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9. 18. 토요일. 하루 우리 반 모습.

하나// 조례시간에 '오리 날다' 함께 부르기

오늘은 토요일이니 시간도 딱 좋다. (엊그제 종례 시간에 시도했다가 처참하게 실패했다. 노트북도 말을 안듣고 해서... 그 후로도 이 노래, 계속 연습했다. 아이들 앞에서 함 불러보려고. 오늘은 꼭 성공해야지) 아침 조례 전에 내 노트북에 체리필터의 '오리날다' 뮤직비디오를 띄워놓고 수정이에게 전화해서 교실에 설치를 부탁하고 가사를 다시 복사해서 오려가지고... 올라갔다. 오늘 조례시간에는 노래만 해야지. 이 가사를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밤마다 달을 향해 날기를 연습하는, 결국 날아올라 달과 함께 춤추는 이 새끼오리의 이야기를 꼭 들려주고 같이 노래하고 싶었다.

그런데 우리반 아이들 저 모습을 보라. 영 맹맹하다. 노래는?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 두 눈은 모두 뮤직비디오로 가서 박히고 입은 "체리필터 별로 안 예쁘데이.. 어쩌고 저쩌고 조잘조잘 ^(%*^&#$&)*)" 이러고들 있다. 에잉... 나라도 하자 싶어 아픈 목에도 불구하고 '느들 안 하면 내 혼자 한데이~ 날아올라~ 저하늘로~' 갑자기 아이들이 마구 웃어댔다. 복도쪽 창을 보니 선미샘이 지나가다 내 꼴(!)을 보고는 창에 기대있다. 부끄럽지만 하는 수 있나. 끝날 때까지 계속~

그리고 칠판에 썼다. '오리도 노력하면 날 수 있을까? 너희들 모두 날아올라 저 빛나는 달과 함께 춤추기를 바래'

둘//  8.9월 생일잔치 

오늘 아침 늦잠. 40분에 일어났다. 씼고.. 도시락을 챙겼다. 오늘 생일잔치는 '도시락'으로 결정한 것이다. 그냥 보리밥에 있는 반찬 몇가지 챙겨넣어 허겁지겁 집을 나섰다. 아침엔 생일수첩, 생일돼지, 사진기, 그리고 내 도시락을 챙겨 쇼핑백 속에 넣어두었다. 영어샘께 3교시 빌린 것을 다시 확인시켜드리고 수업이 비는 2교시엔 잠깐 학교앞 문방구에 가서 예쁜 편지지를 샀다. 시간이 남을 경우, 자신의 꿈에 대해 써보라고 할 참이다.

늘 그랬듯 3교시에 4교시 한문 수업을 땡겨서 하고 4교시.. 일단 도시락을 까먹었다. 내가 학교 다닐 때처럼 2교시, 3교시 마치고 자기 도시락은 먼저 까먹어 버리고 친구들꺼 넘보는 녀석들도 있었다. 급식땜에 요즘 아이들은 그런 경혐을 못하는데.. 귀여웠다. 그렇게 당부했건만 컵라면에 물 부어서 앉아있는 녀석도 있었다. ㅎㄴ이, ㅅㅁ이, ㄱㅇ이, ㄷㅎ, ㅇㅅ이, .. 10명 정도 될까? 짐짓 화난 척 했지만 속으로는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녀석들 빼고는 모두 집에서 싸온 밥을 아이들과 사이좋게 나눠먹었다. 녀석들도 아마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 못싸왔을 지도 모른다.

1학기 때도 도시락 싸오기 한 적 있었는데(교생 선생님 왔을 때. 5월말이구나) 그때 보다 아이들이랑 나랑 많이 살가와졌나보다. "선생님 이거요. 먹어보세요. 제것두요..." 아이고 고마워라~ ^^ (아이들이 이렇게 말해주지 않으면 얼마나 뻘쭘한지... 나는 내 도시락만 꾸역꾸역 먹어야하잖아? ^^) '떠들면 느그 담임 잘린다'고 협박해서 조용히(정말? ^^;) 밥을 먹고 생일 당한 아이들 기념 촬영하고 수첩이랑 돼지 나눠주고...

