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마 모랄리아 - 상처받은 삶에서 나온 성찰 코기토 총서 : 세계 사상의 고전 4
테오도르 아도르노 지음, 김유동 옮김 / 길(도서출판)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속에서만 오히려 지양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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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109 동치미에서 강신주의 [당당한 인문학]을 2회에 걸쳐 세미나를 한다. 두번째 모임 발제와 책수다를 참견할 시간을 갖게된다. 미흡한 부분은 다음날 다시 보며 채운다. 책의 말미 사랑과 자유에 대한 에필로그가 잔상처럼 남는다. 발제한 분들의 여운도 함께 말이다. 

 

자유로운 사람만이 사랑을 할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만이 자유를 얻는다.

 

사랑과 자유의 전도사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그는 책 속 [자본주의에 맞서라]는 편에 대해 과연 청춘들이나 사람들 반응이 정말 괜찮은 것인지 궁금하다. 그래서 청춘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되묻다. 수긍하고 잔잔한 반향이 있는 것 같다고 답한다. 대중성을 갖는다는 것, 스타로서 역할은 무척 큰 것이다. 진보가 노력해도 되지 않는 일들을 성큼성큼 해낸다는 것에 대해서 반갑기 그지 없는 일이다. 철학하는 시읽기의 즐거움에서 시와 철학을 연결시키고, 김수영을 되불러낸 것도 김수영을 새기고 있는 나로서도 반갑고 기쁜 일이다.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의 경계를 문지르고 새로운 이를 다가서게 하는 것도 반갑다. 막스 슈티르너를 비롯해 아나키즘의 인물들을 불러내는 것도 반갑다. 자유라는 것이 무엇인가? 삶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꼭 되물어야 하는 물음을 진지해줘서 고마워하고 있는 편이다. 철학과 시, 인문, 음악...자유와 사랑을 어루만지고 살아지는 이들에게 살아갈 중심을 준다는데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기독교에 대한 거침없는 도발도 말이다.

 

세미나를 하면서 말미 불안하다. 냉장고드립이라고도 표현하던데, 그 표현을 보고 김종철샘이 자본주의의 배에서 뛰어내려라라는 문구가 겹친다. 뛰어내리면 어떡하라구. 가장자리 가장 없는 사람들이 가장 크게 흔들릴텐데. 그렇게 무책임할 수 있을까라는 예전의 기억이 되새겨진다. 냉장고를 없애라의 의미를 넘어선 과잉이 느껴진 때문이기도 하다.

 

말미 소유란 무엇인가에서 자유, 안전, 소유...그리고 형평을 다룬다고 같이 토론해보면 좋겠다는 말을 건넨다. 그에게서 느낀, 불안의 요소가 뭘까 고민해본다. 철학, 인문의 울타리에서 넘어서거나 너머 서려 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 대중적인 스타로서 그가 할 일과 하고싶은 일들이 많겠지만, 형평과 공평의 입장에서 경제, 소유에 대한 부분을 연결시키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경제와 경영의 디테일을 형평이라는 삶의 잣대로 세세히 다루지 못한다면 철학과 인문의 문턱에 걸린 그의 주장은 비현실성때문에 거꾸로 인문과 철학이 문제가 될 수 있다. 현실을 지고가는 숱한 사람들의 짐을 내려놓지 못하고 또 다른 마음의 위무로 그칠 확율이 높아보인다. 자유와 사랑은 소유의 디테일과 연결에서 다시 말해져야 한다. 큰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사랑과 자유에 대한 의도적인 방점만이 아니라 세속의 철학인 경제, 자본주의의 속살, 현실의 속살에 치밀해지지 않으면 그가 닦아놓은 길...덧셈까지도 폄훼될 지 모른다.

 

지식인들이란 제일 질투가 많은 법이다. 이땅의 지식인의 역사를 모르는가? 두손 두발 다들 때까지 가만있지 않는다. 망가지고 망가져서 다시 일어서지 않는 것이 이땅의 지식인들의 생리이지 않는가? 책도 덜 새겨 읽고, 잘한 부분에 대한 언급도 인색하면서 과잉...필연적인 오류를 수반하는 일들에 벌떼처럼 모이지 않는가? 그의 역할과 또 다른 대중성에 대해 생각해본다.

 

뱀발.

