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레인지는 음식을 화나게 한다 [2008.11.21 제736호]
 
[안병수의 바르게 먹자]
영양분 파괴, 성분 변화, 발암물질, 전자파… 지식인들이 폭로하는 전자레인지의 치부
 
 
 
 


   
 
 

‘문명의 이기’ 하면 뭐가 떠오르시는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어떤 이는 자동차를 생각할 것이고, 어떤 이는 TV나 휴대전화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식품 전문가에게 묻는다면 한 가지로 수렴할 가능성이 크다. ‘전자레인지’라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문명의 이기가 있기에.

전자레인지의 고향은 당연히 패스트푸드의 나라 미국이다. 가정용으로 정식 출생신고를 한 것이 1960년대 후반께. 태어나자마자 ‘편리함’이라는 찬사를 자양분으로 무럭무럭 자랐다. 미국 가정 내 보급률이 1970년대 초에 1%였던 것이 1980년대 중반 들어 25%로 크게 는다. 오늘날엔 몇%나 될까. 거의 100%? 예상과는 달리 90%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그렇다면…, 10% 가까운 가정엔 전자레인지가 없다는 이야기다. 얼마나 궁핍하기에 그 흔한 것 하나 들여놓지 못할까.


 
 


» 전자레인지는 음식을 화나게 한다.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그러나 그렇게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미국에서 전자레인지를 쓰지 않는 가정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빈곤 때문이 아닐 터여서다. 그들은 오히려 고소득층일 가능성이 크다. 지식인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전자레인지가 숨기고 싶은 치부가 들어 있다.

일설에 따르면 전자레인지의 원래 고향은 미국이 아니라고 한다. 처음 아이디어가 태동한 곳은 나치 치하의 독일이었다는 것이다. 나치가 전쟁에 패함에 따라 이 아이디어는 옛 소련 쪽으로 넘어가게 된다. 하지만 소련은 전자레인지를 만들지 않았다. 이유는 소련의 과학자들이 극구 반대했기 때문이라는 것. 그들이 전자레인지 제작을 반대한 까닭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훗날 미국의 과학자인 윌리엄 코프가 해준다. “음식을 전자레인지에 넣고 가열하면 우선 발암물질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각종 성분들이 비정상적으로 변하기 때문이죠. 또 여러 유용한 영양분들이 파괴되고 음식으로서 생명력을 잃게 됩니다. 이런 음식을 자주 먹게 되면 병약한 체질로 변하게 되죠. 굳이 음식 문제가 아니더라도 이와 같은 기계를 부엌에 놓고 돌리는 건 재고해야 합니다. 새어나오는 전자파에 의해 인체 세포가 직접 손상될 수도 있으니까요.”

이처럼 전자레인지의 유해성에 경종을 울리는 학자들은 그 밖에도 많다. 스위스의 한스 허텔 박사는 “전자레인지로 가열한 음식을 먹으면 혈액의 헤모글로빈이 감소하고 나쁜 콜레스테롤이 증가한다”고 발표했다. 또 미국 스탠퍼드대학 연구팀은 “전자레인지에 의해 인체 면역력이 약화되는 현상을 발견했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주장은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나오고 있어 흥미를 끈다. 물 연구가로 유명한 김현원 연세대 교수는 자신이 만든 알칼리수를 전자레인지에서 가열하지 말도록 주문한다. 전자파에 의해 물의 치유 효능이 손상된다는 것이다.

전자레인지는 그야말로 생필품 중의 생필품이다. 그런 기계에 웬 황당한 잡음인가? 가열 방식을 알면 납득이 간다. 전자레인지는 열을 이용해 음식을 조리하는 일반 가열 방식과 전혀 다르다. 1초에 수십억 회 운동 방향을 바꾸는 강력한 전자파를 발생시킴으로써 음식의 구성분자들을 마구 뒤흔든다. 이때 순간적으로 열이 발생하고 온도가 빠르게 오르는 것이다. 음식이 만일 생명체라면 난데없이 몰매를 맞고 화병에 걸려 있는 꼴이라고 할까.  


