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득의 지각변동


[ ] 자신의 노후를 자녀에게 의탁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장년들은 지금은 흑자 구간에 있더라도 주택과 같은 자산 구입 등 노후를 위한 투자에 병적으로 집착하긷 한다. 현재 적자 구간을 맞은 이들을 위해 기부를 더 하거나 세금을 더 내는 일에는 극도로 부정적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다. 가족 중심 분배 체제의 붕괴는 이런 모든 문제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의 미래에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바로 우리 아이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문제다. 28

[ ] 발명가가 되려면 공부와 연구만으로는 부족하다. 부모의 소득도 높아야 한다. 발명이든 혁신이든 새로운 일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부모 소득이 높으면 뭐든 시도해 볼 수 있다. 실패하면 부모 품으로 돌아오면 되니 말이다. 그렇게 여러 번 시도를 하다보면 성공할 확률도 높아진다. 31


 2. 세계는 평평해졌지만 삶은 더 울퉁불퉁해졌다

[ ] 서구 지식인과 정치인들은 세계화가 자기 나라 국민 대다수에게 가져올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다....경기둔화로부터 타격을 받은 곳은 고소득 국가들이었다.특히 고소득 국가 중하위층의 소득은 계속해서 제자리걸음이다...개발도상국 지식인들, 선진국의 진보적 지식이들의 예상도 틀렸다. 그들은 개발도상국, 특히 아시아 국가들이 세계화로부터 착취당해 노동 계층의 빈곤이 고착화할 것이라고 분노하며 외쳤다. 그러나 그 아시아 노동 계층 중 상당수는 소득이 빠르게 높아졌고 A지점(코끼리 곡선)에 도달해 세계화의 가장 큰 승자가 됐다. 중국은 빠른 속도로 성장해 1인당 국민소득이 유럽연합 최빈국의 수준을 따라잡고 있다. 중국 중간층은 미국 하층을 따라잡고 있다. 중국 선전이 아니라 미국 오하이오와 미시간과 위스콘신에서 분노의 불이 지펴졌고, 그 분노의 대변자는 진보적 정치세력이 아니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됐다. 55

[ ] 세계화의 2단계는 ‘거대한 수렴‘ 국면인 1990년 이후에 일어났다. 이때의 세계화는 이전과 달리 커뮤니케이션 비용, 즉 지식의 이동 비용이 빠르게 줄어드는 과정이었다. 인터넷과 이메일이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줄어들자 지식 외주화가 가능해졌다. 더 이상 하나의 공장/산업 지역에서 생산활동을 수행할 필요가 없어졌다. 선진국에 몰려 있던 생산 클러스터는 분해되었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줄줄이 엮인 국제가치사슬이 만들어지고, 기존 클러스터에 있던 각 기능은 여러 국가로 흩어졌다. 59


3. 국민소득은 늘었는데 내 소득은 왜 늘지 않을까


[ ] 상위 10퍼센트 집단은 3인 가족, 4인 가족을 혼자 부양할 수 있는 정도의 소득을 벌어들이는 사람들이다. 2019년 기준 3인 가족 표준생계비는 5568만원이다. 상위 10퍼센트 집단 중 상당수는 지난 20여 년 동안 새롭게 등장한 고연봉 직장인, 즉 월급 부자였다. 대기업에서 억대 연봉 직장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보수가 눈에 띄게 높아졌으며, 노동조합이 강력한 대기업 제조업 노동자들의 임금이 높아졌다. 이들이 약진하면서 중소기업 노동자들과 자영업자들과 서비스업 종사자들 다수가 뒤처졌다. 그래서 한국의 소득 불평등의 핵심은 임금 불평등이라는 논의가 나왔다. 82

[ ] 한국 경제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선택을 하게 된다. 소득을 더 많은 사람에게 고루 분배하며 내수 경제를 살리는 방식으로 성장할 것인지, 자동화와 협력업체 쥐어짜기를 통해 수출 대기업의 효율성을 최대한 높이며 성자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했다.. 결국 내수 경제를 희생해 수출 부문을 더 빠르게 성장시키는 방향으로 틀을 잡는다. 1997년 찾아온 경제위기와 imf 구제 금융 체제는 이런 방향의 변화를 극단적으로 가속화시킨다. 그 결과가 지금까지 이어진 소득 편중이다. 87


 4. 노동자가 필요없는 기업들


[ ] 헨리포드는 노동자의 임금을 높게 책정해 미국에서 노동 중산층이 탄생하게 만든 사람이기도 하다. 1914년 그는 포드 자동차 직원의 임금을 동종업계의 두 배로 깜짝 인상한다. 평균 근속 기간이 3개월에 지나지 않던 노동자들은 그때부터 회사에 붙어있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되었다. 당연히 생산성은 올랐고 품질 경쟁력도 좋아졌다. 뜨내기 노동자만 일하던 이전과는 달리, 취업하겠다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줄을 섰다. 95

[ ] 자본은 노동자를 불러모을 필요가 없어졌다. 원래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만들었던 기업 조직이나 사회보험 중심의 복지 제도는 거추장스러운 것이 되었다. 제품의 기획, 생산 및 판매까지 모든 부문에서 완전경쟁시장이 작동된다면 자본은 위계적 기업 구조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 투자 위험이 뒤따르는 실물 자산을 보유할 필요가 없어진다. 한마디로 기업은 점점 더 직접 고용할 필요가 없어지고 있다. 자본은 이제 노동자를 밀어내고 있다. 노동자를 끌어당기려 안간힘을 쓰던 과거와 딴판이다. 거대한 전환이다. 109

[ ] 자본이 노동을 밀어내는 과정에서 엄청나게 비인간적인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 노예제에 버금가는 비극적 사건도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만일 우리가 그런 노동 없는 생산 체제가 온다는 사실을 미리 예측하고 있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일자리는 없어지더라도 사람은 살아야 하고, 노동자로서의 권리는 사라지더라도 인간으로서의 권리는 더 높아져야 한다는 규범을 갖고 있다면, 미래의 모습은 달라질 것이다. 고용되지 않은 사람들까지 골고루 보호하는 사회정책을 정치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면, 미래의 모습은 훨씬 더 많이 달라질 것이다. 111


5. 정규직, 7.6퍼센트에 진입하기 위한 전쟁


[ ] 2018년 1월 18일 인천공항 제 2터미널이 열린 이날, 터미널 한구석에 다날이 만든 로봇카페가 들어섰다. 스마트폰 앱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면 로봇 팔이 긴 손가락으로 커피잔을 들고 얼음을 먼저 받는다. 다음으로 잔을 커피머신에 놓고 아메리카노 추출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는 얼음 위에 다른 커피를 주문자에게 전달한다. 116

[ ] 학교의 기간제 교사 논쟁은,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도 누군가에게는 지옥이 될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정규 자리를 기간제 교사들이 차지하면 임용고사를 준비하는 청년들은 지옥을 맞는다. 학생 수는 빠르게 줄고 있다. 앞으로 교사 자리는 크게 늘어나기 어렵고, 교사만큼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기는 더 어렵다. 청년들에게는 기성세대가 매몰차게 막차 문을 닫고 자신들끼리만 천국을 향해 출발하는 모습으로 보일 것이다. 다른 공공기간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125

[ ]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는 계약 내용의 차이일 뿐이다. 삶에는 정규적 삶도 비정규직 삶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계약의 차이를 삶에 대한 차별로 확대하고 있다. 차별은 사람을 비정규로 만든다. 차별이 특권을 만들고, 특권이 정규직에 대한 일그러진 사회 인식을 만든다. 계약에는 죄가 없지만, 차별은 죄다. 7.6퍼센트라는 숫자가 보여주는 것은, ‘안정적 일자리‘는 소수에게만 허락된 특권이라는 명백한 사실이다. 사회는 이제 나머지 92.4퍼센트의 소득과 삶을 보장해주는 방향으로 변화해 가야 한다. 그래서 고용 대신 노동을 지켜야 한다. 직장 대신 직업을 지켜야 한다. 그게 기술과 사람이 같이 사는 길이기도 하다. 128


 10. 왜 어떤 노동은 다른 노동보다 더, 혹은 덜 보호받는가


[ ] 모든 사람에게 소득을 보장하든 고용을 보장하든, ‘정규직과 비정규직‘ 또는 취업과 미취업 사이에 깊게 패인 경계선은 허물어야 한다는 점이다. 결국 최소한이 생계를 위한 소득과 인간다운 삶을 위한 사회보장을 국가가 모든 사람에게 제공하는 것이 미래 노동정책의 핵심이라는 이야기다. 20세기 국가가 경제성장과 복지국가를 동시에 이룬 시스템을 만들어냈듯이, 21세기 국가도 새로운 패러다임에 따라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이야기다. 227


11. 아이폰은 애플이 만들지 않았다.


[ ] 아이팟의 성공은 애플과 스티브 잡스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혁신적 아이디어와 단순한 디자인의 미학에 열광했다. 작고 흰 기기 안에 든 세련된 기술들을 칭송했다. 그러나 그 기술 하나하나에 들어 있는 국가의 지원은 알지 못했다. 아이팟 1세대의 핵심 기술은 뭐니뭐니 해도 마이크로 하드드라이브다. 1천 곡의 음악 파일을 손바닥보다 작고 얇은 아이팟에 모두 넣을 수 있도록 한 기술인 거대자기저항 기술은 미국 연방정부 에너지부로부터 나온 것이다. 233


13. 소득을 어떻게 분배하는가


[ ] 예전과는 달리 일도 삶도 단계를 밟아 올라가는 게 아니라 단속적으로 이어진다. 이런 사회에서 일하려 노력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정확ㅎ 구분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어려운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같은 사람이 끊임없이 변화된 상황을 맞기 때문에 더 그렇다. 266

[ ] 울프는 1929년 낸 저서 자기만의 방에서 이렇게 회고한다. ˝그 당시 쓰라림을 기억하건데, 고정된 수입이 사람의 기질을 엄청나게 변화시킨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더라고요. 이 세상의 어떤 무력도 나에게서 500파운드를 빼앗을 수 없습니다. 음식과 집, 의복은 이제 영원히 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력과 노동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증오심과 쓰라림도 끝나게 됩니다. 나는 누구도 미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도 나에게 해를 끼칠 수 없으니까요. 또 누구에게도 아부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가 나에게 줄 것이 없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하여 나는 스스로 인류의 다른 절반에 대해 아주 미세하나마 새로운 태도를 취하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273


15. 자유로운 노동이라는 기회


[ ] 미국뿐 아니라 유럽의 많은 나라도 긱 경제가 기존 노동시장 질서에 균열을 낸다. 여러 국가가 나서서 이 새로운 노동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고시 중이다. 원래 강력한 복지국가 체제가 존재하던 유럽에서 대안도 더 체계적으로 나오고 있다. 유럽연합은 2019년 6월 ‘투명하고 예측가능한 근로조건에 관한 지침안‘을 채택한다. 여기서는 주문형 노동자, 가내 노동자, 간헐적 노동자 등 긱 경제에서의 노동자들을 보호받아야 하는 노동자로 정의하면서, 고용주가 해고나 작업의 시작과 종료 등을 합리적이고 투명하게 알려야 한다는 점을 명시했다. 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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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공적 감정

