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 자서전
체 게바라 지음, 박지민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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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체 게바라 평전을 읽고난 후 그의 인간미에 흠뻑 빠져 버렸다.

멋진 사람, 완벽에 가깝고자 노력했던 사람.

그런 사람 체 게바라의 내면은 어떠하였을까...

평전에도 그런면이 많이 드러났지만 제 3자의 시각이 짙었던게 사실이였다. 그래서 평전과 자서전은 한 인물을 이해하는데 실과 바늘처럼 늘 따라다니는 것 같다.

평전을 읽었으니 자서전을 읽어 보아야할터.

평전을 대했을때의 무지함보다는 설레임으로 책을 열었다.

 

그의 인생을 바꾼 남아메리카 여행의 일기부터 혁명의 순간까지 그가 남긴 기록이 들어있는 책이였다.

제 3자의 의견은 거의 없고 오로지 체 게바라의 말과 세계가 펼쳐지기에 그에 대해서 완전 무지하다면 조금은 벅찰수도 있다.

그러나 무지하더라도 그냥 인간 체 게바라에 따라가다 보면 그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글의 순서는 체 게바라의 삶의 변화를 중점으로 실렸지만 역사적 사건이나 그의 일대기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 없는게 사실이다.

체 게바라가 자서전을 목적으로 쓴 글이라기 보단 흘러가는 삶처럼 써 내려간 글이기에 체 게바라의 모든 것을 알고자가 아닌 그의 내면을 여행한다고 생각하며 될 것 같다.

 

그런 그의 내면의 여행은 환희와 즐거움만이 아닌 끊임없이 노력하며 열정에 휩싸인 그를 보게 되며 어려운 길로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23살때의 그의 삶을 바꾼 여행은 호기심과 모험이 그득한 내면이였다. 그가 혁명에 가담하고 성공시키면서 그의 내면은 광활해진다. 아메리카가 그의 고향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그가 쿠바의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끈 후 거기에서 안주하는 것이 아닌 볼리비아로 떠나 혁명을 하다 숨을 거둔 것만 봐도 알수 있다.

그의 신념은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었다.

그런 불꽃 같은 삶을 살다 간 흔적은 그의 글 구석 구석에서 엿볼 수 있었다. 불나방이 불빛 속으로 뛰어 드는 것처럼 그에게 쉼은 없다.

오히려 현실에 안주해버린 내가 이상할 정도다.

 

그의 삶은 죽음으로 정지해 버린 것이 아니라 지금도 활활 불타오르는 느낌.

그의 기록의 시작과 끝은 있지만 그의 삶은 끝이 없는 것 같다.

내가 생소하게 마주한 그의 글과 사진은 이런 생각에 확신을 더해 주고 있었다. 그는 여지껏 살아있는 사람 같고 그의 죽음이 믿겨지지 않는다는 바보 같은 생각이 들 정도다.

삶에 대한 그의 열정이 내 마음에도 뚜렷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런 뚜렷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으며 열정을 가질 수 있었을까. 또한 여러 분야의 광범위한 관심과 지식을 어떻게 품을 수 있었을까.

그는 너무나 바쁜, 삶의 최정점을 늘 걷고 있었는데...

지칠줄 모르는 독서광이라는 별명에서처럼 그는 삶에서 지치는 법이 없었다. 그런 힘의 원동력이 그의 내면에 늘 품고 있었다.

 

그가 여행하며 품었던 감성, 거대한 자연을 늘 기억하며 사람들에게 그러한 위대함을 전해주고 했다. 그건 혁명이였다.

그에게 혁명을 빼면 남는 것이 없다.

그는 늘 혁명을 갈구했고 그 안에서의 존재 여부를 가졌었다.

그의 글 한구절, 그의 사진 한장만 보아도 그의 열의가 묻어나는데 그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다는 사실은 믿기 어렵다.

그러나 그가 뿌려놓은 많은 것들은 지금껏 숨쉬고 있다.

 

정치적인 면만이 아니더라도 사람 체 게바라는 그런 매력을 느끼기에 충분한 사람이였다.

그런 매력과 열의는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라 늘 자신을 최고의 절정에 던지며 살았다.

