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가 있는 한 미주주의 국가라고 불러서는 안된다.

~또하나, 국가에는 군사적인 신체가 있습니다. 군사적인 조직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군사행동이 민주적이지 않다는 것은 명백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군사행동이라는 것은 폭력을 행사해서 상대방을 자신의 의사에 따르도록 강제하는 것입니다. 내 의사에 따르지 않으면 너를 죽이겠다, 라는 것이 군사행동의 기본인 까닭에 그것은 당연히 민주적인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물론 적에 대해서 민주적이지 않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구사조직 자체가 반민주적인 것입니다. 군사조직은 기본적으로, 정치용어로 말하면, 독재입니다. 사령관이 있고, 그리고 사령관 밑에 권력의 위계구조가 있어서 명령은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갑니다. 정보는 아래로부터 위로 전해지더라도 명령은 전부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갑니다. 그리고, 폭력을 사용하여 병사들의 충성을 확인합니다. 명령에 따르지 않는 병사는 즉각 체포됩니다. 상관에 대해서 모욕적인 말을 하는 것만으로, 예컨대 상관에게 '바보자식'이라고 했다는 것만으로, 당연히 체포됩니다.

  전시에는, 예컨대 전선으로부터 도주하면 기본적으로 사형입니다. 전쟁이 벌어지면 죽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도망하더라도 죽지 않는다고 한다면 인간은 여간해서 전쟁을 계속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도주하는 사람에 대해서 재판을 하고, 사형판결을 내리는 경우도 있지만, 엄혹한 전쟁의 상황에서는 훨씬 더 가혹합니다. 예를 들어, 제1차 세계대전 때의 이야기로 흔히 들어온 것이지만, 전선에서 10미터쯤 뒤에 장교가 서서 총을 가지고 대기하고 있습니다. 전선에서 이탈, 도주하는 자기 나라 병사들을 사살하기 위해서입니다. 자신의 뒤에 이러한 인간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병사들은 도주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인간은 여간해서 전쟁을 계속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군대조직의 또하나의 특징은 각 병사, 개인의 일상생활의 세밀한 곳까지 철저하게 관리한다는 것입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24시간 동안의 일정이 있습니다. 저녁이 되어 자유시간을 주는 경우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 24시간 전부 관리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서랍 속을 정리하는 일이라든가, 복장관리라든가, 모든 게 관리됩니다. 전부 규칙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트리면 처벌됩니다. 따라서 이것은 전체주의 조직인 것입니다. 사상으로부터 일상생활 아침부터 밤까지의 모든 스케줄, 전부가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폭력에 의해서 관리됩니다.

  이러한 군사조직 모델은 다분히 고대 로마로부터 전해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그 이외에도 군대조직은 있었지만, 로마공화국, 그리고 로마제국은 극히 합리적인 조직을 완성시켰고, 그 결과 수십년 동안에 지중해 주변 나라들을 모두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대제국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 조직력에 있었습니다. 그것이 고대 로마의 비밀이었고, 그 이후 유럽의 군대조직은 늘 그것을 모방해왔습니다. 유럽이 그토로 간단히 많은 나라를 식민지로 만들 수 있었던 비밀도 거기에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무기보다도 중요한 것은 조직력이었습니다. 완전관리의 조직은 굉장히 강한 조직이 된 것입니다.

  민주주의 라고 일컬어지는 국가는 앞서 말한 정치적 신체 이외에, 이 군사적 신체도 갖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일본은 종전 이후 최근에 이르기까지 그 군사적 신체가 가장 약한 나라였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건강한 젊은 남자라면 누구든 적어도 2년이나 3년간 군대에 들어가 훈련을 받지 않으면 안되는 나라가 많습니다.

  그것은 정부의 일부분입니다. 정부가 이것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국가의 군대입니다. 따라서, 민주주의라고 일컬어지는 나라 가운데도 말하자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영역과 전체주의적인 영역이 있습니다. 국가 자체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조직과 전체주의적, 독재적인 조직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는 데가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정부는 경우에 따라 계엄령을 선포합니다. 계엄령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군대조직의 논리, 군대조직의 지배방식을 사회 전체에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물론 노인이나 여성, 아이들을 간단히 병사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계엄령은 그 국가의 군사조지으로서의 신체를 사회 전체로 확대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라고 하면서도 그러한 반민주적인 조직, 민주주의 사상과 모순되는 큰 조직을 각 국가는 갖고 있습니다.

  일본의 전후 이데올로기에서는 평화와 민주주의는 거의 같은 것이지만,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평화와 민주주의가 상호관계가 있는 것으로 별로 느껴지지 않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바로 평화라는 사고방식은 유럽에서는 그만큼 정착하지 않고 있습니다. 거꾸로 민주주의 국가는 국민들이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귀족적인 제도보다도 전쟁에 강하다는 사고방식까지 존재합니다.

  그러나, 지금 말한 문맥 속에서 생각하면, 일본의 전후사상 쪽이 올바른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즉, 군대조직이 없어지지 않는 한, 국가가 진정한 의미에서 민주주의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군대조직이 강해져서 일반사회에 대한 영향도 강해집니다. 즉, 일상생활이 군사화합니다. 따라서, 전쟁의 가능성, 그리고 군대조직의 존재는 언제나 민주주의 사상과 민주주의 정신의 발목을 잡아끄는 것이 됩니다.

-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더글러스 러미스, 김종철/이반옮김, 녹색평론사, 2002, 128쪽~1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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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OTL] 전·의경은 ‘현대판 노예’인가



촛불문화제 ‘진압’에 선택권 없이 동원돼 못 먹고 못 자는 전·의경들

▣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인권 OTL-30개의 시선 ⑧]


2008년 대한민국의 가장 인상적인 도시 조형물 ‘명박산성’을 사이에 두고 완전히 다른 두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40만 촛불이 노래와 춤과 자유발언으로 시끌벅적한 난장을 이루고 있던 시각, 왕복 16차로를 가로질러 막은 컨테이너 장벽 반대쪽은 경찰버스와 진압복을 입은 전·의경들만이 고요히 숨죽인 채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 지난 5월28일 촛불집회 때 시민들이 거리행진을 하려 하자 이를 막기 위해 전·의경들이 대열을 정비하고 있다. 전경과 의경 모두 “입대할 때 설마 시위 진압 업무를 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사진/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6·10 항쟁 21주년을 맞은 지난 6월10일 밤 12시께 컨테이너 장벽 너머의 서울 세종문화회관 부근. 경찰버스 의자에, 혹은 길바닥에 대열을 갖춰 앉은 전·의경들의 얼굴에선 오랫동안의 시위 진압에 따른 피곤함이 뚝뚝 묻어났다. 어떤 소대는 길거리에 앉아 간식으로 지급된 손바닥 반만 한 팥빵에 ‘아린쥐’ 주스를 먹고 있었다.