전자레인지는 음식을 가열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물품이다. 그런 것으로 음식을 조리하는 일은 자연의 섭리에 위배되는 행위다. ‘슬로푸드’니 ‘로컬푸드’니 하는 말들이 더 자주 등장하는 요즘, ‘먹는다는 것’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그것은 단지 음식을 먹는 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음식을 만드는 일도 중요한 일부분이다. ‘만드는 일’도 즐겨보자.



 



◎ 전자파도 자연의 것은 괜찮아

전자파라고 해서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자연이 만드는 전자파는 오히려 더 좋다. 그 유명한 원적외선이 바로 그것이다. 음식을 조리할 때 원적외선을 많이 쬐어주면 속까지 고루 익을뿐더러 맛이 훨씬 좋아진다. 음식 성분들이 이상적인 조건에서 익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손쉽게 원적외선을 제공하는 것은 숯불이다. 흔히 사용하는 가스불에는 원적외선이 그다지 많지 않다. 가스불에서는 음식이 쉽게 타지만 숯불에서는 여간해서 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본의 요리 전문가인 하토리 유키오의 실험이 원적외선의 효과를 잘 설명한다. 생선을 가스불에 구울 때 생선 표면의 온도가 400~500℃였고 중심부는 44℃였던 데 반해, 숯불에 구울 때는 생선 표면이 280℃였고 중심부는 98℃였다는 것이다. 원적외선은 인위적으로도 만들 수 있다. 세라믹 소재를 뜨겁게 달구면 나온다. 돌솥구이 고기가 덜 타고 더 맛있는 것이 그래서다. 중요한 것은 전자파에까지 ‘자연’과 ‘비자연’의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안병수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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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결한 자연주의자여 그대는 MB
[매거진 esc]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한겨레  
 








 

» 순결한 자연주의자여 그대는 MB. 일러스트레이션/ 양시호
 

 
 
Q 좌파·우파가 뭔가요? 자신이 진보적이라고 말한 이명박 대통령은 그럼 좌파인가요?

안녕하세요, 형님. 저는 올해 고3이 되는 학생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용산 철거민 사망 사건을 접하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제가 정부 대응을 비판하자 한 친구가 그건 전형적인 좌빨 주장이라고 하면서 촉발된 논쟁에 결론을 보지 못해 형님에게 질문을 드리려구요. 평소 언론에서 좌파, 우파 할 때도 솔직히 뭐가 뭔지 잘 모르겠고 게다가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은 매우 진보적이라는 발언도 했고 또 얼마 전에는 오바마 대통령과 같은 철학을 공유하고 있다고도 했더군요. 그럼 이명박 대통령이 좌파라는 말인 건가요. 그리고 군사시설보다 롯데월드를 우선하는 건 뭔가요. 친구들이랑 논쟁할 때도 사실 좌파, 우파가 뭔지도 모르면서 좌빨 어쩌고 하게 되는데 뭔지 잘 모르니까 딱히 반박할 말도 없고. 그렇다고 그런 게 알기 쉽게 정리된 책도 없고. 해서 묻습니다. 좌파, 우파가 뭔가요.


A 0. 호, 이런 질문, 고3이. 좋아. 먼저 난 몸으로 직접 겪어 그 원리를 오감으로 체득하기 전엔 책에 뭐라 쓰여 있든 관심 접는, 경험주의자라는 것부터 밝혀두자. 뭐 자랑 아니라 내 답변의 한계 지점부터 자백해 두는 거다. 이제, 가자.

1. 일단, 책 덮어라. 잡소리만 많다. 상식으로 족하다. 자, 초원의 유인원이 가장 두려워한 게 뭐였을까. 사자. 아니다. 보이는 사자는 대처할 수 있다. 언제, 뭐가 튀어나올지를 모르는 거, 불확실성, 그게 가장 두려운 거다. 우린 신이 아니니까. 내일 모르니까. 해서 굿도 벌이고 십자가도 걸고 염주도 찬다. 그거 좀 어떻게 해보려고. 오늘 식량 있다고 내일도 식량이 보장되는 건 아니던 그 시절부터, 삶의 불확실성으로 인한 공포에 인간은 근본적으로 다른 두 방식으로 대처해 왔다. 그러니까 공포와 대면하는 서로 다른 두 태도, 그게 바로 좌우라.

