 신랄한 텍스트 하나. 중심에 있는 발제자, 그리고 지랄할 각오를 한 님들... 


2.

                            A4지 한장의 만남
( 일상과 삶이 녹아있는 만남 )
- 오시는 분들은 유명한분이나 아니나 달랑 한쪽만 준비해주세요. 글씨가 크든 적든 관계없답니다. 


- 내 인생에서 제일 설레일 때?
- 올해 여기 모임에서 가장 기쁜 날? 올해 가장 열받는 날?
- 가족이 합쳐진다면~, 민중의 집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 귀농을 왜 생각해봤는가? 보는가? 왜 생각하지 않는가? 왜 가르는가?
- 가족? 당신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홀로가족? 또 다른 가족-가족의 연대의 삶은 불가능한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 친구?
-   



 


3. 



백만원 받고, A4지 3장의 에세이  

- 당신의 삶과 주제를 걸어라, 무엇을 하고 싶은가? 도와주겠다. 진심으로 온몸으로~

 


4.

- 찾아가는 강연회시리즈는 가장 먼저 참*란 모임에서 시도한 것 같은데 다들 지적소유권을 주장하지 않는다고 아무말도 하지 않는 걸까?

- 글꼭지에 가장 먼저 0.을 쓴 것 같은데 다른 이는 왜? 0을 쓰는 것일까? 쓰기 시작한 것일까?

- 왜 여기 서재는 사회적이슈를 다양하게 품으며, 새로운 아이디어의 산실이 되지 못하는 것일까? 그렇다고 신변잡기의 산실도 되지 못하는가? 사회적 이슈를 만드는 기술이 너무 없는 것은 아닌가? 물밑 연결망은 살아있는가? 공감하는 아픔이란 것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닌가? 공감하는 아픔의 경계가 서로 넓어질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왜 자유주의적 주부는 주제의 공론화를 꺼리는 것일까? 왜 농담에 까르르 함께하지 못하며 농담이 자라지 못할 정도로 진지한가? 가벼움은 왜? 섹시함은? 왜 디테일한 경망이라고 꼬리표를 붙여야 하는가? 왜 오프모임은 자라지 못하는가?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앎이 대적하기 위한 무기라든가? 앎이 거느릴 해박함에 대한 유혹이라든가? 앎이 비교우위를 점하게 한다는 알량함때문은 아니다. 현실은 끊임없이 몸의 강박과 적대를 생산하기에 몸에붙은 앎이 유효한 무기라는 것은 모르는 바는 아니다. 세상은 앎의 거드름을 피우는 이로 넘치고, 그런 우쭐이 횡행하기에 앎을 피력하는 것은 이들을 견제하기 적절한 방법임을 안다. 그런데 앎에 대한 충동이 생기는 것은 무지와 망각으로 인한 아픔때문이다. 그래서 강박처럼 앎을 기획해야겠다는 욕심이 이는 것은 아니다.  


 


앎이 그저 설계도처럼 여기저기 구획지어 수평면에 갖다 박아놓는 것이 아니라, 앎이 여기저기 막힌 광맥처럼 이어지지 않음을 한탄하는 것이 아니라, 앎이란 것도 적절하게 품어 떡잎이 나고, 자라고 나뭇가지를 팔벌릴 줄 알고, 짙은 바람에 몸을 기우뚱 뉘기도 했으면 하는 바램때문이다. 앎이 당신을 점령에 휘하에 두고 내려보는 것이 아니라, 앎의 서로의 몸을 타고 올라 어깨동무도 할 줄 알고, 저기 보이지 않는 어둠을 챙기고 싶은 연유이기도 하다.

