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과학의 달을 마감하며

척박한 과학문화 현실을 돌아본다

 

과학의 달 4월이 지나갔다. 한 달 내내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과학행사들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행사에 과학기술이 옷 입혀졌음에도, 정형화된 행사들 속에 과학의 향기는 없었다. 마흔여섯 번째 과학의 달을 보냈지만, 우리나라 과학문화의 토양은 여전히 척박하기만 하다.

 

월초부터 창조경제가 화두가 되었고, 대통령은 국민 개개인의 상상력과 창의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정부는 정작 상상력 및 창의성, 나아가 창조경제에 대한 사회적 토대를 형성하는 과학문화에는 관심 없이 경제적 성과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 규모가 큰 과학기술 전담부처 미래창조과학부가 출범했지만, 과학문화와 과학기술의 사회적 토대 강화 업무는 여전히 미미하기만 하다.

 

우리나라에서 과학기술은 아직까지도 전문가들의 전유물로 남아있다. 과학기술의 영역에서는 유독 시민은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고 소비자만 존중될 뿐이다. 시민들이 수동적 존재로만 취급되는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상상력과 창의성의 발현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제 과학기술에서도 시민참여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우리가 과학의 달을 맞이한 그 햇수만큼이나 서구 여러 나라에서 과학기술에 대한 시민참여의 역사는 깊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시민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과학기술을 만나고 활용하고 과학기술을 넘어서는 그 무엇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에 우리는 올바른 과학문화의 확산과 정착을 위해 다음과 같은 사회적·정치적 과제를 제시한다.

 

1. 파행 위기에 있는 대전엑스포과학공원을 시작으로, 과학기술과 시민이 만나 창의적 문화를 싹틔울 수 있는 새로운 과학문화 공간의 창출과 확산이 필요하다.

2. 과학기술 전문가들은 책임성 있는 연구개발과 결과물의 사회적 활용, 전문지식을 활용한 사회적 지원 등을 통해 적극적인 사회적 참여를 모색해야 한다.

3. 과학기술의 영역에서 소외되어 온 시민들이 주인으로서의 역할을 확보해야 하며, 이를 지원하기 위한 정책 및 제도적 기반들이 마련되어야 한다.

4. 과학문화 창출 및 확산을 위한 정부 차원의 체계적 정책 수립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법적 기반의 확보가 시급하다.

5. 과학문화의 확산과 시민참여 확대, 정부 주도의 과학기술 정책에 대한 감시 및 견제와 대안 마련을 위해 국회 내에 과학기술 전문기구의 설립을 제안한다.

 

 

2013. 4. 30

시민참여연구센터

 

 

 

[입장 전문]

 

4, 과학의 달을 마감하며

뿌리 깊은과학기술 문화를 위한 사회적·정치적 과제를 제안한다

 

 

창조경제와 패러다임의 전환

과학의 달 4월에 창조경제논란이 뜨거웠다. 정치권은 물론 산업계에서도 뜨거운 이슈로 다뤄졌지만 좀처럼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 대통령을 비롯해 미래창조과학부 장차관까지 나서 과감한 패러다임의 전환과 추격형 경제로부터의 탈피 필요성을 언급하고, 구체적 모델로 이스라엘의 사례를 거론했다. 그러나 국민들에게는 여전히 대부분의 설명이 모호하기만 하다.

 