[ ] 비극의 정신은 동정심과 상실감을 형성하며, 희극의 정신은 신체적 혐오를 넘어 기쁜 상호 작용의 정신으로 나아갈 길을 알려준다. 320 확장된 동정심에 기초한 훌륭한 기획에 위협이 되는 간과되어온 감정들도 있다. 두려움, 시기심, 수치심이 그것이다. 321 공적 감정이 자유주의적 자유를 제거하지 않고 오히려 자유주의적 자유를 증진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의 역사적 사례들이 회의론자들에게 납득시켜야 하는 것이다. 322

 8. 애국심 교육:사랑과 비판의 자유


[ ] 국기에 대한 맹세의 여파는 강제적 동질성으로 소수의 양심에 고통을 안겨줄 위험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327 동정심은 이타주의의 강력한 원인이지만, 이타주의는 구체적인 서사와 이미지에 뿌리를 두고 있기도 하다. 332 혐오는 위계적 집단들로 국가를 갈라놓기 때문에 공동선을 위한 이타적 희생을 비롯해 국가의 과업을 위태롭게 한다./만일 타자가 상상 속에서 인간 이하여 여겨졌다면, 오직 상상만이 필요한 전환을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다. 334 국가의 역사와 현재의 정체성에 대한 서사가 배제적인 성격을 띠지 않고, 민족적 인종적 종교적으로 어떤 한 집단의 기여를 강조함으로써 다른 집단들을 폄하하거나 등한시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338 강압에 의해 이루어진 의견 단일화는 고작 묘지의 만장일치에 이르게 될 뿐이다. 343

[ ] 희미한 동기부여:가족관계를 없애고 모든 시민이 똑같이 보살 필 것을 요구하는 것. 시민들이 어떤 아이에 대해서도 자기 아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기에게 전적으로 책임이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고 또한 그 도시는 너무 많은 하인이 있는 집과 같아서 아무도 어떤 일에서든 책임을 떠맡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결국 그들은 주변에 희미한 관심만 두게 될 것이기기 때문이다. 요컨태, 사람들이 뭔가를 사랑하게 만들려면 그것을 ˝자신만의 것˝으로 보게해야 하고, 또한 되도록 ˝자기가 가진 유일한 것˝으로 보게 해야 한다. 347

[ ] 심리학자 에익 에릭슨은 <<간디의 진리>>라는 책에서 고인이 된 지도자와 놀라울 정도로 구체적인 가상의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그에게 ˝스스로를 잔인하게 괴롭히는 행동을 멈추고 당신 자신의 몸에 비폭력의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 도덕주의적인 거부의 폭력성이 없이 우리 자신의 몸과 그 몸의 성욕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에만 우리느 모든 사회에 도사리고 있는 타인에 대한 폭력적 지배 성향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381


 9. 비극 축제와 희극 축제: 동정심 형성, 혐오감 극복


[ ] 용감한 자들은 자신의 에너지를 분출하며 기뻐한다. 그들은 자신의 축제를 창조하는 사람들이다. 404

[ ] 공연은 진한 감정을 표출하는 기회였다. 관객에게 강렬한 감정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가 가득했다. 이러한 감정은 숙의와 논의를 기초로 한다는 민주주의 개념에 상반되는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 감정들은 정치적 토론을 위한 중요한 정보로 여겨졌다. 408 이런 비극들이야말로 사람들을 자기편이 겪는 일의 실체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저지르는 일의 실체에도 연결시킬 수 있는 감정적 통찰력을 증진시킨다. 409 비극축제는 동정심의 발달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혐오감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아리스토파네스식의 희극은 주로 혐오감을 다루지만, 동시에 동료 의식도 함양한다. 410 혐오감은 타인을 이른바 순수하고 탁월한 자아와는 완전히 다른 미천한 동물로 표상하며서 드러내는 감정이다. (필록테테스) 411 비극은 인간 야망의 한계를 알려주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 의지의 마비로 귀결되지도 않고, 또한 책임, 의무, 변화 가능성에 대한 어려운 질문들을 침묵시키지도 않는다. 416 비극은 충돌에 대한 이해를 돕고, 그러한 충돌에 대한 평범한 접근법이 지닌 한계도 인식하게 해준다. 417 명확한 질문에 대한 모든 가능한 답은 최상의 답이라 해도 심각한 도덕적 악행을 포함하기에 그릇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바른 대답˝이란 없다. 419 한 영역의 가치만 생각하며 다른 사람의 주장을 무시하는 이 인물들은 모두 편협하다.(안티고네) 421 비극은 우리에게 연극 속에서 서로 충돌하는 삶의 영역들이 갖는 중요성을, 그리고 그렇게 부딪치는 것들 사이에서 우리가 선택을 해야만 할 때 초래되는 끔찍한 결과들을 환기시켜준다. /곳곳에서 많은 사람이 종교와 국가 간의 조화로운 합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아테네 사람들은 그것이 잘못된 생각임을 입증하고자 했다. 423 우리는 관행을 재조정함으로써 비극을 없앨 수 있는가? 비극은 그저 비극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대개 그 음울함 뒤에 어리석음, 이기심, 게으름, 악의 등이 도사리고 있다. 424 소크라테스는 향연의 끝에서 비극 시인가 희극 시인은 본질상 하나라고 주장한다...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은 신체 기능을 끊임없이 솔직하고 즐겁게 묘사하면서, 모든 관찰자에게 그들 자신이 신체적 본성을 한껏 즐기라고 요구한다. 426 천을 짠다는 것은 공동선을 목표로 정치적 논의를 구축하는 것과 비슷하다. 즉, 가닥 하나하나가 모두 고려되어야 하고, 가닥들이 모두 한데 뭉쳐 하나의 전체를 이뤄야 한다. 429

[ ] 베트남전 참전용사 추모비: 이 추모비는 아테네의 비극과 매우 유사한 방식으로 사색적이다.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킴으로써, 동시에, 이러한 감정들과 연결된 사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일상에서 어지러운 마음을 느낄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삶, 과거와 혀재를 검토해보게 한다. 449 시카코 밀레니엄 파크: 동료시민들에게 깃든 다양성에 대한 사랑, 다양성이 근심의 원천이 아니라 즐거움의 원천이라는 생각이 싹틀 것이다....어린이뿐만 아니라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이 물이 뿜어져 나오는 그 분수 앞에 서 있고 싶어하게 함으로써, 다양한 인종 젠더 연령의 시카고 사람들과의 특이한 육감적 교류를 즐기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468



 10. 동정심의 적들: 두려움, 시기심, 수치심


[ ] 세 경우 모두, 손해를 막는 최고의 방법 중 하나는 확장된 동정심 자체를 강화하는 것이다. 491 감정의 뒷받침이 없이는 좋은 법이 나타나기도 어렵고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되기도 어렵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떻게 법으로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할 것인가를 이해하는 동시에, 감정 기류를 좋은 법과 제도를 뒷받침하고 유지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493

[ ] 동정심에 반하는 동정심: 일반화는 위험을 안고 있다. 적대적인 고정관념을 간직할 수 있기 때무니다. 하지만 일반화가 인간 공통의 목표과 취약성에 초점을 맞춘다면 이러한 위험을 피할 수는 있고, 적대적인 고정관념을 실제로 약화시킬 수 있다. 우리는 동정심이 절대 비판받지 않는 정책 기반이 될 수는 없음을 밝혔다. 동정심은 항사 원칙들, 일반적인 도덕규범들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왕성한 비판적 문화가 수반되어야 일반화는 분파와 공평하지 못한 연민으로 퇴보하지 않을 수 있다. 495 특수한 것과 일반적인 것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 올바른 감정을 창조하는 것은 어려운 과제이나,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497 만약 좋은 원칙과 제도들이 살아남아야 한다면 대중문화가 미온적이고 냉정해서는 안된다. 대중문화는 폭넓은 사랑의 에피소드가 충분해야 하고, 시와 음악이 충분해야 하며, 감정과 놀이에 충분히 다가가야 한다. 499

[ ] 두려움:편협한 감정 ; 다른 사람들에게로 염려를 확장하는 데는 동정심이 필요한 반면, 두려움은 항상 동정심가 관련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두려움은 종종 사람들 일반에 대한 우리의 동정심을 흩뜨릴 수 있다. 500 두려움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부당하게 이용될 수도 있다. 501 심지어 가장 믿을 만한 두려움인 경우, 즉 어떤 협소한 ‘관심의 원‘에 대한 ‘합당한‘ 두려움이라도 그 두려움은 지나치게 편협할 때가 많다. 강도 높은 근심이 지속되는 한, 자기 자신과 자기와 아주 가까운 사람들 외에는 그 무엇도 생각하기 어렵게 만든다. 502 루스벨트가 대중의 두려움을 가라앉ㅎ고 다독이기 위해 정치적 수사를 활용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두려움을 관리함으로써 동정심의 기반을 만들어내기 위해 델리와 시카고에서 도시적 건축물을 활용한 것이다./두려움은 원심력을 띤다. 두려움은 한데 뭉치는 것이 가능한 사람들의 에너지를 흩어지게 한다. 503 믿음을 가졌고 두려워하지 않았기에 선조들이 정복할 수 있었던 그 위험에 비하면 그렇게 심각한 것도 아니다라는 밝은 암시를 루스벨트는 더했다. 506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오직 두려움 그 자체뿐임을 나는 굳게 믿습니다. 508 수사법에 능한 사람은 자신의 청중을 철저히알고, 어떤 이미지가 울림이 있으며 어떤 식의 호소가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지를 안다. 510

[ ] 델리와 하이드 파크의 도시 건축: 도시에는 범죄, 고용 불안정, 다양한 집단과 언어 등 항상 두려움의 이유들이 있다. 511 하이드 파크의 두려움(가공된 것이기도 하고 진짜이기도 한)은 유대감으 부정하는 내향적이고 배타적인 태도에 의해 증폭되었다. 두려움과 배제는 서로에게 기대어 자라난다. 그 악순환에서 빠져나와 작은 희망이라도 건지려면 과감한 결정이 필요했다./진보는 하나의 원대한 계획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수많은 작은 실험의 산물인 것 같다. 526

