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자 거장의 클래식 1
바이셴융 지음, 김택규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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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어로는 ‘얼자孼子’라고 쓰고 우리말 제목을 ‘서자’라 했다. 역자 김택규는 초고에 한자어 발음대로 “얼자”로 썼을 수도 있지만 결국 “서자”로 쓰고 대신 한자어 ‘孼子’를 첨부하기로 합의했던 거 같다. 제목 짓는 건 거의 언제나 출판사 마음이다. 서자庶子는 사전적 의미로 양반과 양민 사이의 자식과 후손. 서얼庶孼은 서자와 그 자손을 말한다. 그럼 얼자孼子는? 서자를 뜻하기도 하지만 이 작품 같은 경우의 얼자는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자식”이란 의미에 해당한다. 임금에게 인정받지 못해 늘 외로운 신하가 고신孤臣, “어버이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서자(또는 서자 취급을 받는 신세의 자식)이 얼자孼子. 이걸 합해 아 씨, 나만 미워해, 하는 족속들을 일컬어 고신얼자孤臣孼子라고 한다.

  작품의 주인공이자 화자 ‘나’이기도 한 리칭李靑은 석달 열흘 전 몹시도 맑은 오후에 중국 본토에서 연대장을 역임했던 퇴역군인 아버지가 권총을 흔들어대면서 난리를 치는 바람에 집에서 쫓겨났다. 입학하기 쉽지 않은 위더育德 고등학교 야간부 3학년 3반에 다니던 나는 “1970년 5월 3일 밤 11시경 화학실험실에서 실험실 관리원 자오우성趙武勝과 외설행위 중 학교 경찰에게 현장에서 체포”되어 5월 5일 어린이날에 퇴학당했다. 아버지는 쓰촨성 출신으로 입대하여 일본군과의 창사長沙대첩에 참전해 눈부신 전과를 올려 2등 보정寶鼎훈장을 받은 전력이 있다. 그러나 1949년에 아버지 부대는 후베이성의 다볘산에서 팔로군과 교전할 당시 거의 전멸을 했는데, 이때 포로로 잡혔다. 우여곡절 끝에 타이완으로 탈주하는 데 성공했지만 군대는 포로가 된 전력 때문에 아버지의 군적을 말소시켜 버리고 말았다. 아버지는 ‘나’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학교 추천으로 펑산鳳山의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해 자신이 못다한 꿈을 이어주기를 바랐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날 자신의 훈장을 ‘나’의 가슴에 달면서 훈장의 소유권까지 모두 주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녔다. 이랬는데 다른 것도 아니고 남자와의 외설행위로 퇴학을 당했으니, 고등학교는 그렇다 치더라도 사관학교는 아예 꿈도 못 꾸게 되어 꼭지가 돌지 않았겠는가. 하여간 그이의 입장만 감안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어머니는 타오위안挑園 시골 오리농장집 양녀로 있었다. 양부가 심각한 알코올 의존이라 학대를 당하고는 했는데 하루는, 그래봤자 일상다반사이긴 하지만 양부가 던진 낫에 이마를 맞아 양미간에서 피가 철철 흘러 그 길로 도망쳐 1군단 근처의 다방 종업원으로 있었다. 시골 출신 답지 않게 고운 외모 때문에 어머니를 두고 장교 둘이 심각하게 싸워 타이베이로 와서 지금은 옆집에 사는 황아저씨 댁의 임시 가정부로 있다가 아버지와 인연이 된 것. 이때 아버지가 45세, 어머니는 19세. 날씬하고 가는 허리에 풍성하고 검은 머리털, 앳되 보이는 자그마한 여자로 골목에서 가장 안 어울리는 커플이었다. 어머니는 아들만 둘 낳았다. ‘나’와 동생. ‘나’는 남방 쓰촨 출신의 아버지를 닮아 피부가 거무스름하고, 동생은 출신이 불분명한 어머니를 닮아 하얀 얼굴에 곱상한 외모. 젊은 어머니는 당연히 아버지 닮은 나를 검둥이, 자신을 닮은 동생을 흰둥이라 부르며 동생을 편애했다. 편애 수준을 넘어 ‘나’를 거의 미워했다. 그렇게 살다가 ‘나’가 여덟 살이던 해 어머니는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고, 들리는 말에 따르면 샤오둥바오小東寶 이동 공연단의 트럼펫 주자와 눈이 맞아 달아났다고 했고, 사실이 그랬다. 이때 ‘나’의 기억으로 처음 아버지가 권총을 뽑아들고 두 연놈을 쏴 죽여버리겠다고 골목을 활보했었다.

  동생은 어머니가 사라진 이후에 ‘나’를 의지하며 사이 좋게 지냈다. 작년 열다섯 번째 생일에 ‘나’가 야마하 버터플라이 하모니카를 선물해주었는데 얼마나 잘 불던지 아무래도 음악에 재능이 대단했던 거 같다. 그런데 백일 전에 아버지한테 집에서 쫓겨났을 때 우연히 하모니카가 ‘나’의 바지 주머니에 들어 있어서 이제 ‘나’가 기억하는 유일한 동생의 물건이 됐다. 동생이 말하기를 지금 어머니 황리샤黃麗霞가 남공항의 귀난거리 빈민가 막바지의 집에서 살고 있다고 해, 작품의 중간 이후에 직접 가볼 생각이다. 가 봤자 좋은 꼴은 못 보겠지만, 몇 달 전에 급성 폐렴으로 어려서 죽은 흰둥이 둘째 아들만큼이야 하려고.

  자, 주인공 ‘나’ 리칭, 애칭 아칭阿靑으로 불리는 ‘나’의 팔자를 보자면 그야말로 얼자孼子라 할 만하겠지? 그러나 ‘나’ 뿐 아니라 작품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남성 동성연애자, 게이들이 다 얼자, 사회에서 미움만 열심히 받으며 사는 얼자 신세이다. 책에서 말하는 얼자는 모든 남성 동성애자들.


