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 

 

 너를 탐하면서부터이다. 님에게로 가는 가장 쉽고도 어려운 길이 너란 걸 말이다. 저릿저릿 스며드는 너를 갖게되면서 불편하다. 그러나 너는 차별도 차등도 두지 않아, 저 지구 한바퀴를 안을 수 있는 말은 너밖에 없다. 저 마음의 끝과 디뎌온 역사의 보폭을 느낄 수 있게 해줘 고맙다. 너를 헤아리는 순간, 네가 읽히는 순간 네가 내뫔 속 어딘가 꿈틀거린다.  너로 가는 길 너로 가는 길목, 너가 되는 교각이다

 

 

앎과느낌 

 

 앎과 함에 갇히면 느낌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느낌은 그렇다고 온전히 머무름에서 오지 않는다. 함과 앎의 온기가 가시지 않고 남아있을 무렵, 며칠이든 몇달이든 차고 기울도록 마음도 몸도 열어둘 때야 조금 조금 기웃기웃 하는 것이다. 너무 기댈 수도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기엔 아쉽다. 유대의 밑절미가 되기도 하기때문이다. 앎과 함, 그것을 벼리게 하거나 또 다른 깊은 맛을 보게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삶 

 

 삶을 얘기할 수 있을까? 동물처럼, 짐승처럼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조건을 공유하고, 세상이 삶에 말걸 수 있을까? 작은 울타리로 그래도 삶의 조건이 가혹하더라도 삶을 나눌 수 있을까? 머리 속, 생각 속에서 벗어나 삶을 그래도 조금 다르게 만들 수 있을까? 삶을 이야기하고 나누는 농도가 진해질 수 있을까? 공동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스러우면서도 일상의 합, 일상의 곱인 삶이 곁에 와서 친할 수 있을까? 막연함이 아니라 조금 더 세세함이나 예민함이 스며드는 삶을 나눌 수 있을까? 철학의 머리말이 아니라 가슴을 적시고, 마음과 몸에 남고 육화된 몸말로 생생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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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22 월. 에퀴녹스 모임 (바벨-17)

               과학사 세미나

 

  화학/생물학에 대한 발제와 토론

 

 

 

 

 

 

 

 

 

 

0723 화, 에드워드 사이드 읽기 모임

 

 

 

 

 

 

 

 

 

 

 

 

 

 

 

0724 수, 빅 퀘스쳔(빅히스토리학습모임)

 

 

 

 

 

 

 

 

 

 

 

 

 

0725 목, 영화로 듣는 클래식, 녹색생태모임

 

 

 

 

 

 

 

 

 

 

 

 

 

 

 

0727 토, 희망의 인문학 - 인권연대 오창익

 

 

 

 

 

 

 

 

 

 

 

 

 

 

뱀발.  금주 청소년 청백리 학교와 함께 과학사 읽기 모임인 [현대과학의 풍경들]과 에드워드 사이디, 녹색생태모임이 새롭게 출발하네요. 늦더위에 이렇게 가속페달을 밟는 이유가 무얼까요? 함께 나누고 싶은 간절함일까요? 더위를 나름대로 식혀보자는 의도일까요?   의도는 없는 것 같습니다. 어찌 하다보니 모임이 겹쳤을뿐... ... 여러분의 앎에 깊이를 더하고 당신의 앎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표현이겠군요. 활동가들의 애정을 어여삐 여겨 격려 겸 참관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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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 그래요 몸과 맘을 합친 말이 뫔이에요. 사전에 없는 말이죠. 요즈음을 조금씩 쓰고 있는 듯 싶어요.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이리저리 수소문하다가 쓰인 흔적이 있어 놀라기도 했어요. 말 만드는 사람을 조심하란 말씀이 있죠. 말 옮기는 사람..?  그래도 뫔이란 말은 마음도 몸도 놓입니다. 마음과 몸 사이에서 방황할 때 그 말이 있어줘 고맙더군요. 뫔 맞는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죠. 그렇지 않답니다. 뫔 맞는 사이가 늘면 늘수록 좋은 것 아닐까요. 예민하고 까칠함에 조금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사이. 모임과 마음을 나누다가 이 녀석도 이들과 같은 꽈다라고 생각해봅니다.  삶의 동반자들 아니겠어요. 뫔 맞는 벗들, 님들!! 그래 시작해요. 마음과 몸의 온도를 높여보죠. 모임에서....동시대에 살면서 조금 더 넓고 깊이.....은밀하고 화려하게..도 좋군요.

