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열정 (무선)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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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같은 것을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사치가 아닐까. (74쪽)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은 픽션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아니 에르노, 그녀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사실이 아니면 글을 쓰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소설 <단순한 열정>은 ‘아니 에르노’ 그녀 자신의 경험담이다. 이 작품은 불륜의 사랑 이야기이며, 한 남자를 기다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한 여자의 ‘열정’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위의 저 구절은 <단순한 열정>의 마지막 문장으로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사치’라고 말하는 아니 에르노의 정의에 나는 깊이 공감했다. 어떻게 보면 열정을 퍼부을 수 있는 대상이 주어지는 것도 사치이며 그런 대상이 주어졌을 때 아무 생각 없이 ‘단순히’ 뜨겁게 사랑할 수 있는 마음도 사치가 아닐까? 자기 자신은 사라지고 오로지 사랑하는 대상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듯한 그런 상태. 그럴 정도로 정신 못 차리고 상대에게 빠져들어 뜨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사치’이고 그렇기에 사람들은 그토록 ‘사랑하기’를 열망하는 것은 아닐까.

‘연하의 유부남을 사랑한 불륜 이야기’임에도 이 작품은 묘하게 공감 가는 구절이 많다. 사랑하는 동안은 사랑하는 대상 밖에 보이지 않는 열정적인 상태와 그녀의 그 뜨거움도 어떤 면에서는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이 작품이 사랑을 해 본 이들에게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이유는 치열하고 진실된 사랑의 기록이기 때문은 아닐까? 사랑하는 대상이 어떤 사람인지도 그녀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아니 에르노는 ‘그 사람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는 내 온 몸으로 남들과는 다르게 시간을 헤아리며 살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그와 헤어진 후 그가 존재하지 않는 부재의 시간에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와의 일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기록한다. 그의 부재를 잊기 위해서? 고통을 견디기 위해서? 아니다. 그녀는 그를 사랑했던 그때에 머물고 싶기 때문에 글을 쓴다. 끝내고 싶지 않았던 ‘삶이 가장 아름다웠던 그 시절‘의 영원한 반복을 나타내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다. 사랑은 끝났지만 그녀의 열정은 어떤 의미에서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뜨겁게 사랑했고 사랑한 만큼 상처입고 고통 받은 그녀는 ‘언젠가 그 사람도 다른 사람들처럼 내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리겠지’라며 이별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 뜨거웠던 사랑을 통해 ‘그 사람 덕분에 나는 남들과 나를 구분시켜주는 어떤 한계 가까이에, 어쩌면 그 한계를 뛰어넘는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한 인간에게 선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아니 에르노’는 경험했던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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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기니
버지니아 울프 지음, 태혜숙 옮김 / 이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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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1월 25일. 그러니까, 오늘은 버지니아 울프가 태어난 날이다. 이런 날에 그녀의 책 한 권을 돌아보는 것도 의미 있으리라. 버지니아 울프는 우리에게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종종 버지니아 울프를 소재로 만들었거나, 그녀의 작품으로 만들어진 영화를 통해서 보이는 이미지도 ‘고뇌하는 천재 여성 작가’의 이미지였다. <3기니>는 울프에 대한 이러한 기존의 이미지에 몇 가지를 추가한다.


평화주의자, 페미니스트, 그리고 사회주의자인 버지니아 울프- 이런 그녀의 모습을 <3기니>를 통해 만날 수 있다. 이 책은 서간체 형식을 띄고 있다. 소설인가 싶으면서도 소설이 아니고 단순히 울프가 자신의 생각을 쭉 주장한 에세이인가 싶으면서도 그렇지 않고, 편지 형식인데 울프가 꼼꼼하게 단 주석이 달려 있는 형식부터가 독특하다. 


