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 ] 이해: 우리는 그 어떤 것이든 간에 그것이 갖고 있는 전망들 가운데 일부를 통해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망 전체는 유한한 인식을 넘어서는 무한성을 지니고 있다. 94 이해란 결코 정신의 완결된 정태적 상태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언제나 불완전하고 부분적인 통찰의 과정이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95 존재의 본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든 세부적인 오류들 너머에 있으면서, 그 세대에 있어 식별될 수 있는 삶의 향상의 주요 원천이 되고 있는 그런 깊이의 본질적인 특성을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또 하나의 조건, 즉 ‘향상이란 것이 있다면‘이라는 조건이 첨가되어야 한다. 97 근대인들은 배경 속에 숨어 있으면서 우리의 보잘것없는 안정된 전통을 압도할 날을 기다리고 있는 거대한 선택지들에 대한 느낌을 상실해 버렸다. 문명이 살아남을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도 이해의 확대가 필요하다. 98 지성적인 것에 대한 우리의 경험에 늘 붙어 다니기도 하는 통찰의 느낌은 이해의 성장과 관계가 있다. 103

[ ] 이해: 언어는 직관을 따라가지 못한다. 철학의 난제는 자명한 것을 표현하는 일이다.우리의 이해는 낱말이 지니고 있는 일상적인 어법의 한계를 넘어선다. 철학은 시와 유사한 것이다. 철학은 시인의 생생한 암시에다 이에 어울리는 관용적인 어구를 찾아내어 부여하려는 노력이다.....이해는 자명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직관은 그 명석성에 있어 한계가 있다. 게다가 우리의 직관은 그 명석성에 있어 한계가 있다. 게다가 우리의 직관은 명멸하는 성격의 것이다.....명석성은 우리가 어렴풋이 인지한 주변 세계에 대한 불완전한 통찰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106, 107 질서가 혼란보다 더 근본적인 것이라는 주장에는 어떠한 근거도 없다. 우리의 과제는 이 양자를 공히 용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우리의 통찰의 확대를 위한 통로를 시사해 줄 수 있는 그런 일반적인 개념을 창출해내는 데 있다. 109 철학이 딜레마의 어느 한쪽을 간단하게 처리해 버린다면 이는 그 자신의 과제를 회피하는 것이 된다. 우리는 결코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통찰력을 키워나갈 수는 있다. 110 우리는 현재 속에 있다. 현재는 항상 변하고 있다. 그것은 과거로부터 파생된다. 그리고 그것은 미래를 조건 짓고 있으며, 미래로 넘어가고 있다. 이것이 과정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주에 들어 있는 냉혹한 하나의 사실이다. 112 과정에 의해 우주는 유한자들의 여러 한계로부터 빠져나온다. 과정에서 무한자는 유한자 속에 내재하게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모든 한계가 타파되고 모든 모순이 해소된다. 116

[ ] 이해: 우리의 인식은, 15차원의 공간적 관계를 포함하고 있는 사건들과의 본질적인 연관을 우리가 파악하지 못한다면 왜곡될지도 모른다. 자연의 3차원을 그 유일의 중요한 차원적 측면으로 보는 독단적인 가정이 과거에는 유용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위험스런 것이 되어 가고 있다. 미래에 가서는 그것이 지식의 진보에 치명적인 장애가 될지도 모른다. 120 설정되어 있는 기존의 패턴 속으로 세부사실들을 끌어모으는 데에서 부분적으로 진보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어리석은 생각을 경외하는 독단적인 정신에서 이루어지는 안정된 진보이다. 그러나 역사는 개념적인 경험 속으로 새로운 패턴을 도입하는 또 다른 유형의 진보를 보여준다. 121 에피쿠로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는 하나같이 그들이 경험하는 다양한 요소들은, 정확히 그들이 이들을 이해하는 형식 그대로의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들은 추상에 따르는 위험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123 사고의 역사는 활기찬 개시와 무기력한 종결의 비극적인 혼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완결된 지식의 확실성에서는 통찰의 느낌이 사라져 버린다. 이때의 독단이야말로 학문의 적이다. 124 하나의 어떤 존재가 낳을 수 있는 특정 효과는, 그 밖의 어떤 존재에 의해서도 산출될 수 없다는 것이다. 125 부조화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이들은 각기 논리적인 유형과 미적인 유형이라 명명될 수 있겠다. 126 미적인 경험은 자명성을 향유하는 또다른 한 가지 양태이다. 127 논리학과 미학의 차이는 관게하는 추상의 정도에 있다. 논리학은 고도의 추상에 주목하고, 미학은 이해력의 유한성에 따르는 불가피한 여건들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구체적인 것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다. 따라서 논리학과 미학은 유한한 정신이 무한을 부분적으로 통찰하면서 부딪치게 되는 딜레마의 양극단에 있는 것이다.28 노리적 이해의 특징적인 태도는 세부사실에서 출발하여, 성취된 구성물로 나아간다는 데 있다. 논리적인 향유는 다자로부터 일자로 이행한다. 128 미적인 향유는 이와 정반대 방향으로 달린다. 우리는 건축물의 아름다움이나 그림이 주는 즐거움 또는 문장의 정교한 조화에 압도되는 수가 있다. 이때는 전체가 세부사실들에 선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서 우리는 식별의 단계로 나아간다. 순식간에 세부사실들이 총체적인 효과의 근거로서 우리에게 덮쳐 온다. 129 미적 경험은 보다 구체적이기 때문에 논리적인 경험보다 더 광범한 논제가 된다...논리학과 미학은 모두 폐쇄된 사실에 관심을 집중시킨다. 우리의 삶은 개시의 경험 속에서 이루어진다. 개시에 대한 이런 느낌을 잃어버릴 때, 우리는 영혼이라 불리는 기능 양태와 결별하게 된다. 130 우리는 사고할 때 살아 있다. 131


