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모임에서 읽었던 책. 그리고 <이런이론>에서 해러웨이를 읽는다. 1장과 2장. 개와 인간, 기묘한 친척 그리고 심포이에시스.  함께 나눈다.


모임에 앞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거의 모든 성원이 거의 완독을 한 듯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을까 싶다. 이자벨의 책이 어렵다고 발제자도 서너 번을 읽고 요약해도 잘 알 수가 없다고 했는데, 이렇게 쉽게 읽힐 리가 없을텐데. 하면서도  이자벨의 탁월함에 영향을 받은 것인가 싶기도 하고, 물음표를 던지게도 된다.


덕분에 해러웨이를 이렇게 한 번에 정리할 수 있는 기회라니 흥분되는 모임이기도 하다. 오늘도 키워드 노트를 사고 책 제목과 달팽이로고를 뒷장에 붙인다.


브루노와 셋은 친구들이기도 한데, 해러웨이가 브루노보고 부엌 싱크대 증후군이 있어 모든 정보를 우겨넣는다고 놀려먹은 일화도 소개하는 해러웨인 선언문의 인터뷰 장면이 정말 많은 것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인터뷰 대목들이 위 해러웨이 공산의 사유 목차와 닮아있기도 하다. 


다음에 이야기하고 싶지만 이들은 되기 하기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더불어 -되기. 방법, 방법들 그리고 삶의 광채에 대해서 나눈다. 우선 급하다면 최유미 해설본과 해러웨이 선언문, 다른과학은 가능하다 세권을 보면 요점을 추수릴 수 있고 헛갈리지 않게 관점을 잡아낼 수 있겠다 싶다.


오랜만에 흥미진진한 저녁독서모임이 된 것 같다. 말미 봄밤에 이런 선물이라니.


볕뉘


천주교 독실한 신자인 해러웨이는 요한복음을 얘기한다. 육화된 말. 예수를 먹는다. 서울행사를 다녀오면서 막내가 건넨 말과 겹친다. 요한복음서도 마무리를 지어야겠다. 덕분에.


거기에다가 어린 시절 자신은 이분법으로 사유한 적이 결코 없었다고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캐런 바라드까지 절친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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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학자의 시선은 어떨까?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세계사의 편린들은 어떻게 정렬되는가? 30-40년의 흐름들을 읽어내는 방법은 무엇인가? 다시 극우파시스트의 역사로 읽어내서 히틀러의 <<나의투쟁>>을 강독하는 친구들이 버젓이 정치를 하고 의원을 하고 테러를 할 수 있는 세상이라니.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다는 말이 얼마나 허망한지 그것을 느끼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시선은 관조라는 약간은 피해갔다는 안도감이 섞인 표현이기도 하다. 언제라도 당사자가 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다행히 현실을 비껴간 것을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러시아문학을 하는 평화학자로 알고있던 이문영교수는 톨스토이 푸쉬킨 도스토예프스키 의 문학들 사이에서 삶의 결을 찾는 문학도로 알고 있던 것은 착각이었나보다. 책에 중간중간 나오는 도표와 그림들은 이해가 쏙쏙될 정도로 간결하고 일관된다. 어떻게 그 많은 자료들을 간추리고 다른 결들의 자료를 정리할 수 있을까? 덕분에 주마간산의 사건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는 기분이다. 정욱식, 김종대 보다 어쩌면 더 넓은 결과 안목을 갖는 전문가가 아닌가 싶다. 


소련의 멸망이후, 고르바초프 옐친. 동유럽이 하나하나 무너지며 펼쳐진 국제질서에 미국의 배후와 그물망은 변함이 없는 것으로 읽혀진다. 그것이 나토이고 나토의 파급효과를 봐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만이 아니라 짜르제국의 역사나 레닌의 정책, 스탈린의 무도함까지 살펴봐야 그래도 좀더 객관적인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십분 한시간에 정리해주는 전쟁사나 역사 유투브들이 넘친다. 정보과잉뿐만이 아니라 그 흡수속도만큼이나 더 빨리 증발하는 정보가 문제다. 그만큼 받아들이는 시청자들의 접근 목적도 얇다. 


개인적으로 동아시아 전쟁과 평화라는 책을 반복해서 본 경험이 있다. 열 번 가까이 읽다보니 사건들은 또 다른 관통의 힘을 갖게 된 것 같다.  


세상에는 남의 일이란 없는 것 같다. 그만큼 개인의 시선은 자신의 삶과 맞닿아 넓고 깊어야 될 것 같기도 하다. 그만큼 삶들은 어렵고 복잡하다. 단 한 명, 단 한 마리, 단 한 숨이라도 붙어있는 것들을 없애버려야 할 이유는 없다. 국가라는 명목으로 민족이라는 명목으로 남을 죽이고 침략하고 전쟁을 일으키는 야만의 역사는 언제 끝이 날까. 어쩌면 평화-디테일이 살아있는 이문영작가의 결처럼 서로 전쟁의 망상을 일상에서 깨뜨려가는 하루하루가 조금은 구제해줄 수 있을 것이다. 더 날카로워지고 더 예민해지는 일상인들의 시선이 저 무도한 무리들, 국가와 민족을 울부짓고 명분을 쳐바르는 족속들을 향해야 할 것이다.