  타이베이에는 이들이 모이는 해방구가 있다. 바이센융은 이곳을 “왕국”이라 부르지만 마땅하지 않다. 왕국엔 당연히 왕이 있어야 하거늘, 이들한테 사부와 어른은 있을지언정 왕, 귀족은 없다. 그래서 왕국이라기보다 해방구 또는 코뮌이라 칭해 마땅하리라. 노소와 빈부와 학력과 출신의 차별이 없고 모두 사랑으로 동등한 구역을 어찌 왕국이라 하는지. 하여간 그이들의 왕국에는 낮이 없다. 밤새도록 번창하다 날이 새면 자취를 감추는 비합법적 나라. 길이 2백~3백미터, 너비 백미터 남짓한. 타이베이시 관첸거리 신공원 안의 직사각형 연못 주변 은밀하고 불법이며 손바닥 만한 나라. 오랫동안 외부인에게 얘기하기 힘든 놀랍고도 비통한 역사를 간직한 곳. 오직 사랑과 욕망과 갈증을 달래기 위해 집결하는 사랑꾼들의 장소. 이들의 면모를 보자.

  궈郭 노인. 왕국의 역사를 간직한 원로 가운데 원로. 장춘로에서 ‘청춘예원’이란 사진관을 운영하며 왕국의 젊은이들의 사진을 수집해 두꺼운 앨범을 만들고 “청춘의 새들”이라 제호를 단 인물. ‘나’ 아칭 역시 사진을 찍었으며 87번에 해당하고, ‘참매’라는 명칭이 붙어 있다. ‘나’는 집에서 쫓겨난 후 석달 동안 난양거리 신난양극장의 지린내 나는 공중화장실에서 눈빛과 손짓과 발걸음으로 갖가지 신비한 암호를 타전하며 3개월 동안 남창생활을 하다가 어느 비 오는 가을, 왕국의 연못 한 가운데 있는 정자에 몸을 구부리고 덜덜 떨면서 자고 있다가 궈노인에 의하여 구출되어 왕국의 국민으로 받아들여졌다. ‘나’ 이외의 숱한 청춘들이 노인이 내미는 구원을 얻어 어쨌거나 삶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양사부라고 불리는 양진하이楊金海. 똥배와 검정바지 속 튼실한 엉덩이 두 짝으로 풍선 세 개를 달고 다니는 왕국의 개국원로. 과거에는 동족을 위해 중산북로에 ‘류타오퉁’이란 술집을 경영했지만 건달들의 방해로 접은 경력이 있다. 특히 젊은 동족을 위해 무한정의 무뚝뚝한 친절을 베푸는 인물.

  라오구이老龜. 예순이 넘은 늙은 호색한. 하도 추접해 공원 사람들이 상대도 잘 안 해준다. 목덜미 가득 마른 버짐이 피었으며 당연히 시간이 갈수록 점점 찌그러든다.

  저우周 사장. 중허향中和鄕에서 염직공장을 경영하는 인물로 ‘나’의 친구인 샤오위小王의 수양아비, 즉 뒷바라지해주며 사랑을 얻는 중늙은이. 일년 넘게 중허향에서 같이 살자고 요구했지만, 일본 화교인 생부를 따라 도쿄로 떠날 일념에 차있는 샤오위는 이이의 요구를 야물딱지게 거절하고 있다.

  샤오위는 다른 수양아비도 만들어 관리하고 있는데 작품을 시작할 때는 역시 일본 화교로 타이완에 건강 보조식품 공장을 지으려 온 세이조 제약의 린사마, 중반 이후에는 일본과 홍콩을 잇는 화물선 선장 룽龍선장으로 하여간 일본과 연줄이 닿는 사람들한테 지극한 관심을 쏟는다. 친부 역시 사업차 타이완으로 왔다가 엄마를 만나 샤오위를 만들더니 일본으로 내빼고 소식을 끊은 인간이다.

  우민吳敏. 마흔 전후의 무역회사 대표로 주로 플라스틱 장난감을 수출하는 장선생과 오래 동거하다가 별 이유 없이 쫓겨나 크게 상심하는 바람에 손목을 그어 자살을 시도한다. ‘나’ 아칭과 샤오위가 발견해 병원으로 데려갔으나 보증금이 없다고 수혈을 거부당했다. 그래서 두 명의 친구가 5백cc 씩 1리터의 피를 수혈해주어 생명을 건지고, 상상을 초월하는 입원비, 시술비는 동족은 아니지만 자살한 게이 아들을 둔 장군 출신 귀인 푸 어르신이 지불했다.

  푸 어르신은 왕국의 모든 동족한테 우러름을 받는 존재. 일흔이 넘은 나이로 여전히 고아원에서 선천적으로 양 팔이 없는 상태로 태어난 장애아를 돌보며 여러가지로 왕국의 종족을 위해 가지고 있는 인맥과 돈을 아낌없이 베푸는 살아있는 보살이다. 대륙에서 함께 전투에 나섰던 전우의 아들로 크게 사고를 치고 십년간 미국으로 몸을 피했다가 돌아온 왕쿠이룽과 특별한 애증관계에 있다.

  성盛회장. 나이 많고 명성 높은 원로. 지금은 조금 노망이 들고 류머티즘 증상이 심해 젊은 파트너를 찾는 것이 그저 함께 즐거운 얘기나 하며 저녁을 먹고 술도 한 잔 마시기 위해서이다. 에버그린 필름의 회장이며 뛰어난 로맨스 영화를 여러 편 제작해 큰 돈을 벌었다. 과거엔 상하이에서 직접 배우로 출연하는 등 한 시절의 스타로 군림했던 적도 있다. 가끔 동족을 위로하기 위하여 큰 파티를 열어준다.

  쥐mouse. 천생 좀도둑. 절대 좀도둑질을 끊지 못하며 훔친 물건들을 보물처럼 아낀다. 극도로 포악한 형 집에서 사나운 형수와 사는 지질이. SM 사이코한테 걸려 작품 시작부터 팔뚝에 담배빵을 당하지만 ‘나’ 아칭과 샤오위, 그리고 우민과 함께 청춘 4인의 친구로 지낸다. 이런 쥐를 장쑤 저장 요리의 대가 루盧 주방장이 열라 쫓아다니는데, 주방장 말씀이 갈비뼈가 도드라져 깨물어 먹는 특별한 맛이 있다나?