경제규모 15, 무역규모 8, 과학경쟁력 5, 기술경쟁력 14. 세계 속의 대한민국 현주소다. 모방 위주 기술전략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인식변화는 때늦은 감이 있지만 분명 바람직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충분치 않다. 진정한 패러다임 전환은 관점의 변화를 기본으로, 목표의 수정과 수단의 변경, 나아가 관심사의 범주와 현실을 해석하는 기준 및 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나 미래부 정책은 여전히 산업과 경제 위주의 성장주의 관점과 이의 달성을 위한 기존 정책요소들의 재편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419일 과학기술·정보통신인 한마음대회의 박근혜 대통령 축사 중 국민 개개인의 상상력과 창의성이란 언급이 눈길을 끈다. 미래부가 놓친 중요 시사점이 그 속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경제·기술적 수준에 걸맞게 창의와 혁신을 밑천으로 미래를 열어가고자 한다면 이는 매우 중요한 과제로 다뤄져야 한다. 오히려 창조경제에 담긴 경제 중심 가치를 내려놓고, 상상력과 창의성 발현을 돕는 사회문화적 환경 조성을 핵심으로 내세우는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 새로운 산업과 시장, 일자리 창출은 이를 통해 얻게 되는 다양한 열매들 중 일부일 뿐이기 때문이다.

 

2. 뿌리 내려야 할 과학기술

과학기술에서 창업과 혁신으로, 다시 경제로 이어지는 정책 마인드는 해묵은 선형적 사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상상력과 창의성은 이런 정형화된 틀 바깥에서 이질적 사회문화 요소들의 충돌 속에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발현된다. 경제적 성과를 최고 가치로 삼는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오히려 효율성과 속도의 논리에 창의성이 질식될 수밖에 없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아 꽃이 좋고 열매가 많다.” 열매를 얻겠다고 꽃 달린 가지에만 관심을 쏟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창의성과 상상력의 발현을 위해 우리가 시선을 돌려야 할 곳은, 그렇기에 오히려 경제가 아닌 과학기술적 문화의 토대인 것이다. 과학기술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통찰 없는 상상은 공상에 지나지 않고,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의 서로 다른 발상들이 맞부딪히지 않고서는 창의가 꽃피지 못한다.

 

과학의 달 4월이면 전국 각지에서 과학문화행사를 표방하며 다양한 경진대회와 체험행사들이 벌어진다. 그러나 대부분의 행사들이 의례적 기념행사에 머물고 과학기술문화의 성숙에는 실질적 도움이 되지 못한다. 정해진 방식으로 만들고 작동 결과에 따라 순위를 정하는 행사에서 남는 것은 단지 수상 여부일 뿐이다. 체험·견학행사 또한 과학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기회가 되기보다 단체나 기관 홍보와 성과 자랑에 머문다. 이런 행사들에서 과학의 실체에 한 걸음 다가선 느낌, 과학이 우리 삶으로 한층 다가온 느낌을 기대하기는 불가능하다. 결국 일반인들에게 과학기술의 의미는 누군가에 의해 제공된 것을 잘 수용하는 것이며, 과학기술 행위란 자신과는 직접적 관련이 없는 것이란 인식을 재확인하게 할 따름이다.

 

3. 문화적 토양 강화를 위한 과제

과학기술도시를 표방하는 대전에 연구기관들이 자리 잡은 지 35년이 흘렀다. 그러나 대덕연구단지는 여전히 지역에 융화되지 못한 채 동떨어진 섬으로 남아있다. 우리나라 과학기술문화 현실이 이보다 더 단적으로 드러나는 곳이 있을까? 대덕연구단지에서 국립중앙과학관과 더불어 일반시민들이 편하게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는 시설이 바로 엑스포과학공원이다. 그러나 1993년 대전엑스포 이후 몇 차례 활성화 계획의 좌초를 겪었고, 지난해 롯데 복합테마파크 조성 관련 논란에 이어 올해는 미래창조과학산업단지 조성과 기초과학연구원 이전 논의가 불거지며 지역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이런 방안들은 모두 엑스포과학공원의 조성 취지와 지역특성, 주변여건을 무시한 개발 관점의 빗나간 계획일 뿐이다. 엑스포과학공원이 박제화된 전시·홍보 공간이 아닌 과학기술과 시민의 자유로운 만남의 창구로, 또한 창의적 과학기술문화가 싹트고 지속적으로 자라나는 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도록, 정부와 대전시, 지역사회가 함께 머리를 맞대는 것이 필요하다.

