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괴한 의료 기구들로 환자를 감아놓은 의사는 환자의 병세보다는 자신의 출세에 급급할 따름이다. 오로지 자신의 직업 경력에 그럴듯한 훈장 하나 남기기 위해서. 짐승을 잡으려고 혈안이 된 사냥꾼과 다를 게 무엇일까. 사회든 의사든 구성원에게 죽음을 막아준 것만으로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고 이죽거린다. 이들에게 당사자의 자존심이나 인간다움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그저 최고의 기록에만 목매는 운동선수 같다고나 할까.
이런 식으로는 안 된다. 내 말은, 한편으로는 사회가 냉혹한 무관심으로 일관하면서, 다른 쪽에서는 자발적으로 인생의 고리를 끊고 나가겠다고 해서 필요 이상의 과열된 관심과 근심으로 소동을 떠는 이중성으로는, 인간을 올바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개인이 사회의 소유물인가? 개인으로서의 나는 이러저러한 때에 사회가 내세우는 요구를 거절할 뜻을 암시적으로나마 보여주지 않았던가. 개인적인 결단으로 이미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 사회의 당위성만 요구한다는 것이 될 법이나 한 소리인가? 그래서 다시 한번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물음의 답은 꼭 찾아야 한다. 인간은 누구에게 속하는 존재인가?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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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09-16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에 절판되어 구하고
싶었던 책인데, 새로 나왔는
데 사볼 생각을 안하네요...

프레이야 2022-09-16 13:16   좋아요 1 | URL
오래전 읽으셨군요 매냐님.^^
여러가지 생각을 할 수 있는 좋은 책이었습니다.
 

표지에 그려진 호보코드들과 호보윤리강령이 책 말미에 실려 있다. 호보코드와 15개 조항 호보윤리강령은 아직도 유효한 측면이 있다. 현재의 호보문화는 일종의 반문화 운동으로 전통적인 사회 규범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매혹하고 예술적 소재로 재탄생한다. 호보백도 여기서 나온 이름. 영화 “북극의 제왕”은 이 책의 켈리장군과 호보부대 이야기에서 영감 받았다고 한다. 이 영화는 다음에 볼 수 있기를.

나는 종종 (듣는 이들은 농담이라고 생각했겠지만)인간과 다른 동물들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인간만이 같은 종의 여성을 학대하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말하곤 했다. 늑대나 비열한 코요테도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가축으로 퇴화한 개조차도 그러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개는 아직 야성의 본능을 간직하고 있지만, 인간은 대부분의 야성 본능을 잃었다. 최소한 좋은 본능은 잃었다.
내가 얘기한 것보다 더 끔찍한 삶의 페이지들도 있을까? 동부, 서부, 남부, 북부, 미국 전역에서 있었던 아동 노동에 관한 보고서를 읽어보면 우리 모두 탐욕스러운 장사치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서스케하나에서 있었던 여성 폭행보다 더 잔혹한 삶의 페이지를 찍어내는 식자공이자 인쇄공이다. - P78

가끔 우아한 문구로 내 삶을 소개한 신문이나 잡지, 연대기들을 읽어보면 내가 사회학 연구를 위해 떠돌이가 되었다고 한다. 전기 작가들의 사려 깊은 친절함 때문이겠지만 사실이 아니다. 내가 떠돌이가 된 것은, 글쎄 쉬게 두지 않는 내 안의 생명력과 내 핏속을 흐르는 방랑벽 때문이었다. 물에 빠지면 피부가 젖는 것처럼 사회학은 단지 부차적이었다. 추후에 따라온 것일 뿐이다. 벗어날 수 없기에 나는 ‘길‘에 나섰다. 주머니에 기차표를 살 돈이 없었기 때문에, 평생 한 가지 일만 반복하며 살 수 없게 태어났기 때문에, 글쎄 아마도 내게는 길이 더 쉬웠기 때문이리라. - P165