4

[ ] 전망(활동): 우리의 위험은, 어떤 한 군의 사건들 속에 연루되어 있는 우주에 대한 하나의 어떤 전망에 타당한 관념들을 취하고는, 전망에 있어 그와 일치하지 않는 다른 사건들에다 무비판적으로 적용하는 데에 있다. 140 개개인의 사사로운 생각을 용이하게 보존하기 위한 매체로서 문자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이 시기의 일이다. 그 이전까지 문자는 왕의 명령이나 정복자의 자기 과시를 기록하는 데 사용되는 것이 고작이었다. 138 존재의 유형에 관한 가장 단순한 학설은 어떤 극단적인 유형이 그 밖의 다른 것들로부터 독립하여 존재한다는 것이다....이러한 학설을 받아들일 때, 이행의 요소를 그처럼 폐기처분하게 되는 결과로 말미암아, 우리는 영원한 형상들의 영역만을 주시하게 된다. 이 상상의 영역에는 추이나 증감이 존재하지 않는다. 142 완전성은 인간의 상상에 늘 붙어 다니는 관념이다. 그것은 무시될 수 없다. 그러나 형상들의 영역에다 단순하게 완전성을 부과하는 것은 정당성이 전혀 없는 짓거리이다. 진흙덩이의 형상이나 악의 형상 또는 그 밖의 다른 불완전한 것들의 형상들은 어쩌란 말인가? 형상들의 집에는 많은 방이 있는 것이다.....다섯이나 여섯과 같은 수적인 관념들은 이들을 예증할 수 있는 사물들의 개념과 관련되어 있다...형상들은 본질적으로 그들 밖에 있는 것들과 관계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넘어서는 것들과 어떠한 관계도 지니고 있지 않은 절대적 실재성을 형상들에다 부여하는 것은 환상적인 조치에 불과하다. 형상들의 영역은 가능태의 영역이며, 가능태라는 바로 이 관념은 외재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그것은 생존과 운동에 관련되어 있다....그것은 욕구와 관련되어 있다. 그것은, 형상을 실현하고 있으면서도 형상을 훨씬 넘어서고 있는 현실태의 전개와 관련되어 있다. 그것은 과거, 현재, 미래와 관련되어 있다...실재한다는 것은 자존한다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실재의 양태들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철학의 과제는 다양한 존재 유형들 간의 상호관련성을 밝히는 데 있다. 144-145

[ ] 전망: 경험의 영역에는 외부로부터의 파생에 대한 감각, 내부에서의 직접적 향유에 대한 감각, 그리고 외부로의 전달에 대한 감각이 있다. 이와 같은 향유의 복잡한 감각은 과거, 현재, 미래를 포함하고 있다. 149 인과적 효과성은 어떤 사물에 대한 느낌이 과거로부터의 계승으로 고스란히 정착되는 지각양태를 의미하며...단순한 느낌으로서의 물리적 지각 혹은 비감각적 지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현시적 직접성은 인과적 효과성으로부터 파생된, 명석 판명석을 동반하는 지각 양태를 의미하는데, 근대 인식론 철학에서 주목해온 경험 양태이다. 하지만 화이트헤드의 감각지각, 즉 현시적 직접성의 지각에 의해 경험된 세계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 그 자체가 아니라 인과적 효과성으로부터 이끌어낸 파생적 추상물로서의 세계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149 감각지각은 동물의 경험에 있어 추상화의 극치이다. 이러한 추상화는 선택적인 강조를 진척시켜가는 가운데 이로부터 발생한다. 그것은 인간의 삶에 세 가지 것을 선사한다. 즉, 정확성에의 접근, 외재적인 활동들의 질적인 분화에 대한 감각, 그리고 본질적인 연관에 대한 무시가 그것이다. 153 시각이나 청각과 같은 고등한 감각지각의 자료에만 주목하는 데에서 지난 200여 년 동안의 철학적 발전은 손상을 입어 왔다. 우리는 무엇을 인식하는가라는 물음이 우리는 무엇을 인식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으로 변형되어 버렸다. 154

[ ] 전망: 현실화의 모든 형식들은 유한의 어떤 측면들을 표현한다. 그러한 형식의 본성은 저것이 아닌 이것이라는 데 있다. 다시 말해 그것은 배제를 표현한다. 그리고 배제는 유한을 의미한다. 161 순수한 명석성과 질서로부터의 초월이야말로 예견하지 못한 상황을 처리하는 데 있어, 그리고 진보와 자극을 가져오는 데에 있어 불가결한 요소인 것이다. 생명은 단순한 순응의 굴레에 얽매여 있을 때 퇴락한다. 모호하고 무질서한 경험의 요소를 구체화시키는 능력은 새로움으로의 전진에 본질적인 것이다. 162 서구의 철학사상사에서 최고의 실재란 변화를 떠나 있는 것이라는 전제와 결부되어 있었다. 불변하는 질서는 궁극적인 완전성으로 간주되었고, 그 결과 역사적 우주는 그 지위에 있어 단순한 현상이라는 관념을 낳았던 부분적인 실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로 말미암아 우리의 경험이 지닌 가장 명백한 특성이 형이상학적 체게를 구축하는 데에 있어서는 부차적인 기능의 것으로 경시되어 왔다. 우리는 소란스런 세계 속에 살고 있다. 전통 철학적 사상에 의해 세례를 받은 철학과 종교는 이러한 소란을 축출해 버린다. 소란의 축출은 갈 데까지 간 쇠락의 산물이다. 163 우리는 철학을 향해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즉, 철학은 여러 유형의 질서의 출현과 유형에서 유형으로 이행 및 우리의 경험 속에 자명하게 드러나는 것으로서의 우주 가운데 들어 있는 선과 악의 혼돈을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수학은 그 당시 창조나 변천의 느낌과는 전혀 무관한 관념들에만 관여하고 있었다. 그리스의 수학은 오직 수와 기하학적 형상들만을 그 구성요소로 하고 있었다....그리스인들이 그 학문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변화라는 관념은 목전에서 사라졌다....비나 비율..이 형상들은 제작기 그 각각에 고유한 완전성을 구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것이 수학의 기본적인 개념들에 대한 그리스 사상의 반응이었다. 인간의 정신은 이와 같이 영원성을 일견하게 되자 이에 현혹되고 말았다. 이런 발견의 결과로 그리스 철학은 궁극적인 실재를, 무시간적으로 관게 맺고 있는 정태적인 존재들로 개념화시켜 이해하였다. 165 플라톤과 흄은 체계가 합리적인 사고 본질적인 요소가 된다는 점을 예증해주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폐쇄된 체계란 생동하는 이해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이라는 점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그들의 생각을 설명하는 가운데 모든 체계를 초월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우리의 근원적인 통찰에는 명석성과 모호성이 뒤섞여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168

[ ] 전망: 우리는 어떻게 직접적으로 현존하고 있는 것들이 제각기 그 자신의 본질적인 요소로서, 선행하는 자신의 과거와 후속하는 미래를 필요로 하고 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그러므로 직접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 속에는 세 가지 요소, 즉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들어 있다. 170 구체적으로 실현된 역사적 사실의 특성 자체는 그것이 배제했던 가능태들과 다양한 유형의 관련을 맺고 있다. 현재의 사실 속에는 부분적으로 재생되고 부분적으로 배제되어 버린 과거의 다양한 특성들이 들어 있으며, 부분적으로 공유되고 부분적으로 배제되는, 현재 속에 공존하고 있는 여러 특성들이 들어 있다. 또한 그 속에는 부분적으로 예비되고 부분적으로 배제되는, 미래의 여러 가능성들이 있다. 171