“2시간만 자고 도로 출동” “발이 썩었어요”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 의경에게 “요즘 힘들죠?”라고 물었다. 20대 초반에 지칠 대로 지친 인상의 그는 “괜찮아요”라며 가벼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출동한 지 한 달이 넘었다는 그는 잠을 못 자는 게 가장 힘들다면서 “얼마 전 ‘72시간 릴레이 촛불집회’를 할 때는 길바닥에 방패 깔고 하루에 3시간씩밖에 못 잤어요”라고 말했다. 다른 의경도 같은 고통을 호소하면서 “버스에서 자면 잠잔 것 같지도 않다”고 거들었다.
도로 건너편 서울 종로구청 쪽에서 만난 의경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부대는 5월31일 새벽 0시30분께까지 과천정부청사를 지키다 부대에 복귀한 지 1시간 만에 다시 서울로 출동했다. 경찰이 물대포로 시위대와 맞서던 바로 그날 밤이다. 한 의경은 “오늘도 아침 8시에 숙영지에 복귀했다가 2시간만 자고 10시에 도로 출동했어요”라고 말했다. 이들은 촛불집회가 시작된 뒤 하루 평균 6시간 미만의 수면을 취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옆에 있던 다른 의경은 “출동한 뒤 열흘 동안 발을 씻은 건 단 3번뿐”이라며 “상관들은 주변 공원 화장실 같은 곳에서 씻으라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한 동료는 “(발이) 썩었어요, 썩어”라며 피곤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또 다른 의경은 “하루에 1번 이빨 닦기도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6월11일 새벽 1시가 넘은 시각, 주변 건물 앞 여유 공간에는 길바닥에 아무것도 깔지 않은 채 널브러져 자는 전·의경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용변도 이동식 화장실에서 해결한다. 들어가봤다. 소변기 4대에 대변기 2대가 마련돼 있다. 기자도 볼일을 보고 세면대 꼭지를 틀었다. 그러나 한 방울의 물도 떨어지지 않았다. 당혹스러웠다.



△ 6월10일 집회 때 아들이 전·의경으로 복무 중인 부모들이 휴식 중인 전·의경 부대를 찾아다니며 격려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잠 좀 자자, 밥 좀 먹자.” 4·15 교육자율화 조처와 미국산 쇠고기 파동을 풍자하며 시민단체 쪽에서 핵심적으로 정리한 구호다. 전·의경들 역시 잠을 못 자는 고통만큼 먹는 문제 또한 심각했다. 한 전경은 “저는 밥 먹는 게 가장 힘들어요. 1분 안에 먹어야 하거든요. 씹지도 않고 그냥 넘겨요”라고 말했다. 시위대와 대치하는 상황이 아닐 때도 굳이 그렇게 서둘러야 할까? “버스에서 먹는데, (다른 대원과) 교대를 해줘야 하거든요.” 그나마 서울에 있는 경찰서와 기동대에서 나온 이들은 부대에서 밥을 직접 가져오기 때문에 밥다운 밥을 먹는다. 하지만 지방에서 올라온 이들은 따뜻한 밥과 국을 먹을 수 없다. 해줄 곳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에 삼시세끼를 주문해온 4천원짜리 도시락으로 때우고 있다. 경북 영천에서 시위 진압을 위해 올라왔다는 한 의경은 “버스 의자에 앉아 도시락만 계속 먹으면 소화가 잘 안 된다”고 말했다.

대치 지점에서 불침번 서는 부모들

촛불집회가 장기화하면서 이를 막기 위해 동원된 전·의경들의 피로도 갈수록 쌓이고 있다. 시위대의 집회·결사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중요한 만큼 전·의경들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도 중요하지만, 이는 묻혀 있는 이슈다. 정권의 안위를 위해 자신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출동한 그들에게 인권이란 없다. 한 의경은 “시위대는 인간이지만 우리는 인간이 아니에요”라며 자조 섞인 농담을 흘렸다. 다음 카페 ‘전의경 부상자 부모들의 쉼터’가 자신들의 자식을 두고 “현대판 노예”라며 울분을 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양심의 자유도 없다. 국민의 80% 안팎이 미국산 쇠고기 협상이 잘못됐고 재협상이 필요하다고 보지만, 전·의경의 100%는 그러한 집회를 가로막기 위해 온몸을 던져야 한다. 선택은 없다. 지시에 따라야만 한다. 한 의경은 “저도 물론 이곳이 아니라 학교에 계속 다니고 있었다면 촛불집회에 참석했을 수 있겠죠”라고 말했다. 급기야 서울경찰청 기동대의 이아무개 상경은 “나의 정치적 견해와 다르게 시위 진압에 나서는 일은 양심에 반한다”며 경찰청장 등을 상대로 육군으로 도로 보내달라는 행정심판을 냈다.
가족이나 애인 등과 겪어야 하는 갈등도 감내해야 한다.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경계근무를 서던 의경은 “저기 있는 제 고참은 여자친구가 촛불집회에 나온다고 해서 대판 싸웠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다음 아고라에도 관련 글들이 올라 있다. 친오빠가 전경으로 시위 진압을 하고 있다는 한 누리꾼은 “오빠는 왜 하필이면 전경이 돼가지고, 6월7일 시위에 참가했다가 오빠를 만났는데 저는 서글픔에 눈물이 났다”고 한탄했다.
‘전의경 부상자 부모들의 쉼터’ 카페에서 활동하는 한 전경의 어머니는 속상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아들이 사대문 안 경찰서에서 일경으로 근무 중이라는 김아무개씨는 “아들이 작년 7월에 입대한 뒤 농민대회 진압에 나갔는데 ‘엄마, 무서워요’라고 전화왔더라”며 “이번 촛불집회 때도 전·의경 아이들이 다칠까 나갔는데, 어떤 여학생이 전·의경보고 ‘너희 엄마도 너 낳고 나서 미역국 먹었냐’고 하는 말을 듣고 너무 속상했다”고 했다.



△ 6월12일 인권단체연석회의가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의경 제도를 폐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연석회의 쪽은 진압 과정에서 전·의경들이 위험한 상황에 내몰리는 경우가 많다고 고발했다. (사진/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전·의경을 아들로 둔 이들은 경찰이 시위 현장에서 다친 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고 했다. 처음으로 쇠파이프 등이 등장한 6월3일 집회 때 다친 전·의경들을 수송하기 위한 구급차도 현장에 대기시키지 않았다며 부모들은 경찰청에 강력히 항의했다. 그 뒤 경찰은 구급차를 불러 대기시켰다. 다쳐서 경찰병원에 간 뒤 다른 민간병원의 치료를 받으려고 해도 외부 진료 의뢰서 한 장 받아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전·의경 부모들이 시위가 있을 때마다 조를 나눈 뒤 대치 지점에 직접 찾아가 불침번을 서는 것도 다 이런 현실이 만든 결과물일 뿐이다.

싼값에 부리면서 정부 대신 매맞아라?

인권침해 논란에도 유지되고 있는 전·의경 제도는 부도덕한 국가 공권력의 상징이다. 병역 의무를 지려고 입대한 젊은이들을 민간인의 집회·시위 진압에 내몰고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정권이 맞아야 할 정치적 매를 전·의경이 대신 맞고 있는 셈이다. 경찰은 전·의경을 싼값에 부리면서 시위대와 정권 사이의 ‘완충장치’로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전·의경이 고탄성 용수철일 수는 없다. 그냥 사람일 뿐이다.
사사건건 대립하는 인권단체와 ‘전·의경 부모들의 모임’도 뜻이 모이는 한 지점이 있다. 바로 전·의경 제도의 폐지다. 서구사회처럼 직업 경찰관으로 꾸려진 기동대를 운영하라는 것이다. 인권단체연석회의도 6월12일 기자회견을 열어 시위대에 대한 탄압과 전·의경의 인권을 무시한 마구잡이 행정에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김상균 백석대 교수(경찰학)는 “우리나라의 경우 전·의경을 동원한 인해전술식 시위 진압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며 “똑같은 옷을 입은 전·의경의 존재 자체가 시위대의 공격성과 폭력성을 더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전투경찰 제도를 폐지하고 정규 경찰을 통한 시위 대처 방안을 모색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인간 방패막이’가 존속하는 한 전·의경의 인권도 챙기기 어렵고 원천봉쇄와 인해전술식 집회 관리로 인한 시위대의 인권 침해도 막기는 힘들 수밖에 없다.


