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형 담임이 되지말자' 결심했는데 으~

10일 금요일, 수업이 두 시간 밖에 없기에 이런 저런 일을 하다가 아이들 명렬을 예쁜 종이에 인쇄하고 코팅했다. 도우미에게 자르도록 부탁해두었는데 옆자리 샘이 수업시간에 그걸 자르고 있기에 '압수'해 왔다면서 단정하게 잘라진 명렬 42장을 내게 건네주었다. 별로 아이들을 야단칠 생각은 들지않고 '아, 다 됐네. 이쁜 눔들 ^^' 이런 생각만 났다. ㅋ~~

종례시간, 토요휴무제 안내 및 자기주도용 학습지를 나눠준 뒤, 칠판에 '이벤트 2 - 반 친구들 얼굴, 이름 외우기'라고 썼다. 준비한 '쌈박한' 명렬표를 나눠주며 월요일까지 외워오라고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저절로 다 알아가겠지만 간혹 1년이 다 가도록 서로 이름 한 번 안 불러보고 지나치는 아이들이 있음을 알기에, 그리고 담임이라는 이유로 나만 열심히 아이들 얼굴, 이름을 외우는 것이 조금은 '억울' 해서 몇 해전부터 써먹는 수법이다. 이전에는 "반 친구들 이름 외우기 시험본다. 100점 받으면 상품있지" 이렇게 운을 떼었는데 이것마저 '시험'이라는 굴레를 씌우기가 아이들에게 미안해서 엊그제 이어 내친김에 '이벤트'라는 이름을 또 써먹는다.

"이벤트? 이번에는 뭐 주는데요?", "나는 벌써 다 외우는데..", "샘~ 저는 노랑색 주세요.", "저는 분홍색이요~" 명렬표를 나눠줄 때 아이들이 내게 던진 말이다. ㅋㅋ 첫번째 이벤트의 상품-뻥튀기의 여파가 아직 사라지기 전인지 아이들의 관심을 끄는 데는 일단 성공한 것 같다.

그나저나... 이름을 외웠다는 걸 어떻게 증명하지? 명렬에 빈칸 채우기? 이렇게 시험형식으로 보는 건 싫은데... 매번 먹는 것을 상으로 주는 것도 좀 그렇고.. 담임이 늘 뭔가 물질적인 보상을 해주는 것도 그리 교육적인 것 같지는 않고.... 뭐 좋은 방법 없을까? 고민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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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3-11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품 1. 김춘수 '꽃'을 예쁜 종이에 코팅해서 준다.
 

오늘, 교정에 매화가 피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꽃샘추위가 남아있긴 하겠으나 완연히 너그러워진 햇살이 느껴집니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아버님. 이 아이들을 만난 지 이제 막 일주일을 넘기고 있는 10반 담임교사 OOO라고 합니다. '올 해 우리 아이 담임은 누굴까? 어떤 교과를 담당하며 성품은 어떨까?' 등등 많이 궁금하셨지요? 인사가 조금 늦었습니다. 3월 한 달, 학교에서는 정말 정신없는 시간들이 흘러갑니다. 아이들도 새 학년, 새 교실, 새 친구들 그리고 새 담임에 적응해야하고 저 역시 그러하다는 이유로 늦은 소개에 대한 핑계를 대봅니다.


저는 올해로 교직경력 8년이 되며 OO고등학교에서는 4년째 OO 교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올해가 본교에서 근무하는 마지막 해라 아이들과의 관계에 욕심이 많이 난답니다. 아이들의 학교생활에 제가 좀더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고, 아이들 역시 제게 조금씩 마음을 열고 다가와주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담임으로서 아이들에게 보낸 저의 첫 편지는 그래서 '서로 믿기로 하자'는 당부를 적어 보냈답니다. '자신의 가치와 소중함을 믿고, 서로의 소중함과 진실도 믿자'고 했지요.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이런 '믿음'을 방해하는 상황도 가끔 발생하는 곳이 학교입니다.