  그리고 숲 속에 숨어 감히 얼굴을 내밀지 못하는 이웃들도 있다. 양갓집 출신 대학생들이 많고 이외에도 휴가 나온 사병들, 신뻬이에서 온 젊은 깡패들, 어린 점원들, 유명한 의사, 군 법무관, 한 때 잘 나갔던 은막의 스타들 등등. 하여간 얼굴 알려지면 신상에 크게 해로울 인간들이 이 범주에 많이 속한다.


  등장인물과 이들이 행위하는 장소, 심지어 극장의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화장실, 좁은 숲덤불 등등, 사회에서 소외받는 장면 같은 것은 이미 여러 작가들이 상세하게 묘사한 바 있어서 특별한 건 없다. 그저 다시 퀴어 소설 한 편을 읽는 느낌. 그러나 바이센융은, 스스로가 장군의 아들이며 게이이고 연인을 따라 오랜 세월 미국에서 보낸 경험이 있어 등장인물 몇 명에게 자신을 투사하기는 했지만, 결코 이런 얼자들을 아들로 둔 남자, 아버지의 입장을 모른 척하지 않았다. 대개 퀴어 문학에서 아버지라는 존재는 게이 아들에게는 넘어서야 하지만 난공불락인 성벽, 암담한 골방의 벽으로 기능한다. 바이센융의 시각은 그렇지 않다. ‘나’ 리칭의 아버지, 오랜 시간동안 공부 잘하고 신체 건강한 맏아들에게 자신의 모든 희망을 걸었다가 사실을 알고 권총을 휘두르며 집에서 쫓아내기는 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 아버지가 얼마나 마음 아파할 것인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들의 생에 대한 걱정 때문에 몇 개의 산을 무너뜨릴 지, 딱 이렇게 직접 이야기하지 않는 방법으로 독자에게 말하고 있다.

  역자 해설을 읽어보면 작가가 미국행 비행기를 탔을 때, 노구를 이끌고 공항까지 나온 아버지가 눈물을 철철 흘렸다고 한다. 작가는 자신이 동성애자인지 한 번도 아버지한테 말하지 않았지만 늘 아들을 귀하게 여긴 아버지가 몰랐을 리가 없다면서.

  사는 게 다 그렇다. 어렵지 않으면 인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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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04-12 07: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별점은.... 어디 4.5 없나? 4는 박하고, 5는 후하고. 좋은 게 좋은 거다.
다음 주 삽질:
월요일. 고트프리트 폰 슈트라스부르크, <트리스탄>
화요일. 아민 말루프, <타니오스의 바위>
목요일. 디노 부차티, <곰들이 시칠리아를 습격한 유명한 사건>
금요일. 찬쉐, <신세기 사랑 이야기>
 
재·봉(裁·縫)-고 할머니 편 연극과인간 중국현대희곡총서 24
왕팅팅.스류 지음, 김우석 옮김 / 연극과인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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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젊은 여성 극작가 왕팅팅王婷婷과 스류石榴의 공동작업으로 2017년에 74세가 되는 여인인 고할머니老顧를, 2037년 94세(59쪽)의 고할머니와 오버랩 시켰다. 역자 해설에 의하면 모옌의 <개구리>에서 재미있게 이야기했듯이 적극적인 산아제한 정책의 결과로 중국도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는 인구 감소의 딜레마에 빠져 2035년이 되면 노인 인구가 무려 4억 8천만, 전체 중국 인구의 1/3에 육박한다. 이를 주목한 연출자 왕팅팅王婷婷(우리말로 다시 쓰면 ‘왕이뻐이뻐’쯤 된다)은 당연히 주류에서 이탈, 소외될/소외된 노인들을 인터뷰했고, 그 내용을 토대로 희곡을 쓴 것이 <재裁∙봉縫 – 고할머니편>이다. 작품을 지은이들이 두 명의 여성이었으며, 등장인물 또한 아직 생일이 지나지 않아 73세인 여성, 할머니라서 1944년생 중국여성이 걸어온 사회문화적 허들이 어떻게 이 여성의 삶에 고단함을 입혔는지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1944년생. 다섯 살 때인 1949년 10월 1일에 중화인민공화국이 공식적으로 수립되고, 고할머니는 어린 나이부터 좋지 않은 출신 성분으로 고생길이 훤하다. 그래도 배워야 산다는 건 부르주아에 가까워서 출신성분이 좋지 않을수록 잘 아는 법이라 당시에 여자라도 간신히 대학을 졸업했지만 아뿔싸 이제 일을 해 가문에 보탬이 될까 싶을 때 문화혁명이 쳐들어온다. 말로만 쳐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홍위군을 자칭한 일단의 무리가 집까지 몰려들어 자아비판과 조리돌림을 해대는 난리통을 겪는다. 나이가 차면 신체와 정신에 특별한 하자가 없는 한 한 남자와 혼인하여 아이 하나를 낳고 살아야 하는 것으로 알아 별로 원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밉상도 아닌 남자한테 결혼을 당해 살아야 했다. 살면서도 자신이 하고 싶은 재봉일, 요새 말로 의상 디자이너 숍을 그렇게 내고 싶었지만 결국 남편 바라지와 아이 키우기, 그리고 여자가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사회 통념 또는 저항 때문에 이루지 못한다. 아이가 다 크면 이제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며, 남편 역시 나이를 먹었어도 여전히 꽉 막힌 상태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어 어느새 일흔셋. 아들은 결혼하여 딸 뤼뤼를 낳더니 엄마보고 키워달라 한다. 몇 년을 키워 정을 흠뻑 쏟아 그 재미로 살려 했건만 이젠 직접 기르겠다고 데려간 지도 오래다. 늙은 남편은 겁도 없이 여전히 좌변기 앞에 서서 오줌을 누어 그때마다 아내가 솔을 들고 벅벅 문질러 닦아야 한다. 정말 나서 그러는지 아니면 날 것이라 뇌가 명령을 해 그렇게 느끼는지 오줌 지린내에 고개를 절래절래 저어가며. 변기를 문질러 닦으면서 고할머니는 남편에게, 이젠 그만 살자고, 더는 이렇게 살지 못한다고, 이혼을 요구하고, 평생 처음으로 자신이 뭔가를 자발적으로 결정해 가정법원 이혼 서류에 인감도장을 꽉 눌러 찍어 버린다. 그래서 몇 십 년을 함께 산 노부부는 늙은 남편이 서서 오줌 눈다는 이유로 재裁, 옷衣을 다친(戈+十)다. 즉 잘라진다.