 



2012년 전·의경제 없어질까



경찰 “폐지 결정 전면 재검토” 선회


계속되는 인권침해 논란에다 “우리가 쓸 병사 공급도 부족하다”는 국방부의 논리에 밀려 정부는 올해부터 해마다 전·의경 숫자를 20%씩 줄여 2012년 전·의경 제도를 완전 폐지키로 지난해 결정했다. 하지만 전·의경을 주머니 속의 공처럼 만지작거리는 경찰은 최근 이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있다.
장전배 경찰청 경비과장은 6월12일 전화 통화에서 “전·의경 제도 폐지 논의를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며 “현재 예산 부서 및 국방부와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이는 시민사회 세력에게서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어청수 경찰청장이 내정자 시절이던 올해 초부터 이미 예고돼왔던 일이다. 어 청장은 당시 “전·의경을 2만 명 수준으로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유는 이명박 정부가 작은 정부를 지향하면서 예산 절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손쉽게 부릴 수 있는 전·의경 제도를 폐지하고 집회·시위 대처를 직업 경찰관으로 이뤄진 기동대에 맡길 경우 막대한 추가 예산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전투경찰은 애초 1966년에 23개 중대 2300여 명의 직업 경찰관으로 출발했다. 1968년 북한 124군부대의 청와대 습격 기도 사건을 겪은 뒤, 1971년 경찰이 국방부에서 병력을 꿔와 군복무 대신 근무하는 현재 개념의 전투경찰을 만들었다. 4년 뒤 “간첩(무장공비 포함)의 침투거부·포착·섬멸, 기타의 대간첩 작전을 수행하는” 본래 목적에다 ‘경비’ 업무가 덧붙여졌다. 경찰 치안 업무를 보조하기 위한 의무경찰은 1982년에 처음으로 창설됐지만, 전경과 마찬가지로 시위 진압에 주로 동원되고 있다. 6·10항쟁이 있던 1987년엔 전·의경 수가 5만6천여 명에 달해 최고치를 기록했으나, 그 뒤로 완만하게 줄어 현재는 4만여 명 선이다.
잦은 구타 사건, 부대장의 자의적인 영창 제도 운영, 0.7평에 불과한 개인 공간 등 여러 인권침해 논란 속에서 인권단체들은 전·의경제 폐지를 주장해왔다.




 





◎ 연속기획의 제목인 ‘인권 OTL’은 좌절해 쓰러진 사람을 상징하는 이모티콘 ‘OTL’을 활용해 인권침해를 당한 사람들의 슬픔을 담았습니다. 제보와 문의는 syuk@hani.co.kr 혹은 02-710-0552로 해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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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OTL] 장애인에게 ‘퇴소 협박’하는 복지시설?



시설 내 비리와 인권침해를 폭로한 생활인들을 ‘퇴소 조처’로 압박하는 석암재단

▣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인권 OTL-30개의 시선 ⑦]

“20년 만에 만난 딸에게 부담을 줄 순 없지 않습니까?”
얼마 전 이민수(59·가명)씨가 ‘석암재단 생활인 인권쟁취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를 탈퇴했다. 5월21일 경기 김포시 석암베데스다요양원 앞마당 게시판에 ‘이사회 결정사항’이 붙은 직후였다. “거주 장애인들이 단체 탈퇴·농성 중단을 하지 않으면 퇴소 조치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재단 쪽이 이씨의 딸에게 ‘아빠 문제’로 전화를 했고, 늘 씩씩하던 그는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 ‘인간답게 살아보자’ 석암재단 복지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인들이 5월27일 국가인권위원회를 찾아가 긴급구제를 요청했다. (사진/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20년 만에 연락된 딸에게 “아빠 데려가라”

사랑하는 아내와 두 딸을 둔 회사원이던 이씨가 사고를 당한 것은 1987년. 가족들과 유원지에 놀러갔다가 물놀이 중에 사고를 당했다. 수심이 얕은 곳에서 다이빙을 했다가 목뼈가 부러졌다. 응급처치를 제대로 받지 못했고 그렇게 장애인이 됐다.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그에게 친척들이 “애들 엄마 더 나이 들기 전에 빨리 이혼해줘라”고 조언했다. 병원비도 계속 들어 경제적으로도 어려워져만 갔다.
결국 아내가 집에 없을 때 짐을 싸서 나왔다. 놀라서 우는 딸아이에게 “아버지 병원 갔다가 꽃 피면 온다”고 말했다. 이듬해 이혼을 했고 우여곡절 끝에 한 복지시설에 들어갔다. 군대식 생활이었다. 아침 6시 예배, 밤 9시 완전 소등. 꽂고 있던 소변 호스는 오염이 돼서 온몸에 세균이 침투해 끙끙 앓았다. 그 소식을 들은 형이 그를 400만원 주고 석암재단 산하 요양원으로 옮겼다. 1989년 12월이었다.
지난해 5월, 그는 대학생이 된 딸들을 만나게 됐다. 아내는 재혼을 했고 새 아빠가 잘해준다고 했다. 그렇게 행복만을 기원해주고 싶었는데, 재단 쪽이 난데없이 딸에게 “아빠를 데려가라”고 연락했다. 그는 열심히 활동하던 비대위를 떠나기로 했다. 그가 재단 비리를 알리는 활동을 더 이상 못하겠다고 했을 때, 속사정을 아는 동료들은 그를 잡지 못했다.
사회복지시설 운영 과정의 비리 혐의로 전·현직 이사장들이 유죄 선고를 받은 석암재단이 시설에 살고 있는 장애인들의 권리찾기 움직임을 여전히 방해하고 있어 또 물의를 빚고 있다.
6개의 사회복지시설을 운영 중인 석암재단의 이사장 일가는 최근 법원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다. 서울남부지법은 지난 5월22일 석암재단 이부일 전 이사장에게 징역 3년을, 제복만 현 이사장(이 전 이사장의 사위)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 80시간을, 홍정환 시설장(이 전 이사장의 처남)과 김성숙 전 시설장에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 80시간을 선고했다.
서울시 특별감사를 통해 석암재단의 비리와 인권침해가 세상에 공개된 지 1년, 시설 장애인들이 비대위를 만들어 재단 비리를 폭로하러 거리에 나선 지 6개월여 만이었다. 죄목은 자금 횡령, 국가보조금 전용, 사기 등이다. 몇 글자 안 되는 범죄 사실 속에는 수많은 장애인들의 한스러운 세월이 담겨 있다. 그동안 비대위 회원들은 거리에 나서 자신들이 당해온 인권침해를 알려왔다. 말을 듣지 않으면 때리고 약을 먹이고 묶어놓고, 썩은 김치를 씻어서 형편없는 밥을 주고, 외출을 허락하지 않는 환경에서 20여 년을 살아왔다는 증언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한 시설 생활인은 “난 개나 돼지가 아니다. 난 사람이야”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법원 판결이 나기 하루 전 재단이 ‘이사회 결정사항’ 공고문을 붙이고 본인과 가족에게 ‘퇴소’ 협박까지 해오자 비대위 회원들은 5월27일 국가인권위를 찾았다. 이 자리에서 지체장애 1급인 홍경철(54·가명)씨는 “제복만 이사장이 나한테 와서 자꾸 집회 같은 데 나가면 퇴소시킨다고 협박했다. 누나한테도 전화해서 집에 보낸다고 했다”고 말했다. 동생이 시설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으니 데려가라는 전화를 받은 누나는 놀라서 쓰러졌고 병원에 입원한 상태라고 했다. “500만원 주고 평생 있기로 했는데 이제 와서 이럴 수 있습니까.” 말을 제대로 못하는 그가 답답한 심경을 적어온 종이를 받아 사회자가 대신 읽어주는 동안 홍씨는 무언가 더 말하고 싶은 듯 “어, 어” 하는 소리를 냈다.