자유를 향한 미국인의 피가 끓어올랐다. 모든 자유를 사랑한 우리 선조들의 외침이 내 안에서 들려왔다. "왜 이래요?" 나는 따졌다. 말하자면 해명을 요구한 것이다. 그리고 답이 왔다. 퍽! 그가 곤봉으로 내 머리를 내리쳤고 나는 취한 사람처럼 휘청이며 뒤로 물러났다. 호기심이 생긴 구경꾼들이 파도처럼 위아래에서 몰려들었고, 내 소중한 책이 팔에서 흙먼지 속으로 떨어졌다. 경찰은 다시 한 대를 먹이려고 다가왔다. 곧 벌어질 일이 예상되어 아찔해졌다. 곤봉으로 수도 없이 머리를 얻어맞고 피범벅이 된 흉측한 몰골로 즉결 재판소에 서 있는 모습이었다. 난동, 욕설, 업무방해, 그 외의 몇몇 죄목이 붙어 블랙웰섬‘으로 송환되는 내 모습이었다. 일이 어떻게 돌아갈지 깨닫자 설명을 듣고 싶은 마음이 전부 사라졌다. 아직 읽지도 않은 내 소중한 책을 그대로 두고 몸을 돌려 뛰었다. 너무 아팠지만 계속 달렸다. 죽는 날까지 언제든 경찰이 곤봉으로 설명을 하려 들면 나는 죽자고 도망칠 것이다.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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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9-14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보 코드 라는 말이 낯설어서 검색해봤어요.
호보를 검색하면 더 많이 나오는 건 호보백입니다.^^
프레이야님, 연휴 잘 보내셨나요.
날씨가 계속 흐려요.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프레이야 2022-09-14 18:54   좋아요 1 | URL
제법 가을 같은데 오늘은 조금 흐리네요. 호보 코드는 호보들이 다음 호보들을 위해 남기는 표식입니다. 간단하게 표시가 되게 남겼네요. 그들만의 은어 같이. ^^

2022-09-14 2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15 0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15 0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15 0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22-09-15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만이 같은 종의 여성을 학대하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 그러네요. 동물들은 짝짓기 할 때 수컷들이 오히려 암컷 눈에 들려고 노력하던데요. 성차별 문제는 언제 끝날까요?

프레이야 2022-09-15 16:56   좋아요 0 | URL
그걸 인지하지도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게 문제일 듯요. 저 땐 백여년 전이지만. 미국 집시 여자를 채찍질하는 남자를 본 후 적은 기록입니다 에효.
 

잭 케루악이 영향을 받은,
잭 런던의 자전적 호보 생활 이야기
1907년 출간.

호보로 성공하려면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순간적으로 이야기를 창조해야 한다. 자신의 상상력에 의존한 이야기가 아니라 문을 열어준 사람의 표정에서 보이는 이야기를 말이다. 그 사람은 남자일 수도, 여자나 아이일 수도있다. 친절할 수도, 떽떽거릴 수도, 관대할 수도, 인색할 수도, 선할 수도, 심술궂을 수도 있다. 유대인이나 이교도일수도, 백인이거나 흑인일 수도, 인종차별주의자이거나 사해동포주의자거나 배타적이거나 아주 열린 사람이거나, 그무엇도 될 수 있다. 내가 이야기꾼으로 성공한 것은 떠돌이시절의 이런 훈련 덕분이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살아갈 음식을 얻기 위해 나는 진실성이 느껴지는 이야기들을 지어내야 했다. 나는 남의 집 뒷문에서 권위 있는 평론가들이 단편 소설의 미학적 요소라고 평가하는 진정성과 현실성을 키울 수 있었다. 이런 냉혹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 P15

앞으로 반 마일 안에 터널이 없기를 간절히 빌면서 차량 지붕 위를 여섯 칸이나 걸어 내려갔다. 이런 위험한 이동을 할 때는 절대 겁을 먹지 말아야 한다. 객차 지붕은 한밤의 산책에 적당한 곳이 아니다.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일단 해보시라고 하고 싶다. 잡을 데라곤 시커먼 허공밖에 없는, 요동치며 흔들리는 기차 지붕 위를 걸어보시라고. 밤이슬에 온통 젖어 미끄러운 지붕 끝 경사진 곳에서 뒤 차량으로 건너가기 위해 빨리 달려보라고. 장담컨대 심장이 조여오고 눈앞이 아찔해질 것이다. - P47

나는 작전을 바꿨다. 어떤 사람이 당신 머릿속을 꿰뚫고 있을 때 그를 따돌리려면 이전 사고 방식을 깨고 새로운 방법을 써야 한다. 그것이 내가 한 일이다.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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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2-09-13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에세이입니까?

프레이야 2022-09-13 21:32   좋아요 1 | URL
넵. 자전 에세이입니다.
호방하고 명쾌하고 재미있어요. ^^
잭 런던이 떠돌이 노동자 생활을 하며 세상에 몸으로 부딪힌 경험.

scott 2022-09-13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오래전 어린이 용으로 읽었는데
다시 읽기롱 찜👆^^

프레이야 2022-09-13 16:30   좋아요 0 | URL
흥미롭네요. 잭의 실제 경험이 마틴 에덴에서는 적게 표현되었는데 그 이전의 경험들이 눈앞에 그려지듯 활달합니다. 이렇게 세상의 폐단과 거짓, 허위를 일찌기 몸소 보고 겪은 잭. 마틴 에덴의 심리적 사회적 지적 배경을 알 수 있어 좋으네요^^ 어린이용으로 나온 게 있었나용? 내용이 어린이용으론 아닌듯요 ㅎㅎ
 

가엾은 영혼, 병든 삶…
엔딩이 강렬하다.