  그러나 사십여 성상을 함께 산 부부. 고할머니는 남편을 아파트 옆 동에 세를 얻어 살게 하고 삼시 세끼를 다 할머니 집에 와서 챙겨 먹게 하며, 여전히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쏟는다. 헤어졌지만 사실은 여전히 붙어 있는 상태로의 봉縫. 갈라섰지만 갈라지지는 않은 상태. 독자는 극이 끝날 즈음에 알게 되니, 이혼을 하고 조금 후 전남편이 된 노인이 이미 숨을 거두었음을.

  세월은 흘러흘러 2037년이 되었겠지. 이제 아흔세 살이 된 고할머니는 시장에 갔다가 먹음 직해보여 커다란 가재, 랍스터일 듯한 걸 사와서 요리를 하려다가 살아서 펄떡펄떡 뛰는 것이 먹기에 아까워 어항에 넣고 살려준다. 가재는 그것이 고마워 할머니에게 한 가지 소원을 말해보라 하고, 아흔셋의 할머니가 특별히 바라는 것이 없어서 가재에게 선택을 맡겨 지금부터 스무 살이 젊었던 시절, 일흔세 살의 자신과 이야기하고, 당시의 모습도 관찰한다. 이렇게 극은 아흔세 살의 고할머니가 일흔세 살의 고할머니의 삶을 바라보기도 하고 대화도 하는 장면으로 채워진다.

  이미 죽은 고할머니의 이혼한 전 남편은? 귀신이 아니라면 등장할 수 없겠지. 그러나 현대 기술이 있어서 오줌을 누며 그거 하나 제대로 조준을 하지 못해 아무데나 질질 흘리는 영감은 영상으로 만나고 대화할 수 있다. 일흔셋도 많은데 아흔셋이라니. 두 노년의 고할머니는 오랜 인생을 살아 이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체득을 했다. 물론 이건 극작가/연출가인 왕팅팅과 스류가 많은 노인들을 인터뷰해서 알아낸 것이겠지만 여전히 죽은 전남편의 오줌 지린내가 코끝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 아직도 변기 물 내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것, 이것들이 이제 그리 싫지 않은 것, 모든 게 다 합해 그게 지난 세월이라 하는 것들이 와닿는다.


극작가 왕팅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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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4-11 1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소개를보니 실제로 93세 배우가 역할을 맡았다고 하네요. 하긴 이순재 배우가 91세라니 9순에도 현역이 가능하네요. 대단합니다.
근데 2037년이면 근미래인데요?

Falstaff 2024-04-11 20:34   좋아요 1 | URL
넵. 책 속에 공연 장면 몇 컷이 나오는데요, 거기엔 93세 배우는 안 보입니다. 아무래도 대사도 짧고 동선도 활발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실제 나이 근방의 배우를 캐스팅하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2037년.... 미래상에 관해서는 뭐 별거 없습니다. 방 밖으로 나가지 않으니까요. 현명한 선택 같았습지요.
 
나의 아이들 1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14
구젤 야히나 지음, 승주연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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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젤 샤밀레브나 야히나는 1977년 유월 초하루에 모스크바 남서쪽 서 시베리아 초입의 타타르 자치공화국 수도 카잔에서 엔지니어 아버지 샤밀 야힌과 의사 어머니의 딸로 태어났다. 당연히 타타르어를 사용했고 탁아소에 다니면서 러시아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데뷔작 <줄레이카>는 타타르 사람이었던 할머니의 삶을 모델로 쓴 작품이었다. 1930년 초에 소비에트연방공화국이 강제적으로 집행한 이주 정책에 의하여 할머니는 유럽권 소비에트 지역이었던 타타르에서 시베리아로 이주해 모진 고생을 한 후 16년 뒤에야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이주 정책을 따르지 않은 죄목으로 처형을 당했고. 조부모의 내력을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나의 아이들>을 읽으며 ①작가 야히나를 독일계 소비에트 혈통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니라는 것, ②작품의 뒷부분에 나오는 강제 이주 정책은 작가의 조부모가 실제로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허구라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기 때문이다. 야히나는 데뷔작 <줄레이카>에 이어 두번째 작품으로 <나의 아이들>을 발표했는데, 이 작품도 할머니의 경험이 없었더라면 탄생하기 쉽지 않았을 듯하다. 할머니가 시베리아에 가서 생활할 당시 그곳에서 만난 각양각색의 (일종의) 유배자들과 깊은 우의를 맺어 <나의 아이들>의 등장인물인 독일계 소련인들의 사정을 손녀에게 들려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나덴탈’이라 명명한, 볼가강 뒤쪽 스텝 지역에 둘러싸인 작은 우주의 중심인 가상의 독일인 집단 거주촌이 탄생할 수 있었으리라. 위 사항은 위키피디아 검색한 내용을 바탕으로 다시 쓴 것이다. 정확한 자료가 아니다.


  카스피해의 북쪽으로 유입하는 볼가강변의 광활한 스텝지역에는 몽골족의 후예인 칼마크인들이 유목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 땅의 지질이 농업에 적합하다는 영국인의 보고서를 읽은 예카테리나 여제는 칼마크인들을 집중 징발하는 등의 교묘한 방법으로 유목생활을 이어가지 못하게 하고 빈 자리에 코사크 사람을 보내 농사를 짓게 한다. 그러나 중서유럽의 농지에 비해 현격하게 생산성이 떨어지고, 때마침 독일에서는 30년 전쟁의 후유증으로 빈농이 대폭 증가했던 형편이어서 주로 독일로부터 많은 수의 농업 이민을 받아들이게 된다. 베스트팔렌, 작센, 티롤, 뷔르템베르크, 알자스, 로렌, 바덴, 헤센 등 각지의 독일인들이 최초의 식민지 주민 자격으로 배를 타고 볼가강변 크론시타트에 도착했을 때, 기골이 장대한 독일여성이자 러시아 제국의 황제 예카테리나 2세는 발목까지 털이 숭숭 난 하늘 같은 말 위에 앉아 큰 목소리의 표준 독일어로 동족에게 외쳤다.

