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부모는 자신의 행복을 먼저 선택한다
신의진 지음 / 갤리온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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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실 자신의 행복을 찾아야 가족의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은 심리학이나 성공담을 볼 때 항상 쓰여있는 구절이다. 그러나 실천에는 항상 어려움이 있게 마련이고, 특히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부모들에게는 낯선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그런 책들을 읽고 시도하지도 않는 부모들에게는 그런 개념 자체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 이 책의 저자 신의진은 과제를 하기 전에도 이미 이름은 주워들어서 알고 있는 유명한 소아정신과 의사이며, 주부들과 아이들과의 오프라인 캠프도 직접 개최해서 강연할 정도로 유명한 분이라 들었다. 너무나 쟁쟁한 명성 때문에 거부감이 들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아직 결혼계획도 가지지 못한 대학생이 들춰보기엔 부끄러운 책이라 생각해서 줄곧 피해왔었지만 입문 겸이라 생각하고 한 장 한 장 들춰보았다. 이 책은 육아를 중심으로 했지만, 심리학을 중심으로 맞춘 채 객관적인 연구를 적절하게 배치하고, 여러 문제있는 아이들과 ‘문제있는 엄마들’, 그리고 자신의 사례를 나열한 육아책이다. 0~3세 아이들이 주로 나오기는 하지만 사춘기 아이들의 문제까지 헤집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는 두지 않았으므로 어릴 적의 나 자신을 상상하고 부모들을 상상하면서 보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읽어보는 동안 내내 공감이 가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사실 제목을 보고선 통쾌한 느낌이 들었다. 본인의 가정에서도 그랬지만, 우리나라의 엄마들은 자식을 위한 희생이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이 책에서도 넌지시 제시된 말이지만, 전업주부라고 해서 꼭 아이에게 의존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직장을 다니는 주부라고 아이를 소홀히 대하는 것만도 아니다. 그러나 미혼인 나의 관점에서 볼 때, 어느새 엄마들은 그 개념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으며, 아이들과 같이 집착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자녀의 고액과외를 위해 근본적인 여자의 자존심도 내팽개치고 노래방 도우미로 취직한다는 어머니들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절로 혀가 차진다. 물론 그들만을 탓할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 사회의 굳게 다져진 편견과 오해들, 그리고 예부터 대대로 물려받은 잘못된 양육법, 기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과거의 아픈 기억들이 그들의 마음을 일그러뜨리는 데에 한몫했을 테니까. 그러나 아무리 남을 탓하더라도, 자신의 아이들에게 미치는 해는 전적으로 부모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부모와 자식의 애착은 사랑이던 증오이던 결코 떼어질 수 없는 끈끈함으로 뭉쳐져 있으므로, 사회에 열심히 적응하고 있는 아이들이 의지할 사람은 단지 그네들의 부모뿐이다. 그들에게 행해지는 폭력과 상처, 그 모든 괴로운 것까지도 아이들은 측은할 정도로 열심히 배우고 익힌다. 사실 폭력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의식적으로 행해지는 이기심은 그들을 다치게 하기에 충분하다. 부모가 원하는 꿈을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아이들은 얼마나 작아지겠는가. ‘80점 부모가 되라’ 부분에서 나오는 글이 사실 가장 인상적이었고, 완벽한 부모가 되려는 데에서 감추어져 있는 이기심에 대해 날카롭게 꼬집었다고 생각한다. 부록에서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 따끔하게 당부하는 글도 당당하면서도 유쾌했다. 내 견해로 보아선 이 책을 잡을 만큼 ‘시간이 널럴한’ 남자들이 그리 많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만.