너무나 강렬했기에 그 열의는 지금도 식지 않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한 덩어리의 불을 던져 주는 것이리라.

그런 체 게바라의 흔적에서 자신의 존재를 가늠해 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그의 죽음의 안타까움이 아닌 나의 삶에 그가 자연스레 들어올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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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미스 다이어리 - 전2권 세트
최수영 외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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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서 TV를 보기란 여간 녹록치 않다.

TV앞에 앉아 넋 놓고 있는걸 형부가 제일 싫어 하시는 까닭이다.

TV는 고딩때 이미 띄었지만 언뜻 본 '올미다'라는 시트콤은 공감가는 내용이 많았다. 그래서 자주 보고 싶었지만 채널권을 유지하기란 여간 힘든일이 아닐터 형부를 매수(?)하기로 했다.

잔소리 해대는 형부께 '나도 이런거 안 좋아하는데 이건 정말 재미 있다고 한번만 보시라고'했다.

형부도 투덜 대시더니 언니와 나의 공략에 못이겨 한두어번 보시더니 며칠 후에는 온 식구가 낄낄대며 볼 수 있었다.(TV 보기 힘들다)

 

TV를 안 좋아하던 내게 정말 '올미다'는 독특하고 너무나 재미난 시트콤이였다.

끝났을때는 정말 아쉬움이 들었고 그 후론 시트콤에 마음을 열어본 적이(?)없었는데 그런 올미다를 책으로 만났다.

TV로 봐서 재미 없을 거라고 내가 느꼈던 재미는 영상의 재미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도 내가 재미나게 본 시트콤이기에 읽어보자 하는 심정으로 읽었던 것인데 TV에서 보던 재미를 그대로 만나 버렸다.

책으로만 만났음 나의 상상이 부족해서 재미를 많이 못 느꼈을 터인데 TV로 보았던 캐릭터들이 그대로 살아났고 심지어는 표정, 효과음까지 머릿속에 그려졌다.(특히 그 뻐꾹소리! ^^)

그런 기억 덕분에 낄낄대며, 환상에 빠져 2권의 책을 정말 순식간에 읽어 버렸다. TV에서 본 시트콤도 있었고 내가 놓친 내용도 있었지만 그건 문제될 것이 없었다.

내가 가진 기억으로 상상하면 되었으니까.

 

TV와 다른점이 있다면 이 책에서는 여자 주인공(최미자,오윤아,김지영), 남자 주인공(김정민,지현우,장동직) 위주로 얘기가 이어 진다는 것이다.

'연애일기'라는 타이틀이 붙었으니 그럴만 하다는 이해를 접고 들어가더라도 미자네 가족이 안나온다는 서운함을 느낄 틈도 없이 그들의 연애는 재미있었다.

시트콤은 처음부터 본 것이 아니라 중간부터 봤는데 책에서는 그들의 만남부터 사랑의 전개까지 나와 있어서 앞뒤 정황을 맞춰 주었다. 김정민과 오윤아의 사랑의 결실을 맺지 못하고 책이 끝나버려 그것은 못봐서 조금은 아쉬웠지만 그래도 그들의 연애는 솔직하고 때론 계산적이면서도 약아 있었지만 그랬기에 재미났다.

 

우리들 안에 존재하는 마음들이기에 공감이 가서 그랬을 테다.

그들의 삶에는 연애 밖에 없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연애를 중점으로 씌여졌기에 그려려니 했다.

어느 누구든 연애를 할 것이고 사랑을 할터이니 한번쯤 이런 사람의 양상이 있구나 하며 편안하게 보았음한다.

TV를 전혀 보지 않고 책으로 '올미다'를 만난다면 조금은 황당한 면이 있을 터이나 어느새 독특한 캐릭터 속으로 빠져들거라 생각한다.

 

현실을 보며 나를 탓할 것이고 로멘스를 꿈꾸며 나도 저렇게 노처녀가 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일기도 하지만 재미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연애를 보건데 사랑안에는 늘 진실이 깔려 있었다.

그녀, 그들이 방황을 하거나 힘들어할때 그 마음 밑바닥의 진실을 꺼내지 못했음으로 그것을 꺼냈을때 사랑이 어떻게 달라지며 어떻게 삶이 달라지는지 많은 면들은 보여짐이 뒷받침 하고 있었다.