  “나의 아이들이여! 그대들은 이제 러시아의 아들 딸들이다! 우리의 든든한 날개 아래로 오라! 우리가 그대들을 보호하고 아들딸처럼 보살펴주겠노라! 대신 그대들은 새로운 조국에 그 어떤 조국보다 충성하고 복종해야 할 것이다! 거부하는 자는 지금 당장 오던 길로 돌아가라! 썩은 심장과 연약한 손을 가진 자는 원치 않느니!”

  이래서 작품의 제목 “나의 아이들”은 예카테리나 여제가 외친, 러시아 제국 황제의 아이들 가운데 과거에는 독일인이었으나 이제 러시아에 충성하는/해야 하는 러시아 이민자를 가리킨다.

  그나덴탈에는 독일 각지에서 이민을 온 바람에 별의 별 독일어가 다 섞여 있어, 1910년대 후반 기준으로 통일 독일에서 사용하는 독일 표준어와 많이 다른 이 지방 고유의 사투리가 정착되었다. 이곳에서 낳고 자란 토박이이지만 표준 독일어를 사용하는 학교 교사 야코프 이바노비치 바흐도 러시아어라고는 학교에서 배운 백 개도 되지 않는 단어밖에 알지 못한다고 하니 이들만의 작은 섬을 이루고 살았던 셈이다. 나중에 공산 권력을 쥐고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된 스탈린 입장에서 이 공동체를 탄압하는 것은 당연한 결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물론 이 내용도 작품 속에 나온다. 이 탄압은 소비에트 정권이 들어선 후 결성한 볼가 독일인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해산 장면이며, 이전에도 볼가강변의 독일 이민들은 예카테리나 대제가 약속한 징집 면제 혜택을 취소하고, 1920년대 초 대기근 당시 식량 공급 중단으로 수십만 명이 아사하는 등의 환란 속에 속속 볼가강을 떠나 귀국하거나 새로운 이민지로 향하기도 했다. 이렇게 1918년부터 1938년까지 볼가강변의 독일인 지역을 배경으로 그나덴탈의 학교 교사였던 바흐의 삶을 쓴 작품이 <나의 아이들>이다.


  시냇물(der Bach) 바흐는 젊은 날부터 시에 대한 애정이 커서 노발리스, 프리드리히 실러, 하이네 등을 가르칠 수 있는 독일어 수업을 좋아했으나, 아뿔싸, 비쩍 마른 몸에 조용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으며 말도 별로 없는 교사라서 지독하게 평범하고 내세울 것 없는 존재에 불과했다. 매일 아침 여섯 시에 학교 종루에서 종을 울려 그나덴탈의 하루를 여는 것으로 거의 매일 같은 일과를 묵묵하게 수행하는 시냇물 선생한테 저녁 식사에 초청하는 편지가 도착한다. 오늘 오후 다섯 시에 볼가강변에 도착하는 배를 타고 강을 건너와주었으면 좋겠다는 우도 그림 씨. (독일인 등장인물의 이름들이 귀에 익숙하다. 바흐, 그림, 바그너, 프롬, 디트리히, 심지어 괴물 ‘코흐’까지. 야히나가 독일계가 아닌 게 분명하다.)

  책에서는 강을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쪽, 왼쪽엔 절벽에 둘러싸인 산지라 사람 살기에 적당하지 않고, 오른쪽에는 광활하게 흑토로 덮인 농경지와 스텝지역으로 구분하지만, 강의 상류에서 하류로 본 것과 하류에서 상류로 볼 때 헛갈릴 수 있다. 강의 서쪽이 산악지대, 동쪽이 평야지대인 거 같다. 어린 시절 나도 이런 가사의 노래를 줄곧 부르고 했다. “넘쳐 넘쳐 흐르는 볼가강물 위에 / 스텐카라친 배위에서 노랫소리 드높다 / 돈코사크 무리에서 피어나는 아우성 / 오만할 손 공주로다 / 우리들은 주린다.” 아무래도 민란의 무리들이 숨어 있기엔 벌판보다 산이 좋을 터. 그림 씨는 거의 산 꼭대기 숲 속의 빈터에 거대하고 기다란 통나무 집과 부속건물로 창고, 가건물, 가축 우리, 얼음창고를 짓고 살았다.

  그림 씨한테는 오는 성령강림절에 열일곱 살이 되는 딸 클라라라고 하는 걱정거리가 하나 있다. 자기가 생각하기로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 바보라서, 이제 곧 결혼을 시켜야겠는데, 라이히, 즉 독일인에게 시집을 보내려면 뭐를 좀 가르쳐야 할 거 같아, 바흐에게 클라라한테 바보라는 티만 좀 나지 않게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이렇게 클라라는 바흐 생전 처음으로 다 큰 여학생 상대로 개인수업을 하는 학생이 된다. 클라라 그림은 열일곱 해를 사는 동안 한 번도 집 밖으로 나간 적이 없단다. 물론 강을 건넌 적이 없다는 의미일 터. 어차피 고립된 지형이라 집 밖에 나가더라도 강만 건너지 않으면 집안의 일꾼 말고는 만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일찍 아내를 여읜 우도 그림 씨는 마치 독일의 옛이야기에 나오는 완고한 왕처럼 클라라를 산 위의 집에 가두어 두고 세상 모든 악한 것으로부터 보호하고 있었던 거였다. 바흐 선생이 이 악한 것 무리에 포함될지 안 될지 모르는 그림 씨의 지시로 20세기도 벌써 훌쩍 흐른 시절에, 선생과 학생 사이에 병풍을 치고 병풍 뒤에서 수업을 받아야 했다. 클라라는 예의 바르지만 지식적으로는 거의 백지 상태였다. 바흐가 만나본 사람 가운데 클라라보다 상처를 더 잘 받고 더 감수성이 예민한 경우도 만나지 못했을 정도였다.

