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형평^^ - 무엇인가 하려고 했던 시대.

읽으면서 그 흐름의 깊이와 자장은 넓었다. 짧게는 1970년대와 2010년대. 길게는 역사의 도도한 흐름과 맞닿아 있었다.

그 역사에서 피어오른 명망가와 무수한 꽃들은 그 강물에 떠다니고 있을 것이고, 그 영향은 현재 진행형이고 미래진행형이기도 할 것 같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시선으로 복기하려는 이는 드물다. 추억과 향수에 가까운 글들로 현재도 앞날도 더 희미해져가기만 한다. 그래서 그런 반추에 `청춘`들은 지난 과거를 더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늘 현실인 책의 배경처럼 스며있는 `노동문제`의 침잠엔 할 말이 없고, 부귀와 영화, 명예에 대한 관심만으론 지금현실을 한발자욱도 나아가게 하지 못한다.

시절을 과잉대표한 대학생: 삶이 그 시대를 감당하기엔 너무나 부족한 청춘이었으리라. 낙과가 아니라 늘 날 것같은 생동감이 원천이자 생명력은 아니었을까.

부족함을 직면하고 추스려낼 용기와 시대를 거슬러올라 한없이 작아지는 스스로를 느낄 때, 그 부끄러움이야말로 이 시대 청춘들에게 건네줄 자양분은 아닐까

왕년을 이야기하는 것. 전우회의 자족감이 아니라면, 다 버려야 할 지도 모른다. 집요한 복기를 통해 못다한 아픔을 발굴해 내 물려주는 것이 맞다. 그러다 미쳐 보지못한 이론들이라도 다시금 발견한다면 나쁘진 않을 것 같다.

- 유경순, 「1980년대, 변혁의 시간 전환의 기록 : 학출활동가와 변혁운동」을 읽고

발.

물론 난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인간이다. 용기도 없고 경계에 서성이고 주변에 멈칫거리기만 했다.

짧은 대학 경험, 그 나이의 자식이 있고 삶이 있으니 그래도 말한마디 거들 자격은 없지 않을 것이다.

무릅써본다. 그 정신을 잊지않는 무수한 삶들에 경의를 표하며ㆍㆍㆍㆍㆍ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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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타고난 물활론적 경향 덕분에 어른들이 가르쳐줄 수 없는 감수성을 갖는다고 느낀다.아이들은 꽃을 주울 때 친구를 만들어주려고몇 송이를 더 줍는다. 길거리의 돌멩이가 다른 풍경을 보게 해주려고 위치를 옮겨놓거나, 이사을 가서 힘들어하지 않도록 돌멩이를 주운 자리에 다시 가져다놓기도 한다. 이처럼 세상을 살아 있는 것으로 상상하면 자연히 연민이 생겨난다." 59

 

 

볕뉘. 연민한다. 이상한가. 한번 보면 다르게 보는 법을 배울지도 모른다. 그리운 것을 그리워하면, 도 다르게 볼 수 있듯이 말이다. 부끄러워 말자. 감각이 없어지는 것을 오히려 부끄러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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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어울림이다. ‘한 아름처럼 아름은 전체를 포섭한다. 미와 같은 한자보다 더 상위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아름다움의 아ᄅᆞᆷ은 우리말의 고어에서 의 뜻을 지니는 명사로 해석될 수 잇다. “아름다움나답다이다. 아름다움은 객관인 동시에 주관이며 궁극적으로 나의 체험의 요소 간에 발생하는 느낌이다. 아름다움은 나다운 것이며 나의 느낌화 되는 것이다. 11

 

아름다움이 참을 꼭 전제로 할 필요가 없는 듯이 보이지만 참을 전제로 하지 않는 아름다움은 공허한 것이다. 아름다움이 없는 참은 맹목적이다. 참이 없는 아름다움은 중후함을 결여한 저차원의 것이며, 아름다움이 없는 참은 국부적이며 사소한 차원에 머무르고 마는 것이다. 15

 