[ ] 시기심과 공정함: 공동의 과업 ; 시기심은 다른 사람의 행운이나 이익에 초점을 맞추어, 스스로의 상황과 다른 사람의 상황을 비판적으로 비교하는 고통스러운 감정이다./일반적으로 시기심은 운 좋은 경쟁자에 대한 어떤 적대감을 내포한다. 시기하는 사람은 경쟁자가 갖고 있는 것을 원하며, 결과적으로 그 경쟁자에게 악의를 느낀다. 그리하여 시기심은 사회 한복판에 적대감과 긴장감을 끌어들이며, 궁극적으로 사회가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하게 한다. 527 시기심은 질투심과 유사하다. 둘 다 가치 있은 어떤 것의 소유나 향유와 관련해 경쟁자에 대한 적대감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과 가장 소중한 관계들을 보호하는 것과 관련돼 있다. 질투심은 자신에게 위협이 된다고 보이는 경쟁자에게 초점을 맞춘다.(형제간이 경쟁)/이와 대조적으로 시기심은 바라는 상태를 소유했는지 소유하지 못했는지가 중심이 된다. 시기심은 좋은 것의 부재에 초점을 맞추며, 좋은 것을 소유한 사람들에 대한 적대감은 간접적이다. 경쟁자는 좋은 것들 그 자체보다 덜 중요하다. 사실 경쟁자는 시기하는 사람에게 결여된 이점을 누리고 있다는 점 때문에 적대적인 시선을 받는 것이다. 528 오셀로는 어떤 특정한 이점 때문에 경쟁자로서 미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이아고라는 존재를 가리며 그의 위로 우뚝 솟아오른 사람으로서 미움을 받는다. 이아고가 주인공이 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래서 그는 그 주인공을 파멸시켜야 한다. / 미래의 우월함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맨 꼭대기˝에 있으면서도 여전히 시기심에 내몰릴 수 있다. 529

[ ] 구조적으로 시기심의 사촌 격인 세 가지 감정이 있는데, 시기심을 이 감정들과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쟁심은 시기심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상황과 자기보다 형편이 나은 사람의 상황과 비교하는 것에 초점을 둔다....경쟁심을 느낀다면, 일반적으로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열심히 하면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어. 시기심은 다른다. 심리학자들이 흔히 도달하는 결론처럼, 시기심에는 절망과 무력감이 내포돼 있기 때문이다. 530 시기하는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 상대를 적대시할 것이며, 틀림없이 상대를 포괄하는 공익(고등학교 응원단이나 축구팀의 성공 같은)을 소망하지 않을 것이다. /시기심은 또한 불의를 의식하는 도덕적 감정인 분개와도 다르다. 다른 사람들의 이익에 대해 분개하는 사람은 상황이 도덕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믿는다./시기심은 주체와 객체 모두에게 해를 끼치는 경향이 있는 원한의 한 형태다.531 경쟁심이나 분개는 둘 다 품위 있는 사회에서는 건강한 감정이다. 전자는 개개인이 더 좋아지도록 촉진하고, 후자는 사회가 더 좋아지도록 촉진한다. 시기심에는 그런 건설적인 기능이 없다. 532

[ ]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상황이 나쁘기보다는 좋기를 소망하며 시기심은 이해에 기여한다. 시기심이 적대적으로 터져나올 만한 조건은 어떤 것일까? 첫째는 심리적인 것으로 자신의 가치관과 가치 있는 일은 무엇이든 이루어내는 능력에 대한 확고한 자신감을 결여한 경우다. 둘째는 사회적인 것이다. 사회생활의 조건들이 시기심을 낳는 차이를 매우 눈에 띄게 만드는 만큼, 그 심리적 조건이 고통스럽고 치욕적인 것으로 경험되는 상황이 많이 발생하는 경우다. 셋째, 시기심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입장엣는 단순한 적대감 말고는 어떤 생산적인 대안도 스스로에게 제공하지 못한다고 여기는 경우다. 533 그들이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위안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하는 것뿐이다.533

[ ] 학교는 성취에 이르는 폭넓은 건설적 경로들(비경쟁적인 신체 단련 활동, 연극과 기타 창작 예술, 사회봉사)을 제공함으로써, 친구들을 미워하며 앉아 있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좋게 느끼게 해줄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하게끔 학생들을 북돋울 수 있다. 스포츠 올림픽과 나란히 예술 올림픽을 개최하는 것이다. 요가, 필라테스, 신체 단련용 달리기가 대안적 체육으로 제시될 수 있다. 535

[ ] 모든 이가 기본 권리를 안정되게 누릴 수 있도록 해주는 법과 제도, 그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건설적인 대안들을 가지고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교육 체제와 경제 체제에 많이 의지해야 할 것이다. 사회의 제도적 구조는 경쟁의 여지를 남겨둠으롰 경쟁을 뒤받침하되, 노력을 마비시킬 수 있는 좌절감과 무력감은 만들어내지 않는다./돈에만 가치를 두지 않고 우정 문학적 예술적 표현, 사회 정의를 추구한다 536

[ ] 시기심은 두 가지 방식으로 동정심을 공격한다. 첫째 관심의 원을 좁게 설정해 자신 또는 자기 집단에 집중하는 행복론적 사고를 장려함으로써 동정심을 공격한다. 둘째, 자기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의식과 동정심에 실질적으로 수반되는 감정이입을 금지해 시기심의 대상이 되는 사람을 타자 또는 적으로 암시함으로써 동정심을 공격한다. 537 그래서 해결책으로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동 운명에 대한 의식, 그리고 혜택 받은 사람들과 덜 혜택 받은 사람들을 공동의 과업을 가진 하나의 집단으로 만드는 우정이다./덜 혜택 받은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는 정책에 대해 좀더 특권을 가진 사람들이 반대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계급 간 시기심이 없는 그 상황이 주로 이 작은 사회(500만 주민)가 가족과 같아서 모든 시민이 서로 얽혀 있다는 생각에 기인한다는 것이다.(핀란드)537

11. 사랑이 정의에 중요한 이유

[ ] 이 연구의 사랑에 대한 요구는 ˝중첩적 합의˝를 달성하기 더 어렵게 만드는 방식으로 정치적 개념에 의해 부과되는 요구들을 조금씩 늘리기보다는, 원칙과 제도에 대한 완전한 의견 일치나, 심지어 이러한 것이 주요 결점이 없다는 의견 일치를 전제하지 않는 감정들을 상상하면서 사실상 그 요구들을 감소시킨다. 두 사람이 종교, 정치적 관점, 궁극적인 삶이 목표가 서로 달라도 친구가 될 수 있고, 심지어 연인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상상하는 사회의 시민들 또는 적어도 그들 중 다수는, 우리가 기술한 이질적 경험들을 공유할 수 있다. 적어도 그러한 경험 중 일부를, 가끔, 공유할 수 있다. 그래서, 이래서 이러한 감정들이 본질적으로 귀중한가 아닌가 하는 물음을 통해 우리가 묻게 되는 바는,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위협적이지 않다. 609


볕뉘. 우리를 아니 스스로를 옭아매는 것은 두려움과 시기심, 수치심이라는 것이다. 곁을 생각지도 못하게 만들고, 자기와 자기집단에 얽매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사회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족만이 살길이라거나 너만은 이겨야 한다라고 말하며, 사육된 아이들은 그 모욕감을 끊임없이 전염시킨다. 사회적 유아기는 여전히 길고 길다. 여유와 자신만의 시간을 갖지 않는 청소년기를 거쳐도 별반 달라질 것이 없다. 자신의 일에 책임져 본 적도 없고, 책임질 수 없다. 이기는 기술만 갖게 된 아이들, 함께 이기는 경험이란 미흡하기 쉽상이지 않을까. 아이들만의 문제일까 어른 역시 어른이일뿐이다. 상상할 수 없고, 아파하지 않고, 아픔의 경계를 자신과 저울질하지 못한다. 사유에 출발은 늘 자신을 빼버리고 간다. 그 나르시시즘. 무한의 되돌이표. 놀지 않으면 달라질 수 없다. 스스로 채울 수 없으면 넘칠 수 없다. 사회의 공모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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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적 불행을 초래하는 두 가지 극단적 입장: 하나는 훌륭한 정치적 원칙들을 뒷받침하는 애국심 및 여타 감정들의 함양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태도이고, 다른 하나는 불화나 비판을 전혀 허용하지 않는 독재적이고 강제적인 방식으로 가정을 함양하는 방식이다. 9

[ ] 젊은이들로 하여금 비판 정신 자체를 사랑하도록 가르치고, 양심적인 반대의 목소리에 공감할 수 있게 가르쳐야 한다. 10


1. 자유주의 역사의 문제

[ ] 대부분의 사람은 편협한 공감 능력을 갖고 있다. 그들은 쉽게 자아도취적 기획에 갇히며, 자신의 협소한 굴레 바깥에 존재하는 이들의 요구는 금세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공적 감정을 함양하기 위해 필요한 또 다른 괒는 나약한 자신을 보호하고자 타인을 폄하하고 무시하려는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다.19

[ ] 어떻게 하면 품위 있는 사회가 루소의 방식처럼 반자유주의적이거나 독재적이지 않으면서도 로크나 칸트가 시도했던 것보다 더 많은 안전성과 동력을 가질 수 있는가?하는 의문이다. 22

[ ] 전복과 웃음을 위한 여지도 늘 남아 있어야 한다./주된 관심사는 완벽하게 구현된 질서 정연한 사회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정의를 향해 나아가는 사회다. 28/우리 내면의 깊은 감정을 뒤흔드는 것은 내가 머릿속에 그리는 소중한 삶의 영역 안에 있는 존재들이다. 나는 이를 ‘관심의 원‘이라고 부른다. 31

[ ] 마틴 루서 킹은 간디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차용했지만, 동시에 그것이 미국인들에게 감동을 주려면 총체적인 문화적 탈바꿈 작업을 거쳐야만 한다는 것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36/ 사랑이란 인간에 대한 존중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저 빛 좋은 허울로서가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37/절대주의적인 분노를 드러내기보다는 유머, 유연함, 환희 등을 통해 이 세계 속에 던져진 부조리하면서도 추악한 인간 존재의 운명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 간에 조사하고 수용해야 한다. 38/새로운 질서는 마음속의 혁명적 변화 없이는 안전성을 획득할 수 없는데, 이는 남성과 여성의 젠더 역할에 대한 새로운 규범을 채택하는 것을 포함하며 남성 중심의 앙시앵레짐이 갖는 규범을 정확하게 깨부수는 새로운 시민 개념까지 흡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42

2. 역사

2.1 평등과 사랑: 루소, 헤르더, 모차르트


[ ] 거기에는 지배 대신 매력과 우아함이 있다. 치욕을 숨기거나 당한 모욕에 복수를 하려는 음모가 아니라, 농담과 대화를 좋아하는 여성들에 대한 ˝장난스런 눈빛˝이 있다. 76/진정 앙시앵레짐에 반대되는 것은 상호 교환 가능한 기계로서의 신체를 민주화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다. 여기서 사랑이란 케루비노가 이해한 바와 같이 자기 바깥에서 좋음을 발견하는 것이다. 78/공적인 문화는 인간의 마음 깊숙이 자리하여-열정과 유머를 포함하여-강력한 정서를 건드리는 무언가에 의해 길러지고 또 지속될 필요가 있다. 79

[ ] 루소: 봉건적 사랑과 같이 시민적 사랑도 순종적이며 계층적이다. ..일반의지라고 하더라도... 모차르트의 여성들에게서 볼 수 있는 다양한 호혯ㅇ을 여기서는 찾아볼 수 없다. 82/이야기와 농담과 같은 여성의 세계를 선호한다는 것은 궁그적으로 전통과 복종에 대한 전복과정에 있어 필요한 하나의 칸트적 계몽의 지표다...현실세계에서 사람들이 갖는 이질성과 일상의 혼잡함을 깨닫고, 이를 즐겁게 받아들이며 건강한 열망을 갖는 것이다. 83/

