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기 발랄한 그래픽 노블.  감상하는 내내 점점 초점이 맞춰진다. 드디어 탄다. 그 마음이 곱다 싶다.  아르키메데스가 어쩔 수 없이 전투무기를 발명할 수 밖에 없는 형편이 되었을 때, 그는 집광경을 이용해 적들의 선박을 태우는 무기를 발명한다.는 전설같은 일이 있다.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실제로 재현실험도 해보았다.


반지하거주자의 삶으로부터 나오는 연결에 대한 사실감들도 앎들을 애태우지 않겠는가? 요지부동하지 않는 지구인들의 삶에 적반하장이라도 되지 않겠는가? 이렇게 매치나 저렇게 매치나 어쨌든 매치다보면 패대기라도 치지 않겠는가? 


이런 시작들이 지구란 막의 간절함도 읽어내리라 여긴다. 아르키메데스가 지구를 들어올 릴 수 있다고 했듯이, 이런 시작이 지구인의 마음을 다른 각도에서 활활 태워버릴 단초라고 여긴다.


볕뉘.


가족 작가집단의 번창을 꿈꾸어 본다. 재미발랄한 가족이여 그 기운 번져 스며나가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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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3-14 07: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르키에데스의 집광경은 말씀하신대로 21세기에도 수차례 실험을 했는데 곌론은 이론적으로 가능하나 반사울 낮은고대 청동기 거울을 가지고 수백명의 인원이 정확한 촛점을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단 결론을 내렸지요

여울 2026-03-14 15:46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카스피님은 관심사가 넓고 깊으시군요. 닿지 않는 곳이 없으신 듯요. 감사합니다.
 

1. 저강도 운동법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이유

2. 베르그송의 근육 힘쓰기 effort musculaire 와 비교해서 설명

3. 상하체 협응력을 높이는 러닝 저강도 운동


궁금해서 재미어르신께 물어본다.  말귀를 알아들으시는가? 시간을 잘게 쪼개서(공간화) 쓰는 현대인들은 이런 행태를 참을 수 없다고 한다. 신체 역시 부위로 나눠서 생각하는 현대인들은 협응에 대한 관심도 없다고 한다. 


베르그송이 구태여 왜 근육을 가지고 자신의 사상을 전개해나갔을까? 다시 읽으면서 사실 뭘 잘못본 건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일관되게 근육의 힘쓰기를 통해 여러 지각과 감정들의 결을 풀고 있었다. 어쩌면 근육자체가 목적이나 한 듯 말이다. 윌리엄 제임스의 느낌에 비유하여 이렇게 말한다


43 우리는 우리가 몸 속에서 내보내는 힘을 의식하지 못한다. 근육의 에너지가 소모되는 느낌은, 한마디로 노력이 변화를 가져오는 주변의 모든 점, 즉 <수축된 근육, 긴강한 인대, 접힌 관절, 고정된 가슴, 닫힌 성대, 찌푸린 눈살, 다문 턱 등으로부터 오는 복합적 감각이다>.


44 주어진 어떤 노력이 우리에게 증가하는 효과를 내면 낼수록, 그와 더불어 수축되는 근육의 수는 더욱 증가하며, 몸의 주어진 한 점에서 더 큰 강도의 노력을 의식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 그 작업에 관여된 신체의 면적이 더 넓음을 지각하는 것으로 환원된다는 것이다.


45 당신은 그 점진적인 침투, 그 표면의 증가를 느꼈고, 그것은 실제로 분명히 양의 변화이다...근육운동이 증가한다는 의식은 더 큰 수의 주변 감각의 지각과 그들 중 몇몇에서 일어나는 질적 변화의 지각이라는 이중적 지각으로 환원된다.


71 내가 팔로 가벼운 무게를 들 때에는 몸의 모든 나머지 부분은 부동인 채 일련의 근육 감각을 느끼는데, 그 각각은 자신의 <국부적 신호>, 즉 고유한 색조를 가진다. 바로 그러한 일련의 감각들을 나의 의식은 공간 속에서의 연속적 운동이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내가 다음으로 더 무거운 무게를 동일한 높이와 동일한 속도로 들어올린다면, 새로운 일련의 근육 감각들을 거치게 되는데, 그 각각은 이전의 감각연쇄의 대응하는 항과 다르다.