어떻게 다르냐. 우는 세계를 약육강식 정글로 본다. 그 두려움, 스스로 포식자가 되어 해결하려 한다. 더 많은 자원 독점해 자기는, 살아남는 게다. 획득한 자원의 사유 보장과 그 질서유지 위한 위계, 매우, 중요해진다. 그로 인한 불평등은 자연의 이치. 뒤처지는 자, 남 탓할 거 없다. 약한 건, 제 탓이니까. 하여 우는 근본적으로 혼자된 자의, 공포 리액션. 키워드는 경쟁이요 그 엔진은 욕망이라. 자기도 무서운 거 감추려고 혹은 스스로 너무 대견해, 엄숙하고 비장한 표정이 그 트레이드마크.

반면 좌는 정글 자체를 문제 삼는다. 개인이 아니라 결국 정글 탓인 게라. 정글의 공포는 잘게 나눠 각자가 감당할 공포의 규모를 줄여 대처하려 한다. 제한된 자원을 비슷하게 분배해 각자 공포의 크기를 균등하게 만드는 게 중요할밖에. 균형 깨지면 결속도 깨지니까. 그래서 평등에 민감한 수평적 관계지향성은 좌의 생존법. 하여 좌의 키워드는 연대, 그 엔진은 염치. 도덕적 우월의식과 지적 오만은 그 콜래트럴 데미지.

그런 전차로, 우는 지 다 처먹고 흘린 떡고물을 경제라고 하고, 좌는 생산도 전에 나눌 계획부터 이미 경제라 친다. 좌의 이념이 정교해진 건, 근대 들어서. 우는, 이념 아니고. 자극에 대한 반응이지. 그럼 뭐가 그 둘을 나눈 거냐. 이념 이전에 기질. 이념은 그 주석일 뿐. 정보를 처리하고 그에 대한 해법 내는 기질의 작동이, 환경에 대처하는 나름의 적응이 서로 다른 게라. (적어도 난, 그리 생각한다. 살아보니, 그렇더라. 양육 중요하나, 기질부터다.) 다 커서 좌에서 우로 전향, 그래 나온다. 학습으로 좌연한 자들, 애초 기질이 우면, 결국 욕망이 염치에 승하는 시점에, 우 된다. 그러니 그거 변절 아니라 복귀. 여기까지가 직관의 좌우다.



2. 이제 이명박으로 점프하자. 우리네 우가 왜 비정상인지부터 학벌강박은 공포의 우파적 해결 시도가 낳은 사회병리란 이야기까지 무지 많은 할 말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오늘은 그대 고민, 대통령에만 집중하자. 대체 대통령의 이념적 정체성이 뭐냐.

복잡하게 생각할 거 하나 없다. 키워드만 보라. 용산 사건, 에스비에스(SBS) 원탁대화에서 키워드 하나 내놨다. 법질서. 그래, 맞다. 저 윗줄에 있던 유인원의 질서유지와 위계, 그거와 같은 뜻. 사람 살리라고 있는 법질서가 사람 죽였는데 여전히 법질서다. 좀 더 볼까. 종부세, 우씨 이미 획득한 사유는 건들지 말라니까. 복지 삭감, 불평등은 자연의 이치니까 뭐. 부동산은 그럼. 욕망이지. 영어는, 경쟁이고. 표정은, 비장하잖아.

그렇다면 롯데월드는. 우는 혼자된 자의 공포 반응이라 했다. 하여, 우는 자위와 국방에 대단히 예민하다. 미국 봐라. 총기 소지에 대한 입장으로 좌우 나눈다. 우야 당연히 소지 허용. 정글에선 제 몸 스스로 지킬 무한권리 있는 게, 우에 맞는 세계관이니까. 그런데 군사기지보다 빌딩 건축이 우선이다. 왜. 돈 벌라고.



 

»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여기서 우 일반과 갈린다. 대통령의 모든 반응은 전부 하나로 귀결된다. 삶의 모든 불확실성을, 오로지 먹고사는 문제만으로 환원시키기. 이명박이 불편한 건 그래서다. 인류가 유사 이래 축적해 온 정신의 성과물과 자산들, 그 흔적이 없다. 이건 뭐 유인원 세계로의 온전한 회귀라. 하여 난, 이명박 대통령을, 순결한, 자연주의자라 부른다. 우왕, 멋져.


PS - 이명박과 오바마의 공통점. 하나 있다. 둘 다, 한국말을 못 알아듣는다는 거. 이상.