[ ] 전망: 우리의 경험을 특징짓고 있는 네 가지 주요 양태; 미적 경험에는 세 가지의 주요 측면이 있는데 천재에 대한 감각, 개시의 감각, 좌절의 감각이 그것이다. 우리는 또한 사태의 세 가지 측면을 확보하게 되는데, 통일성에 대한 경험, 다수성에 대한 경험, 이행에 대한 경험이 그것이다. 우리는 분할의 세 가지 기본적인 근거, 즉 명석성과 모호성, 질서와 무질서, 선과 악을 식별한다. 마지막으로 창조적 과정 속에는 두 가지 궁극적인 존재 유형이 함축되어 있다. 하나는 잠재적인 욕구 속에 들어 있을 수도 있고 실현된 사실 속에 들어 있을 수도 있는 이중적 존재성을 지닌 영원한 형식들이고, 다른 하나는 현재 사실 속에 들어 있는 과거의 사실로서 존재할 수도 있고 직접적인 현재 사실로서 존재할 수 있는 이중적 존재방식을 지신 실현된 사실이다. 또한 현재의 직접태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를 향한 욕구를 간직하고 있다. 사상가가 이들 네 가지 경험의 양태들을 취급하는 방식은 철학의 형태를 결정짓는 동시에 실천적인 삶에 미치는 사고의 영향력을 결정짓는다. 172


볕뉘

경험의 방울이라는 표현은 윌리엄제임스의 표현이다. 좌표상의 고정점으로 보는 기존 철학의 관행은 모든 것을 멈추어 서있는 것으로 보려한다. 그래서 그 관점은 관찰자의 시선이자 시간의 사유를 발견할 수 없다. 화이트헤드는 기존철학이 시간을 넣지 않았고, 뒷장에 이어지는 생명과 운동마저 발라낸 건조한 철학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빌려낸 시간이란 생명을 불어넣는 표현이 경험만이 아니라 경험의 방울이다. 아픔이기도 해서 경험의 눈물이라고 쓸까도 싶어진다. 역동하는 상태로 모든 것을 보고 사유하는 것. 파도의 흐름을 타고 유유히 향유해보는 것. 사유의 흐름을 닫지 않고 열어두는 것. 말미 그는 이 사고의 양태의 출발점으로서 경험을 총괄하여 분류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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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의 양태: 창조적 충동 - 중요성, 표현, 이해 / 활동 - 전망, 과정의 형식, 문명화된 우주/ 자연과 생명 - 생명 없는 자연, 살아있는 자연/ 철학의 목적

1.

[ ] 중요성: 철학은 결코 체계화에서 출발해서는 안 된다. 철학의 일차적인 단계는 수집의 단계라 할 수 있다. 15 윌리엄 제임스는 우리가 지금 맞붙어 싸우고 있는 위대한 진리를 직관적으로 발견했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수집하였다. 그의 지적인 삶은 체게를 위해 경험을 경시하는 데에 대한 하나의 항거였다. 17 문명화된 존재란 이해력을 통해 세계를 개관하는 존재이다. 18 단순한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미 거기에는 그것을 단순한 사실로 평가하는 가치의식이 개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파악은 주체적 형식을 본질적 용소로 지닌다. 19 정말 멋있다라는 퇴락한 구절은 그 장면의 전체적인 생기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그러나 언어로 표현하는 데에는 참으로 어려움이 있다. 일반적으로 낱말들은 유용한 개별성들을 가리킨다. 21 위대한 문학이 갖고 있는 하나의 기능은 말로 표현될 수 없는 것에 대한 생생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있다. 22 우리는 체계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체계를 개방해 두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체계의 한계에 민감해야 한다. 23 현대 서양문명에 깔려 있는 일반 관념들은 주로 고대 그리스인과 셈족 및 이집트인들이 물려준 근본적인 관념들의 표현으로부터 파생되고 있다....그리스인들로부터 우리가 계승한 것은 주로 미적이고 논리적인 것들이다. 셈족에게서 계승한 것은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것들이다. 그리고 이집트인들로부터 계승한 것은 실천적인 것들이다. 그리스인들은 향유를 물려주었고, 셈족은 숭배를 물려주었으며, 이집트인들은 실천적인 관찰을 물려주었다....고대 세계의 정신성으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서 중요성과 사태를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현대 철학의 일차적인 과제이다. 24

[ ] 중요성: 사태의 다수성 때문에 선택은 저것보다는 이것이라는 관념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지적인 자유는 선택의 결과인 것이며, 선택은 그런 자유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상대적인 중요성의 관념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중요성, 선택, 지적인 자유는 하나로 결부되어 있으며, 이들 모두가 사태와 어떤 방식으로든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25 단순한 사태라는 관념은 우리 자신과 모든 유형의 사물들을 끌어안고 있는 자연의 끊임없는 움직임에 대한 인지이다...중요성의 관념도 공적인 표현으로 이어지는 강렬한 개인적 느낌을 수반하고 있는 관심이라는 구절로 불충분하게 정의될 수 있다. 27 진리에 대한 열정은 관심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지속되는 관찰은 관념을 전제로 한다....중요성(또는 관심)에 대한 감각은 동물적 경험의 존재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이 지배력을 상실하게 될 때, 경험은 사소한 것으로 전락하여 무를 향해 가게 된다. 29

[ ] 중요성: 단일한 사실을 고찰할 때면 언제나, 그 사실의 존재를 위해 필요불가결한 환경적인 통합이라는 전제가 억눌려 있는 것이다. 그렇게 통합된 이 환경은 그 사실과 전망적 관계 속에 있는 우주 전체이다...느낌은 우주를 사실과 전망적 관게에 있는 것으로 환원시켜 버리는 작인이다...전망은 느낌의 산물이다. 그리고 느낌은 관심의 감각에 의해 다양하게 분화되어 등급화한다....우리는 그 총체성에 있어서는 정의할 수 없는 환경을 전제로 하고 있다. 31 중요성이란 느껴진 사물들의 우주에다 하나의 전망을 부여하는 느낌의 한 측면이라는 것이다. 34 구체적인 진리라는 것은 관심의 변종이다. 추상된 것은 전망 속에 있는 우주다....중요성은 그 무수한 종 개념들 가운데 몇몇이 지니고 있는 압도적인 탁월성에 가려 그 빛을 잃어버렸던 유적 관념이다. ....유개념은 종의 모든 유한한 군을 넘어서서 뻗쳐 있다. 도덕성과 관련이 없는 우주에 대한 전망이 있고, 논리와 관련이 없는 우주에 대한 전망이 있으며, 종교와 관련이 없는 우주에 대한 전망이 있고, 예술과 관련이 없는 우주에 대한 전망이 있다. 35 철학에 접근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학식을 떨쳐버려야 한다. 우리는 일상의 문명화된 사회적 관계로부터 도출되는 단순한 관념에 호소해야 한다. 36