한편의 꿈처럼 지나가버린 그들의 사랑이지만(너무 빨리 읽어서...) 삶의 냄새가 풍겨 나오는 것만은 분명했다.

이 늦가을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만나보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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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드런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6
이사카 코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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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일본 문학을 만나 봤지만 칠드런은 독특하면서(일본문학의 공통점이다. 독특함) 따뜻한 소설이였다.

음울한 현실을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지만 그 안에서 가장 큰 느낌은 따뜻함이였다. 독자들에게 따듯함을 주기란 그렇게 쉬운일이 아니지만 독특함 속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은 여운이 오래 남았다.

자칫 가벼움으로 넘겨버릴 수 있는 소설 속에는 우리가 지나칠 수 없는 사회 문제들이 녹아 있어 씁쓸한 여운도 한 몫했던 것 같다.

 

강도의 인질로 잡혀 은행에서 첫 대면을 한 진나이와 나가세의 만남은 유쾌하면서 진지했다. 유쾌함은 진나이일 것이고 진지함은 나가세일 터이다. 소설내내 진지함과 따스함의 여운을 남겨준 주역은 나가세와 맹인견 베스 때문이였을 것이다.

나가세는 맹인이지만 그 특유의 진지함으로 진나이와 친구가 되면서 독특한 어울림을 만들어간다.

그들의 만남은 어디서든 편안하고 거짓이 없었다.

나가세의 이야기가 이어질때나 진나이의 이야기가 이어질때나 무토의 이야기가 이어질때 그들의 등장은 전혀 어색함이 없었고 특별한 계기가 없음에도 내겐 시간이 흐를수록 끈끈해진 느낌이 전해졌다.

그래서인지 다섯편의 단편은 묘한 연결성으로 이끌어 주었고 등장 인물들 또한 그런 미묘함으로 이끌어 나갔다.

장편같은 단편이였고 단편같은 장편이였지만 형식은 중요치 않았다. 어디서든 그들은 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른이였지만 아직 자아가 완성되지 않은 아이 같기도 한 모습으로 인해 진나이의 독특한 사고관을 경험하게 된다.

가정 재판소의 조사원이라는 독특한 직업 때문이기도 하지만 진나이는 거기에서 만난 가정에 문제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점점 커나가는 것이다.

그는 어른이기에 무엇이 더 커야할까 의문이 들테고 또한 평범한 청년이 아닌 독특한 사고를 가지며 살아가는 청년이기에 나의 표현이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자라고 있었다.

마음이 그리고 삶에 대한 애정이.

그랬기에 그는 조사관이라는 극을 달릴 수 있는 직업속에서도 나름대로의 해결을 해나가며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진지하다고 볼수 없는 그였지만 그러한 진지함이 어색하고 그답지 않아 보이는 때가 더 많았지만 그런 면모가 있었기에 재미로만 이 소설을 읽을 수 없다. 진나이가 유독 심하지만 나가세와 그 주변인들은 자신의 모습속에서 진나이의 독특함을 닮아가기도 해 그들로 인한 따스함은 더 짙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진나이는 어느 누구와 닮아갈 수 없는 인물이지만 엉뚱하고 요란해서 그와 같이 있는게 당황스러울때가 많지만 주변 사람들은 서서히 진나이에게 동화되어 간다.

나가세의 특유의 차분함과 명민함은 진나이를 잠식시켜 주고 그 둘의 어울림은 주변인들까지 유쾌하게 만든다. 진나이의 조사관이라는 직업에서 퍼져 나오는 사회문제와 나가세의 닫힌 눈은 상반된 상황이면서도 동급이다.

진나이는 세상을 볼 수 있음에도 눈을 감아야 할 때가 많고 나가세는 세상을 볼 수 없음에도 훤히 볼 수 있는 심연이 그러한 것이리라.

그 심연은 소설속의 많은 사람들에게 흐르고 있어 그것은 자연스레 조화를 이루어 갔는지도 모른다.

삶의 어두운 부분이든 현실적인 부분이든 기적을 만들어가며 혹은 믿으며 또 다른 모습을 만들어 갔을 터이다.

