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의 논리는 나르시시즘적 성과주체를 자신의 에고 속에 더 깊이 파묻혀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성공 우울증이 발생한다. 우울한 성과주체는 자기자신 속으로 침몰하고 그 속에서 익사한다. 반면 에로스는 타자를 타자로서 경험할 수 있게 하고, 이로써 주체를 나르시시즘의 지옥에서 해방시킨다. 에로스를 통해 자발적인 자기 부정, 자기 비움의 과정이 시작된다. 사랑의 주체는 특별한 약화의 과정 속에 붙들리지만, 이러한 약화에는 강하다는 감정이 수반된다. 물론 이 감정은 주체 자신의 업적이 아니라 타자의 선물이다. 20-21

 

실패에 대해 책임을 물을 만한 사람은 그 자신 외에는 아무도 없다. 빚을 탕감받고 속죄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 이로써 채무의 위기뿐만 아니라 보상의 위기까지 발생한다. 채무의 탕감도, 보상도 모두 타자를 전제한다. 따라서 타자와의 유대가 없다는 사실이 바로 보상의 위기와 채무의 위기가 발생할 수 있는 초월적 조건을 이룬다. 31-32

 

타자와의 성공적인 관계는 일종의 실패로 여겨진다. 타자는 오직 할 수 있을 수 없음을 통해서만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에로스는 그 모든 것의 실패다. 우리가 타자를 소유하고 붙잡고 알 수 있다면, 그는 더 이상 타자가 아닐 것이다. ‘가지다’ ‘알다’ ‘붙잡다는 모두 할 수 있음이 동의어다. 41

 

우리는 성적 대상을 부를 수는 있겠지만 그것에게 말을 건넬 수는 없다. 성적 대상에는 얼굴도 없다. 얼굴은 타자성, 즉 거리를 요구하는 타자의 다름을 구성하는 본질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예의가, 예의바름이, 바로 이격성이 사라져가고 있다. 즉 타자를 그의 다름이라는 면에서 경험하는 능력이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43

 

오늘날 세계는 전면적인 현재의 지배 속에 놓이게 된다. 전면적 현재는 순간을 제기한다. 순간이 없는 시간은 그저 더해지기만 할 뿐, 더 이상 상황적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그것은 클릭의 시간으로서, 결정과 결단을 알지 못한다. 순간은 사라지고 클릭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47

 

에로스는 타자에 대한 비대칭적 관계다. 에로스는 교환 관계를 중단시킨다. 이질성은 부기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질성은 대차대조표상에 나타나지 않는다. 48

 

사랑은 피치노에 따르면 전염병 중에서도 최악의 전염병이다. 그것은 변신이다. 사랑은 인간에게서 고유한 본성을 빼앗고 그에게 타인의 본성을 불어넣는다.” 바로 이러한 변신과 상처가 사랑의 부정적 본질을 이룬다. 하지만 오늘날 사랑이 점점 더 긍정화되고 길들여짐에 다라 사랑의 부정성도 희귀해져간다. 사람들은 자기 동일성을 버리지 않으며 타자에게서 그저 자기 자신을 확인하려 할 따름이다. 50-51

 

오늘날 우리는 주인과 노예가 통일을 이루고 있는 역사적 단계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으리라. 우리는 노예 주인 혹은 주인 노예일 뿐, 결코 자유로운 인간은 아니다. 자유로운 인간은 역사가 종말에 이를 때 비로소 실현될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는 결코 끝난 것이 아니다. 역사를 자유의 역사로 이해한다면 말이다. 역사는 우리가 정말 자유로워질 때, 우리가 주인도 노예도 아니고, 주인 노예도, 노예 주인도 아닐 때 비로소 종언을 고할 것이다. 54

 

절대적인 것은 부정적인 것을 도외시하는 긍정성이 아니다. 정신은 오히려 부정적인 것을 정면으로 응시하며그 곁에 머물러있는다. 정신은 절대적이다. 정신은 극단적인 데까지, 극도의 부정성에 이르기까지 과감하게 들어가 이를 자기 안에 끌어안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극단적인 것과 극도의 부정성을 자기 안에 품음으로써 완결을 이루기 때문이다. 56

 

사람들은 흔히 타자를 폭력적으로 붙들어 자기 소유로 삼는 것을 헤겔 사유의 중심 형상으로 이해하지만, 헤겔이 말하는 타자로부터 자기 자신으로의 화해로운 귀환은 그런 것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그것은 오히려 나 자신을 희생하고 포기한 뒤에 오는 타자의 선물이다. 58

 

 