[ ] 그런 평화의 시절에 우리를 기쁘게 했던 것은 ‘유년기의 놀이‘이었다. 그렇기에 새로운 형태의 애국심은 분명 즐거운 것이어야 한다. 84

[ ] 완전함을 바란다면 이 새로운 체제는 실패할 것이다. 현실적인 여성과 남성 그리고 그들이 이룰 수 있는 것에 기반을 두어야 성공할 수 있다...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속에 있으며, 그것을 부르는 사람의 몸 안에 있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자체의 호릅을 가다듬으면서 세계를 다시금 구축한다고 할 수 있다. 90


2.2 인간종교 1: 오귀스트 콩트, 존 스튜어트 밀

[ ] 루소와 대비되게 헤르더는 여성적 정치으 이미지를 제안하면서 새로운 체제는 기존의 남성 중심 문화로부터 완전히 결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놀이, 유머, 동질성 등을 강조하면서도 새로운 문화가 강압적으로 시행되어서는 안 되며, 반대 의견이나 다양한 인간적 시도를 위한 공간도 조심스럽게 열어두어야 한다고 한다. 97/칸트와 달리 콩트는 인간성의 상당 부분을 사람들에게 타인을 향한 공감을 훈련시킴으로써 감정을 통해 증진시키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고 믿었다. 104/소유라는 사적인 권리를 생각하기보다, 마음을 다해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을 배우고 모두를 껴안는 인본주의적 사랑의 정신을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랑의 함양에 있어 핵심이 되는 것은 바로 상상력이다 즉 우리는 타인의 운명 속에서 나 자신의 운명도 볼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이 곧 내 운명의 이면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107/콩트는 자신이 생각한 이상 속에서 시, 음악, 시각 예술이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예술에 큰 관심을 기울였는데, 왜냐하면 예술이 필수적 형태의 감정들을 형성하고 상황에 적합한 감정을 촉발하는 데 있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108/ 이 모든 것을 합치면 84개 정도의 축제가 구성되는데, 이로써 일주일에 하나 이상의 제의가 있게 된다. 이러한 축제를 멋지게 디자인하는 것은 예술의 몫이고, 여기에는 적절한 시, 음악, 시각적 재현 예술 등이 포함된다. 109

[ ] 종교의 역사는 우리에게 제의적 의례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아주 강력한 장치라는 점을 보여준다. 대개 인간은 습관의 존재이고, 같은 행동의 반복은 특정한 이미지나 생각의 반향을 증대시키기 때문이다. 111

[ ] 감정은 자발적으로 표출되지 않는 이상 가치가 없다는 낭만주의적 사유는 거부해야 한다. 우리가 올바르게 행동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것과 같이, 우리는 올바르게 느끼는 법 또한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112

[ ] 문화와 개인에 대한 무시는 콩트의 전적인 유머 감각 부족에서 나타난다. 이에 대한 밀의 비판은 타당하며, 콩트의 유머 없음은 중요한 부분이다...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교환 가능한 기계처럼 다루는 콩트의 경향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114/유머는 대개 경이로움을 내포하고 있으며, 그 기저에는 반항과 전복에 대한 사랑이 깔려 있다. 115

[ ] 모차르트와 헤르더처럼 콩트는 확장된 형태의 공감을 여성성의 영향과 관련지어 설명한다....실제로 콩트는 자신이 예술가들을 신뢰하지 않듯 어머니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들은 실증주의 기획 안에서 기능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며 시민으로서의 어떠한 권리도 갖고 있지 않으며, 철학을 배울 기회조차 없이 철저하게 집안에 갇혀 한정된 삶을 살아간다. 116

[ ] 밀이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우리에게 우선 요구되는 것은 이미 일반적이고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동료의식(한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을 끌어내는 것이다. 121/그는 최초로 국회의원으로서 여성 참정권 법안을 제시한 사람이다. 125/대학의 목표는 ˝노련한 법률가나 의사 또는 엔지니어를 만드는 것이 아라, 능력 있고 교양을 갖춘 인간 존재를 양성하는 데 있다. 131/정치학은 한 권의 교과서나 주인의 가르침으로 배울 수 없다. 우리가 그 주제에 대해 배워야 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 자신의 스승이 되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따라야 할 주인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개인은 혼자 힘으로 탐구해야 하고, 독립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133


2.3 인간 종교 2: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 ] 정치적 사랑은 늘 필연적으로 비합리적 복종과 연결되어야만 하는가? 심지어 당파주의와 증오로 이어져야만 하는가? 높은 도덕적 이상은 지루하고도 밋미산 것이어야만 하는가? 비판적 공평성은 고루한 것이어야 하는가? 145

[ ] 타고르는 인간 존재에게 고유한 것은 바로 예술적 창조라는 능력에 있다고 주장한다...인간이 갖는 잉여부분..상징과 상상의 세계를 살아감을 뜨산다. 146 직립 보행을 ‘불복종‘의 제스처로 읽는데, 이것은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규범에 묶여 있기보다는 새로운 규범을 창조해내는 자유를 의미한다. 147 그에게 과학이란 인간의 공감 능력에 위협을 가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인간은 물건이라는 괴물에 기생하는 능력을 빠르게 발전시켜나가면서, 자신만의 우리를 만든다. 그리고 이 우리가 사방으로 자신을 가두도록 내버려둔다...우리는 자기 중심주의와 탐욕으로 향하는 강한 경향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러한 이유로 반대의 길을 택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소중한 목표들을 깨닫지 못한다.148 그의 종교가 시인의 종교이다. 시적 창조의 원천이 되는 개별 인간 존재의 능력에 기초해 사회와 문화를 보는 관점을 내표한다. 여기에는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이라는 열정적 경험, 자연과 개별 인간 존재에 대한 사랑, 한 사람의 지각 경험이 갖는 고립된 파편화로부터 총체적이고 의미 있는 것들을 만들고자 하는 욕망 등이 포함된다. 151 과거에 대한 지나치 숭배가 인도 문화의 커다란 결함 중 하나라는 믿음과 관련 있다. 거기에는 소극적인 정교신앙과 비합리적인 억압 그리고 죽은 이전 세기의 적폐, 과거를 우상숭배하는 난쟁이들이 있을 뿐이다....그에 따르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깊은 열망과 사랑의 느낌˝이다. 152 내 안에서 샘솟는 사랑의 환희에 열중할 뿌이다...이것의 핵심적인 목적은 넘쳐 흐르는 사랑의 형태를 취함으로써 이기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154 물질의 소유라는 죽은 삶의 양식보다는 사랑과 기쁨을 선호하고, 그런 이유로 대부분의 어른이 안락하고 안정된 해답을 찾기보다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삶을 살기를 좋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155 건강한 사회를 위해 요구되는 것은 호혜성과 진정성을 향한 자유주의다. 즉 비판을 허용하는 삶이자, 사랑과 놀이와 광기가 허용되는 삶이다. 157

[ ] 유희에 대한 사랑과 의구심에 찬 정신은 뭉개버릴 게 아니라 강화해야 하는 것이다..그러나 학교는 무질서한 모든 것을 뭉개버리는 데 반해. 타고르는 ˝내 안에 비문명화된 것은 섬세하다. 그것은 색깔과 음악 그리고 생동감 있는 삶에 대한 갈증을 지니고 있다.˝고 전한다. 158 타고르가 학생들에게 가능성의 영역을 보여주려할 때, 자신의 신체와 목소리 표현을 사용하는 등 개인적인 시연을 통해 가르쳤다는 점이다.. 162 그는 재미있으며 또 편안한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준다...전복적이고 에로틱한 창의적 정신이라고 부른다. 163

3. 목표, 자원, 문제

[ ] 지난 역사 속의 사상가들은 공감과 이타주의가 인간이라는 동물의 유산 중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184

3.1 우리가 바라는 사회: 평등, 포괄, 분배

[ ] 각각의 정치적 이상은 특정한 감정들에 의해 지탱된다. 군주정은 왕을 하느님과 유사한 아버지로서 의지하도록 국민을 부추기면서 어린이 같은 의존적 감정을 기르는 데 오랫동안 기대어왔다. 파시스트 국가는 연대에 기반한 자부심과 영웅 숭배, 반체제 인사의 고립에 대한 공포, 열등하거나 전복적인 것으로 묘사되는 집단에 대한 증오 등의 감정에 의존하며 또 이러한 감정들을 불러 일으키고자 애쓴다. 보수주의자들도 연대의 감정이 갖는 정치적인 가치를 강조한다.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스스로 광범위한 공감에 의존할 필요가 없는 점이 자신들의 이상이 갖는 점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조차 사회적 안정과 준법적 행동을 양산하기 위해 분노나 공포와 같은 감정을 형성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189

[ ] 지식이든 가치든 어떤 포괄적인 계획에 종속되지 말아야 한다. 209 감정은 기억에 반응하고, 기억은 종교적 제이 혹은 마음의 습관과 종종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214 휘트먼과 타고르는 각각의 사회가 가진 젠더와 카스트의 문제가 우리로 하여금 신체에 대해서, 에로티시즘에 대해서, 한계에 대해서, 도덕성에 대해서 공적으로 토론하기를 요구한다고 여긴다. 216 우선 법과 제도가 합리적이고 타당하다면, 감정은 이를 유지하고 지탱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러한 법과 제도를 개선하려는 동기를 부여한다. 그러한 개선의 동기가 작용할 때, 우리는 제도 자체가 감정의 통찰을 구현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18

3.2 동정심: 인간과 동물

[ ] 테오도어 폰타네의 <<에피 브리스트 effi briest>> 폰타네는 부모의 왜곡된 감정을 그리면서 독자들에게 시작부터 로로이 기질을 익히게끔 만든다. 이는 탈도덕적이고,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관한 사회적 규범에 회의적이며, 인간의 실질적 고통에 관심을 기울이는 특징을 갖는다. 소설의 전체적인 구조는 동물 되기를 학습하는 과정이자, 동물처럼 무조건적 사랑ㅇㄹ 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인간의 이성적 사유와 사회적 비판 능력을 잃지 않으면서 말이다. 229

[ ] 동정심의 기본 구조는 진지함, 무과실, 유사성 자각, 마지막으로 행복주의적 사고이다. 그들은 나에게 중요하다. 그들은 나의 가장 중요한 목표와 기획 안에 포함된 사람들이다. 233 행복주의는 이기주의가 아니다. 234 고통을 평가하는 인간의 능력이 불완전하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우리는 다른 존재의 곤경을 상상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상상한 것들에 대해 조금 알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236

[ ] 과실에 대한 판단이 곧 인간이 갖는 결함이라고 말한다. 동물은 이것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보다 도덕적으로 더 낫다고 주장한다. 245/ 개들은 다른 개드레게 특별한 관심을 보인다기보다는 어떤 생명체든 간에 자신과 함께 ㅏㄹ거나 알고 지내온 존재들에게 관심을 보인다. 247