톨스토이가 그렇게 간절하게 실천한 비폭력의 세상은 전쟁무기로 범벅이 되어있다. 지금 여기도 그 당사자이다. 전쟁무기라니..누굴 죽여서 버는 돈이라니.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죽여서 없애버려야 할 것은 하나도 없다.


볕뉘


읽는 내내 19세기 러시아 지식인들이 떠올랐고 바쿠닌의 숨결도, 그리고 박홍규교수님이 바쿠닌평전을 새로써서 출간했다는 사실도 알게된다. 유럽과는 다른 결의 전망, 세상은 이전과 다른 전망과 행동이 필요하다. 이란-미국,이스라엘...전쟁들은 역사를 부여잡고 연결되어 있다. 부디 휴전과 평화가 오길. 저자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이틀에 완독할 수 있을 정도로 편집도 가독성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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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4-14 14: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기존의 한국에서 러우 전쟁을 다루는 시각과는 약간 궤를 달리하는 책으로 알고 있습니다.
뭐 러우 전쟁의 이유야 책에서 밝히듯이 여러가지 복잡 다단한 이유가 많겠지만 가장 기본적인 원인은 기존 서유럽으 끊임없는 나토팽창 정책이 가장 큰 이유라고 여겨집니다.쏘련의 해체이후 미국과 서유럽(나토)는 러시아와 나토의 동방추진정책(동유럽의 나토화)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으나 90년대 러시아가 쇠약해지자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러사아 바향으로 나토를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했고 러시아의 역린이라고 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 우크라이나까지 나토에 가입시키려고 은밀히 추진했지요.러시아는 사실 유럽에 큰 피해 의식(나폴레옹과 히틀러의 러시아 침공으로 인한 수천만명의 피해자 발생)이 있어서 러시아 본토와 유럽간에 완충 지대를 필요로 했고 냉전시대에는 동유럽(바르샤바 조약기구)이 있었고 냉전후에는 친척간이라고 할 수 있는 우크라이나가 최후의 보루였지요.
하지만 부패했던 젤렌스키와 친 유럽파들이 이를 무시했고 러시아의 몇번의 경고에도 유럽과 손발을 맞추자 결국 전쟁이 일어난 것이지요.BBC에서 밝혔지만 실제 전쟁 초기에 정전할 수 있었는데 영국 전 총리가 우크라이나로 날아가 유럽의 도움(이라고 하고 실제는 고리의 전쟁자금 지원임)을 약속했고 그 결과 젤렌스카기 장기간 전쟁을 하게 된 것이죠.이는 전쟁준비를 등한시 앴던 유럽과 나토가 러시아의 힘을 빼놓고 전쟁물자 수급 시간을 벌기 위해서 러시아군을 우크라이나에 잡아 둠으로써 피해를 주고자 한 것인데 그 결과 우크라이나는 실제 쑥대밭이 된 것입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잘 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유럽과 나토의 동진전쟁탓에 우크라이나가 피해를 입은 것이죠.
책 제목에서 밝혔듯이 러우 전쟁은 우아한 위선의 시대에서 정직한 야만의 시대로 가는 단초를 제공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울 2026-04-14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요약해주셨네요. 다극 시대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 지금현실이다라고 전문가들 의견이 모아지는 듯요.
 

 어느 책에서인가? 누구인지 기억까지 바랬지만 이부자리 곁에 늘 있던 책이 잡힌다. 너무도 유명해서 가까이 가기 먼 당신. 책날개를 펼쳐 꼼꼼이 본다. 어처구니 없게도 너무도 가련한 삶을 살았다. 그나마 찰스부고스키는 안락한 삶을 누린 셈이다. 막연한 생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은 가혹하다. 검침원(검사원)의 일자리를 얻고서야 글을 쓸 수 있음에야. 


<빌리 버드>때문에 구입한 책이다. 바틀비야 너무도 인용이 많이 되는 소설이기에, 이 <빌리 버드>를 읽지 않고서야 멜빌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문구였던 것 같다. 


세상은 늘 모르는 것 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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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권을 챙긴다. 


선거사무소도 둘러볼 겸  대전을 다녀오다.  용문역 6번출구를 따라 100여미터 가면 선거 홍보물이 눈이 띈다. 


음료수를 사려는데 마땅한 가게가 없다. 골목으로 들어서자 전자타운 빌딩이 초라하다. 주변에는 피시부품 가게들이 몇 군데 열려있고 을씨년스럽다.


<벤투의스케치북>님의 소개로 읽게된 책인데, 최신 흐름을 종합한 2020년, 2022년 번역본이니 정말 읽을만 하다. 암흑에너지와 통일장이론에 대한 언급들, 기차안과 전철역에서 읽고 하마터면 용문역도 지나칠 뻔했다. 