에로스의 힘은 무력함을 함축한다. 무력해진 나는 스스로를 내세우고 관철하는 대신, 타자 속에서 혹은 타자를 위해 나 자신을 잃어버리고, 타자는 그런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준다. “지배자는 자기 자신을 통해 타자를 장악하지만, 사랑하는 자는 타자를 통해 자기 자신을 되찾는다. 사랑하는 두 사람은 각각 자기 자신에게서 걸어나와 상대방에게로 건너간다. 그들은 각자 자기 안에서 사멸하지만 타자 속에서 다시 소생한다. 60

 

죽음의 부정성은 에로스적 경험의 본질적 성분이다. “우리 안에서 사랑이 죽음과 같지 않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이때 죽음은 무엇보다도 자아의 죽음을 의미한다. 에로스적 삶의 충동은 나르시시즘적이고 상상적인 자아의 정체성을 흘러넘치고, 그것의 경계를 해체한다.....나의 상상적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도, ‘에게 사회적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상징적 질서를 폐기하는 것도 죽음이며, 그러한 죽음은 어저면 벌거벗은 삶의 끝보다 더 심각한 죽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60-61

 

유혹에서 사랑으로, 욕망에서 성애로,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저 단순한 포르노로 전진해감에 다라, 그만큼 더 강력하게 비밀과 수수께끼는 위축된다...에로틱한 것에는 언제나 비밀이 깃들어 있기 마련이다. 70

 

욕망은 더 이상 무의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의식적 선택을 통해서 정해진다는 것이다. 욕망이 주체는 철저하게 선택을 통한 결정에 주의를 집중하고, 타인에 관하여 무엇이 이성적인 관점에서 소망할 만한 기준인지 숙고하며, 이에 대해 스스로 책임질 것을요구받는다. 더 나아가 상상이 고조됨에 다라 남성과 여성이 파트너에 대해 가지는 바람도, 함께하는 삶의 전망에 대한 요구도 변화했고 상향 조정되었다.” 이로써 오늘날 사람들은 환멸도 더 자주 경험한다. 하지만 환멸이란 상상의 악명 놓은 하녀일 뿐이다. 73

 

근대적 자아는 자신의 소망과 감정을 점점 더 상상적인 방식으로, 즉 상품과 매체 이미지를 통해서 지각한다. 그의 상상력은 무엇보다도 소비재 시장과 대중문화에 의해 규정된다. 74

 

경계와 문턱이 사라짐과 동시에 타자에 대한 환상도 사라진다. 문턱의 부정성이, 문턱의 경험이 없는 곳에서는 환상도 위축된다. 오늘날 예술과 문학이 직면한 위기의 원인은 환상의 위기, 타자의 소멸, 즉 에로스의 종말에서 찾을 수 있다. 80

 

에로스는 영혼의 모든 부분, 즉 충동, 용기, 이성을 전반적으로 지배한다. 영혼의 모든 부분은 각자 자기 나름의 쾌락 경험을 지니며, 아름다움을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한다. 오늘날에는 무엇보다도 충동이 영혼의 쾌락 경험을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에 다라 용기를 동력으로 하는 행동은 드물어진다. 용기와 관련된 것으로는 이를테면 기존의질서와 근본적으로 단절하면서 새로운 상태의 시작을 촉발하는 분노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분노는 사라지고 짜증과 불평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짜증과 불평에는 단절의 부정성이 없다. 그것은 기존의 질서를 건드리지 않고 내버려둔다. 도한 에로스 없는 이성은 데이터를 동력으로 하는 계산으로 전락한다. 계산으로서의 이성은 사건, 예측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생각할 능력이 없다. 우리는 에로스를 결코 충동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에로스는 충동뿐만 아니라 용기까지도 관장한다. 에로스의 자극에 의해 용기는 아름다운 업적을 이룰 수 있다. 83

 

바디우는 정치와 사랑의 직접적 결합을 부정하지만, 정치적 이념의 기치 아래 실천과 참여로 점철된 삶과 사랑 특유의 강렬함 사이에는 신비로운 공명같은 것이 있다고 본다. 이들은 마치 그 소리와 힘에서는 완전히 상이한 두 악기가 위대한 음악가에 의해 하나의 곡 속에 합쳐져서 신비로운 어울림을 만들어내는것 같다. 다른 삶의 형식, 다른 세계, 더 정의로운 세계에 대한 공동의 욕망에서 나오는 정치적 행위는 어떤 심층적 차원에서 에로스와 상관관계를 이룬다. 에로스는 정치적 저항의 에너지원이다. 84

 