얕은 바람에도 예민하고, 능개비에도 촉촉히 스며들고, 햇살에 때론 장대비에 쑥쑥 자라는 맛이 있는 앎, 뿌리로 튼튼한 연대로 삼킬 줄 알아 하늘로 무장무장 커버리는 앎에 대해 말해보고 싶은 것이다. 앎이 때론 근육이기도 하지만, 주변의 사소한 것들과 조응하며 서로 키워내는 맛이 그립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앎의 욕심들이 짐짓 잘난체 하지 못하며 앎들이 서로 다양하게 크고 또 다른 그늘에 다른 앎을 키워내는데 도움줘야 한다는 나무와 숲의 변주도 기대하고 싶은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드디어 말을 배우기 시작했다. 간혹 외마디의 절규만이 거리를 메우곤 했는데, 언제쯤부터인가 사람들은 갓난아이가 맘마, 엄마라고 옹알거리듯 말문을 튼다. 사람들은 최면에 걸린 듯, 거리의 핏빛과 절둑거림은  주저없이 나완 상관없는 일이라고 했었다. 그 사람들에겐 로또가 내품에 안기고, 내자식은 다를 것이고, 나는 성공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대화의 팔할은 집과 자식과 돈세례를 맞는 것이었다. 그런이들이 언제부터인가 구까, 국하.......언제부터인가 복찌, 복끼.....라고 말문이 트이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내탓을 했는데, 보글보글 경계를 넘어선 남탓의 배후를 찾는다. 일상의 편린들이 밟히고 밟혀 울화가 몸에 스며들어 목에서는 이제 다른 말을 내놓는 것이다.

부글부글이 솥뚜껑을 들어버리듯이 한바탕 소리를 내며 넘칠 듯하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날이서기 시작했다. 몸을 벼려 칼날처럼 뾰족하게 만든다. 삶의 절벽에서 서성이는 이가 늘고, 삶의 끝이 누가 사주한 것인줄 몰라 제 목숨을 놓는다. 사람들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돈을 탐하고, 대기업을 탐하고, 명문대를 탐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대기업을 탓하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가 명문대를 탓하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가 그들은 상상 속에서도 그 줄에 닿지 않으며 닿을 수 없음을 토해내기 시작한다. 그들의 몸은 내장을 발딱 뒤집어내듯 온몸을 뒤튼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제몸에 기름을 부어 말을 배운다. 삼...사 ㄻ ... 이렇게 살고싶지 않다고, 절박을 건넨다. 이렇게 살지 말아야 한다고 피눈물을 삼킨다. 무더운 여름 이렇게 내리는 장마비는 모두 그 눈물이다. 아픔이다. 때론 아픔의 연대도, 눈물의 연대도 이렇게 쉬이 올 수 있다는 것을... ... 사람은 죽을 이유가 없다. 살아야 한다. 살게해야 한다.  단 한명의 삶도 앗을 수는 없다. 국가가 답하라. 

 

뱀발. 딱딱한 이들은 말랑말랑함을 당할 제간이 없다. 딱딱하던 틀에 기를 쓰고 자신을 맞춰 넣으려는 이들이 마음을 살짝 놓는다. 그 마음이 스르르 제 심지를 녹인다. 말캉말캉한 이들이 흐른다. 딱딱한 것들에 반기를 들며 서로 붙어 흐른다. 저 쇳덩어리같은 거죽과 일터의 갑옷에서 흐물흐물 뼈대만 남기고 거리로 나선다. 무더운 여름을 끓어 칠월이다. 홍수처럼 일렁이는 광경을 목도하고 있다. 서로 삶의 팔을 벌리고 잡으면 잡을수록 우린 똑똑해질 수밖에 없다. 딱딱한 것은 가고 말랑말랑 뻘같은 것이 국가를 삼킬 듯하다. 국가를 맛사지해야 한다. 국가를 간지르고 애를 태우고, 저기 돈같은 괴물에게 절절 매지 못하도록 해야한다. 말랑말캉해져 외려 우리 삶과 풍요를 간질거리도록 해놔야한다. 우린 너무나 많은 풍요를 쌓고 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조선인 2011-07-04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월요일 아침에 읽기엔 묵직하네요. 오랜만에 댓글 남깁니다.

여울 2011-07-04 10:45   좋아요 0 | URL
안부 고마워요. ㅎㅎ.
연두부 기억하시죠. 둘째를 낳았답니다. 이름은 아직짓지 않았지만 연두동생 만두로 불리고 있습죠. ㅎㅎ. 아이들이 재산이고 힘입니다. 그리고 희망...
묵직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맘이 편치 않긴 하지만 칠월 멋진 한달되기 바랍니다. 늘 건강하시구요.