 자신의 인생을 찾으라는 말은 당연했지만, 나에게도 하나의 경종같이 들렸다. 가족의 희생이라는 말을 진심으로 싫어하는 나조차도 이 말을 듣고 절로 뜨끔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 다른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충격이 컸을지 짐작이 간다. 우리 여자들은 자신을 찾으려고 하는 마음을 철저히 베제하는 사회환경 속에서 살아왔으며, 미래에도 아마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이 책에서는 없는 내 소견이지만 OO엄마라는 호칭만큼 사람을 철저히 낯설게 만드는 것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그 속에서 여자들은 자라오고, 희생이라는 이상한 관념을 등에 지고 외로워하다가, 나중에는 폭발하게 된다. 인터넷에서 가끔 그런 점에 대해서 푸념하고 한탄하는 엄마들을 보면서, 안쓰럽기도 하지만 그들이 하는 말이 단지 푸념뿐이라는 게 더더욱 안타까웠다. 물론 현실에서도 할 수 있는 해결책을 강구하고 가족과 함께 이야기 하려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사람들은 더더욱 많다. 사람들이 타인의 사생활을 보려 하지 않기 때문이고, 무엇보다도 너무나 오래 전에 가족들과 단절되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 책에서는 그에 대한 여러 가지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그 중에서도 핵심은 가정에 대한 생각의 틀을 바꾸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바꾸려면 먼저 내 자신부터 바꾸어야 하는 법이다.

 사실 이 책은 무언가를 배우는 교과서보다는, 무언가를 배우기 위한 하나의 도약판에 지나지 않는다. 아이에게 맞는 것을 스스로 찾고, 자신이 가족 외에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찾으라는 메시지가 이 글의 결론인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육아법같은 정확한 지침서와는 달리 애매모호한 느낌이 들었지만, 실질적으로 부모가 된다면 다시 읽어보게 될 만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모든 충고와 온갖 훈계에도 불구하고 남는 것은 엄마라는 자신의 지위와 아이뿐이다. 자신의 아이는 결코 남과 같이 길러질 수가 없으며, 심지어 다 자란 아이는 엄마의 소유가 될 수도 없다. 엄마라는 지위는 여자의 속박이 아니라 자기수양이며, 인간에 대해 배우는 하나의 기제이다. 교사가 아이들을 통해 배울 수 있다면, 엄마도 물론 아이를 통해서 배울 수 있다. 자신이 선택한 모든 인생길 중에서도 하나일 뿐인 것이다. 미래의 나도 엄마의 지위를 얻기 전 이 책을 다시 한 번 돌아봤으면 좋겠고, 모든 ‘선배’와 그 분들의 아이들 또한 사랑하며 살아갔으면 하는 소망이다. 부모와 아이의 관계란 길기도 하지만, 또한 턱없이 짧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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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사냥꾼들 - 추리하고 탐험하는 영문학 이야기
이창국 지음 / 아모르문디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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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다가 언뜻 머릿속에서 어떤 책의 구절이 떠올랐다. 제일 먼저 드러내는 내용은 학자들이 매우 고리타분하며 정치는 생각하지 않고 문학만을 생각한다는 어떤 잡지에서의 비난이었다. 이 기사에 집중폭격을 받은 시인은 몇십년간 조용히 살다가 갑자기 책을 내어 예전에 쓰여진 그 기사에 대한 완곡한 해설을 했다고 한다. 그 쓸데없다고 하는 학문 덕분에 사람들은 사는 동안 위안을 찾을 수 있고, 사람들이 불안해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상세계를 조성하며, 무엇보다 그 일에 목숨을 걸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삶의 소명을 준다. 아마 이 책에서 나오는 영문학자도 그런 ‘쓸데없는’ 삶에서 일종의 소명감을 느끼며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말해서, 이 책으로 학자들을 정의하자면 한없이 바보같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심지어 저자조차도 그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죽은 저자의 서랍을 뒤지고, 저자가 쓴 소설에 등장하는 장소를 찾기 위해 1000km가 훌쩍 넘는 거리와 정글 사이를 헤치고, 채소가게와 과자가게에서 나오는 폐품종이들을 그냥 보지 않으며, 저자가 죽은 지 100년가량 지난 문학의 근원을 찾기 위해 수백권이 넘는 책들을 똑바로 보았다가 거꾸로 보았다가 하면서 단어들을 수정해나간다. 심지어 저자에게서 아무런 수정할 것, 혹은 숨겨야 할 것을 발견하지 못해 자신 스스로 수정본을 만들거나 혹은 아주 새로운 시를 써서 위조한다. 확실히 저자의 말대로, 그 과정을 추적해나가는 과정은 셜록 홈즈의 추적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훨씬 까다로운 일일 수도 있겠다. 영문학뿐만 아니라 책 자체를 좋아하는 나로서도 흥미를 감출 수가 없었고, 영문학에 대해 쓴 책들에 비해선 매우 얇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 ‘문학사냥꾼들’이라는 책을 빌려서 보았다. 학교에서 배운 문학가들과 책의 제목들이 심심치 않게 거론되어서 더욱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간단하게 펼쳐볼 수 있는 책인 줄 알았더만 의외로 시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상당히 필요했다. 특히 Chaucer, Malrowe, Shakespeare, Beowulf 등이 계속 반복해서 거론되었다.