 

아이들 같은 어른인 그들이여서 멋진 어른이였다고 못 박을 수는 없지만 긍정적인 면모를 보여 주었던 것은 사실이다.

어딘가에서 역한 사회 찌꺼기를 만들고 있는 반면 이들은 그런 것을 하나하나 깨부수고 있어서 균형을 맞춰 주었던게 아닐까...

나의 몸과 마음이 찌꺼기를 향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들이 그토록 애써도 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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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은 산사태처럼 온다
박관용 지음 / KD Books(케이디북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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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한의 핵실험으로 인해 세계가 들끓었었다.

나 또한 '북한이 왜 저럴까.' 그런 생각만 했었고 '설마 남한을 향해 쏘겠어?' 라며 안일함으로 대충 넘어갔던게 사실이다.

따져보면 가장 가까운 남한에 살고 있으면서도 그러한 사태를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게 어쩔땐 낯설다라는 느낌이 든다.

순간 긴장했다가도 금새 잊어먹기 일쑤다.

이러한 태도가 비단 나뿐만이 아닌 많은 국민들 그리고 지식층과 정치인들까지 퍼져있어 저자는 안타까움과 한심함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목이 터져라 외친다. 이대로는 안된다고.

무엇이 안된다는 것일까. 우리를 떠나서라도 나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먼저 북한을 파악을 해봐야 한다.

늘 북한이 터트리는 이슈에 뒷북을 치는 우리가 아닌 북한이 어떻게 흘러가며 우리는 어떻게 대책을 세워야 할까.

저자는 북한이 곧 붕괴될거라고 말하고 있다.

통일이 산사태처럼 오듯이 북한은 이미 무너졌고 최악의 상태에서 버티고 있다고 말한다. 김정일 주석이 사망할 당시 북한이 무너질거라는 무수한 예언에도 불구하고 더 기고만장해진 북한을 향해 무턱대고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북은 지금 핵실험에 초안이 되어 난리인데?

그러나 그 핵실험 부터가 문제이고 최악의 발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뿐 북한의 경제와 사상은 상당 부분 폭발하고 있고 겨우 겨우 버티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 문제는 굳이 논하지 않더라도 탈북자들과 식량난으로 인한 굶주림을 진작부터 보아왔기에 낯설지가 않을 것이다.

정치적인 목적은 다 제쳐두고라도 가장 큰 잘못은 어린아이라도 다 알 수 있듯이 드러난다.

자기의 백성들은 제쳐둔채 오로지 핵에만 매달려 있는 것이다.

그러한 내부 문제가 오래전부터 불거졌음에도 과연 북한은 어떠한 자금으로 핵을 만들려고 하고 어떠한 정책으로 북한의 국민들을 붙잡을 수 있었을까.

 

저자는 계속 비난한다. 6.15 공동성명을 전제로 5억달라라는 거금을 건네주며 햇볕정책을 논하였지만 결국 북한은 지하에서 핵실험을 하고 있었다고.

그리고 폐쇠된 정책으로 북한 주민들에게 자유와 인권은 생소함으로 만들어서 최대한 가두어 놓았다고.

또한 대한민국은 '우리끼리'라는 말을 잘못 해석하여 북한의 의도대로 가고 있고 상당부분 그렇게 움직여 주었다고 말한다.

저자의 말처럼 북한이 해달라는 대로 하면 분단이라는 벽은 무너뜨리고 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남한과 북한의 힘만으로 통일을 이룩하기가 쉽자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오히려 통일에 대한 환상만 그득할뿐 많은 사람들이 통일을 두려워 하고 반대하는 사람들까지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처럼 통일은 무의식 중에 뿌리 박혀 있고 현실은 인지하고 있지 못한 탓이리라.

 

여러가지의 통일 시나리오와 가설들을 내놓지만 현실은 끔찍스럽고 충격적이다.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는 한민족으로 뭉쳐 통일을 이룬후 세계 강대국이 된다는 것은 가망성이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는 것이다. 가장 가깝지만 가장 먼 나라 북한이고 한반도는 각자의 길을 너무 많이 가버린 후다.

 

통일의 가장 현실적인 시나리오에는 미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이 빠지지 않는다. 미국을 옹호하고 있다는 느낌도 많이 들었고 북한의 한없는 비난과(나의 감상적인 느낌이라고 해도..) 대한민국의 한심함이 자주 드러나 불쾌했던게 사실이다.

