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밤. 영달이가 잠들고 권여선의 <내 정원의 붉은 열매>를 읽기 시작했다. 하루 중 내가 조용히 책읽기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이다. 어깨가 쑤신 날도, 눈이 뻑뻑한 날도, 이도저도 다 귀찮은 날도, 아주 잠깐일지언정 이 시간을 건너뛸 수 없다.  

  권여선이 낸 책은 다 읽었고 누군가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이번에도 역시 특유의 소설스럽지(?) 않은 관념적 문장들 때문에 독서의 맥이 뚝, 뚝, 끊기곤 했지만 어쩌면 바로 그 점 때문에, 그 거칠게 밟히는 성찰과 진실 때문에, 이 작가를 계속 읽게 되는 것 같다. 윤기라곤 없이 시종일관 싸한 화법도 나를 닮지 않아 그런가. 괜히 매력적이란 말이지. 무엇인가가 완성되는 순간은 그것을 완전히 잃고, 잃었다는 것마저 완전히 잊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우연히 그 언저리를 헛짚는 순간이다(p.118). 이러한 아포리즘에 걸려들기 위해 그녀의 책을 읽고, 또 읽는다.    

  그런데 엊그제 밤은 주인공들도 심란하고 나도 좀 심란했던 모양이다. 오전, 오후로 친정과 우리집에 손님이 다녀간 날이라 좀 피곤했고 낮 동안의 회상들로 머릿속이 어수선했다. Y와의 오랜 통화가 귓가에 맴맴 돌고 책 속에는 왜 이렇게 맛나게 술 마시는 장면이 많은지. 마음은 너울너울.    

  벌써 십년 전인데 가끔 우울할 때마다 Y가 창밖을 보라, 에 맞춰 춤추던 장면을 떠올리며 혼자 킥킥대곤 한다. 눈 오는 저녁, Y는 아침에 발표라도 있었는지 갈색 정장을 입고 동아리방에 출근을 했는데 장난기 심한 선배 하나가 날 좀 웃겨달라고 했고, 그건 그냥 장난 삼아 던진 말이라는 걸 누구나 다 알았는데, 그 순간 Y가 그럼 제가 춤을 출테니 다 같이 노래를 불러주세요, 했다. 다들 이게 웬 떡이냐 싶은 표정들로 오냐오냐, 호응을 했고 박수와 함께 노래가 시작되자 Y는 양손바닥으로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시늉을 하며 정말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나는 배꼽이 빠질 지경인데 Y의 그 하나하나의 동작에 몰입하는 표정이 하도 비장해서 소리도 못 내고 웃느라 눈물만 질질 흘렸던 추억이 있다.     

  언젠가 Y에 대해 긴 페이퍼를 썼던 기억이 난다. 연락도 안 되고 몹시 보고 싶을 때였다. 다짜고짜 춤을 추는 엉뚱함과 더불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기 일쑤인 신기루 같은 친구였는데 다시 만났을 땐 다른 도시에서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궁금증이 폭발해 입이 터질 것 같았지만 섣부른 노파심에 자세히 캐묻지 않았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Y는 함께 떠난 여행길에서 그간의 변화를 찬찬히 들려주었다. 나는 잘했다고 했고 걱정스럽다고도 했고 부럽다고도, 그러니까 더 잘하라고 했던 것 같다. 이후로 Y는 내 잔소리가 정겹다며 일부러 전화를 걸어 시시콜콜 잔소리를 경청하기도 했다.       

