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점예, 이공갤러리 - 9. 11까지

 

하나가 된다는 건

귀 기울이는 것이겠지?

청바지 뒷주머니에도 발칙한 귀가 쫑긋~

오목한 푸른 그릇에도 태아를 거꾸로 둔

귀의 문양이 있다.

 

무수한 귀가 필요했을까?

문과 문 사이...합일에 이르는 과정은

귀기울이고 듣고 듣고

모서리로 돌아서는 틈까지 듣고 귀기울이고.. ..

 

어쩌면 이리 빠른 세상에서는

아무것도 듣지 않고

눈으로 맛만 보고 쓩~ 지나치기만 하는지도 모른다.

 

작품들의 여운이 지금 올라왔다. 왜냐면 스친듯이 눈으로 보기만 했으므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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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배들의 발자국을 따라 걸음을 옮긴다. 한발짝 짐작을 몸으로 익히며 누군가의 보폭을 쉽게 판정하지 않는 법을 배운다. 길 위에 방향을 만든 것은 당신의 무게 혹은 걸음 사이에 놓인 고민의 시차. 가끔 그 고민이 궁금해 쓸 수 없던말들을 가늠해본다. 무릎 꿇어 그 자국에 손을 대본다. ( 이상 문학상 김애란 침묵의 미래 당선소감 가운데서)

 

 

 

 

 

 

 

 

 

뱀발.  카뮈식으로 얘기하면 '부조리'와 '반항', 그리고 '사랑'이 뒤섞여있다. 혼재되어 갈피를 잡을 수 없다. 하지만 천천히 고민의 시차를 음미하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자칫 일들을 그르칠까 염려된다. 침묵의 미래를 무궁화 열차안에서 허겁지겁 읽다. 말이 많은 시대. 말로 할 수 있는 것이 본질을 그르치기도 한다. 쓰지 않는 말, 쓸 수 없는 말을 가늠해볼 수 있는 품격은 진보가 가질 수는 없는 것일까? 제 말을 하고 싶어 안달난 듯, 너무 많은 말 속에는 말이 없다. 뼈처럼 앙상한 주장이 얼핏설핏 보여 안타깝다.

 

이렇게 고민의 시차와 가끔 고민이 궁금했더라면 조금 격을 달리해볼 수 있는 순간이 아닐까? 그 근력은 언제 생길까? 이렇게 지나간 연휴에....그 응집력은 어떻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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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어떤 인간을 막론하고 인간은 언제 어디서든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길 좋아하지, 이성과 이익이 명령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을 아주 싫어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의 이익과 어긋나는 길을 갈망할 수 있으며, 때로는 그러한 갈망을 아주 당연히 받아들이는 존재다. 자신만의 욕구, 제멋대로 보일 수 있는 심한 변덕, 때로는 광기에 근접하는 듯한 환상, 바로 이런 것이 우리가 간과했던, 가장 유리한 이익이다.

 

48

 

욕구와 변덕이 무엇에 달려 있는지, 즉 우리 내면의 어떤 법칙에 따라 그게 발생하여 어떻게 확산되고, 상황에 따라 지향점이 어떻게 바뀌는지 알아낼 때, 즉 이 모든 것을 알려주는 진짜 수학공식을 발견할 때, 인간의 욕구는 아마 즉각 멈춰버릴 것이다. 아마가 아니라 분명히 중단될 것이다. 인간으 욕구가 공식에 의해 조정되는 거라면 누가 그런 욕구를 충족하려 하겠는가? 더욱이, 인간을 움직이는 공식이 규명되는 순간 인간은 피아노 건반과 같은 존재로 변해버리거나 그와 유사해지는 것이다. 자신의 소망과 의지와 욕구가 없는 인간이 피아노 건반이지, 진정 인간이란 말인가?

 

50

 

이성이란 그저 이성에 불과하며, 인간의 지적 능력을 만족시키는 데 그칠 뿐이다. 반면 욕구는 삶 전체의 표출이다. 이를테면, 이성뿐만 아니라 가려운 데를 긁는 생리적 행위까지 인간의 삶을 표출하는 행위다. 물론 이러한 표출 속에서 우리의 삶이 초라해 보일 때가 종종 있지만, 그래도 그게 삶이다. 단지 제곱근을 구하는 식의 행위만 가지고 삶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나는 내 생활력을 100퍼센트 충족하기 위해 살고 싶지, 내 생활력의 2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지적 능력만 충족하기 위해 살고 싶지는 않다. 그것이 나의 자연스러운 욕구이다. 이성이 아는 것은 무엇일까? 이성은 오로지 이성이 밝혀낸 것만 알 뿐이다.