 

1.  생각이나 느낌을 따로 정리해볼까 하다가 서투르게 흔적을 남긴다. 이견을 반긴다. 좀더 얘기해볼 수 있다면 좋겠다 싶다. 과잉도 있다. 논란을 위해서라도...

 

2. 러셀이 [행복의 정복]에서 말한다. 편의상 나의 행복에 대해서만 말하겠다고..내가 기대고선 너와 사회의 측면에서는 따로 다루겠다고 한 기억이 난다. 고 이영희선생님은 우리 민족의 근성에 대해서 말한다. 밟고  밟고 또 밟고....무엇을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유시민이 서구의 합리성을 몸에 담고 있어 무엇을 해도 고운 시선을 보내지 않는 사람이 많다. 노회찬이 유들유들 오히려 우리 근성에 맞는다고 강신주는 흔적이 남는다.  솔직하게 털면 어떨까? 공부 좀 더하겠다고...

 

3. 안타깝다. 페북을 비롯한 회자되는 곳곳에 전자는 이야기되지 않는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담화들만 있는 건 아닐까? 알라디너들이 되짚어보면 어떨까 싶다. 그냥...안타까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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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01-21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여울마당님, 댓글을 기다리시는 것 같아, 이견보다 저의 의견을 남깁니다.

저는 과거의 세상의 일들은 균형점을 찾아가기보다, 과잉과 거품을 포함한 기승전결의 과정을 거치며 파국을 거친 이후 새로운 시작을 했습니다. 이 과정을 (최소한 인류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무한이 반복할지, 그 끝에는 균형점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단지 자본주의는 파국으로 가리라 예상합니다.

여울 2014-01-22 08:43   좋아요 0 | URL
그래도 샛길이라는 희망이 있다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희망은 없는 것이라고 숙연하고 처연하게 들여다보는 것이 나은 방법이라고... ... 그래도 물에 빠진 사람이 바닥이 어디쯤 있다는 것을 알기만 한다면 좋겠습니다. 마립간님, 과잉과 거품같이 소멸하는 경우가 태반이죠. 개인이든 인류 역사든 말에요. 의견 고맙습니다.

쉽싸리 2014-01-21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저는 고종석 선생의 트위터에서 처음 문제의 칼럼과 그 의견을 접했는데요. 그 칼럼만 놓고보면 비유와 논지전개가 적절하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그 칼럼이 상식이 결여 되었다는 평가에 동의하는 편이구요. 그래서 실망하는 사람들도 있지 싶어요. 하지만 여기저기서 이리저리 너무 크게 확대, 재생산되는 것은 문제이지 싶어요. 강신주 선생의 일종의 '공'?도 있다고 생각해요.
강신주 선생이 어떤 식으라도 의견을 냈으면 하는데요. 이건 뭐 오로지 제 개인생각입니다. ^^

여울 2014-01-21 19:00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트위터 의견들 모아놓은 것도 봤습니다. 수치심, 냉장고 칼럼이 과하죠. 제가 안타까워 하는 것은 공공연히 잘나가다 그렇게 될 줄 알았다거나, 읽어보지 않았지만 스타일로 봐서 조직생활 하지 않은 자유주의자라서 문제다. 읽어보지 않았지만 문제의 칼럼으로 봐서 인간이 되어먹지 않았다라는 평들이 많지 않나싶어요. 정말 자유주의자라면 현실에 있어 개선의 여지 나 역할이 많은 것이죠. ... ... 잘나가는 지식인이니 그거 쌤통이다가 아니라 냉정하게 대중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살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나 싶어요. 나의 노선이 맞다가 아니라 유행의 와중이라도 그 결들을 세세히 살펴보는 것이 어떤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뱀발.  일터 일을 보고 잠시 별별 미술관을 혹시나 하구 들르다. 시간의 비늘이란 주제였는데 다소 미흡하다는 느낌. 어제는 일터동료들과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얘기를 시작해서 늦은 밤까지 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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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집은 새롭고 신선하고 신나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가 떠난 이후 집에는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다만 모든 가구와 창문과 램프가 일깨웠을 의무가 잊혀졌다는 것은 집에 안식일과 같은 평화를 가져다준다. 처음 몇 분 동안, 단 한 번만 존재하는 방과 구석이나 복도 안에 있는 듯이 느끼며, 이러한 느낌은 그곳에서의 나머지 삶이 거짓말처럼 보이게 만든다. 세상이 노동의 법칙 아래 있지 않다면, 세상은 지금과 다르지 않고 별로 변한 것이 없지만 나날이 축제 같을 것이며, 휴가에서 집에 돌아온 아이처럼 의무는 휴가 때 놀이만큼 가벼울 것이다.  153