  내 출산 이후에는 좀처럼 타이밍이 안 맞아 연락을 자주 못했는데 엊그제, 무척 오랜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근황을 묻자 Y는 너무 멀리 온 것 같다, 는 말을 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아주 보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비전이 없고 정작 하고 싶었던 일에서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란다. 몇 해 전 가을, 상경했을 때만 해도 내 눈에 비친 Y는 꿈을 향해 꾸준히 내공을 쌓고 있었다. 대신, 직장을 계속 다녀야 하나, 관둬야 하나, 를 놓고 고민 중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직장에서는 자리가 잡혀 가는 반면, 꿈으로부터 너무 멀리 온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책을 읽다 말고 Y의 목소리가 맴돌아 잠이 오지 않는데도 그냥 눈을 감았다. 너무 멀리 왔다는 것. 누구나 한번쯤 그런 아쉬움으로 한탄하는 일이 없겠냐만은 Y의 탄식에 나는 최후의 보루가 무너지기라도 한 듯 허망했다. 생쥐처럼 작은 아이였지만 코끼리처럼 크고 묵묵한 행보에 나는 십년 전부터 지금껏 무언의 박수를 보내왔다. 오직 내 앞의 선배를 즐겁게 해주겠다는 일념 하에 주위 시선 아랑곳하지 않고 어색하기 짝이 없는, 그러나 열렬한 율동을 보여주었던 Y. 어떤 면에서 Y는 유일무이한 존재였다.    

  나는 그새 많은 부분, 세속적인 잣대와 때낀 시선으로 사람을 판단하거나 바라보게 되었지만 우정에 대해서는 그리 되지 않고 그 우정 가운데에서도 Y를 향한 그것은 마냥 스무살 무렵에 머물러 있다. 가까울수록 너절해지는 관계들 속에서 Y와의 우정은 저만치 혼자 피어 있는 꽃과 같았다. 거기엔 나의 허영심도 한몫해서 Y의 속사정은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너만은 영원히 정글의 거대한 초식동물로 살아다오, 하는 바람이 있었다. 세월을 비껴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감수해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지 않는데도 말이다.

  Y와는 술약속을 하고 통화를 맺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른다. 그저 막연히, 늘 그렇듯, 올해가 가기 전. 홀짝홀짝 안색의 요동 없이 말끔히 잔을 비우는 Y의 술마시는 모습이 그립다. 밤이 길어지는 계절이 오면 마주 앉아, 혹은 아직도 방황 중인 S를 끼워, 두런두런 너희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너무 멀리 온 뒤, 각자의 헛짚은 언저리에 대한 긴긴 사연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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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매미가 막바지 울음을 울고 있고 이제 곧 가을이다. 이 여름, 호된 더위 속 전쟁 같은 육아를 치러야 했다. 어제 아침엔 영달이가 포도알을 삼키는 바람에 십년감수. 그처럼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처음 보았다. 새파랗다 못해 새카맣게 질린. 우는데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고 나는 너무 놀라 울먹울먹. 아빠가 등을 두드리고 엄마가 영달이 목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뭉글뭉글해진 포도알을 빼내자 그제서야 우앙,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몇 분도 안 되는 짧은 순간, 안절부절 제정신이 아닌 나를 보았다. 영달이는 언제 그랬냐는듯 안색이 돌아와 다시 생긋거렸지만 나는 이 아기가 정말 내 아기인가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안쓰럽고 고마운 마음에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고, 안아주고 또 안아주고. 여우누이뎐의 구미호 어미마냥 가슴절절. 이럴 때 보면 나는 뭣도 아니고 그냥 하염없이 바보 같은 엄마인 것이다. 벤야민은 <일방통행로>에서 '행복하다는 것은 소스라쳐 놀라는 일 없이 자기 자신을 알아채게 되는 것을 말한다'고 썼다. 한때 부디 그랬으면, 했고 여전히 일리있는 발언이지만 이거야 원. 엄마들은 예외랄 수 밖에.       

#  오빠가 출장 왔다가 잠깐 집에 들렀다. 엄마는 피로한 기색일랑 싹 접은 채 부랴부랴 국을 데우고 조기를 굽고. 든든한 밥 한끼 먹여보내기 위해 수선을 떨었다. 오빠는 뚝배기에 밥을 말아 조기도 올리고 파김치도 올리고, 땀을 뻘뻘 흘리며 밥을 참 맛있게도 먹었다. 사람을 보고 웃기는 해도 안기지는 않는 영달이가 외삼촌 품에 가서는 어째 얌전을 떨었다. 땡깡쟁이였던 내가 또 다른 땡깡쟁이 딸을 낳았다는 것이 오빠는 못내 신기한 모양이었고 그참에 옛날 옛집에 살던 이야기를 몇 마디 주고받았다. 오빠는 어릴적부터 온순하지만 강했고 나이 먹은 지금도 여전히 그렇고, 그 점 고맙고 든든하지만 단단한 어깨를 보고 있자니 저것이 단단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단단하니 얼마나 또 무거울까 싶어 안쓰러웠다. 사춘기 무렵에는 오빠를 향해, 오빠의 뒷바라지를 하는 부모님을 향해 복잡한 양가감정도 많았는데 세월이 지났다고 고스란히 묻혀지는 것은 아니지만 오빠도 어렸다는 것. 나도 부모가 되었다는 것. 그런 사실들이 갖가지 모순된 감정들을 뭉근한 이해로 승화시켜주기도 한다. 모처럼 만났는데도 오빠는 오래 있지 못하고 커피 한잔 마시곤 다시 서울로 출발했다. 전천후 돌격기의 양날개 같은 어깨에 힘을 빡 주고서. 당부의 말은 엄마가 다 했으니 나는 영달이를 안고 손을 높이 흔들어주었다.     