그러고도 시간이 20분이나 남았다. 편지지 준비해두길 잘했지. 칠판에 썼다. 1. 나의 꿈에 대하여. 2. 미안한 사람에게 편지 쓰기. 3. 샘의 도움이 필요해요. 이 주제들 중에서 편한 것을 잡아서 글을 한 번 써보라고. 아이들 마음이 열리면 작은 준비로도 알찬 활동이 가능한 것 같다. 조금 진지한 이야기 해주고 '글 쓰는 연습'은 자신과의 대화이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애기해주니 아이들이 모두 편지를 열심히 썼다. 너무 예뻐서 죽을뻔 했다. 모두들 어찌나 열심히들 쓰는지. 아마도 지난 수요일 들려준 내 이야기 -내 꿈이었던 교사가 되기까지의 과정-를 해준것과 오늘 아침 '오리날다'가 유효한 것이겠지.

편지를 걷고 돌려보냈다. 구름이 살살 걷히고 하늘 한 귀퉁이에선 파란 하늘이 빼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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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반 아이들이 너무 예쁘다. ㅅㅁ이도 예쁘다. (드디어 ㅅㅁ이도 조,종례 시간에 나와 '눈'을 맞추기 시작했다. 저는 알까? 내가 이렇게 마음으로 저를 예뻐하고 있다는 것을? ^^ ) 너무 예뻐하다가 갑자기 다운 되는 경우가 있으니까 아이들에게 지나친 '기대'는 하지 말아야겠다. 변화는 안에서부터 조용히 오는 것이라고 믿고 그저 바라보고 기다려주어야지. 지금처럼 내 마음 살짝 살짝 보여주며. (야자감독 하면서 반 아이들이 너무 안쓰러워보이면 사탕이나 바나나우유, 간단한 과자 등을 책상 위에 슬쩍 올려놓는데 오늘은 날씨가 너무 후덥지근해서 얼린 제리뽀? 한개씩을 나눠주었다. 지난 번 도망가고 나랑 상담한 이후 한번도 안빠지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ㅅㅁ이에게는 아이들 몰래 두 개를 주었다. 다른 아이들 모르게 살짝. 그리고 귀속말로 '너만 두개야. 아이들 모르게 먹어'했다. ^^ 일상의 행복!! 이런 작은 행복이 좋다.)

야자감독했다. 돌고돌고돌고... 넘 피곤하다. 저녁을 먹은 후 약속대로 기혁이가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가지고 왔다. 날씨 핑계, 회식핑계로 몇번을 미뤄오다 드뎌 오늘 저녁 먹은 후 '기념 촬영'을 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밖이 빨리 깜깜해져서 느티나무 아래서 찍을 수 없을 것 같다고, 내일 토요일 점심 먹은 후에 찍자고 말했다. 같이 온  민호랑 효근이랑 이런 저런 수다를 떨고 놀았다. 이 아이들, 내겐 여전히 너무 예쁘다. 오늘 유난히 3학년 아이들을 많이 만났는데 다들 어찌나 안스럽고 힘겨워보이던지 어깨를 토닥여주고 안아주고 싶었다.

다시 ㅅㅁ이... 1학기 때 있어던 일들... 지금도 여전히 찜찜하다. 다음에 기회가 닿으면 꼭 다시 한번 정리해봐야겠다. 아직도 그 부분에 있어서 영 석연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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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을 읽은 후유증이야. 이런 책 읽으면 꼭 오바한단 말이야" 너무 버거워서 내가 대뜸 뱉아낸 말이다.

