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방학... 연초부터 나라를 떠났었다. 인도로의 첫 여행... 그 기억들이 지금은 왜 이렇게 아득하기만 한 건지.. 묵혀놓고 있던 노트.. 여행기를 발견했다. 버리기엔 아까운 걸까? 아직 '무언가 기록한다는 것', 또는 '무언가 남겨두려는 것'의 이유도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있는데.. 어쨌든 지금은 아무 것도 기억나는 것 없으니 그때의 기록에 충실하게 베껴두려 한다. 결국은 소멸하게 되더라도 내 삶의 부분이므로.. 역시 나는 그의 말대로 '삶에의 의지'가 강한 걸까?
1.5.(월) 밤 11시. 교대앞에서 버스 출발. 모레쯤이 보름일까? 달빛 환하다.
1.6.(화) 새벽 4시 밤을 줄곧 달려 인천국제공항도착. // 9:05 싱가폴(新加坡)로 날아오르다. // 2:30 싱가폴도착(시차1시간) 타자마자 승무원들 아점 준비하는 소리가 요란하다. 배식하는 데 2시간이나 걸리더니 결국 낑애, 나, ㅈㅊㅎ샘이 꼴찌로 밥을 받게 되었다. 근데 우리 차례에서 심지어 음식이 떨어졌다나? 냉동식품만 주더라. 이렇게 식욕왕성한 내가 입맛에 도저히 안 맞아하는 음식도 있구나. // 5:15 델리(德里) 향해 출발. 역한 향신료로 머무려진 인디아 식의 밥 으~~~ 시작이다.// 밤 9:00 델리 공항. 인도의 첫인상은 매연으로 숨을 쉴 수 없는... 한 치 앞도 보기 힘들다. 어둠과 매연 때문에 버스를 타고 10:30 그랜드 호텔 도착. 내 생애 이렇게 화려한 호텔에서 잠을 다 자보네..그것도 인도에서..
오늘은 몇월 며칠? 비행기를 타고 서쪽으로 가면 해가 더디 진다. 그래서 보통은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몰, 조금만 한 눈을 팔아도 놓치기 쉬운 일몰을 아주 천천히 감상할 수 있지. (돌아올 때는 반대다. 도대체 끝나지 않는 밤이라니...) 인간이 건설한 문명이라는 것도 이런 단 한 번의 일몰에도 그야말로 무색해진다. 진홍색부터 남색 쪽빛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이는, 끝없이 펼쳐진 세상이다. 현묘지도! 은현샘은 저 아래 세상에서 아웅다웅 살아가는 인간이 자연앞에 너무나 무색하다 했지만 그렇지만 그런 일상들이 있기에 자연의 아름다움이 더 빛을 발하는 것인 아닐지.. 어제밤처엄 달이 뜰까? 크고 환하고 동그란 보름달이?
1.7.(수) 호텔에서 뷔페식으로 무난한 아침 먹고 9:00 에 출발. 가이드 너윈과 고롭을 소개받았다. 공해 가득한 델리.. 폐차의 개념이 없는 오토릭샤 때문이란다. 다행히 가로수-님나무-가 많아서 좀 낫다. 이거룡 교수님 왈 "인도에 왔으면 포기하라" "시간과 공간에 저항하지 말라" 뉴델리의 대통령궁, 국회의사당, 국립박물관, 인도문(세계제1차대전 후 죽은 인도병사들을 위해 세운 42m의 위령비) 구경. 점심밥? 기억이 가물하지만 처음 맛보는 인도 식당 음식. 맛은 그런데로 괜찮았다. 차창에 매달리는 아이들을 만나기 시작하다. 핑크 빛의 도시로 유명한 자이푸르로 출발. 저녁 먹고 다시 호텔.