변호사인 ‘남성’이 ‘나’(‘나’는 꼭 버지니아 울프라고 볼 수만은 없다)에게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의 형식을 띄고 있다. 첫 번째 기니, 두 번째 기니, 세 번째 기니로 나뉘어져 각각 독립적인 주제를 갖고 가상의 ‘남성’에게 ‘나’는 답장을 보내고 있다. 변호사인 ‘남성’은 전쟁을 막기 위한 활동에 기부금을 내 달라고 ‘나’에게 주문을 했고, ‘나’는 답장을 통해 어떤 이유로 기부를 할 수 있는지, 혹은 없는지를 조목조목 밝히며 남성 중심 사회에 쓰디쓴 비판을 가한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각 장과 이 책의 제목을 이루는 ‘기니(guinea)’의 의미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살던 1930년대 영국에서 기니(guinea)는 의료비나 비싼 사치품을 살 때, 공수표에 쓰는 액면가로 사용되었다. 기니는 곧 사용자의 계급과 구매품의 고가를 의미한다. 울프가 3기니를 쓰고 있을 때 부자들은 자선 단체에 기니를 기부하거나 그림이나 그 밖의 사치품을 살 때 기니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또한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영국의 약탈, 제국주의를 상징하기도 한다. 영국은 아프리카 기니만 연안의 노예무역을 통해 부를 획득했고, 아프리카 노예무역으로 얻은 수익금을 기념하려고 주조된 상징적인 동전이 바로 ‘기니’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니’는 영국의 제국주의, 침략주의, 인종차별을 의미하는 동시에, 영국에서 여성의 상태가 노예와 다를 바 없음을 폭로하는 상징적인 제목이다.


첫 번째 기니에서 울프는 전쟁에 반대한다는 메시지를 명확히 밝히며, 전쟁을 만들어 온 역사는 바로 남성임을 조롱한다. 전쟁은 곧 남성다움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이며, 군복과 훈장 등을 명예롭게 생각하는 것 등이 모두 남자들의 문화임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 모든 선택권에서 여성은 교묘하게 배제되어 있음을 꼬집는다. 때문에 기부금을 내기보다, 국가에 충성하고 전쟁에 동참하는 인간을 양성하는 기존의 대학과는 다른 여성대학을 만드는 데 1기니를 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힌다.


“이 새로운 대학, 가난한 대학에서는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요?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기술, 군림하고 살상하며 땅이나 자본을 획득하는 기술을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 그런 기술을 가르치려면 월급, 제복, 의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비용이 너무 많이 듭니다. 가난한 대학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값싸게 배우고 실행할 수 있는 기술만 가르쳐야 합니다. 이를테면 약학, 수학, 음악, 미술, 문학이 좋겠습니다. 새로운 대학은 인간의 상호교류 방법, 즉 다른 사람의 삶과 마음을 이해하는 기술, 대화하는 기술, 이것과 관련되는 의복과 요리에 관한 기술을 가르쳐야 합니다. 새롭고 청빈한 대학의 교육 목표는 분리와 전문화가 아니라 결합이어야 합니다.” 라며….


이런 식으로 울프는 두 번째 기니에서 여성의 전문직 진입을 돕는데 1기니를 기부하겠다고 밝히고, 세 번째 장에 와서야 그 ‘남성’에게 3기니 가운데 1기니를 보내겠다고 답한다. 그러나 역시 ‘정의와 평등과 자유의 위대한 원칙을 몸으로 존중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내놓겠다는 조건을 달면서. 결국 울프는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사회가 사라져야 하며, 애국심을 최선의 가치로 여기는 국가 종속형 인간, 훈장, 메달, 작위 등을 따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기존의 대학 이런 것들이 사라져야만 가능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울프가 살던 시대에서 1세기가 지났다. 버지니아 울프는 폭격이 계속되는 런던에서 그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을 했다. 울프가 만약 1세기가 지난 지금 살아 있었다면 그녀는 세상이 달라졌다며 기꺼워했을까? 울프가 그렇게도 바라던 여성만을 위한 대학도 생겼건만, 그 여성 대학은 여전히 기존의 대학들과 다를 바 없이 '남성들과 똑같은 경쟁 틀'에서 싸워서 이겨 성공하는 법을 가르친다. 이런 현실을 보며 그녀는 여전히 강물에 뛰어들고 싶어하지는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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未來ちゃん (單行本)
川島小鳥 지음 / ナナロク社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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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듣도 보도 못한, 생면부지의 한 아이가 나에게 다가와 콕 박혔다. 아이의 이름은 ‘미라이짱’이란다. 그리고 그때부터 가끔, 조금 울적하거나 우울한 날이면 이 사진집을 꺼내본다. 그러다 보면 기분이 조금 나아지고, 어느 땐 행복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 아이의 정확한 나이도 모르고, 사는 곳도 잘 모른다. 그저 내가 아는 건 일본의 작은 꼬마라는 것 정도? 그 무렵, 웹을 떠돌다 우연히 이 아이의 사진을 보게 되었고, 이 꼬마의 사진집이 나와 있다는 것을 알고 냉큼 사버렸다. 사진집을 사다니! 내가 사진집을 사는 일은 매우 드문데, 그것도 이름이 꽤 알려진 작가의 사진집일 때가 전부이다. 그런데 이렇게 전혀 알지도 못하는 한 꼬마의 사진집을 사게 되다니!