 

 

짓다 만들다

 

사람들과 모임 사이, 마음을 나누다보면 오해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선입견이 들 때가 많습니다. 모임을 고르려고 하는군요. 소비의 욕구를 느낍니다. 그리고 차버리는거죠. 그런데 좋은 사람들 자장이 멀리가겠습니까? 그 나물에 그 밥!! 그렇지 않아요. 사연도 있고, 정말 못참을 일들이 많죠. 떠나기도 하고 만나기도 하고 그런 것 아니겠어요. 하지만 이런 조금 멀리보면서 생각에 잠겨보기도 합니다. 만들면 어떨까 지으면 어떨까 중이 절을 떠날 수도 있지만 절을 고쳐 쓰면 어떨까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몸이 무거운가 봅니다. 마음하고 몸하고 뫔을 푹 담그는데 익숙하니 말입니다. 단소리보다 쓴소리, 쓴 약을 서로 삼키는데도 익숙하고 근력도 생겨 좀더 마당을 넓고 크게 쓰면 어떨까 생각도 해봅니다. 짓고 만드는 기본근력을 키워서 말입니다.

 

 

안-곁-밖 

 

ㅇㄹ은 귀족본능보다 서민본능이 있습니다. 음식 가리지 않구 격과 절차에 맞춰 드는 음식을 별반 좋아하지 않습니다. 육해공군도 부위도 따지지 않으려하지만...세월에 인이 박혔네요. 생각해보니 이것저것 구분도 하고 말에요. 막걸리 생각나는 주말이네요. 예전 따로 또 같이라는 문고판 책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때 구분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안과 곁, 그리고 밖. 제도안, 제도곁, 제도밖을 나눕니다. 그렇게 분리해서 사고해야 조금 더 활동이 입체적이고 생동감이 있을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선거때만, 제도권 안만 호시탐탐 하는 문화가 암묵적으로 있구나 하는 것을 여깁니다. 그렇게 사고하다보니 정치적 중립이란 모호한 표현이 나오기도 합니다. 예술의 중립처럼 말입니다. 그런 연유에 제도 안과 곁, 밖....사회문화적 근력이라고 해야될까요. 끊임없는 사람들의 교류를 시간에 맷집을 갖고 생각하지 않게 된다고 여깁니다. 고기위 부위를 아직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지만 활동의 삼중주를 위해 안곁밖을 나눠 접근하는 것이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활동 스타일별로 뫔에 맞는 것이 다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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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선면 

 

우리 마음 한점 한점 만나 불꽃을 낸 적 있느냐 우리 고민 한점 한점 섞인 적 있느냐 늘 대의에 충실하다고는 하지만 그 대의 믿을 수 있느냐 어쩌면 우리라는 실체는 부실하기 짝이 없는 것은 아닐까? 믿고 의지하는 이들의 마음 속, 그 따듯함이 한점한점 섞이면 얼마나 좋을까? 점-선-면 어느 화가의 책이름이긴 하지만 훨씬 더 그 이전부터 아끼고 사랑하는 말이다. 나와 너가 점으로 만나다보면 점과 점이 선이 되고 나-너의 흔적들 그 선들과 선이 만나는 날 마음은 요동치기도 할 것 같다. 언제부턴가 점과 점이 만나는 것도 쉽지 않는 일이고 그렇게 만나 마음이 사르르 녹아 더 큰 점이 되는 일도 만만치 않다. 그렇지만 마음을 살피고 보듬다가 일상에 새긴 선들을 음미하는 일들은 뿌듯하기도 하다. 그래도 여전히 점과 선, 선과 면....의 낙관을 믿는 편이다.