  그러던 가을. 그림 씨는 가족 전부 내일 당장 독일로 돌아갈 거라고 통보해버린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바흐. 며칠 후 집 앞에 앉은 바흐의 눈에 클라라가 등장한다. 강을 따라 배로 사라토프로 가서 열차로 모스크바를 거쳐 독일까지 가는 일정이었지만, 사라토프에서 두 번째 정거장에서 내려 아버지한테 탈출해 운 좋게 별 탈 없이 그나덴탈에 도착해 학교 사택까지 올 수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바흐의 침대에 누워 깊은 잠에 빠진 클라라를 밤새도록 내려다보는 바흐. 말로 표현이 불가능할 정도로 눈이 부시게 예쁜 클라라. 바흐의 눈에는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미인이었다. 이윽고 잠이 깨고, 바흐가 묻는다.

  “이제 어쩌죠?”

  클라라가 대답한다.

  “이제 우리, 부부가 아니던가요?”

  이렇게 우리의 시냇물 씨, 바흐 선생은 젊은 클라라와 결혼을 해 볼가강 건너 언덕 위 빈터의 통나무 집에 그들 만의 세상을 만든다. 혁명, 기근, 내전, 살육, 피난, 귀향 등 세상 밖의 모든 세파를 뒤로 한 채. 오래 오래. 물론 세상살이가 누구에게나 그러하듯이 바흐의 인생도 늘 행복한 건 아닐 수밖에.


  구젤 샤밀레브나 야히나는 카잔 출신의 러시아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해서 <나의 아이들> 출간 이전인 2016년에 영화 <선물>의 시나리오를 썼다. 나는 야히나의 다른 직업이 시나리오, 주로 시각에 호소하는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럴 정도로 <나의 아이들>에는 시각적 묘사가 훌륭하다. 한쪽에는 절벽, 다른 쪽엔 광활한 벌판이 펼쳐진 경계를 흐르는 거대한 볼가강. 강변을 둘러싼 사람들의 삶과 고난의 이야기. 이렇게만 이야기해도 작품 속에 작지 않은 서사가 들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질 것이고, 사실이 그러하다. 빼어나고, 거대하고, 광활하고, 난폭한 자연 현상과 기막히게 어울러진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 읽어보기를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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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들 페이지터너스
에마뉘엘 보브 지음, 최정은 옮김 / 빛소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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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8년 러시아계 유대인 아버지와 룩셈부르크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 역사를 알고 있는 우리는 이이의 삶이 평생 고단했으리라는 것쯤 훤하게 알 수 있다. 스무살이던 1918년 빼빼로 데이 11월 11일에 1차 세계대전이 끝났으니 전쟁에 나갔을 확률이 높고, 아무리 프랑스에서 살았다고 해도 1930년대와 40년대 반유대주의가 팽배한 유럽에서 생존하느라 질기게 고생을 했을 터이다. <나의 친구들>은 보브의 데뷔작으로 스물여섯 살이던 1924년에 발간해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이 그리 크게 영향을 주지는 않았을 듯하다.

  작품은 1차 세계대전에서 손에 부상을 입어 전쟁 공로 훈장을 받고 지금은 상이군인 연금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청년 빅토르 바통의 고독과 외로움, 그리고 가난에 관한 이야기다. 제목을 “나의 친구들”이라고 했다고 정말 바통의 친구들과의 우정을 쓴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앞뒤를 둘러봐도 의지가지 없으며 편한 대화 상대도 한 명 없는 청년이 자신의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친구라 여기며 자신도 끊임없이 살고 있음을, 아니면 적어도 살아내고 있음을 확인하는, 그러나 자신의 존재가 상실될 뿐인 관계를 확인하는 과정을 그렸다.

  그리하여 첫 페이지를 열면 룸펜 프롤레타리아인 빅토르 바통이 아침에 침대에서 눈을 떠 감각하는 것들을 묘사한다. 습기에 얼룩진 벽지 여기저기에 공기가 들어가 들떠 있는 옥탑방에 살고 있는 화자 ‘나’는 우유가게 종업원으로 새벽 일을 마치고 9시에 돌아와 노래하며 청소를 시작하는 옆집 아가씨. 그이한테 좋아한다고 고백했다가 거절당한 적이 있으며, 이유가 남루한 외모의 가난뱅이이기 때문에 외면 받은 걸로 짐작하지만 뭐 그저 그렇다는 거다. 항상 심하게 기침을 해댈 만큼 병색이 완연한 영감님, 늘 바르게 생활하지만 느지막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나를 싫어하는 것이 분명한 같은 층의 노동자 르쿠안 씨 가족 등등.

  집 밖의 친구들. 싸구려 식당 주인이자 과부인 뤼씨 뒤누아, 가난한 사람한테 호의를 베풀다가 뒤통수를 치는 사기꾼 앙리 비야르, 자살하려 마음먹었다가 ‘나’ 빅토르가 주는 푼돈을 받고 술을 마시는 부랑아 뱃사람 느뵈, 자선을 베풀지만 ‘나’의 외로움이 만든 서툰 작은 실수 때문에 호의를 망가뜨리는 신사 라카즈, 싸구려 술집에서 노래하는 삼류 가수 블랑셰. 모든 관계가 허망하게 끝을 만난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감탄한 것은 스토리라기 보다 묘사였다. 나는 이 책은 “프롤로그만 읽어도 별점 다섯”이라고 말한다. 그저 평범하게 방 안의 사물을 보는 시각이지만 앞 뒤의 풍경을 연상하며 빅토르와 같은 렌즈를 적용하면 가슴이 쓰윽, 칼날에 베고 만다.


  “햇빛이 드는 아침에는 침대에서 일어나는 먼지가 일순간 빗방울처럼 반짝인다. 그것을 바라보며 일어서면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하지만 그런 현기증은 금방 사라진다.