김어준 딴지 종신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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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연민의 연애학적 고찰
[매거진 esc]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한겨레  
 

Q 스스로를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다 여기는 애인한테 지쳤어요


1) 남친은 섬세하고 취향도 비슷하고 말도 잘 통합니다. 처음 만났을 때, 그의 시니컬한 태도와 예술적 심미안, 그리고 뭔가 비극적인 분위기에 많이 끌렸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우울한 태도에 저도 같이 지쳐가는데다 특히 그의 생활력이 문젭니다. 서른이 넘었는데 저한테 용돈을 받습니다. 처음에는 곧 일자리 구하겠지, 괴로울 텐데 아무 말 말아야지 했습니다. 하지만 벌써 1년 넘었네요. 이젠 저한테 용돈 받는다는 사실을 괴로워하긴 하는 건지조차 의심이 갑니다. 이 사람, 과연 바뀔 수 있을까요.


2) 제 애인은 너무 비관적입니다. 제가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그게 얼마나 자신에게 상처를 준 줄 아느냐며 북받쳐하는데, 환장합니다. 처음엔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빌었습니다. 여린 그녀를 제가 상처 입혔단 죄책감에 어쩔 줄 몰라 했죠. 하지만 자신이 얼마나 처참한지 설명하는 걸 들으면 들을수록, 더 이해가 안 갑니다. 가정 형편이 나쁜 것도 아니고 외모, 학벌이 빠지는 것도 아닌데, 그녀는 항상 슬퍼합니다. 제가 진이 다 빠져버립니다. 대체 그녀는 왜 그러는 걸까요.



A 0. 오, 재밌다. 첫 사연만 왔더라면, 그냥 몇 대 쥐어박고 헤어져, 했을 게다. 근데 두 번째 사연의 답지로, 남녀가 그 감정을 어떻게 연애 전략으로 삼는가, 그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할 좋은 쾌다 싶어, 오늘은 이걸루다가 가 보련다.



1. 누구나 갖는 근원적 연애 공포가 있다. 수컷은 거절 공포, 암컷은 유기 공포가 그것이다. 수컷에게 거절은, 자신의 생물학적 남성성 자체가 거부당하는 경험이다. 수컷으로서의 존재 가치가 부정당하는 거다. 이거, 자존심이 상하는 게 아니라, 무서운 거라고. 여자들, 이해 못한다. 반면, 암컷에게 있어 버림받을지도 모른단 공포는, 흡사 아무 증빙도 없이 전 재산을 치른 후 오로지 상인의 양심에만 맡겨진 소비자의 불안과 그 속성이 유사하달까. 더구나 경제적 불안보다 근본적인 존재론 차원의 공포. 하여 이거, 남자들, 이해 못한다. 암컷의 절대화폐인 섹스와 애정을 완불하고도 정서적 쪽박은 물론 아무런 부양 없이 임신한 채, 유기될지 모른다는 기저 공포는, 수컷의 거절 공포만큼이나 생물학적이기도 하다. 하여 그 공포, 양자 모두 진화적으로 축적된 공포라 보는 게 옳을 게다.

2. 이제 사례 보자. 두 사례 공히 키워드는 자기 연민. 지가 지를 긍휼히 여기는 거지. 이거 심리적 치유와 방어 기능, 분명 있다. 비루하느니 차라리 비극적이면, 조소나 힐난 대신 동정과 연민, 얻으니까. 게다가 희생자는 자신이기에 비난할 권리, 오로지 자신에게만 귀속된다. 얼마나 안전한가. 그렇게 지가 주인공인 비극 한 편 쓰는 거다. 하여 자기 연민은 필연적으로 무대와 관객을 필요로 한다. 저도 사실은 저 혼자 만든 감정이라는 걸 의식, 무의식으로 인지하기에. 그거 실제라는 거, 입증해야 한다. 하여 그들은, 그들이 선정한 관객 앞에서, 스스로 장치한 무대에 올라, 세상으로부터 고통 받는 가련한 주연이 됨으로써, 모든 잘못과 책임의 면책권을, 마침내 획득해낸다. 고로 본인, 그거 나르시시즘으로 친다. 지 혼자 생쑈니까. 본인 언어로는, 비련의 딸딸이, 되시겠다. 여기까진 남녀, 같다.