어제.. 학교에 와서 컴을 켜자마자 뚱땅뚱땅 나는 또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야자자유권! 우리반은 유난히 미술, 음악을 하는 아이가 많다. 인문계에서는 특이하다 할 만큼 미용학원에 다니는 아이도 둘이 있고 요리학원에 다니는 아니도 있다. 2학기 들어 몇달 후면 3학년이 되는 아이들이 그나마 공부를 좀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보충은 대부분 하는 쪽으로, 야자는 선택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하긴 내가 뭐라 말 하기도 전에 아이들이 스스로 그렇게 할거라고 맘먹고 있었다. 별다른 설득 작업 없이도 보충은 3명 빼고는 다 하겠다고 했고...  대신 야자는 미술, 음악, 미용 등 학원에 가는 아이들은 빼주기로 해서 11명이 야자를 아예 하지 않는다. 그리고 요일별로 사정이 있는 6명도 가능한 날만 하기로 했다.  거기다 날마다 아파서 병원가야한다는 아이, 급한 사정 있다는 아이.. 등 다 빼주면 우리 반은 제일 적을 때는 20명 정도, 많을 때도 26명 정도가 교실에 남아있다. 나랑 몇분간 신경전을 벌이기는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아이가 '승리'하고 집으로 가는 쾌감을 맛본다.  나는 늘 "이번이 마지막... 다음 번엔..."운운하며 아이들을 다 보내주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탈출' 하고 싶어했다. 말 못할 사정일 때, 말 안하고 싶은 사정일 때, 담임이랑 그 몇분조차도 씨루기 싫을 때 아이들은 그냥 가버렸다. 거짓말 하고 가는 것보다 이것이 나은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다음날 야자감독 일지에 남겨진 불참 아이들의 이름이 나를 난감하게 하는 일이 잦았다. "어쩌지? 규칙은 규칙인데... 이러다가 정말 우리 반 공부 안하는 분위기가 박혀버리면?" 인문계 담임으로서 여러 가지 책임감이 느껴졌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야자자유권이다.

1. 우리 반 모두 지킨다고 약속할 것.

2. 하루에 2명 이상은 안됨. (너희들이 서로 의논해서 날짜를 조정해올 것)

3. 그 달 사용하지 않은 야자자유권은 매달 말일  500원 상당 매점상품권으로 교환해줌.

4. 양도, 대여할 수 없으며 적발시에는 야자자유권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함.

'이 규칙들을 반 아이들 모두가 지키면 한달에 하루, 이유를 전혀 묻지 않고 특별히 자유시간을 주겠다' 이것이 내가 생각한 대안이었다.

좋아하는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예쁜 종이에 출력하고 조심조심 잘라서 교실로 올라갔다. 아이들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할래? 말래?" 종례시간.. 너무 시간이 없었다. 아이들의 의견을 제대로 물어보지도 않고 저희들이 손해볼 일은 아니니 무조건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다. "좋아, 그럼 이 규칙들 꼭 지킬거지?" 좋아하는 아이, 어리둥절해하는 아이, 뭔가 불안해보이고 불만스러워하는 아이.. 아주 짧은 시간에 아이들의 얼굴을 스쳤는데 나의 예상과는 너무 달라서 당황스러웠다. 불안해하고 불만스러워 하는 녀석들... 이유가 뭘까?

설명을 끝내고 교무실을 나오는데 아이들이 또 달라붙었다. '응, ㅁ정이는 안과, 미@이는 치과... 뭐라고 ㅇ늘이도? 아&이는 생리통?' 난감했다. 지금 막 나눠줬는데 오늘 쓰겠다는 녀석만 네 명이다.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래, 그래, 다른 것도 아니고 다 아픈 건데 뭐~ ㅁ정이와 미@이는 보충까지 빠져야한다고 했다. 마치고 가면 병원이 문을 닫는다고, 예약해뒀기 때문에 가야한다고.. '아~ 나는 또 즉흥적인 감상으로 사고를 쳤나보다. 미덥지 못하게 쳐다보던 범생이들의 눈빛이 무얼 말하는 건지 그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막 교실을 빠져나오는데 마침 우리반 보충이신지 부장선생님께서 앞문앞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오늘 보충 빠진다는 아이들에 둘러싸여...  북적거리는 그 장면을 그대로 다 들켜버리고 말았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맨날 보충을 빠지겠다고 샘들을 찾아가 매달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민망했다.