  나는 먼저 양말을 신는다. 양말을 신지 않으면 바닥에 어지럽게 널린 성냥개비들이 발바닥에 들러붙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손으로 의자를 짚고 바지를 입는다. 구두 밑창을 들여다보며 앞으로 얼마나 더 신을 수 있을지를 계산한다. 그 다음에는 어제 세수할 때 생긴 물때로 눈금처럼 선이 그어진 세숫대야를 크게 벌려 상반신을 깊이 숙인 채로 세수를 한다.

  세수할 때는 멜빵을 어깨에서 풀어 허리 쪽만 고정한 채로 바닥에 벗어 놓는다. 이것이 나의 세면 규칙이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세숫대야는 너무 작아서 양손을 담그면 물이 넘치고 만다. 거의 다 닳아 작아진 비누는 더 이상 거품이 나지 않는다.” (14~15쪽)


  가난하고 외롭고, 누구 하나 돌봐주지 않는 청년이니 부실한 영양도 문제일 것이다.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빅토르는 기립성 저혈압 증상을 느낀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 순간 방안을 배회하는 먼지조차 빗방울처럼 반짝인단다. 이것 말고도 아예 프롤로그를 통째로 다 인용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구질구질하고 궁상맞기 한이 없는 장면이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묘사해 나간다. 이것이 큰 부상을 입고 별로 대가 없이 청춘을 소비하고 있는 비자발적 룸펜 프롤레타리아의 일상이라서 자연스럽다. 맨발로 바닥을 딛으면 성냥개비가 발바닥에 들어붙는다고 하니 틀림없이 어젯밤에 발을 닦지 않고 그냥 잤을 것이다. 온기 없는 방에서 밤을 보냈으면서도 발바닥에 땀이 찰 정도의 결핍에 시달리는 장애인 청년의 살이.

  역자 후기에 최정은은 “에마뉘엘 보브의 디테일한 묘사는 마치 한 편의 영상 브이로그를 보듯이 눈앞에 그려져 문자를 읽는 즐거움을” 준다고 했다. 아, “디테일”은 내가 쓰려고 했던 단어인데 역자가 먼저 써버렸다. 독후감을 쓰면서 이런 아쉬움을 느끼기는 오랜만이다.

  비록 180쪽에 불과한 짧은 작품이지만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다 읽어버린 건 참 드문 경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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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플러 - 가장 진실한 허구, 퍼렇게 빛나는 문장들
존 밴빌 지음, 이수경 옮김 / 이터널북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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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밴빌이 <닥터 코페르니쿠스>를 발표하고 5년이 지나 1981년에 출간한 책이 <케플러>. 하도 오래 태양을 육안으로 관찰하느라 나중엔 거의 맹인 수준이 된 코페르니쿠스. 16세기 초에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한다는 지동설을 주장하는 바람에 거의 지옥 구경을 한 뻔했던 코페르니쿠스는 16세기 말에 케플러 교수가 쓴 <우주의 신비>라는 책을 통해 최초로 공식적인 옹호를 받았다. 그러니 코페르니쿠스를 썼으면 후속작으로 케플러를 선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듯.

  케플러는 천문학자이자 수학자. 그리고 점성술사였다. 말을 좀 더듬고 도무지 조리있게 이야기할 줄 몰라 교수로써 인기가 거의 빵점 수준이었으나 당대에 비견할 학자가 없을 정도의 천재였다. 근데 사실 이런 교수들 짜증난다. 좋은 학자인 건 알겠는데 입에서 우물우물 하며 도무지 알아듣지도 못하게 강의를 해놓고 학생만 때려잡는 교수. 나도 한 명 이상 알고 있다. 아마 이젠 다들 가셨을 거야. 케플러가 그짝이었던 모양이다. 나중에 보헤미아에서 제국 수학자로 일하기 전까지 도무지 수입이 변변치 않아 점성술, 즉 별점을 쳐주고 돈을 좀 만들었던 모양이다. 책에 나오기를 당시 달력에는 별점을 쳐 해당 월에 벌이질 수 있는 일을 써 놓기도 했던 모양이다. 한 해는 케플러가 그것을 맡아 예를 들어 1월 백송엔 소식을 듣고, 2월 메조에 나비가 되어, 3월 사쿠라 산보간다. 4월엔 튀르크 인들이 침공을 할 운세라 성을 튼튼히 하고, 5월엔 천연두가 몰려올지니 반드시 손을 씻고 마스크 착용을 게을리하지 말지어다, 이런 메모를 달았다가, 이것들이 덜커덕 들어맞는 바람에 점성술사로의 명성이 드높았다고 한다. 케플러 자신도 점성술, 별점 보는 일이 천문학의 딸이지만 어머니 천문학을 먹여 살린다고 했단다.


  작품은 요하네스 케플러가 스승인 메스틀린 교수에게 실망해 슈타이어마르크 주의 그라츠에서 하던 수학교사 일을 때려 치우고 바르바라 뮐러의 세번째 남편이자 의붓딸 레기나의 양아버지가 된 3년차 유부남으로 한 가정을 건사하기 위해 코페르니쿠스와 천문학의 쌍벽을 이루었던 덴마크 사람 튀게 브라헤의 조수를 하기 위하여 프라하로 향하는 마차 안 풍경에서 시작한다. 여기에 주목. 튀게 브라헤. 덴마크 사람이지만 먹고 살기 위하여 보헤미아에 거주하며 천문학 공부를 위한 자신만의 천문대 “우라니보르그”를 소유하고 있는 천문학자이자 수학자. 그러나 코페르니쿠스와 달리 프톨레마이오스의 영향을 받아 지동설이 아니라 천동설을 굳게 믿는 학자이다. 이런 브라헤 선생이 학문의 적수인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최초로 공식 옹호한 <우주의 신비>를 쓴 케플러를 고용한 것이다. 브라헤는 성인일까 잡인일까? 당연히 반반이다. 케플러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은 누가 봐도 이해가 가고, 하여튼 책에 의하면 직속 조수도 아니고 조수의 조수로 일하게 했다는 점을 들어 하필이면 그를 “고용”해 손아귀에 잡았다 해서 옹졸하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자신이 죽은 다음에 후임 제국 수학자로 케플러를 추천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관적 실력을 인정한 학자적 양심을 가진 인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은 양면을 다 보아야 한다.