 

과학기술문화의 기반 강화에 정부·지자체 뿐 아니라 과학기술 전문가들의 책임과 역할 또한 중요하다. 과학기술 발달에 따라 새로운 문제들이 야기되고 있고, 과학기술의 도움으로 해결해 할 새로운 과제들도 지속적으로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과학기술 전문가들은 여전히 사회적 소통 필요성을 간과한 채, 정부·민간기업 등 연구비 지원 주체만을 어쩔 수 없는 소통 대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현실이다. 드물게 발생되는 일반인과의 공개적 소통에서는 일방적으로 가르치려 들거나 자신의 연구분야에 대한 장점과 정당성만 내세우는 모습이 강하게 드러난다.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정보를 일반인들에게 제공하길 기피하고, 특히 사회적 이슈와 관련해서는 침묵을 선택한다. 결국 과학기술을 사회와 동떨어진 것으로 여기게 만드는 데 과학기술 전문가들의 카르텔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전문성에는 항상 그에 맞는 책임성이 따른다. 과학기술 전문가들 또한 연구개발 결과의 사회적 활용과 전문지식에 기반한 자문활동 등 다양한 방법의 사회적 기여 방안을 이제 모색해야만 한다.

 

과학기술 영역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참여 또한 다양한 형태로 보장되어야 한다. 시민들을 기술홍보의 대상이나 제품소비의 주체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 기술영향평가, 합의회의 등의 시민참여 제도가 국내에서도 시도된 바 있으나 아직 안착되지는 못한 실정이다. 전문가와 시민의 협력을 통한 문제해결을 지향하는 과학상점 활동 또한 전문가들의 사회참여 부재 현실에 부딪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외국에서는 기술의 활용이나 거시 기술전망 혹은 정책수립 등의 범주를 넘어 구체적인 연구의 기획과 수행에 있어서도 시민참여를 도입하는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연구개발의 시행착오를 줄이고 현실적인 활용 적합성을 제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민참여의 확대와 안착을 위해서는 정부의 제도적 지원 및 기회 마련과 함께 전문가들의 자세 전환과 지원 또한 필수적으로 병행되어야만 한다.

 

정부 차원에서는 과학문화 확산을 위한 정책 발굴과 마스터플랜 수립이 시급히 요구된다. 과학기술의 성과가 다양한 형태로 활용되고 국민들의 창의성이 자유롭게 발현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과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연계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시급하다. 그러나 과학문화와 관련된 정부의 업무는 과학관 운영, 과학의 날 등의 행사 추진, 과학기술 관련 단체에 대한 지원 정도에 머무는 것이 현실이다. 과학문화 육성을 추진하고 지원하기 위한 변변한 법적 토대조차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다. 과학문화에 대한 정부의 인식과 관심 수준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국회 차원의 제도적 기반 또한 새롭게 마련되어야 한다. 과학기술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과 시민참여의 필요성이 커지는 현실에 맞추어, 과학기술 문화의 확산과 시민참여의 확대, 과학기술에 의한 또는 과학기술과 관련된 사회적 문제 및 이슈에 대한 개입과 중재, 그리고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 및 투자 방향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위한 국회 내 과학기술 전문기구의 설립이 절실하다. 미국에서 시작되어 영국, 덴마크 등의 나라에서 과학기술국, 기술영향평가위원회 등의 전문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해외 사례를 벤치마킹하여 바람직한 국내 모델을 정립하고 관련 조직을 구축하기 위한 활동을 늦기 전에 서둘러야 할 것이다.

 

 

2013. 4. 30

 

사회적 약자와 공공의 이익을 위한 참여연구

시민참여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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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질문보기 - 사회단체에 대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질문의 의도에 끌려갈 필요가 없겠지. 되묻기도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이지 않을까

 

박원순시장의 추천사와 들어가기전 90%를 위한 기술의 시대만 인상적이다. 다른 내용들은 별반 다가서지 않았다.

