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한 입 베어문다.

푸리에는 아담의 사과, 뉴튼의 중력사과에 이어 사람 사이엔 열정적 것이 존재한다며 세 번째 인력사과*를 말했다. 그리고 그 초고를 식자공으로 있는 프루동**에게 맡겼다. 그렇게 시작했다. 사상의 한 줄기는.

지금 사회적 삶의 현실은 마르크스보다 프루동에게 손을 들어주는 듯하다. 소유는 도둑질이다라는. 자본과 권력이란 마술에 걸리지 말라고 하면서...

하지만 현실을 다기하게 접붙이는 마르크스의 렌즈라는 곱셈을 하지 않고서는 불안해보인다.

여전히 허기가 진다.
네 번째 사과는

발.

여전히 세상은 자신의 편의를 위해 앎을 끌어들이기만 한다. 사회적 삶을 위해 역사의 분기점들을 제대로 복기해내거나 여기에 붙여내지 못한다. 저작들은 그렇게 번역도 되지 못한 채 땅에 묻혀있다 싶다. 객토***를 위한 책들은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 샤를 푸리에, 《사랑이 넘치는 신세계》
** 조지 우드코크,《프루동 평전》
*** 브루노 라투르, 《나는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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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08-14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울 님 반가워요 오랜만에요.

위드코로나 시대에 생각이 많아지네요.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꽤 서늘해졌어요.

여울 2021-08-14 09:52   좋아요 0 | URL
작업하기 좋은 시간들이네요. 책읽기도요^^ 시간들 잘 챙기셔요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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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소개받고 몇 묶음들을 읽으니 아껴 읽어야겠다 싶어. 그러는 사이 친구가 아들과 함께 동해안 도로를 내려오고 있단 소식. 잔여작품과 과정들을 보고싶단 말. 책*을 한권 더 사서 챙기고 스물한 둘의 청춘은 궁금한 것들도 많아, 바삐 여기저기 보여주다나니 시간이 훌쩍 가. 수학공부를 하고 싶단 그 청춘. 훗날 아름다움으로 다시 만날 것 같은 친구가 대견해 보였어.

바르다. 뒤샹. 김용준. 존버거. 글렌굴드. 호크니. 로스코. 칸딘스키.

‘패터슨‘

그렇게 다시 만나

시인의 중력이 뒤트는 예술비평의 세계는 빛이 휘고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 또 다른 길을 놓았어. 마지막 두세쪽을 애써 남겨놓으면서 선물을 잘해주었구나 싶었어. 소개받은 이를 만나며 마저 읽고 이 마음을 전해주어야겠지.

* 나희덕,《예술의 주름들》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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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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