#  운전 중에 사고를 낼 뻔 했다. 더구나 뒷좌석에 영달이와 엄마까지 싣고서. 무개념 차선변경녀, 바로 나였다. 졸음운전까지는 아니지만 머릿속이 약간 멍하거나 띵했고 빨리 집에 도착하고 싶은 마음에 좌측 깜빡이 넣은 채 마구 왼쪽으로 돌진. 사각지대라 불리는 곳의 은색 승합차는 전혀 안 보였고 뒷쪽의 빨간 마티즈만 신경 쓰고 있었는데 빠앙-하는 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니 승합차의 뿔난 아저씨 멈춰선다. 욕 먹어도 쌀 만큼 잘못이 명백하므로 손을 반짝 들고 워워, 죄송하다는 사인을 보냈는데 머릿속은 계속 멍한 상태. 어제는 영달이 목구멍에 포도알이 들어가는 줄도 모르더니 오늘은 개념박살 끼어들기로 세 모녀가 다 같이 황천길 갈 뻔 했다. 아무래도 요새 좀 피곤한가 보다. 피곤할 땐 운전하지 말아야 하는데. 가까운 데만 왔다갔다 하다보니 방심하고 정신 안 차렸던 것이 문제다. 집에 도착하고 나서야 등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무슨 짓을 저지르며 집까지 왔는지 그제서야 제대로 기억이 났고 반성을 했다. 이런 일이 없는데, 이런 일이 없는데, 만 계속 중얼중얼. 앞으로 정말 이런 일이 없으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지. 영달아, 그나저나 엄마 너무 믿지 말아야겠다. 엄마가 요모양 요꼴이래서 미안.      

9월의 시작이 이랬다. 조심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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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10-09-02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심성도 조심성이지만, 피곤하실 때는 쉬셔야죠..

깐따삐야 2010-09-02 18:22   좋아요 0 | URL
그쵸? 그나저나 요새는 어째 쉬어도 피곤합니다. 애엄마는 쉬어도 쉬는 게 아닌가 봐요.ㅠ

레와 2010-09-01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쿠 얼마나 놀랬을까..!

깐따삐야 2010-09-02 18:25   좋아요 0 | URL
그 순간엔 얼얼했고 집에 도착하니 식은땀이 송송 맺히더라구요. 혹 징크스가 생길까봐 오늘 일부러 어제 갔던 그 길로 운전했어요. 조심 좀 하다보니 이번엔 뒤에서 빵빵! 우리나라에서는 길에 목숨 내놓고 운전하는 것 같아요.

pjy 2010-09-03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씨가 사람을 지치게 하지요--; 우선은 피곤을 풀고 충전한뒤! 그담에 조심 또 조심입니다~

깐따삐야 2010-09-03 16:13   좋아요 0 | URL
처서는 말로만 처서였나요.ㅠ 충전 제대로 하려면 백만년은 쉬어야 할 것 같아욤. 흑!
 

나는 어머니 무덤이 있는 우리 집 선산의, 다복솔에 덮인 작은 산등성이가 그리워서 새벽 술을 마시면서 식구들 몰래 눈물을 훔치고는 했습니다. 내게는 그 작은 산등성이가 세계의 중심입니다. 

나에게 어머니는 유한(遺恨)과 동의어입니다. 