3. 차이는 그로 해결코자 하는 공포의 속성이 다른 데서 기인한다. 남자들의 자기 연민, 통상 능력과 유관하다. 다른 수컷들과의 경쟁 우회하며 거절 공포 타개하는, 하나의 생존기법인 게라. 하여 그들의 비탄은 스타일이요, 고독은 패션. 수컷 공작의 슬픈, 꼬리라. 남자들의 자기 연민, 그렇게 섬세하게 찌질한, 일부 수컷들의 필살기.

반면 여자들, 능력과 무관하다. 정도 차이 있을 뿐, 대다수 여자들, 본능적으로 구사한다. 예를 들어 그들, 혼자 울며 거울 본다. 거울에 비친 자신에게조차 스스로 관객이 된다. 어떻게 비칠 것인가. 그렇게 남자의 눈으로, 자신을 본다. 하여 예쁘게 슬플수록, 만족스럽다. 때로 울며 웃는 건, 그래서. 모든 연애하는 여자들, 그렇게, 배우다. 마치 탑에 갇혀 구출 기다리는 공주처럼, 스스로를 연약하고 가련한 존재로 설정함으로써, 도저히 버림받아선 안 되는 희생자이자 보호받아 마땅한 소녀가 되어, 그들의 근원적 불안-유기 공포에 대처하는 거라.



 

»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4. 결론이다. 수컷들 자기 연민이 모성 본능에 기대는 기만적 구애 행위라면, 암컷들 자기 연민은 버림받지 않으려는 방어적 자구 행위다. 그런 전차로 본인은 전자를 사기로, 후자를 연기로 친다. 대처, 다를밖에. 먼저 우울한 남자. 그가 바뀔 것이냐. 안 바뀐다. 왜냐. 통하니까. 그건 그가 나름대로 개발해 온 생존술. 그걸 바꾸라는 건, 건축노동자에게 근육을 포기하라는 거다. 둘 중 하나다. 부양하거나, 떠나거나.

슬픈 여자. 왜 그런지는 말했다. 여자들 모두, 일정 정도, 그러하단 것도. 그녀 케이스는 과잉일 뿐. 그럼 남는 건 하나. 어디까지 받아줄 거냐. 그 기준, 자신밖에 못 세운다. 그렇게 선 그어 상대에게 인지시키는 수밖에. 참고로 그 수용의 한계선 이어붙이면, 자신이 타고난 본연의 남성성이, 제 크기를 드러낸다. 참으로, 재밌게도. 하여, 선은 제 그릇대로, 긋는 거다. 그건 죄가 아닌 거다. 그 이상 하단, 말라 죽으니까. 인샬라.


PS - 자기 연민 없는 자들, 사이코패스거나, 자기객관화 됐거나 혹은 돼지거나.

김어준 딴지 종신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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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조합원 전세계에 이명박·한나라당 성토메시지
27일 밤 노조카페에 5개국어 UCC 올려 "MB1년 민주주의위기…"
 

2009년 02월 27일 (금) 22:34:24 조현호 기자 ( chh@mediatoday.co.kr)
 


"한나라당이 합의없이 언론의 자유를 규제하는 법안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것을 날치기라 부릅니다."(영어버전-최현정 MBC 아나운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있다. 13억 중국인들이여! 한나라당 '고흥길'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해주십시오. '왜 이래∼아마추어같이'"(중국어버전-방현주 MBC 아나운서)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사르코지와 브루니의 만남보다 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커플이 탄생하려고 합니다. 바로 3대 대형극우신문 조중동과 방송의 결합입니다."(프랑스어버전-권희진 MBC 기자)

MBC노조 디지털 파업 본격 가동…첫 활동 5개국어로 한나라당·조중동 규탄

총파업 재개 이틀째를 맞은 27일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박성제 본부장)가 본격적인 디지털 파업에 돌입했다. MBC본부 조합원들은 파업 돌입과 동시에 본부 공식 인터넷카페 힘내라 MBC! (cafe.daum.net/saveourmbc)에 이날 오후 8시께 '세계인에 전하는 메시지'라는 UCC(이용자제작콘텐츠)를 카페에 올렸다.