나른해 보이는 인도 나무들.. 그리고 거리의 소떼들.. 인도에서 특별 대우를 받는 소! 고기는 안 먹지만 식생활에 있어 중요한 수단이었다. 심지어 소똥도까지 중요한 연료로 쓰인다. 그러나 현재는 소의 경제적 가치는 점점 떨어지고 있다. 도시에서는 연료를 천연가스가 대체하게 되어 소똥이 필요없게 되었고 소고기도 먹질 않으니.. 그렇다고 소를 도살하는 것도 법으로 금지되어 있어 도시에 방치되어 교통을 방해하고 가게를 습격하기도 하는 소떼들이 이슈화 되었다. 원래 아리아인들은 소고기를 주식으로 했으나 불교와 자이나교의 아힘사(불살생)의 영향으로 소 도살이 금지되었다. 통일 왕국의 세번째 왕 아쇼카왕이 중앙집권으로 왕권을 강화하면서 새로운 정치이념으로 불교를 채택하게 되면서 소의 사회적 신분(?)도 상승되었다나? 그러나 현재 인도 인구 중 불교도는 1% 미만이라고 한다.
하늘을 나는 건 매, 까마귀, 비둘기... 그리고 화려한 부겐베리아꽃.. 오후 5시 지는 해, 온화한 햇빛... 휴게소에서 그네도 타며 즐거운 한 때
인도 아이들..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할까? 외면하면 맘에 걸리고 그렇다고..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에 욕심, 욕망을 모르는 것이 아닌지? 모르는 데서 오는 편안함- 이 상태를 행복이라 할 수 있나?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한 인도 역시 스쳐지나가는 하나의 관광지이며 그들의 모습 또한 관념일 뿐.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바라보기. 이렇게 단체로 호텔 따위에서 자며 자본의 냄새를 풍기고 싶지는 않은데...
1.8.(목) 아침 먹고 코끼리를 타고 엠버성(자이싱왕이 16세기에 세운 거대한 성), 바람의 궁전, 시티팔레스 등 시내 구경. 또 밥 먹고 숙박
15년 전만 해도 한 가정에 4~5명의 아이를 두었지만 지금은 2명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각 가정마다 신을 모시며 아침 6시에 기도를 올린다. 여자들은 집안일, 청소, 식사 준비 등을 하며 조부 조모는 아이들 교육을 시킨단다. 인도의 전통 풍습(인습이고 악습이다.)인 결혼시 지참금-인도말로 다오리하고 한다-이 요즘도 가끔 해외토픽에 오른다. 지참금이 적다고 신부를 때리거나 심지어 죽이기도 하는 것이다.
아침 저녁으로는 쌀쌀하고 한낮에는 따가운 햇빛. 5:40분 일몰.. 해탈하지 못한 , 삶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한 영혼들이 가득하다는 저 보름달... 환하다. 이 막막한 시간과 공간. 인도에서는 고대의 시간 속에 있는 듯하다. 아주 천천히 흐르는 태고적 시간.
1.9.(금) 아침 먹고 자이푸르 출발. 고도 파테퓰시크리성. 아그라 도착해서 점심 먹고 아그라 성 구경.
자이푸르에서 파테풀시크리성으로 가는 도중에 한적한 시골 마을에 잠시 내렸다, 순박한 아이들. 70년대 우리나라 농촌과 비슷한 냄새를 풍긴다. 신기한 듯 우리를 보는 할머니, 아주머니, 처녀들, 그리고 아이들.. 그런데 여기서도 아이들이 졸졸 따라다니며 무언가를 달란다. 낑애와 나의 뒤를 끊임없이 좇는 조금 덩치 큰 녀석. "뽈펜" "뽀르펜" 하며 지치지도 않는다. 점점 마음이 불편해온다. 미리 어떤 작정을 하고 왔으면 맘 먹은대로 행동할 수 있을텐데 미처 맘 단속을 하지 못한 나로서는 이런 상황에 부딪힐 때마다 마음이 고생스럽다. 미군들에게 "헬로우, 츄잉껌 기브미" "초코렛 기브미"하며 졸졸 따라다녔을 그 시절 우리 아이들이 오버랩되기 때문에. 알량한 동정심에서 내가 내미는 동전 한 닢, 과자 하나에 이 아이들 길들여지지 않을까? 뒷 날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게 되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그러나 이런 생각조차도 편견, 선입견, 나만의 관념인 것을 잘 안다. 저들은 그저 오며가며 낯 모르는 이방인이 주는 소박한 선물 하나에 마냥 행복할 것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대상 모를 '화'가 슬며시 인다.