"야간자율학습만 없다면 아이들과 다툴 일이 없겠다"

교사들 사이에 가끔 나오는 진심이 담긴 농담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제 경험으로 미루어보아도 집에 가려는 아이들을 '자율학습'이라는 이름으로 억지로 학교에 잡아두는 일이 가장 고역스러웠습니다. 나름대로의 꿈과 계획이 있어서 미술, 음악, 제빵, 미용 등 다양한 공부를 하고 싶어하거나 개인적으로 필요한 과목을 보충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을 '담임이라는 이유로 억지로 잡아둘 권리가 내게 있을까' 하는 고민이 교직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로 이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으니까요.


올해는 이런 고민을 부모님과 의논하려고 합니다. 만약 '야간자율학습'을 아이들뿐만 아니라 부모님께서도 원치 않으신다면 담임인 저와 직접 의논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상세한 내용을 적어보내주셔도 좋고, 전화를 주셔도 됩니다. 필요할 경우, 학교로 오시는 것도 환영하구요. 아이들의 선한 본성을 믿는 것과는 별개로 가끔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거나,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기에 '야자'라든가 또 다른 문제에 있어서 부모님과의 대화와 상담이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생활해야하는 학교에서의 아이들 모습은 부모님이 알고계시는 '가정에서의 내 아이'와 많이 다를 수도 있답니다.


아이들의 먹거리에 관한 부탁도 드리고 싶습니다. 아침 8시부터 밤 9시까지, 하루 13시간! 아이들의 하루는 '학습노동'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힘이 듭니다. 잘 먹어야하지요. '잘 먹는다'는 것이 단순히 많이 먹거나 자주 먹는 것을 뜻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밥'을 제대로 챙겨 먹어야하는데, 아침은 굶기 일쑤이고 점심 저녁을 모두 학교급식으로 먹는 것은 한창 자랄 나이의 아이들 건강에 그다지 좋지 않을 듯합니다. 아이들을 만난 첫 날, 저는 한 끼만이라도 도시락을 싸다니라고 부탁했습니다. 저희 학교 급식에 특별히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음식물은 대량으로 취급하는 급식 자체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급식보다는 집에서 지은 소박한 밥이 아이들의 건강에 이롭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김치나 멸치, 상추, 당근, 오이 같이 별로 손이 가지 않는 반찬이 훨씬 아이들이 위와 장을 편안하게 합니다. 피와 정신도 맑아지게 하구요. 저도 버스를 타고 다니지만 도시락을 싸다닌답니다.


어머니께서 일을 나가시어 챙겨주시기 힘이 드신다면 아이들이 직접 도시락을 쌀 수 있도록 가정에서의 지도와 도움을 부탁드립니다. 도저히 도시락 싸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간식만이라도 집에서 챙겨주십시오. '학습능력'은 육체적인 건강이 뒷받침 되어야함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입니다. 몸이 건강해야 정신 또한 맑아지고 긍정적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혹 아이들의 학비가 부담이 되시는 가정이라면 다음 주쯤에 나갈 '학비감면'에 관한 유인물을 눈여겨보시고 필요한 서류를 꼭 챙겨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고등학교 2학년이면 가정형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또 대충이라도 알아야 하는 나이인데도 무관심하여 부모님의 어려움을 모르는 아이도 가끔 있습니다. 혹시 이에 관해 궁금하신 것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십시오.


처음엔 한 무더기 안개꽃같이 비슷비슷해 보이던 아이들이 하나하나 다른 색깔, 다른 향기를 지닌 꽃송이들로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이맘때만 느낄 수 있는 소중한 행복이지요. 모든 아이들이 가치롭게 다가오는 지금의 첫 마음으로 끝까지 아이들을 바라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담임인 저와 부모님이 함께 아이들의 '꿈과 행복'에 대해 고민하고 의논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아이들을 알아가는 데 도움을 받고자 설문지를 함께 보내드립니다.