내가 사랑의 만남이 주는 영향 아래 있을 때, 만일 그것에 진정으로 충실하고자 한다면, 평소 나의 상황을 살아가는 방식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다 뒤집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사건진리의 계기로서, 기존 상황 속에, 살아가는 습관 속에, 새로운, 완전히 다른 존재방식을 도입한다. 사건은 상황이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일으킨다. 그것은 타자를 위해 동일자의 세계를 중단시킨다. 사건의 본질은 완전히 새로운 것을 출발시키는 단절의 부정성에 있다. 사건적인 성격을 통해 사랑은 정치 또는 예술과 결합된다. 85

 

사유에 에로틱한 욕망의 불을 붙이는 아토포스적인 타자의 유혹이 없다면, 사유는 늘 같은 것을 재생산하는 단순한 노동으로 위축되고 말 것이다. 계산하는 사고 활동에는 아토피아의 부정성이 없다. 계산하는 사고는 긍정적인 것에 대한 노동이다. 어떤 부정성도 그것을 불안에 빠뜨리지 못한다. 89

 

이론은 실험으로 검증하거나 반증할 수 있는 가설이나 모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이나 헤겔의 정신현상학과 같이 강한 이론들은 데이터의 분석으로 대체할 수 있는 모델이 아니다. 이러한 이론들은 강한 의미의 사유를 바탕으로 한다. 이론은 세계를 완전히 다르게, 완전히 다른 빛 속에서 드러나게 하는 근본적 결단이다. 이론은 무엇이 여기에 속하고 무엇이 속하지 않는지, 무엇이 존재하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를 결정하는 원천적, 근원적 결단인 것이다. 이론은 고도로 선택적인 서사이며, “전인미답의 지대를 헤치며 열어가는 구별의 숲길이다. 91

 

이론은 사물이 서로 뒤섞이고 통제할 수 없이 증식하는 것을 막아주며, 이로써 엔트로피의 감소에 기여한다. 이론은 세계를 설명하기 전에 세계를 정제한다. 우리는 이론이 제의나 예식과 공통의 기원을 지닌다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모두 세계에 형식을 부여한다. 즉 사물들의 흐름을 일정한 형태로 빚어내고, 이들이 범람하지 않도록 경계를 만들어준다. 오늘날 정보의 더미는 형식을 해체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92

 

지난 십 년 혹은 이십 년 동안 문학에서는 거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책은 홍수처럼 출간되지만 정신은 정지 상태입니다. 원인은 커뮤니케이션의 위기에 있습니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경탄할만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엄청난 소음을 만들어냅니다.“ 걷잡을 수 없이 증식하는 정보의 더미, 이러한 긍정성의 과잉이 소음으로 표출된다. 투명사회, 정보사회는 소음 수위가 매우 높은 사회이다. 하지만 부정성이 없다면 남는 것은 오직 동일자뿐이다. 정신이란 본래 불안을 의미한다. 정신을 살아 있게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부정성이다. 94

 

정보사회는 체험사회다. 체험 역시 가산과 축적을 특징으로 한다. 그 점에서 체험은 경험과 구별된다. 경험이란 대체로 유일무이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라서 체험은 완전히 다른 것 속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주지 못한다. 체험에는 변신시키는 에로스가 깃들어 있지 않다. 사랑이 긍정적 체험의 도식으로 전락할 때, 남는 것은 성애뿐이다. 성애 역시 가산과 축적의 원리를 따른다. 94-95

 

에로스는 사유를 이끌고 유혹하여 전인미답의 지대를, 아토포스적인 타자를 거쳐가게 한다. 소크라테스의 말이 지니는 마력은 아토피아의 부정성에서 나온다. 하지만 그것은 아포리아로 귀착되지 않는다. 96

 

볕뉘. 상가에 가고 오는 길 읽다.  장정일이 한병철에 대해 쓰는 컬럼을 보면 질투가 내장된 듯하다. 들뢰즈가 말한 대로 사랑보다 더 강렬한 것이 질투다. 질투는 그 상황을 선명히 찍어내고 돌려내어 있는 것보다 사실적으로 기억해낸다. 질투의 정신으로 사물이나 상황을 대하라고 한다. 묘한 긴장에 대해 애써 판단하지 않으려한다. 긴장 역시 더 치밀하게 볼 수 있는 도구이기도 하다. 묘한 라이벌?로의 의식이라 비평하는 비평가들은 없지만...조금 더 깊이 가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꽉찬 룸이다. 일행과 다른 곳에 가겠다고 하는데도 아니란다. 주춤거리는 아는 얼굴이 섞인 일행들이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장면이 바뀌어 나는 일터밉상을 온 힘을 다해 가해하고 있다. 다른 이가 거든다. 헤드락한 채로 말이다. 때릴 기운도 풀려버리자 다시 룸 한켠의 빈공간에 맞은 이와 서있다. 그 자는 아무렇지도 않아보인다. 술값을 다 치룰거라고 하니 냉큼 자리를 잡는다. 머뭇거리던 안면 있는 이들도 쑥 같이 들어간다. 문 밖에서 멀어지는 나는 어느새 허름한 구멍가게 빈방같은 곳. 술상에 꽉찬 안면은 있는 이들. 그들에게 룸에 들어간 이들이 훌륭한 이들이라고 자랑삼아 이야기하다 허름한 술을 한잔 받다. 그리고 깨었다. 손에는 사람을 패버린 기억이 그대로 전해졌다. ` - 꿈 밖이다. 잠시의 후련함도 잠깐이다. 원망을 샌드백처럼 다루었다. 미안했다. 꿈이라도.