1.10.(토) 6시 기상. 일찍 아침을 먹고 8시쯤 인도를 대표하는 세계 7대 불가사의 건축물, 타즈마할에 갔다. 건물의 네측면 어디에서 보아도 똑 같은 모양이라는 대리석 건물. 죽은 아내를 잊지 못한 샤 자한왕이 세운 아내의 무덤이다. 실제로 건물 아래쪽이 시신을 안장했다는데... 건물 내부엔 신을 신고 들어갈 수 없다. 문화재 보호차원이겠지? 햇빛에 반사된 대리석. 온통 대리석.. 그래서 눈이 무지 부시다. 정원도 산책할 만하다. 시간이 빠듯해서 11:20쯤에 호텔에서 점심을 먹고 11:50분에 아그라 칸드역으로 이동하여 13:00에 잔시로 가는 특급열차를 탔다. 4:30 도착. 다시 버스로 오차로 이동. 해가 뉘엿한 가운데 오차성 등 옛 사원을 돌아보았다. 6:00경. 이미 깜깜해진 후 호텔 Amar Mahal에 투숙했다. 저녁 먹고 이 호텔의 정원에 다들 모였다. 하늘엔 조금 이지러진 보름달. 술이 몇 순배 돌고 노래도 돌고.. 잊지 못할 밤.
1.11.(일) 어젯밤... 회포를 푼다고 너무 늦게 잠들었다. 그러나 4:30에 일어나 새벽밥 먹고 6시에 카쥬라호로 출발했다. 인도의 새벽.. 자지 않고 창밖을 보기 위해 노력했다. 울퉁불퉁 한적한 도로... 어느 시골 마을에 차를 멈추고 다 같이 급한 일(인간의 원초적 본능인 그 일!)을 보았다. 적당히 숨을 곳을 찾았지만.. 좀 힘들었다. 차도 마시고 인도 담배도 피면서 웃고 떠들고. 카쥬라호! 인도 조각 예술의 걸작으로 꼽히며 에로틱한 미투나상으로 너무나 유명한 서쪽 사원군과 자이나교 사원이 있는 동쪽 사원군을 둘러보았다. 성을 통해 무아지경의 해탈로 들어간다고 믿었단다. 어찌나 적나라하든지.. 사트나 도착 후 야간 열차편으로 바라나시로 출발. 열차는 8:30에 출발했는데 기다리는 사이 고럽이 샘들이 가르쳐주는 진도 아리랑을 열심히 연습한다. '쓰레기 통 없냐'는 질문에 그동안 많이 친해진 우리의 잘생긴 인도 귀족출신 가이드 너윈은 "인도 전체가 쓰레기장예요" ???!!!
1.12.(월) 새벽 5시 너윈이 깨웠다. 6시 도착이라고. 일어나서 짐 정리하고 화장실가서 아쉬운데로 가글하고 오두마니 앉아서 기다렸지만... 여기는 인도다. 정시에 도착하기란 하늘에 별따기! 다시 슬슬 잠이 들었다. 7:00 승무원 아저씨가 5분 후 도착이라고 외치는 소리에 진짜로 깼다. 낑낑거리며 배낭을 매고 버스에 올랐다. 드디어 바라나시에 도착한 것이다. Radisson Hotel로 가서 짐풀고 샤워하고 아침 먹고. 처음으로 주어진 자유시간!. 10:30 호텔 로비에서 현주샘, 낑애랑 동네 한 바퀴 돌며 재미삼아 몇가지 물건도 샀다. 담뱃대 5개 20루삐. 은팔찌 250루삐. 호텔 쇼핑아케이트에서 팬던트 2개 7달러. 12시, 점심 먹고 1시에 호텔을 나섰다.부처님 초전법륜지 사르나트(녹야원) 보고 박물관 들러서 저물녁에 드디어 갠지즈강(강가). 한번에 시체 아홉 구를 태울 수 있단다.
여기서 화장하는 것이 일생의 소원이라는 강가. 스산한 마음을 다스리기 힘들다. 어쩔수 없이 여기에서는 삶과 죽음을 직면하게 된다. 빨래하는 사람, 목욕하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 장사하는 사람... 그리고 영원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강가엔 여기 저기 소똥이고 물건 팔려고 너무나 참을성 있게 뒤쫓아 오는 아저씨들... 안 살 수가 없게 만든다. 그 웃음과 친절함에! 배를 탔다. 이 곳에 초를 띠우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단다. 그래서인지 강물 위엔 여러 가지 소원과 마음으로 밝힌 불꽃들이 환하다. 인간의 바램은 이렇게 아름다운가! 정말 아/름/답/다/ 키크고 잘생긴 힌두교 사제들이 매일 밤 거행하는 의식도 정말 장관이다. 나도 아주 질긴 인연을 이제는 제발 끊을 수 있게해달라는 소원을 빌었다.