교무실로 돌아오니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EBS 감독 문제로 신경이 서있는 상태인데 아이들까지 내 마음을 몰라주고 맨날 이 모양이다. 역시 내가 또 실수한건가? 옆에 앉은 현옥샘한테 사정을 이야기하며 계속 투덜거렸다. "그 책을 읽은 후유증이야. 이런 책 읽으면 꼭 오바한단 말이야" 요즘 [그 후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를 읽고 있다. 사랑의 마음으로 아이들이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자기자리로 아올 때까지 한결같이 기다려주는 선생님.. 감동이었다. 그래서 내가 또 비슷하게라도 따라가고 싶었나 보다. 그러면서 이렇게 또 금방 후회한다. 사실 생각해보면 '야자자유권'이라는 것이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족쇄나 되지는 않을지... 스스로를 잘 다듬는 기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억누르고 눈치보고.. 그런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나 않은지.. 나의 과욕은 아닌지... 불안하고 후회스러웠다.

오늘 아침, 어제 야자일지를 확인했더니 그렇게 보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네 명이 또 도망을 갔다. 지난 토요일 야단맞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까지 한 녀석들이다. 역시 내가 잘못한 건가? 지금이라도 없었던 일로 해야할까? 가슴이 갑갑했다. 섭섭하고 속상했다. 조치를 취해야한다. 조례시간에...

"눈을 감아보세요. 여러분에게 할 말이 있습니다. 어제 저녁 여러분에게 '야자자유권'을 만들어 준건 자기 스스로 자신을 계획하고 조절해보라는 의미였습니다. 수요일 수업시간에 얘기했듯이 중고등학교까지 스스로 통제하는 연습을 한 번도 해본적 없이 대학 갔을 때 느낀 허무와 공허가 얼마나 큰 지 알기때문에 여러분에게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무슨 짐승입니까? 여기가 감옥입니까? 제가 늘 여러분을 협박하고 때리고 통제하고 그렇게 하는 공부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부모님이나 제가 늘 여러분 곁에서 여러분을 통제하고.. 언제까지 그럴 수 있습니까? 이제 3학년인데 공부하는 연습, 해야하지 않습니까? 하늘은 노력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주지 않습니다. 공부하고 집중하는 것도 연습해야되는 겁니다. 3학년이 되었다고 하루 아침에 되겠습니까? 그리고 평소에 늘 '야자' 성실하게 하는 아이들.. 여러분에게도 선물을 주고 싶었습니다. 맨날 도망간다고 야단만 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하는 사람 칭찬도 하고... 그럴려고 어제 그거 만들어준 겁니다. 근데.. 내가 너무 아픕니다... 여러분 믿고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이 나에게 희망을 주어야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이 노력하는 모습, 그게 제게 힘을 줍니다. 하루아침에 될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노력하는 모습, 그래서 나아지는 모습.. 그게 제가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 아픕니다... 오늘.. 제게 내려와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교무실로 와주세요."

내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고 아이들은 조용히 내 말을 듣고 있었다.

1교시 후, 덕*가 내려왔다. "샘, 죄송해요. 다시는 다시는 안그럴께요." 빙그레 웃으며 "아플 때는 가야지." "안 아플께요." "그래 덕*야 올라가봐."