슬픈 그리움의 원적(原籍)입니다. 

- 이윤기, '그리움이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하면' 中, <어른의 학교> -  

  시공을 초월한 광활한 사유를 하셨던 어른도 알고보면 어머니 무덤이 있는 작은 산등성이가 세계의 중심이었다. 다시 읽으니 넉넉한 촌철살인의 경구들 속에서 위의 고백이 눈에 띤다. 안타깝기에 앞서 참 아까운 죽음이지만 이제는 그리움이 시작되는 저 푸근한 산등성이로 훨훨 날아가시길 빈다.  

  어린 것들도 능히 스승 노릇을 하니 우리 사는 데가 온통 학교가 아니고 무엇이냐던 겸손한 말씀처럼 남은 사람들은 그 배움의 의지와 자세를 기억하며 주어진 삶을 차곡차곡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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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10-08-28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옹'으로 호칭하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였죠. 갑작스런 소식에 안타깝기만 합니다...

깐따삐야 2010-08-28 12:09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앞으로 한 십년은 더 활기차게 쓰셨을텐데 참 아깝고 안타까워요.
 

  요즘 내 눈에 꽂히는 것들이다. 영달이를 낳고 보니 세상에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있었다는 것이 새롭게 보이고, 영달이가 꽃을 좋아하니 꽃이 있는 곳이면 화단이든 화원이든 발길이 머문다. 나가자고 보채는 아이를 데리고 나온 할머니들도 왜 이렇게 많은지. 많이 보이는지.   

  이른 저녁, 목욕을 마치고 좀 선선해지면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씩 산책하곤 하는데 어제는 나갔다가 귀여운 여자아이를 만났다. 조랑말 무늬 상하복에 단발머리, 까무잡잡한 피부에 이목구비가 동글동글한 세살짜리 꼬마아가씨였는데 블라우스와 바지가 휘휘 돌아가도록 빠짝 여윈 할머니와 놀이터 회전대를 타며 놀고 있었다. 내가 영달이 대신, 언니야, 하고 부르니 반달눈으로 웃어가며 반갑게 다가왔다. 토실토실한 영달이 팔을 만져보더니 느낌이 좋은지 얼굴을 만지려하자 할머니가 얼굴은 만지지 마, 하고 제지, 나는 괜찮다고 했다. 할머니는 몇개월이냐고 물으셨고 우리 영달이는 언제 저만큼 크나요, 했더니 금방 큰다고 걱정 말란다. 아이를 데리고 나온 사람들은 엄마든, 할머니든, 누구나 쉽게 말문을 트고 하나같이 언제 크나요, 란 말에 하나같이 금방, 이라고 말한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그 꼬마를 또 만났다. 마트에서 껌을 사갖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영달이 팔을 만지며 또 좋아라 한다. 언니야, 안녕, 그러자 빠빠이를 하며 할머니 손을 잡고 들어간다. 바람 한번 쏘였으니 할머니는 저녁밥을 지어 아이에게 먹일 것이고 어쩌면 아이는 또 나가자고 보챌 지도 모르겠다.    

  손에 닿는 것이면 무엇이든 입으로 가져가기 때문에 아직은 바라볼 수밖에 없지만 영달이는 꽃을 아이들만큼이나 좋아한다. 처음에 아이들에게 호기심을 보일 땐 큰 사람과 작은 사람을 어떻게 구분하고 좋아할까, 궁금했는데 그것을 구분할 수 있다기보다는 아이들의 다이나믹한 움직임과 시끌벅적한 소리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럼 꽃은 왜 좋아할까. 움직이지도 않고 소리조차 없는데. 알록달록한 색감 때문일까. 하지만 무덤덤한 흰꽃이나 눈에 잘 띄지 않는 잔꽃은 어떻게 알아보고 좋아할까. 나는 그냥 영달이도 사람이니까, 라고 결론지었다. 좋아하지 않는 꽃은 있어도 꽃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은 아직 못 보았으니까. 영달이 덕분에 나도 뒤늦게 꽃과 꽃 이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친정집과 우리집, 두 아파트 단지 화단에 공통으로 핀 꽃이 '베고리아'다. 항상 지나치던 꽃이었는데 이제서야 제대로 살펴보고 이름도 알았다.  