[ ] 아기들은 감정의 전염과 더불어 감정이입과 동정심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정심을 증진 혹은 배제하는 과실에 대한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결국 사회성 형성 이전에 인간이 이미 갖추고 있는 능력을 의미하며, 이는 우리의 중요한 자산이다. 또 다른 결정적인 자산은 공평함이라는 인간의 능력이다. 블룸은 이것을 ˝성숙한 도덕성의 핵심˝이라고 불렀다. 251 우리는 생생한 상상력과 공평한 원칙 사이이 지속적인 또 주의 깊은 대화를 만들어야 한다. 253

[ ] 인간 감정에 대한 하나의 중요한 왜곡 형태가 있다. 이는 드 발이 ˝인간부정 anthropodenial˝이라고 불렀던 것으로 인간이 자신의 동물성과 동물과의 친족성에 대해 인정하는 것을 거부하려는 경향을 뜻한다. 255


3.3 근본악: 무력감, 자기애, 오염


[ ] 동물성과 필멸성에 대해 인정하기를 꺼리는 인간의 성향이 동정심의 실패를 설명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263 밀과 콩트가 놓친 것은 바로 실제적 악이다. 이것은 단순히 타인에 대한 부주의나 무시 또는 두려움에 기반한 불신이 아니라 타인을 폄하하고 모욕을 주고자 하는 강한 욕망이 담긴 잔인하고 추한 의도적 행동이다. 265 다른 사람의 고유성에 대한 능동적이고 상상력 넘치는 관심만이 집단에 근거한 낙인의 폐해를 막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며, 나아가 시민들에게 집단을 전체로서 고유한 사람들로 드러내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266 칸트에 의하면 악은 근본적이다. 즉, 휴머니티의 뿌리에 자리한다. 267 우리 내면의 비가시적 적인 악은 인간 고유의 것이며, 이는 인간 존재가 집단 내에 있을 때 경쟁적인 자기애의 성향으로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다...시기심, 지배욕, 탐욕 그리고 이와 결합된 경향성들은 인간이 다른 인간들 가운데 있을 때 그 자체로는 충족된 그의 본성을 이내 몰아붙인다. 268 집단 혐오, 낙인찍기, 배제와 같은 문제의 주된 원인은 오직 이난 삶의 고유한 구조 안에서 찾아야 한다. 270

[ ] 타자는 유아의 지각과 감정 속에 자신을 도와주거나 해를 입히는 세계의 일부로 각인된다. 자신을 채워주지 못한 경우 유아는 나쁘다는 생각을 발전시켜 나간다. ‘모든 것은 내 시중을 들어야 한다.‘ 아기 폐하. 나는 군주다 나는 여기홀로, 굶주리고, 젖은 채로 서 있다. 275 이런 나르시시ㅡㅁ을 타인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으로 이겨낼 수 있을까? 이 물음은 모든 좋은 사회가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라 할 수 있다...나르시시즘과 무력함의 결합은 ‘근본악‘이 시작되는 지점이다...욕구에 대한 불완전한 충족은 대상을 현실적으로 만든다. 말하자면 사랑받기도 하지만 미움을 받기도 한다는 점을 깨닫게 한다.˝276 유아의 무력함은 세상이나 사람에 대한 신뢰를 결여한 형태이 강한 불안을 낳는다. 유일한 해결책은 완전함인데, 완전함을 성취하는 길은 타인을 노예로 삼는 것밖에 없다. 277 삶의 실천적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빛에 대한 사랑을 떠올려보라. 좀더 넓게는 세상을 흥미롭고 재미있는 것으로 여기면서 세상 밖을 향해 있는 인간의 관대한 마음을 보라. 그것은 지적이면서도 감성적인 것이다. 세상은 사랑할 만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사랑의 움직임이야말로 프루스트가 그린 얼어붙은 나르시시즘으로부터 유아를 벗어나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278

[ ] 기쁨이 파괴되는 상황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보호받고 있다는 안정감과 놀이의 즐거움은 지속된다. 이것은 새로운 가능성도 제공한다. 즉 아기는 엄마를 기쁘게 하고 애정을 보여줌으로써 사실상 무언가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도널드 위니콧의 관심에 대한 능력이란 논문에서 ˝유순한 순환 benign cycle˝) 279 부모가 손 닿는 곳에 존재할 뿐만 아니라 아기의 사랑을 받을 만한 상황하게 있으면 아기는 자신이 가진 공격성에도 불구하고 이 사랑할 만한 부모에게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워나간다. 280 고통으로 인해 타인을 오직 도구로만 인식하는 나르시시즘으로 후퇴하여 폐쇄적인 성향으로 귀결되 위험이 계속해서 존재한다...오직 사랑만이 호혜성에 대한 상상력으로 그들을 이끈다. 나아가 고집의 형태가 아니라 진정한 관심의 표현을 실천하게 만드는 감정이입의 관점으로 전환할 수 있게 한다....타인의 관점을 이해하려는 욕망, 즐겁고 호혜적이 놀이, 교환, 위니콧이 말한 ˝미묘한 상호 놀이 subtle interplay˝와 따뜻한 보살핌에 대한 감사, 자신의 공격적인 성향과 행동에 대한 죄의식, 그리고 핵심이 되는 신뢰 및 통제에 대한 불안의 제거 등이 해당된다. 이러한 조건 없이는 기쁨과 ‘미묘한 상호 놀이‘는 불가능하다. 281

[ ] 불안이 신뢰와 사랑에 의해 구제되지 않은 세계에서 도덕성은 살아남지 못한다. 타인에 대한 진정한 관심은 타인의 관점 또한 중요한 것이라는 이해와 그에 대한 감정이입의 능력에 기반한다는 점도 상기시킨다...283

[ ] 왜 정치적인 활동이 이러한 개인적 문제들을 고려해야만 할까? 만일 품위 있는 정치 구조가 이기주의, 탐욕, 불안, 공격성 등 계속되는 침범에 맞서 안정적으로 지속되려 한다면 정치적 문화 내부는 이러한 초기의 신뢰와 관대함, 사랑스러운 바깥세상을 향해 생명력 넘치게 움직이는 마음과 가슴이라는 자원을 이용해야만 한다. 283 일정 시간동안 그들은 놀이를 하면서 미소, 몸짓, 소리를 교환하고,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부모가 보이는 얼굴 표정에 익숙해진다. 이렇게 놀이의 세계는 더욱 복잡해지며, 감정이입과 호혜성의 발달에 주요한 매개가 된다. 284 놀이란 ˝잠재 공간˝을 확보하는 상상력의 활동이다...위니콧은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들 중 특별히 타인의 반응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한다. 특히 놀이는 일종의 역할극을 반드시 내포하고 있으며, 이것은 감정이입의 발달을 가져온다는 것이다..285..점차 엄마의 존재 곁에서 혼자 놀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타인과 함께 세계에 존재할 수 있게 되고, 자신의 불안 때문에 끊임없이 타인을 종속시킬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286 위니콧은 모든 사랑은 미요한 상호 놀이의 형식을 갖는다고 제안하며 이 미묘한 상호놀이가 실제 냉혈한이었던 자신의 환자가 분석적인 관계 속에서 난생처럼으로 경험한 것이었다. 287

[ ] 인간의 삶은 본래적으로 불안과 어려움을 내포하고 있다. 이것은 외부 세계와 인간이 맺는 관계에서 생겨나는 본래적인 난제다./인간의 발달은 끝엇이 계속되는 과정이며, 모든 단계에서 신뢰, 호혜성, 타인의 세계에 대한 존중을 강화하기 위한 놀이와 상상력이라는 자양분이 필요하다. 288 이 잠재 공간은 바로 예술과 문화의 세계다./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어디서 살고 있는가? 라고 물음을 던진다면, 우리는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상상적 가능성의 ‘잠재 공간‘ 속에서 살고 있다고 답할 것이다. 289

[ ] ‘투사적 혐오‘는 유아적 나르시시즘을 유바라는 것과 똑같은 불안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유아적 나르시시즘과 마찬가지로 이는 오직 사랑의 정신으로만 극복될 수 있다/혐오는 일차적으로 두드러진 신체적 특징들에 대한 부정적 반응이다. 291 혐오는 오염이라는 생각과 관련 있다. 말하자면 한 주체가 더러운 무언가를 취하게 되면서 자신이 오염될 수도 있다는 불안의 표현인 것이다./이런 식으로 혐오는 초기 형태의 나르시시즘, 전능함, 인간부정의 역학과 긴밀히 관계한다고 할 수 있다./일차적 대상에 대한 혐오는 그 자체로 인간부정의 한 형태라 할 수 있다./혐오라는 것이 인간 발달에 있어 비교적 늦은 시기에 발현된다. 292, 293 혐오에 관한 뛰어난 실험 연구자인 폴 로진에 따르면, 혐오가 하나의 대상에서 다른 대상으로 옮겨갈 때 이는 철저히 비이성적인 과정을 거친다. 그는 이것이 ˝마술적 사고˝의 형태를 가진다고 말한다./투사적 혐오는 사회적인 것이다. 294 혐오는 일상의 심장부에서 작동한다./ 그렇기에 이것은 이중화보다 훨씬 더 보편적이며 일상적이다. 297 휘트먼의 시가 계속해서 말하는 것은 바로 혐오가 오직 상상력의 놀이를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내가 그 아이에게 무어라 답할 수 있을까? 그것이 무엇인지 그 아이보다 더 아는 것이 없는데. 301 유희적인 놀이란 인간의 취약함이 갖는 극단적 형태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302

[ ] 신체의 무력함이나 인지의 정교함같이 인간의 발달 구조 자체에 뿌리박고 있다는 의미에서 근본악의 근본적이라 할 수 있다. 1. 아이의 초기 발달과정에 있어 사랑의 정신은 자기중심주의라는 감옥으로부터 벗어나 타인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존중을 발달시키는 데 필수적 열쇠라는 것이다. 2. 사랑을 필요로 하는 인간 삶의 다양한 역학(무력함, 그리고 이에 대한 공포와 분노)은 시간이 지나고 성장함에 따라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지속된다는 것이다. ..성인의 상호관계 내에서도 계속해서 요구되는 것이다. 3. 나르시시즘이 정치적 영역에서 다시금 고개를 드는 경우. 이러한 문제는 그 자체로 평등한 존중을 고무하는 원칙들뿐만 아니라, 놀이와 상상력과 공감의 정신(인간의 취약함, 그리고 이러한 시적 정신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전능함을 포기하려는 의지를 포함하여)을 바탕으로 다루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303, 304

[ ] 악행을 자극하는 요인들: 압력에 대한 굴복, 권위에 대한 복종 304 또래 압력의 영향하에 있는 사람들은 유대인, 동성애자,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신체적 특징들에 대해 그릇된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또래 압력은 어떤 경우에서든 위험한 것이다...나아가 이미 사회적 낙인과 위계가 규정된 상황 속에서 작동하게 된다면 더욱더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다. 307 악이라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 특정한 순간에 자신의 인간적 책임을 포기하고 타인의 지시에 무심히 따를 때 생겨난다는 것이다.(대리적 상태) 310 위계질서와 그에 복종하는 경향은 진정 오래된 진화의 역사 속에 뿌리내린 인간 유산의 심층적 측면이라 할 수 있고, 이러한 경향은 우리가 살펴본 다른 심리학적 경향성과의 연계 속에서 다양하게 이해될 수 있다./모든 종류의 군사조직은 이탈적인 행동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게 만들고 또 연대감을 형성하기 위해 복종과 또래 압력을 아주 교묘하게 이용하는데, 이것은 때로 개인의 도덕성을 짓밟기도 한다. 313

[ ] 우리가 타인이 처한 곤경에 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복종과 압력를 이겨나가는 성향을 발달시킬 수 있다고 제안한다./타인을 고유의 이름과 삶의 이야기를 가진 개별적 존재로 보게 되면 좀더 나은 행동을 취한다/각각이 이름, 기호, 이야기를 지닌 존재들로 통합하는 것..내러티브 예술을 바탕으로 한 문화적 기획을 통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국가는 저항의 문화를 촉진하고, 개인적 책임감을 고양하며, 관료적 익명성을 제거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타인의 눈으로 세상을 볼 줄 아는 능력과 개인이 독자성을 인정할 줄 아는 역량을 조성함으로써 공감의 문화를 건설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315

볕뉘.