 수업이해에 딱히 도움이 되었다면 시가 지어진 이후(정확히는 종이에 씌여진 이후)의 험난한 과정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보즈웰의 흑단나무장롱같이 몇십년이 지나도록 꽁꽁 숨겨져 있다가 보물마냥 발견된 이야기도 상당히 재미있는 일이었으나 역시 가장 흥미로웠던 이야기는 Beowulf에 대한 이야기였다. 애시번햄 하우스 안 코튼도서관이 불타게 되었을 때 잠옷바람으로 뛰어들어가 베오울프부터 먼저 바닥으로 던졌다는 수석사서 리처드 벤틀리에게는 정말 존경의 박수를 쳐주고 싶다. 역시 책이 가장 소중한 줄을 아는 사람이라면 도서관 직원들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영문학을 전공하는 나조차도 최근에 영화로 나온 서사시로만 알고 무심코 지나갈 뻔한 이야기였다. 사실 이 사람뿐만이 아니라 오랫동안 이 시를 사랑하고 아껴준 사람들이 있기에 이렇게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해 오는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한다. 결국 이 책은 책에 대한 사랑이 세대에서 세대로 내려오더라도 아직 남아있다는 희망을 가져다주었다. 노튼앤솔로지에 한두 줄 자신의 위업을 남기기 위해 치열히 투쟁하는 학자들의 정신에도 놀람을 금치 못하였다. 생각해보니 오래된 책들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듯이, 책 한 장이 찢겨지는 일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 그밖에 불과 쥐와 오류의 위험 등 원본에겐 헤쳐나가야 할 수많은 고난과 위기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오랜 세월동안 책을 지켜왔고, 지금도 현대에 맞는 수많은 방법으로 지키고 있다. 자칫하면 사람들이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는 공로를 이 책에서는 훌륭히 짚어나가고 있다. 그리고 사실 이런 역사들이 내가 보고 싶었던 진정한 책에 대한 역사가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고백하자면 사실 난 이 책을 보면서 책 위조가한테까지도 감명을 먹으며 들여다보았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미흡한 면도 상당수 있었다. 일단 최근 발견된 수많은 연구결과들이 반영되지 못한 점이다. 예를 들어 이 책에서는 고서를 편하게 보존할 수 있게 된 마이크로필름을 예로 들고 있지만 역시 요즘 시대엔 컴퓨터가 발달되어 있으며, 조선왕조실록까지 CD로 살 수 있는 시대이다. 어쩌면 그런 변화가 너무 빠르게 일어난 탓인지도 모르고, 꽤나 진보적인 글을 쓰고 있는 이 영문학교수가 유일하게 보수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저자들에 대한 설명이 너무 적다는 점도 문제라면 문제라고 할 수도 있겠다. 저자의 몇몇 영시나 소설들이 들어가 있는 것에 대해선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조차 일부 혹은 소수일뿐더러, 저자 본인에 대한 설명은 유독 불우한 인생이 드러나는 바이런이나 브론테집안 빼고는 상당히 기록이 적었다. 이왕 사람들이 편하게 볼 수 있게 만들었다면 부록이나 주석에서라도 저자에 대한 설명을 간략하게 넣었더라면 좋았을 걸 하고 생각한다. 어쩌면 두께가 조금 두꺼워질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적당하게 집어넣었더라면 자료부족이라는 단점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역시 그 한 가지 단점 빼고는 제대로 쓴 책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영문학은 물론이고 우리문학에 대한 책조차도 발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서 이 얇은 책조차도 일반서점에서 책을 찾는 사람들에겐 흔히 볼 수 없는 문학도서라고 할 수 있겠다. 