바쁘시더라도 꼭 챙겨서 보내주시길...



2006. 3. 9. 늦은 밤에

OO고등학교 2학년 O반 담임 OOO드림.


* OO고등학교 교무실 :

* 담임 연락처 :

* E-Mail 주소 :

* 학급 카페 : '다음' 카페의 'OOO OO OOO'


아이에 관한 일이나 학교에 관한 것 등 저와 의논하실 일이나 궁금하신 것이 있으시면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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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6-03-10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멋지시네요. ..!!!!

해콩 2006-03-10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부끄럽습니다. '한 달에 한 번은 학부모님께 편지를 쓰자'고 담임을 맡을 때마다 결심하지만 끝까지 해내지를 못해요.
이번 편지도 '짧게 써야지..' 했는데 쓰다보면 이렇게 길어진답니다. 글샘님께서 담임의 교육관을 말씀드리는 것도 좋겠다고 그러셨는데 쓰다가 그 중요한 걸 까먹었지 뭐예요.. ^^; 행간에 드러나겠지 하며 위안을..
오늘 아이들 편에 들려 보내려구요. ^^ 부모님들께서 꼼꼼 읽어보실까요?

여울 2006-03-11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꼼꼼히 읽어보실 겁니다.!!

해콩 2006-03-11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원, 늘 감사드려요~
사실 꼼꼼 안 읽어보시면 또 어떻습니까? 아이들에 대한 '담임 마음 세우기'의 한 방법인걸요. ^^
 

벌써 두가지 뇌물을 받았다.

어제, 월요일 이번 학년 들어 처음 야자가 있는 날. 지난 금요일 토요일 상담한 15명에 아픈 아이 둘을 보냈다. 지난 주 미처 상담을 못한 아이들이 와서 오늘 알아보고 학원을 끊을거라는 둥... 야자를 빼달라는 뜻을 비췄다. 나름대로 기준이 필요하겠다 싶어 내가 내뱉은 궁색한 답변은 "이번 달 야자 상담은 지난 주 금요일 토요일 끝났으니 다음 기회를... " --;

어제 삼랑진 할머니 댁에 가서 직접 따온 것이라며 ㅇㅈ가 싱싱한 딸기 한 상자를 주고 갔다. 학원이나 과외 심지어 독서실을 간다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학교에선 도저히 공부가 안된다'는 이유로 야자를 빼달라던 ㅇㅈ... 그렇다면 이건 일종의 뇌물?

오늘부터 당장 야자를 빼야하는데.. ㅇㅈ의 당당하고 명분있는 이유가 내겐 부담스러웠다. 물론 다른 아이들시선을 의식했기 때문. 결국 내 입장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치사한 방법을 썼다. 그리고 궁색하고 명분없는 담임 왈 "일단 이번주엔 한번 적응해봐라" 아 =333 언제쯤...

2학년 담임샘들 회식을 가려고 막 나서는데 부장샘께서 아저씨(총각인가?) 한 분과 함께 오셨다. 5층 독서실에 에어컨 설치 때문에 우리반 천정에 잠깐 볼일이 있으시단다. 야자시간인데? 그리고 20분쯤 후엔 아이들 저녁 먹어야하고.. 천정을 뜯는다면 먼지랑 석면가루는? 일하시는 분과 상의해서 저녁을 먹인 후 19시에 우리 반만 왕창 다 보내기로 했다. ㅋㅎㅎㅎ 아이들이나 나나 왕재수!!

 

오늘 아침, 막 교실에 올라가려고 하는데 ㅅㅈ이가 왔다. (보충 수업도 안 하고 제빵학원 다닌다.) 빵이 든 봉지를 하나 꺼내더니  "어제 제가 구운 거예요" 앗, 이것도 뇌물? 그러나 너무 감동적이 뇌물이라 쉽게 먹어버릴 수가 없다. 아끼고 아끼다 4시쯤에 다른 샘들 하나씩 드린 후 꼭꼭 씹어 먹었다. 이런 감동적인 뇌물! ㅠㅠ 보충, 야자 빠지는 건 아이들의 당연한 권리이거늘...  이 아이들의 마음은...