 

 

점선과 실선

 

실선은 너무 강하다. 그래서 주저스럽긴 하다. 점선 약하디 약하지만 없지 않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나와 너 사이  점 점 점점   점....약한 관계가 좋다. 늘 강렬함만 원하는 나이가 아니어서 좋다. 점선의 점 점  점을 그대로 인정할 수 있어 좋다. 그렇게 너와 약한 관계도 좋다. 너무나 뜨겁지 않음. 또 다른 온도의 마음의 선을 유지할 수 있어 괜찮다. 그렇게 조금 낯선 이들과 관계맺고 싶다. 조금 더 다른 생각, 튀는 생각, 낯설 일상들을 나누고 만들고 싶다. 그러다가 떨어질 수 없는 사이. 실선이 되어 또 다른 이에게 점 점...선을 내밀고 사귈 수 있다면 말이다. 점선과 실선은 날선 우리 몸을 많이 열어준다. 점선을 이야기하는 순간 님이 열어두는 마음 안에 내 마음이 비칠 수 있어 설렌다. 실선을 이야기하는 순간 채곡차곡 다져온 따듯함으로, 그 따듯함은 또 다른 점선들에게 열려 있어 든든하다.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만 남긴 채  님은... ... 님은 좋다. 그 대명사의 온도의 추락과 부상을 다 담고 있다. 님은 때때로 뜨거움을 식힐 수 있어 좋다. 님은 때때로 차거움을 따듯하게 해줘서 좋다. 나-너,  너가 님이 되어 늘 기다리고 설레게 하는 순간. 님으로 발화하는 순간, 님의 금빛을 안을 수 있어 좋다.  바람, 하늘, 꽃, 숲, 나무, 길......그 사이사이 나눈 마음은 여전히 늘 기다린다. 더 기다려진다. 그리워 너를 그린다. 그리워한다. 책마실길, 몸마실길......그래 사람마실 길로 다가서고 싶은 마음을 꼴깍 삼킨다.

 

 

시공간

 

 울타리 안에 머물다보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시공간을 공유하고 있지만 내맘같지 않다. 그래서 물끄러미 그 말앞에 생각을 붙인다. 생각시공간 - 몸도 삶도 담보를 잡혀있지만 생각이라도 마음껏 풀어주고 싶다. 책그늘에서 만난님과 생각을 섞고 나누다가 어쩔 수 없음에 낙담도 한다. 그래도 생각끈을 가진 이들과 같은 시공간을 살아내고 있음에 감사한다. 공간과 시간, 거꾸러 거스를 수 있을까 시간을 짓거나 만들 수 있을까?  공간을 꾸미거나 만들 수 있을까 새로운시공간을 꿈꾼다. 아직 마음으로만 꿈꾸지만 너-나가 함께 고민을 나누고 섞다가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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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음

 

 

사람들은 마음에 실체가 있느냐고 묻는다. 마음에 달렸다라는 말처럼 관념론에 기반한 사고때문에 그 마음이 오해를 받는 것은 아닌가 한다. 하지만 엄밀하게 따져보면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는 현실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사람은 마음에 있는 일에 열정을 기울이거나 시간에 대한 맷집으로 드러내놓기 때문이다. 논리나 이성, 토론, 논쟁의 자리에서 사람들은 사실과 사실이 아닌 것을 분간하려 애를 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의견의 바닥에 깔린 마음을 헤아리기는 어렵다. 늘 진심은 시간에 바래면서 제 모습을 드러내놓는 이유이다. 진위의 자리에 이 마음은 기웃거리고 드러내놓지 못해 상황을 딛고서지 못하기도 한다. 그런 연유로  객관적인 사실이나 논리보다 마음이 더 유물론에 가깝다고 여긴다.  이런 바탕때문에 지금여기의 진보를 믿지 못하는 이유로 마음을 든다.

 

 논리와 이성에 얽매여 마음은 분주하기만 하다. 반짝 눈빛에 감도는 따듯한 마음은 어느 새 해야할 일에 얽매여 마음은 그 사람밖에서 어슬렁거린다. 마음을 모으고, 마음을 어루만지며, 마음을 키울 수 없다. 그 마음은 벌써 여기저기 바쁘게 쫓아가기만 하여 잡을 수 없다. 마음은 끊임없이 갈라서며 마음 모으는 일들 사이 산길에 돌탑처럼 아무것도 쌓이는 것이 없다. 마음은 없고 갈길만 있어 늘 그 자리다. 마음 주는 이들은 많지만 마음이 맞춰지지 않는다. 마음을 비우고 언제 시간에 무르익어 마음이 우연히 딱 맞는 날이 있을거기 때문이다.  이론이나 사명감, 논리보다 마음을 살핀다면 분명 진보의 걸음걸이와 뒷모습이 달라질텐데 말이다. 보무도 당당하게...