책을 받아서 한 장 한 장 넘기는데…. 어떤 페이지에서는 미친 듯이 웃고, 어떤 페이지에서는 아련하게 뭉클해지고, 어떤 페이지에서는 행복감에 젖어들고, 또 어떤 페이지에서는 울컥 뜨거운 것이 치솟기도 하고, 그러다 급기야 어떤 페이지에 이르러서는 눈물이 펑펑 샘솟았다. 행복해서 웃으면서 막 울었달까;; 이 꼬마…. 울다가 웃기다가 사람을 아주 쥐락펴락한다. 아니, 이 꼬마가 그런 것일까? 이 꼬마를 담은 사진이 그런 걸까?

처음 ‘미라이짱’이라는 이 꼬마를 담은 사진을 봤을 때 ‘뭐야 애가 좀 징그러운데...; 싶었다. 눈이 너무 크고 아이답지 않은 시크한 표정에 움찔하기도 했다. 게다가 어떤 사진에서는 공포영화 ‘처키’를 닮은 듯도 했고, 혹은 ‘요시토모 나라’의 그 유명한 소녀 그림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첫인상에도 불구하고 한 온라인 서점에서 이 꼬마의 사진집을 넘겨보다가 결국엔 그냥 반하고 말았다. 사진집을 보는 내내 행복하고 기쁘고. 아…. 아련하다.

이 사진집의 가장 큰 미덕은 꼬마의 표정이 너무나도 생생하다는 점이다. 울고, 웃고, 장난치고, 화내고, 인상 쓰고, 개구진 한 꼬마를 만나게 된다. 게다가 이 꼬마의 사진은 전혀 인공적인 냄새가 없다. 베이비 사진관에서 일부러 아이들을 웃기고 울려서 찍은, 그저 예쁘기 만한, 개성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꼬마들 사진과는 정말 다르다. 꼬마는 그냥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움직이며, 그 순간의 매력을 작가가 놀라울 정도로 생동감 있게 포착했다. 게다가 이 꼬마가 살고 있는 집의 풍경, 섬의 풍경도 이 사진집의 독특함에 큰 역할을 한다.

아, 이 사진집. 말이 필요 없다. 보고 있노라면 그저 행복하고 아련하고 감동적이다. 두고두고 보게 된다.


이 아이도 지금은 꽤 자랐겠지?........ 요즘도 저렇게 시크할까? 훗-



처음 봤을 때는 어쩐지 처키 같았던 사진 ㅋㅋㅋㅋ



눈꼬치?? 흡입 중???



으그 못난이 ㅋㅋㅋㅋ



볼빨간 시크녀 ㅎ



집안 일도 잘(?)해요.... 으응?



아구 예뻐라...



아구.... 예뻐라..(?응? ㅋㅋ)



흔치 않은 웃는 사진 ㅋㅋㅋ



어쩐지 아련해진다.


눈을 즐겨먹는 소녀



아이구야, 강아지도 넘넘 귀엽다.



온 집안 필수 아이템 ㅋㅋㅋㅋ



더없이 행복해지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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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6-01-23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특별한 느낌을 주네요.
담아갑니다. 소개, 고맙습니다

잠자냥 2016-01-23 13:35   좋아요 0 | URL
넵~ 책 보시면서 따뜻하고 행복해지시길 바랍니다!
 
A가 X에게 - 편지로 씌어진 소설
존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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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있다. 여자는 그녀의 연인인 남자에게 편지를 쓴다. 남자의 답장은 자주 오지 않는다. 남자는 그저 여자의 편지 뒷장에 메모를 할 뿐이다. 이런 저런 생각들. 남자는 이중종신형을 선고 받고 감옥에 갇힌 상태다. 여자와 남자는 결혼을 한 사이가 아니기 때문에 면회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여자는 때문에 그저 자신의 일상을 기록한, 그녀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웃들의 소식이 담긴 편지를 남자에게 보낼 뿐이다.


여자의 이름은 아이다(Aida), 남자의 이름은 사비에르(Xavier)- 이렇게 해서 이 소설 <A가 X에게 – 편지로 씌어진 소설>은 이루어진다. 존 버거는 소설의 첫 도입부에서 이들의 편지를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고(그러나 발견하게 된 경위는 밝힐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런 장치를 통해 편지 속의 이야기들이 실제로 일어난 것 같은, 아니 어쩌면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는 생각이 들게끔 만든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무너진다.