[ ] 중요성: 특정 도덕률이 절대적인 영속성을 지닌다고 하는 관념은 철학을 극도로 손상시켜 왔던 근원적인 환상이다. 예를 들어 일 년에 수백 아니 수천 개의 알을 낳는 물고기와 같은 존재에다 가족 관계와 관련된 도덕적 관념을 적용한다고 해보라. 38 한 국가 내에서 통용되는 행위의 적법성이라는 관념도 완전하게 성문화될 수 없는 것이다. 39 우리가 우리의 관찰이 의존하고 있는 전제를 넘어서서 관찰하게 될 때 선명한 분할은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모든 분류는 통용되고 있는 중요성의 특성에 의존한다. 43 과다한 상식은 그에 상응하는 불이익을 수반한다. 환상적인 일반화의 산물들을 소지하고 있었던 그리스인들은 항상 어린애와 같았다. 이 점은 현대문명을 위해서는 지극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오류를 놓고 두려워할 때 진보는 종말을 맞게 된다. 그렇기에 진리를 사랑하는 일은 오류를 보호하는 일인 것이다. 44 사태에 주의를 집중하는 것은 무미건조한 것에 지상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50

2.

[ ] 표현: 중요성은 무한자가 유한자에 내재한다는 사실로부터 파생되는 것이다. 그러나 표현은 유한한 계기에 기초하고 있다. 그것은 그 주변 환경에다 자신을 각인시키는 유한자의 활동이다. 따라서 표현은 유한자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55 선택은 표현에 속한다....표현에는 평균적인 것이 하나도 없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개체적인 것이다. 56 인간의 신체는 표현의 일차적인 장이 되는, 세계의 한 영역이라는 것이다. 57 철학은 전문적인 탐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철학의 과제는 탐구할 영역을 지적해주는 데 있다. 어떤 영역들은 수 세기 동안 개척되지 않은 상태로 있다. 효과적인 출발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들에 대해서는 관심이 집중된 적이 한 번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58 식물은 민주적 체제를 택하고 있는 데 반해 동물에서는 하나 또는 몇몇의 경험 중추가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62 심장은 본질적인 것이다. 따라서 가장 고동한 동물을 놓고 보자면, 그 신체는 절대 군주에 의해 통치되고 있는 봉건사회와 한층 더 유사한 것이다. 63 우리의 시선이 인간에 이르면, 향유하고 표현하는 충추적 활동은 중요성에 있어서 자연의 다양한 기능들을 역전시켜놓은 모습을 띠고 나타난다. 실현되어 있지 않은 가능태를 개념적으로 마음속에 품는다는 것이 인간의 정신성에 있어서는 주요 요소가 된다....개념적 느낌은 있을 수 있는 것과 있었을 수도 있는 것에 대한 감각으로 특징지어질 수 있다. 그것은 선택지를 마음속에 품는 것이다. 그것은 최고의 단계에서 이상을 마음속에 품는 것이 된다. 65 역사는 인류만이 지니고 있는 느낌들의 표현에 대한 기록이다. 66인간과 동물 사이의 차이는 어떤 의미에서 정도의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정도의 폭이 온갖 차이를 빚어내고 있다. 인간은 루비콘 강을 이미 건너 버린 것이다. 66 도덕은 비교적 고등한 동물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종교는 그렇지 않다. 도덕은 세부적인 계기를 강조한다. 반면 종교는 우주에 내재해 있는 이상의 통일성을 강조한다....인간의 신체가 그 여러 활동에서 한 인격체의 정서적이고 합목적적인 내적 느낌들을 표현하게 되는 까닭은 그것이 개체적으로 표현하고 수용한다는 데 있다. 68

[ ] 표현: 인식론의 제일 원리는 우리와 자연과의 관계가 갖는 변화 가능한 일시적인 측면들의 의식적인 관찰의 일차적 대상이 된다는 것이어야 한다. 70 인간의 영혼인 중추적 유기체는 인간 존재에 있어 사소한 것들에 주로 관심을 두고 있다. 그것은 신체가 야채를 소화시키는 데에 주목하기보다는 잎새에 떨어지는 햇살을 부여잡는다. 그것은 시정에 양분을 공급한다. 인간은 어리석은 기획과 불합리한 희망을 간직하고 있는 우주의 유아이다...27 철학의 함정은 자연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는 필연적 요소들을 무시하고 오로지 그처럼 다루기 쉬운 관계들에만 주목하는 데에 있다. ..우리의 경험 전체가 우리와 우리 이외의 모든 사물들과의 관계로, 그리고 장차 존재하게 될 사물들을 구성할 새로운 관계의 형성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72 현재는 과거를 받아들여 미래를 구축한다. 72

[ ] 표현: 언어는 인간의 재능이 이룩한 최고의 업적이다. 74 소리의 장점은 우리가 소리를 내는 동안에도 사지가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발성에서는 폐와 목이 작동한다. 그래서 언설에 있어 피상적이고 다루기 쉬운 표현이 발산되는 동안 유기적 존재의 모호한 내면에 대한 감각이 또한 자극받게 된다. 75 실재에 대한 감각은 결코 시각이나 청각의 단순한 감각자료들 속에 온전히 보존될 수가 없는 것이다. 존재의 관계성은 이해의 본질에 속한다. 75 언어는 두 가지 기능을 갖고 있다. 그것은 타자와의 교제가 되기도 하고 자아와의 교제가 되기도 한다. 이 후자의 기능은 너무도 자주 간과되어 왔다...언어는 어떤 한 사람의 과거에서 현재로의 표현이다. 75 우리의 의식 속에는 이미 언어적으로 표현되어 있지 않은 관념들이 들어 있다. 79 인간의 문명은 언어의 산물이며, 언어는 전진하는 문명의 산물이다. 사고의 자유는 언어에 힘입어 가능해진다. 언어에 의해 우리는 직접적인 풍조와 직접적인 환경의 전면적인 굴레로부터 벗어나게 된다.....사고는 가공할 양태의 흥분이다. 연못에 던져진 돌멩이처럼 그것은 우리 존재의 표면 전체를 동요케 한다....잔물결은 사고를 방출시킨다. 그리고 사고는 잔물결을 증폭시키고 왜곡시킨다. 사고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고와 사고의 출현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사고와 잔물결과의 관계를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81