김정근 아나운서(조합원)의 진행으로 영어·중국어·프랑스어·스페인어·일본어로 MBC 기자·PD·아나운서 조합원들이 고흥길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장(한나라당 소속)의 언론악법 직권상정과 민주주의 위기에 놓인 대한민국의 현실에 대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내용이다.

김 아나운서는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에서 전해드리는 뉴스속보"라고 오프닝멘트를 한 뒤 "한나라당이 언론악법을 통과시켜 방송을 장악하려 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의 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위협하고 있다. 민주주의도 위태롭다. 이런 현실을 전세계에 알리고자 메시지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 27일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조합원들이 제작해 MBC본부 인터넷 카페 '힘내라 MBC!'에 올린 UCC '세계인에 전하는 메시지'. 사회를 보는 김정근 아나운서.  
 


조합 카페에 '세계인에 전하는 메시지' 리포트 UCC로 제작

가장 먼저 나선 최현정 아나운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지 이제 겨우 1년,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며 "한나라당이 합의없이 언론의 자유를 규제하는 법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것을 날치기라 부른다"는 메시지를 영어로 전했다.


   
  ▲ 27일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조합원들이 제작해 MBC본부 인터넷 카페 '힘내라 MBC!'에 올린 UCC '세계인에 전하는 메시지'  
 
방현주 아나운서는 중국어로 "13억 중국인들이여! 한나라당 '고흥길'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해달라. '왜 이래∼아마추어같이'"라며 "또 한 통의 항의전화를 해달라.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허튼 짓 하지 마라'"라고 말했다.


   
  ▲ 27일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조합원들이 제작해 MBC본부 인터넷 카페 '힘내라 MBC!'에 올린 UCC '세계인에 전하는 메시지'  
 


권희진 기자는 프랑스어로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사르코지와 브루니의 만남보다 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커플이 탄생하려 한다. 바로 3대 대형극우신문 조중동과 방송의 결합"이라며 "이들의 만남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대재앙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권 기자는 "대다수의 국민이 반대하고 있지만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은 국민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라며 "그러나 국민을 이기는 권력은 없다"고 덧붙였다.


   
  ▲ 27일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조합원들이 제작해 MBC본부 인터넷 카페 '힘내라 MBC!'에 올린 UCC '세계인에 전하는 메시지'  
 


"13억 중국인, 고흥길에 항의해달라" "한나라 할 말 '겐세이(견제)' 아닌 '쓰미마센(죄송합니다)'"

스페인어 버전도 나왔다. 이동희 PD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많은 단어들이 사라지고 있다"며 "민주주의, 상식, 소통, 언론자유. 세상에 이런일이!"라고 했다.

하지은 아나운서는 일본어로 "언론법 개정으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한나라당의 말은 거짓말"이라며 정병국 의원의 발언을 들어 "난데없이 일본어가 등장했다고 한다"고 했다.

"이 말이 됩니까. '겐세이' 놓고 끼어드시면 계속 늦어지니까…들으세요 들으시고"라는 정 의원의 말을 보여준 뒤 하 아나운서는 "우리가 한나라당에게 듣고 싶은 말은 '겐세이(견제)'가 아니라 '쓰미마센(죄송합니다)'"이라고 비판했다.

다음은 MBC본부 조합원들이 조합 카페에 올린 '세계에 전하는 메시지' 전문이다.

<앵커> 김정근 조합원-아나운서
안녕하십니까.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에서 전해드리는 뉴스속보입니다. 한나라당이 언론악법을 통과시켜 방송을 장악하려 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의 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위협하고 있다. 민주주의도 위태롭다. 그래서 이런 현실을 전세계에 알리고자 한다. 문화방송본부에서는 전세계인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준비했습니다.

<영어> 최현정 조합원-아나운서
긴급 속보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지 이제 겨우 1년,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한나라당이 합의없이 언론의 자유를 규제하는 법안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것을 날치기라 부릅니다. 이 악법은 온 국민의 분노를 부르고 있고, 대한민국은 언론 자유를 잃을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중국어> 방현주 조합원-아나운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있다. 13억 중국인들이여! 한나라당 '고흥길'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해주십시오. "왜 이래∼아마추어같이" 또 한 통의 항의전화를 해주십시오. 이번에 전화 걸 사람은 김형오 국회의장입니다.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허튼 짓 하지 마라"

<프랑스어> 권희진 조합원-기자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사르코지와 브루니의 만남보다 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커플이 탄생하려고 합니다. 바로 3대 대형극우신문 조중동과 방송의 결합입니다. 이들의 만남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대재앙이 될 것입니다. 대다수의 국민이 반대하고 있지만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은 국민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국민을 이기는 권력은 없습니다.