발1 「악」, 테리이글턴을 읽고 있는 연유인가. 그렇지는 않다. 이른 잠. 꿈결에 시들거리다. 이젠 꿈들도 행간을 읽혀 어쩌지 못한다. 일상들이 원이 없다면 괜찮을텐데 바램과 현실이 교직하며 불만들이다.

발2. 현금을 찾아 직원들에게 김장지원금을 봉투에 넣어드렸다. 한분의 결혼축의금을 챙긴다. 그 끝에 가까운 부고를 듣다.

발3. 악의 적은 선이 아니라 삶이라는 말이 걸린다. 악이 싫어하는 것이 삶이라ㆍ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볕뉘. 오후에 비가 내려 그치기를 기다리다 지근 거리에 있는 은행나무를 찾다. 한적하리라 기대했건만 출사를 나온 사진전문가들로 가득하다. 단풍을 조금 더 찾다가 돌아온다. 조금 더 기다려도 좋을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고독

 

고독이 발바닥 굳은살처럼 다져졌다

아프지 않게 생의 어디든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고요를 듣다

 

꽃 지는 고요를 다 모으면 한평생이 잠길 만하겠다

 

 

홍매화

 

이롱증 앓던 고막을 도려내어

찬바람에 걸어놓고

오지 않는 먼 당신 발걸음 소리 잎잎이 새긴다

각혈하듯 꽃 피는 소리로 귀가 열릴 때

당신은 불현 듯 오라, 오시라

 

사랑을 기억하는 방식

 

산정의 어떤 나무는

바람부는 쪽으로 모든 가지가 뻗어 있다

근육과 뼈를 비틀어

제 몸에 바람을 새겨놓은 것이다

 

 

마주보기

 

너를 빤히 쳐다보았던 까닭은 네게 두고

온 내가 그리웠기 때문이다.

 

 

지도를 그려

 

세상을 줄여놓고 당신과의 거리를 한 뼘으로 잡는다

금방 온다고 했으니까

 

노을

 

눈이 빨개지도록 울다 간 네 발소리로

가슴의 저녁이 물든다

 

 

이유

 

바람이 불 때

꽃은 너무도 불안하여 그만 예뻐져 버렸다

 

 

높이

 

기댈 데 없는 허공에 이르러서야 새는

제 몸을 읽고 길을 찾는다

세찬 바람을 끌어당겨 높이 난다

 

 

지각의 현상학

 

그립다는 말은 언어가 아니라 살이다

 

 

나무

 

허공을 더듬어 길을 낸다

걸어간 만큼만 길이 몸이 된다

 

 

꽃에게

 

꽃아, 내가 견딜 수 없는 나를

네가 견뎌다오

 

 

흉터

 

망설이다가 그만 보고 싶다고 말해버렸다

말 하나가 몸을 빠져나간 뒤

시커멓게 뚫린 몸의 자리를 본다

오랜 시간 힘겹게 떨며 몸은 스스로를 메우고 있었다

 

보름달

 

혼자 소리치다 제 안을 얼마나 때렸으면

모든 밖에서 중심까지 안으로 눌러 삼킨 소리가 얼마나 컸으면

비명조차 저토록 둥글고 환해질 수 있을까

 

고개숙여

 

깊어진다는 것은 언제든 몸 던질 수 있는 자기 안의 강물을 내려다보는 일

 

 

우리둘이

 

너와 같은 생각으로

너를 그리면 너는 없지만

너와 다른 생각으로

너를 그리면 너는 언제나 있다

 

진주

 

입안으로 들어가 내장에 붙은 말

상처를 감싸며 자란다

시간의 묽은 막이 둥글게 쌓이고

상처가 아물어 단단히 빛을 가질 때

아름다운 말은 은은히 온다

 