 

반짝 1. 시선이 따듯하다. 우리집에 돌아온 몇 분의 행복이 세상이 노동의 법칙 아래 있지 않다면 가능하다고 하지 않는가? 축제 같을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후기 자본주의에 살아지는 우리는 그 쳇바퀴같은 일상을 반복한다고 하지 않는가? 노동의 법칙 아래 있지 않게 하려면... ...


좌파 낙관주의는 '사람들은 악마를 벽에 그려서는 안 되며 밝은 면만을 보아야 한다'는 음흉한 시민적 미신을 되풀이한다. "이 세계가 그 신사 마음에 들지 않는다구요? 그럼 그는 더 나은 세계를 찾아야겠군요." 이것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일상어이다.  정통 노선 이탈  156

 

반짝 2. 난 좌파 낙관주의자다. 유토피아를 꿈꾸고 더 나은 세계를 자꾸 찾으려한다. 그 이면을, 아니 다면을 살피려하지 않는 우둔함이 잠복해있다는 사실을 애써 있으려 한다. 아도르노는 여기서 노동과 계급의 문제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좌파 낙관주의, 그대 세상은 흘러가고 놓치거나 만들어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아는가? 쓸데없는 낙관이 가리고 있는 그림자들의 상태가 어떤지 살펴보기나 한 것인가 되묻고 있다.


어떤 손님이 아무리 오래 기다렸더라도 그 사람을 담당하는 종업원이 다른 일로 바쁜 경우 다른 종업원이 주제넘게 나서지 않는다. 제도 자체를 신경 쓰는 일-이런 것은 감옥에서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이 병원에서처럼 사람을 배려하는 일보다 앞서게 되며 주체는 단지 객체로 관리될 뿐이다. 159

 

반짝 3. 후기자본주의는 제도에 갇힌 일상을 드러내고 있다. 손님은 늘 객체다. 마음도 살피지 못하고 정해진 절차에 따라 그저 처분만 하는 구조임을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이런 불편을 모아 나름 종합적으로 대접을 한다고 하나, 그 노회한 장사꾼의 본심은 조금 거리를 두자마자 드러난다는 점도 밝히고 있다.


그때그때 가장 새로운 방식을 소비하려는 열광은 최신의 방식에 의해 무엇이 제공되었는가보다는 최신의 방식 자체를 중요시하며 쓰레기더미로 변한 정체 물량과 계산된 백치 행태를 조장한다. 이런 백치 상태는 포장만 조금 고친 낡은 조악품을 최신품으로 간주한다. 기술적 발달의 고마운 조력자는 더 이상 수요가 없는 재고품을 사지 않으며 고삐 풀린 생산 과정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한심한 소망이다. 나만 빠질 수 없다는 의식, 구름처럼 몰려가기, 장사진에 한 다리 끼기 등이 사방에서 일어나 어느 정도 합리적이고자 하는 욕구를 밀어낸다. 161..사람들은 개봉한 지 벌써 석 달이나 지난 영화보다 방금 나온 영화를 기를 쓰고 더 좋아할 것이며-둘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하더라도-석 달이나 지난 영화에 대한 혐오감은 아주 현대적이고 급진적인 작곡에 대한 혐오감 못지 않을 것이다.