 

 

 

 

 

 

 

 

 

 

 

 

  자칭진보들은 버림받는 노동자나 노동문제를 직시하지도 않았다. 타협과 진보행세가 사물의 겉만 보고, 그 행태만 따라가 더욱 현상태를 유지시켜준 역할을 한 것이 아닌가 되묻는다.  사물을 꿰뚫으려고 하는 노력도, 관점도, 통찰도 부족하여 당위의 깃발만 내세운 것이 현실을 한치도 헤쳐나가지 못한 것은 아닐까? 미국의 현실이나 여기가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3부에 중점을 두고 보다.

 

 

노동의 배신에 이은 화이트칼라 취재기다. 상대적으로 나을 것이라고 여겼지만 그 선입견은 여지없이 부서지고 현실은 녹록치 않다는 경험록이다.

 

 

 

 

 

 

 

 

 

 

 

나르시소스, 히스테리아....부정속긍정, 긍정속부정....단언하기가 어렵다. 팜플렛이라 간단히 살펴보는 것도 괜찮겠다. 굳이 답을 찾으려하지 말고... ...

 

 

 

 

 

 

뱀발.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인데 돌려주고 몇주지나 흔적이다. 가벼운 책들로 골라보다나니 깊은 맛은 볼 수 없지만 그래도 조금은 건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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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의 '헬로'와 싸이의 '젠틀맨' 그리고 나무밴드의 '술이나 마시지'의 공통점은 4월에 음원이 공개됐다는 점이다. 조용필의 음반은 노래에 버벌진트의 랩이 포함된 사실만으로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한 문화평론가는 브랜드의 자기혁신이라는 표현으로 조용필의 변화와 트렌드 수용을 주목했다. 스스로 B급 문화를 즐기고 있는 싸이의 '젠틀맨' 뮤직비디오도 강남스타일 만큼이나 재미있다.

조용필과 싸이에게는 비교 되지 않는, 아니 비교하고 싶지 않은 나무밴드의 첫 음반 '세상의 모든 블루스'에는 모두 14곡이 담겨있다. 이 음반에는 절망과 슬픔을 간직한 이들의 다양한 사연이 담겨있다.

“날 길러주신, 날 먹여주신, 날 때려주신, 날 사랑하신, 쭈글쭈글 기운빠진 내 아버지.”(노래 '아버지' 가사 중에)

“공부 못해 죽고, 취직 못해 죽고, 날마다 날마다 죽음이다. 시도 때도 없이 죽음이다. 세상은 온통 공동묘지.” (노래 '날마다 날마다' 가사 중에)

노랫말에서 보듯 나무밴드의 음악은 비주류 사람들을 향하고 있으며, 음악적 모티브는 블루스의 정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블루스가 미국에 끌려간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이 자신의 처지를 노래하며 시작된 음악이라는 점을 안다면 그들의 음악세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나무밴드 멤버 가운데 한 명이 대전에서 20년 넘게 활동한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밴드의 리더 김유신은 1980년대 후반부터 지역에서 문화운동을 해온 음악인이다. 김유신은 충남문화운동연합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1996년 '느티나무'라는 음악그룹을 만들었고, 10여년 전부터 '나무밴드'에서 활동하고 있다. 김유신은 10여년 전부터 이번 음반 작업을 해왔다. 준비하다가 무너지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다가 마침내 48세의 나이에 첫 음반을 낸 것이다. 음악인이 첫 앨범을 내고 시인이 첫 시집을 낼 때의 느낌은 당사자만이 알 수 있다.

특히, 여럿이 함께 작업을 해야 하는 밴드 활동은 팀원 간 끈끈한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기에 어려운 부분이 많다.

나무밴드 역시 보컬과 반주자가 여러 번 바뀌었으나 김유신 단 한사람 만은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음반에서 그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보컬 백금렬, 김정림, 호랑, 베이스 최은진 드럼 조상훈 그리고 기타에 나무라는 이름이 적혀있을 뿐이다. 그가 이름 대신에 나무라고 표기한 것은 밴드를 이끌어 온 사람이 자신이지만, 나무라는 이름 아래 모인 음악인들을 존중하는 의미이자 스스로 나무가 되고 싶은 마음의 반영이 아닐까 싶다.

