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꽃

                      - 이해인


혼자서는

웃는 것도 부끄러운

한 점 안개꽃


한데 어우러져야

비로소 빛이 되고

소리가 되는가


장미나 카네이션을

조용히 받쳐주는

기쁨의 별 무더기


남을 위하여

자신의 목마름은

숨길 줄도 아는

하얀 겸손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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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4-09-06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화경 샘이 좋아한 시. 지금 보니 '한데 어우러져야 비로소 빛이 되고 소리가 되는가' 이 부분이 참 좋다.
 

 그 사람을 가졌는가

                                          - 함석헌


그 사람을 가졌는가


천리 길 나서는 날

처자를 내맡기며

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랑을 그대는 가졌는가


세상이 다 너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너 뿐이라고 믿어주는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탓 던 배가 가라앉을 때

구명대를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너 하나 있으니

하며 빙그레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예 보다도

아니오 라고 가만히 머리 흔들어

진실로 충언해주는

그 한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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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시

                         - 이 정 록

 

마을이 가까울수록

나무는 흠집이 많다.


내 몸이 너무 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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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4-09-06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아직 내 몸은 너무 성한다. 마을을 너무 멀리하고 있는가?
 

    학교 꽃밭을 가꾸며

긴 겨울 오르렸던 사지 활짝 펴고
운동장 가득 뛰어노는 아이들
그 힘찬 함성에 놀라
부푼 꽃망울 덩달아 활짝활짝 터지는 학교 꽃밭
매화, 철쭉, 목련, 산수유, 산당화, 앵두꽃, 배꽃
.....
그 눈부신 꽃나무 그늘 아래 숨어서
나즈막히 자라나는 이름 모를 잡초들
차디찬 땅 밑에 숨죽여 엎드린 채
긴 겨울 견뎌낸
저 맵고 끈질긴 새파란 생명들
가만 들여다보면
이제 작은 풀꽃망울 눈물처럼 아련히 피어나
한없이 안쓰럽고 어여쁘구나
풀꽃은 꽃 아닌가
몇몇의 큰 나무 꽃들을 위한다는 핑계로
늘 작은 풀꽃 무참히 뽑아 내던져버린
여지껏 내가 해온 학교 교육이란
바로 이런 것 아니었을까

몸 속에 흐르는 뜨겁고 사나운 피
정녕 못 다스려
술주정뱅이 아버지의 가죽 허리띠 채찍질에
왼(온?)몸이 구렁이 감기듯 멍든 채 방에 갇혀도
문 부수고 또 가출해버린
쇠비름처럼 맵고 당찼던 우리 반 향숙이
제 부모도 선생도 모두 포기해버리고
잡풀 뽑아 내던지듯 마침내 퇴학시켜버린 때처럼
그 어린 잡초들 뿌리째 뽑아내며 꽃밭에서
나는 자꾸만 가슴이 아파진다.

양정자, [아이들의 풀잎노래], 창비시선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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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4-09-06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 꽃밭... 내 손에 잘려나갔던 그 꽃들... 은 지금 어디서 무얼하며 살고 있을까? 그땐 학교만이 대안은 아니며 남으라는 건 내 욕심같아서 그렇게 보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런 생각으로 떨쳐냈던 것조차 나를 위한 위안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보내고나서도 보내지 않는 것, 그것이 부족했던 까닭이겠지? 그 아이들은 다들 지금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 다시 그런 상황에 부딪힌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인식의 힘





절망한 자들은 대담해지는 법이다. - 니이체




도마뱀의 짧은 다리가

날개 돋힌 도마뱀을 태어나게 한다.






최승호 『고슴도치의 마을』 ,문학과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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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4-09-06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옥샘은 이 시가 좋지만 무섭다고 한다. 날개 돋힌 도마뱀이 무서운 걸까? ㅎㅎ 나는 이 시가 너무 좋다. 절망도 약이 되며 발전의 발판이 된다.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내 절망의 추억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