어쩌면 이대로 시간이 좀 더 지난다면 ‘아무데서나 볼 수 없는 문학에 관한 일반도서’로 손꼽힐 수도 있겠다. 상당히 슬픈 현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분명 저자도 이런 현실을 인식하고 영문학의 가치에 대해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썼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어디까지나 학자의 관점에서 쓰여졌지만, 곳곳에서 영문학에 관심있는 일반인에 대한 세심한 신경을 쏟는 모습이 보인다. 책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필독서라 말할 수 있겠다. 분명 옛날 이론에서 현재 밝혀진 것들을 첨가하고 유의해서 읽는다면 영문학을 모르는 사람들조차 무궁무진한 탐구의 세계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다만 요즘은 우리나라 민요에 대해서도 새로 발견된 사실에 대해서도 라디오로서밖에 듣지 못하고, 들어도 한 귀로 흘리는 만큼 각박한 시대라 할지라도 말이다. 지금 회상해보면 가슴 철렁한 일이지만 실제로 학업에 쫓기다보니 자주 겪는 일이기도 하다. 나보다 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겠지 스스로를 위로해보지만, 역시 이 책이 사람들에게 문학에 흥미를 가지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책 중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욕심도 변하지 않는다.

 군데군데 미스테리한 내용들도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미래의 학자들에게 탐구를 맡긴다는 듯한 마지막 글귀들의 손짓은 한순간 비밀을 밝혀내고 싶다는 유혹을 끌어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진실들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게다가 몇백년 지난 일들이라고 해서 오죽할까. 개인적으로는 예전에 지나간 일보다 현실이 더욱 중요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어서 언뜻 수긍이 가지는 않지만, 중세와 같은 문학을 쓰기엔 현대의 시대는 너무나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바이다. 많은 사실들이 학자들의 노력에 의해 보물이 발견되듯 파헤쳐졌고, 그보다 더 많은 비밀들이 해저에 숨겨져 자신들을 밖에 꺼내줄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학자들에게 있어서는 거대한 야망이라고 생각해도 되겠다. 그리고 아마 이 책의 저자는 영문학에 대한 수많은 야망을 퍼뜨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몇 번이나 반복하지만, 편한 구성도 한 몫 한다. 인물들의 이름이 반복되나 결코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으며, 오히려 책의 이름이라던가 업적이 반복되는 경우는 찾아볼 수가 없다. 아마 저자가 수정하는 동안 세심하게 반복되어 있는 구절들을 지워나갔는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군데군데 흔적이 남아있으나 구성은 기억하기 명확하고 비교적 깔끔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시인이나 작가 한 명을 찜해서 그 와 연관된 학자들의 생애와 책이 견뎌내왔던 세월들을 자세히 설명해 주는 식이다. 따라서 이 책은 읽는 동안 몇 번이나 다양한 시점을 왔다갔다해야 한다. 저자의 시점으로 책을 바라보다가 책의 시점으로 역사를 바라봐야 하고, 다시 학자들의 시점으로 책을 들여다봐야 한다. 다소 복잡한 형식이라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이 순환은 전체적으로 바뀌지 않는다. 어쩌면 이 모든 역사들이 책을 바꾸어나가거나 혹은 보존시키는 방식이라고 필자는 설명하고 싶은가보다.