교과서 같은 책이기도 하다. 차분히 생각하면서 저자가 비판하는 지점을 응시하면서 가면 좋을 듯하다. 두 번에 나누어서 올려야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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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사원 주변에서 상인의 법규는 공정하고, 계량은 진실하며, 계약은 정직하기를˝ - 베네치아 최초의 교회 (서기 421년)에서 발견한 베네치아 최초의 상업에 관련된 문구 21

[ ] 이 글들은 주로 이 두 가지 점 - 부의 정의와, 정직의 회복과 유지 -에 맞추어져 있다. 노동 조직의 문제는 때때로 필요할 때에만 다루었다. 우리가 경제계의 거물들에게서 충분한 양의 정직성을 얻을 수 있다면 노동을 조직하기는 쉽고, 노동 조직은 어떤 다툼이나 애로사항 없이 순조롭게 발전할 것이기 때문이다.하지만 경제계의 거물들에게서 정직성을 얻지 못하면, 노동의 조직화는 영원히 불가능하다. 22


1.명예의 근원


[ ] 사회 문제에서 변덕스런 요소들은 추가된 그 순간부터 연구 대상인 생명체의 본질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다는 측면에서 항시적인 요소들과 근본적으로 성질이 다른다. 이 요소들은 수학적이기 보다는 화학적으로 작용한다./나는 단지 뼈 없는 인간을 가정한 체조학에 관심이 없듯이, 영혼 없는 인간을 가정한 경제학에 관심이 없을 뿐이다. 30, 31

[ ] 노동자가 병약해지고 사기가 저하될 만큼 낮은 임금을 지불하는 것이 꼭 주인의 이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주인이 사업 확장에 지장을 주거나 사업을 안정적이고 자유롭게 유지하는 데 방해가 될 만큼 작은 이득을 취하면서까지 노동자에게 높은 임금을 지불하는 것이 노동자의 이익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회사가 엔진을 수리할 수 없을 정도로 자금난을 겪고 있다면, 화부는 높은 임금을 요구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34 조물주는 인간의 행동이 ‘득실의 균형‘이 아닌 ‘정의의 균형‘에 따르도록 의도했기 때문이다. 34 나는 ‘정의의 균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이 ‘정의‘라는 용어에게는 한 사람이 타인을 향해 품는 ‘애정‘도 포함되어 있음을 밝혀둔다. 고용주와 고용인이 바람직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서로에게 최대이익을 안겨 줄 수 있는 것은 궁극적으로 정의와 애정이다. 35

[ ] 하인이 증기력과 자기력이나 중력처럼 수치 계산이 가능한 힘을 동력으로 삼는 기관이라면 설득력이 있겠지만, 반대로 하인이란 존재는 영혼을 동력으로 삼는 기관이다. 36 이 기관은 동력이 소위 말해, 인간의 의지나 정신이 고유한 연료인 애정을 가졌을 때만 최대의 힘을 발휘하고, 최대한 많은 양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37 어떤 경우에서든,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든, 이 같은 상대를 배려해주는 것은 가장 효과적인 보상을 낳는다. 나는 여기서 애정을 전적으로 하나의 동력으로 간주하고 있지만, 절대로 그 자체를 바람직하거나 고귀한 것 또는 추상적으로 좋은 것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38 하인의 고마움을 이용할 요량으로 하인을 친절히 대한다면, 당신은 분명히 하인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지도 못하고 당신의 친절에 대한 보답도 돌려받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경제적 목적도 없이 하인을 친젏히 대한다면 모든 경제적 목적은 거기에 답할 것이다. 다른 모든 일들이 그러하듯이, 여기서도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잃을 것이요, 자기 목숨을 잃은 자는 그것을 구할 것이다.˝ 39 부하들과 가장 직접적인 인간관계를 맺고 있고 부하들의 이익에 가장 신경 쓰며 부하들의 목숨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장교는 분명히 그에 대한 부하들의 애정과 그의 품성에 대한 부하들의 신뢰를 통해 다른 식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정도까지 부하들의 기량을 효과적으로 발휘시킬 수 있을 것이다. 40

[ ] 인간이 저지른 오류의 역사에서 가장 희한한 사실 중 하나는 아마도 경제학자들이 노동 수요와 관계없이 임금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부인해왔다는 사실일 것이다. 우리는 총리직을 경매로 팔아넘기지 않는다. 성직매매가 일반적으로 이익이 될지라도 낮은 가격에 주교관구를 넘기는 일을 하지 않고 싸게 받는 의사를 찾지 않는다. 42, 43 주교의 설교와 후임자의 설교의 차이, 또는 의사와의 소견 차이는 벽돌을 잘 쌓고 못 쌓는 차이보다 훨씬 크고, 여러분에게 개인적으로 미치는 결과도 훨씬 중요하다. 하지만 당신은 영혼이나 육체에 관여하는 노동자에게는 솜씨가 좋든 나쁘든 똑같은 보수를 기꺼이 지불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의 집에 관여하는 노동자에게도 솜씨가 좋든 나쁘든 똑같은 보수를 기꺼이 줄 수 있어야 하지 않는가. 44 노동자는 일거리가 확실히 보장되어 있고 계속 유지될 때보다 일이 중단될 우려가 있을 때 임금을 더 받아야만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다. 46 사업을 안전하게 경여할 수 있는 규모로 유지하고, 불안정한 이익을 얻고 싶은 유혹에 넘어가지 말고, 동시에 높은 임금을 받으면서 일자리에서 쫓겨나는 것을 감수하는 것보다는 고정급의 형태로 낮은 임금을 받도록 노동자들을 설득해야 한다. 47

[ ] 군인은 어느 순간에라도 선택이 주어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사실 그는 계속 그런 역할을 맡아 왔다. 실제로 그는 날마다 죽고 있는 것이다. 49 성직자는 지적 능력이 떨어질지라도 이타적이고 헌신적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존경을 받는다. 50 상인의 일은 사회에 아주 필요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동기는 모두 개인을 위한 것으로 간주된다. 51 진정한 상업에서는 자진해서 손해를 보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것, 의무감으로 목숨을 버리듯이 6페니의 손해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사람은 깨달을 것이다. 설교단뿐만이 아니라 시장에도 순교가 존재할 수 있고, 전쟁뿐만이 아니라 장사에도 영웅적인 행위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충분히 존재할 수 있고 결국에는 존재해야 하지만 아직까지 없었을 뿐이다. 53 상인의 직분은 국민에게 물자를 공급하는것이다..의사나 성직자 이 셋 모두가 진정한 사람이라면 보수와는 관계없이-어떤 대가를 받더라도, 또는 오히려 손해를 보더라도 - 해야 할 일이 있다. 55

[ ] 고용주가 고용인들을 정당하게 다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식이 부득이한 사정으로 고용인이 되었을 경우 그 아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생각해보고, 지금 고용인들을 그렇게 다루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엄숙히 물어보는 것이다. 57 공장주는 어떤 상업상의 위기나 곤경에 처하면 노동자들과 함께 어려움을 겪고, 노동자들이 느끼는 것보다 더 심한 고통을 스스로 감내해야 한다. 그것은 기근이나 난파나 전쟁이 일어났을 때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58

[ ] 지금까지 배워온 경제 원칙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곧바로 국가적 파멸의 길로 들어설 것이다. 59



2. 부의 광맥


[ ] 상업적 경제학의 법칙들에 대해서는 조금, 그것도 아주 조금 배웠을 뿐, 진정한 정치적 경제학의 법칙은 하나도 배우지 않았다. 62 부는 전기와 비슷한 힘이라서 그 자체의 불균형이나 자기부정을 통해서만 작용한다./평범한 상업적 경제학자가 말하는 부자 되는 기술은 동시에 필연적으로 당신의 이웃을 가난하게 유지시키는 기술이라고 볼 수 있다.(1기니 금화의 힘은 당신의 이웃 주머니에 없다는 사실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63 부자가 되는 기술은 절대적으로나 궁극적으로나 자신을 위해 많은 재산을 축적하는 기술일 뿐만 아니라, 이웃이 자기보다 적게 소유하도록 꾀하는 기술이기도 하다. 정확히 표현하면 그것은 ˝자신에게만 유리하도록 최대한의 불평등을 확립하는 기술˝이다. 67 한 국가 안에서 이루어지는 부의 유통은 인체의 혈액 순환과 닮아 있다. 한편으로는 유쾌한 감정이나 건강에 좋은 운동 때문에 혈액 순환이 빨라지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수치심이 일거나 열이 나서 빨라지기도 한다. 69

[ ] 각서가 유효하다고 치면 한 사람은 마음 먹고 빈둥거릴 수 있다. 이 합의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손톱만한 불법성도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그 섬의 해안에 도착해서 보았다면, 한 사람은 상업적으로 부유하고 상대방은 상업적으로 가난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 사람은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는데, 다른 한 사람은 먼 훗날 자신의 경제적 독립을 회복하려는 희망을 품고 두 사람 몫의 노동을 하면서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랄 것이다. 72,73