진정한 참은 생성적일 수밖에 없다. 진리를 안다는 것이 반드시 선한 것이라는 생각은 진부한 도덕의 착오일 수도 있다. 진리를 아는 것은 이 세계를 왜곡하는 것일 수도 잇다. 진리는 계절에 맞추어 밥상에 오는 반찬처럼 시의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참은 발견되는 것이며 반복되는 것이 아니다. 진리는 새로운 느낌의 창조를 불러내는 아름다운 진리리가 되어야 한다. 진리의 실현은 느낌의 아름다움을 증진시키는 요소가 되는 것이다. 16

 

에술은 스스로 그러함의 미니멀리즘을 지향해야 한다. 미니멀리즘은 스스로 그러함의 를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나의 몸을 형성하는 모든 기의 사회 간의 내면적 어울림을 우리는 이라고 부른다. 이 외부로 표출될 때 우리는 그것을 이라 부른다. 아름다움이란 맛과 멋이다. 맛과 멋은 몸의 건강이며, 궁극적으로 몸이라는 사회가 다시 거대사회를 이룬 문명의 건강이다. 20

 

삶을 위한 예술은 있어도 예술을 위한 삶은 없다는 것이다. 달콤함을 정제한 것이 설탕이며, 감칠맛을 극대화한 것이 인공감미료다. 정제된 미로서의 예술이나 극대화된 맛으로서의 조미료 따위보다 건강하고 온전한 삶을 위한 투박한 재료, 소박한 정신이 필요한 시절이다. 화려하든 소박하든 간에 그 대상이 나의 삶을 체감할 수 있게 해줄 때라야 더 친근해지는 것이다. 61

 

볕뉘. 따듯한 설명이 마음을 끈다. 도올의 발문도 좋다.  삶을 의식한다는 것. 더구나 서로의 삶들을 의식한다는 것. 맛을 내고 멋을 내고의 사이에는 나를 채색하는 과정도 들어있는 것이다. 끌려다니지 않고, 스스로 끌고 갈 수 있다면, 조금 멋을 부리는 것도 좋을 것이다. 다 좋은 일이다. 정치도 급급해하면 안 된다. 아름다움이 비치지 않는다면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다. 되돌아 봄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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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철학적으로 가정되었던 단일한의지로서의 인민이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는 점이다. 우리는 국가가 규정하는 인민(‘선거용 인민’)의 바깥에서 자신의 권력을 요구하고 선언하는 다른 인민의 존재를 목격한다. 그것은 국가적 제한에서 배제된 비실존의 인민’, 거리와 광장에서 자신의 존재를드러내고, 권력 집단과 거대 자본에 대항하는 싸움 속에서 형성되는 모호한 인민이다. 우리는 그 인민을 바깥의 인민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 책은 그러한 바깥, 국가의 바깥, 제도의 바깥, 권력의 바깥에서 포착되는 인민에 대한 성찰로 채워져 있다. 단일하고 통일적인 인민을 사유하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전제 아래, 이 책의 저자들은 어떤 잠재적 인민, 새롭게 등장하는 사회적 다수의 구성으로서의 인민, 인민에서 배제된 인민 바깥의 인민, 인민의 내재적 예외로서의 인민에 대해 말한다. 말하자면 이 책의 저자들은 인민의 현재적 한계와 또 다른 인민의 가능성을 성찰한다.

 

바디우는 정체성에 의해 봉인된 인민이 의미가 있는 경우는 외세의 식민지적 침략에 맞서 해방을 쟁취하고자 하는 정치적 과정에서 형성되는정체성이 문제가 되는 상황뿐이다. 오늘날 국가에 의해 추인되고 국민 형용사를 통해 봉인된 인민은 단지 선거에서만 의미를 갖는 잘 길들여진 인민, 중간 계급으로서의 인민이라는 것이다.

 

버틀러는 실질적인 인민 주권의 실행이 거리로 몰려나와 집회를 통해 우리를 만들어내는 우리, 인민을 만들어내는 행위를 통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발화의 실천은 수행적인 실천이라고 말한다.