 전통적인 사람들이 했던 끔찍한 일들에 대한 적나라한 설명도 마음에 든다. 만일 셰익스피어나 다른 수많은 저자들이 써왔던 이야기대로 시의 대상이 불멸성을 가지고 시 안에서 살아있다면 이건 말 그대로 전쟁이나 다름없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특히 전통적인 사람들이 했던 끔찍한 일들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구절들을 예의에 맞지 않는다고 정당화시켜버리고서 수정하거나 지워버리거나 가위로 오려버리는 짓을 몇몇 사람들은 정말로 서슴없이 저질러버린 것이다. 그들이 정말 저자를 이해하고 그 작품들을 소중히 했더라면 절대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가위로 오려버린 내용들은 어쩔 수 없지만 과학적인 발달로 인해 잉크로 지워진 부분들 따위는 쉽게 복원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 얼마나 다행으로 여겨졌는지 모르겠다. 이 글에서는 과학의 발전이 영문학에 크게 공헌한 점들이 꽤 자주 나온다. 사실 르네상스 시기의 시들에겐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Chaucer이 쓴 <트로일러스와 크리세이드>와 영문학에 대해 제대로 알기 이전에 공부했던 <캔터베리 이야기>에서도 천동설이 등장했으며, 꽤 많은 문학들에 연금술 같은 것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 의하면 그 지식을 이해하고 있기만 해도, 표현을 상세히 느낄 수 있음은 물론이고 저자에 대한 상세한 사실을 알 수 있다. 후자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실이기에 깜짝 놀랐다. 아마 학자들은 매우 민감한 사람들이라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사소하게 생각되는 사실조차도 매우 소중하게 여기고 그에 대해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언뜻 보아서는 철학자의 심경과 비슷할지도 모를까 생각해본다.

 반면에, 군대에서는 암호해독가와 같은 역할도 도맡아 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학자가 되려면 학구열과 그만큼의 예리함도 겸비해야 한다는 일종의 암시같은 것일까? 집요하게 시간을 투자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학자들이 몇 년동안 고민해왔던 책의 대조작업에 대한 고민을 영상필름으로 손쉽게 해결하는 아이디어조차 학자들이 스스로 고민한 끝에 해결한 것이다. 하긴 학자들의 일은 스스로의 고독한 싸움이며, 추리보단 투쟁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든다.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하고 추측도 난무하지만 읽는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부분은 뭐니뭐니해도 문학가들이 가지고 있는 사생활에 대한 이야기였다. 특히 시인들이 걸린 병에 대해서 에세이식으로 써내려간 주제가 두세차례 있는데, 개인적으로 흥미가 있는 바이런과 셸리, 최근에 공부한 존 밀턴에 대한 연구들은 매우 흥미로웠다. 나는 개인적으로 병에 대한 경험 혹은 심리적 문제가 있기에 이들이 훌륭한 시를 쓸 수 있었다는 가설에 찬성하는 바이다. 마치 달리기 위해선 균형을 흐뜨려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하나의 억측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시인들이 평상시에 주고받던 편지와 산문들을 기반으로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저자조차 추측이 난무하다는 치명적인 사실을 인정했지만, 그런 점까지도 나름대로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말로우의 황당한 피살사건과 공공연한 비밀인 워드워즈의 사생아 소문에 대해선 소문의 무서움(?)을 확인할 수 있는 하나의 계기이기도 했다. 역시 뒷담과 함께 남의 사생활에 대해 귀 기울이기란 시대를 통틀어 누구에게나 짭짤한 재미를 선사해주나보다.