 

 

모 임 

 

하나가 아니라 둘, 둘이 아니라 셋. 모임은 연애보다 사랑보다 어려우리라. 왜 둘만이 아니라 셋이상을 지향하는 그 몸말때문이다.  사실 마음이나 모임이나 그 형태소를 보면 다를 것이 하나 없다. 위치와 순서만 차이가 있을 뿐이다. 둘이 아니라 셋은 열리고 창조적인 공간이다. 풍성해지는 시작이다. 하지만 뭔가 바라고, 그곳에 쑤셔넣어야 할 것이 있고, 사명감의 단위로 만들어야 한다는 당위가 들어서는 순간 비참을 각오해야 한다. 모임은 다름을 받아들일 감수성의 공간이다. 모임은 다름을 만드는 창조성의 공간이다. 모임은 다름을 통해 자라나는 시공간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이런 결사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많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민주주의에 대해 진지해본 적이 별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자유스러움에 대해 세심해본 적이 없다.

 

 

나-너 

 

나가 아니라 나-너  또는 너-나, 이것도 많이 부족해 나-너-,  너-나- 에 점선이나 실선을 긋는다. 나의 과잉의 시대, 약한나, 먼나로 나를 열어주는 것이 아니라 강한나의 중력이 무시무시한 나만의 시대. 그래서 너의 손길에 모멸차다. -너의 관계 속에 풍요로워지는 나가 없다. 오로지 나만의 건강, 강함의 족속만 있다. -너-나-너의 추체험이 가능하지 않는 시대이다. 무수한 학문도 이를 가정하고 독립된 나가 없음에도 가정하고 사상누각을 만들어 버렸다. 너의 손길 속에 자라고, 내가 너 속에 깃들여짐으로서 여기까지 왔음에도 너의 호흡이 없이 한순간도 서 있을 수 없는데도 여전히. 아름다움은 불쑥 다가서는 너로부터 생기는 것을 느끼면서도 여전히 '나'이다. 학문을 소각해서 없애버릴 각오를 해야 한다. 개인을 필요에 의해 만든 뒤로 이렇게 뒷걸음치는 나밖에 없다면 그 의심은 오로지 '나'가 받아야 한다

 

 

온 도 

 

 물과 얼음, 물과 수증기. 얼음, 수증기, 눈의 실체를 믿는다. 거기에다가 변하기 전 그 설레임을 더 믿는다. 온도! 늘 마음과 몸의 경계에 두는 말이다. 지금보다 나은 덧셈의 말이기에 들으면서도 흔들린다. 마음이 통하고 흘러갈 수 있기에 너로 향하는 몸짓이기도 하다. 전복의 말이 아니라 몸짓, 맘짓, 손짓 모두를 조금이라도 받아주는 말이어서 반갑다. 어디에 의탁하는 말이 아니어서 좋다. 나의 끄트머리, 먼나의 곁에 늘 너란 빈칸을 두어서 좋다. 모임과 모임들 사이 어디 하나 우쭐거리지 않아서 좋다. 만남과 만남 사이 냉정히 소비하고 취사선택하지 않아 좋다. 때를 기다려주는 다정다감의 다리는 놓는 말이어서 늘 곁에 두고 싶다.

 

 

뱀발. 자주 쓰는 말들. 혀끝에 맴도는 말들이 별반 많지 않다. 딱딱한 말들은 혓바늘을 돋게 만들어 불편하다. 벗들은 말한다. 당신 말은 너무 추상적이라고, 모호하다고도 한다. 그렇다고 고쳐야 한다는 고치고 말리라는 다짐을 해야하는 이유가 된다고 여기지 않는다. 여울은 여울이고 느긋하게 몸에 담긴 것이 그 색깔이기도 한 연유겠다. 보살펴 살핀 말들, 살피고 싶은 말들에 대한 태그를 달아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다. 너에게로 향하는 점선에 실선을 조금씩 덧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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