마주침

 

그토록 많은, 흘러가는 인연들의 혼돈 속에서

하필 너는 왔다

충격이 이전의 나를 다 흔들 때

촉수를 내밀어 맞이한 해후

눈을 떠 처음으로 빛인 시선이 생겼고

벽을 통과한 마주침으로 너는 번식되기 시작했다

전염처럼 나를 무한히 이동시키는

해후는 진행형이었고 떨리는 현재였으므로

우리는 사랑했고 사랑할 것이었다

해후의 아래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고요한 징후

너를 눈치채기 위하여 뜬눈으로 새운 밤들을 지나

몰랐던 네가 스며드는 건

무섭고 희한한 일이었다

소문은 빠르게 몸 전체로 퍼졌다

피부와 속살들이 밤새 수런거리며

너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아팠다

 

 

시작

 

세찬 빗줄기 위로 깃발을 올립니다, 전하. 소신은 말갈의 피를 받아 검은 지평선을 홀로 걸어온 사람, 전하의 목을 칠 역적입니다. 생전 처음보는 번개가 궁궐을 때리고 피뢰침 속으로 사라질 때 소신은 올 것이옵니다. 곧이어 새와 구름이 지나간 곳, 나비가 얇은 날개로 허공을 저며낸 화사한 길을 끊는 번개가 칠 것입니다. 전하, 소신의 붉은 머리카락이 빗줄기 속에서 망나니처럼 펄럭이고 차가운 비명 소리가 들리거든 귀를 여시고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전하, 역적의 사간이 전하의 은총으로 왔지만 익숙히 멈출 수 없어 지독한 고독 이후에 혼란한 역적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옵니다. 눈부신 어둠의 기둥 위로 쏟아지는 빗발을 따라오는 새벽, 젖은 깃발이 마르기도 전에, 세계를 받치던 전하의 무릎은 부서지고 역적의 나라는 완성될 것입니다. 그때 피 묻은 칼을 들고 날선 지평선을 마저 넘겠습니다. 전하, 소신은 말갈의 후에, 완성된 역적의 나라에서도 지평선 너머 지평선으로 가는 행려자입니다. 시작은 언제나 시작이오니 전하, 그럼 하해 같은 은혜 소신의 어미에게 그러하였듯이 전하의 목을 치겠습니다.

 

- ‘시작은 특별한 한순간이 아니다 모든 순간이 다 새로운 출발이고 시작이다. 극단적으로는 1초 전의 1초 뒤의 도 분명히 다르다. 그 짧은 순간에 마신 공기, 들은 이야기, 본 것들이 나에게 새롭게 축적되어 다른 나를 만들기 때문이다. ‘는 늘 새로운 시작이다. ‘시작은 마음 다잡고 맞이해야할 무엇이 아니라 일상이 시간들 속에서 성실히 수행해야 할, 때로는 의 의지와 무관하게 수행되고 있는 어떤 것이다. 무엇을 이루었다고 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어느 끝에 이른 것이 아니라, 이미 또 다른 시작에 서 있을 뿐이다. 시작을 방해하는 기존의 안일한 안녕과 관성적 질서의 목을 과감하게 내리칠 때 우리는 우리 삶을 매순간 새롭게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전혀 다른 시간들이 우리들 앞에 무한히 닥쳐오고 있다. 시대의 지평선을 넘어 우리의 삶은 언제나 새롭게 시작된다.

 

 

볕뉘.  책선물을  받았다. 시서화. 훑어보다 색감이 좋아보였다. 지인들과 만남, 환대를 받고 내려오는 길 마저본다.  허공, 고요, 상처, 고독...들을  선물처럼 받아들이게 만든다. 그리움이라는 것도 마음이 아니라 살과 피부에 가까운 것이라고...바람의 지문을 그대로 남겨버린 바닷가 나무들처럼...그리움은  그 결을 남기고 만다고 한다.  마음 자리를 맴도는 시 몇편을 남겨둔다. 그리움의 넓이라는 시집은 따로 챙겨봐야 할 듯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른 시작

단풍은 꿈을 내려놓고 지는 자가 아니라
허공에 일생 감춰두었던 색 하나를 마지막으로 꺼내 입는 자
목숨의 끝까지 단장하고
가장 낮은 곳으로 가서 마지막을 뜨겁게 인수하는 자
다른 세계를 시작하는 자

- 김주대,「그리움은 언제나 광속」에서

발. 빗 속 단풍이 몹시 곱다. 며칠 남지 않았다. 거닐어 보고싶지만 아쉬움만 붉게 물들여야 할 듯 싶다. 차창 밖으로 남은 비가 마저 나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