  둥글고 매끈한 대머리에 금속으로 만든 인조코를 달고 다니는 튀게 브라헨 선생은 젊은 시절 사건에 휘말려 섣부르게 결투에 나섰다가 코가 달아나는 운명을 가진 이로, 요하네스 케플러가 <우주의 신비>를 출간한 다음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싶기도 하고, 자기 학문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해 유럽 각지의 학자들에게 책을 발송했을 때, 적당하게 예의를 차리는 수준의 짧은 편지를 보낼 뿐이었던 이탈리아의 거만한 갈릴레오와 달리 꽤 길게 쓴 따뜻한 편지를 보내 건투를 바란다는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기도 했다. 이이는 자신의 천문대인 우라니보르그를 대대적으로 개축하고 있는 중이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제가 후원하기는 하지만 황실 재정집행관인 호락호락하지 않은 유대인 카스파르 폰 뮐스타인이 정말 집행을 할지, 한다면 얼마나 서두를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 이 유대인의 이름까지 밝히는 건, 앞으로 케플러한테도 마찬가지로 체불 임금 지불 같은 돈이 나가는 일을 그저 글로만 “지불하겠다.”고 확인해주는 증서로 때울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왜 하느냐고? 요하네스 케플러의 팔자가 앞으로도 그리 편하지 않을 거란 거다. 장인 욥스트 뮐러 씨는 지역에서 알아주는 알부자로 딸이 두 번에 걸친 결혼에 일찌감치 과부가 되어버리자 평생 혼자 살라고는 할 수 없어서 삼혼으로 그나마 괜찮은 인간을 찾는다고 찾은 것이 케플러였다. 결혼하기 전에는 아쉬웠던 쪽이 뮐러 씨였지만 결혼하자마자 안면을 싹 바꾼 장인은 사위 알기를 구변, 즉 개똥으로 알아 늘 시원치 않은 돈벌이 같은 걸로 시비를 걸었다. 자기는 딸한테 적지 않은 돈을 지참금으로 주었다는 게 사위 타박의 근거이기도 했다. 아내 바르바라 역시 아버지를 탁해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걸 조금도 미안해 하지 않고 늘 불평불만을 일삼아, 의붓딸 레기나, 창백할 만큼 흰 얼굴과 은색이 도는 금발, 예쁘지는 않고 야위기까지 했으나 스스로 모든 것을 충족할 수 있는 완성된 존재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아이에게 정을 붙여 살았다. 그러나 처복 없는 남자가 자식 복이 있겠는가? 열일곱 살에 결혼해버린 레기나는 결혼과 동시에 지난 날의 부녀간 정을 싹 무시해버리고 만다. 다행스럽게 바르바라가 남편보다 먼저 죽는 일이 벌어지지만, 자기가 일찍 죽자마자 케플러 선생이 화장실에 가서 키득키득 웃을 것임을 벌써 알아버린 아내는 자신의 전재산을 첫번째 남편의 딸 레기나한테 백퍼센트 증여해버리는 유서를 남긴 채였다. 아내 바르바라는 남편이 옆에 있든 없든 사람들에게 늘 무시당하는 분위기를 풍기는 여인이었을 뿐임에도. 하지만 믿지 마시라. 존 밴빌은 케플러를 주인공으로 하는 픽션을 쓰고 있는 중이니.


  뭐 대충 이렇다. 작가는 뒤에서 이 책이 막스 카스파어의 전기 <케플러>와 욘 드라이어의 전기 <튀코 브라헤>를 참고했다고 밝히고 있어 작품 가운데 주요 사건은 모두 진실이거나 진실에 가깝다고, 아니면 적어도 틀린 내용은 자기 탓이 아니라 주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소설이라는 픽션이라는 걸 읽는 내내 염두에 두는 편이 좋을 듯하다. 나는 모든 형태의 전기傳記를 좋아하지 않아 이런 류는 <닥터 코페르니쿠스> 한 편으로 충분했던 거 같다. 쉽게 얘기해서 <케플러>가 괜찮은 작품이라는 건 알겠는데 그다지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는 말이다. 이건 내 취향에 국한해 드리는 말씀이오니 다른 분께서는 아무쪼록 직접 읽어보고 판단하시기를 앙망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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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04-05 06: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음주 삽질
월요일: 에마뉘엘 보브, <나의 친구들>
화요일: 구젤 야히나, <나의 아이들>
목요일: 왕팅팅, 스류, <재∙봉 – 고할머니편>
금요일: 바이센융, <서자孼子>

포스트잇 2024-04-05 1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칼 세이건이 [코스모스]에서 케플러를 너무 흥미진진하게 소개하고 있어서 그렇잖아도 이책 궁금했거든요. 거기에 존 밴빌이라. ...

Falstaff 2024-04-05 16:25   좋아요 0 | URL
저는 밴빌의 <바다>를 좋게 읽었습니다. 이 책은 독후감 말미에 썼다시피 취향에 맞지 않아서 좀 고전했습니다.

stella.K 2024-04-05 13: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퍼렇게 빛나는 문장이 어떤건지 알기 위해서라도 꼭 읽어봐야겠군요.^^

Falstaff 2024-04-05 16:29   좋아요 2 | URL
˝시퍼렇게 빛나는 문장˝이라고요? 헥...
설마 제가 이렇게 멋있는 말을 하진 않았습죠?

그레이스 2024-04-05 16:35   좋아요 2 | URL
ㅎㅎㅎ 저도!

stella.K 2024-04-05 18:28   좋아요 1 | URL
아, 책소개에 그렇게 나와 있어서요. 앞의 시 자는 제가 붙인거고요. ㅋ

Falstaff 2024-04-05 19:38   좋아요 1 | URL
아휴.. 전 제가 그렇게 쓴 줄 알고 본문을 한 다섯 번 훑었을 겁니다. ㅋㅋㅋㅋ

stella.K 2024-04-05 19:41   좋아요 1 | URL
아유, 죄송합니다. 본의 아니게. ㅠ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그레이스 2024-04-05 22:25   좋아요 1 | URL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