1.13.(화) 인도 와서 디게 일찍 일어난다. 오늘은 5:00. 7시에 다시 갠지즈강(인도에서는 Gangga라고 부른다)으로 갔다. 보트유람. 어제 제대로 보지 못했던 화장터를 스쳐지나갈 것이다. 사진을 안 찍기로 약속을 하고서야화장터에 접근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봐 버렸다. 채 타지 못한 시체의 발, 두개골, 팔... 무심한 듯 늙은 개 한마리 지나간다. 동행들의 표정이 너무 가라앉았는지 너윈이 이제 그만 가자며 "이거 오래 보면 몸 아파요"한다. 그래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파지겠지. 두통을 느꼈다. 돌아나오는 골목. 그야말로 사람과 소가 뒤엉겨 산다. 손목, 손가락, 발... 사지가 비틀어진 사람들... 이것이 삶이냐? 그냥 이 모습 이대로가 삶이라고? 그런데 왜 속은 울렁거리고 구토가 나는 거냐. 배도 아프다. 어지럽다 어지럽다. 이 도시는, 이 골목은 사람을 가라앉게 한다. 우울하게 한다. 더 이상 인도를 못 견디겠다. 바라나시, 갠지즈는 감당이 안된다.
힌두대학을 둘러보았다. 농업을 전공한다는 잘 생긴 두 남학생과 한 컷! 실크가게 등을 들러 스카프 몇 장을 사고 델리로 이동하기 위해 역으로 갔다. 7시경 출발한다던 야간열차는 9시가 되어서야 출발했다. 공기가 너무 나빴기 때문에 차안에서 기다렸는데 그동안 많이 친해진 샘들이랑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하고 또 노래도 부르고... 즐거웠다. 지금부터 12시간을 내리 달려 내일 오전, 정오쯤에 델리에 도착할 계획이란다.
1.14.(수) 침낭 속에서 편히 잘 자고 아침 8시에 눈이 떠졌다. 12시간 걸린다더니 아직 멀었단다. 길고 긴 이 시간 동안 너무나 예쁘게 생긴 인도 아이도 만나고 이야기도 하고... 현주샘이 '서른즈음에'를 가르쳐 달란다. 막상 생각하니 가사가 헷갈린다. 오후 4:30에야 델리에 도착했다. 거의 20시간 동안의 기차여행!! 기차가 너무 많이 늦어진 탓에 바쁘다. how much 팀과 문화탐방팀으로 나누어 돌기로 했다..
낑애와 나는 문화탐방팀. 시간이 너무 없어서 간디의 묘소만 참배했다. (원래는 올드델리도 둘러보려고 했다는데 아쉽다.) 별로 청결하지 않은 인상의 인도, 델리엣 이 묘소는 비교적 깔끔하게 다듬어져있다. 그는 마하트마(큰 마음을 가진 사람)가 아닌가! 화장한 후 나온 그의 사리와 뼛가루를 인도 전역에 골고루 뿌리고 이 묘소에 조금 안치했다고 한다. 힌두교의 한 종파인 비슈누교에서는 그를 비슈누의 10번째 화신으로 섬기고 있다고도 한다.