72 운동과 무게는 반성적 의식의 구별이다. 직접적 의식은 이를테면 무게 있는 운동의 감각을 가지며, 그런 감각 자체는 분석하는 일련의 근육 감각으로 해소되는 바, 그 각각은 그 음영에 의해 일어나는 장소(팔끝)를, 그 색채에 의해 들어올리는 무게의 크기를 표현한다.



볕뉘


이런 질문과 응답들을 살피고 있다. 날개뼈 위 승모근 부위가 뭉친다. 어떤 해결책이 있는가하며 말이다. 위의 질문 역시 이런 이유들에 보태서 정작 시장이 되겠는가라는 질문이 빠져있다. 나이들어서 운동이라니, 그러다가 다칩니다. 맞다. 다친다. 다치지 않게 하는 게 기술이다. 그 틈을 이용해 운동기구 하나 더 팔아드시는 부류도 만류할 수는 없다. 


근육힘쓰기는 벌크 업이 아니라 양질 전환의 포인트가 늘 잠재한다는 것이다. 기억을 살리고 키우는 전체의 느낌과 변화를 지향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베르그송이 제임스와 다윈, 스펜서를 언급하면서 말하고 있는 대목이다. 반신불수 환자나 마비 환자가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는 것처럼 검지를 구부리는 것이 호흡의 끝까지 관여된다는 사실을 명백히 하고 있다. 


이런 다급함도 배여있는 것이 그의 글이기도 하다.


-1


우울증과 수면제. 볕과 운동을 담지고 살아가는 젊은 친구가 알바 자리를 얻으려고 전전하다가 아킬레스 건과 약해진 뼈가 다쳐 걷지 못할 채로 지내는 날이 몇 달 더 남았다 한다.


-2


돌아가신 부친은 일흔이 넘도록 턱걸이를 열개씩 하던 양반이었다. 팔십이 넘어서야 오토바이 사고로 운전자들을 돌려보낸 뒤, 다쳐 아문 어깨 근육들을 회복할 수 없다는 확진을 받은 뒤의 절망감이라니. 살피지 못하고 간절한 하루하루의 힘이 되어드리지 못한 것도 마음이 쓰이는 계절이다.


-3


덜 아픈 계절이 되길 바란다. 야만의 세상도 이제 그만이길.


착각


꽃도

당신도

나도


없어없어


남이라,

국경이란 건

선을 긋는다는 일.


전쟁도

지워야할 것처럼


죽여야할 건 없어.


다 너

다 나이진 않아.


시오랑을 빌리지 않더라도 살아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평범하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괜한 신파라니. 쑥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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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끝을 보고싶다. 새로난 연육교로 가로질러 그 모퉁이 카페를 찾아나선다.  해변의 시선으로는 보이지 않던 저 하얀 포말이 희끗하게 남아 있는 해안선을 직접 보고싶다. 줌을 당겼더니 선명하지는 않지만 아스라히 보인다. 조금 더 높은 곳에서는 보이는, 시선의 작은 기울기가 보는 시차를 느끼고 싶은 봄 오후다.



볕뉘.


입술이 마르고 갈라진다. 바세린을 바르고 바나나를 든다.

카페 한 켠에서 유투버인지 

연신 대사를 치며 인터뷰중이다.

애써 시선을 피하며 필사 작업에 올인한다.

 

햇살이 좀더 고우면 좋으련만

흐린 하늘에 간간이 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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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3-11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동네인지 바닷가 모습이 참 아름다와 보이네요.

여울 2026-03-12 10:56   좋아요 0 | URL
여기는 그림 작업중인 포항 앞 바다에요. 건너편 왼 편으로 쭉 가면 호미곶이기도 하죠. 여남마을, 환호마을에서 본 전경이기도 합니다.
 