 

디디-위베르만은 순간적이고 감각적인 이미지들을 통해 다시금 재현되는 인민들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진정한 인민의 모습, 여러 인민들의 모습은 감각적인 것으로의 재현을 통해서만 그때그때 인식되는 것이다....‘감각할 수 있게 만들기야말로 사람들이 감동하기 시작하고, 사유하기 시작하는 계기가 된다. 미적-정치적 사유는 바로 그러한 감각할 수 있게 만들기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랑시에르는 지배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적 인민의 이념을 군중의 위험한 이미지와 결합시킴으로써 현재의 의회 민주주의를 정당한 것으로 강변하는 일이다. 그 군중은 우리를 전체주의로 몰고 갈 것이라는 주장을 통해, 무분별한 인민’, 포퓰리즘의 인민은 위험한 것으로 낙인찍는다는 것이다.

 

영웅에 대한 목마름의 신화 그 배후에는 일반화된 정신적 부패가 있다. 사람들을 지배하는 것은 일반화된 자본주의적 욕망이다. 중요한 것은 지속적인 경제적 불안정을 일소하여, ‘를 잘살게 해주는 것이고, 나와 내 가족의 안전, 그리고 사회의 안정을 위해 강력한 치안을 확보하는 일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노동3권과 같은 기본권의 유린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러한 욕망을 위해 민주주의를 정지시키는 것쯤은 받아들일 수 있다. ....파시즘은 현재의 민주주의적 과두정을 극복하는 대안이 결코 될 수 없다. 수동적 인민을 필요로 한다는 점 이외에도, 이해관계가 지배하는 정치라는 점에서 그 둘은 그다지 다르지 않다.....사람들은 이념없는 삶’,‘생각 없는 삶속으로 황급히 도피하는 것이다...그러한 이해관계의 정치는 민주주의적 과두정과 파시즘을 모두 아우르는 절대적인 정치 원칙으로 남는다. 188-198

 

볕뉘. 메모 겸 흔적을 남긴다. 정치에 대한 감각이 아래로 흐르지 않는다. 스타에 얽매여있거나 정당정치에 매여 있어 옴짝달싹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싱싱한 정치사유의 날 것은 그 선입관에서 벗어나는 데부터 시작할지 모르겠다. 직접 만드는 맛, 하는 맛...그런 것이 멋있게 보이는 것. 맛과 멋은 일상에서 바텀 업하는 것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탑다운이 아니라.... ...인민, 국민, 주권에 대한 뭉음을 던지지만 스타와 영웅을 바라기만 하는 국민들의 시선 속에서는 자랄 수 없다. 인민은 없다라는 사유에서 재구축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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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과 학생들과 나는 소포클레스, 플라톤, 세네카, 디킨스를 읽었다. 문학 작품들과의 연결 고리 속에서 우리는 동정과 자비, 공적 판단에서 감정의 역할, 그리고 나와 다른 타인이 처한 상황을 상상하는 데 필요한 것 등에 토론했다. 또한 다양한 종류의 텍스크가 인간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 몇몇 경우에는 존엄성과 개별성을 부여받은 그 자체 목적으로서의 인간을, 또 다른 경우에는 모호하고 식별불가능한 단위로서의 인간을, 혹은 타인의 목적을 위한 단순한 수단으로서의 인간 등에 대해 논했다. 13

 

그럼에도우리 대부분은 그 소설 속의 이름을 아는 장소들에 대해 나의 집에서 10구역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어떠한지 전혀 아는 바가 없어요라고 주인공 비거 토마스에게 말하는 극 중 인물 메리 돌턴과 같은 입장이었다. 라이트의 소설 속에서 비거 코마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서서 그는 자신이 살인을 한 이유에 대해 결코 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죽였는지 말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그 이유를 해명하려면 자신의 삶 전부를 설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14

 

애덤 스미스가 쓴 [도덕 감정론]은 이 책의 기획에 중요한 영감을 주었다. 비록 이러한 감정들이 한계와 위험요소를 가지고 있고, 윤리적 추론에 있어 감정의 역할은 엄밀하게 제한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감정들은 분명-부분적일지라도-사회정의에 대한 강렬한 비전을 내포하고 있으며, 정의로운 행동에 대한 강력한 동기를 제공해준다고 할 수 있다. 17

 