  그리고 할머니. 세상엔 아이들을 돌봐주는 할머니들이 참 많기도 하다. 당신 자식 뼈빠지게 키워서 세상에 내놓고 나니 이제는 그 자식들이 또 자식을 낳아 키워달란다. 일 할래, 애 볼래, 하면 일한다고, 일한 공은 있어도 애 키워준 공은 없다고, 그런 말들이 실상 하나도 틀리지 않는데 알면서도 어찌 하겠는가. 자식들의 이기심은 가장 믿을만한 양육자에게 쏠리기 마련이고 부모는 부모라서 그것을 거절하지 못한다. 놀이터에 나가보면 얼굴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그네를 밀어주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어떤 할머니는 물총을 쏘는 손자에게 제발 나무한테만 쏘라고 다그치지만 손자는 그럴수록 더욱 사방팔방 물총을 쏘아댄다. 늦은 밤, 아이 우는 소리라도 들리면 이젠 시끄럽다기 보다는 아이를 달래고 있을 누군가가 얼마나 힘이 들까 싶다. 세상의 할머니들은 할머니의 정성스런 손길 덕분에 무럭무럭 '금방' 크는 아이들처럼 어느새 '금방' 늙고 만다. 영달이도 나와 함께 있을 때 보면 결코 쉬운 아이는 아닌데 외할머니 노고 덕에 잘 웃고 잘 먹으며 쑥쑥 크고 있다. 그리고 영달이의 외할머니는 쑥쑥 늙고 있다. 보인다.  

  보이지도 않았고, 보려고도 하지 않았던, 하지만 이제는 두눈과 마음에 꼭꼭 밟히는, 세상의 아이들과 꽃과 할머니들이 내내 건강하길. 이 거친 더위도 그들을 위해 어서 꺾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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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현 2011-06-21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꽃할머니힘네새요
 

  영달이를 위한 드라이브 중이었고 아주 사소한 한 마디, 지금은 기억나지도 않는, 그 한 마디로 인해 내 면상이 종잇장처럼 꼬깃꼬깃 구겨졌다. 나는 남편에게 토 달지 말고 인정하라고 소리쳤고 그는 뭐라뭐라 대꾸를 하더니만 리어 뷰 미러 아닌, 여기선 그냥 빽미러로 빽빽거리는 나를 힐끔 쳐다봤다. 당신, 얼굴 좀 봐요. 지금 어떤가.

  내 얼굴이 보일 턱이 없었고 물론 보고싶지도 않았고 엄마, 아빠의 투닥거리는 언쟁 틈에 눈치 잽싼 영달이는 전후좌우 고갯짓을 멈추는가 싶더니 까무룩 잠이 들었다. 전날 밤, 천둥과 벼락 소리에 잠을 못 자 눈알은 계속 따끔거렸고 몸둥이는 천근만근. 피로가 극에 달한 탓인지 내 주특기인 온몸으로 화내기를 제대로 실연하고 있었다. 날카롭게 주고받던 말들이 잠잠해질 즈음, 운전 잘하고 있는 남편에게 운전이나 똑바로 하라고 한번 더 소리쳤다.  

  이번엔 남편도 쉬이 굽히고 들어오지 않을 기세였고 나도 그럼 어디 한번 해보자는 식이었는데 그 사이 집에 도착, 영달이가 잠에서 깨어나고 이래저래 시간이 흐른 후, 그가 너무 진지하다 싶은 사과멘트를 보내서 진정성이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다시 꼬투리 잡기에도 좀 유치한 것 같아 그냥 유야무야 넘어가기로 했다. 그렇다고 곱아진 마음이 당장에 흐물흐물 풀어지거나 한 건 아니었다. 다만, 온몸으로 화내기에 지나치게 열중했던 나머지 더 이상의 마찰이나 긴장은 무리였다.  