[ ] 획득한 부가 단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그 부가 존재하는 국가에 이롭거나 해롭다고 결론짓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부의 진정한 가치는 거기에 붙어 있는 도덕적 기호에 달려 있으며, 마치 수학적 분량의 가치가 거기에 붙어 있는 대수학적 기호에 달려 있는 것과 딱 들어맞는다. 76 한 무더기의 돈은 그 돈을 모으는 과정에서 열 배나 많은 것을 창조한 활동의 산물인 것도 있고, 열 배나 많은 것을 없애버린 활동의 산물인 것도 있다. 76 ˝가장 값싼 시장에서 사고, 가장 비싼 시장에서 팔라˝는 상인적 교훈은 국가 경제의 유익한 원칙을 보여준다는 또는 어떤 상황에서도 보여줄 수 있다는 근대 사상만큼 인간의 지성에 수치스러운 것은 내가 아는 한 역사에 한 번도 기록된 적이 없다. 78 부의 본질은 인간에 대한 지배력에 있기 때문에 외관상 또는 명목상의 부가 이 지배력을 상실하면 본질을 상실하게 된다. 80 부의 진정한 광맥 그것은 암석 속이 아니라 인간 속에 있다 모든 부의 최종적인 성과와 완성은 활기차고 눈에 반짝거리는 행복한 인간들을 되도록 많이 생산하는 데 있을 것이다. 82


3. 지상의 심판자여


[ ] 거짓말하는 혀로 재산을 모으는 것은 이리저리 흩날리는 덧없는 것이며, 죽음을 구하는 것이다./부정하게 모은 재산은 아무 쓸모가 없지만, 정의는 죽음에서도 사람을 건져낸다. 87

[ ] 흐른 물이 저주가 되느냐 축복이 되느냐는 인간의 노동과 관리하는 지식의 힘을 어떻게 실행하느냐에 달려 있다./부도 그것이 필요한 곳으로 흘러간다. 어떤 인간의 법률도 그 흐름을 막을 수 없다. 물의 흐름을 유도할 수 있을분이다.하지만 흐름을 이끄는 도랑과 흐름을 막아내는 둑으로 철저히 물의 흐름을 유도하면, 그 물은 생명의 물, 지혜의 손에 있는 부가 될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제멋대로 흐르게 대버려두면, 예전부터 너무나 자주 일어났듯이, 나라의 재앙 가운데 파국을 몰고 올 가장 치명적인 마라의 물, 모든 해악의 근원을 키우는 물이 될 수도 있다. 92,93 진정한 성직은 인간을 구원하는 힘이요, 진정한 왕위는 인간을 다스리는 힘이다. 96

[ ] 정의는 절대적인 교환에서 존재한다. 99 적어도 갚는 양이 받은 양보다 적지 않아야 공평하다는 것뿐이다. 100 정의의 직접적인 작용은 첫 번째는 사치품의 획득에서 두 번째느 도덕적 영향력의 행사에서 부의 지배력을 축소시켜나가는 것이다..직급에 따라 또는 노동 단계에 따라 분배되는 충분하고 정당한 보수는 하급 노동자들도 마음만 먹으면 사회적 지위를 높일 수 있는 공정하고도 충분한 수단을 부여해준다. 그래서 정의의 작용은 부의 직접적인 힘을 약화시켜주고, 가난에서 오는 최악의 무력감도 해소시켜준다. 107


4. 가치에 따라서


[ ] 경제학은 부의 학문이기 때문에 인간의 능력과 의향에 관한 학문이어야 한다. 125

[ ] 가치 있는 것은 생명에 유익한 것이다.128 어떤 물건의 가치는 그것에 대한 사람의 견해나 물건이 양과는 관계가 없다./만물의 조물주로부터 부여받은 그 물건 고유의 힘은 인간이 그것을 중시한다고 해서 늘어나는 것도 아니며, 경시한다고 해서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129

[ ] 소유, 즉 ‘가지고 있다‘는 것이 절대적인 힘이 아니라 단계적인 힘이라는 것, 그리고 그 힘은 그 소유되는 물건의 양이나 성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소유한 사람에 대한 적합성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활력에도 있다는 것을 알았으리라 생각한다. 따라서 ‘부‘에 대한 우리의 정의를 확장시켜보면,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유용한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 된다. 134

[ ] 어떤 물건이 유용하려면, 물건 자체가 유용성을 지니고 있고, 또 그것을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사람의 손에 있어야 한다. 136 부는 ˝용기있는 자에 의한 가치 있는 것의 소유˝이며, 부를 한 나라 안에 존재하는 힘으로 고찰할 때는 물건의 가치와 그 소유자의 용기라는 두 개의 요소를 함께 평가해야 한다. 137 확실히 칭찬받을 만한 자질을 가진 자들 가운데 재산을 일으키는 자보다 파산하는 자가 더 많다. ...세상에 도덕적영향을 미치거나 주요 상품을 개발한 사람, 중요한 발견이나 실질적 진보를 이룩한 사람들 가운데 부자가 더 많은지 가난한 사람이 더 많은지도 고찰해야 한다. 138, 139

[ ] 교환에 관해 먼저 주의해야 할 점은, 교환에는 ‘이윤‘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윤은 노동에만 존재할 수 있다. 140 교환학이 교환하는 사람들 중 어느 한쪽의 이익에만 관련된다면, 그 학문은 상대의 무지나 무능에 바탕을 두게 된다. 따라서 무지나 무능이 사라지면, 교환학도 사라지고 만다. 143 그렇기 때문에 이 학문은 무지 위에 세워진 학문이자 무기술 위에 세워진 기술이다.143 이것은 결코 신성한 학문이 아니라 악마가 배태한 학문일 것이다. 144 교환하는 사람 양쪽이 다 이익이 되어야 한다. 그가 거리를 위해 사용한 시간과 지혜와 노동에 대해 정당한 보수를 주어야 한다.144 돌의 깨진 틈새에 못이 낀 것처럼, 사는 것과 파는 것 사이에는 죄악이 단단히 끼워져 있느니라. 그러니 모든 관계자에게 정확히 알려져야 한다. 145

[ ] 세상에 존재하는 수요의 4분의 3은 환상과 이상과 희망과 애정에 초점을 둔 것들이다. 146 노동이란 인간의 생명이 그 반대쪽 상대와 싸우는 것이다. 이 ‘생명‘이라는 용어에는 인간의 지력과 영혼과 체력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것은 회의나 난관이나 시련이나 물질적인 힘과 맞서 싸운다. 147 양질의 노동에는 체력을 충분히 조화롭게 조정할 만한 지력과 감정이 항상 포함되어 있다. 147 헐값 노동이라고 불리는 것은 사실상 노동으로 극복해야만 할 장애물이 너무 많아서 작은 결과를 얻는 데에도 많은 노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는 노동이 싸다고 말하지 말고 노동의 대상이 비싸다고 말해야 한다. 150 나는 거의 모든 노동은 단적으로 긍정적인 노동과 부정적인 노동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믿는다. 긍정적인 노동과 부정적인 노동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믿는다. 긍정적인 노동은 생명을 생산하며, 부정적인 노동은 죽음을 생산한다. 151

[ ] 절대적 소비야말로 생산의 목적이고 절정이며 완성이다. 더구나 현명한 소비는 사실 현명한 생산보다 더 어려운 기술이다./돈을 얼마나 많이 버느냐?가 아니라 ˝그 돈을 무슨 목적으로 쓰느냐?˝가 중요한 문제이다. 153

[ ] 자본은 머리, 근원, 원료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파생적이거나 이차적인 재화를 생산하는 재료이기 때문에 그 자체와는 다른 것을 생산할 때만 진정한 의미의 자본, 즉 죽은 자본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본이다. 뿌리는 원래 뿌리와는 다른 열매를 낳을 때 비로소 뿌리의 활기찬 기능을 발휘한다. 즉 열매를 맺는다. 그 열매는 때가 되면 다시 뿌리를 낳는다. 그렇게 해서 살아 있는 모든 자본은 자본의 재생산을 수행한다. 153, 154 모든 자본가와 모든 국민에게 던지는 진실한 질문은 ˝당신은 쟁기를 얼마나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당신의 밭고랑은 어디에 있는가?˝이다. 즉 ˝이 자본은 얼마나 빨리 증식할까?가 아니라 ˝증식하는 동안 자본은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156 자본 자체의 증식은 쓸모없는 것보다 더 나쁘다. 그것은 저당잡히고 돈을 빌린 것에 지나지 않는다. 156

[ ] 곡창의 기능은 곡식의 분배를 통해서 그 기능을 완수한다. 159 모든 생산은 본질적으로 ‘입‘을 위한 것이고, 결국에는 입에 의해 평가된다. 따라서 앞에서 말했듯이, 소비는 생산의 정점이고, 한 나라의 부는 오로지 국민의 소비로만 평가될 수 있다./경제학의 궁극적인 목적은 좋은 소비 방법을 터득하고 대량 소비에 이르는 것이다. 160 물품을 소비하는 방식은 매우 중요하다. 노동자의 아이가 병에 걸렸을 때 내가 그의 허름한 집을 찾아가 병든 아이한테 복숭아를 주느냐, 아니면 굴뚝으로 폭탄을 떨어뜨려 그 집 지붕을 날려버리느냐는 노동자에게 천양지차일 것이다. 162

[ ] 생명없이는 어떤 부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생명에는 사랑과 기쁨과 찬탄의 힘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가장 부유한 나라는 최대 다수의 고귀하고 행복한 사람을 육성하는 나라이고, 가장 부유한 사람은 자신의 생명의 기능을 최대한 완벽하게 발휘하여 그 인격과 재산으로 다른 사람들의 생명에 유익한 영향을 최대한 널리 미치는 사람이다. 164

[ ] 부자는 빈자에게 식량만 거절하고 있은 게 아니다. 지혜도, 미덕도, 구원도 거절하고 있다./식량! 그 요구는 사람의 자식처럼해야지 개처럼 해서는 안 된다. 먹고살 권리를 주장해야 하지만, 그보다 소리 높여 주장해야 할 것은 성스럽고 완전하고 순수해질 권리이다. 168 근본적인 문제는 사람들이 살 수 있는 땅이 세계에 얼마나 많이 있느냐가 아니라, 사람이 살 수 있는 일정한 면적의 땅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생계를 유지해야 하느냐 하는 것이다. 170

[ ] 우리에게 지혜의 작용은 집의 입구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모든 진정한 경제는 ‘집의 법‘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데 신경 쓰지 말고, 돈을 적절한 곳에 쓰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하다.../현재의 생명을 구하거나 더 많은 생명을 얻게 되면 그것은 좋은 소비이고, 그렇지 못하면 그만큼 생명을 방해하거나 죽이는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만 한다. 178

[ ] 기쁨의 총량은 맛보는 음식의 양이 아니라 맛보는 사람의 활기와 인내에 달려있다. 179


볕뉘.

제목의 문구가 많이 익숙할 것이다. 그렇다 여기서 가져온 문구이다. 경제란 무엇일까, 경영이란 무엇일까,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경제에 정의와 애정을 불러넣는 것이 의미가 없는 일일까? 부자들은 벌기만 하고 어떻게 쓸 것인가 제대로 궁리도 해보지 못하고 삶을 마감한다. 누구나 한결같이 로또당첨을 이야기하지만, 어떻게 쓸까는 세세하고 구체적이지 않다. 그렇듯 우리의 경제관념은 삶과 영혼과 애정과 정의에서 많이도 멀어져 버렸다. 저 흘러가는 강물을 어찌할 것인가? 그 숱한 세금들과 예산은 정말 살아숨쉴 줄 알기나 하는 것인가? 그 돈들이 스러지는 사람들의 활기와 생명에 관여되는 것일까? 자꾸 질문을 하게 된다.