재단에서 온 전화 받고 쓰러진 누나



△ 시설에서는 말을 듣지 않으면 몸을 묶거나 때리고 심지어 항정신성의 약품을 먹이기도 했다.감사가 나올때면 직원들에게 암기 수칙을 전달해 비리를 감췄다. 잘 씹지 못하는 생활인들에게도 반찬을 대충 썰어 밥에 섞어줬을 뿐이다. (사진 위부터 /석암 비대위 제공)






비대위 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전동휠체어를 뺏겼다는 장애인도 있었다. “원래 다른 사람 휠체어였는데 그 사람이 죽어서 내가 쓰게 됐어요. 한데 며칠 전에 갑자기 반납하라는 거예요. 내 몸 같은 건데….” 옆에 있던 여성 장애인이 흥분하며 “내 휠체어도 뺏어갈까봐 불안하다. 이게 없으면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 비대위 회원은 “재단에서 한 번만 더 투쟁하면 집에 보내버린다고 합니다. 전 엄마가 무섭고 불안합니다”라고 적어와 사회자에게 건넸다.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염경욱 변호사는 “재단 쪽이 석암 비대위 회원들은 물론 가족들에게까지 연락해 퇴소를 강요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하도록 국가인권위가 긴급 구제해주길 바라며 공고문을 붙인 차별행위에 대해 인권위에 진정한다”고 말했다. 현장에 참석한 진보신당 박영희 공동대표는 “여기 있는 입소자들은 매일 제복만 이사장과 눈을 마주치고 살아야 하는 생활인들이다. 한시간이라도 빨리 조처해 이들이 마음 편하게 잘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긴급 구제를 촉구했다.
비대위 회원들은 다음날인 5월28일 석암재단을 관리·감독하는 서울 양천구청을 찾아갔다. 이날은 석암베데스다요양원을 나서면서 이를 막는 재단 쪽과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들은 양천구청에 재단 이사장과 시설장의 해임 명령을 요구했다. 한데 구청에는 20명 남짓한 시위대의 두 배가 넘는 전경과 경찰이 배치돼 있었다. 결국 화장실에 가려고 건물에 들어가던 장애인이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다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저녁 때까지 대치 상태가 계속된 뒤에야 양천구청 이희 주민생활지원국장은 “이번주 안에 해임 명령을 공식적으로 내리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날 제복만 이사장은 <한겨레21>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판결은 아직 수긍할 수 없으며 비대위에 가입한 생활인은 일부일 뿐이다. 이들에게 순수한 생활인들이 이용당하고 피해당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입소 계약을 할 때 쓴 서약서대로 퇴소 조처는 있을 수도 있다”면서도 “본인이나 가족에게 ‘퇴소시키겠다’거나 ‘집에 데려가라’는 말은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또한 “전동휠체어는 원래 본인 것이 아니니까 반납하게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현재 법원은 제복만 이사장이 “다른 범죄 전력이 있는데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다른 피고인들보다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한 상태다. 그를 포함한 피고인들은 항소를 했다. “최종 판결까지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양천구청은 5월30일, 석암재단에 ‘임원 해임 명령-시설장 교체 명령 사전 통지 및 의견진술 기회 부여’라는 제목의 공문을 보내 제복만 이사장과 홍정환 시설장에 대해 해임·교체 명령을 내렸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석암재단에 직접 조사차 찾아가 이사장으로부터 ‘생활인들을 강제 퇴소시키지 않겠다는 내용의 확약서를 받아왔다”고 밝혔다.

비대위와 소통한 직원 해임까지

재단 쪽은 이쯤에서 물러날 생각이 있을까. 상황으로 보면 답은 ‘아니요’다. 이번에는 재단이 비대위 활동을 돕는 직원을 탄압하고 나섰다. 석암재단 쪽은 6월1일자로 비대위 회원들·외부 활동가들과 소통해온 노조지부장 박미순 생활교사를 해임했다. 비대위 쪽이 거세게 항의하자 현재는 ‘3개월 무급 정직’으로 징계 내용을 바꾼 상태다. 박미순 생활교사는 출근투쟁을 하고 있지만 재단 쪽은 “그가 시설에 들어오도록 두는 직원도 가만두지 않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재단 쪽이 김포시 아파트 개발의 노른자위가 된 시설 땅을 팔아 시세차익을 챙기려 한다는 의혹도 불거지고 있다. 그룹홈과 자립시설을 만들 테니 시설을 처분하는 데 동의하라고 장애인들을 설득하고 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집행위원장은 “그룹홈이나 자립 지원 등의 방향은 올바르지만, 비리 재단이 재판도 끝나기 전에 시설을 팔아 시세차익을 가로채려는 시도는 있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6월4일, 비 내리는 거리 위에는 어김없이 휠체어를 탄 비대위 회원들이 떴다. 이번에는 김포시청 앞이었다. “김포 시민에게 석암재단 산하 노인복지시설인 ‘김포 수산나의 집’의 비리까지 알리겠다”는 각오다. 이에 김포 수산나의 집 오인순 원장은 “치매, 중풍 등을 앓는 어르신들을 모시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으면 인권침해 지적은 사실과 다르다”고 <한겨레21>에 전해왔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에 지칠 만도 한데, 석암 비대위 김현수(33·뇌병변1급) 대표는 “요즘, 힘들어도 살아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들은 오늘도 거리 위에서 “인간답게,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처음처럼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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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OTL] “난 네가 병원에서 한 일을 알고있다”



세무조사 나와 환자 진료정보 몽땅 가져가는 국세청, USB에 옮긴 파일과 복사한 종이 차트는 어디로?

▣ 글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인권OTL-30개의 시선⑥]


서울 강남에서 성형외과를 운영하고 있는 ㄱ씨는 올해 초 갑자기 들이닥친 세무서 직원들 때문에 깜짝 놀랐다. 대여섯 명의 세무서 직원들은 오자마자 최근 3년치 환자들의 종이 차트와 컴퓨터에 담긴 환자 사진 등 진료정보를 몽땅 내놓으라고 했다. 성형외과의 경우는 진료 과정에서 그림을 많이 그려야 하기 때문에 전산자료 말고도 종이 차트를 매번 만든다. 해당 차트에는 환자의 이름과 전화번호, 주민등록번호, 가족력, 진료 및 처방, 수술 내용까지 모두 담겨 있다. 사진에는 환자의 얼굴이 그대로 드러나 있고 진료 내용도 간단하게 언급돼 있다. ㄱ씨는 코와 눈, 턱, 가슴 등 각종 성형수술을 받거나 진료 상담을 한 환자들의 은밀한 정보가 담긴 자료들이라 내주는 게 꺼림칙했다. 하지만 특별 세무조사를 나온 세무서 직원들의 위세에 눌려 요구하는 자료를 모두 줄 수밖에 없었다.