그만큼 무지했다고 치더라도 도대체 무엇을 심어주자는 것인지 인지하지 못할때도 있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북한과 세계 정세, 대한민국의 대책등이 낯설기만 했을 뿐이다.

그러나 인정하기 싫어도 저자가 하는 말은 상당부분 현실을 직시하고 옳은 발언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구역질이 올라오는 거부감 속에서도 'no'라고 반박할 수 없음이 바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동안 통일에 대해서 북한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고 멀게만 느끼고 무한한 감상에만 빠져 있었던게 사실이였다.

'어떻게든 되겠지' ,'우리는 한민족이니까' 라는 미련함 속에서 북한은 코웃음 친다. 언제든지 이익을 위해서라면 남한을 이용할 수 있다고 그리고 이미 그렇게 해왔다고.

다시 미련한 감상에 빠지고 싶다.

씁쓸한 현실을 알아버렸으니 그것을 피하고 싶고 한민족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워 우리는 하나라고 구시대적 산물을 꺼내어 보고 싶을 정도다.

현실은 급박하다. 그리고 우리는 준비되어 있지 않다.

북한의 고립을 우리가 닮아가고 있고 그렇다고 북한의 신뢰를 받는 것도 아닌 세계의 왕따가 되어버릴 수 있는 상황이다.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나 하나 변화한다고 달라질 수 있을까? 라는 잔물결에도 미치지 못한 희망이 솟구치지만 변화만이 살길이다.

우리의 인식부터 뜯어 나가고 하나 하나의 대안을 구축해 나가면 국민 하나 하나에 그 마음이 전달될때 통일은 급격하지만 혼란을 최소한 줄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북한을 파악하고 대한민국을 비난하고 미국을 옹호해서 무엇할 것인가. 파악을 했음 대책을 세우고 비난을 했음 고치고 옹호가 아닌 맞설것은 맞서야 할 것이다.

그 모든것이 대화로 평화롭게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많은 시간과 인내와 물질이 필요할 것이다.

산사태로 인한 매몰이 아닌 방어를 해나가려면 손을 걷어부쳐야 할 것이다. 붕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것이 무엇인지 아직도 알려주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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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피터팬
제랄딘 맥코린 지음, 조동섭 옮김 / 김영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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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피터팬을 모르는 사람을 없을 것이다.

무려 100년동안 사랑을 받았다고 하니 이런 표현조차도 무의미할 정도일 것이다.

나 또한 피터팬의 이야기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이나 동화책을 통한 약소한  앎이였기에 후속편 '돌아온 피터팬'을 만났을때는 조금은 걱정스러웠다.

피터팬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하는데 후속편을 읽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지만 초반의 이끔에 금새 빠져들었다.

그러나 나의 걱정은 서서히 드러났다.

나만의 문제일수도 있겠지만 후속편의 우려했던 의문들도 드러났기 때문이였다.

 

어쨌거나 피터팬을 전혀 모르는게 아니기에 읽기엔 무리가 없을거라며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내가 우려했던 전작의 충실은 나름대로의 상상력으로 채우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해설자도 말했듯이 전작을 읽어보지 않았기에 완벽한 피터팬의 이해와 재미 만끽에는 무리가 있지 않았나 싶다.

책을 영화로 만드는 작업은 책속의 모든것을 속속들이 들여다 볼 수 없듯이 내가 알고 있는 피터팬에 대한 정보는 소소한 것이였다는게 바로 드러났다.

네버랜드로의 출발 그리고 후크와 그의 친구들과 팅커벨의 존재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다시 그 전의 세계로 돌아간 아이들이(이젠 어른이 되어버린..) 네버랜드로 다시 떠난다.

거기서 부터 어색함이 비져 나온다.

 

꿈속에서 늘 악몽을 꾸며 네버랜드에 문제가 생긴것을 알아차린 다커버린 어른들은 자신의 아이들의 옷을 입고 요정을 찾아서 네버랜드로 인도하는데에 성공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러나 네버랜드는 그 전의 네버랜드가 아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피터팬도 그 전의 피터팬이 아니다.