조선인 2011-07-04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라니 참 그립고 그리운 이름입니다... 이 나라가 이 여름을 무사히 치뤄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심정입니다.

여울 2011-07-04 16:26   좋아요 0 | URL
그쵸. 그리운 이 한번 생각해봅니다. 이 무더운 여름 반전의 소식이라도 들리기를 기대하기도 하고 노력해보기 할렵니다. 잘 보내소서.
 

 

 

 

 

  

 

 

  

일터 일 삼아 가는 길 잠깐 콕~ 하다.(임립미술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110627 바램들 몇꼭지

1.
 
벌써 몇주의 시간이 지났군요. 저는 사람들과 만나면서 그리 주장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닙니다. 개인적인 스타일도 있지만 말들이 너무 많다고 여기는 편이지요. 그리고 되도록이면 말을 반복해서 하는 편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러 만남들 속에 제 입장을 개진해서 바꾸어내는 편도 아닙니다. 어쩌면 저로 인해 약한 결합력만이라도 있다면 그것이 유지되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시간에 대한 맷집은 있는 편이라고 여깁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 몸의 의사소통이 되기까지 무척이나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여깁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무엇을 도모하는 것도 말이 안되지만 소통까지 숱한 시간이 걸린다고 여깁니다. 지금도 벙어리처럼 냉가슴을 앓고 있는 만남들이 있습니다.  다른 면을 보았으면 좋았을텐데.라는 주문은 어김없이 지난  나의 과거로 돌아갑니다. 그때 그랬으면 좋았을 것을.

그 충고나 이야기가 뒤늦게 문득 깨닫게 되는 것. 여전히 소통력에 문제가 있어 마음을 주어도 채근해도 그(녀)의 가슴에 다가갈 수 없음이 늘 안타깝더군요.

J선생님이 강연의 농도를 진하게 하기 위해 노력이나 준비를 많이 하시는 것은 알지만, 질문의 량과 템포를 한번만 줄이면 어떨까? 다른 이의 질문에 양념을 보태면 어땠을까? 그 많은 질문 가운데 가벼운 질문이 2할쯤은 섞이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도 표현해봅니다.

주최측과 회원의 간극은 얼마만큼일까? 실무자의 태도나 포용력이 부족한 모습도 문제겠지만, 한번쯤은 따로 떼어놓고 보면 되지 않을까요? 단체나 모임, 주체, 조직을 믿지 않는 편입니다. 조금이라도 챙기려는 이들의 연대가 그래도 모임을 꾸려간다고 여기는 편입니다. 좀더 주제를 갖고 조각조각 잇는 일들을 하시면 어떨까 싶기도 했었고, 지금도 별반 다른 생각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서로 품을 팔아 품들이 서로 잘 만나 잘 되었으면 하구요. 

아***가 까칠한 분들이 유난히 많은 편이죠. 저도 소통을 못하는 편인데 사람마다 각인각색이라 늘 같은 말도 달리나오고 어찌해야할지 늘 고민입니다.

 
중언부언하다보니 어쩌면 변명이나 구실로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쉽게 모임을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질문을 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나누고 싶은 것은 시도나 연습이지요. 기대를 줄이는 연습, 일을 섞는 연습, 모임을 만들어가는 연습들...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J선생님이 충분히 해낼 수 있음에도 여러가지를 방편삼은 것은 아닐까하는 질문을 드려보는 것입니다. 

서로 만나고 만남을 섞는 우리들의 관계와 지난 시간들이 , 좀더 현실과 바닥을 보고 서로 품을 보태는 다양한 방법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다시 들어서 이렇게 보냅니다. 생각과 고민, 그동안 아***로 인해 겪은 풀리지 않은 매듭을 다시 한번 돌봐주시면 어떨까 하고....주저하며 전합니다. 살펴주세요.         

                                                                         ***드림.   구월 첫날. 가을 한점 드리운 날 

 

2.

