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마트에 가서 배추를 배달시키고 근처 식품매장에서 세일을 한다길래 영달이 먹을거리도 좀 사고 평소와 다름없는 아침이었다. 바람이 차가워졌기에 영달이가 톡톡한 새 조끼를 꺼내 입었을 뿐.
S는 원래 별 거 아닌 얘기를 할 때도 목소리를 까는 버릇이 있는데 이번엔 좀 달랐다. 느릿느릿 영달이 안부를 물어오는데 무슨 얘기를 꺼내려 하나, 궁금해졌다. Y의 이름이 나오자 절로 긴장이 되었고 S는 쉰 목소리로 Y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했다. Y는 그녀답게 누구에게도 연락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전화를 건 S가 우연히 맨 처음 소식을 접했고 S는 사고로 돌아가신 것 같다, 고 했다.
나는 Y의 아버지에 대해 잘 모른다. 하지만 Y를 알기에 그녀가 아버지에게 어떤 자식이었을지는 대략 짐작한다. 그래서 지금 Y의 심정이 어떠할지도 알 것 같았다. 어쩌면 받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전화를 했고 너무나도 신나서 괴상하게 들리는 신호음이 끝나갈 무렵 Y의 가라앉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다짜고짜 밥은 먹었니, 부터 물었고 Y는 응? 하고 놀란듯 되물었다. 나는 또다시 밥은 먹었냐고 물었고 Y는 먹었다, 고 대답했다.
S와 통화했단 말을 전했고 그때부터 조그맣게 흐느끼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목구멍 언저리가 부어오르는 것 같아 몇 마디 더 묻다가는 관두었다. 여기로 바람 쐬러 와도 좋은데, 라고 하자 아무 대꾸 없이 또 훌쩍인다. 나는 미련하게 또 밥 이야기로 당부의 말을 하고는 잘 있으라, 는 말의 '잘'에 나도 모르게 힘을 주었다. Y는 고맙다고,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울음이 채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통화를 맺었다.
갑작스런 변화에 직면하는데 두려움이 큰 나는 부모님이 진저리 날 정도로 오래 사시다가 미련없이 돌아가셨으면, 하는 이기적인 바람을 갖고 살지만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가 어디 뜻대로 되는가 말이다. 돌연히 들이닥친 사고에 대해 어떻게, 왜, 그러한 것들이 궁금했지만 부질없다고 생각했고 연락하지 않고 설명하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겠거니, 하고 호기심을 접었다.
Y는 몇년 전에도 내곁을 아무 단서 하나 없이 떠났다가 방금 만났다 헤어진 사람처럼 재회했고 다시 보았을 땐 내가 묻지 않아도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 그것이 그녀의 방식이었고 내가 그 방식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끝내 익숙해지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Y이고 나는 그녀를 잃어버리느니 기다린다.
다만 홀로 두었을 때의 Y가 염려된다. 이번엔 더. 세상에 고집 없고 자존심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머리 깎고 출가하지 않는 한 조금씩 섞이고 무뎌지게 마련인데 도무지 타협이 안 되거나 어려운 사람들도 있다. 나도 그런 나 자신 때문에 돌아버릴 것 같은 시절이 있었는데 어느새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때론 이쁘지 않은 사람들한테 이쁘다는 빈말도 해가며 대충 산다. 그런데 Y는 타고난 피의 농도나 혈류속도 자체가 다른 건지 대충, 남들처럼, 평범하게, 그런 것들이 잘 안 되는 사람이다.
그러니 친구로서 얼마나 탐나고 좋은 인간이란 말인가. 반면 그런 자식을 둔 부모는 얼마나 속을 태웠겠는가. 너무 잠잠하다 싶어 가보면 일을 저질러놓은 아이처럼 Y도 그랬다. 언젠가 Y에게 너나 나나 부모에겐 참 나쁜 딸년들이라고 했고 Y는 순순히 인정했다. 하지만 안타까워하거나 슬퍼하지는 않았다. Y도 나도 부모님을 믿었기 때문이리라. 든든한 샌드백을 면전에 둔 의기양양한 자학의 포즈. 부모가 아니면 이 세상 어느 누가 덜되먹은 우리를 백퍼센트 이상 이해해주고 받아주겠는가. 그래서 보지 않고 듣기만 한 Y의 눈물을 본 것 같다. 애도와 회한이 범벅이 된 눈물이 내 가슴까지 쳐들어온다.
비보를 듣기 얼마 전, Y는 일년 가까이 만나온 남자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랬다. 나는 이젠 제발 평범하게 살라고 닦달을 해가면서도 한편으론 얘가 꿈을 접고 주저앉아버리면 어쩌나, 허영을 버리지 못했다. 친구라면 옹골차고 줄기차게 쓴소리를 해야 하는 건데 부모형제가 아니라서, 함께 지지고볶고 사는 가족이 아니라서, 결국 제삼자일 뿐이라서, 하다 만 말에 그치는 미적미적한 잔소리로 일관하고 말았다. 어쩌면 나는 Y의 방황을 트루먼쇼의 시청자처럼 즐겨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네가 계속 망상에 빠져 사는 걸 보느니 너를 잃어버리는 게 낫겠어, 라고 돌아서는 것이 오히려 Y를 위하는 길은 아니었을까. 부모형제도 못 꺾는 쇠심줄 같은 네 고집을 내가 무슨 재주로 꺾을쏘냐, 내심 그런 마음도 없잖았을 것이다. 나는 친구라는 허울을 쓴 영원한 타인이다.
결국 Y의 눈물이 가슴까지 쳐들어온들 그것은 내 설움일 뿐이고 나는 또 다시 도란도란 나의 일상을 꾸려간다. 마음이 아프다 한들 나는 괜찮은 것이다. 다만 바람이 있다면, 충분히 애도한 뒤 Y가 부디 건재한 채로 내게 송신해오기를, 그때의 그녀는 조금 달라져 있기를, 그날이 언제가 되든 제철에 난 맛난 재료로 따듯한 밥을 차려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지금의 슬픔이 좀 누그러진 다음, 자식은 부모한테 아무것도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고 미안해할 필요가 없더라는 말도 꼭 전하고 싶다. 우리 엄마가 들으면 불효를 합리화하는 것도 가지가지라며 욕나오겠지만 어쩐지 Y에겐 그 말이 꼭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그 말은 내가 언젠가 내 엄마로부터 들은 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