사비에르는 왜 감옥에 갇혔을까? 그것도 죽을 때까지 감옥에서 나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죽어서도 살았던 나이만큼 그 시신을 감금해 놓는다는 가혹한 형벌, 이중종신형이라는 무거운 선고를 받게 된 것일까? 해답은 금방 알 수 있다. 아이다의 편지 뒷면에 적힌 그의 메모를 통해 그는 반정부 투쟁을 벌여온 테러리스트였으며 그로 인해 지금과 같은 처지에 놓였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사비에르의 메모에 담긴 내용은 하나 같이 자본주의, 세계의 불평등, 신자유주의 세계화, 제국주의의 폭력성에 맞서는 내용이다. 프란츠 파농이나 차베스 등 부당한 현실에 반대해 혁명을 꿈꾸던,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사람들의 잠언이나 명언들도 상당수 차지한다. 이런 메모로 인해 사비에르가 무거운 형벌을 받게 된 이유는 제국주의, 자본주의, 다국적기업의 폭력적인 지배 등에 맞서 싸웠기 때문을 알 수 있게 된다.

바깥에 있는 아이다 역시 그런 삶과 무관하지는 않다. 약제사로 일하고 있는 그녀는 투쟁을 하다 다친 사람들을 치료하고, 군인들의 총에 맞아 다리를 다친 소년을 돌봐주는 등 돈 없고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묵묵하게 돕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편지 속에 적힌 ‘카드놀이’라는 암호화 된 이야기로 사비에르와 함께 투쟁을 하던 이들과 그녀는 계속 연결되어 있음도 유추할 수 있다.

아이다는 처음부터 아예 없었던 것과 곁에 있던 존재가 사라진 상태, 즉 부재의 상태는 다르다면서 그가 없는 현재의 상태를 외롭게, 그러나 꿋꿋하게 버틴다. 면회의 기회라도 얻고자 번번이 결혼 신청을 하지만 그조차 쉽지 않다. 이들이 다시 함께 할 수 있을까? 이중종신형을 받은 이 남자, 사비에르와 아이다가? 이 두 연인의 현실은 척박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편지 속의 이들을 보면 그 척박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폭압적인 세계에 굴하지 않고 자신들의 사랑과 신념을 지키고자 하는 모습이 올곧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아이다와 사비에르가 처한 현실은 정말로 어디선가 지금 일어나고 있을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곳은 남아메리카일 수도 있고, 아프리카일 수도 있고, 아랍 땅일 수도 있다. 아이다와 사비에르의 얼굴을 한 수많은 사람들이 그 땅에 살아가고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실제로 아이다가 사비에르를 부르는 호칭은 스페인어, 터키어, 아랍어 등등 다채롭다. 때문에 아이다와 사비에르는 영어를 일상적으로 쓰는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 아닌, 소위 제3세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일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때문에 제3세계에 이런 척박한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이 단지 소설 속이 아니라 현실로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을 일깨우게 된다.

오늘날 제국주의나 신자유주의, 다국적 기업의 횡포, 세계화가 가져온 불평등의 심화를 다룬 책은 무수히 많다. 존 버거의 <A가 X에게 – 편지로 씌어진 소설> 역시 크게 본다면 그런 범주에 속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이 책이 그런 책들 중에서 조금 더 돋보이는 이유는 연인들의 사랑이라는 소재를 통해 문학이라는 장르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그런 장치를 통해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아이다와 사비에르의 얼굴을 한 수많은 개인이 지금 이 순간도 제국주의의 폭압적인 지배 아래 세계 곳곳에서 쓰러져 가고 있음, 신음하고 있음을 조용히 일깨워주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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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이디스 워턴 지음, 김욱동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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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째 시리도록 춥다. 이런 겨울에 읽기에 딱 알맞은 책 한 권이 있다. 바로 이디스 워튼의 <겨울>. 원제는 <Ethan Frome>으로 이 작품의 주인공 이름이다. 문학동네에서는 제목을 <겨울>이라고 명명했다. 문학동네 이전에는 문예출판사에서 <이선 프롬>으로, 열린책들에서 <그 겨울의 끝>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적이 있다.