<스페인어> 이동희 조합원-시사교양 PD
지금 대한민국에서 많은 단어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상식, 소통, 언론자유. 세상에 이런일이! 대한민국에서는 시계도 거꾸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역사가 후퇴하고 다시 독재정권이 부활했습니다.

<일본어> 하지은 조합원-아나운서
언론법 개정으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한나라당의 말은 거짓말입니다. 다신 한 번 말씀드립니다.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정말로 거짓말입니다. 한편 국회 문방위에서는 난데없이 일본어가 등장했다고 합니다. "이 말이 됩니까. '겐세이' 놓고 끼어드시면 계속 늦어지니까.... 들으세요 들으시고"(정병국 한나라당 의원). 우리가 한나라당에게 듣고 싶은 말은 '겐세이(견제)'가 아니라 '쓰미마센(죄송합니다)'입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저희는 끝까지 싸우겠다. 여러분도 지켜달라. 언론장악 저지 투쟁! (6개국어로 조합원들이 잇따라 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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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통신] 교양교육 홀대하는 일본의 대학

 

현대인에 필요한 교양은 타자에 대한 상상력이다
폭격을 당하는 쪽의 아픔을 상상하는 힘은 평화를 쌓는 기초능력이다
이런 능력을 결여한 채 취직 · 실용 위주 교육을 받고
사회로 나가는 젊은이들이 나로선 불안하기 짝이 없다

[한겨레]2005-07-15 06판 M07면 2740자 특집 기획,연재

여름밤의 꿈(1)


마침내 여름다워진 6월 하순 어느날 밤, 학생들과 함께 베를리너 앙상블의 연극을 보러 갔다. 공연 제목은 베르톨트 브레히트 원작, 하이너 뮐러 연출의 〈아르투로 우이의 흥륭〉이다. 아주 잘 된 공연이어서 학생들도 매우 좋아했다. 몇몇 학생 은 다른 날 또 한번 싸지 않은 표를 사서 보러 갔을 정도다.

*
근무하는 대학에서 내가 맡고 있는 것은 전문적 연구 분야가 아니라 교양교육 분야다. 한국에서는 어떤 식으로 돼 있는지 모르겠으나 일본의 대학교육에서는 지난 20여년간 교양교육이 경시되는 추세였다. 어학교육은 예외지만 다른 교양교육은 대체로 ‘도움이 되지 않는 취미’처럼 간주돼 왔다. 거기서 가치기준이 되는 것은 ‘취직에 유리한가, 아닌가’, ‘실용적인가, 아닌가’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실용주의 일변도의 교육이 여러가지 폐해를 낳은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수준 높은 문학작품 하나 읽지 않은 채, 미술관에도 극장에도 발길 한번 돌려보지 않은 채 대학을 나가는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가.

일본의 대표적인 지식인의 한 사람인 가토 슈이치는 교양의 필요성을 흔히 자동차에 비유한다. 전문가나 기술자들이 영지를 모으면 더 빠르고 성능 좋은 자동차를 제조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자동차를 손에 넣은 다음 어디로 갈 것인가? 갈 곳을 정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운전하는 사람이고 그 사람의 교양이다. 여기서 ‘자동차’를 ‘무기’로 바꿔 놓고 보면 이 비유의 중요성이 절실하게 다가올 것이다.

교양이란 영어로 말하면 리버럴 아츠(Liberal Arts)다. 그 본래의 의미는 ‘노예적 또는 기계적 기술’과 대치되는 ‘자유인’에게 어울리는 학예(Arts)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인’은 예전에는 특권적 신분의 남성에 한정돼 있었다. 그러나 현대에서는 그렇지 않고 또 그래서는 안 된다. 현대인에게 요구되는 교양이란 한마디로 말해서 타자에 대한 상상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폭탄공격을 당하는 쪽의 고뇌와 아픔을 상상하는 힘은 전쟁에 저항하고 평화를 쌓기 위한 기초적 능력이다. 따라서 이러한 기초적 능력을 결여한 채 젊은이들이 사회로 나가는 것이 나로서는 불안하기 짝이 없다.