 

54

 

인간은 정말로 피아노 건반이 분명하다는 사실이 자연과학에 의해 수학적으로 증명된다 하더라도, 결코 똑똑해질 수 없다. 왜냐하면 고의로 어깃장을 놓으려고 말썽을 피우려는 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게 다 배은망덕한 속성에서 자기 생각만 고집하기 위해서다. 게다가, 먹고살 재원이 없으면 파괴와 혼란을 야기하고, 온갖 고통을 궁리해내며 여전히 자기 고집만 부리는 존재가 인간이다. 인간은 온 세상에 저주를 퍼부어댄다. 그런데 저주를 퍼부어댈 줄 아는 존재가 오직 인간뿐이라는 사실을 아는가?

 

59

 

인간은 목적을 달성하려고 애를 쓰면서도, 그 목적에 완전히 도달하길 꺼려한다. 이 어찌 우습지 않은가? 이걸 보면 인간은 한마디로 코믹한 존재다. 분명히 여기에는 아이러니가 담겨 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2*2=4라는 수학적 확실성은 도저히 참고 넘길 수 없다. 내 생각으로 2*2=4는 불한당이다. 2*2=4는 양손을 허리춤에 얹은 채 여러분의 길을 막고 침을 뱉어대는 거만한 멋쟁이 같다. 나는 2*2=4가 탁월한 것이라고 인정하나, 2*2=5도 그에 못지않게 멋진 것이라고 칭찬하고 싶다.

 

63

 

궁전 대신 닭장이 있는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고 가정해보자....대저택에 살아보고 싶은 게 나의 욕구이자, 나의 소망이다. 여러분이 나의 욕구를 싹둑 잘라버리고 싶으면, 먼저 나의 욕구부터 바꿔놓아야만 한다. 그럼 한번 바꿔보라. 내 욕구를 팽개칠 수 있게끔 다른 것으로 유혹해보라. 아니면 나에게 새로운 이상을 제시해보라. 그러기 전까지 나는 닭장을 궁전으로 간주하지 않을 것이다.

 

213

 

우리는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이 어디에 살아 있는지, 그것이 무엇이며 또 뭐라고 불리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책 없이 우리만 따로 내버려둔다면 우리는 즉시 혼동에 빠져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될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어디에다 좌표를 정해야 할지, 무엇을 신봉해야 할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증오해야 할지, 무엇을 존경하고 무엇을 경명해야 할지, 전혀 모를 것이다. 우리는 심지어 인간이 되는 것에도 커다란 부담을 느낄 것이다. 그런 인간이 되는 것이 창피하고, 그걸 커다란 수치라 생각하면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공통된 인간을 꾀하려 하고 있다. 우리는 죽은 채로 태어난 인간들이다.

 

222-223

 

러시아 작가 고리끼는 애써 이룩해놓은 러시아 10월혁명의 정신을 와해시키지 않고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쏘비에뜨 최대의 어용작가 대회에서 도스또엡스끼를 자기중심주의자이자 사회질서의 파괴자라고 강력히 비난해따. 그것은 한 개인의 가치보다 집단의 가치가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거기에 반해 도스또옙스끼는 집단의 가치가 인류 전체의 자유를 파괴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이미 오래전에 경고한 바 있다. 한 개인의 자아를 존중하는 것이 곧 인간에 대한 사랑의 길이라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흔히 도스또옙스끼를 예언적 작가라고 평한다....지하에서 쓴 수기에는 작가가 평생 동안 추구했던 인간의 자유와 사랑의 이야기가 있고, 뜨거운 토론과 논쟁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의 삶에 관한 이야기다.

 

 

뱀발. 전형적인 인간은 없다. 소설 속의 전형으로 자리매김하는 인간말이다. 흑역사를 가지고 있고 부끄러워하고, 자존심 긁히면 옹고집 부리고 그러는 인간이다. 홍상수감독의 영화에 나오는 그런 찌질함을 갖고 사는 인간일 수밖에 없다.  찌질하고 그렇고 그런 사이밖에 안되는 현실에 끄덕이고, 잘난척하는 것이 더 낫다. 반듯하면 반듯할 수록 인간답지 못한 허물이 그 빈틈을 채우기 마련이다. 나 또한 얼마나 찌질한가? 스스로 행동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태반에다가 경멸스러운 적은 한두번인가?

 

공통된 인간을 너무 탐하고 꾀하려는 것이 더 문제라는 지적은, 이성에 날카로운 메스를 가한 러셀의 인간에 대한 사고와 맞닿아 있다. 이성보다 욕망, 욕구, 쾌락, 죽음..등등이 더 인간을 행동하게 하는 요소라는 것이다. 어차피 그런 존재이니 좀더 욕망, 쾌락의 삶의 긍정적인 부분으로 모아쓰고, 힘을 기를 것이 요구한다.  마지막 고리끼의 비판과 시공간이 지난 현실에 되비추어보면 ...인간에 대해서....죽은 채로 태어난 인간들이라고 가정하는 편이 훨씬 삶을 풍요롭게 살 수 있고 인간에 대한 희망을 놓치 않는 끈을 부여잡는 역설이 되기도 한다.

