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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속한 나라
크리스티안 펫졸트 감독, 줄리아 험머 외 출연 / 카누(KANU) / 2017년 2월
평점 :
이걸 말하면 깨겠지만 풍등은 착륙 잘못하면 화재나고 환경오염됩니다 ㅡㅡ
1화부터 분량 장난 아니더라 무려 1시간 30분이다. 게다가 광고까지 합치면 어우.. 거의 저거 영화 한 편 분량 아닌가요? 비교적 시간이 짧은 녹두꽃 본 이후라서 그런가 적응하는 데 힘겨웠다. 그렇다고 질질 끄는 기색은 없지만. 아니 오히려 부족했단 느낌이랄까?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이리저리 추론해야 했다. 주인공이 향소부곡민인 것도 그렇고(누가 비정규직 청춘남이라 하던데 적절한 비유였다 생각한다.) 한국사에 대한 기본 지식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고려에서 향소부곡민은 무언가 사연이 있는 사람이 사는 곳인데 초기에는 차별을 받았지만 후기로 가면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주인공도 최영 장군 빽으로 무술시험에 응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스토리는 내 취향 아님 너무 휙휙 지나가고 설명을 캐릭터들 대사로 때우려는 버릇이 있음 내가 사극에 있어선 꼰대라 그런가 신세대를 표방하려는 말투도 영 맘에 안듦 그런데 사이다긴 하다 ㅋㅋ 그거 하나는 인정.
사실 시청자들이 판타지 사극을 좋아하는 이유는 판타지 요소 때문이 아니라, 그 요소들이 역사적 흐름과 잘 결합됐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창작자들이 역사성을 훼손하지 않으려고, 혹은 되도록 전달하려고 기울인 노력은 소비자들이 반드시 느끼게 되어 있다. 그 느낌에서부터 몰입이 시작되는 게 아닌가. 백보 양보해서 아무 역사적 흐름과 상관 없는 시대물이라고 해도 사무라이 챰프루처럼 인물들이 힙합 BGM에 맞춰 춤추듯이 전투를 하면서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던가 해야 뜰텐데, 나의 나라 어디에 그런 압도적인 장면이 있었나?
그런데 이 드라마는 상당히 주제가 계급적이고 개인적이다. 아까 비정규직 청춘남이란 비유에서도 볼 수 있듯이, '역사에 이용당하고 짓이겨지는 개인'을 다루는 것이다. 그런 개인들은 언제나 있어 왔지만, 어쨌거나 조선 건국은 한계가 있을지언정 개인의 권리와 불공정 문제가 진일보한 사건이었다. 그러니까 씹고 뜯겨지는 비운의 개인사를 여말선초 배경에 넣었으려니 추측은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야기의 배경이 굳이 여말선초가 되어서 당대의 역사적 맥락이 낙동강 오리알이 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의외로 사극에서도 진지하고 현실적인 주제는 낭만에 비해 뒤처지는 면이 있다고 할까.
사실 난 조선구마사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망하는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과도한 애국주의'를 비판할 순 있지만, 솔직히 이제 사극에서 난무하는 판타지에는 좀 지쳤다. 아까 낭만 얘기를 했지만, 로맨스 사극도 성균관 스캔들 이후론 소재가 좀 많이 진부해지지 않았나? 확실히 킹덤이 흥하긴 했지만 그건 그저 좀비물과 판타지로서였다고 생각하며 그 때조차 '동양에 대한 환상팔이'를 비판하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그건 나의 나라에서 '여말선초 환상팔이'에 대한 사람들의 무관심에서부터 시작된 일이었고, 결국 조선구마사가 그 논란에 휘발유 끼얹어 불을 질러버렸다. 역사는 물론이고 우리나라는 조선을 정말이지 필요이상으로 사랑하는 것 같다. 고종이 일본에게 좌지우지되다 허망하게 죽은 데에 대한 아쉬움 때문인 것 같다. 결국 고종이 우유부단한 성격임에도 왕 자리는 꿰차고 싶어서 나라가 그 지경이 되었다는 사실이 다 밝혀졌는데도 그런다. 일본이 무슨 열등감 넘치는 나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던데 이건 그럼 열등감 아닌가?
이걸 소개하신 분은 캐스팅이 의외였다 했는데 장혁이 나이도 좀 먹었고 방원 초기를 맡기엔 나쁘지 않다고 난 생각했다. 의외로 장혁은 갈굼당하는 역할이 어울린단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