 

자동차에 대한 광적인 사랑에는 무숙자의 감정이 상당한 역할을 한다. 그 근본에 깔려있는 것은 시민들이 부당하게 '자기에게서 도피', '내적 공허에서 도피'라고 부르는 것이다. 함께하려는 사람은 달라서는 안되는 것이다. 심리적 공허감은 사회가 개인을 부당하게 흡수해버린 결과이다. 사람들이 도망가고 싶어하는 '지루함'은 오래전에 시작된 도망 과정을 재투영한다. 그 때문에 오직 괴물같은 유흥장치들이 더 번창하고 있지만 누구도 거기서 재미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188

 

반짝 4. 소비, 소비, 소비 그 뒤에는 쌍으로 건망, 건망, 건망...이 시공간에는 합리적인 욕구가 없다. 신상이나 새로나온 영화에만 열광 속에 아둔함은 없어보이는가? 끊임없이 잊기 위해 해소하는 그 일상이 보이지 않는가? 나만 빠질 수 없다는 의식, 그 위축.......뭔가 이상해보이지 않는가?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쇼윈도우에 갇힌 우리들의 삶이 보이지 않는가? 아 저기 내가 보인다. 쇼윈도우 속에 넋이 빠져...도통 세상이 왜 틀어졌는가 궁금하지도 않는 내가 새책을 보며 처박아두는 모습이 보인다.

 

상상력은 무의식의 소관으로 넘겨지고 인식 이론에서는 판단력이 결여된 유치한 퇴화된 기관으로 배척되지만, 오직 상상력이야말로 모든 판단의 절대적 원천인 대상들 간의 관계를 만들어낸다. 상상력이 추방되면 진정한 인식 행위인 '판단'도 추방되는 것이다. 지각으로 하여금 갈망이나 예상을 못 하게 막는 통제 장치가 '지각'이라는 것을 아예 거세시켜버리면 지각은 이미 알려진 것을 무력하게 반복하는 쳇바퀴 속에 갇히게 된다. 더 이상 아무것도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은 지성의 희생을 초래한다. 고삐 풀린 생산 과정이 최우선시되고 '무엇을 위하여'를 묻는 이성이 사라지고는 이성이 스스로에 대한 물신주의에 빠지면서 외부의 권력에 굴복하게 됨에 따라, 이성 자체는 도구로 전락하고 그것을 다루는 기능인들의 사유 장치는 사유를 막는 목적에만 사용되며 이성 또한 이러한 기능인들과 유사하게 된다. 167

 

개성을 시장에 팔기 위해 내놓은 사람들은 사회가 그들에게 언도한 판결을 스스로의 판단인 양 자발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이 당한 불의를 객관적으로 정당화한다. 그들은 사회의 보편적 퇴행을 사적인 퇴행으로 축소 재생산하며, 그들이 목청을 높여 저항하는 것조차 대개는 약자의 노회한 적응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183

 

반짝 5. 상상력이 추방되면 판단도 추방된다. 지각을 거세시켜버리면 이미 알려진 것을 무력하게 반복하게 된다. 무엇을 위하여... ...일터에 다니고 다른 정당에 대한 입장을 갖고 바뀌지 않으며 진자가 반복되어 움직인다. 왜 생각하지 않는가? 사유라는 것은 창고에 폐기된 것처럼 살아지는 사람들로 넘쳐나는가? 상상하려 하지 않는다. 진보를 떠나 일상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은 상상하려 하지 않았다. 더 너머서려고 조차 마음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 평범성은 또 비슷한 박자를 타고 일상으로 돌아가기만 할 뿐이었다.

 

실증주의는, 현실 자체에서 더 이상 용인되지 않는 현실에 대한 사유의 거리를 다시 한 번 깎아내린다. 위축된 사유가 자신이 파악한 사실들을 요약하는 임시 처방 이상이 되려 하지 않을 때, 현실에 대한 사유의 자율성과 함께 현실을 꿰뚫고 들어갈 수 있는 사유의 힘도 사라진다. 삶에 대해 거리를 유지할 때에만 사유의 삶은 전개되며 경험계에 제대로 관여할 수 있다. 사유가 사실과 관계를 맺고 그에 대한 비판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동안 사유의 운동은 적지 않게 '차이'에 대한 감각에 의존한다. 171

 

반짝 6. 삶에 대해 거리를 유지할 때만 사유의 삶은 전개된다. '차이'에 대한 감각에 의존한다. 실증주의, 데이터, 객관을 가장한 이야기들 속에 삶이 없다. 올바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살고 있는 삶에 대한 거리를 유지할 때다. 그래야만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이 뒤따르는 것이다. 살고 있는 일상을 끊임없이 새겨보고 다시 보려하는 감각, 그래야만 최소한의 올바른 삶들이 기웃거릴 수 있다.