△ 10년 동안 보관하도록 돼 있는 환자 개인에 대한 진료정보는 작은 의원의 경우라도 수천 건에 달하고 병상이 몇 개 있는 병원급만 돼도 10만 건이 넘는다고 한다. 서울의 한 성형외과 직원이 환자 차트를 정리하고 있다.





성형외과 환자 사진 1만여 장 가져가

세무서 직원들이 자료 제출을 요구한 까닭은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이 많은 성형외과의 특성상 매출을 누락한 부분은 없는지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세무서 직원들은 애초엔 40일가량 조사하면 된다며 1천 명이 훨씬 넘는 환자들의 차트와 사진 1만여 장 등 민감한 정보가 담긴 자료들을 모두 가져갔다. 디지털 정보는 아예 노트북 컴퓨터에 복사해갔다. 나중엔 30일을 연장하겠다고 해, 차트는 70일 가까이 병원을 떠나 세무서 직원들의 손아귀에 들어 있었다. ㄱ씨는 “가지고 간 차트를 복사했는지, 디지털 사진 정보를 세무조사 뒤 폐기했는지 알 수 없다”며 “검찰 같은 수사기관들은 압수수색영장이라도 들고 오지만 세무서 직원들은 그냥 와서 민감한 정보들을 다 가져갔다”고 말했다. 그는 “불쾌한 것도 불쾌한 것이지만, 환자들의 진료정보를 내줄 수밖에 없어 자괴감이 들었다”며 “일종의 행정편의주의적 조사 관행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지방국세청이나 일선 세무서가 병·의원을 세무조사하면서 환자들의 진료정보에 무제한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환자와 관련한 모든 민감한 진료정보가 아무런 제지 없이 국가라는 권력 앞에 발가벗겨지고 있는 셈이다. 대학병원 등 대형 병원에서 세무공무원이 진료정보에 접근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중소형 병·의원에서는 대부분 환자의 진료정보를 일선 세무서에 제공하고 있다. 심지어 컴퓨터에 저장된 정보를 USB와 같은 휴대용 저장장치에 담아가거나 아예 하드디스크를 떼어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는 게 관련 업계의 증언이다. 담당 공무원이 이를 고의로 유출하거나 실수로 잃어버리기라도 한다면, 자칫 대형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다.
병·의원에 환자 관리 전산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한 정보기술(IT) 업체 관계자는 “병원에서 세무조사를 이유로 ‘빨리 와서 세무서 직원에게 진료기록을 엑셀 파일로 모두 복사해주라’는 요청이 온다”며 “세무서 직원들이 분량 때문에 종이에 인쇄해 보기 힘드니까 USB에 복사한 뒤 사무실이나 집에 가서 본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 달에 1∼2건은 꾸준히 (진료정보를 복사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온다”고 했다. 다른 IT 업체 관계자도 “많을 때는 한 달에 서너 건씩 그런 요청이 온다”며 “아예 진료정보 등이 담긴 하드디스크를 통째로 떼어갔다는 얘기도 들었으나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우리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프로그램 공급 업체들은 적게는 수천 명에서 많게는 수십만 명의 진료정보를 세무공무원에게 제공하다 보면 정보 유출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 IT 업체의 홍보 담당자는 “병원에 세무조사를 나오면 100% 프로그램 공급 업체에 연락이 오는데, 간혹 컴퓨터 본체를 가져가버리기도 한다”며 “국세청이나 병원은 ‘갑’이고 중간에 끼인 우리만 ‘을’이라 어쩔 수 없이 요구를 들어주지만, 나중에 법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있어 정신적 압박을 받고 있다”고 털어놨다.

물론 병·의원은 환자 진료정보의 민감성을 이유로 무더기 자료 제공에 응하지 않을 수도 있다. 지난해 세무조사를 받은 지방의 ㅇ병원이 그랬다. 세무공무원 세 명이 조사를 나와 처음엔 영수증과 수익집계표 등을 보더니 곧 “외부에서 분석할 수 있도록 데이터베이스 전체를 백업해달라”고 요구했다. 이 병원은 내부 논의 끝에 이를 거절하는 대신 병원 안에서 필요한 부분만 모니터로 조회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병원의 전산팀장은 “세무조사를 위해 정보에 접근하는 건 인정할 수 있지만 우리로서는 보호해야 할 정보이기 때문에, 유출 우려도 있고 외부로 가져가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어 막았다”고 말했다.

“성병 치료 환자 차트까지 다 내줬다”

하지만 이는 극히 드문 사례일 뿐이다. 법인이 아닌 중소 규모 병·의원은 지방국세청이나 세무서에서 특별 세무조사를 나오는 경우 자료 제출 요구를 거절하기가 쉽지 않다. 특별 세무조사를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소득 누락과 같은 탈루 혐의에 대한 단서를 잡고 있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지방에서 비뇨기과를 6년째 운영하고 있는 전문의 이아무개씨도 세무서 직원이 요구하는 대로 환자 진료 자료를 전부 내어줬다. 지난 4월 들이닥친 세무소 직원들은 지난 한 해 동안의 매출 통계부터 시작해 환자 차트까지 모두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세무서 직원들은 무려 1만2천여 명의 진료정보가 담긴 차트를 이틀 동안 샅샅이 훑어보고 돌아갔다. 이씨는 “세무서 직원이 ‘소득세 신고를 제대로 하는지 조사차 나왔다’며 차트를 다 보여달라고 하는데, 내가 뭐 꼬불친 게 있는 것도 아니고 그쪽에서 오해하지 않았으면 해서 다 보여줬다”며 “나중에 다른 의사한테 들어보니 전부 보여줄 의무도 없고 일일이 답할 필요도 없다고 해 다음부터는 환자 차트를 보여주지 않을 작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환자 가운데 30∼40%가량이 성병 치료를 위해 온 이들이라서 자신의 진료정보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비뇨기과는 신경정신과, 산부인과 등과 함께 가장 민감한 진료정보를 다루는 분야다.
비록 상대가 국가 공무원일지라도 이처럼 환자의 진료정보를 조건 없이 내주는 관행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사들도 대체로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칫 세무조사에 비협조적인 것으로 비치면 더 강도 높은 조사를 받거나 보복을 당하는 일이 있을까봐 자료를 내줄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한다. 한 성형외과 개원의는 “의료법상 환자 정보를 노출할 수 없도록 돼 있고, (세무서 직원이 진료정보를 가져가는 건) 엄밀하게 볼 때 환자 정보 유출이 맞다”면서도 “강제가 아닌 협조요청이지만 안 내줄 수 없어 협조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세청은 책임회피, 복지부는 실태 몰라