그나저나 아이들 야자 빠지는 문제로 이번주 안에 부모님들께 의논 전화를 드리기로 했는데 어쩌나... 에구.. 언제나처럼 정말 이런 일로는 통화하기 싫다.

이렁저렁 하는 사이 매화가 피어버릴까..걱정이 되어 오늘 종례 시간엔 '매화꽃 처음피는 날 알아맞추기'로 3월 깜짝 이벤트를 시작했다. ㅊㅇㅇ 샘께 여쭤봤더니 이번 주 안에는 안 필거라고 하셨다. 적당한 시점이다. 뚝딱뚝딱 유인물을 만들어 8일에서 17일사이 언제 매화꽃이 필지 맞춰보라고 했다. 분홍색 종이에 아이들 이름과 날짜를 써넣고 ㅇ표 하셈~ 당근, 당근으로 유혹하고!

내 의도대로 내일 아침 등교할 때 교장실 앞 화단에 맺힌 매화봉오리에 아이들이 가벼운 눈길이라도 한번 보내야할텐데...  '그날'을 기다리며 아침마다 설레며 매화를 봐주면 더 좋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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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6-03-08 0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후~ 귀여운 이벤트군요. *^^*

해콩 2006-03-08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가요? ^^; 결과 보고도 할께요

느티나무 2006-03-08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있는데요,ㅎ 아이들이 생글거릴 모습이 그려져요. 그럼 전 매화가 피면 아이들과 꽃놀이를 갈까나? ㅋ 어제 학급운영모임 했어요 ^^;;

해콩 2006-03-08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반 수업이 3교시여서 아이들에게 "오늘 아침에 매화 본 사람?" 했더니 1명. 이것도 성공이죠? ㅋ 종례시간에도 물어보려구요. 매화.. 올해는 천천히 피었으면 좋겠어요.

해콩 2006-03-09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에 유심히 매화꽃을 올려다봤다. 흠.. 저건 다 핀 건가, 아직 덜 핀건가? 갸우뚱..&.&
모의고사라 1교시 감독을 들어갔다 오니 꽃에 관한 전문가이신 ㅊㅇㅇ샘으로부터 이런 쪽지가 날아와있다.
[ 매화의 개화시기 예상이 틀렸답니다. 오늘 아침에 보니까 4-5송이가 활짝 피어있습니다. 약간 높이 있어서 그 향기를 맡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핀 것은 맞습니다. 바쁜 하루이지만 점심시간에 교내를 약간만 걸어도 하루의 생활이 윤택해질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

어제 집에 가는 길.. 시장을 지나치면서 이벤트 상품을 뭘할까? 계속 생각했는데.. 할머니들이 놓고 파시는 '쑥'이 쑤욱~ 눈어 들어왔다. 이걸로 할까? 아니면 같이 나눠먹기 좋은 뻥튀기로할까? (다녀가시는 님들... 의견 올려주셈)

느티나무 2006-03-10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 너무 늦어버렸네ㅜㅜ 그냥 무엇이든 좋지요, 마음이 중요하다지요? ㅋ

해콩 2006-03-10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는 유난히 오락가락하게 되네요. 사소한 것을 결정하는 데에도 생각만 많아지고.. 뻥튀가 사두었어요.ㅋㅋ 아까 그 꽃들은 정말 너무 오버스럽고 간지러워서리...ㅋ