6시 반에 공항에 도착했다. 어제 기차 탄 이후로 세수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당연히 머리도 못감고... 몰지각한 짓이지만 도저히 더 참을 수가 없어서 공항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았다. 손말리는 기계에 머리 갖다대로 말린 사람은 나밖에 없을걸...ㅎㅎ 머리숱이 적어서 금방 말랐다. 앞으로 인천까지 가자면 또 하루쯤 걸릴텐데 도저히..도저히... 공항의 작은 우체국에서 기념으로 우표도 몇 장 샀다. 남은 돈 탈탈 털어서. 여행사측에서 준비한 김치 곁들인 한식 도시락으로 저녁을 먹고 9:30쯤에 탑승했다. 10:00 탑승완료. 그러나 너무 짙은 안개로 모든 비행기가 이륙 실패다. 시간은 11시, 12시, 새벽 1시로 흐르고. 기내식까지 먹고 너무 목이 말라 물 한 잔, 오렌지 쥬스 두 잔. 결국 비행기는 뜰 수 없단다. 다시 하루를 더 묵어야했다. 1:30! 비행기에서 내려 너윈이 급하게 알아본 호텔로 이동했다. 너윈의 형님과 친척들이 여행사와 연관되어 있어서 겨우 호텔을 구하 수 있었단다. 한 시간쯤 차를 달려 호텔 도착. 방 배정 받고 잠자리에 든 시간이 3시 30분. 이빨만 닦고 잠이 들었다. 추운 인도의 겨울 밤.. 여행 처음으로 잠을 설쳤다.
1.15.(목) 7:00 일어나서 샤워하고 밥먹고 8시에 호텔 출발. 공항에 도착하니 어제의 결항으로 가득한 인파들.. 오후 2시쯤에서야 인도를 뜰 수 있었다. 그동안 정들었던 고럽이 돌아서며 눈물을 보였다. 짠하다. 한국어를 전공하는 고럽. 열심히 공부해서 너윈처럼 꼭 유학 오기를... 어디가 올드델리이고 어디가 뉴델리인지 자욱한 안개 때문에 알 수가 없다. 3시 드넓은 인도 북부 어느 지역을 날고 있다. 흐릿한 도시, 점점이 보이는 구름 아래로 '피' 빛의 강물이 흐른다. 거의 3일을 제대로 못 먹고 못 자고 못 씻어도 그렇게 마냥 기다려도 뾰족해지지 않는다. 인도인에게 물든 것일까? 문명의 더러운 딱지를 조금 떼어낸 듯도 한데 이렇게 떠난다.
시차로 인해 하늘이 빨리 물든다. 인도로 갈 때는 오랫동안 노을을 즐길 수 있었는데.. 인도와 싱가폴의 시차는 2시간 정도. 그 차이 만큼 노을이 빨리 혹은 천천히 지는 것이다. 축지법처럼, 타임머신처럼 시간이 훌쩍훌쩍 뛰어넘어 미래로 가버리는 듯 하다. 아득한 저 곳으로 주홍빛 보라빛 색깔로 노을이 진다. 해가 빨리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다. 삶도 이럴까? 너무나 천천히 흐르는 시간을 원망하는 순간, 삶의 황혼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까?
아침에 신샘께서 손금을 봐주셨다. 한 말씀 "아직 형성되고 있는 단계! 자신감, 결단력이 필요하다. ... 그래도 된다"
뱅골만의 아름다운 해변 위를 날고 있다.
창밖이 어두워져온다. 저 아래 인간들이 사는 마을에 몇 개의 불빛만이 반짝일 뿐. 창밖이 완전히 어두워지면 그땐 오히려 창에 비추어진 내 모습만 보인다. 세상이 어두울수록 내면을 들여다볼 줄 알아야한다.그냥 관광은 싫었다. 늘 반성만하는 내 자신이 때론 애처롭지만 그래도 '나를 만나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인도에 가면 왠지 그래야할 것 같았다. 그런 여행을 기대했다. 편견, 선입견, 아집과 고집.. 내 안의 이런 것들,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무엇보다도 끝없이 이어지는 관념들... 그저 관념들.. 어찌하면 떨쳐낼 수 있을까? 언제쯤 숨기고 있는 나를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을까?
1.16.(금) 델리와 싱가폴의 시차는 2시간 30분 정도된다. 9시에 싱가폴에 도착해서 11시 탑승 수속을 끝내고 12시에 이륙했다. 아침 6시 20분 인천 도착.엉덩이 허리가 다 아프다. 여행이 거의 끝나간다. 점심때 쯤엔 집이겠군. 이제 인천에서 김해로 가는 비행기만 타면 되니까. 여기서 헤어지는 사람들도 있다.
인도를 떠나왔지만 인도는 항상 거기에 있고 또 내 마음 속에도 무뎌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았으면 한다.
오로지 배낭 하나 짊어지고 다시 올 수 있을까? 오줌 냄새, 변 냄새 넘치는 거리를 극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