[ ] 표현: 인간의 경험에 들어 있는 한 가지 요소로서의 문자는 증기기관에 비유될 수 있다. 그것은 중요하고 근대적이며 인위적인 것이다. 음성 언어는 인간의 본성과 역사를 같이 한다....음성 언어는 인간성의 발흥에 있어 하나의 주도적인 창조적 요소였다. 음성 언어는 문자 언어가 갖고 있는 것과 같은 인위성을 조금도 지니고 있지 않은 인간의 본성 그 자체이다.....문자와 음성언어, 이 양자를 결부시켜 말하고 있는지 분간하기 어렵게 된 현실이지만, 양자의 이와 같은 최종적인 혼합은 아주 근대적인 것이다. 83 음성언어는 감정 표현, 신호 표시, 그리고 이 양자의 혼합이라는 특성을 지니게 된다. 그러나 웬일인지 진보된 문명의 지성화된 언어에서는 이런 특성들이 배후로 사라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지배적인 지위를 상실해 버린 무엇인가를 시사한다. 우리가 언어의 기능에 있어서의 이와 같은 미묘한 변화에 주목하지 않는다면 지난 3천여 년간에 걸쳐 전개되어 온 문명세계 내의 사고 양태들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84 우리는 언어를, 인식의 기초가 되는 동일성을 전달하고 있는 것으로, 그리고 존재의 본질인 환경과의 특수한 연관을 전제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책은 소리 내어 읽혀질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문자 언어와 음성 언어가 혼합되고 있는 사례를 발견하게 된다.소리 내어 읽는 것은 하나의 기술이다. 그래서 읽는 사람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에 의해 추상적인 문자 속으로 그 직접적인 환경이 들어가게 되기 때문이다. 86 인간의 영혼은 언어가 인간에게 준 선물이라고 말하는 것도 지나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여섯째 날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는 그들에게 언어를 주었고, 그 결과 그들은 영혼이 되었다라고. 89

볕뉘

1. 새벽에 [전망]에 대해 읽는다. 그 다음장은 [과정의 형식]이라는 중요대목에 이르른 듯싶다. 밖은 가을비가 짙다. 가을 장마처럼 빗소리는 하염없다.

2. 이 책은 화이트헤드의 강의내용이다. 해석보다 직접 교류할 수 있을 듯싶어 완독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점으로 보는 사고의 한계들....움직이는 선 속의 점이 아니라 좌표상의 고정점으로 보는 서양철학의 한계들을 살펴본다. 느낌이란 것이 과거와 미래를 연결시키는 현재라는 점. 선악 질서와 무질서, 명석성과 모호성이라는 개념 속에 가두는 습관을 가져버린 인류의 아둔함을 그 전제에서부터 허물고자 한다. 그 대표적인 개념들 가운데 중요성과 표현이라는 개념을 먼저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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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

[ ] 나는 친구들을 찾고 있어. [길들인다]는 게 무슨 뜻이야? 그건 모두들 너무나 잊고 있는 것이지. 여우가 말했다.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관계를 맺는다고? 물론이지. 여우가 말했다. 너는 아직 내게 세상에 흔한 여러 아이들과 전혀 다를 게 없는 한 아이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나는 네가 필요없어. 너도 역시 내가 필요 없지. 나도 세상에 흔한 여러 여우들과 전혀 다를 게 없는 한 여우에 지나지 않을 거야. 그러나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 필요하게 되지. 너는 나한테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이 될 거야. 나는 너한테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이 될 거고.. ... 84, 85

[ ] 제발 나를 길들여 줘! 여우가 말했다. 그러고는 싶은데 어린 왕자가 대답했다. 시간이 없어. 나는 친구들을 찾아야 하고 알아야 할 것도 많고. 자기가 길들인 것밖에는 알 수 없는 거야. 여우가 말했다. 사람들은 이제 어느 것도 알 시간이 없어. 그들은 미리 만들어진 것을 모두 상점에서 사지. 그러나 친구를 파는 상인은 없어. 그래서 사람들은 친구가 없지. 네가 친구를 갖고 싶다면, 나를 길들여 줘! 어떻게 해야 하는데? 어린 왕자가 말했다. [아주 참을성이 있어야 해] 여우가 대답했다. 처음에는 나한테서 조금 떨어져서 바로 그렇게 풀밭에 앉아 있어. 난 곁눈질로 너를 볼텐데, 너는 말을 하지 마. 말은 오해의 근원이야. 그러나 하루하루 조금씩 가까이 앉아도 돼....

[ ] 같은 시간에 왔으면 더 좋았을걸. 여우가 말했다. 가령 오후 4시에 네가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갈수록 난 더 행복해질 거야. 4시가 되면, 벌써, 나는 안달이 나서 안절부절못하게 될 거야. 난 행복의 대가가 무엇인지 알게 될 거야! 그러나 네가 아무 때나 온다면, 몇 시에 마음을 준비해야 할지 알 수 없을거야..... 의례가 필요해. 의례가 뭐야?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것도 모두들 너무 잊고 있는 것이지. 여우가 말했다. 그건 어떤 날을 다른 날과 다르게, 어떤 시간을 다른 시간과 다르게 만드는 거야. 이를테면 사냥꾼들에게도 의례가 있지 . 그들은 목요일이면 마을 처녀들하고 춤을 춘단다. 그래서 목요일은 경이로운 날이지! 나는 포도밭까지 산책을 나가지. 만일에 사냥꾼들이 아무 때나 춤을 춘다면 모든 날이 다 그게 그거고, 내게는 휴일이 없을 거야. 86, 87

[ ]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린 왕자가 말했다. 어딘가 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야....집이나 별이나 사막이나 그걸 아름답게 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야! 아저씨가 내 여우하고 같은 생각이어서 기뻐. 그가 말했다.....부서지기 쉬운 보물을 안고 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지구 위에 그보다 더 부서지기 쉬운 것은 없으리라는 느낌마저 들었다. 나는 달빛 아래서 그 창백한 이마, 그 감긴 눈, 바람에 흩날리는 그 머리칼을 바라보며 혼자 생각했다. [내가 여기 보고 있는 것은 껍질에 지나지 않아.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잠든 어린 왕자가 나를 이렇듯 감동하게 만드는 것은, 한 송이 꽃에 바치는 그의 성실한 마음 때문이다....그의 가슴속에서 등불처럼 밝게 타오르는 한 송이 장미꽃의 영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가 더욱더 부서지기 쉽다는 걸 알아차렸다. 등불들을 잘 지켜야 한다. 한 줄기 바람에도 꺼질지 모르는.......그리고 나는 이렇게 걸어가 동이 틀 무렵 우물을 발견했다. 97,98