  남편이 이따금, 그러나 꾸준히 지적질하는 것이 바로 이 온몸으로 화내기다. 한방과 양방에서 진단 내린 체질이나 상태로만 보면 속으로 삭이고 또 삭이는 외유내강형의 차분한 여성이어야 맞는 건데 화를 낼 때의 내 모습은 증기기관차가 따로 없다. 일단 꼭지가 홱 돌면 손익이나 뒷일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온몸의 기를 집중하여 화를 불러일으킨 대상을 향해 돌격한다. 상대는 온몸을 찌끄러뜨리다, 폈다, 를 반복하며 기관차로 트랜스폼한 내 모습에 깜짝 놀라지만 내딴엔 그전에 벌써 세 번 정도 참은 거라고 합리화하며 무한 돌진한다.  

  이처럼 나는 영화 제목이기도 한 anger management가 참 안 되는 사람이다. 나의 이상향은 화가 날수록 차갑게, 분노할수록 고요히, 인데 그것은 죽어도 닿지 못할 겁나먼 이상향 쯤 되는 것이고 그저 화를 내더라도 좀 깔끔하게 냈으면 싶다. 따질 것만 조목조목 따지고 그냥 넘어가도 좋을만한 소소한 것은 눈 감고 귀 닫아버리면 그만인데 내가 죽었냐, 가만히 있게, 를 필두로 해서 영겁회귀의 화를 되풀이, 또 되풀이한다. 이쯤되면 부처님도 돌아앉고 공자님도 쌩깔 수준이다.  

  그 결과, 아빠로부터 너는 너무 예민해, 엄마로부터 너는 내가 낳은 것 같지 않다, 등등의 말들을 들어야했고 오빠로부터 네 똥고집은 알아줘야 한다, 남편으로부터 또 시작이군... 그밖에 친구들이 지어준 처키라는 별명까지 화에 얽힌 말, 말, 말이 많기도 하다. 한때는 그런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변화하기 위해서 심리학 서적도 열심히 읽고 상담 사례를 묶어놓은 책들도 부지런히 찾아보곤 했는데 환자가 된 기분이었고 또 그건 그때 뿐이었다. 약발이 오래가지 않는 나를 가리켜 책은 읽어 무얼해, 라는 언제 들어도 매번 뜨끔하는, 가슴 아픈 말까지 들어야 했다. 좋은 사람이 되려고 책을 읽는 것도 아니고 책을 읽는다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닌데 저 말엔 이상하게 내성이 안 생긴다.  

  그래도 사회에 나오고 엄마가 되면서 자각할 수 있을만큼 화내는 빈도가 줄긴 줄었는데 그 성질머리 하늘로 솟지도, 땅으로 꺼질 턱도 없으니 이따금 휴화산 폭발하듯 이글부글거린다. 사람이든 기계든 컨트롤이 안 되는 것은 암만 역할과 성능이 탁월하다고 해도 친해지거나 갖다 쓰기 곤란한 법. 울화병을 생각하면 화를 내지 않는 것도 그닥 권장할만한 것은 아니지만 이제 엄마까지 되었는데 온몸으로 화내는 일에 대한 반성이 더욱 절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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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0-08-16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하지 않고 속으로 삭히고 다른 방식으로 대체한다면...병이 날지도 모를 일이에요.

깐따삐야 2010-08-18 11:57   좋아요 0 | URL
그럼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한단 말씀입니까.ㅠ

blanca 2010-08-16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깐따비야님, 저는 제가 아주 온화한 사람이라고 믿었고 친구들이 십 년 간 화내는 걸 보지 못했다고 칭찬해 주기도 했는데 그런데...애를 낳고 헐크가 된 경우에요. 어떻게 그 많은 분노들이 제몸에 숨어 있었던 건지. 득음 경지입니다. 심리학 서적을 뒤적여 보니까 화를 너무 억압해서도 안되는 모양이에요. 다만 잘 내는 방법을 연습해야 하고 자신의 감정을 그때그때 표현해야 한다고 하는데...잘 모르겠어요. --;;

깐따삐야 2010-08-18 12:01   좋아요 0 | URL
애를 낳고 헐크...! 저는 애 낳기 전에도 헐크, 지금은 버전업 헐크가 된 것 같아요. blanca님 말씀처럼 잘 내는 방법을 연습하고 감정을 그때그때 표현하면 되는데 그게 참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수양이 덜 된 모양이어요.

2010-08-17 0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18 1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18 2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21 2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