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事物)의 꿈·1 - 정 현 종 나무의 꿈 그 잎 위에 흘러내리는 햇빛과 입 맞추며 나무는 그의 힘을 꿈꾸고 그 위에 내리는 비와 뺨 비비며 나무는 소리 내어 그의 피를 꿈꾸고 가지에 부는 바람의 푸른 힘으로 나무는 자기의 생(生)이 흔들리는 소리를 듣는다
동두천 5
세상에는 우리들이 더 미워해야 할 잘못과스스로 뉘우침 없는 내 자신과커다란 잘못에는 숫제 눈을 감으면서처벌받지 않아도 될 작은 잘못에만무섭도록 단호해지는 우리들
- 김명인, '동두천5', 동두천, 문학과지성사
도꼬마리씨 하나
- 임영조
멀고 긴 산행길어느덧 해도 저물어이제 그만 돌아와 하루를 턴다아찔한 벼랑을 지나덤불 속 같은 세월에 할퀸쓰라린 상흔과 기억을 턴다그런데 가만! 이게 누구지?아무리 털어도 떨어지지 않는억센 가시손 하나나의 남루한 바짓가랑이한 자락 단단히 움켜쥐고 따라온도꼬마리씨 하나왜 하필 내게 붙어 왔을까?내가 어디서 와서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무작정 예까지 따라온 여자 같은어디에 그만 안녕 떼어놓지 못하고이러구러 함께 온 도꼬마리씨 같은아내여, 내친 김에 그냥갈 데까지 가보는 거다서로가 서로에게 빚이 있다면할부금 갚듯 정주고 사는 거지 뭐그리고 깨끗하게 늙는 일이다
나무가 바람을
- 최정례
나무가 바람을 당긴다이 끈을 놓아이 끈을 놓아끌려가는 자세로 오히려나무가 바람을 끌어당길 때사실 나무는 즐겁다그 팽팽함이
바람에 놓여난 듯가벼운 흔들림때론 고요한 정지상처의 틈에 새 잎 함께 재우며나무는 바람을 놓치지 않고슬며시 당겨 재우고 있다
세상 저편의 바람에게까지팽팽한 끈 놓지 않고
낙산사 가는 길
- 유경환
세상에큰 저울 있어
저 못에 담긴고요달 수 있을까 산 하나 담긴무게달 수 있을까
달 수 있는하늘 저울마음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