 

관심사를 추구하고, 실현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 소위 실천적이라고 불리는 사람에게는 접촉 인물들이 자동적으로 친구와 적으로 변한다...다른 사람을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한 기능으로 보지 않고 인물 자체로 보는 능력, 생산적인 대립 관계로 만들 능력, 자기와 모순되는 것을 포용함으로써 자신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이 위축되는 것이다. 그런 능력은 판단적인 인간 지식으로 대체되는 바, 이런 지식에서는 결국 가장 좋은 사람은 더 적은 악이 되며, 가장 나쁜 사람도 최고악이 되지는 않는다. 177

 

반짝 7. 친구를 가려서 사는 사람들, 관심사를 밀어붙이기 위해 사람을 만나는 사람들. 의욕과 목표가 보지 못하는 것을 드러낸다. 그들의 무지를 탓한다. 인물자체를 보는 능력, 생산적인 대립관계를 만드는 능력, 모순을 포용하는 능력을 애써 보지 못한다. 자본주의 속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다. 너도 ..... 나도...  늘 나에 머물러 있다. 너가 되지 못한다. 한번도 나-너는 되어보지 못하면서 살아진다.

 

 

 

 

 

 

 

 

뱀발. 천천히 보다. 우울과 허무를 들여다보는 이유는 그 허무와 우울이 이 기름기를 띄우고 있는 물같은 바닥이기 때문이다. 바닥을 치고서야 이 현실을 떠받치고 있는 실체가 보인다. 버스와 비행기로 관전하는 것이 아니라 추체험이다. 오롯이 겪어야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한 블로거의 리뷰를 본다. 아도르노가 왜 우울과 허무를 캐내려했는지를 밝히고 있다. 숲을 거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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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youtu.be/N1zo4t4JuNc

형제 자매 여러분!
지금 우리는 1마리가 아니라, 99마리가 밖에 있습니다!
제발 좀 우리 밖으로 나갑시다!!!
이 이야기는 진정 우리에게 진리를 말해줍니다
우리는 고작 1마리의, 정말 적은 양들과 함께 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던 사도들의 열정을 느껴야만 합니다.
우리 밖의 99마리의 다른 양들을 찾아 나서야죠

 

전문 (콕!)

 

만약 그리스도인이 이 순간 혁명가가 아니라면,
그는 더 이상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은총의 혁명가들이 되어야만 합니다!
참으로 은총은,
아버지 하느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죽으심 그리고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은총은,
우리를 혁명가가 되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인간 본성의 역사상 가장 큰 변화라는 건
우리가 축복으로 받은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은총이 혹시 얼마인지 아시는 분 계신가요?
어디에서 은총을 파는지?
은총을 어디에서 살 수 있는지?
아무도 모르시네요?!
혹시 본당 사무실에 가서 은총을 살 수 있던가요? 팔고 있나요?
아니면 본당 신부님이 은총을 파시던가요?
여러분들 잘 들어두세요!
그 누구도 은총을 팔거나 살 수 없습니다.
은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는 겁니다.
유일하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방법은 그분이 주시는 겁니다.
선물로, 우리에게 주시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참 아름답지 않나요?!
그러므로 우리도 우리들의 형제 자매들에게
나눠야만 합니다. 무상으로 말이죠!

바오로6세께서는 말씀하셨었죠.
당신은 그리스도인들이 낙담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말입니다.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슬퍼하고 맥이 빠질 수 있죠?!
마치 불평 속에 주님이 있기라도 하듯이...
그분이 우리의 사정을 모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매일매일 한숨쉬고, 불평하고, 탄식하는 이런 태도는 세상의 사람들이나 하는 일입니다.

여러분들께 묻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이렇다고 알고 계시나요?
네 아무도 없습니다. ^^
그리스도인은 늘 용감무쌍해야 합니다.
우리 앞에 사회적 신앙적 문제나 위기가 있더라도, 앞으로 나아갑시다.
용기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갑시다.
그리고 더 이상 무언가 할 수 없다고 느낄 때에는...
견디어 내시기 바랍니다.

용기와 인내!
사실 사도 바오로에게 이 두 가지는 중요한 덕성입니다.
용기는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곧, 무언가 힘 있게 함으로써 신앙의 증거가 됩니다.
더불어 인내 '내 어께에 무언가를 지고 옮기는 것'과 같습니다.
곧, 인내 또한 복음을 전하고 있는 표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뭔가를 할 수 없을 때에는 인내합시다.