현행 의료법 19조는 ‘의료인은 이 법이나 다른 법령에 특별히 규정된 경우 외에는 의료, 조산 또는 간호를 하면서 알게 된 다른 사람의 비밀을 누설하거나 발표하지 못한다’고 못박고 있다. 하지만 의료법은 물론 어떤 다른 법에도 환자의 진료정보를 세무공무원에게 공개할 수 있다는 조항은 없다.
반면 국세청 쪽은 현행 소득세법 등의 조항에 근거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법 170조에는 ‘소득세에 관한 사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은 그 직무수행상 필요한 때에는 (납세의무자 등에게) 질문하거나 당해 장부·서류 기타 물건을 조사하거나 그 제출을 명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그러면서도 국세청은 의사들이 세무서 직원의 요구를 강제적으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등 오락가락하는 설명을 하고 있다. 의료법과 충돌하는 부분이 있는 만큼 억지로 자료를 확인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김국현 국세청 조사기획과 서기관은 “병·의원 쪽에서 환자의 비밀사항이나 공개하지 않아야 할 정보에 대해 동의하지 않으면 (세무공무원이) 가져갈 수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진료정보 누출사고가 생기면 해당 병·의원의 의사가 일정 정도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가족부는 실태 파악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데다 명확한 해법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겨레21>이 이 문제에 대한 공식적인 견해를 물었을 때 복지부 쪽은 현장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곽명섭 보건복지가족부 의료제도과 사무관은 “(취재가 시작된 뒤) 부서 회의 때 이 문제를 논의했는데 (그런 세무조사 관행이) 의료법에 저촉될 소지가 있는 것으로 본다”면서도 “세무 현장과 조화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환자의 진료정보가 복사되거나 통째로 세무공무원이 들고 간 뒤 어떻게 관리되는지도 현재로선 투명하지 않다. 자료를 다시 복사하는지, 조사 기간 동안 보안을 지키는지, 조사가 끝난 뒤 정확하게 폐기하는지 등에 대한 엄정한 관리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 시내 일선 세무서의 한 관리팀장은 “탈세 제보가 있거나 심층 조사를 할 경우에 (진료정보를 가져다 보는 일을) 하고 있다”며 “전부 받아와도 필요한 부분만 볼 뿐 내부적으로 철저히 관리를 하지만, 이에 대한 명문화된 규정은 없다”고 말했다. 피부과 개업의 ㅎ씨는 “예전에는 세무조사를 나오면 차트를 전부 복사해갔는데 그 차트들이 어떻게 폐기됐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고 우려했다.

개인식별 정보 제외 가능, 문제는 의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이은우 변호사는 “국세청이 병·의원의 환자 정보에 접근하는 것은 일반 점포의 매출정보를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며 “징세 편의를 위해 개인 정보를 과다하게 들여다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의사들도 자신이 치료를 담당하는 환자의 비밀을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국세청이 세원 포착을 이유로 상세한 진료정보를 다 가져가는 걸 막지 못하는 것은 의료인으로서 환자 보호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더 근본적으로는 환자의 진료정보를 국세청 직원처럼 의사가 아닌 제3자가 보는 게 과연 타당하느냐는 문제가 제기된다. 환자들은 자신과 의사 사이의 상담과 치료 내용을 의사만이 알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병원에 가기 때문이다. 오병일 한겨레21인권위원(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은 “의료정보의 민감성을 봤을 때 세무공무원의 접근 자체도 허용이 돼서는 안 될 것”이라며 “필요하지 않은 정보까지 제3자가 접근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진료정보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한 업체의 전문가는 “프로그램에서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부분은 제외하고 출력할 수도 있고, 개인식별 정보만 남긴 채 진료정보는 빼고 출력할 수도 있는 만큼 세무서가 필요한 정보만 가져가면 될 것”이라며 현재 상황에서도 세무당국의 의지만 있으면 진료정보 유출 우려는 피해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세무당국에 의한 의료정보 유출사고는 아직 알려진 경우가 없을 뿐 일어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당국의 세무조사 관행이 바뀌지 않는 한 은밀한 내 진료정보가 언제 제3자에게 노출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것이 세무공무원이 됐든, 나를 아는 누군가가 됐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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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OTL] 인간답게 죽고싶다



골방에서 거친 음식을 삼키며 시한부 삶을 살아내는 빈곤층 말기암 환자들과의 대화
▣ 글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 영상 박수진 취재영상팀 피디


[인권 OTL-30개의 시선 ⑤]

말기암 선고. 생의 모든 게 무너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남은 시한부 인생. 존엄하고 소중한 한 생명을 어떻게 마무리지을 것인가.
그러나 빈곤층 말기암 환자들에게 삶의 반추는 사치일 뿐이다. 지저분하고 컴컴한 골방에서, 홀로, 또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병들고 지친 가족과 함께, 거친 음식으로 연명하며, 그들은 자신이 살아온 인생만큼이나 쓰디쓴 시한부 삶을 살아내야 하고, 누추한 죽음을 쓸쓸히 기다려야 한다. 그들에게 생의 존엄은 무엇이고, 존엄한 죽음은 무엇인가.
이 기사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빈곤의 굴레를 벗지 못하는 시한부 삶들과 나눈 대화이다.
시한부, 빈곤층 말기암 환자들과의 대화


종일 싱크대 옆에 누워있는 이혜용씨
5월19일 오후 1시 경기 일산시 덕양구 고양동. 지은 지 20년이 넘어 붉은 벽돌이 거뭇거뭇해진 낡은 연립주택 2층. 한낮이지만 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데다 불을 켜지 않아 집 안은 컴컴했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대소변 냄새가 섞여 있는 듯한 지린내가 훅 끼쳤다. 거실 겸 부엌 싱크대 바로 옆에 이혜용(79)씨가 이불을 덮고 누워 있었다. 뼈 위에 얇은 거죽을 걸쳐놓은 듯 살점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핏기 하나 없는 샛노란 얼굴. 푹 파인 눈두덩이 주변은 푸르스름하다. 이씨는 때때로 비썩 말라 부서질 것 같은 팔을 뻗어 두유를 마셨다. 석 달에 20kg씩 지원되는 쌀로 버티기 위해서 점심 대신 두유를 먹는다. 그나마도 아까워 조금씩 몇 시간을 두고 마신다.
이씨는 지난해 10월 직장암을 선고받았다. 8년 전 비암으로 수술을 크게 받은 뒤, 두 번째 암 선고다. 직장에서 생긴 암세포는 몸을 타고 뼈로 옮아갔는지, 석 달 전 심하게 열이 난 뒤로는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다. 하루 24시간을 가만히 누워 있는다. 스스로 몸을 뒤척일 수도 없다. 암이 얼마나 어떻게 번졌는지, 병원에 가지 않아서 정확히 상태를 알지도 못한다. 덕양구 보건소 ‘방문간호사업’을 통해 이씨를 방문한 김아무개 일산병원 전문의(가정의학)는 “검사기구로 정확한 진단을 한 건 아니지만, 발이 붓는 등 상태로 보아 말기인 것 같다”며 “노인이어서 지금은 통증에 무디지만 두 달 이내에 통증이 극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를 돌보는 건 아내 김춘자(74)씨다. 관절염, 허리 디스크, 저혈압 등 김씨가 앓고 있는 만성질환도 여러 가지다. 김씨 역시 ‘돌봄’과 ‘부양’을 받아야 하는 노인이지만, 그는 꼼짝 못하는 남편을 돌봐야 한다. 이 노부부의 하루는 길다. “밤에 잠이 안 와서 밤 12시~새벽 1시에 겨우 눈을 붙여. 아침 6시면 눈이 떠져. 그러면 뭘 해. 가만히 계속 있어. 1시간쯤 있으면 할아버지가 내 발을 막 잡고 흔들어. 기저귀 갈아달라고. 그러면 내가 기저귀를 갈아주지.” 김씨가 하는 일은 하루 다섯 번 남편인 이씨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하루 두 번 밥을 챙기는 일이다. 밥은 하루 두 끼, 기저귀는 다섯 번만 간다. 10개들이 6천원인 기저귀 값만 한 달에 9만원쯤 된다. 노령연금 13만7천원, 기초생활급여 31만원, 장애인 아들에게 나오는 돈 15만원이 생활비의 전부인 이들에게 방세 30만원을 빼고 나면 그나마도 남는 돈이 없다. 두 부부가 싱크대 옆에 자리한 것도 밥을 하고 밥을 먹이고 설거지를 하는 동안에 움직이는 거리를 가장 짧게 하기 위해서다.
나머지 시간에는 김씨도 남편 이씨 옆에 모로 누웠다, 바로 누웠다, 텔레비전을 켰다, 껐다를 반복할 뿐이다.

