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지난 흔적을 뒤적거려보니 10년이 훌쩍 지났더군요. 끊임없이 생각을 주워담고, 흔적을 남기려 애쓰다보니, 정작 서재지인들과 나눔이 부족해서 아쉽기도 합니다. 한때 알라디너 일상을 담아 나누던 뉴스레터가 인상 깊군요.

 

온라인은 늘 오프라인의 만남의 깊이를 당하지 못합니다. 그 전제를 알고 나눈다면 쉽게 흔들리지 않을 듯 싶네요. 한번은 그런 생각이 마음에 걸립니다. 책 한권처럼 곰곰이 알라디너의 서재를 읽고 그 분들의 고민과 깊이, 넓이를 나누고 싶기도 하다구요.

 

책을 매개로 만나 새로운 깨달음이나 통찰을 얻지 못한다면 별반 삶이나 서재가 그다지 새롭지 않을 것 같아요. 서재에만 발품 파지 마시고, 오프에서 적극적으로 만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또한 서재를 아끼는 방법은 아닐지 고민해봅니다.

 

어쩌다보니 제 서재에서 지난 흔적과 품었던 생각을 끄집어낼 때가 많아졌네요. 나름 생각 창고가 되어버린 듯 합니다. 지난 10년 얇고 평이한 독서만 한 것 같아 아쉽네요. 기회가 된다면 다른 서재인들과 깊이를 찾고 나누고 싶네요. 우여곡절과 혹시 알라딘이 정말 사회를 생각하고 아낀다면 과감해져도 좋을 듯 싶네요. 두서 없이 길어졌군요.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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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메꽃ㅡ등한히했던나날들파란바람이피려뻘뻘번진걸네웃음이가득차있던것을이제서야ㅡ산들피고분다푸른바람이방긋불고핀다^^여름을감고가을로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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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이나 지역의 반감에 사로잡힌 사람은 경쟁의 해악으로 눈을 돌릴 뿐, 협력의 미덕에는 눈을 감는다. 그런 사람은 동료들의 결점에는 너그러우면서 익숙지 않은 이방인의 결점에는 혐오감을 느낀다." (버트란트러셀 자유로 가는 길에서)

 


 작금의 현실이 우려되네요. 지금 여기를 압축적 근대화의 산물이라고 해보죠. 경제성장을 발판으로 압축적 민주화를 이뤄냈다고 합시다. 절차적 민주주의보다 실질적 민주주의의 걸음걸이는 어떤가요? 막차에 맞춰 탄 택시기사분의 목소리가 학원버스때문에 반톤쯤 올라가 있더군요. "학생들에게 볼모로 잡혀있어 당췌 돈을 쓰지 않는다고 말에요?? 손주가 둘이 있는데 일인당 두과목 100만원 학원비, 평균 220만원 소득에 빌라,아파트 관리비, 생활비로 쓰고 나면 남는 것이 있어야 마누라 팬티와 립스틱이라도 사주고, 외식이라도 한번하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아이들에게 돈이 묶여 있어 이렇게 된 것이라는 말을 덧붙이더군요. 씨** 대표 보모를 태운 적이 있다는데 궁금해서 이것저것 물어봤다네요. 2살아이, 월 4번 휴일 350만원을 받는다고 하구요. 백평 아파트에 청소 2명, 요리 1분, 집사포함해서 7분이 일한다구요. 월 5천정도 들어간다고 말에요. 엄연히 양반은 있다라구요."  .

 

가까운 이들의 살림살이조차 묻지 않고 알려하지 않는 얼굴이 달아오르더군요."9시에 출근하는 사람들이야 세상물정 잘 모르겠지만, 점점 더 새벽이 차는 시간이 7시에서 5시로 빨라져 거리로 나오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는 기사분의 이야기가 맺힙니다.  곤궁하고 피폐한 삶과 일상에는 민주주의가 고이지 않습니다. 부지불식간에  손가락질할 꺼리를 찾는 것은 아닐까요. 협력의 미덕과 최소한의 절차를 통한 일반민주주의나 역사적 사실까지 곡해하는 입에 담지 못할 말을 하는 시민들... ... 경제적 불균형과 압축된 민주주의를 제대로 풀어내는 일.....  혹부리아저씨처럼 혹에 미래를 잔뜩 넣어두어 서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것이 지금의 처지는 아닌지 곰곰히 새겨봅니다. 푸어를 벗어나는 길. 그 푸어란 혹을... ... 떼어 이웃으로 스미는 방도...전혀 다른 보험으로 쓰는 물길은 있는 것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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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창조적 업적의 상당 부분은 다른 직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과학 및 연구 부문의 업적은 대개 교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남는 시간에 성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과학자들은 교직 활동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기지 않는 한 이러한 관행에 크게 반대하지 않는다. 그나마 과학과 교직은 결합하기가 쉽기 때문에 오늘날 과학 분야는 활기를 띠고 있다. 음악 분야에서는 연주를 병행하는 작곡가가 비슷한 이점을 누리지만, 연주자가 아닌 음악가는 부자이거나 대중의 취향에 냉큼 영합하지 않는 한 곤궁할 수밖에 없다. 요즘 세상에는 순수 예술 분야에서 순전히 훌륭한 작품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거나 창작 시간을 넉넉히 보장하는 부업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는 유일한 이유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오늘날 예술이 과학보다 덜 융성한 한 가지 이유일 것이다."(버트란드러셀 자유로가는 길에서)

 

 

러셀씨, 세상은 너무 많이 변했네요. 더구나 이 땅은 말에요. 과학과 교직의 연관성도 거리가 멀어지고, 연구원들의 삶이 너무 피폐해졌죠. 창조적 업적 역시 생계에 저당잡히거나 잡힐 수밖에 없는 여건들이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과학기술이라는 것도 거대과학에 자리를 내어주어 스스로 하는 것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도 불감하기 마련이네요. 하지만 러셀씨 말씀처럼 거대한 자본의 흐름과 맞닿아있는 것은 사실이네요. 반면 예술은 곤궁하기 이를데 없다는 대목엔 왕공감합니다. 창작시간을 넉넉히 보장하는 부업도 그러하며 지원이라고 과학기술에 비하면 눈꼽만큼도 안될 지경이죠. 예술이 과학만큼 융성해야할 수십가지 이유 가운데 하나는, 과학이란 녀석이 돈에 시녀역할만 하는 근시안때문에 창의성 역시 사회적약자나 인간과 호흡하는 기술보다는 자본과 성장만에 족쇄처럼 묶여있는 건 아닐까요? 예술이 그 묶여있는 술래의 눈가리개를 풀어줄 수 있는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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