77쪽 터무니없는 오자 하나, 옥의 티!
좋는—-> 좇는

삶을 너무나 사랑해서
희망도 공포도 놓고
우리는 짧은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어떤 신이시든
어느 생명도 영원히 살지 않게 하심을,
죽은 자들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심을,
아무리 느리게 흐르는 강도
구불구불 바다에 꼭 닿게 하심을.

그는 열려 있는 창문을 다시 쳐다보았다. 스윈번이 열쇠를 주었다.
삶은 병든 것, 아니 오히려, 진작부터 병들어 있던 것이었다.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죽은 자들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심을!‘ 그 시행이 그에게 깊이 감사하는 마음을 일으켰다. 그것이 우주에서 유일한 선행이었다. 산다는 것이 고통스럽도록 고단해졌을 때, 죽음이 영원한 잠으로 달래 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니 그가 무엇을 기다리겠는가? 이제 갈 때였다.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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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09-12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저도 읽어보고 싶긴한데 굳이 이렇게 두 권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싶기도 하더군요. 책이 예쁘긴한데...ㅋ

추석 잘 지냈죠?^^

프레이야 2022-09-12 14:53   좋아요 1 | URL
날씨가 너무 좋아요
오늘 연휴 마지막 날이네요. ^^
책 안 나눴더라면 두께가 좀 두꺼워졌을 것 같긴 해요. 녹색광선 다른 책들과 두께가 비슷하도록 한 건지. 잭 런던, 이 작품 내고 7년 후 세상을 떴어요.

페크pek0501 2022-09-13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때로는 죽음으로 영원히 잠들 수 있음이 위안을 줍니다. 영원히 죽지 않는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프레이야 2022-09-13 13:17   좋아요 0 | URL
조용히 자는 듯이 갈 수 있다면^^
 

허버트 스펜서 이론을 추종하며 지식인의 자기모순과 허위의식에 항변하는 마틴. 선을 벗어나는, 무례한 태도를 보이는 마틴이 두려워지는 루스. 아직은 사랑이 감싸는 듯하나 내면의 갈등이 강화되는 장면.

당신은 강자의 생존과 강자의 지배를 인정하는 척합니다. 나는 실제로 인정합니다. 그게 차이입니다. 내가 좀 더 젊었을 때, 그러니까 몇달 더 젊었을 때는 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보시다시피, 그때의 나는 당신의 연설에 감명받았습니다. 그런데 상인과 무역업자들은 기껏해야 비겁한 지배자들입니다. 그들은 허구한 날 돈벌이라는 여물통에 주둥이를 박고 꿀꿀댑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이 믿기 힘들겠지만, 귀족주의로 회귀했습니다. 이 방에서 나만이 개인주의자입니다. - P139

나는 국가에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습니다. 강자를, 국가를 그 헛된 도로에서 구해 낼 말을 탄 강자를 기다릴 뿐입니다. 니체가 옳았습니다. 니체가 누구인지 당신에게 설명하느라고 시간을 끌지는 않겠지만, 그가 옳았습니다. 세상은 강자의… 고상할뿐더러 장사와 교환이라는 돼지 여물통에서 허우적대지 않는 강자의 것입니다. 진정한 귀족이, 위대한 금발 짐승이,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 자들이, 인생을 긍정하는 자들이 세상을 가집니다. - P140

당신이 스펜서의 책을 열 페이지라도 읽어 봤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당신보다 유식하리라고 짐작되나 당신보다 스펜서를 더 읽은 것 같지도 않은 비평가들이 그의 추종자들에게 그의 전 저작에서 단 하나의 사상을 끌어내라고 윽박지릅니다. 과학 연구와 현대 사상의 모든 분야에 걸쳐 자신의 천재성을 각인해 놓은 사람, 심리학의 아버지, 오늘날 프랑스 농민의 자식들이 그가 확립한 원칙에 따라 교육을 받고 있을 정도로 교육학에 혁명을 일으킨 사람, 허버트 스펜서의 모든 글에서 말입니다.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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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9-12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틴 에덴 처럼
잭 런던,,,가난과 고통의 노동 시간동안 거의 모든 활자를 흡수 해버리고
작가로 이름을 날렸을때는 신인 작가지망생들 글 고스란히 베꼈다고 합니다
[인생을 긍정하는 자들이 세상을 가집니다]

프레이야님의 마지막 휴일, 온전한 자유를 달롸!^^

프레이야 2022-09-12 01:49   좋아요 0 | URL
치열하게 살다간 사람입니다 정말.
펄펄끓네요. ^^ 루스가 이해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얄밉고요. 실제론 부르조아 여성이랑 결혼도 랬는데 말이죠. 에고 눈이 너무 힘드네요 요즘