 

나를 믿지 마시라. 그 찌질함과 흑역사를 말해주리라. 바닥에서 다시 시작하고자 한다면...보이고싶은 것만 보지 말고...보이지 않는 말도 듣고 싶다면... ...그렇게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김애란 [성탄특선] 단편... ...주인공이 되뇌인다. "나는 왜 이렇게 빤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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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에 쫓기지 않고 책의 속살을 여기저기 야금야금 물다. 다행히 책들은 식감도 좋고, 씹을수록 우러나오는 맛은 저릿하다. 작가가 자취가 배인 곳을 찾아가면서 그 시공간은 작품과 잘 어우러졌다. 안내자의 로망과 솜씨도 그에 못지않아 작가와 안내자가 헛갈리기가 일쑤였다.

 

2. 작가의 그 공간들 - 쓰는 방식도 구상하는 방들도 모두 달랐다. 뭔가 비슷하고 작가의 생활패턴은 다를 것이라는 문외한의 착각이 한몫 한 듯. 일상은 특별하지 않으면서도 채워넣고, 조사하고, 그 모습들 사이에서 연구자와 조사자의 느낌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한편 뜨뜻미지근한 스스로가 비춰지는 것이다. 신인들의 단편을 놓치지 않는 김윤식 평론가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만년의 양식을 논한다. 너무 빨리 식어버리고 같아지는 노인네 작가들의 세태를 문제 삼는 발언이다. 현실의 현실로 노평론가의 비평은 야무지고 날카롭다.


 

3. 돌아오는 길 김애란의 단편을 중고서점에서 구한다. 그 이면에 삶을 저리고 저미는 노력, 그 발효냄새를 이제는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외한이 아니라 삶의 고민, 그 시차를 현실화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생이 스며있는가 조금은 고개 끄덕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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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너무 슬플 땐 석양을 사랑하게 돼.


그때도 지금도 난 해가 뜨는 모습보다는 지는 모습을 좋아한다. 의자를 조금씩 옮기면 하루에도 수십 번 석양을 볼 수 있는 어린 왕자의 작은 별이 부러웠다. 내게 삶은 여전히 슬픔인가. 삶은 내게 기쁨도 알게 했지만 그 밑바닥에 깔린 애잔함은 내내 지워지지 않는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인간은 어쩔 수 없이 가엾게만 보이는 탓이다.

 

72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켜고 날 찾아내면 그들은 내가 살려달라고 수없이 부르짖으며 많은 고통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격정이나 후회, 부드러운 고통은 아직 풍요롭다는 의미다. 나에게 이제 풍요로움이란 없다. 한창때의 아가씨들은 남자와 처음으로 사랑을 나눈 저녁에 슬픔을 느끼고 눈물을 흘린다. 슬픔이란 삶의 전율과 통한다. 그러니 난 이제 슬프지도 않다.  -[인간의 대지] 제7장 '사막 한 가운데서' 중에서

 

74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야."

 

96

 

카뮈 자신은 [이방인] 영문판 서문에서 "우리 사회에서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는 모든 사람은 사형수가 될 위험이 있다."말로 [이방인]을 정의했다. 의문을 제기하거나 이치를 따지려 들면 윽박을 지르거나 문제아 취급하는 모든 관습적 질서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었던 고등학생에게는 이보다 더 신선한 것이 있기 힘들었다. 또한 카뮈는 "나에게 뫼르소는 폐인이 아니라 그늘이 없는 태양을 사랑했던 가난하고 헐벗은 인간이다. 감성이 결여되어 있는 인간이 아니라 완강하고 깊은 열정이 그를 움직인다. 그것은 절대와 진리에 대한 열정이다."라고 덧붙였다.

 

102

 

[최초의 인간]이란 '아담'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카뮈에 따르면 사실 우리는 누구나 어느 정도 자신의 역사에 있어'최초의 인간'인 아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제로선 상에서 출발하는,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고 윤리나 종교도 없는 인간'이고, '교육하는 이가 없는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최초의 인간]은 그가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도 밝혔다시피 그 작품 세계를 이루는 세 단계의 과정 중 '부조리', '반항'에 이어 마지막 단계인 '사랑'의 단계에 속하는 작품이다.

 

142

[목로주점]을 읽다가 메모해두었던 구절이 있다. "누구나 진흙탕 속에 빠져 있을 때는 머리 위에 눈부신 광채를 비쳐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머리 위로는 따스한 봄 햇살이 누구에게나 공평히 내려앉고 있었다.

 

151

인간이 이토록 슬픈데
주여, 바다가 너무도 푸릅니다. - 엔도 슈사쿠, 침북의 비

 

뱀발.  어린왕자, 카뮈, 에밀졸라를 다시 만나다. 저자의 글솜씨도 매혹적이다. 다음 책과 같이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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