3교시 후, ㅁ혜, 현ㅇ, 지@이도 내려왔다. 녀석들은 덕*와는 달리 상습범이라 장황하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느들 야자 안할래?" "아니요" "그럼 느들 필요할 때 할 수 밖에 없는데.. 느들이 그렇게 하는 거 일단 나한테는 부담이 된다. 다른 아이들에게도 분위기에 영향을 주겠제? 그럼, 느들만 편하고 나도, 아이들도 다 불편해지지? 그건 안되겠다. 그럼 어떡해야할까?" "우리가 열심히 해야돼요" "그래 그 방법밖에 없다. 그런데 자꾸 이런식이면 우짜노? 느그가 스스로 샘한테 와준 거 참 고맙다. 안 내려올 수도 있었을건데.. 그래 우짜면 좋겠노? 지금 말로 하기는 좀 그렇제? 그럼 올라가서 글로 함 써봐라. 다른 방법이 있으면 쓰고 느들 생각을 함 써봐라. 느들 가장 큰 장점은 솔직하고 정직하다는 거, 샘이 아니까 그렇게 함 써와봐라. 그런데 가끔 표현하는 방법이 나한테 상처가 되기도 한다. 느그 40명인데.. 느들 나는 다 받아들이는데.. 느들도 그냥 이런 나를 받아들여야 되지 않겠나?  .... 그래 일단 올라가라. 내려와줘서 고맙다." 횡설수설... 평소에 섭섭했던 부분까지 살짝 살짝 내비치며 내 얘기를 하고 아이들을 올려보냈다.

종례시간에 현ㅇ와 ㅁ혜가 쪽지를 내밀었다. 은ㅁ는 짧게 현ㅇ이는 길게....잘못했다고, 지금 마음 같아서는 안빠지려고 생각중이지만 자기가 어떻게 바뀔지, 어떤 사정이 생길지.. 자신할 수는 없지만 노력하겠다고...

이렇게 '야자자유권'은 나의 뒷통수를 쳤다. 그래도 아직 힘이 남아있고 아이들이 희망이 될 수 있는 건 이런 장면 때문이다. 그리고 스친 생각 하나 더, 아이들이랑 나랑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한 것, 그것이 진짜 문제 아닐까?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담임이라해도 아이들과 이야기할 시간이 잘 없다. 서로에 대해 알아볼, 알려줄 시간이 없다. 메일로 생각을 주고받기에도 아이들이 너무 많고... 좋은 방법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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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4-09-11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200

이야~ 방문객수 200번째네요.


느티나무 2004-09-11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잠깐 이야기가 나왔던 윤제림시인의 시집(사랑을 놓치다) 중에서 한 편입니다.

함께 젖다 1

- 윤제림

공양간 앞 나무백일홍과,
우산도 없이 심검당 섬돌을 내려서는
여남은 명의 비구니들과,
언제 끝날꼬 중창불사
기왓장들과,
거기 쓰인 희끗한 이름들과
석재들과 그 틈에 돋아나는
이끼들과,
삐죽삐죽 이마빡을 내미는
잡풀꽃들과,

목숨들과
목숨이 아닌 것들과.

해콩 2004-09-11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0번째도, 200번째도 샘이! 오늘도 저희 업소(^^;)를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자주자주 놀러오세요. 남겨주신 시도 너무 감사.. 오늘 저도 '함께 젖'었어요. 너무 늦어서 절집에는 못들어갔지만 내원사 계곡에 떨어지는 가는 물방울과, 아스라이 보이는 산과, 들녁에 고개숙인 나락들과, 탁주잔 기울이던 샘들과... 일상들과 일상아닌 것들과.. 흠뻑 젖었지요. 함께. 가을비가 꽤 내리네요. 감기 조심하세요. ^^
 

월욜 수업은 두 시간밖에 없다. 것도 무난한 반으로.. 근데 안희숙샘이 야자를 바꿔달라고 했다. 아! 어쩌나? 이젠 부탁할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데.. '몸 상태 봐가면서'라고 답을 해두었다. 오후에 희숙샘한테 야자감독을 내가 하겠다고 했다.

한 시간 감독하고 저녁먹고... 느티나무 서재에 들러 음악-가요를 들었는데 갑자기 반 아이들에게도 들려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비가 비실비실 오는 저녁..밤.. 고즈넉하게 낮은 노래소리가 아이들에게 조금의 위안이라도 된다면... 혹시 싫어하는 아이가 있으면? 그래도 시도해보자. 얼렁 노트북을 떼내어서 교실로 가지고 갔다. 노래를 들으며 칠판에 가사를 옮겨놓았다.