조용필의 음반 2만장이 하루에 다 팔렸고 싸이의 뮤직비디오 조회 숫자가 2억 명을 넘었다는 소식을 들으며 나무밴드의 음반이 몇 장이나 팔렸는지 궁금했다.

필자는 요즘 출퇴근길 차안에서 조용필의 신곡과 싸이의 젠틀맨이 담긴 음원파일 그리고 나무밴드의 CD를 듣는다.

조용필은 직접 곡을 만들지 않았지만 자신의 노래로 소화했고, 나무밴드의 김유신은 모든 곡을 자신이 만들었지만 다른 보컬의 힘을 빌려 블루스를 지향하는 자신의 음악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나무밴드는 지난 20일 대전의 한 카페에서 음반발매 콘서트를 가졌다. 그곳에는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만큼의 관객이 모였다. 오는 6월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예정된 조용필의 공연에는 수많은 관객이 몰려들 것이다. 작은 카페와 수만 명이 들어가는 공연장은 차이가 있겠지만 무대에 서는 음악인들의 마음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조용필과 싸이, 나무밴드가 공존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문화의 종다양성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나무밴드의 멜로디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유명한 조용필과 유명하지 않은 김유신 모두 심장이 항상 “바운스, 바운스”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뱀발. 중도일보에서 옮겨오다. 하고싶은 말, 건네고 싶은 마음 모두 있다. 중독성이 있다. 반복해서 들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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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제가 생각하는 지식인의 모델은 스스로 추방을 택한 망명자입니다. 지식인에게 망명과 추방의 의미는 관레적인 단계를 거쳐 '성공'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삼는 보통 삶의 경로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망명은 언제나 주류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며, 지식인으로서 수행하는 일은 미리 정해진 행로를 밟아갈 수 없기에 스스로 꾸려나가야만 합니다. 이 운명을 박탈이자 고통으로 여기지 않을 수 있다면, 오히려 일종의 자유로서, 그리고 자기 자신의 요구에 따라 설정되는 특수한 목표로서 경험할 수 있다면, 망명과 추방은 독특한 즐거움이 됩니다.

 

1. 그저 수동적으로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을 향해 거부를 적극적으로 밝히는 존재입니다. 이는 정부의 정책에 대한 비판자가 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영원한 각성의 상태, 절반의 진실이나 널리 퍼진 생각들을 끊임없이 경계하는 상태가 지식인의 소명입니다. 18


[아버지와 아들]에서 바자로프는 다른 인물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합니다. 그의 친구들인 키르사노프 가족과 심지어 그의 애처로운 노부모도 자신들의 삶에 적응해 나가는 반면, 바자로프가 보여주는 단호함과 반항심은 그를 이야기 바깥으로 끄집어냅니다. 29


독립적 예술가와 지식인은 진정 살아 있는 것들을 진부하게 만들어 결국 생명력을 잃게 하는 것에 저항하고 싸울 수 있도록 무장된 얼마 남지 않은 인물이다. 이제 신선한 지각이란 현대의 의사소통 수단들이 판에 박힌 시각과 지식으로 우리를 장악하는 동안 그러한 진부한 시각과 지식을 끊임없이 깨부수는 능력을 포함한다. 35

 

지식인이란 갈등조정자나 합의도출자가 아닙니다. 지식인은 자신의 온 몸을 비판적 감각에 내거는 존재, 즉 손쉬운 공식이나 미리 만들어진 진부한 생각들 혹은 권력이나 관습이 으레 말하고 행하는 것들을 거부하는 감각에 실존을 거는 존재입니다. 그저 수동적으로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을 향해 거부를 적극적으로 밝히는 존재입니다. 36

 