해콩 2006-03-10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춘 15ㅂㅅㅇ, 16ㅂㅅㅈ, 20ㅅㅁㄱ 세 명의 아이들에게 뻥튀기 한 봉지씩을 들려주었습니다. "느그끼리 묵을끼가 아이들하고 나눠묵을끼가?" "당근 나눠먹지요." , "느그끼리 나눠 묵을끼가 담임샘도 좀 줄끼가?" 부시럭거리면서 바로 봉지를 풀더군요..ㅋㅋ "아그들한테 막 자랑하면서 묵어야된데이~"
 

둘째날 03. 03. 금

요즘.. 학년 초라 학교가 정신없이 팽팽 돌아간다. 특히 담임들은 열심히 직원회의를 듣지 않으면 놓치는 일이 쌓이기 십상.  1교시 수업을 마치고 ㅁㅈㅅ샘을 찾아가서 내 수업과 바꿔서 들어가자고 했다. 준비해둔 아이들 소개서-선생님에게만 보여주는 나-를 들고 교실에 들어서니 종이 울린지 꽤 지난 것 같은데 녀석들은 양껏 즐겁다. 교실문을 열고 그저 말없이 입구에 서 있었다. 아이들이 눈치를 보며 자리에 주섬주섬 앉는다. 소개서 양식을 나눠주고 하나하나 설명하며 좀 진지하고 성실하게 작성하도록 분위기를 조장(?)했다. 각 번호 1번들 일어나서 걷고... 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이들이 다시 떠들기 시작한다. 어라? 점점... 요것들봐라... 하는 감정이 스치는 순간, 아! 올해는 그냥 기다리기로 했지? 입학식이 있어서 빨리 운동장으로 아이들을 내보내야 했지만 그저 무표정하게 아이들을 응시했다. 춤추는 한무리의 아이들과도 눈 맞추고, 서서 재잘거리는 아이들, 돌아다니는 아이, 벽거울 보느라 정신없는 아이들을 그저 바라보았다. 다시 아이들이 조용히 서있는 내 쪽을 바라보며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다시 웃으면 걷어온 소개서를 받고 다 못한 사람은 다쓰면 내라고 하고.. "입학식 해야지? 나가자~ 번호순대로 줄 서는 것 알지?"

말없이 서있는 나를 보고 아이들은 떠드는 걸 멈추고 자리에 앉을 줄 안다. 기특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한편 기분이 묘하다. 아이들을 바라볼 때 내 표정은 어떠했을까? 감정이 일었으니 딱딱하고 무서운 표정이었겠지? 그럼 아이들은 내 '눈치'를 보며 자리에 앉은걸까? '눈치'보는 아이라... 그럼, 이거.. 문제 있는 거 아냐? 매사에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셋째날 03.04 토

2교시 CA시간에 국어과 인사위원을 뽑고 교실로 올라갔다. 학부모 운영위원 선출에 관한 가정통신문을 들고. 학교운영위원회와 그 속에서 학부모 위원이 해주어야할 역할의 중요성을 힘주어 설명하고 유인물을 나눠주었다. 부모님께 꼭~~ 보여드려야하며 혹 관심있는 부모님은 샘한테 전화해달라고 전해줘~

3개씩 마련하도록 한 아이들의 사물함 열쇠를 걷었다. 장난삼아 정해준 나의 조수들이 너무나 일을 잘 도와주었다. 고마운 맘이 잔뜩 인다. 재작년 담임할 땐 그게 문제였다. 00여고 있을 때의 버릇이 남아있어서 그랬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다 챙겼다. 그러니 스스로 너무 고되고 지쳐서 나중엔 아이들이 미워졌다. 아이들의 도움을 받으니 참 좋다. 올해는 아이들이 뭔가 원할 때까지 기다릴 거다. 물론 분위기는 만들어가면서..

4교시엔 2학년 담임샘들 회의가 있었다. 이런 저런 의논해야할 일이 많아서.. 예쁜 종이에 복사해둔 아이들 소개서 "얘들아, 나는 말이야~"를 작성해서 자기 사물함에 붙이도록 해놓고 교실을 나왔다.