헨리 제임스가 말했듯, 공적인 삶에 있어서 문학적 상상력의 과제는 그 어떠한 것보다 더 나은 기쁨이 없을 때, 최상의 것을 창조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고귀하고, 구현 가능한 경우를 상상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최상의 것이 보편적으로 수용되지 않더라도 그것이 유지되길 희망하고, 추한 것 옆에 아름다운 것이 있듯, 조악함과 둔감함 옆에 있음으로써 이것이 그 자체 목적으로서의 인간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잇기를 바란다. 이런 식으로 상상력을 함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사회정의로 이어지는 필수적인 가교를 잃게 될 것이다. ‘공상을 포기하는 것은 스스로를 포기하는 것이다. 20

 

문예가는 자신의 시대와 영토의 형평을 맞추는 자라는 월트 휘트먼의 말을 해석하면서, 나는 공상과 민주적 평등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제안하고자 한다. 31

 

일반적인 것과 구체적인 것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이 놀이는 독자들에게 말을 건네는 방식으로서 장르의 구조 자체에 내재된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소설은 상대주의적이지 않으면서, 맥락 의존적이고 윤리적인 추론의 한 양식에 대한 패러다임을 구축한다. 이는 우리가 상상력을 통해 진입하는 구체적인 상황과 관련된 인간 번영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을 제시함으로써, 잠재적으로 보편화 가능한 구체적인 처방을 얻을 수 있는 지점이다. , 단일한 문화 내에서 혹은 문화의 경계를 넘어서는 공적 추론의 소중한 형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39

 

만약 우리가 독서를 이러한 방식, 즉 자신만의 몰입된 상상을 더욱 객관적인(그리고 상호적인) 비판적 고찰과 결합하는 식으로 생각한다면, 왜 우리가 그 속에서 민주주의 사회 내의 공적 추론에 아주 적합한 활동을 발견할 수 있는지를 간파하는 것이다.(부스에 따르면, 독서 행위와 읽은 내용에 대한 평가가 윤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그것이 몰입과 비판적 대화 모두를 필요로 하며, 자신만의 경험 및 다른 독자들의 반응과 논쟁 모두를 통해 읽은 내용을 비교해보는 태도 안에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40

 

디킨스는 공상이라는 부드러운 빛을 통해우리가 이성과 조우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지, 스스로를 공상속에 가두거나 곡마단 속에서만 살아야 한다고 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실제로 디킨스는 경제학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총체적인 회의를 갖고 있었다.....경제학은 소설이 상상력을 통해 보여주는 인간에 대한 지식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경제학은 보다 복합적이면서 철학적으로 타당한 토대들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44-45

 

현대의 합리적 선택 이론은 고전주의 이론이 (규범적으로) 합리적인 것의 전형으로 주장해왔던 이타주의적 선택의 유형을 비합리적인 것으로 평가하는 입장이라 할 수 있다. 54

 

토머스 그래드그라인드입니다. 여러분, 현실적인 인간. 사실과 계산의 인간. 둘 더하기 둘은 넷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원칙에 따라 살아가는 인간이며, 넷 이외의 다른 숫자를 생각하도록 설득될 수 없는 인간. 토머스 그래드그라인드입니다, 여러분. 누가 뭐라 하건, 토머스, 토머스 그래드그라인드, 자와 저울, 구구표를 주머니에 항상 가지고 다니면서 인간성의 어떤 쪼가리라도 무게를 달고 치수를 재고 그 결과를 여러분에게 정확히 알려줍니다. 그건 그저 숫자의 문제이고 간단한 산술의 문젭니다. ” 61

 

인간에 대한 자료를 도표 형식에 맞추어 넣었다. 경제적 사유는 인간 존재의 삶을 정해진 해답이 있는 (상대적으로 간단한) 수학 문제로 쉽게 간주한다. 삶의 선택에 있어서 곤혹과 고통,뒤얽힌 사랑, 죽음이라는 기이하고 끔찍한 사실과의 씨름 등 각각의 삶에 스민 신비와 복잡함은 무시하면서 말이다. 발랄한 사실 계산법에 근거한 사유는 마치 이러한 것들을 들여다볼 필요가 없는 듯이, 아니면 마치 운명을 석판 위에서 결정지을 수 있다는 듯이삶의 표면을 따라 부유한다. 66

 

달의 분화구를 얼굴로 생각하는 것, 별에게 대화를 건네는 것, 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등은 경제학의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상상력이 하기 싫어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소설이 말하듯, 거기에는 사실적 증거 너머의 것들에 닿고자 하는의지 속에 담긴 너그러움이 있고, 이 너그러움은 더 큰 삶의 너그러움을 위한 준비이기도 하다. 93