제가 이렇게 생각을 덧붙이고 싶은 것은 저한테 다시 말을 거는 일이기도 한데요. 너무도 보는 관점이 허술하지 않은가 하는 점때문입니다.

지난 헤어짐을 반추하는 남녀의 관점처럼, 대부분 상황을 이해했다고 하는데, 잠시 머리로만 이해했을 뿐 가슴의 언저리에도 가지 못하는 일이 너무 많기때문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입장만 관점이 점점 강해져 상황을 잘못보는 일들이 많기에 저에게 말을 거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가장 맛있는 음식의 종류처럼 어머니의 수만큼 관점이 존재할 수도 있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정작 상황은 벌어지고 관점은 정리되거나 잘려져서 일처럼 처리될 뿐은 아닐까 하는 우려때문이기도 합니다. 관점은 섞이거나 버무려질 수 없을까요. 당사자의 감정이나 느낌, 상황을 보는 일리가 다름은 인정될 수 없을까요? 여러가지로 보는 일리들 속에 너, 나는 서있는 것은 아닐까요. 너, 나가 모임도 되고 단체도 되고 조직도 된다면

다른 시선에 굶주려서인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잘 안다고 하지만, 대부분 잘 모른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저도 아직 절 잘 모르고...여기저기 나도는 말에 어쩌면 제가 조금씩 붙어있고 그것들을 모으다보면 제가 믿는 나보다 더 잘, 아니 달리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모임이란 것은 딱딱한 것이 아니라 말랑말랑한 것이란데 개인적으론 동의합니다. 얼마나 말랑말랑해질 수 있을까.  상황을 단정짓고 싶지 않고, 어떻게 풍성하게 볼 수 있을까하는 생각때문에 이렇게 말이 주절주절 길어지네요. 개인적으로 만든다는 말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선택이란 말보다 시간에 대해 넉넉해서  선택이나 소비보다 훨씬 좋아합니다. 어쩌면 그래서 비루하고 답답한 일터, 마음 섞을 친구 몇몇 없는 일터에서 이렇게 서성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몸, 마음 담고 있는 모임들을 여러번 흔적을 남기고 경험하면서 이력이 생긴 것인지,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뼈아프게 느낍니다. 목적에만 경도되어 말랑말랑한 모임이 부지불식간에 갑각류처럼 딱딱해지는 경우도, 현실 물정을 몰라 허망하게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관계들도 보았습니다. 부지불식간에 준 상처들은 어떠했을지, 눈치를 채지못해 모임을 뱉어낸 적도 있고 말입니다. 

상황을 재단하거나 판단할 능력이 제겐 부족합니다. 하지만 늘 마음쓰는 것은 그래도 상황을 보는 다른 관점을 인정하고 섞이는 경험의 눈이 있다면 우린 또 다른 것을 같이 볼 수 있지 않나하는 생각때문입니다. 이런이런 이유로 저런저런 이유로 관계가 끊기고 또 만나고 하는 것도 그리 나쁠 것은 없지만, 한번 도드라진 덕에 다른 생각, 고민, 관점을  서로 녹일 수는 없을까...어쩌면 서로의 마음 속으로 가져갈 수는 없을까해서 이렇게 어리석은 질문을 던집니다.

아마 이래서 사람들이 저를 어렵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저만 저를 쉬워하나요. 사실 쉬운데...쓰는 단어도 몇단어되지 않는데 그렇게들 어려워하시나...ㅎㅎ

부담주고 싶은 마음을 별반 없습니다만 맘들 나누고 싶어 이런다는 점 받아주길 바랍니다.  **드림.
 

뱀발. 작년 가을 우편함을 정리하다 보낸 편지가 먼댓글과 겹쳐 콕 남겨둔다. 맘의 물꼬를 트는 방법은 몸겹침 10회* 열정자람 5회가 머리숙고를 3번은 기우뚱하게 되야 하는 것은 아닐까? 머리의 숙고도 가슴의 숙고도 정작 겹몸이 자람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머리가 칼을 휘둘러 정작 필요한 장작불같은 가슴도, 몸도 사분오열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다양성을 조금이라도 가져갔으면 서로 중요하다는 자각이라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