김동석시의원 후보는 아침부터 저녁늦게까지 어디든 달려간다. 민원이 있는 곳은 물론 마음이 있는 어디나 간다.  옆 호떡집의 호떡을 들면서 얘기를 나누다보니 벌써 전자타운 관계자들과 깊은 이야기를 나눠서 문제점들을 속속들이 짚고 있다.  


건우아빠 김동석. 불의의 사고로 1급장애를 앓고 있는 아들의 하루하루는 긴박하다. 하물며 그렇게 온몸을 갈아넣다시피 이룬 재활병원도 운영을 산넘어 산이다. 그가 드디어 정치 일선에 나선 것이다. (대전에 있는 알라디너분들, 특히 선거구에 지인을 둔 알라디너님들 이러한 간절함에 손과 마음을 내어주길 바랍니다. )


빌라/단독주택 구역 분리수거, 러너와 자전거이용자들을 위한 대전천 짐보관소와 음료자판기 설치 부터 생활형, 일상형 제언들을 속속들이 받아들여 구체화하고 있다. 그는 다른 정치인과 다르다. 지금까지 몸소 모든 상황을 타개하고 만들어낸 친구이기도 하다. 


정치는 추상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 무엇보다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다면 좋은 정치인이 될 수 없다. 세상은 도나해러웨이가 얘기하듯 아이러니로 가득차 있다. 그 매듭을 풀어내고 속 시원함을 주는 것이 정치인의 역할이기도 하다. 


두 권의 물리학 책은 지극히 평이하며 물리의 정수를 대중들에게 설득력있게 풀어준다.  이와같이 정치적 역량에 있어서 이미 그는 수백번의 검증을 여러 활동을 통해 마친 친구다. 믿고 찍으셔도 된다. 소문내주셔도 된다. 플리즈.


볕뉘


참고로 건립운동사 표지는 제가 그린 작품이다. <<오늘은 달리는 날이야>>란 그림책 속에 있는 기적의 마라톤 출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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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 위엔 승자독식과 과잉대표가 동전 양면처럼 붙어있다. 승자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관대하다. 성공에 대한 욕망과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섭섭함이 내장되어 마지막 한방에 모든 것을 뒤집고 싶어하는 욕망도 과잉이다. 실력이란 자신을 볼 눈도 증명할 수 없는 것이니 이런 심리와 구조를 아는 이들은 그 욕망을 사다리로 거칠게 진입한다. 실력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야. 명함이 필요해. 필요하다고, 뭘해도 훈장이 필요하지. 우리 사회는 그런 사회야. 받은 설움을 모조리 갚아주지. 다 무릎꿇게 만들거야. 이런 유아심리까지 팽배하다. 이렇게 우리사회가 성숙하지 못하는 것은 쉽고 단순하다. 이유를 대자면 말이다.


이렇게 실력자들보다는 과잉대표나 사기꾼들이 설칠 수 있는 자양분이 충분한 사회가 된 것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병목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과도한 불신이 자리잡기도 한다. 사람도 실력도 보는 눈이 없으니 믿지 못한다. 기껏해야 명함, 욕망의 사다리에 경도되거나 힘이 밀리는 부분에서 과도하게 위축되고 마는 것이다. 


모두가 부러운 인기와 자리, 그리고 힘은 사실 그렇게 적절하게 다룰 수 있는 도구를 넘어선다. 불과 같이 온기와 잘 활용할 수 있다면 문제소지가 적겠지만, 감당할 수 없을 정도라면 무척 위험한 것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사회문화적인 분위기는 이런 사항들을 조심성있게 다루질 않는다. 대부분의 자식들을 이런 불구덩이로 내몰고 싶어 안달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사회문화적 미성숙이라 이름붙이는 것이다. 


돈도, 명예도, 삶도 모두 한방이다. 



파인만이 설명했듯이 빛은 모든 길을 동시에 간다. 우리에겐 최단시간 짧은 거리로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경로를 다 간다. 우리가 빛이라고 여기는 모든 것도 이런 경로를 간다. 이분법으로 설명해내는 단어로 묘사할 수 없다. 보이지 않는 모든 길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한방이라고 여기는 것들은 모두 한방이 아니다. 숨은 길들을 보거나 느끼는 것이 우리를 충만하게 하는 것이다. 일상의 즐거움이나 짜투리 시간을 채우는 능력들이 미래를 발견하는 숨은 재주이기도 하다. 일상을 온몸에 붙이다보면 하나하나가 모두 길이다. 삶을 탱글탱글하게 만드는... ...


 볕뉘. 


 경로적분과 삶이라는 자료를 모아보고 있다. 그러다가 파인만의 직강을 보고서야 아차 싶다. 제대로 읽은 적이 없기때문이다. 진작 봤어야 하는데, 겉도는 이야기들이 여기서 나온 것이다. 방법이 중요하다. 맥락 하나를 놓치거나 빠뜨리면 전체의 서사를 알 길이 없다. 그래서 알려주는 방법 하나하나가 더 어렵다. 알 수있게 한다는 일 또한 하나의 섬에 도달하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파인만은 과정의 묘미를 일찍 깊이 체득한 듯싶다. 물리학에서도 겉돌던 앎들이 벡터를 갖기 시작한다. 출발은 여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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