아침 7시반 전에 도착이라? 더구나 영하 6,7도라니. 숙소를 잡을까 생각해보지만 성주공업단지 옆에 하나, 성주읍을 통틀어서 또 하나 대회장과 떨어져 있다. 시외버스 편도 검색해보지만 아예 배차조차 없다.  지방 간 왕래하기는 별따기보다 어렵다. 상가든 어디든 가려면 서울로 향하는 선을 타고 거꾸로 내려오는 길밖에 없다니. 이런 것이 현실이다. 새삼 분권까지 말할 필요가 있을까? 자차이용도 왜관까지 가서 역으로 내려와야 한다.  다섯시에 기상, 다섯시 반 집을 나선다.


국밥을 들고 주차장에서 빠져나오길 한 시간여, 오후 두시반에서야 집에 돌아오다. 브레이크 타임이라 하는 곳이 없는데, 무한대패삼겹집이 오픈되어 있다. 손님들도 여러팀 있다니. 2인 값을 받겠다며 모든 것이 셀프라는 걸 환기시킨다.  조금씩 대패, 삼겹, 목살까지 갖은 양념에 챙겨들고 라면까지 든다. 뒤 늦은 오수와 함께 한밤에 부족한 듯싶어 맥주로 입가심을 한다.  옛기록을 들여다보니 스무 해 전이다. 하프를 달린 것도 아득한 일이었다.


































돌아오는 내내 라디오방송의 나희덕과 장강명 토크를 들었다. 처음에 목소리를 못알아들어서, 왜 이리 아는 체하는 것이지. 혹시 오버 아닐까? 하다가 빨려들어갔는데. 환갑을 맞은 나희덕시인은 쏘로의 책을 십년만에 다시 낸다고 한다. 장강명 역시 그 당시 일기,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런 습관에 다시 한번 깨우침을 얻는 듯하다.


요즈음은 시와 소설을 참 멀리했지 싶다. 그래서 두 분을 지렛대 삼아 한번 입질을 해본다.


한 시인에게서 추천받은 시인의 시집이기도 하다. 어서 어서. 구입부터 하자.


볕뉘. 


당분간 하프는 달리지 않을 예정이다. 후반 15k 이후는 다리가 잠겼는데, 이는 그동안 긴 거리 달리기가 어려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신발을 신으며 발 바깥 뒤축이 닳는 외전이 있는데, 장기간 애용을 했더니 발이 시큰거려 어려웠다. 새신을 신고나서야 이것이 문제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신발 덕을 보다니...


당분간 짧은 거리를 달려볼 마음이다. 싱씽 달리는 맛도 느껴보려고 한다. 음주도 가뭄에 콩나듯이 하고 벽돌책깨기에 들어갈 예정이야. 칩거라고 할 수 있나...아무렴 어때. 그냥 사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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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3-10 15: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프완주라니 여울님 참 대단하셔요

여울 2026-03-11 09:17   좋아요 0 | URL
달리다보면 각양각색의 체구와 달리는 모습들도 천차만별이네요. 그런 모습들도 재미있고, 축제가 사라져버린 시공간에 일종의 카니발같다는 느낌도 듭니다. 그런 맛에 들려 대회를 찾아가게 되는지도 모르겠어요.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그럴 거라고...생동감 넘치는 모습들이 좋아요. 일찍 설레는 기분도 좋구요. 여행 플러스 알파.라 할까
 




올해는 일터 일들로 부산스러워 꽃마실도 제대로 가질 못한다. 동네 후미진 공간에 핀 매화꽃가지를 몇 개 챙겨 꽃구경하고, 개나리와 벚꽃 잘린 가지들을 가져와 미리 준비한 것이 전부다. 아 프리지어 몇 단을 사서 꽃구경하는 것도 얘기는 해야겠다.  


책읽기에도 이렇게 선물같은 봄책들이 있다 싶다. 아껴서 읽거나 조심해서 읽을 수밖에 없는 책말이다. 예전에 읽으려했지만 엄두가 나지 않던 책들 말이다. 그들이 봄꽃 순서에 맞춰 필 듯 대기하고 있다. 그저 좋은 봄밤이다. 다시 잎을 피우고 뿌리를 내리는 개나리처럼 다른 저자들과 만나게하는 맛이 일미다.


캉길렘, 시몽동, 바슐라르  잔뜩 밀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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