볕뉘

저녁밤 빗소리에 얕은 술을 했는데 취기에 휘청거렸다. 매운 고추를 먹어서인지 연신 눈물이 나기도 했고 빗길을 오는 길 불빛이 휘황해지기도 했다. 새벽에 눈이 떠져 밀린 책들을 책상에 옮기다가 그만 보게 되었다. 책 꼬투리를 접었다. 그리고 쓴다. 세상은 성경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 아름다운 동화들이 성경이 되었으면 싶다는 말이 밀려왔다. 시간을 자라게 하고, 서로를 피우는 광경이 미학적이기도 하고 윤리적이기도 하다. 그래 그래 그 같이 밑줄이 처진 그 구절을 읽어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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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의 위상학

[ ] 화이트헤드의 형이상학 전체는 주체와 객체의 분리를 거부한다. 주체와 객체라는 근본적인 전제들은 철학적 전통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연원을 두고 있다. 그는 이 전개를 자연의 이분화 bifucation of nature라고 말한다. 20

[ ] 관계성:근본적 관계들 - 연장적 결합의 기능 - [자연 인식의 원리들에 관한 탐구]에서 그의 기획을 소개한다. 이 탐구과정에서 상세하게 전개되는 근본적인 가정은, 모든 물리학, 생물학에서 드러나야만 하는 자연의 궁극적 사실들이 그것들의 시공간적 관계들에 의해서 결합된 사건들이며, 이 관계에서 사건들은 자신들의 부분들로 존재하는 다른 사건들을 포함할 수 있는 (혹은 연장할 수 있는) 사건들의 특성으로 주로 환원될 수 있다는 것이다. 136 그는 우리에게 시공간 관계의 어떤 일정한 형식으로부터 일정성과 순서를 찾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우리는 시공간보다 더 근본적인 특성을 표현하는 사건들 사이에서 관계성 혹은 결합성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는 우리에게 보다 근본적인 특성이 무엇인가를 말한다. 그것은 부분/전체의 관계, 너머-연장하는 것 extending over, 포접하는 것 containing이다. 실로 시공간의 복잡한 본질은 사건들의 근본적인 상호 결합성에서 나오며, 오직 이 방식에서만 그것은 도출된다. 137

[ ] 공간의 역학: 은 실질적으로 화이트헤드가 이 직관으로부터 제공한 여건에서 나온 논리적 연역이다. 그는 시간의 순간 속에서 공간의 점들을 경험한 것이 아니라, 시간의 주기를 통하여 공간의 체적을 경험했다. 전자는 그 이상의 정교화에 도움이 되는 어떤 유효한 정식화를 허용하는 편리한 추상이다. 하지만 여기서 그 추상의 최초의 여건(화이트헤드의 직관에서 발생한 것)이 무엇인가를 말해야 한다는 주의 깊은 단서가 제공되어야 한다. 그러나 과학의 역사, 특히 수학사는 이러한 단서에 대한 망각으로 가득 차 있으며, 심지어 오늘날의 개념화 작업에서도 너무나 명백한 이 출발점이 무시되고 있다. 이 직관에 대한 요점들 중의 하나는 감각의 세계는 변화의 경험 속에 있다는 것이다. 141

[ ] 과정: 한 순간에 있는 철과 같은 것은 없다; 철이라는 것은 한 사건의 성격이다. 145

[ ] 동시성: 우리는 근본적인 관념의 정식화에 있어서 공간과 시간의 추상화를 피해야만 하며, 자연의 궁극적인 사실, 즉 사건들로 되돌아가야만 한다. 161 자연 속에서는 여러 가지 사건들이 다양한 지속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지속들은 중첩 overlap한다. 다양한 시공간 체계가 존재하고 이에 따른 동시성의 상대성이 존재한다. 이것은 한 순간에서 동시성의 상대성이 아니라, 오히려 지속 내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164

[ ] 어떻게 임의의 두 가지, 혹은 그 이상의 시공간이 비교될 수 있거나 관계 맺을 수 있는가?

[ ] 개별적인 시공간들 내에서 여러 순간들과 지속들의 평행, 다른 시공간의 교차 개념, 그리고 수선 perpendicularity의 개념을 사용해서, 화이트헤드는 한 시공간에서의 구간이 임의로 측정되는 장치, 예를 들면, 빛의 신호, 즉 시계를 사용하지 않고 다른 시공간에서의 구간과 합동하는 것으로 판단될 수 있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그의 근본적인 주장은 경험이 다른 시공간들 사이에서 그 안에서 작용하는 합동 관계들 congruence relations이라는 본질적인 의미를 수행한다는 것이다. 167


볕뉘

10년이상 글구성의 윤곽을 잡지 못하면서 천착한 십년 이후에야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저자다. 그는 화이트헤드의 관념은 20세기 혹은 21세기에도 간과될 지 모른다고 한다. 하지만 한 25세기쯤에는 날개를 펼칠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한다. 화이트 헤드는 자신의 작업의 결과를 이렇게 이야기했다. 철학적 논의에서, 진술의 절대성에 관하여 독단적으로 확실시하는 가장 작은 암시조차도 오류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의 강연록이 도착하기전 읽어두었고, 곁들여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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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체적인 경험은 정태적이고 자존적인 것이 아니라 동태적이며 상호 관게를 맺고 있는 것으로 정태적인 ‘점의 사유‘를 통해서는 설명할 수 없다. 10 화이트 헤드는 자신의 이러한 사유의 전환을 ‘사실fact‘ 중심이 아니라, ‘과정 process‘중심의 세계관에 근거한 것이라고 본다. 10 우리는 그를 20세기의 데카르트, 혹은 라이프니츠라고 부르기도 한다. 10 여러 작업을 바탕으로 관계의 철학 혹은 생성의 철학을 구성하고, 자신의 철학에 ‘유기체철학‘ the Philosophy of Organism이란 이름을 붙인다. 11

[ ] 탐색의 동기 가운데 하나는 형이상학에서 실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며, 다른 하나는 사실과 가치를 이분화하고, 철학은 사실에 대한 탐구만을 지향하며, 가치와 같은 문제들은 철학에서 대답할 수 없는 사이비 질문으로 전락시킨, 20세기 분석철학의 입장에 관한 비판적 성찰과 관련이 있다. 12 그에 따르면 뉴턴의 우주론이 나오기까지 서양을 지배해 온 우주론은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였다. 서양인들은 [티마이오스]를 통해서 자신들의 삶과 지식의 모형을 추구해 왔다. 그러나 뉴턴의 우주론이 나온 이후, 궁극적 원인, 목적인이 우주에서 사라지고 다만 종교나 인간의 심성에만 주어진 것으로 보게 되었다. 특히 지식이 우리의 구체적인 삶과 분리되어져,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혹은 우리의 삶의 목적은 무엇이고 우주의 목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매우 어리석은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13 그는 이러한 이분화를 ‘잘못 놓여진 구체성의 오류‘라고 한다. 왜냐하면 자연은 뉴턴이 바라본 것처럼 기계인만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자연 역시 목적인을 함축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형이상학은 근대적 의미의 ‘사실‘과 ‘가치‘를 결합하려는 시도이다. 14 그의 유기체 우주론은 진리의 가치나 선의 가치보다는 ‘미의 가치‘에 근거를 둔 예술적 사유가 가능한지를 탐구한다. 14