사랑하게 되면 -안치환

나 그대가 보고파서
오늘도 이렇게 잠 못 드는데
창가에 머무는 부드런 바람소리
그대가 보내준 노랠까
*보고파서 보고파서
저 하늘 넘어 그댈 부르면
내 작은 어깨에 하얀 날개를 달고
그대 곁으로 날아오르네

훨훨 훨훨 날아가자
내 사랑이 숨쉬는 곳으로
훨~훨 훨훨 이 밤을 날아서
그댈 품에 안고 편히 쉬고파

나를 잠 못 들게 하는 사람아

아이들은 "샘~ 아저씨노래! 아줌마 같아요" 한다. 야자 2교시 종이 울리고 우리 반 아이들 자습 분위기를 잡아주고 노트북을 가지고 옆반으로 갔다. "노래 한 곡 들을래?" "신화요? !" , "아니 곡목은 내가 정해. ^^"  "샘 무슨 노래예요?" "^^ 수업시간에 알려줄께~" 그렇게 서너반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다. (내 노트북은 무선인터넷이 된다.) 아이들의 반응은 의외로 좋았다. 문제의 5반!! 수업시간에 지지리 집중 못해 내게 자주 야단 맞는 아이가 "김치환이다"한다. 예쁘다. 아이들이 '안들린다', '설치지 좀 마라'고 그 아이에게 면박을 주었지만 나를 생각해 그렇게 면박주는 아이도, 구박 받으면서도 내게 씽끗 웃어주는 녀석도 다 이쁘다. 자습분위기는 의외로 더 조용해졌다. 막 나오려는데 반장 녀석이 한 마디 한다. "샘~ 그 방법 좋은데요. ^^ "  " ^^ "

우리반, 8반, 7반, 6반, 그리고 5반에서만 성공했다. 12반 모든 아이들에게 노래가 나가는 동안의 평온함을 선물하고 싶었는데 무선 아테나가 교실 위치에 따라 말썽이었다. 그렇다고 인터넷 선까지 찾아 연결하고 들려주기에는 넘 번거롭고... 공부하는 아이들에게도 방해가 될거고.. 오늘은 날씨가 안좋아 인터넷이 잘 안될 수도 있으니까(인테넷도 신경통이 있단다. 흐린 날은 잘 안 되는.. ) 못들려준 반에는 꼭 다음번 감독할 때 들려주어야지. 윤도현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도 좋은데... 가을이 더 무르익으면...

야자 감독하면서 반 아이들에게 직접 기타 반주에 노래를 불러주었다는 선생님 이야기를 어렴풋이 들은 적이 있다. (이상석 샘의 [사랑으로 매기 성적표]에 나온 이야기였나?) 능력이 안 되 그렇게까지는 못해도 그냥 아이들과 함께 이런 저런 노래, 함께 들으며 그 '시간'을 나누고 싶다.

노트북을 가져다 두려고 교무실로 내려오니 내 앞자리 샘이 2반 3반 아이들을 야단치고 계셨다. "느그 오늘 감독샘이 누고?" 그리고 아이들 매맞는 소리.. 그 모습, 그 소리 듣기 싫어 얼른 자리를 떴다.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그 샘과의 거리에 민망하기도 했고, 이럴 때 마주치면 상대를 향한 내 감정을 눈빛으로 들켜버릴 것 같아서.... 그 선생님께 오늘 했던 나의 행동은 어떻게 비춰질까? 현실감 없고 철없는 교사의, 인기에 영합하는 단세포적 행동? 나는 그저 아이들과 나의 삶을 나누고 싶을 뿐이다. 이것도 나의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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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4-09-07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써두지 않으면 계속 찜찜할 것 같다. 8시 50분 야자 마칠 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벌써 가방을 싸고 집에 갈 준비가 끝난다. 그러곤 한 두 명씩 교실을 살짝 살짝 빠져나간다. 최대한 그것을 막아보려고 복도에 서서 "나오면 알지? 10분씩 더 넘긴다.", "머리 내미는 사람, 뭐꼬? 빨리 들어가라" 고함 빽빽 질렀다. 그것 때문에 오늘 아침 목이 갔다. 이런 선생이다. 그나저나 고민이네. 살짝 모른척 해줘야할까?