 영문학에 대한 이 간결한 책을 읽으며 깨달은 가장 중요한 사실은 르네상스시대 정도의 책들이 매우 재미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원작을 지은 저자들에겐 매우 애석한 일이지만 워낙에 수많은 편집과 수정과 삭제를 거치다보니 <캔터베리 이야기>의 경우처럼 어떨 땐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심지어 그 유명한 토머스 와이즈처럼 시를 새롭게 지어내어 위조하는 경우조차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황당한 역사들도 있기에 오히려 영문학들이 특유의 정리되지 않은 정겨움을 가져다주는 면이 있지 않을까 싶다. 현대에서는 볼 수 없는 방대한 보물창고가 아직도 세상에 밝혀지지 않은 채 숨겨져 있는 것이다. 게다가 책과 저자에 얽힌 수많은 의혹과 소문들이 무성하다. 이 정도면 저자가 이끌고 있는 그대로 학자도 할 만한 직업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이다. 물론 학자들이 그밖에 해야 할 일은 정말 많겠지만. 그리고 영문학 의외에 많은 국문학이 등장하여 학문발견의 예를 들고 있었는데, 얼핏 우리나라에서도 이 정도의 노력을 기울이는 학자들이 있었으면 생각될 정도였다. 외국서적도 좋지만 우리나라 책도 상당히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줄어드는 고서점과 미숙한 도서관에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영문학가들이  창의적인 소설이나 산문을 써 주었으나, 영문학을 사랑하는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힘을 보태주었기에 이 정도로 발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이들도 게르만 민족이라고 차별받고 우리나라에서 미국을 보듯 외국들을 대해왔었으나, 문학에 대해 관심과 배려를 베풀었다. 책 수집에 도가 튼 많은 부자들이 직접 도서관을 만들거나 혹은 도서관에 기증함으로서 책의 보관에 한몫했고, 도서관 사서들이 의무감에 나서서 책을 보호했으며, 심지어 어떤 사서는 전 세계에 퍼져있는 저자의 작은 쪽지들을 직접 모아서 출판하기까지 했다. 왠만한 사랑과 열성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경제도 물론 중요하지만 정부에서 나서서 문학에 대한 꾸준한 관심을 가졌으면 하고, 유시민 등의 사람들처럼 문학적인 정치인들이 좀 더 많았으면 하는 바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반듯한 우리나라 책의 역사에 대해서 쓴 책이 나와주기를 소망하는 바이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이보다 좀 더 자세히 책의 역사에 대해 적혀있는 책을 찾고 싶다. 용량이 정말 막대할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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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라도라 1 - Extreme Novel
타케미야 유유코 지음, 김지현 옮김, 야스 그림 / 학산문화사(라이트노벨)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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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20대가 되면 괜히 과거의 풋풋한 학생시절을 그리워하게 되는 것일까.
 염장을 좔좔좔 흘리는 로맨스도 로맨스였지만 고등학생시절이 떠올라 몇 번씩이나 가만히 생각하게 되는 소설이었다. (이지 메같은 걸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되지만.)
 아무튼 일본의 심히 교훈적인(?) 잔소리가 책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지극히 일본적인 소설인지라,
 우리나라에서는 별반 호응이 없는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당연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뻔뻔한 엔딩도 비호감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겠지만.
 아무튼 구입을 원하는 분들이 있으시다면 '토라도라 스핀오프'도 같이 보길 추천하는 바이다.
 사기 전에는 좀 아깝다는 생각마저 들었다만 읽어보니 본편만큼이나 느낀 것이 많았다.
 류지와 타이가 속편 이야기가 지루해질만큼.
 아무튼 결국, 타이가도 부럽다는 것이다. 제기랄 언제나 이런 부류의 소설에 나오는 컵플은 선남선녀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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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아이들 - 에너지를 향한 끝없는 인간 욕망의 역사
앨프리드 W. 크로스비 지음, 이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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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에너지로 인간의 사회를 매우 간략하게 정리한 환경역사서라고도 할 수 있다.