21세기의 미적 모험을 향해서

[ ]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에서 기술하는 개념들 - 강도, 짝짓기, 공명, 강요된 운동 - 은 ˝재현의 세계에 속하지 않는다.˝ 405 서구철학의 역사는 실체 혹은 공간 중심의 철학을 전개하였으며, 이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서, 데카르트, 뉴턴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설사 그들이 시간이나 과정에 대해서 언급을 하고 있더라도, 그것은 존재론적으로 열등한 지위를 갖는다. 이와는 달리 서구 철학을 과정의 철학 혹은 시간의 철학으로 사유한 대표적인 인물들이 베르그손, 화이트헤드, 그리고 들뢰즈이다. 407 베르그손은 ‘고체의 논리‘를 부정하고 오직 이질적으로 연속하는 방식으로 창조적 전진을 설명한다...주체의 속성이나 성질보다는 관계를 더 중시하며, 이러한 관계를 통해서 창조적 전진이 가능하다고 밝힌다. 408 그러나 들뢰즈아 화이트헤드는 베르그손이 거부하는 공간 혹은 고체에 해당하는 ‘양자 quantum‘를 받아들인다. 그들은 흐름을 일정하게 품고 있는 양자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다시 말해서 ‘모든 사물은 흐른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격언을 수용하면서도 ‘에너지의 흐름은 양자 조건‘이라는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도 받아들이는 것이다. 409 베르그손과 달리 현대 과학과 철학을 대립적인 구도로 놓는 것이 아니라, 과학을 포괄하는 형이상학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들뢰즈와 화이트헤드의 의도이다. 410

[ ] 가능태와 현실태: 존재한다는 것의 핵심적 의미는 ‘작인에 있어서의 요인이라는 것‘, 즉 ‘차이를 낳는 것‘이라는 플라톤의 금언도 받아들인다. 그는 역시 ‘차이‘를 낳는 것이 존재의 이유라고 한다. 즉, 현실태는 ‘경험의 과정‘이며, 이는 새로운 것을 실현하는 과정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들뢰즈도 자신의 철학을 차이의 철학이라고 하며, 자신의 존재론을 ‘일의적‘이라고 한다. 일의적 존재라는 것은 ‘개체화하는 차이들에 관계한다‘.....그러나 서양 사상은 존재와 동일성에 기초해 왔다.....초월성의 철학은 모든 것의 원인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는 사유이며, 그 첫번째 원인을 통해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사유이다...411 종은 여러 유의 잠재적 혼합이며, 개개의 사례는 많은 현실적 혼합을 다른 사실들과 함께 포함하고 있다. 413아리스토텔레스의 분류학ㅇㄴ ˝유, 종, 아종으로 분류하는데, 이것은 서로 배제시키는 분류법‘이다...본질철학, 형상철학의 문제점은 ˝모사에 대한 원본의 우위를 부인한다는 것˝이다. 또한 플라톤 철학에서는 올바름이 있고, 이 근거를 통해서 참된 철학자, 혹은 참된 존재를 탐구한다. 하지만 들뢰즈에 다르면 그 선별의 근거는 ‘신화‘이며, 따라서 신화는 결코 참된 선별의 기준이 될 수 없다고 한다. 414 카오스와 코스모스는 잠재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중요한 것은 시공간을 ‘‘실존‘과 분리 불가능한 요인으로 인정하느냐에 달려 있다. 플라톤 철학에서는 오직 시공간을 배제하고 가능성과 실존의 관계만을 보았다....개념이 가능성으로서 부여한 모든 특성들을 지니고 있다면, 실존하는 것과 실존하지 않는 것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실존은 개념과 똑같은 것이지만 그 개념의 바깥에서 성립한다. 그러므로 실존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설정되는 하지만 이 시간과 공간은 무관심하거나 무차별한 환경에 해당한다. 415 ‘가능태‘는 수동적 능력과 관계되며, ‘실재적‘이라는 용어는 창조적 활동성과 관계된다. 418

[ ] 유기체 개념의 배경과 방법론: 화이트헤드는 수학의 연구에서 수와 양의 과학으로서 고전 수학 개념을 비판하며, ‘관계‘의 연구로 수학을 다시 정의하였다. 419 자연을 구성하는 개념으로 ‘사건‘과 ‘대상‘을 설정하고, 이를 통해서 자연 속에서 관계성과 영속성을 설명하고자 하였다....그는 지금까지 철학의 출발점으로 가장 무시된 것이 미학이라고 부르는 가치론이라고 하며, 그는 모든 실재가 미적인 가치를 함의하고 있다고 보았다..420 ‘소원체이론: 현대철학의 구조주의자들처럼 단순히 상호 관계성의 체계만을 갖는 유기체이론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세계의 역동적 양상들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영속한다는 것이 전 생애에 걸쳐 무차별적인 동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패턴의 존속이라는 의미로 설명하였다. 이 패턴의 존속이 시간의 경과를 통해서 일종의 ‘미적 대조물‘의 형태를 갖는 것으로 본 것이다. 그는 이런 형태를 갖는 가장 미시적인 물질을 ‘소원체‘로 보았다. 421 그는 이 이론을 통해 유기체철학의 근본 원리인 창조적 전진을 설명하였다. 이것은 지식의 발전과 철학의 전개는 결코 이원적으로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421 우리는 확실성을 지식의 합리성을 보장하는 근거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본다. 확실성보다는 ‘생산성‘에 더 주목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새로운 도식의 구성을 통해서 그 전개 과정을 밝혀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422 플라톤의 우주론은 세계의 질서를 운동인과 목적인, 즉 작용인과 가치의 결합을 시도하였다... 주어-술어 일항 논리에 근거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이 추상적 분석의 도구로서 유용하나, 다르게 분석하는 논리 구조, 즉 다항 논리 구조로 변경할 필요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23 그는 점의 존재를 가정하지 않고도 선을 정의하는 방식을 찾고자 하였음을 볼 수 있었다...점보다는 점과 점을 연결하는 직선을 보다 근본적인 것으로 보았으며...그는 존재들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직선을 점보다 우선적인 존재로 보고자 시도하였음을 볼 수 있었다...의미관련은 관계성이 동시적인지, 비동시적인지에 따라서 공액과 연장으로 나뉘어졌으며, 각각의 연장과 공액이라는 관계에는 ‘사건‘과 ‘대상‘이라는 요인이 있다. 그 사건은 일정 기간 동안 발생하는 것을 가리키며, 대상은 그 일정 기간 동안 영속하는 감각 대상들을 가리킨다. 그에서 시공간은 사건과 사건 사이의 관계를 통해서 파생되는 것이다. 424 그는 뉴턴물리학의 시공간이론과 유클리드기하학에서 점의 본성에 근거한 흄의 지각론의 한계를 확인하고, 그보다 원초적인 지각의 형태로 ‘인과적 유효성‘이라는 지각을 제시하였다. 이것은 선형적 대상 혹은 관계, 그리고 사건을 원초적 존재로 간주하는 화이트헤드의 입장을 지각론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425