몸 전체에 마약성 패치 붙인 정광명씨
2003년 직장암에서 시작해 지금은 척추·폐 등 온몸에 암세포가 번져 말기 상태에 이른 정광명(49·가명)씨. 그의 세상은 서울 답십리1동 방 두 개짜리 반지하 주택의 큰방 침대 위가 전부다. 기자를 처음 보자마자 그는 “내가 얼마나 아픈지 아냐”며 통증에 대해 설명했다. “일단 배 쪽은 계속해서 전기고문을 하는 것처럼 찌릿찌릿한 고통이 24시간 계속되고요. 왼쪽 다리는 누가 칼로 다리를 째는 것 같고, 오른쪽 다리는 쇳덩이로 짓이기는 것 같아요. 말로 다 못해. 말로는….” 정씨는 말하면서 웃옷을 들어올려 그가 붙이는 마약성 패치를 보여줬다. 시간당 50mg으로 진통제 중 강도가 가장 센 약이다. 몸 전체에 붙어 있는 마약 진통제만 총 20개다.
정씨의 또 다른 고통은 ‘밤’이다. “나는 잠도 맘대로 못 자요. 너무 아프니까….” 밤새 잠 못 이루는 정씨는 크게 앓는 소리를 내지도 못한다. 밤이 되면 정씨 침대 옆에는 낮에 일하러 갔다가 돌아온 아내 류영미(45·가명)씨와 중학교 2학년 둘째딸, 원래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지만 왼쪽 손발이 작아 발달이 늦된 셋째딸이 잠을 자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옆 작은방에는 올해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고등학교 3학년 큰딸이 자고 있다. 정씨는 “밤에 캄캄해지면 그래도 옆에서 자고 있는 아이들과 아내를 보고 꼭 살아야겠다고 생각해요. 움직이지 못하지만 다리에 힘을 주고 몸을 일으켜 앉아요. 내가 그렇게 움직이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죽어버릴 것만 같거든요. 그래서 혼자 조금씩 조금씩 움직여요.”
표막달레나 모현호스피스센터 책임수녀는 정씨의 상태를 전해듣고 “척추나 신경으로 암세포가 번져서 패치를 아무리 붙여도 통증이 줄어들지 않는 것 같다. 그럴 땐 의료진이 주사 등을 투약하고 다른 방법들을 써서 통증을 전문적으로 조절해야 하는데, 혼자 악으로 버티고 있으면 환자의 마음이 너무나 지쳐버린다”고 걱정했다. 수면장애도 말기 암환자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장애로 정맥주사나 적절한 약 처방이 필요하다. 또 밤사이 죽으리라는 두려움과 악몽 때문에 잠을 못 자는 경우도 많다. 이 경우 환자를 안심시키고 격려하는 말을 해주거나 정신과 의사가 상담을 해주면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정씨는 ‘가족이 있다’는 위안과 그것 때문에 살고 싶다는 ‘의지’ 외에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하는 상태다.
정씨는 말했다.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에 가서 1년쯤 지내다 보면 병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도 들어요. 그런데 어쩔 수 없죠. 여건이 안 되니까….”



△ 24시간 누워 있어야 하는 정광명씨는 손을 뻗을 수 있는 침대 바로 옆에 진통제, 휴지, 약 등 필요한 물건을 두고 있다.





간호하던 딸이 우울증 걸린 홍진녀씨
“간장 좀 사와라, 경애야.”
대구에 사는 홍진녀(52·가명)씨가 숨을 몰아쉬며 딸에게 말했다. 홍씨는 요즘 매일같이 딸에게 하루 한 가지씩 심부름을 시키면서, 딸이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연습시킨다. 그는 2000년 비강암 진단을 받은 뒤 1년 정도 항암치료를 받고 식당 보조일, 파출부 일을 시작했다. 남편은 심근경색으로 10년 전 세상을 떠났다. 열심히 살아보려던 2004년 여름, 홍씨는 다시 숨이 찼다. 병원에 갔더니 암세포가 폐로 전이됐다고 했다. 폐암 말기로 집에서 마약성 진통제로 통증 조절만 하고 있는 홍씨는 매일 호흡곤란, 팔다리를 찢는 것 같은 온몸의 통증을 견디며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다.
그러나 지금 홍씨의 머릿속에는 고통보다 더 큰 걱정이 가득하다. 둘째딸 김경애(26·가명)씨 걱정이다. 홍씨에게는 딸이 셋 있다. 큰딸은 이혼한 뒤 작은 중소기업에 다니면서 근근이 살고 있다. 막내딸은 가출 뒤 연락이 안 된다. 홍씨의 곁을 떠나지 않고 홍씨를 돌봐준 건 둘째딸 경애씨다. “밥 차려주고, 몸 씻겨주고, 집안일 하고. 내 곁을 떠나지 않고 늘 나를 돌봐줬어.” 홍씨에게 경애씨는 착한 딸이었지만, 경애씨는 점차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을 보이기 시작됐다. 밖으로 나가는 일도 적어졌다. “내가 재발하고 1년쯤 지났을까. 집에 누가 찾아오면 경애가 방으로 콕 들어가는 거야. 아무리 불러도 밖으로 안 나와. 그때부터 며칠씩 문을 잠그고 있어. 나중에 물으니 거의 1년을 집 밖에 나가지 않고 방에만 있었다나봐. 내가 내 아픔에 급급해서 딸이 어떤 마음인지 전혀 몰랐던 거야.”
가정방문을 하는 보건소 간호사의 연결로 정신과 상담을 받은 지 1년. 경애씨는 이제 조금씩 혼자서 나가는 연습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집 밖엔 잘 나가지 않고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내가 죽으면 우리 경애는 어떡해. 저걸 생각하면 내가 못 죽어. 내가 어떻게 죽어.”
마약성 진통제 패치를 몇 개씩 붙여도 끊이지 않는 통증에도 눈물을 보이지 않던 홍씨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노인 인구와 저소득층이 많은 동네
경기 일산시 덕양구 대덕동에서 지난해 12월까지 1년6개월 동안 방문간호사업을 진행한 소행연 간호사는 “유독 노인 인구가 많은 이 지역은 마을 전체가 ‘놀랄 노자’”라고 말했다. 대덕동은 노인 인구가 12%(인구 4500명 중 550명)로 전체 평균 노인 인구 비율(9.1%)을 훨씬 웃돈다. 소 간호사는 이 지역에 저소득층이 많다고도 덧붙였다.
아들 둘, 딸 한 명을 둔 아주머니가 식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두 아들 중 한 명은 집을 나갔고, 다른 한 명은 파산 선고를 받았다. 돌봐줄 사람이 없어 마을 이장이 경기 의정부시에서 결혼해 살고 있는 딸에게 아주머니를 보냈지만, 한 달 뒤 딸은 “도저히 돌볼 수가 없다”며 어머니를 다시 대덕동으로 돌려보냈다. 동네 사람들이 가끔 들여다보는 것 말고는 홀로 병마와 싸우던 아주머니는 지난 2월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이 아주머니는 실질적으로 자신을 부양하지 않는 딸이 부양가족으로 등록돼 있고 집이 있다는 이유로 차상위계층으로 등록돼 기초생활급여 대상자도 되지 못했다.
같은 마을에 사는 한 부부는 재혼한 지 5년 만에 부인이 암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다. 결혼해서 집을 샀는데, 3년 동안 치료비를 대느라 집을 팔았다. 고물상을 하던 남편은 아내가 죽은 뒤 알코올중독으로 매일같이 술만 마시다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또 다른 노부부도 할아버지가 암에 걸려서 숨지자, 할머니가 자살을 하기도 했다.