 음식, 석탄, 석유, 전기, 원자력, 기타 대체에너지의 순으로 에너지의 진화를 설명하듯, 깔끔하게 구분해놓았다. 인용한 논문들의 기나긴 목록을 보다보면 언뜻 보면 레포트의 냄새도 난다.
 일단 단점들을 열거해 놓는다면 이렇다.
 일단 '구대륙과 신대륙'이라는 구절. 번역이 실수했는지 원래 책에 그렇게 적혀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상당히 거슬렸다. 얼굴 흰 백인이 발견했다는 이유만으로 원래 존재했던 대륙을 신대륙이라 멋대로 이름붙이다니. 더불어 에너지 착취에 대한 역사를 더 자세히 보여줬더라면 좋았을 뻔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게다가 구대륙이 신대륙에게 가져다 준 이익 운운하는 게 솔직히 좀 우스웠다. 에너지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아프리카 사람들과 인디언들이 희생되었던가. (물론 신대륙 발견 전에도 노예제도와 학살은 있었지만. 양적 문제이다.) 양측의 의견에 균형을 잡으려다가 오히려 중요한 걸 놓친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상의 전환점은 존재한다.
 일단 '빵의 역사' 등의 책에서는 음식에 대한 문화를 다루고 있지만, 이 책에서는 그 근본이 에너지에 있다는 점을 몇 차례 강조하고 있다. 사실 골수 인문학계인 나로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발상이었다.
 일반인이 읽기 쉽게 글을 풀어 쓴 점도 매우 인상깊었다. 사실 원자력 시설에 대해서 저렇게 간단한 설명을 들어본 적도 처음이었다. 원자력의 장단점에 대해서 심리적인 두려움을 배제한 채 철저히 객관적으로 분석한 점도 플러스가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립하는 의견들을 모두 받아들인 포용력있는 설명. 이 것이 이 책의 최대 장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지나치게 낙관적이지도 비관적이지도 않지만, 에너지 낭비에 대한 지적은 날카롭게 나의 가슴에 박혔다. 전기도 결국 석탄의 소비로 인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우리나라 사람들 중 몇 명이나 제대로 인식하고 있을까. 실은 지금 컴퓨터 앞에 앉아 타자를 두드리고 있는 필자마저도 종잡을 수가 없다.
 일반인들을 위해 만든 간단한 에너지 이야기.
 냉정한 현실에 대한 실감을 원한다면 초반에 이 책을 읽고 깨달음을 얻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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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와일라잇 - 나의 뱀파이어 연인 트와일라잇 1
스테프니 메이어 지음, 변용란 옮김 / 북폴리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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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말해서, 병맛이었다.
 에드워드는 잘난 척하는 것, 여자를 과보호하는 그 마초성격이 심히 거슬렸고,
 벨라는 미련따위로 제이콥과 양다리 걸치는 심보, 뱀파이어이자 못하는 게 없는 슈퍼마초 에드워드를 만나 땡잡았다는 심보 전부 재수없었다.
 브레이킹 던에서 그나마 고생을 하는 걸 안봤다면 눈 베렸다고 생각했을지도 ㅋㅋㅋㅋ
 어째서 이런 게 뉴욕타임즈에서 베스트셀러로 선정되었는지 알 수가 없달까.
 여기서도 뱀파이어랑 늑대인간의 이야기라고 취급하지 마시길.
 뱀파이어가 뱀파이어가 아니고 늑대인간이 늑대인간이 아님.
 스포일러라고 할지도 모르겠으나 특히 제이콥네의 경우 절대로 아님.
 게다가 이런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 자체가 정말 재수없...<
 그래도, 유리구두 한 짝 떨어뜨려서 봉잡는 로맨스의 구조라면 정말 손색이 없을 만큼 명작이다.
 일단 두께가 어마어마하지 않은가. 브레이킹 던만은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젠장.......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걸 돈 주고 사는 사람들의 심정따위 이해할 수 없음.
 결론은 판타지라는 생각을 버리시고 처음부터 끝까지 아예 멜로물이라 생각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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