해콩 2004-09-11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업시간에 산만해서 반 아이들로부터도 구박 당하는 강성훈군, 우리반 ㅁ윤이와 사귀고 있는 내 사위 김진규군, 그리고 5반 반장 김정헌군... 아이들 이름 빨리 외워야한다. 지난 1학기 동안 도대체 나는 뭘 한거야?
 

 위즐 선생님들이랑 광안리 대안공간 -반디에 가서 '몽정기'라는 미술작품 (이런걸 뭐라하는지 알 수가 있나. 팜플렛 뒤적.. 아! '라인 드로잉'이라 하는군. 작가는 박미경)을 감상했다. 어제 야자 멋대로 띵군 녀석들 남겨서 공부시키려고했는데 그 눈빛들로 남아있어봤자 공부도 안 할 것 같고 이런 저런 이유들을 대길래 또 맘이 약해져버려서 보내버렸다. 밥까지 챙겨먹고 있었는데... 그러고는 머리를 하러 갈 생각이었는데 점장께서 결혼 후 몇달을 쉬신다나? ( 에궁 우짜노 내머리는? 갑자기 고민이 하나 생겨버렸다. 머리 빨리 해야는데 하러 갈 데가 없다. ) 부대 도서관 가서 책을 볼까, 집에 갈까 생각하다가 너무 오랫동안 위즐 모임에 나가지 않은 것 같아 전화를 했다. 부대 도서실에서 한 시간 정도 졸다가 은현샘 전화를 받고 정문앞으로 가서 대학원 논문통과 시험을 보고 나온 형주샘을 기다렸다가 차에 올랐다.

전시 공간은 참으로 좁았다. 데뷔전이라 그런지 작가가 직접 우리에게 팜플렛도 나눠주고 몇가지 질문도 하고.. 왜 하필 남성의 '성'을 소재로 했느냐는 질문에 수줍고 애띤 작가는 유쾌한 성을 그리고 싶어서였다고. 진짜 유쾌했다. 저것들이 다 그것들이란 말인가? 코와 그것을 동시에 강조한 건? ㅋㅋ (이해가 안 되는 모양들도 몇몇 있었는데 도데체 뭘까? 궁금..) 아무리 얇은 테잎으로 작업을 했다고 하여도 저 많은 것들을 작가 혼자 한 달 보름 동안 일일이 구상하고 자르고 붙이고 수정하고 책칠하고 만들고.. 했을 것을 생각하니 예술도 '노동'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찌는 듯한 여름 내내 그 좁은 공간에서 선풍기 한 대만으로도 굳굳이 버티는,  정열적이고 아름다운 노동! 

마침  '까만기와'의 주인공 '임빙'이 몽정에 '시달리는' 글을 막 읽은 후여서 -부산대 도서관에서 읽은 부분이 마침 딱 그 부분이었다.- 남성들이 처음 몽정을 할 때 느끼는 일종의 '죄의식'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는데 - 우리 학교 아이들이 임빙 또래라서 그런지 '그 시기 아이들의 죄의식'에 대한 걱정이 조금되었다-  이렇게 유쾌하고 발랄하게 비유해 놓은 성을 보니 영화 '몽정기'에서처럼 그 '죄의식'도 나중에는 순수했던 어릴적 경험의 하나가 되겠구나 생각되어 걱정이 달아났다.  따라서 '성'을 가볍게 다루기 보다는 유쾌하고 즐겁게 다루고 싶었다는 작가의 시도는 나름대로 성공한 것 같다. 나를 보면 알잖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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