지식인의 소명을 끊임없는 노력 속에 있게 하며 본질적으로 미완성이며 필연적으로 불완전할 것으로 만듭니다. 하지만 이런 소명의 활력과 복잡성은 한 사람을 특별히 유명하게 만들지는 못해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줍니다.  37

 

2. 지식인은 제대로 대변되지 못하고 잊혀지거나 무시되는 약자들의 편에 설 것인지, 아니면 권력을 가진 이들의 편에 설 것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40

 

3. 망명자적인 지식인의 역할은 관습의 논리를 따르지 않고 대담무쌍한 행위에, 변화를 표상하는 일에, 멈추지 않고 전진해가는 일에 부응하는 것입니다. 60

 

4. 지식인은 권위나 권력과 맺는 관계 또한 피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권위를 지식인은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그것을 얻어내기 위해 간청하는 전문가적 태도로 대해야 할까요? 아니면,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는 아마추어적 양심을 가지고 대해야 할까요? 80

 

아마추어주의란 이윤이나 보상에 의해 움직이는 욕구가 아니라, 전문성에 묶이는 것을 거부하고 직업적 제약을 극복하여 이념과 가치를 살피면서 여러 경계와 장벽을 가로지느는 연결점들을 만들어 더 큰 그림을 그리는 일에 대한 애정과 충족될 수 없는 관심에 의해 추동되는 욕구입니다. 91

 

5. 내 생각에 가장 비난받아 마땅한 지식인의 사고 습관은, 옳은 일인 줄 알지만 선택하기는 어려운 원칙적 입장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책임을 회피하는 습성입니다. 100


글을 쓰고 말함의 목표는 모든 이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옳은가를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인 풍토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는데에 있습니다. 침략행위도 같은 관점에서 다루어지며, 사람들이나 개인들에 대한 불공정한 처벌은 방지되거나 기각되고, 인권과 민주주의적 자유에 대한 인식이 차별적으로 선택된 소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이를 위한 규범으로서 정립됩니다. 114

 

6. 극좌에서 극우로의 움직임은 하나의 신에서 다른 신으로 옮겨가는 과정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신들은 언제나 실패하기 마련입니다. 120

 

진정한 지적 분석은 한쪽은 결백하고 다른 한쪽은 악하다는 식으로 부르는 것을 금합니다. 문화와 관련된 쟁점에서 한쪽 편이라는 생각은 매우 문제가 많은데, 왜냐하면 대부분의 문화는 물샐틈없이 봉해진 작은 꾸러미처럼 모두 동질적이고 선하거나 악하거나 둘 중 하나인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당신의 후원자를 계속 의식한다면 지식인으로서 사고할 수 없으며, 그저 신봉자나 시종으로서 사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의 생각 이면에는 그를 기쁘게 해야 하며 기분 나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사고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136

 

뱀발.

 

1. 몇달을 묵혀두다가 최근에 읽다. 국가와 민족에 걸려있는 이상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고 한다. 토크빌과 존 스튜어트 밀의 사례를 든다. 미국 민주주의에 대해 열광을 했지만 프랑스의 알제리 점령에 대해 같은 잣대를 대지 않았고 밀 역시 영국의 민주주의적 자유에 대해 훌륭한 생각을 제시했지만 인도의 상황에는 적용하지 않았다. 물론 국제적 행위의 보편적인 규범에 대한 편협한 시기에 살았던 점을 감안해야 하지만, 그 덫에는 너무 쉽게 걸려들지 않는가 싶다. 덧붙여서 '우리'문화의 영광이나 '우리' 역사의 승리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것은 지식인이 열정을 쏟을 가치가 없는 일이다. 인트로의 결론은 날이 선 서슬퍼런 이야기다. 더구나 삶 속에서... ...일상에서... .. 손안에 박힌 가시같다. 깨진 사기그릇 파편처럼 박혀있어 뺄 수 없다.

 

2. 책속의 책, 인물을 따라가는 맛도 한결 깊은 맛, 멋을 느끼는 일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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