나는 대학에서 두 과목의 세미나 진행을 맡고 있다. 하나는 ‘타자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인데, 지난해까지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증인의 작품을 숙독했다. 올해는 하라 다미키라는 소설가의 작품을 읽고 있다. 하라 다미키는 1945년 8월6일 히로시마에서 원자폭탄 피해를 당했다. 그 참상을 직접 지켜보고 평화를 위한 증언을 자신의 사명이라 믿게 된 그는 〈여름 꽃〉 등의 뛰어난 기록문학을 남겼으나 1951년 3월13일 철도에 뛰어들어 자살했다. 조선전쟁(한국전쟁)이 한창일 때였다.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이 전황을 뒤집기 위해 핵무기를 사용할지도 모른다는 보도가 그의 섬세한 신경을 찢어놓은 것이다. 하라 다미키와 트루먼, 어느 쪽이 교양이 풍부했을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여름이 올 때마다 일본에서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관련 기념행사가 열린다. 그러나 하라 다미키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그의 작품을 깊이 읽으려는 사람은 적다. 내 학생들 중에도 누구 하나 그의 작품을 읽은 사람은 없었다.

많은 학생들에게는 일본이 침략전쟁에서 여러 민족들에게 가해자였다는 기억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인 자신의 피해 기억조차도 모두 실감하기 어려운 ‘옛날의 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10년 전이나 50년 전이나 500년 전이나 ‘지금’이 아니면 모두 ‘옛날’이다. 그들의 시야에는 ‘옛날’과는 다른 ‘지금’이 있을 뿐이다. ‘옛날’이 어떠했든, 또 ‘내일’이 암흑이 되든 상관없는 일인 것이다. 이런 학생들에게 진정한 교양, 타자에 대한 상상력을 함양하도록 하는 일이 쉬운 노릇은 아니다. 가르치는 쪽도 곤란한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또 하나의 세미나는 ‘예술을 통해 사람의 죽음과 삶을 생각한다’는 좀 색다른 것이다. 미술, 음악, 영화, 연극 등 뛰어난 예술작품을 접할 기회를 학생들에게 줌으로써 잠자는 감성을 깨우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학생들과 미술관에 가서 자유롭게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 처음에는 당혹스러워하던 학생들이 회를 거듭할수록 조금씩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쪽도 즐거워지지만 갈 길이 멀다. 이번에도 이 강의를 듣는 학생들과 베를리너 앙상블을 보러 간 것이다. 내 나름의 시행착오 과정의 하나다.

*
베를리너 앙상블은 베르톨트 브레히트를 주재자로 해서 전후 동베를린에서 창설됐다. 오랜 기간 동독만이 아니라 사회주의권을 대표하는 일류 극단이었으나 독일 통일 뒤 극단은 큰 변화에 휩쓸렸고 재정적으로도 어려움을 겪는다는 얘기를 듣고 있었다.

2002년에도 일본에 와 〈리처드 2세〉를 공연했는데 그걸 본 나는 베를리너 앙상블이 건재하다는 걸 확신했다. 셰익스피어의 고전극을 공연하면서 그 조준은 명백히 현재의 ‘테러와의 전쟁’ 비판에 맞추고 있었다. 공연이 끝난 뒤 연출가·배우들과 관객의 대화 시간이 마련됐다. 동독 출신의 배우와 서독 출신의 배우가 서로 다른 문화를 존중하면서 양쪽의 장점을 살려 새로운 앙상블을 만들어가겠다고 한 말이 내 인상에 남아 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나 대망의 〈아르투로 우이의 흥륭〉을 가지고 그들이 다시 온 것이다. 이 작품은 브레히트가 망명지인 미국에서 1941년에 쓴 것이다. 히틀러의 권력탈취 과정을 시카고의 똘마니가 보스 자리까지 올라가는 과정으로 바꿔놓은 풍자극이다. 이번 공연은 1995년의 하이너 뮐러 연출작이다. 그 내용에 대해서는 다음에. ■
서경식/도쿄경제대학 교수
번역 한승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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