그러한 의문은 아이들과 피터팬의 재회에서 부터 다시 시작된다.

떨어져 지낸 시간들이 오래이긴 해도 절대 잊을 수 없는 기억일 텐데도 만남은 시큰둥 하다.

아니 피터팬은 기억조차 못하는 것 같다.

그때부터 우후죽순격으로 튀어나오는 매끄럽지 않은 언어들 그리고 이야기의 흐름이 참으로 당황스러웠다.

초반의 시작에서 나는 아직 이야기의 감을 잡지 못하는 것 같은대도 페이지 수는 절반을 향해 있었고, 단락이 나뉘어 질때마다의 연결성 속으로 빠져들 수가 없었다.

시큰둥한 만남인건 이해한다 치더라도 피터팬은 자라지 않은 어린이라는 순수성이 심하게 떨어졌다.

전작의 피터팬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지만 내 기억속의 피터팬은 리더로서의 자질이 충분하면서도 의리가 있는 아이로 남아있다. 그러나 다시 만난 피터팬은 날카롭고 제멋대로이다.

그리고 중간 부분이 넘도록까지 아이들의 꿈속에 나타난 네버랜드의 위기를 파악할 수 없었는데 피터팬은 후크의 보물을 찾아서 무작정 떠난다. 왜 찾아가는지 그게 아이들과 네버랜드를 위한 것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후반부에서의 의문의 풀림은 조금씩 나의 식상함과 낯섬을 이해시켜 주었다. 아이들의 모험에 동참한 서커스 단장 '라벨로'가 후크선장이였던 것이다.

악어의 뱃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어째서 후크 선장을 못 알이봤는지 또한 피터팬이 왜 그렇게 변해버렸는지 모든것이 풀렸다. 그때부터 '돌아온 피터팬'에 빠질 수 있었다.

겉돌던 읽기가 조금씩 집중이 되었고 단순히 내가 가지었던 책속의 의문들을 진지하게 진단해 볼 수 있었다.

후크 선장을 닮아가는 피터팬, 그리고 어른의 삶을 잊어버렸다고 해도 몇몇 아이들은 자란채로 네버랜드에 존재하고 그 어른들에게 맞지 않는 옷처럼 어색한 네버랜드.

그러한 문제들을 단순히 네버랜드의 문제만으로 돌려버릴 수 있었을까?

 

저자는 아이들만이 아닌 어른들의 읽힘을 고려하고 어른들의 언어, 생각 그리고 어른들의 문제까지도 중간 중간 넣었다고 했다.

전작에 충실했다던 저자는 단순히 전작의 묻어남이 아닌 교훈을 담고자 했다.

자라지 않는 피터팬이 후크 선장을 닮아갔던 것처럼 네버랜드로 돌아오긴 했지만 아이들이 그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다는 것은 힘들 것이다. 어느 정도의 성격은 남아 있겠지만 그전의 네버랜드를 기대했던 내 생각 자체에도 무리가 있을 터이다.

단순히 아이들의 환상속으로의 모험이 아닌 이젠 어른의 세계를 경험한 아이들이 있기에 어른들의 세계를 나름 이해하면서도 여전히 비난하는 모습들이 있다.

그 모습속에 나의 모습은 과연 어떠하였는지 책을 덮으면서 생각하게 된다. 또한 다시 어른으로 돌아간 아이를 경험하고 온 그들은 어떻게 네버랜드를 기억할 것인가.

 

내가 읽기에도 가벼움, 즐거움으로만 읽을 수 없었다.

아이들은 과연 재미나게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면서도 전작도 그러한 패턴이였다기에 전작을 독파하지 못한 아쉬움이 든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피터팬은, 책을 알린 영화나 동화책 속의 피터팬의 부분이였을 거라는 대에 동의하게 되었다.

후속편을 읽으면서 그러한 생각이 굳혀졌지만 피터팬에 대한 동경, 네버랜드에 대한 변함없는 불변은 그래도 내 마음속에서 변함이 없지 않았나 싶다.

공식적인 후속편을 읽었음에도 피터팬의 이미지를 깨기가 쉽지 않을 것같다.

피터팬은 영원히 그 자리에 자라지 않는 아이로 남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무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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