 

로스쿨 수업에서 학생들과 함께 소설의 이 지점에 이르렀을 때, 공상에 대한 나의 분석을 언급하기에 앞서 학생들에게 동요에 대해 물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왜 디킨스는 동요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했을까요?” 나는 교실 두 번째 줄에 앉은 검은 머리의 한 학생에 물어보았다..95

 

오직 움직이는 물리적 대상으로만 신체를 보는 것은 빈곤한 성생활을 낳는다. 바로 이것이 대상화에 대한 페미니즘적 비판의 근본에 놓여 있는 사유이다. 대상화란 성적 파트너를 사물과 같이 바라보는 경향으로 결국 개인의 특수성과 자율성을 고려하지 않도록 만든다. 그렇기에 곳곳에서 공리주의자들이 남근적이면서 군사적인 언어로 묘사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들은 감각적이고, 활동적이며, 음악적인 것들에 대해 무자비한 위협을 가하는 공격적인 무기와 같이 그려지고는 한다. 97

 

오로지 유용함에만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사물을 존재 그 자체로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을 함께 배우는 것이다. 이것은 아이가 다른인간 존재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이는 하나의 형식이 은유적 상상력을 도덕적으로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드는 생명력을 내포하고 있다고 믿는 능력일뿐만 아니라, 공상 속에서 구축한 무언가를 그것 이상의 목적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훌륭하고 즐거운 것으로 여기는 능력과 같다. 그러므로 유희와 재미는 인간 삶에서 단순한 부속물이나 보충물이 아니라, 삶의 핵심 요소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점에서 결정적인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소설 속에서 발견하는 독자의 기쁨은 실제 삶에서 다양한 종류의 도덕적 활동을 위한 준비로서 보다 깊은 도덕적 차원을 갖는다. 101

 

만약 우리가 그것의 유용성 때문에 이를 사용하는 것이라면, 반드시 우리가 제어할 수 있어야지, 이것이 우리를 장악해서는 결코 안 된다. 또한 이 방식의 지지자들은 경제학이 인간의 숙고된 행동에 대한 완벽한 설명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조지 스티글러가 언급했듯, “인간의 모든 신중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행동은 경제학의 원리를 따르기때문이다. 우리는 단순화된 모델이 주로 쉽게 장악하고, 이것이 현실의 전체인 양 보게 만드는 편리함을 늘 경계해야 한다. 이러한 경향에 맞서야 한다. 110

 

효용을 척도로 다루는 입장에 대한 이러한 비판은 발전의 영역을 다루는 일련의 경제학자와 철학자 집단으로 하여금 삶의 질을 측정할 때 부유함이나 효용에 근거하기보다, 인간의 기능과 역량이라는 개념에 기초하여 접근하는 방식을 옹호하게끔 만들었다.(아마르티아 센의 경제학) 117

 

독자 여러분! 여러분과 나의 인생에서 유사한 일이 벌어질지 안 벌어질지는 여러분과 나에게 달렸습니다. 그런 일이 우리 인생에서 일어나도록 합시다! 그러면 우리는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난롯가에 앉아서 재가 하얗게 식어가는 광경을 지켜볼 것입니다.”.....소설이 주장하는 바는 시민의식의 이론과 실천 모두에 있어 문학적 상상력이 필수적인 부분이라는 것이다. 119

 

시적 정의 1,2장에서

 

볕뉘.

 

1.

  마사 너스바움, 챙겨볼 책들이 늘었네요. 미루어두다가 지금에서야 봅니다. 역시 대단하네요. 아마르티아 센, 도덕감정론과 섞어 읽으시면 좋을 듯요.

 

 

2. 타인의 삶을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문학적 상상력이라고 합니다. 삶을 나누는 방법으로서 소설 읽기. 어쩌면 우리는 우리 바로 곁의 삶을 추측만하지 느낄 수 없어요.  지금 우리 삶을 잘 드러내는 산문, 소설을 함께 읽고 나눈다는 것이 더욱 중요하겠네요. 읽는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같이에 방점이 있겠죠. 다른 시선을 체감하는 것까지가 한묶음일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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