담임회의... 시간이 없다고 그나마 형식적인 절차인 아이들 신청서도 받지 않고 당장 월요일부터 시작한다는 보충수업이 좀 걸렸지만 EBS 시청,  9일 모의고사 때 감독교사 배정을 어떻게 할건지.. 진지한 토론이 이어져서 흐믓했다. 재작년 담임할 때는 상상도 못할 민주적인 분위기다. ^^

교실에 들어서는데.. 아이들이 소개서를 만든다고 분주하다. 월요일까지 해오라고 이야기하고 청소! 빨리해야 종례하고 집에 간다~

어제 오늘 일과후에 야자를 못한다는 아이들을 가볍게 상담했다. 학원, 과외의 이유가 대부분이었고 독서실에서 공부하겠다는 아이, 디스크 땜에 치료받아야한다는 아이를 모두 빼주니 15명이다. 솔직히 더 늘어나면 부담스럽다. 자기검열이 또 나를 괴롭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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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 예쁜 색깔의 종이에 편지를 인쇄하여 복사하고 하나하나 접으면서 좀 망설였다. 편지 내용이 좀 어려운 것 같기도 하고, 당장의 공부를 외면할 수 없을 아이들에게 구름잡는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는 것 같아서. 그래도 이왕 쓴 것이고 또 나의 솔직한 맘이었기에 종례시간 들어가서 아주 조심스럽고 부끄러워하며 편지를 꺼내 들었다. 내 마음 한 자락을 꺼내 보이는 데는 늘 이렇게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데...

편지를 꺼내든 그 순간, 몇몇 아이들 눈빛이 '반짝'했다. '아!'하는 짧은 탄성을 들은 듯도 하다. 그런 눈빛과 반응에 한없이 무너져내리는 내 마음~

사실 아이들과의 첫 만남이 그렇게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운동장 조례를 하기 전, 교실로 올라가 아이들을 몰아내면서 "샘~ 외투 입어도 돼요?"하는 질문에 "안돼!!"라고 못박아 말했다. 오늘 무지 추웠는데... 나는 내복에 두꺼운 외투까지 껴입고 아이들에게 그렇게 말하다니... 내 속에 녹아있는 비뚤어진 권위의식이 여지없이 드러난 거라는 생각이 든다. 늘 말로는 '아이들 입장', '아이들 인권'하면서...

그리고 담임 시간. 이런 저런 일들에 쫓겨 허둥대면서 내 이름도 말해주지 않았다. 일과를 마치고 종례를 하면서 우리반 카페에 가입하라는 숙제를 내줄 때, 카페이름이 '강낭콩'인 이유를 퀴즈로 내면서 멀뚱멀뚱 쳐다보는 아이들 반응을 보고서야 알았다. 에구.. 나도 참 어지간하다.

결국 이런 저런 이유로 미안하고 또 예뻐서 사물함 이름표를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래 저래 계획대로 못한 일도 많고, 아직 아이들 얼굴은 커녕 이름도 못 외우지만... 열심히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드는 하루. 천천히 한걸음 한걸음 가야겠다. 욕심부리지 말고! 조급해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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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3-03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전에 했던 결심 몇 가지

1. 일단 나에게 너그러워지자.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노력하되, 어쩔 수 없는 부분은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나의 진심만은 상대에게 전달될 것임을 믿자. 그게 언제가 되더라도..
2. 가르치려 하지 말고 함께 즐거워하자.
(아이들이나 나, 둘 중 어느 하나라도 즐겁지 않다면 바람직한 활동은 아니다.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있더라도 아이들 스스로 원하고 방법을 찾을 때까지 유보하고 기다리자.)
3. 단점이나 잘못보다는 칭찬해줄 만한 일에 늘 초점을 맞추자.
4. 상대방이 들어올 만한 허점, 공백, 여유를 가지자
5. 이전의 일로 현재 상황에 선입견을 가지지 말자.
6. 평온한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