처음 책을 읽기 전에는 <이선 프롬>이라는 원제와 <겨울>이라는 제목 사이에 너무 큰 괴리감이 있는 것은 아닐까 했는데 책을 읽고 나니 <겨울>이라는 제목이 꽤 그럴 듯하다. 더욱이 문학동네에서는 이 책과 함께 이디스 워튼의 <여름>도 함께 출간했었다. <여름>은 <겨울>과 달리 ‘생의 열기로 뜨거웠던 한여름 소나기 같은 사랑’ ‘젊은 여성의 성장기’를 다룬 작품이라고 한다. 그렇게 보자면 워튼의 이 작품은 <여름>과 대비되는 주제와 내용을 다뤘다는 의미로 <겨울>이라 번역한 것도 꽤 괜찮은 느낌이다.

이 작품에는 평생 ‘겨울’과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나온다. 겨울과 같은 삶이란 어떤 삶일까. 혹독한 추위와 함께 모든 것이 얼어붙어 생명의 기운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겨울. 그런 겨울이 지나면 꽃이 만개하는 봄이 올 것이라는 희망으로 사람들은 살아간다. 하지만 봄도 없고 끝없이 겨울만 이어진다면? 주인공 이선 프롬이 바로 그런 남자다. 그의 인생에서 봄이 존재했던 적이 있는가? 아, 그래 그에게도 봄이 잠시 찾아왔다고 여겨졌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 봄은 끝내 그와 함께 겨울에 머물고 만다.

<겨울>은 무척이나 차갑고 슬프다. 아무도 없는 눈 덮인 설원 위를 혼자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액자 소설 구조를 띄고 있어서 슬픔이 조금 미약해지는 느낌인데 만약 액자 소설 구조를 탈피했다면 이 작품의 우울한 정서, 슬픔은 정말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을 듯하다. 책의 뒤표지에 “<겨울>이 뿜어내는 암울한 심리를 좋아했다. 이렇게 좋은 작품은 마음속으로 혼자만 즐겨야지 다른 사람들에게 발견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 톄닝 (소설가)”라는 말이 언급되어 있던데, 정말 그렇다. 이 작품은 더없이 슬프면서도 아름답다.

이선 프롬은 19세기 미국 뉴잉글랜드의 작은 마을, 항상 겨울만 존재하는 듯한 마을 스탁필드에 사는 남자다. 그에게도 꿈을 꾸던 시절이 있었고 그 꿈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부모가 아프고 그 부모를 돌보기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해야만 했다. 부모가 죽은 뒤에 꿈을 찾아 나섰으면 되는데 인생은 또 뜻대로 되지 않았다. 부모를 돌봐주던 한 여인에게 청혼을 하고 그 여인과 애정 없는 결혼 생활이 시작된다. 마을의 기운 탓일까, 이 마을은 유난히 병든 사람들이 많고 이선이 결혼한 여인도 결혼 전에는 그렇게 생명력을 뿜더니 결혼 후에는 그녀 역시 병들고 만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한줄기 희망 같은 여인이 나타난다. 그녀의 이름은 매티- 아내의 먼 친척이다. 병든 아내를 돌보기 위해 매티는 이선의 집에서 함께 기거하게 된다.

이쯤하면 병든 아내를 사이에 두고 매티와 이선의 그렇고 그런 불륜(?)이 그려지려니 하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매티를 향한 이선의 가슴앓이, 혼자만 앓는 질투와 사랑, 기대, 아내에 대한 책임감과 죄의식….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할 때 느낄 수 있는 감정과 자신에게 기대하고 있는 다른 사람의 믿음을 배반했을 때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 섬세하게 그려진다. 처음에는 병든 아내를 곁에 두고 다른 여인을 욕망하는 이선의 행동에 화가 났는데 점점 매티를 향한 그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그 사랑을 응원하게 되었다. 이 작품의 최고 절정 부분에 이르러서는 그의 간절한 희망이 부서지지 않기를 바라며, 그러나 어쩐지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은 그 가련한 꿈을 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책을 덮고도 한 동안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겨울 공기는 찬 만큼이나 투명하고 가슴 시리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 차갑지만 오염되지 않은 상쾌한 공기가 폐부를 찌른다. 이선의 사랑이 딱 그랬다. 원문으로 읽으면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 싶어진다. 비록 번역서로 읽었지만 이디스 워튼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섬세한 심리 묘사, 눈에 잡힐 듯한 아름다운 배경 묘사, 녹록치 않은 주제의식까지…. 이 작품 하나만으로도 이디스 워튼의 열렬한 팬이 될 가치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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