[ ] 생성을 위한 조건들: 그에게 궁극적 범주는 일자, 다자, 창조성이다...유기체철학에서는 창조성을 세계의 궁극자의 범주로 간주하였다. 창조성이란 끊임없이 자기 창조하는 활동이다. 426 플라톤의 형상이 현실태인 반면에 화이트헤드의 영원한 대상은 가능태의 역할을 한다는 측면에서 존재론적 지위가 전혀 다르다...화이트헤드의 영원한 대상은 인식이나 지식의 불완전함을 전제하고 있다. 427 유기체 철학의 신 개념이 초월적이고 정태적인 것이 아니라, 내재적이고 동태적인 역할을 하는 새로운 신 개념을 구성하였다...내재의 학설은 사물들의 상호 관게를 받아들이듯이, 신도 작용인의 주체인 동시에 작용의 수용자로 보았다. 신은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세계와 본질적으로 내재하는 존재로 간주하였다...불완전성이나 양립 불가능성을 용인하는 신의 본성을 인정하고 있다....모든 현실태를 수렴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신 개념을 구성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질서를 받아들이고, 불협화음을 시의적절한 상황에서 새로운 조화로 이끌어 가는 방식으로 신 개념을 구성하였다. 428

[ ] 과정과 미적 가치 - 현실적 존재자, 파악, 결합체이다. 이 개념들은 그가 기존의 관념에서 벗어나서 구체적인 관계와 가치를 설명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유기체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는 작용인과 목적인을 결합한 존재론적 원리이었다. 존재론적 원리를 통해서 화이트헤드가 의도하는 바는 ‘자기 원인‘ 혹은 ‘결단‘이라는 것이 각각의 현실태 속에 내재한다는 것이다....그가 작용인이나 운동인에 해당하는 원인을 근본적으로 ‘연결‘ 혹은 ‘사이‘로 이해하고 있다면, 목적인에 해당하는 이론을 미적 가치의 창조로 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430

[ ] 20세기의 사상의 전반적인 경향은 자연이나 세계, 인간을 종합적이고 포괄적으로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한정되고 고립된 분과학문의 영역에서 분석적이고 협소한 설명에만 전념하는 전 문화의 경향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것은 17세기 우주론의 영향으로 생겨난 전 세계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다. 431 서구 형이상학에서 일반적으로 현실태는 불변하고, 영속하는 ‘실체‘로 간주하였다. 실체란 존재 자체가 다른 존재와의 ‘관계‘에 앞서서 먼저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이미 20세기 사상 가운데 현상학, 구조주의, 비판이론 등은 기존의 실체 관념에 반대해서 새로운 이론적 체계를 제시한다. 이 사상들을 한마디로 묶는다면, 그것들은 ‘관계의 철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인식론이나 언어철학 혹은 역사철학의 관점에서 재조명했을 뿐이다...여기서 보다 주목해야 할 점은 그가 다른 사상가들과 달리 수학과 물리학의 전제들에 대한 비판에서 그의 철학적 작업을 착수하였다는 것이다.432 기존의 서구 철학에서 자기 산출(생산)의 원인을 외부에 두거나 그것을 배제하는 철학적 양태들이 있었다. 433 근대철학에서 주어진 원인의 역할이라는 것은 시간을 흐름 속에서도 자신의 동일성을 유지시키는 일을 하였다. 예를 들어 데카르트의 실체나, 칸트의 실체가 그러하며, 헤겔의 변증법 역시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화이트헤드의 현실태는 내부에 자기 산출의 힘을 갖고 있다. 그것은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는 힘이 아니라, 자기 동일성과 다양성을 하나로 묶는 힘이다. 한마디로 자기 변형의 과정을 겪는 것이다...진과 선의 가치는 매우 인간중심주의이며, 그것은 플라톤 이래로 자연과 인간을 이분법적인 구도로 형성하여, 인간과 인간을 이성과 선을 통해서 구별하는 방식으로 이끌 수밖에 없다...데카르트에 의하면 인간은 생각함으로써 존재하고, 하이데거에게 있어서도 참된 존재는 현존재이며, 죽음과 시간 속에 던져진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는 인간만이 현존재라고 한다. 이들의 존재론 혹은 형이상학에서 참된 존재는 사유하는 존재라는 것이 깔려 있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이성적 사유에 의해서 규정된 것을 우선시하고 나머지 가치 개념을 부차적으로 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성적 도구하는 입장에서 이분적 사유들이 발생한다. 정신/육체, 이성/감성, 인간/자연, 남성/여성, 개발/미개발 등의 구도가 근대적 사유의 핵심을 이룬다. 이러한 이분법적 사유 체계에 수반된 잘못된 부산물로는 도구적 이성이 팽배한다.....그것에 대한 반발로 후기 철학은 ‘거꾸로 선 이분법‘을 주장한다. 감성이 이성의 우위에 있고, 육체가 정신의 지배자로 군림하는 것이다.. 하지만 화이트헤드에게 있어서 현실적 존재자는 미적 가치를 실현하는 모든 존재를 가리킨다. 이런 점에서 그의 존재론은 자연과 인간을 구별하지 않으며, 남성/여성, 육체/이성을 구별하지 않는다. 434, 435


[ ] 사회를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위엄과 질서의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불굴의 합리성이 철저하게 깃들어 있는 하나의 세계관을 재창조하고 재가동시키는 것을 철학의 과제로 보았다. 우리 인간은 ‘삼중의 충동으로 접혀 있다‘고 한다. 하나 사는 것, 둘 잘 사는 것, 셋, 더 잘 사는 것이다. 사실상 삶의 예술은 첫째 생존하는 것이며, 둘째 만족스러운 방식으로 생존하는 것이며, 셋째 만족의 증가를 획득하는 것이다.˝ 생존하는 것도 하나의 미적 모험이다. 우리는 하루 일상을 통해 삶의 에술을 실천한다. 가끔 우리는 신들린다. 437

볕뉘.

몇 주 전 책에서 읽다가 놓친 사상가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을 살펴보고 있다. 가끔 우리는 신들린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기도 하지만 찬찬히 음미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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