그러면 우리는 이런 용기와 인내를 가지고 무엇을 해야할까요?
우리는 우리 자신을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공동체 밖으로 눈을 돌려야 합니다.
나자렛 예수님께서 이미 하셨던 바와 같이
우리 밖의 불쌍하고 힘없는 이웃들을 위해 행동하고, 보살펴야만 합니다.
우리들은 예수님 안에서 선물 받은 은총을 나누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에) 여러분들은 밖으로 나가야만 합니다.
...사실,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그리스도 공동체가 폐쇄적일 수가 있죠?!
어떻게 본당 공동체가 배타적일 수 있는 거죠?!

형제 자매 여러분!
지금 우리는 1마리가 아니라, 99마리가 밖에 있습니다!
제발 좀 우리 밖으로 나갑시다!!!
이 이야기는 진정 우리에게 진리를 말해줍니다
우리는 고작 1마리의, 정말 적은 양들과 함께 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던 사도들의 열정을 느껴야만 합니다.
우리 밖의 99마리의 다른 양들을 찾아 나서야죠!

이것이 여러분에게 끝으로 하고 싶은 말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겁먹지 마세요!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제발 두려워하지 마세요. 앞으로 나아갑시다!!
우리 형제 자매여러분께 말합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은총아래 있습니다.
그 어떤 값을 낼 필요도 없이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갑시다!!

 

지금 여기의 교회들은??

 

 

그리스도인이 되어버린 것일까? 이리 쏙쏙 들어오는 것인지...집을 잃은 한마리의 양이 아니라 집을 잃은 양은 99마리라고... 한마리와 얘기하고 빗질하기가 얼마나 수월하냐고...공동체 안에서만 안락을 찾고 있다고... ...공동체 밖의 집을 잃어버린 99마리의 양을 찾으러 나서라고... 지금 당장! 매일 만나는 사람들과 그만 만나도 된다고...머리빗겨주고...다듬어주고 얼마나 쉽냐고... ... [ ] 괄호에 무엇을 넣어도 뜨금거리기만 한다... ...

 

 

 

 

 

 

 

 

 

 

 

 

 

 

 

뱀발. 1. 일터 근무라 편한 책들을 보다 요기....들어와 옮긴 방의 독서모드로 검색을 하다 破님 블로그에서 영상을 본다. 아... ...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는다... .. 잘못들은 것은 아닐까? 혹시..정말 이렇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것이 맞는단 말인가? 혁명가로서 예수...그말을 이렇게 듣고 있다.

 

 2. 토성맨션 1,2권과 3,4권이 다 출간되었다. 담담하고 좋다. 비트겐슈타인 소개책도 쉽고 막힘없이 잘썼다. 포스트모던과 이어서 볼 만한데 시간강사를 하고 있다는 저자는 어찌 되었는지 궁금하다.

 

토성맨션은 지구 35,000미터 상공에 토성 띠모양의 공간, 상층,중층,하층의 모습은 설국열차를 상상하게 한다. 하지만 격함보다는 부드럽고 은은하게 다가서는 모습이 좋다. 3, 4권을 챙겨봐야겠다. 궁금하다.

비트켄슈타인 말놀이▼

 

말의 의미가 세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사용에 의해서 구성되므로, 자유, 고통, 행복, 욕망, 죽음, 노예 같은 낱말들의 의미는 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그 쓰임에 의해서 활동합니다. 85

포스트모던 아저씬느 현실을 객관적으로 아는 것과 바람직한 상태를 추구하는 명령은 별개의 것이라고 봅니다. 둘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간극이 있다는 거죠. 다르게 얘기하면, 정치는 실천의 영역을 문제삼습니다. 이 세계는 존재하는 것을 넘어서 바람직한 상태를 요구하므로 가치와 당위를 문제삼습니다. 그런데 이때 이론적으로 참인 세계와 실천적으로 가치 있는 세계가 같은 종류의 것일까요? 186


이념에 코와 입을 그려넣어서 확정적인 모습을 만들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정의를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동상으로 만들어서 사람들 앞에 제시하는 순간에 그 동상은 '정의의 폭력'을 대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의는 불확정적인 것으로 있어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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