이경식 가톨릭의대 명예교수(종양내과·완화의료학)는 올해 2월부터 돈이 없거나 돌봐줄 가족이 없어서 병원에 가지 않고 생을 포기한 채 집에만 있는 사람들에게 가정방문 호스피스 사업을 하는 ‘삼성산 호스피스 봉사회’를 설립했다. 그는 빈곤층 시한부 삶의 현실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병원에 올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 방치된 사람들이 여전히 너무 많다. 지금의 보험 수가로는 이들을 병원으로 끌어낼 수 없다. 가난한 사람들은 돈이 없거나, 돌봐줄 가족이 없다. 가족이 있는 경우도 암환자가 있으면 나머지 가족은 미성년자가 아닌 다음에야 모두 경제활동을 해야 한다. 그러니 추가로 간병인이 필요하고, 그것도 다 돈이다. 이들을 포섭할 수 있는 ‘제도’는 현재로선 없다. ‘자원봉사’, 여러 단체나 재단의 ‘지원’밖에 대안이 없는 실정이다.”



△ ‘삼성산 호스피스 봉사회’는 이웃의 신고·알림 등을 받고 돌봐줄 가족이 없거나 돈이 없어서 병원에 가지 못하는 말기 암환자들을 위해 ‘호스피스 봉사’를 하고 있다. 문의 02-887-2311.




말기암 환자들은 수술, 약물요법 등 적극적인 항암치료가 더 이상 효과가 없다고 판단되는 환자다. 기대되는 수명은 6개월 이하다. 이들은 회복 가능성은 없지만,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기 때문에 통증을 조절해주는 ‘통증완화 치료’가 필요하다. 통증은 암의 종류마다 다르지만 말기에 다다르면 대체로 호흡곤란, 통증으로 인한 수면장애, 방광 팽만이나 변비, 마약성 진통제 사용으로 인한 입마름증, 구토, 복수, 딸꾹질, 발열, 부종, 욕창 등 다종다양의 통증이 온몸을 공격한다. 통증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우울증과 이로 인한 자살 시도 등 정신적으로 겪는 불안도 심각하다.

‘버킷 리스트’엔 생계·가족 걱정 뿐

말기암 환자들은 이 모든 통증을 적절하게 관리받으면서 죽음을 잘 준비할 권리가 있다. 존엄하게 죽을 권리는 인간에게 부여된 마지막 권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소득층 암환자들은 통증을 세심하게 돌보면서 자신의 삶을 마무리하기는커녕, 생계에 대한 두려움, 남겨진 가족의 생활에 대한 걱정까지 떠안고 얼마 남지 않은 삶을 홀로 숨죽이며 보내야 한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버킷 리스트>에서 돈 많은 시한부 환자 에드워드는 마지막 남은 삶을 뜻깊게 보내기 위해 하고 싶은 일들의 목록을 만들어 실천하는 여행을 떠난다. 카레이싱, 스카이다이빙, 가장 아름다운 소녀와 키스하기, 문신하기 등 유쾌한 목록들을 하나하나 실천한다. 그러나 영화와 현실은 다르다.
만나본 시한부 환자들의 버킷 리스트를 물었다.
“집 전셋값 좀 마련됐으면 좋겠어. 할망이 돈 걱정 안 하고 아프지 않게 죽었으면 좋겠고.”(이혜용씨)
“고통 없이 편안하게 죽고 싶어. (어디 가고 싶은 곳은 없나) 간혹 집 앞에 산책이나 나가면 되지.”(송정란씨)
“누가 나 죽을 때 장례비만 좀 내줬으면 좋겠어. 우리 딸 돈도 없는데 나 초상도 못 치르면 어떡하나, 그게 걱정이야.”(홍진녀씨)
“내가 다시 건강해지는 거지. 둘째딸이 개그맨 기질이 있는 것 같아서 마술을 가르쳐주고 싶었는데 결국 못 가르쳐줬어.”(정광명씨)
‘가난’과 ‘죽음’을 동시에 떠안은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가족에 대한 미안함, 생계에 대한 걱정을 통증과 함께 머리에 이고 집 안에서 고통의 한숨을 내뱉었다. 많은 사회적 약자들이 ‘침해받은 권리’를 찾기 위해 거리로 나오는 시대지만, 거리로 나올 힘조차 없는 이들은 별달리 바라는 것도 없이 조용히 집 안에 누워 죽음을 기다릴 뿐이다. 우리에겐 잘 보이지 않지만, 그렇게 생명의 숨을 쉬고 있는 이들이 있다.


 



국내 호스피스 기관의 현실



의료보험만으론 턱도 없군요

말기 암환자를 위한 국내 호스피스 기관은 2007년 현재 총 78개다. 그러나 이들 호스피스 기관을 이용하는 데는 돈이 필요하다. 국내에서 가장 시설이 잘돼 있다는 서울 강남성모병원의 경우 호스피스 병동에는 의료보험이 적용되는 6인실이 없다. 6인실은 환자를 제대로 돌볼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1인실은 하루 병실료가 25만4천원, 4인실은 하루 17만2천원, 5인실은 하루 5만7천원이다. 의료보험에서 6인실 기준으로 지급되는 2만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환자 부담이다. 의료급여 대상자 여부, 기초생활급여 대상자 여부도 따지지 않는다. 각 병원 사회사업과에서 환자들의 상황을 점검해 재단 등과 연계해 병원비가 지원되기도 하지만, 지원 여부가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환자들이 마음놓고 이용할 수 없는 형편이다. 반면 일본에서는 호스피스 병동의 경우 전체 병실의 절반 이상이 1인실이고, 모두 의료보험이 적용된다.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유방암이 피부·폐 등으로 전이된 송정란(45·가명)씨는 얼마 전 폐에 물이 차 숨이 넘어가기 직전 한 호스피스 병동 4인실에 입원했다. 각종 진료비를 포함해 2주 입원했고 113만원이 나왔다. 손씨는 “중·고생 딸이 있다”며 “언니가 도와줘서 가능했지만, 계속 그런 치료를 받기란 사실 쉽지만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병원 사회사업과에서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했지만, 우선은 병원비를 모두 지불한 상태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완화치료를 받지 않고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저소득층 말기 암환자를 대상으로 각 지역 보건소가 ‘맞춤형 방문보건사업’을 실시하기도 하지만, 실질적 도움을 주기에는 역부족이다. 말기 암환자를 위한 호스피스 양성 과정을 이수하는 등 전문성을 갖춘 간호사도 적고, 간호사 1명이 담당해야 하는 가구 수도 평균 245가구로 너무 많다. 이 때문에 방문간호사들이 많게는 한 달에 한 번, 적게는 두세 달에 한 번 환자를 방문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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