어떻게 쓸까? 그런 이야기를 작은 모임에서 나눠봤다.
버는 게 아니라 어떻게 쓸가를 회자하는 것이 어떻게 살까와 조금 가까워지는 질문인 듯했다. 어떻게 얼마나 벌까, 벌어야지 하는 그 모호함보다 생기가 있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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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읽다가 늙었습니다

[ ] 서로 다르다는 게 중요합니다. 여러 관점이 다양하게 존재하는 세계랄까요. 저는 그런 세계관이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책을 읽는 이유도 그렇고, 그런 독서를 바탕으로 책을 쓰는 이유 역시 그렇습니다. 지적 세계의 핵심은 다양함입니다. 이런 다양하이라는 지적 세계의 본질적인 측면은, 우리의 삶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또 우리 사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고요. 자유로운 개인이란, 결국은 자기 자신에게 가장 충실하고, 자기다운 삶을 사는 사람을 일컫는 게 아닐까 싶어요. 각각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은 저마다 다른 게 자연스럽지요. 81

[ ] 일본, 미국, 유럽으로 유학을 갔을 때 거기서 만났던 사람들과 대화와 소통을 통해, 아 이들도 나처럼 참 다양한 지적 관심사를 갖고 있구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자신이 좋아하는 책들, 오랫동안 모은 책들로 차곡차곡한 서재를 만든다는 것이야말로 한 사회가 축적한 문화의 상징, 지성의 상징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린 그런 문화가 없어요. 앞으로는 그런 서재 문화가  가능해지지 않을까, 저는 그런 기대와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87, 88

[ ] 우리나라의 법률 교육이라고 하는 게 철두철미 폐쇄적이고 도그마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런 교육을 받은 사람이 법률가가 되어도 개방적이고 유연한 사고를 하기란 대단히 힘든 법입니다. 법률가의 두뇌 구조는 보통 굉장히 경직되어 있는데, 무엇 하나를 우직하게 밀고 나간다는 점에 있어선 그게 장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 민주사회에서 수많은 환경과 경우에 처해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유연하게 바라보고, 인정하고, 품어낸다는 차원에선 여러모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게 사실이죠. 92 막상 로스쿨 안을 들여다보면 정말로 서울 신림동 고시학원식으로 운영된 게 사실이고, 그건 지금 로스쿨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제도에 대해선 저도 할 말이 많고 여러 복잡한 논의의 지점들이 있겠지만,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의 로스쿨은 교양 있는 법률가를 양성하는 곳이 전혀 아닙니다. 옛날 신림동 고시학원을 좀 더 고급화시킨 것과 다름없다고 봐요. 입학하는 구성원들이 굉장히 계층화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94

[ ] 자기가 속한 조직의 권력, 학문이 권위 같은 것을 향해서 철두철미 비판적 태도를 견지해야 할 텐데 ...아무튼 바깥세상에 대곤 정의와 진보를 얘기하면서 자기가 속한 학문, 대학, 가정, 학연, 지연, 혈연을 너무 존중하고 아끼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봤던 것 같아요. 125 우리나라는 단행본도 무시되고, 번역도 무시되고, 오로지 논문입니다. 저는 이런 현상이 책도 안 쓰고 번역도 물론 하지 않고, 학계 바깥의 대중과 유리된 채 상아탑 안에 머무는 것만을 고집했던 고약한 유학파 교수들이 우리나라 학계를 지배한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132 최소한 스카이캐슬에 나오는 과도한 교육열을 비판한다면, 나 역시 내 자식이 교육에 대해서 한 번쯤 되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걸 안 하면서, 자기 자식에게는 과도한 교육열을 쏟아냈으면서 사회 일반의 교육열을 비판하다니...그건 있을 수 없는 이야기죠.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엔 너무나도 만연한 현실이기도 합니다. 165

[ ] 혼자서 사고하고 혼자서 행동하고,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힘을 갖는 게 고독입니다. 그런데 사회와 국가는 그런 개인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고, 기본적으로 흡수하고 동화하려는 경향을 띠게 마련이죠. 그래서 저는 고독을 기본적으로 저항이라고 생각해요. 저항을 위해서 고독하는 것이지, 저항의 의미없이 그냥 고립된 삶을 산다는 것은 다소 무의미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195 <가버나움>,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환 <로마>, 고레에다 히로카즈 <어느 가족> 이 세 영화가 공통적인 것은 혈연도, 지연도, 학연도 아닌 사람들의 새로운 관계 맺기에 관한 영화였습니다. 201 나와 가치관이 같거나, 나와 생각이 같아서 맺는 관계는 좋은 관계라고 할 수 있겠죠 이 세 영화는 그런 것도 아닙니다. 혈연도 아니고, 어쩌다가 맺어지는 관계, 그런 관계를 굉장히 소중히 여기는 삶. 모두 자신과 전혀 관계없던 사람들의 관계맺기에 관한 이야기인데, 참으로 중요한 메시지였다고 저는 생각해요. 202

[ ] 저는 패거리 문화를 끔찍하게 생각하는데, 지금 유행하는 이 기술 문명이 또 다른 패거리를 만드는 건 알까, 우려되는 지점이 있지요. 지연과 학연, 혈연이 물러간 자리에 ‘sns연‘ 같은 것이 생겨나고 있는 건 아닐까? 205 체면문화, 체면 차림에서 과시욕이 생겨난다고 봐요. 제가 보기엔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들 자기가 시시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지나친 자기 존대랄까요. 자기 스스로 자기를 높이고 내세우는 그런 문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건 우리가 너무 업신여김을 당하고 자기 존재의 가치를 무시당하는 사회에 살았기 때문인지도 몰라요. 그래서 내가 나를 안 높이면 안 된다는 의식이 있는지도 모르지만....어떻게든 출세하겠다. 윗사람이 되겠다. 남을 딛고 일어서겠다....학교에서부터 사회조직에 이르기까지 그런 식의 폐쇄적인 경쟁 체제가 존재하지 않습니까?

[ ] 결국 서로 얼마나 다른 사람인지를 더욱더 철저하게 인식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돼요. 사람은 백이면, 성격도 다르고 느낌이 다르니까요. 또 지성도 다르고 감성도 다르니까요. 그게 중요하죠. 그게 없으면 내가 존재할 가치가 없는 거라고 봐요. 우린 다 무리과 집단 속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느낌과 감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 아닌가요? 왜 그 사실을 그토록 경시하는지, 남들과 똑같아지려고 애를 쓰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227 제가 저보다 뒤에 따라오는 세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해라. 당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해라, 바로 이 말입니다. 주위 사람들에 휩쓸려서 무작정 시험 준비에 뛰어들지 말아달라고요. 무언가를 죽지 못해 하는 것처럼은 하지 말라고요. 인생은 그렇게 길지 않다고요. 238 지금 열람실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선택을 탓하려는 게 아니라, 저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이겨야만 한다고 믿고, 이겨야만 어떤 ‘안정적인 삶‘이 가능하다고 믿고, 그렇게 자신을 압박하는 삶만이 인간적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회적 신념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잘못된 것이 있다면 바뀌어나가는 것이 맞겠죠. 274 그저 평범하게 보통사람으로, 자기 삶을 성실하고 진실하게 살겠다고 마음먹는 사람이 많을수록 건강한 사회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을뿐이죠. 276

[ ] 사회 현실에 전혀 무감각하게 고시 공부만 오랫동안 한 사람들이 판검사가 된 후 정계에 떠돌고 있는 정치인들을 보면 분노가 치밀어오르는 게 사실이기도 합니다. 지방 곳곳에서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힘썼던 사람들의 열정이 제대로 반영되고, 그들도 기본적으로 어떤 소시민으로서의 자기 생존을 더 따뜻학 보장받을 수 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그런 사람들에게 이 사회가 참 냉정했다는 사실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289

[ ] 진정 좋은 정치는 결국 자신이 문제를 자기 입장에서 판단할 수 있고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그런 개인들이 만들어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해요. 즉, 모든 문제를 자기 문제로 여겨 자기 문제화가 될 수 있어야지 그것이 더욱 근본적인 정치 문제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자기 문제가 아니라 무조건 권력과 정치 문제로만 바라보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자성의 계기와 자기의 문제로 소화하지 못하는 지점도 매우 많다고 생각합니다. 308 우리가 적폐, 적페 하는데, 우리의 생활상의 적폐가 어쩌면 더 심대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저는 미세먼지 같은 경우에도 시민 각자의 문제일 수가 있다고 봐요...노후화된 산업시설에도 시민들이 자발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자기 삼을 조금 조금씩 바꿔가려는 노력 없이 외부 탓, 정치 탓만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죠. 310 언제나 출발은 개인이어야 한다.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아주 구체적인 관계여야 한다. 319

[ ] 우리가 죄를 지었으면 우리가 죄에 대한 책임을 져야지 왜 남에게 대신 책임을 지라고 해? 이게 대속 사상의 거부잖아요. 말 그대로 신의 나라는 어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안에 있다는 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대속 사상의 문제는 종교를 자율적으로 볼 것이냐 타율적으로 볼 것이냐, 자기 구제로 볼 것이냐 신의 구제로 볼 것이냐는 점을 우리에게 묻고 있죠.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차이점은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죠. 도스토예프스키는 러시아정교의 사도이자 러시아 군국주의자였고 차르주의자였습니다. 362

[ ] 포옹이든, 키스든, 프렌치 키스든, 혹은 성적인 관계든 상관없어요. 이런 접촉을 한다는 것은 언어를 통한 커뮤니케이션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참으로 필요한 것이고, 지금보다 훨씬 더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페미니즘의 흐름을 매우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이지만, 페미니즘 운동이 이런 이성 간의 자연스러운 접촉의 욕망 자체를 너무 과도하게 억압한다든지, 위험사회와 위협사회의 공포 같은 걸 불필요하게 조장한다든지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399

[ ] 낙태 문제와 관련해서...태아의 존업성 같은 것은 물론 우리가 주목해야 할 덕목임은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태아를 품고 있는 여성의 권리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 여성의 인격과 권리는 그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기 때문입니다. 그 구체성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410

볕뉘

읽다보니 후쿠오카 도서관도 가고 싶고, 군대에서 한번도 구타나 체벌을 못한 것이 잘했다 싶고, 아이들에게 공부하란 소리 대신 친구들 많이 사귀어라라고 하길 잘했다 싶다. 지역과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저자 책들로 많이 배운터라 차분히 따라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너나 사회만이 아니라 그 만큼 내안으로도 커지고 깊어졌으면 하는데, 현실은 늘 요지부동이거나 거꾸로 가는 것이 안타깝다. 인터뷰어도 깊이가 있어 참으로 많이 준비했겠다 싶다. 노고에 감사드리고 싶어진다. 지식의 흐름과 사상의 지도를 독서를 통해 감지하시는 박교수님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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